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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요약  
■ 성경:01창세기01:20-31
 

창1:20-31

하나님께서는 1차 창조를 통해서 재창조를 하십니다. 종류에서 종류를 나게 하시고 (깨끗)에서 (깨끗)을 향상시키시고, 거룩에서 거룩을 향상시키는 하나님이십니다. 땅에 것은 땅에서 생기게 하시고, 바다에 것은 바다에서 나오게 하시고, 땅에서 나온 것은 땅에서만 살수 있게 지으셨고, 바다에서 것은 바다에서만 살수 있게 만드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성품을 그대로 나타내 보이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다에서 나온 것이 육지에 가서는 살수 없게 되었고, 땅에서 나온 것이 그 위치를 이탈해서 물에서는 살수 없도록 하나님이 만드셨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자연계시를 통해서 사람도 외부에 나타난 그 모양은 동일한 종류로 나타났으나, 그 이면에 하나님의 섭리역사는 주님의 대속을 입어 이차창조를 받은 중생한 영을 가진 사람은, 바다에서 난 것은 바다에서만 존재할 수 있는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로 거듭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살수 있는 종류로 지음을 받았습니다. 또 하나님이 없는 불신자는 믿는 사람이 지키는 계명과 믿는 사람이 행사하는 그 행사대로는 존재할 수 없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기독 자들이 이것을 바로 깨닫지 못하고, 자기가 어떤 자로 지음을 받았으며, 어떤 위치에서 살아야 되는지 이에 대하여 깨달음이 없이 세상 사람처럼 속화된 걸음을 걸으면 고기가 물을 떠난 것과 같은 것이요, 땅에서 난 자가 물 속으로 들어가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독자가 자기가 생겨진 종류를 망각하므로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야 할 자가 세상사람들이 사는 그 방식대로 사니, 하나님을 믿지만 자기의 앞길이 열려지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계명을 떠나서 세상으로 가는 것은 마치, 고기가 물을 떠나 육지로 가는 것과 같습니다. 이것이 여러분의 본능이 되어져서 계명을 떠남이 사망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일차창조를 밑천으로 삼으시고 재창조를 하시는 하나님입니다. 땅을 만드시고 땅을 이용해서 식물이 나게 하시고, 바다를 이용해서 고기를 나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근본을 버리지 않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과거와 현재를 떼어놓고 미래가 있는 줄 잘못 압니다.
하나님은 영항(永恒)의 하나님이요, 미래의 하나님이십니다. 학생이 국민학교의 성적이 중학교의 밑바탕이 되는 것처럼, 과거와 현재가 미래의 밑바탕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연질서가 이렇게 되어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밑바탕을 사용하시는 하나님이심을 깨닫고 자기의 과거를 잘라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죄악을 사용해서 구속을 성사 시켰고, 인간의 죄를 이용하여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랑을 베푸신 것입니다. 타락이 없었으면, 죽음의 비참을 알 수 없고, 죄와 사망이 없으면 예수님의 십자가 사활의 사랑이 나타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타락을 이용하여 영원히 변동이 없는 이차창조를 성취하였습니다.
그러기에 과거와 현재는 우리의 미래의 밑바탕이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흙이 변하여 짐승이 되고, 흙이 변하여 식물은 될 수 있으나, 있는 것이 관련성 없이 되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자기가 행한 의가 자본이 되어 그 의를 잘 사용하면, 적은 의가 큰 의가 되고, 의를 잘못 사용하면 의가 죄가 됩니다.

그러므로 자기가 죄를 범한 것이나 의를 행한 것이나 과거는 과거로 청산하고 현재는 현재대로 미래는 미래대로 이렇게 초절적으로 현실에서 살면 안 됩니다. 과거에 지은 죄를 잘 사용하면, 죄가 변해서 의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과거에 지은 죄를 잘못 사용하면, 죄에서 죄가 발생되어 나옵니다.  

그러므로 현재에 있는 것은 미래의 어머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과거를 반성해서 현재에 있는 것을 바로 파악하지 아니하면 안 됩니다. 자기가 이룬 과거의 의로 현재의 의를 이룰 수도 있고 과거의 지은 죄를 잘 사용하면 현재의 의를 이룰 수 있기 때문에 과거와 현재를 연관 시켜서 우리가 어떠한 자인지 심사하는 우리가 되어야합니다.

잘못된 것을 고치면 화가 물러가고 의가 건설되고 자기 앞에 행복이 전개되지만, 잘못된 것을 고치라 할 때, 고칠 수 있는 기회에 고치지 아니하고 잘못된 입장으로 통과하면, 심는 대로 거두는 것이 하나님이 정한 유일한 법칙이기 때문에 심히 불행해 질 수밖에는 없습니다. 그러기에 사람은 어떤 입장 어떤 처지에 처해 있더라도 고칠 수 있도록 지도해 주는 지도자를 만난 것이 행복하고, 또 고칠 수 있는 현실을 만난 것이 복된 것입니다.

그러나, 얼마든지 탈선된 길을 걸어도 자기를 고쳐줄 지도자가 없고 환경이 변해서라도 고쳐줄 수 있는 환경을 만나지 못하고 자기의 현실을 그대로 통과하는 것은 그보다 비참하고 그보다 불행한 것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것을 세밀히 구별해서 정돈하고 정리하는 생활을 계속해야 됩니다. 천하에 죄인이 의인될 수 있습니다. 다윗은 기도하기를 '내가 죄 중에서 잉태하였나이다' 다윗은 모태에 죄 중에 잉태된 죄인임을 알고 또 우리아의 아내에 대한 과오와 그것을 밑천으로 삼아서 주님의 의를 사모하고, 범죄한 자기임을 알아서 자기를 주님과 동등의 위치에 세우려고 하지 않고 자기는 모태에서부터 난 자기 죄를 죽이는 그 일에 노력했기 때문에, 주님의 명령이 하달되면, 자기 생명의 위험의 여부나 자기의 장래의 흥망의 여부를 가리지 않고 주님의 명령이라면, 어디서든지 즉각 순종하는 그런 종으로 일생을 살았습니다.

한가지 실례를 들면, 사울에게 쫓겨서 유리 방황하던 그때 너무 사울의 공격이 심해서 이제는 ?? 에서는 도저히 피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국경을 넘어 타국으로 갔습니다. 그래 겨우 왕과 타협해서 이제는 평안하게 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네가 이 요새에 있지 말고 유대나라로 돌아가라고 명령했습니다. 다윗은 거기에 대해서 한 말도 거부가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다윗의 중심을 보았습니다. 내 주관대로 갈 길을 정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명령하시면 생사 흥망간에 어떤 길이든지 그대로 순종한 다윗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역사에 다윗처럼 부요하고 다윗만큼 영광스럽고 유명한 왕이 없었습니다. 오늘 우리도 자기 주관대로 자기 갈 길을 선정하지 말고 사막이든지 빈들이든지 하나님이 우리를 인도하시는 대로 순종하면 조금도 나를 손해되게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범사에 당장 현실에서 무슨 성공이 나타날 것으로 아는 그런 허영심을 버려야 됩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열매맺는 나무를 보십시오. 번개 불에 콩 볶아먹는다 하는 것처럼, 과거에는 노력하지 아니하고, 과거에는 길러놓지 아니하고 과거가 없는 현재에 무엇이 되리라는 망상은 버려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과거를 잘라 버리지 맙시다. 자기가 과거를 생각하는 것만큼 의가 건설되고 자기 과거의 죄악을 생각하는 것만큼 그 죄악성을 원수로 대적으로 대항할 수 있는 저항력이 길러지는 그 자본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과거를 알아서 점령하는 것만큼 현재가 점령되고 미래가 점령됩니다. 다윗은 세상을 떠날 때에도 과거를 잊지 않고 솔로몬에게 유언을 했습니다. '누구는 어떤 사람이니 어떻게 대해라' (열왕기상 2장 5절이하) 자기의 신하가 과거에 자기에게 한 것을 하나도 잊어버리지 아니했습니다. '누구는 내가 망명할 때 환영했다, 또는 저주했다.' 이런 것을 세밀히 유언으로 남기고 그는 떠났습니다. 그의 생애를 보면 주님과 하나되어 주님과 한 편 되어 걸어갔기 때문에 다윗을 환영하는 것이 주님을 환영하는 것이 되었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종들이 주님과 한 편이 되어 움직이는 사람을 대적하면 주님을 대적하는 일이 되고 그를 환영하면 주님을 환영함이 됩니다.  

베드로도 예수님의 수제자가 된 것은 궁극적인 면에서는 주님의 뜻이지만 그가 그렇게 충성하게 된 것은 그가 주님을 세 번 부인한 그것을 일평생 잊어버리지 아니하고 생각할 때 너무나 부끄러움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전설에 의하면, 새벽마다 닭이 울 때에 자기도 울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과거를 버리지 맙시다.  


그 다음에는 하나님의 창조한 그 모든 사역을 하나님의 형상에게 위임시켰습니다. 이것이 사람에게 특별한 특수법칙입니다. 다른 동물들에게는 허용하지 아니했습니다. 천사들에게도 허용하지 아니했고 다만 사람에게만 허용했습니다. 다스린다는 것은 관할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사역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사람에게 위임시켰습니다. 사람은 영과 육이 합하여 사람입니다. 그 형상은 주격체인 영입니다. 내 육은 소유물입니다. 이 하나님의 형상인 사람들에게 공중에 전부, 육지의 전부, 바다의 전부를 하나님 당신의 형상들에게 위임시켰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이란 하나님의 속성을 가리켜 말합니다. 인생의 주 위치는 다스리는 위치요, 관할하는 위치입니다. 사물이 사람에게 다스림을 받는 것이 정상 위치입니다. 사물을 사람이 관할하는 것이 정상의 위치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타락하여 주객이 전도되었습니다. 사람이 무엇인지 과학자가 인생을 연구해도 모르고 철학가들이 인생이 무엇인지 연구해도 인생의 불행이 무엇 때문인지 알려고 노력해도 찾지 못합니다. 그러나, 중생한 영을 가진 사람은 창세기를 찾아보면 알게 됩니다. 타락 전에는 사람이 만물을 다스리고 모든 종류의 이름을 아담이 지었습니다. 아담이 짐승의 이름을 짓는 것을 하나님이 보시고 기뻐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지으려고 하는 이름과 똑같으니 기뻐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된 것은 사람의 주격인 영이 주격체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타락은 주격이 전도된 것이 타락입니다. 다스려야 할 자가 다스림을 받는 것이 타락입니다.

상전이 종을 다스렸는데, 종이 상전에게 수종을 들었는데 이제는 종이 상전을 다스리고, 상전이 종에게 수종을 들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집안이 망하는 것입니다. 곧, 타락하는 것은 망하는 것입니다. 영이 육을 지배하고 영이 육을 다스리고 영에게 다스림 받는 육이 만물을 다스리는 것이 인간의 주 위치입니다. 그런데, 영은 주격인데 주격을 가지지 못해 순전히 육의 욕심이 주인이 되어 육의 욕심이 주인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에게 '너는 영으로 살아라, 네가 왜 육으로만 사느냐 너는 영으로 살아라.'  이것이 인생의 주인 지위, 주인 위치를 회복시키라는 말입니다. 모든 통치권은 하나님의 형상들에게 맡겼습니다. 하나님의 권리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생이 위임받았는데, 인생이 하나님을 떠나서 만물을 다스리려고 하니 하나님과 대적이 되었습니다. 영의 소욕은 성령의 소욕이요, 육의 소욕은 악령의 소욕입니다.

그러므로, 다윗이 위대한 것은 육체의 소욕에 사로잡힐 때도 있었지만 육체의 소욕을 배격했을 때 존귀했습니다. 우리가 생각하기는 우리아의 아내에게서 난 아들은 정죄할 것인데, 우리아의 아내에게서 난 아들을 후계자로 삼은 것을 보면, 사람들은 '네가 죄가 더 크다, 나는 죄가 적다' 하지만, 얼마만큼 자기가 죄에 대해서 느끼는가 하는 것만큼 그리스도의 대속의 공로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과거의 죄와 현재의 죄를 다 보고 울고, 그것 때문에 그리스도의 대속이 필요한 자가 되니 거기서는 겸손이 계속되고 교만이 방지됩니다.

그러나, 벌써 사람이 어느 자리에 이르렀다 하더라도 자기를 다 잊어버리고 자기의 무지와 무능을 다 잊어버리면 교만한 자가 되고, 하나님 앞에는 불충성한 자가 됩니다. 그러므로 인생의 실패의 원인은 육체의 소욕을 따르고 주님이 정하여 주신 노선을 걷지 아니하는 것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이 패배한 원인도 하나님이 정한 노선대로 살지 않고 육의 소욕대로 하는 것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기독자에게는 항상 안심하고 안일할 수 없는 위치에 세워주셨습니다. 젊을 때보다 자기를 단속하고 절제하는 것이 점점 높아져야 되지 '이제 나는 다 성공했다' 그러면 안됩니다. 역대기에 보면 36년까지 하나님 앞에 의로운 왕으로 충성한 왕으로 인정을 받았지만 불과 3, 4년 동안 잘못한 것으로 그는 실패했습니다. 인생의 범죄의 원인은 안일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영이 내 주인이냐, 육이 주인 노릇 하느냐 이것을 우리는 늘 심사해야 합니다. 지금 내가 사는 것은 영으로 사느냐 육으로만 사느냐, 주객이 전도되면 그것이 곧바로 사망입니다.  

만물은 하나님의 지음대로 지음을 받았습니다. 그러기에 만물이 자기에게 이용되는 것은 자기가 하나님의 지능대로 순종할 때 만물을 이용하게 됩니다. 그러나, 내가 하나님에게 다스림 받지 아니하고 만물을 이용하는 것은 이용하는 것 같으나 실은 이용당하고 맙니다. 내가 만물을 다스리고 지배하려고 하면 내가 하나님에게 피동되면 만물은 나에게 다스림 받습니다. 그러기에 사람이 하나님에게 다스림 받는 것이 전도된 것이 타락입니다. 내가 하나님에게 얼마나 다스림 받느냐, 내가 하나님에게 다스림 받는 것만큼 만물은 나에게 다스림 받습니다.

그런데 오늘 세상은 돈이 사람을 지배합니다. 돈이 울어라 하면 울고 웃으라 하면 웃습니다. 이것이 무슨 증거입니까? 인생이 타락한 증거요, 하나님에게 다스림 받지 아니한 증거입니다. 내가 하나님에게 전적 다스림 받으면 그것은 나에게 전적 다스림 받고 내가 하나님에게 하나도 다스림 받지 않으면 그것도 나에게 하나도 다스림 받지 아니합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볼 수 있는 충성도 필요하지만 그보다 근본인 자기와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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