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
사울이 그의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기더라 ○ 그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핍박이 나서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  
■ 성경:44사도행전08:01
 

행8:1

'사울이 그의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기더라'
사울이 그의 죽임당함을 마땅히 여겼다, 누가 죽임당한 걸 마땅히 여겼는가? 일곱 집사 중에 한 사람인 스데반을 돌로 쳐서 죽이고, 유대인들이 돌로 쳐서 스데반을 돌조산을 모아서 죽이는 데에 그 일에 책임자, 제일 선두에서 선봉장으로 죽이는 일을 한 사람이 곧 사울이라는 사람입니다. 이분이 회개하고 난 다음에 사도 바울로 이름을 했는데 내나 그 사람입니다. 바울 서신을 기록한 사람입니다. 그 뒤에 사도가 됐습니다.

그때에 이 사울은 어떤 위치에 있었던 사람인가? 구약 성경을 철두철미하게 믿는 사람입니다. 또 구약 성경 선생 중에도 가말리엘이라고 하는 선생이 제일 유명한 선생이요, 성경을 잘 아는 선생이요, 또 그 모든 행함이 이스라엘에 큰 빛을 나타낸 아주 유력하고 유명한 그런 선생님 밑에서 배우는 아주 수제자입니다. 그래서, 그분이 말하기를, 그때는 신약 성경은 아직까지 기록이 안 됐고 구약 성경만 기록한 것을 보고 모두 하나님 백성들이 믿을 때인데, 구약 성경에 대해서는 한 성구도 양심에 가책이 없이 다 실행한 사람이라고, 다 실행을 했다고 그렇게 자신만만하게 말을 했습니다. 율법으로서는 흠이 없는 자라 그렇게 자신할 만치 아주 철두철미한 사람이요 하나님에게 대해서 열심 있는 사람입니다.

이랬는데, 스데반은 어떤 사람이냐? 예수님을 믿는 사람 중에 성령이 충만함으로 그 사람을 택해 가지고 집사로 세운 사람입니다. 7장에 보면 스데반은 성령에 충만한 사람이라고 했고 또 그 사람이 돌에 맞아 죽을 때도 성령에 충만한 사람이었습니다. 돌에 맞아 죽으면서도 돌로 치는 사람들을 위해서 정죄하지 않도록 하나님께 기도했고, 그들을 위해서 구원을 기도했고, 또 하늘 문이 열렸는데 하늘에서 주님이 자기를 지금 맞이하려고 서서 기다리고 계시는 것을 보고 다른 사람들에게 그렇게 증거를 했습니다. 이 스데반은 참 성령에 충만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하나님 잘 믿는 열심있는 사람이요, 성경대로 철두철미하게 지키는 사람이요, 또 하나님을 위하는 열심이 있는 사람인데 왜 스데반을 죽였을까? 이것을 왜 이렇게 사도행전 8장 1절에다가 사울이 스데반을 죽이고 그 죽임당하는 게 마땅하다 이렇게 자신이 만만한 그런 행동을 했을까? 우리가 여기 대해서 얼마나 생각해야 될는지 모릅니다.

여기서 우리가 알 것은 성경대로 지켜 행한다고 해서 그 사람이 건설구원을 이룰 사람은 아닙니다. 기본구원은 얻은 사람으로 우리가 믿을 수 있습니다. 기본구원을 얻지 않았으면 그렇게 할 수 없는 건데 중심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위하고 높였기 때문에 그 사람에게는 중생시킨 성령은 그에게 임한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행동을 간섭하고 주관하는 역사적인 성령은 이 사람이 받지를 못한 사람입니다. 세월이라는 그 역사가 아니고 역군, 일할 역(役)자, 일할 사(事)자, 일하는 그런 성령은 받지를 못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가 행동하는 것은 하나님과 정반대되는 그런 행동을 했습니다.

오늘도 우리가 성경 말씀대로 지켜 행한다고, 그 사람의 모든 행동이 언행 심사가 성경대로 됐다고 해도 그 사람에게도 아주 이렇게 완전 가짜가 있을 수 있다 하는 것을 우리가 여기서 생각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것 때문에 다 기록하려면 세상에 두려 해도 둘 곳이 없을 만한 그런 모든 많은 양을 다 제해 놓고 이 말씀을 우리에게 기록해 주셨습니다. 그만큼 우리에게 중요합니다. 뭣 때문에 기록했는가 하는 것도 우리에게 큰 문제를 줍니다.

성경 말씀대로, 신구약 성경 말씀대로 한 절도 범하지 않고 그대로 철두철미하게 행했고 양심에 가책되는 일 하나도 안 했고 하나님에게 대해서 열심이 있었고 이랬는데 그 사람은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아 죽였고, 예수님도 그 당시 죽일 때에 사울도 같이 동참해 가지고 같이 죽였는지 모릅니다, 여기는 기록이 안되어 있지마는. 바로 그때가 그때니까.

왜 사울이라는 사람이 그렇게 율법으로서는 흠이 없는 사람이요 하나님에게 대해서 열심으로 말하면, 자기네들 깨달은 대로의 하나님 믿는 데에 위반되다고 해 가지고 전부 위반된 사람들을 다 죽였습니다. 이렇게 열심 있는, 하나님에 대해 열심 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도를 이걸 잘못 가르치고 잘못 믿는다고 해 가지고 그것을 고치라고 하다가, 고치라 하다가 고치지 않으니까 다 죽여 버렸습니다. 이만크 적극성 있는 사람이요 아주 열심 있는 사람, 하나님에게 대해서 열심 있는 사람입니다. 그래, 열심으로 말하면 교회를 핍박한 사람이라 자신이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랬는데 이분이, 예수 믿는 성령에 충만한 사람을 죽이고, 죽이는 그 선봉장으로 됐고, 또 그 뒤에 보면은 3절에 '사울이 교회를 잔멸할새' 남김이 없이 싹 다 멸할새 '각 집에 들어가서 남녀를 끌어다가 옥에 넘기니라' 예수 믿는 사람이라면 조사해 가지고 전부 잡아다가 다 옥에 재판해서 넘겨 가지고 다 뭐 죽여 버리려고, 이스라엘의 종교법에서는 옥에 가둔 거는 사회 옥인지 이스라엘 종교에도 옥이 있었는지 그건 모르겠습니다마는 어쨌든지 옥에 갖다 가뒀습니다.

이랬으니까, 이걸 보고 우리가 뭘 가지고 안심을 할 수가 있겠느냐? 우리 믿음의 믿는 것을, 내가 무슨 성경 말씀대로 행했다고 안심할 수가 있겠나, 내가 하나님에게 대해서 열심 있다고 안심할 수가 있겠나, 목회에 대해서 열심 있다고 안심할 수가 있겠나, 내가 설교를 잘 한다고 안심할 수가 있겠나, 또 목회에 교인들이 많이 모여든다고 안심할 수가 있느냐? 도무지 그런 거 가지고는 안심할 수가 없습니다.

이분이 나중에 회개하고 난 다음에는 고린도전서 4장에 보면 자기의 양심에 가책될 것이 하나도 없지마는 과거에 그렇게 자신 만만하게 믿었는데 그것이 완전히 그게 마귀 역사라 하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지금 자기 딴에는 양심에 가책할 것이 없이 이렇게 누구보다도 참 진리대로 믿으려고 애를 쓰고 열심히 믿지마는 그것으로 안심하지 못하는 것은 모든 것을 아시는 분이 심판할 터인데 그분에게 무슨 면이 걸리고 어떻게 잘못된지 모르겠다, 그러기 때문에 항상 무거운 짐진 거와 같이 고통 중에서 지나갔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뒤에 말한 것을 보면 자기가 설교하되 다른 사람이 뭐 감동 받는 것이나 또 자기 인기가 끌리는 것이나 다른 사람이 자기 말에 설복을 당해서 잘 설득을 시킨 그 성공을 한 것이나 그런 데에 자기는 목표를 두지 않았습니다. 거기다가 자기가 도를 전하는 기준을 두지 않았습니다. 그는 늘 말하기를 내가 전하는 것이 말에 있지 않고 성령의 감동에 있기를 내가 원한다, 또 지혜의 말에 있지 않고 능력에 있기를 원한다 했습니다. 또 그가 말하기를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않고 능력에 있다 했습니다. 어쨌든지 객관적인 능력, 자기에게 있는 주관의 열심이나 힘이나 그게 아니고 객관의 능력, 순전히 하나님의 성령의 감동의 이 능력 이것만이 구원을 이루어 줄 수가 있지 이게 아니고는 안 된다 하는 것을 그것을 깨달아서 여기 대해서 항상 걱정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여기 대해서 뭣을 신앙의 기준으로 삼고 안심하고 있는가? 우리가 목회하는 데는 어떻게 하고 있는가? 이거 뭐 사람들이 좀 감동을 받아서 이렇게 인기나 끌어지고, 교인이나 주 모아들고, 또 자기 주관으로서 자신이나 있고 이렇게 하면 자기는 원만한 하나님의 일군으로 이렇게 보고 우리가 오인을 하고 있지 않는가? 여기 대해서 얼마나, 이거는 아무 말도 없고 자기가 스스로 살펴서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이러니까, 이것도 저것도 아닌데, 그분이 뒤에 말한 것 보면 성령의 능력 아니면 소용없다 하는 것을 총 그분의 교훈을 간추려 보면 그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분이 말하기를 고린도전서 7장에 보면 이것은 내가 깨달은 말이다, 또 이거는 성령의 감동을 받아 가지고 하는 말이다, 또 이것은 내가 하는 말이 아니고 주께서 나에게 명령해서 주의 명령을 내가 받아 그대로 전하는 것이다 이렇게 구분했습니다. 성령의 감동 받아 가지고 하는 말, 또 자기가 믿는 마음을 가지고 하는 말, 직접 하나님이 자기를 통해서 말씀하고 있은 말 이렇게 구별을 했습니다. 그래서, 이것이 우리에게 큰 숙제가 되고, '그가 그랬는데 그는 하나님의 적이 되었으니 이거 어찌 되나?'그것을 우리가 생각하면서 나는 어떤가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 행8:3 : 사울이 교회를 잔멸할쌔 각집에 들어가 남녀를 끌어다가 옥에 넘기니라
* 행7:55 : 스데반이 성령이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 고전7:10 : (명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주시라)
* 고전7:12 : (이는 주의 명령이 아니라)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핍박이 나서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
다 도망쳤습니다. 다 도망쳤는데 사도들은 도망치지 않았습니다. 사도들은 도망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은 다 도망쳤는데 도망친 사람들과 사도와 다른 게 뭐이냐? 그때에 그렇게 다 죽임을 당하는 그런 큰 핍박이 일어났는데 어떻게 사도들은 하나도 도망치지 않고 그 자리에서 있었던가? 그때 물론 흩어져 가지고 일한 것도 하나님의 뜻은 뜻이지마는 우리는 그렇게만 생각할 것이 아닙니다. 그때 흩어진 것은 하나님의 일하려고 흩어진 것은 아닙니다.

그들이 흩어지기 싫었습니다. 사도들과 함께 은혜를 받고 이렇게 예루살렘에 같이 뭉쳐서 신앙 생활하고 싶었는데 흩어진 거는 죽기를 두려워해서 다 흩어졌던 것입니다. 핍박이 두려워서 흩어졌던 것입니다. 죽기를 두려워함으로 다 흩어졌지 딴데 가서 복음을 전하자 해 가지고 흩어진 것 아닙니다. 흩어져 가 가지고 보니까 또 복음 안 전할 수 없어서 복음 전했지 흩어진 것은 두려워서 흩어졌던 것입니다. 핍박이 두려워서 흩어졌습니다. 그런데, 사도들은 흩어지지 않았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두려워서 흩어졌는데 사도들은 거기서 흩어지지 않고 예루살렘에서 그대로 신앙을 평안히 담대한 마음 가지고 지키고 있었으니 그 사도들과 흩어진 사람들과 그 사람도 예수 믿는 사람들인데 다른 게 뭐이냐? 요것도 해결을 지우고 가야 됩니다.

그러면, 사도들은 왜 그렇게 교회를 핍박하고 잡아다 옥에 가두고, 사도들도 갇힌 일도 많았고 핍박당한 일이 다른 사람들 요량하면 사도들은 몇 배나 더 당했습니다. 거기 2장으로부터 보면 사도들에게는 참 기적도 나타났지마는 핍박도 많이 당했습니다. 당해도 그들은, 그들이 교회를  핍박한다고 해 가지고 두려워서 딴데로 도망치고 피난하지를 않았습니다. 그러면, 사도들과 그들의 신앙이 다른 게 뭐인가? 그러면 오늘 나는 어떤 신앙을 가지고 있느냐?

우리가 낙관하고 '그때 그래 퍼져 가지고 복음이 더 전파되고 널리 퍼지지 않았느냐?' 그것은 자기의 신앙은 아닙니다. 자기의 신앙은 아니고 도망갔는데 도망간 놈을 붙들고 또 하나님이 쓰셨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자기 신앙으로서는 도망간 신앙밖에는 안 됐습니다. 이것을 그렇게 오해하지 말아야 됩니다. 사도들은 도망가지 않고 거기서 다 그대로 저희들이 하거나 말거나 하나님은 능치 못하심이 없고 하나님이 우리를 도우니까 무슨 문제가 있겠느냐, 저희들이 암만 해도 우리 하나님이 더 강하시다 이걸 믿었기 때문에 그들은 평안하게 염려 없이 예루살렘에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와 가지고 바로 홍해에 접했을 때에 뒤에서는 애굽 병정이 추격하고 있는 그 어려움 당했을 때에 모든 사람들이 다 살아 있지마는 기절한 만치 다, 아마 그때 봤으면 사람들이 다 새파라이 산송장으로 되어 있었을 것입니다. 이랬는데 모세나 여호수아나 갈렙 그런 사람들은 평안하고 즐거워서 '두려워하지 말아라, 하나님이 하시는 솜씨를 보자.' 그렇게 말하고, '이렇게 극단으로 이런 역경이 온 것 보니까 아무래도 여기서 이 애굽 사람들의 문제를 하나님이 처리할 것 같다' 이렇게 상상도 못 할 일을 깨달았고 그들은 기쁘고 즐거움을 가졌습니다. 이랬는데, 이스라엘 백성이 그때 놀랄 것은 '왜 모세와 여호수아 갈렙은 저런데 우리는 이러냐?' 이것을 비교하고 놀라서 다른 이 점을 생각하고 가슴을 치고 울고 걱정을 했으면 그들도 여호수아와 모세와 갈렙 같은 그런 사람들이 됐을 것입니다. 그들이 구하지 않았습니다. 알지도 못했고, 구하지 않았고 오히려 원망 불평했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이런 은혜가 올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가 이런 것을 볼 때에 왜정 말년에도 피해서 도망 간 사람, 도망 가 가지고 그때 신사 참배 문제를 망명해 가지고 된 그런 사람들이 만일 '왜 다른 종들은 왜정의 정치 아래에 있으면서 그들은 그대로 신앙을 지키고 요동치 않고 도망가지 않고 그대로 신앙을 지키고 있었고, 또 어떤 사람은 오히려 자유하면서 자꾸, 신앙을 지키면서 그들의 하는 것을 반대를 하고 그래 지켰으니까 이 신앙의 차이가 있으니, 신앙의 차이가 있으니, '나는 도망을 갔었는데' 도망간 사람은 도망가지 않은 사람과 도망간 사람과 또 도망을 가지 않고 감옥에서 갇힌 사람과 또 자유한 사람과 이 차이를 봐 가지고 자기와 신앙이 차이가 있으니 이게 무슨 문제냐 이것을 찾아 가지고 보다 나은 옳은 그 신앙에 입각하려고, 들어서려고 애를 쓰는 그것이 우리의 할 일이 아닌가 합니다.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 여기 도망쳤다 말은 안 하고 흩어지니라 이랬는데 실은 도망쳤습니다. 도망쳤습니다. 도망친 것 아닙니까? 도망쳤는데 도망쳤다고는 하지 않고 흩어졌다 이랬으니까 도망친 것보다는 좀 낫지요. 믿으면서 좀 피해서 이렇게 간 것이니까. 그러나 사도들의 신앙이 달랐습니다.

(86040820)


 
                    답변/관련 쓰기 수정/삭제     이전글 다음글           창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