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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  
■ 성경:59야고보서02:22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
'온전케 되었느니라' 온전한 믿음된 것은 몇 가지 요소로 온전한 믿음이 되는가? 세 가지 요소로 온전한 믿음 됩니다. 행함하고 함께 일하는 믿음은 몇 가지 요소인가? 두 가지 요소입니다.

예수님의 사활의 (일곱 가지) 대속을 성경대로 아는 것은 믿음입니다. 그런데 그 믿음은 3분지 1의 믿음입니다. 그 요소가 하나뿐입니다. 그 아는 것을 자기가 인정치 않으면 달아나 버립니다. 그것을 아는 믿음을 그대로 인정하고 확신할 때에 그 아는 것은 달아나지를 못합니다. 확신할 때에 한 가지 요소의 믿음이 두 가지 요소의 믿음이 됩니다.

두 가지 요소의 믿음이 된 그것을 그대로 행하게 되면 세 가지 요소의 믿음이 되니까 온전한 믿음이 됩니다. 그대로 온전한 믿음입니다. 온전한 믿음이 됐으면 그 믿음은 도망을 못 칩니다. 왜 못 칩니까? 내가 알고 인정하고 행해 보니까 고기가 잡혔습니다. 행해 보니까 오병이어로 오천 명이 먹고 남았습니다. 행해 보니까 나사로가 살았습니다. 믿고 행해 보니까 이제 실상이 나타났다 말입니다. 실상이 나타났으니까 그 실상을 보고 난 다음에는 그것은 의심을 못 합니다. 의심을 안 합니다. 그러면 그 믿음은 있습니다.

그 믿음은 있는데, 그것뿐이고 그 다음에 또 새로 알고 인정하고 행해서 자꾸 이렇게 하면, 세 가지 요소의 믿음은 작아도 온전한 믿음인데 요 온전한 믿음을 자꾸 모으고 모으고 하면 이 믿음이 많은 믿음이 되고 큰 믿음이 되어집니다. 믿음을 붙드는 방법을 지금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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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하신 이것을 아는 그 믿음이 행하는 행함을 만들었습니다. 이 믿음이 행함과 함께 해 가지고 이 행함이 이루어졌을 때 이제 온전한 믿음이 되었습니다. 마음에 안대로 행했으니까 몸도 하나님을 따른 것입니다. 아는 것이 믿음이요. 행하는 것이 믿음인데 내가 하나님의 지식을 부인하면 믿음이 없고, 하나님의 지식을 인정하면 믿음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이 믿음의 가치는 이 믿음이 행함을 일으켜 행함과 함께 일하는 데에 있습니다. 행함을 가지지 아니하면 이 믿음은 하나님의 진노를 쌓고 하나님 앞에 벌을 받아야 합니다. 이 믿음이 자기를 정죄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마련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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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
이 말씀은 마음으로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아는 그 믿음이 실행이 없으면 믿음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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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
믿음은 순종입니다. 하나님께 순종이 믿음이요. 마음으로 하나님께 순종하고 자기 몸으로 순종하고 두 순종이 믿음이요. 마음으로 순종하는 그것도 믿음인데 '믿음이 행함과 함께 일하고' 야고보서에 말했습니다. 믿음이 행함과 함께 일한다는 말은 하나님의 뜻을 자기가 마음으로 순종을, 인정하는 것이라. 마음으로 순종을, 인정하는 것인데 이 믿음이 행함과 일한다 그 말은 인정이 행함과 함께 일한다 그 말이요. 인정이 돼야 행해지지요. 인정하고 행하고, 인정은 마음으로 순종한 것이고 몸으로 행한 것은 몸으로 순종한 것이니까 이 두 순종을 합하면 이제 온전한 믿음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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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
행하고 싶은 사람 되어지고 또 행하면 믿음이 어떻게 된다고? “믿음으로 말미암아 행하고 행함으로 말미암아” 믿음이 온전케, 22절, 「네가 보거니와」 이 눈이 잘 안 보여 이래 해요. 여러분들 젊을 때 성경 많이 봐요.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그 믿음이 일하고 있다 말이오.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 「믿음이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 이러니까 자꾸 계시 지식을 넓혀가고 깊혀가고 키워가면 행하고 싶은 마음이 생겨져가고 커져가고 또 행하면 자꾸 믿음이 자꾸 커져가고 온전해져갑니다.

이 보배로운 믿음은 계시를 내가 자꾸 계시 지식이 더 온전해짐에 따라서 행함이 자꾸, 행하고 싶은 소원이 온전해지고 또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해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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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제일 이 구원을 이룰라고 하는 우리들인데. 구원을 이룰라고 하는 우리들이 첫째로 애쓸 것이 무엇입니까? 첫째로 애쓸 것이 뭐입니까? 영감 생활입니까 온전한 신앙생활입니까? 우리가 구원을 이룰라고 하는 우리 신앙생활에서 구원을 이룰라고 애쓰는 것 첫째 애쓰는 것이 무엇입니까? 첫째 애쓰는 것이 영감 생활이라고 생각하는 분들 손 들어 봅시다. 신앙 양심 생활이라고 생각하는 분들 손 들어 봅시다. 네 신앙 양심 생활입니다. 신앙 양심 생활부터 돼야 됩니다. 신앙 양심 생활이 되면 신앙 양심 생활은 어떤 자격을 가지느냐 하면 영감 생활에 나아갈 수 있는 그런 자격을 갖췄습니다.

그러면, 신앙 양심 생활이 이제 다 됐다 하고 주저앉아 있으면 영감 생활에 나아갈 수 있습니까? 안 됩니다. 신앙 양심 생활이 이제는 자기가 처음에 신앙 양심 생활 할 때에 애쓴 거와 같이, 신앙 양심 생활이 이제는 신앙 양심 생활이 그 영감 생활 될라고 영감 행동 할라고 애를 쓰면 영감 행동이 되어 집니다. 그러면, 영감 행동이 되어 지면 그것을 가리켜서 온 전한 믿음이라, 온전한 믿음이라. 그래서 '믿음이 행함과 더불어 함께 일 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해진다'  하는 그런 것이 다 그런 말인 것입니다. 이래서, 온전한 믿음 생활이 되면 고 믿음 생활은 전지전능입니다.

고 믿음 생활은 전지전능입니다. 고 믿음 생활은 전지자요 전능자입니다. 고 믿음 생활이 전지전능인데, 고 믿음 생활이  전지전능인데, 그러면, 전지전능인 그 전지라는 그 지혜가 자기 것입니까 하나님의 것입니까? 자기 것이라고 생각하는 분들 손 들어 보십시오. 네. 하나님의 것입니다. 전지전능, 전지라는 지혜도 하나님의 것이요 전능이라는 능력도 하나님의 것입니다. 이제는 하나님에게 자기가 들어붙었기 때문에 하나님에게 들어붙어서 하나님과 연결이 됐기 때문에 하나님이 당신이 지식하는 그것을 이래라 하면 그대로 따라 하니까. 하나님이. 하나님의 지혜가 자기에게 시키시는 대로 자기가 따라 움직이니까 그 지혜가 하나님의 전지에 따라 움직이기 때문에 자체가 전지의 지혜자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에 따라서 움직이기 때문에 전능자가 되어 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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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
그러기 때문에, 깨닫고 실행하라, 시험해 봐라. 그것이 이 말씀을 자기가 확신을 가지는, 인정을 가지는, 확신을 가지는 방법입니다. 방법을 배웠습니다.
또, 이 믿음은 믿음의 종자요. 이 믿음이 장성해지는, 이 믿음이 장성해 지는 데에는 어떻게 장성해지는가? 장성해지는 것은 자기가 이제는 이 말씀을 알고 인정하고 난 다음에는 그대로 또박또박 행합니다.
그래서 야고보서 2장에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행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여진다.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제는 자기가 아는 대로 행하는 것 행할 때에 자기에게는 어떤 믿음이 생기느냐? 온전한 믿음이 이루어집니다. 온전한 믿음은 성경에 말하기를 능치 못함이 없다 그렇게 했습니다. 믿음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산다, 믿음은 능치 못함이 없다, 믿음으로 하늘의 모든 것도 다 상속받을 수 있고, 세상도, 세상을 이기는 이김이 뭐이냐? 세상을 이기는 이김이 어디 있느냐? 세상을 이기는 이김은 믿음이니라 이랬습니다. 세상을 이기는 이김은 믿음이니라.

그런고로 우리는 이 하나님의 말씀을 참되심을 인정하는 이 종자적인 믿음을 가지도록 노력을 하고. 이 종자적인 믿음이 이제는 온전한 믿음이 되어지는 이 실행에 나아가도록 노력을 해서 이 신구약 성경 말씀을 자기가 참되다 인정하는 자가 돼야 거기서부터 뭐이 되지 인정하지 안하면 헛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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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
이 말씀은 비유컨대 자동차 엔진이 타이어와 함께 돌아가고 있다 하는 그런 말과 같은 말입니다. 엔진이 돌아가니까 타이어도, 발통도 돌아가고 있다, 농부가 소와 함께 농장에서 일하고 있다 하는 말과 같은 말입니다. 그 엔진이 돌아가는 것을 보지 못하는 사람은 자동차 바퀴가 돌아서 그렇게 빨리 달리고 있다 그렇게 볼 것이고, 그러나 자동차 전체를 보는 사람이라면 자동차 타이어가 그렇게 돌아감으로 가는 게 아니고 보이지 않는 속에 엔진이 돌아가니까 그 타이어가 그 힘으로 돌아가고 있다 그렇게 볼 것입니다.

사람이 모든 행동하는 것을 볼 때에 행동 그것만 보는 사람은 그 사람이 그렇게 의로운 행위를, 착한 행위를 하고 있다 그렇게 볼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속에 있는 엔진을 보지 못하는 사람이 타이어만 보고는 ‘타이어가 빨리 돌아가고 있다’ 하나, 그 내용을 다 아는 사람은 ‘타이어 저 혼자는 돌아갈 수 없는데 엔진이 돌아가니까 거게 피동돼서 타이어가 돌아가고 있다’ 그렇게 보는 것이 바로 보는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그 사람의 온갖 성경대로의 그 행함을 볼 때에 ‘그 사람의 행위는 의롭다. 아주 거룩한 행위를 하는 사람이다.’ 그렇게만 볼 것이고, 그래서 그 사람은 참 의로운 사람이라 그렇게 볼 것이고, 좀 더 구비하게 보는 사람은 ‘왜 그 사람이 세상이 이해 못 하는 그런 일을 하겠나? 이 과학적의 생활도 행동도 아니요 세상에 수지 계산 맞는 행위도 아닌데 어떻게 그런 성경대로의 그 행위를 할 수 있는가? 그 사람이 장하다.’ 그렇게 볼 사람도 있을 것이고, ‘그것은, 그 사람이 그 행동 하는 것은 제가 수월해서 그 행동하는 것도 아니고, 그 사람이 힘이 있어서 담대해서 그 행동 하는 것도 아니고, 그 행동 하는 것은 하나님이 말씀해 놓으신 이 말씀을 믿기 때문에 말씀을 믿고 보니 그 사람은 그런 행위를 하지 않을 수 없어서 그런 행위를 하게 된다. 그래서 그 행위는 믿음으로 인해서 그 행위가 생기게 됐다.’ 그렇게 볼 것입니다.

우리 기독자들이 하나님께 대한 행위나 사람에게 대한 행위나 모든 사건에 대한 행위나 물질에 대한 행위나 어떤 행위든지 성경대로 그렇게 의롭게 행해 놓은 그 행위가 가치가 있느냐, 또는 하나님이 이렇게 성경에 기록해 놓으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이 성경 약속을 믿기 때문에, 성경에 하나님의 크심도, 하나님의 사랑도, 하나님의 전지 전능도, 하나님이 우리에게 약속하신 모든 소망도 성경에 있는 모든 그 내용을 그 사람이 믿기 때문에 그 행위를 했다. 그러면 믿기 때문에 행위를 했으면 행위에 가치를 두느냐 믿기 때문에 행한 그 믿음에 가치를 두느냐 하는 것이 그것이 문제입니다.

행함에 가치가 있는 게 아니고 하나님과 그분이 선포해 놓으신 이 계약을 믿기 때문에 행한 그 믿음 그것이 가치가 있습니다. 거게다가 전적 가치를 두고 딴 데는 가치 두지 않습니다. 그러면 그 행함은 죽기까지 행할 수 있는, 생명까지 바칠 수 있는 그 믿음에 가치가 있다. 자기가 여러가지 손해나, 희생이나, 수고나, 봉사나 한 그게 가치가 있는 게 아니라, 그렇게 할 수 있기까지 하나님과 하나님이 계약하신 그 말씀을 믿는 거기다가 하나님이 가치를 두시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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