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자책할 아무 것도 깨닫지 못하나'
사도 바울이, 그가 自己가 ‘하나님의 문서계시인 율법으로서는 하나도 책망 받을 것이 없이 다 지켜 행했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렇게 성경말씀대로 실천 실행을 한 사람이요, 또 말하기를 ‘내 마음에는 이것은 잘못됐다, 마음에 가책되는 것은 하나도 없이 그렇게 깨끗하게 다 회개를 했다.’ 이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말하기를 ‘내가 이렇게 내 마음에 자책할 것은 하나도 남겨두지 아니하고 다 회개해서 깨끗하게 회개를 했지마는 내가 이만하면 다 된 것이 아니라, 나는 아주 참 그저 봉사와 같은, 소경과 같은 그런 심령이 어두운 사람이기 때문에 내 어두운 심령으로서는 가책할 것이 없이 다 회개를 했지마는 알지 못하심이 없으신 그분 앞에 가가지고 심판을 받을 터이니까, 내가 지금 깨닫지 못해서 회개하지 못하는 것은 심히 많은 줄을 안다. 얼마나 되는지 모른다. 그러기 때문에 그날까지 떨면서, 主님이여 내가 지금 아직까지 고치지 못한 것, 깨닫지 못한 것 이것이 어떤 것인지 아직까지 깨닫지 못한 것을 깨닫게 해주시고 내가 듣지 못한 것을 듣게 하시고 알지 못한 것을 알게 해주셔서 나로 하여금 主님의 심판 앞에 설 때에 남긴 것이 없이 회개할 수 있도록 그렇게 해주십시오.’ 하는 그런 간구의 떪으로 산 것을 성경(聖經) 기록에 보면 볼 수가 있습니다.
(84050820 집회) 5
'내가 자책할 아무 것도 깨닫지 못하나'
시험지를 여러 번 재심사하고 내는 것처럼, 바울은 '마음에 자책할 것이 없다' 했습니다. 그 말은 자기 마음으로서는 아무리 살펴봐도 잘못된 것이 없다 말입니다. 잘못된 것이 없지마는, '자책할 게 없다' 자기 마음으로는 잘못된 게 없지마는 모든 것을 알지 못함이 없으시고 모든 걸 아시는 주님 앞에 심판을 받을 터이니까 그걸 생각하면, 자기는 흠이 없지만 자기는 완전치 못한 자이기 때문에, 나는 불완전한 자이니 내 마음으로서는 만점이 돼도 알지 못하심이 없으신 그분 앞에 가면 이게 흠점이 어떤 것이 드러날지 모르기 때문에 항상 발발발발 떨면서, 자책할 게 없으나 이로써 옳다 인정하지를 못하고 발발 떨며 가는 것이 인간입니다.
(86071630)
'내가 자책할 아무 것도 깨닫지 못하나 그러나 이를 인하여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하노라 다만 나를 판단하실 이는 주시니라'
그렇기 때문에, 오늘 아침에는 신앙생활은 제일 시작이 신앙 양심 생활이요, 신앙 양심 생활은 신앙 영감 생활에 나아갈 수 있는 자격을 갖춘 것이니까 고 자격 가지고 다 됐다 하지 말고 신앙 양심 생활에서 신앙 영감 생활에 나아가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양심에 자책할 것이 없으면 무릇 구하는 것을 하나님이 주신다(요일3:21-22)' 하나님이 주신다 하는 것은 하나님이 뭐 주시나? 신앙 영감 생활을 주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바울이 말하기를 '내가 양심에 자책할 것이 없다'(고전4:4) 그 말은 뭐이냐? 신앙 양심 생활 했다 말입니다. 신앙 양심 생활 했지만 탄식을 했습니다. '내 마음에 자책할 것을 내가 찾지 못하나 이로 인해서 고통한다. 뭐? 왜 고통해, 양심생활 했는데? 알지 못하심이 없으시고 모든 것을 아시는 그분 앞에 갈 것이기 때문에 지금 내 양심에 자책되는 것은 없지만 그분에게 걸리는 게 있는가 두렵다 해서 그분에게 걸리는 게 있는가 두렵다 해서 그분에게 걸림이 없도록 그분의 영감 생활이 되는 그것을 만족하는 것입니다. 바울이 말한 것은 영감 생활에 도달하고야 만족했지 영감 생활 도달하지는 안하고 신앙 양심 생활에서 '됐다' 하는, 신앙 양심 생활에서는 지금 아직까지 미결이 있으니까 영감 생활에 나아가는 것을 기뻐했습니다.
그러기에, 영감 생활. 고린도전서 7장에 보면 사도 바울이 이것은 '내 마음으로 말한다. 내가 믿는 마음을 가지고 말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명령이다.' 그렇게 구별했습니다. '이거는 하나님의 명령이다. 이거는 하나님 명령은 아니나 내 맘에 이게 옳은 줄 알기 때문에 말한다' 그렇게 자기가 양심으로 판단해 가지고 하는 말과 영감의 명령으로 하는 말을 구별을 지워서 말씀을 했습니다. 고린도전서 7장에 보면 그것이 간단하게 잘 나타나 가지고 있습니다.
(85061340) 9
'내가 자책할 아무 것도 깨닫지 못하나 그러나 이를 인하여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하노라 다만 나를 판단하실 이는 주시니라'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자기 지식대로 성경 말씀대로 사니까 이만 하면 됐다, 성경 말씀을 법전으로 삼습니다. 성경 말씀을 법전으로 삼아서 법전을 지킵니다. 성경 말씀을 자기의 생활의 법칙으로 삼아 가지고 이제 그 법칙대로 삽니다. 성경 말씀을 자기가 계명으로 삼아 가지고 그 계명을 지킵니다. 지키나, 지켰으면 '이거면 다 됐다. 이것이면 다 됐다 생각하면 안 됩니다. 다 됐다 생각하면 안 됩니다. 다 됐다 생각하면 그 사람의 신앙 양심 생활은, 자기가 자기 양심대로 생각할 때에 '요게 옳고 바르고 참되다. 바르다. 됐다' 그러면 인정하는 자가 자기입니다. 인정하는 자가 자기이기 때문에 그거는 잡탱이입니다. 인정을 했지만 나중에 보면 다 삐뚤어진 게 많이 있습니다.
그러기에, 바울이 말하기를 '내 양심에 자책할 것을 찾지 못하나 이 때문에 내가 고민한다. 나를 판단하실 이 그분은 알지 못하심이 없고 모든 것을 아시는 분이신데 그분이 인정해야 되지 그 분이 인정하지 안하면 안 된다' 그러기 때문에, 그분의 인정을 바라서 그 분이 인정할 때에 비로소 안심을 합니다. 그분 인정할 때에 그것이 뭐이냐? 성령님이 인정하는 것이요, 그러기 때문에, 내가 너를 생명책에서 네 이름을 흐리지 않겠다. 또 네 이름을 아버지와 천사들 앞에서 내가 시인하겠다.(계3:5) 착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고 있다(벧전3:21). 착한 양심생활이면 다가 아니라, 착한 양심이 최고의 심판자, 최고의 심판자, 최고의 주권자가 아니라 인간의 착한 양심은 최고의 심판자 주권자 그분이 인정하도록 할라고 애를 이래 쓰는데 애를 쓸때 그게 바로 되면 인정을 딱 하면 이제 성신의 감화가 와 가지고 동행을 합니다. 그럴 때에 믿음이 되는 것입니다.
(85061453)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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