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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들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 성경:46고린도전서10:01
 

고전10:1

'형제들아'
이거는 우리 믿는 사람을 통틀어 하는 말입니다.


'너희가 알지 못하지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성경은 성령이 기록한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치 않는다' 하는 것은 우리 믿는 사람들이 이 도리를 다 알아야 되지, 이 도리를 알아 깨닫지 못하는 그런 것을 하나님은 참 탄식하십니다. 이것을 어쨌든지 우리들로 하여금 알도록 하기 위해서 기록해 주신 것이기 때문에 성경을 읽고 듣고 할 때에 깨달음이 있어야 됩니다.

깨달음이 있어야 된다 말은, '그것은 뭐라고 가르친다' 하는 그걸 아는 걸 말하는 거 아닙니다. 깨달음이 있다 말은, 성경 말씀을 읽고 들을 때에 '나는 여기 대해서 어떻게 해야 되나?' 하는 자기 할 일을 자기가 발견하는 그것이 깨달음입니다. 자기 할 것은 발견하지 못하고 '이것은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저렇게 말하는 것이다.' 자기와 상관없는 지식을 가지는 것은 성경에 깨달음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깨달음이라는 것은 상관없이 아는 게 아니고 '여기 대해서 내가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는 자기의 할 일, 자기의 방비할 일, 자기 준비할 일, 자기 죽음을 피하는 일, 자기 행복을 마련하는 일, 자기 죽음을 피하고 삶을 얻는 그 일을 아는 것, 그것을 깨닫는 것이 깨닫는 것입니다.


'우리 조상들이'
'우리 조상들이' 그 말은, 우리 육체의 조상은 한국 민족인데 우리 조상은 하나님에게 대해서는 통통 아주 무식했습니다. 유교에서 말하는 그 하나님은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 아닙니다. 그는 하나의 이치를 말하는 것이기 때문에 자기네들 아는 대로의 이치를 '천은 이해라, 하나님은 이치라'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치를 말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치는 만물에게 다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유교는 범신론 종교라 그렇게 판단하는 것이 바로 정확한 판단인 것입니다.

여기 조상은 우리 믿음의 조상이라 말입니다. 우리가 믿는 믿음, 그 믿음을 우리 오래 전에 있는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이 믿었는데 그들이 믿은 거와 같이 우리도 믿는 사람이 되어서, 우리 육체의 조상으로 말하면 한국 민족이겠고, 또 믿음의 조상으로 말하면 이제 우리 나라에 선교한 사람들이 우리 믿음의 조상이요, 그 이상의 조상은 구약 때에 예수 믿는 모든 사람들이 우리의 믿음의 조상입니다. 그 믿음의 조상은 아브라함, 이삭, 야곱, 또 십이 사도, 또 선지 그런 사람들이 우리 믿음의 조상들입니다.

여기 믿음의 조상이라는 것은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430년을 양육받아 가지고, 시련받다가 430년만에 애굽에서 해방되어서 출애굽했습니다. 그들이 다 믿음으로는 우리 조상입니다.


'다 구름 아래 있고'
구름 아래 있다 말은, 하나님께서 낮에는 구름으로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로 인도하셨습니다. 구름 아래에 있다 말은 하나님의 인도 아래 있었다 그말입니다. 구름 아래 있었다 말은, 하나님이 낮에는 구름으로 인도하셨고 밤에는 불로 인도하셨는데 하나님의 인도 아래 있었다 하는 그 말을 '구름 아래에 있었고' 그렇게 말합니다.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바다 가운데로 지났다 말은 홍해 바다를 아무 배조각도 없이 그저 남자들은 힘있는 대로 짐을 짊어지고 여자들은 또 아이를 안고 업고 이렇게 해 가지고, 육로도 잘 걸어가지 못할 만한 그만치 모두 잔뜩 짐을 진 사람들이 홍해 바다를 건넜습니다. 홍해 바다는, 이 세계에서 홍해 바다처럼 물결 센 바다가 별로 없습니다. 왜? 거기는 솔통목이 돼서 아주 물결이 조수에 따라서 싹 들어갔다 나갔다 이러기 때문에 물결이 심히 센 곳입니다.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이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구름 아래 있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났다' 그 말은, 하나님이 인도하실 때에 '여기는 구렁텅이가 있으니까 저리 둘러가자. 여기는 가시덤불이 있으니까 저리 돌아가자.' 이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요걸 똑똑히 깨달아야 됩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인도하실 때에 낮에는 구름기둥이 인도했고 밤에는 불기둥이 인도했습니다. 요 이치를 자세히 듣고 문자적으로 알고 역사적으로 알고 난 다음에는 속에 알맹이 진리가 있습니다. 알맹이 진리 그거는 기도하면 성령이 직접 가르쳐 주시는 그 알맹이 진리가 있습니다. 이 껍데기를 모르면 알맹이 진리를 모릅니다.

'바다 가운데로 지났다 구름 아래 있었고' 그 말은 구름기둥이 인도하는 인도를 받았고 또 하나님이 인도하실 때에 바다 가운데로 지났습니다. 그러면 여기서 이렇게 말하는 것은, 하나님이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하실 때에 인간의 생각대로 '요리 가면 좋다 저리 가면 좋다' 그렇게, 바위가 있으면 둘러갔고, 덤불이 있으면 또 돌아가겠고, 또 물이 있으면 저리 상류로 돌아가야 되겠고, 이렇게 하나님이 인도를 했겠습니까 구름과 불기둥이 인도할 때에 그런 거 상관하지 않고 쪽 바로 인도했겠습니까?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가운데 홍해가 닥치니까 둘러 가지고 가야 된다고 그리 인도하지 않고 홍해로 바로 인도했습니다. 이걸 우리가 깨달아야 됩니다.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그들을 인도해서 불기둥과 구름기둥의 인도를 받았는데, 그 인도를 받는 중에, 하나 예를 든다면 홍해 바다로 인도해서 바다 가운데로 인도함을 받았다 하는 것을 여기에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때 구름기둥과 불기둥은 오늘의 뭣을 모형해 가지고 보여 준 것입니까? 오늘의 진리의 영감이 우리를 인도하는 것입니다. 진리와 영감이 인도하다니? 우리 현실을 하나님이 만들어 주시면서 그 현실에 우리가 영감을 따라 살고 진리를 따라 살면 그 현실이 평탄한 현실입니까, 환난 있는 현실입니까, 평탄도 있고 환난도 있고 마구 섞여 있는 그 현실입니까?

그때에도 하나님이 인도하실 때에 강이 있으면 둘러가지 않고 강을 꿰뚫습니다. 또 맹수가 있는 험악한 산이 있으면 산으로 꿰뚫습니다. 인도를 받아서 가는 그 걸음이 강을 만나도 그 인도 따라서 가고 산을 만나도 그 인도 따라 가고, 어떻게 험한 들 강을 만나도 두르는 법이 없고 그대로 인도따라 갔습니다.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건 언제든지 곧게 인도했지 형편 따라 사정 따라서 그렇게 인도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이 우리를 인도하시는 그 인도는 죽음을 통과하는 것도 있고, 존귀를 통과하는 것도 있고, 별별 현실을 만나게 해 가지고 말씀대로 살려고 하면 죽음을 자취하는 그 걸음이 되고, 또 말씀대로 살라고 하면 모든 부요를 다 포기하는 걸음이 되고, 또 말씀대로 인도함을 받아서 가니까 죽었는데 살았고, 또 멸망 받았는데 살았고, 물에 빠졌는데 아무 상함 없이 걸어가고 하는 이것이 하나님의 인도인 것입니다.

(86092801)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구름기둥의 인도를 받았다 그 말입니다. 혹 생각해 봅니다. 비행기를 타고 가면서 보면 그저 이 만당 저 만당 거쳐서 자꾸 이래 날아가는데 거기는 골짝도 있고, 들 강도 있고, 뭐 층암 절벽도 있고, 또 강도 있고 오만 거 있지마는 거침없이 비행기는 주욱 자기 갈 길로 갑니다. 구름이 인도했으니까 그 인도가 어떠했을까 하는 것을 생각해 봅니다. 구름은 비행기보다 혹 위에 있을 때도 있고 혹 아래 있을 때도 있지마는 어쨌든지 공중에서 높이 떠 가지고 있는 것이 구름입니다.

그러면 구름이 주욱 인도할 때에 무슨 개울이 있다고 강물이 있다고 저리 둘러갔겠습니까, 층암 절벽이 있다고 멈추고 저리 돌아갔겠습니까? 그저 구름이 쭈욱 인도하는 그 길은 참 몇십 길 되는 데에 툭 떨어져야 되는 길도 있을 것이고, 또 강물을 그대로 꿰뚫어야 되는 것도 있을 것이고, 또 층암 절벽이 앞에 닥쳤는데 그 층암 절벽을 또 기어올라서 가야 되는 것도 있고 뭐 별별 형태 아니겠습니까? 땅에서 기는 것으로 인도하면 그런 형편과 사정을 다 보지마는 위에 비행기 가는 그 그림자를 따라서 한번 가려고 해 보십시오. 저는 위에서 타고 가면서 저 그림자가 밑에 환하게 비치고 있으니까, 비행기 그림자가 있으니까 그림자가 퍼뜩퍼뜩 지나갑니다. '야, 그림자 저걸 따라서 사람이나 뭐이나 따라가려고 하면 그 길이 어떻겠나? 그 길이 대단히 험하고 굴곡이 심하고 아주 높고 깊은 그런 차례들이 많이 있겠다. 이스라엘을 하나님이 구름기둥으로 인도했기 때문에 인도하시는 그 인도의 길이 대단히 험악했겠고 대단히 모순되고 다 자살하는 길과 같은 그런 길이었겠다.'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인도를 받을 때에 아무런 불평도 없고, 수지 계산에 이러면 과학적으로 죽는다 산다 그런 거는 아무것도 없고 그만, 마치 베드로가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만일 주시어든 나를 물 위로 걸어서 오라고 하십시오' 이러고 난 다음에 '오라' 하니까 주님 음성 듣고 주님만 보면서 아무것도 생각 안 하고 배에서 푹 뛰어내려 가지고 주님을 향해서 떠뻑떠뻑 걸어가니까 걸어갔던 것입니다. 그때 걸어가다가 잠깐 주님 외에 딴것을 보니까 그만 즉시 빠져들어갔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이스라엘을 하나님이 인도하실 때에 구름기둥 불기둥으로 인도하실 때에 그때에 참 별별 경로가 있었겠지마는 하나도 거기 대해서 '이러면 빠지겠는데요, 이러면 죽겠는데요, 이러면 가시덤불에 걸리겠는데요, 이러면 지금 층암 절벽이 앞을 가리우니까 어떻게 막히고 못 가겠는데요?' 하지 않고 그저 인도대로만, 사나 죽으나 그건 생각도 안하고 인도만 따라서 가려고 전심 전력을 기울여 갔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사랑하신 것은 이것입니다.

주님이 영감과 진리로 인도하시는 길 우리 현실에 이런 현실 저런 현실에 어떤 현실에든지 현실에 주님의 진리와 영감이 인도하는 것은 어떤 현실에서 인도하는 것은 견딜 만한 것도 있고 어떤 현실에서 말씀대로 살려 하면 목이 달아나는 일도 있고, 직장이 떨어지고 당장에 사형을 당하는 그런 일도 있고, 감옥에 가는 일도 있고, 다니엘은 사자구덩이에 죽어야 되는 일도 있었고,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불미 속에 들어가서 죽어야 되는 일도 있고 이렇지마는 하나님의 성도들은 죽나 사나, 유익이 있나 없나, 수지 계산이 맞나 안 맞나 그런 타산이나 그런 계산은 하나도 안 하고 그저 주님의 인도만 따라가려고만 애를 써서 갔던 것입니다. 그것이 신앙 걸음이라 하는 것을 우리가 여기서 잘 깨닫고 우리들도 그렇게 가는 것이 성도의 걸음이며 하나님의 인도하시는 걸음입니다.

(86092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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