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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자가 광야로 도망하매 거기서 일천 이백 육십 일 동안 저를 양육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예비하신 곳이 있더라  
■ 성경:66요한계시록12:06
 

계12:6

'그 여자가 광야로 도망하매 거기서 일천 이백 육십일 동안 저를 양육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예비하신 곳이 있더라'
그 여자가 배암이 괴롭히니까 견디지를 못해서 광야로 도망했습니다. '그 여자가 광야로 도망하매 거기에 일천이백육십 일 동안 저를 양육하기 위하여 하나님이 예비하신 곳이 있더라' 이 말은 이제 예수님이 승천하시고 난 다음 땅위에 있는 교회는 광야로 도망해 가지고 광야에서 일천이백육십 일 동안을 거기서 양육받을 곳이 있더라 말은, 일천이백육십 일은 3년 6개월을 말합니다. 삼 년 반을 말합니다. 삼 년 반은 신약 시대의 전부를 가리켜서 말합니다. 거기 이레를 말했는데 이레는 구약 교회 삼 년 반, 신약 교회 삼 년 반을 합해서 칠 년 동안이라 그렇게 말했고 이레라고도 말했습니다.

이 여인은 교회인데 교회가 이 배암의 낯을 피해서 배암에게 해를 받지 아니하고 사는 곳이 어떤 곳이냐? 배암에게 해를 받지 않고 피해서 사는 그 피난처는 광야입니다. 이 광야도 하나 상징으로 말했는데, 광야는 어떤 게 광야인가? 땅위에 피조물들이 가득 찼지마는 아무런 의지할 것 없고, 의탁할 것 없고, 준비해 놓은 것 없고 아무것도 없는 쓸쓸하기만 하고 맹수만 가득 찬 것이 광야입니다. 그곳이 이 신약 교회가 양육받을 곳이라 하는 곳입니다. 이 광야라는 것도 잘 깨달아야 됩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어디가 살 곳이며 어디가 자기의 구원을 잘 이루어 갈 수 있는 곳인가 하면 광야입니다. 광야라는 것은 피조물은 하나도 의지할 것이 없고, 바라볼 것이 없고, 부탁할 자리도 없고, 서로 약속 맺을 자리도 없고 땅위에는 광야와 같이 아무 것도 무의무탁의 세상이라는 것을 깨닫고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을 상대해서 관계를 가지는 그곳이 곧 신약 교회가 양육받을 곳인 것입니다. 이것이 해산한 아들과, 해산할 여인과 용으로 더불어 싸우는 첫 전쟁입니다.

(86081001)


'광야로 도망하매'
'그 여자가 광야로 도망하매'한 것은 신약시대의 교회가 처세할 세상 입장과 형편을 말함입니다. 광야는 육신으로 된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와 가나안 가기까지 광야에서 단련 받아 예비기간과 같이 신약시대의 성도들이 낙원에 가기 전까지 성화 받는 처세 형편을 가리켜 말함입니다.


'광야'
'광야'라 함은
1) 자연적 소용물이 없는 곳, 육적으로는 자아에게 무익하고 주와 영과 이웃에게만 유익한 입장
2) 쓸쓸한 곳 멸시 천대 손실 억울 병 실패 낮아지는 입장
3) 고독 배척, 산(山), 옥(獄), 납치, 독야(獨夜), 집중사격
4) 무의(無衣), 무탁(無托), 물(物), 권, 인(人), 명(名), 지(智), 이런 것들을 의지할 수 없는 입장. 이런 광야로 끌려감이 아니고 용을 피하여 도망하게 되는 것은 사탄의 해 곧, 범죄 생활을 아니하려고 하면 자연히 이 광야 같은 생활을 만나게 되어지는 것을 가르침입니다.


'거기서 일천 이백 육십 일 동안 저를 양육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예비하신 곳'
예비한 곳이 있었으니 육적으로는 이 광야 생활이 심히 불행 같으나 천국 시민은 여기서 연단과 성장을 얻게 됩니다. 이유는 과거 이스라엘이 자연법으로서는 양육 받을 수 없는 광야에서 초자연법의 은총으로 40년간 생활하는 데에서 하나님과 그 권능의 보호와 약속의 그 신실을 깊이 인식하여 확신을 가지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같이 신약시대 교회도 말씀대로 순종하는 생활을 하면 자연법으로 살 수 있는 애굽 같은 세상을 자연히 떠나게 되고 광야 같은 순종하는 생활을 하게 되면 필연적으로 초자연의 은총과 거기 대한 확신을 체험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천국으로 인도하는 계명은 광야 같은 세상으로만 이끄는 도리로만 되어있습니다. 이는 고행주의로 이러한 것이 아니고 신본과 인본의 의와 벌의 성격이 다른 것과 같이 도(道) 자체의 그 원리가 그러하고 다음은 연단 받기 위하여 환경이 그와 같이 되는 것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점에 성도의 가질 주의는 자연의 처세술로 생존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만 순종하려고 하여서는 아니 됩니다. 이런 것은 아예 파기하고 초자연의 섭리가 아니면 처세할 수 없는 그 길이 성도의 양육받을 천로(天路)인줄 알고 초자연의 섭리의 모든 것을 맡기고 의식명(衣食命)은 주께 주권되어 있음을 견고히 잡고 요동치 않아야 합니다.

'광야' 그 곳이 우리들의 영을 양육하기 위하여 예비하신 곳이니 그 양육에 대한 일은 하나님의 일이요, 또 하나님이 책임지신 것이니 사탄이 해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모든 소유는 그 양육에 가장 적절하도록 적용하나니 두려움도 염려도 가질 필요는 없고 광야를 필연적으로 만나게 되는 그 명령에 항상 순종하여 항상 광야에서만 양육을 받을 것뿐입니다.

'일천 이백 육십 일'은 3년 반이나 세 때 반이란 말과 같은 의미를 가진 것인데 여기 1260일은 신약시대를 7년으로 상징하여 계12:6에는 전반을 말하고 14절은 후반기를 가리킴이니 계11:3, 11에 나타낸 기간과 같은 것입니다. 이 광야는 억지로 감이 아니고 용에게 삼키지 아니하려는 자에게 피난 가는 생명 길이니 자원하여 달려야 하는 길입니다.

(57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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