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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요약  
■ 성경:01창세기02:00
 

창2:1-25

*전체요약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고 7일 되는 날을 안식일로 복 주셨습니다. 7일 되는 안식일이 사람들이 실수가 없으면 영원히 안식될 것인데 사람들이 실수를 하므로 이 안식이 없어졌습니다. 2차 창조는 택자 위하여 죽으시고 죄의 문제가 해결되고 하나님의 요구에 문제가 해결됩니다. 또 완전한 의를 가진 자가 하나님의 보상이 되는 완전한 구원을 소유하는 것이 다 시발한 것입니다. 주일을 지키는 것은 2차 창조를 완성하기 위하여 지킵니다.

1차 창조는 범죄함으로 실패했고 2차 창조인 진동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이 영원한 안식 주시기 위하여 주셨는데 2차 창조에도 사람들은 실패합니다. 주일 지키지 않는 것이 이 안식에 범죄한 것이 아닙니다. 이 새 계명을 지키지 않아서 영원한 안식에 못 들어갑니다. 새 계명이 아니면 천사의 방언이라도 불타버립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일 지키는 것은 거룩하고 복되게 하는 것이니 특별히 하나님이 우리에게 축복을 주시고 말씀대로 행하는 영감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왜 모든 초목과 사람을 흙으로 빚어서 만들었으며 물고기는 왜 물에서 살게 만들었으며 하와는 아담의 뼈를 뽑아서 만들었을까? 이것이 하나님이 만드시는 역사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한 번 만들어 놓은 것을 버리는 것이 없습니다. 반드시 한 번 이용하시고 버리지 어디까지나 새 일을 시작하시는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을 흙으로 지었으면서 왜 하와는 갈빗대로 지었을까?

그러므로 하나님은 과거와 현재를 통과시켜서 미래를 발생시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과거와 현재를 잘 버립니다. 미래에 상관없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과거 현재가 미래에 관련이 없을 줄로 생각하여 하나님의 섭리에 어두운 것으로 생각합니다. 과거와 현재가 상관없는 줄로 생각하면 그것은 하나님의 본질과 본성에 배치되는 것입니다. 중대한 진리입니다. 시간적으로 과거 현재에서 미래가 발생되는 하나님이요, 또 현재에서 새것이 나오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인생이 첫째 아담에게 속한 자가 아니고는 둘째 아담이 못 나옵니다. 자기의 타락을 통하지 않고는 구원이 못 옵니다. 그러므로 타락된 인생이 언제나 이 타락을 끌고 들어가야지 제 구원이 되지 아니면 헛됩니다. 그러므로 시공을 통하지 않고는 하늘나라의 구원이 없습니다. 인생의 타락 원?시켜야 새사람이 지어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인생이 인생 밑천 삼아야 합니다. 이 세상 밑천 삼지 못하면 하늘나라 이루지 못하고 인생이 인생 밑천 삼지 못하면 그리스도에게까지 자라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이 진리대로 살아야 합니다. 자기의 존재도 소유도 행위도 자기 전부가 다 이 법칙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진리인 것입니다. 이 법칙 떠나는 것은 모두가 파괴입니다. 바울이 언제든지 양쪽을 붙든 것이 진리라고 했습니다. 그는 세상에 있고 싶기도 하고 받고 싶기도 한 것은 세상을 밑천 삼지 않고는 영원한 것이 안 되는 이치를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인생이 자기의 더러운 타락을 더럽다고 집어던지면 저는 깨끗해질 수가 없습니다.

'사람이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주리라' 부부에는 아내는 남편을 돕기 위한 것이 아니면 존재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것은 가정 제도를 말했고, 이 본장에서 배울 것은 하나님은 어두움과 빛을 나누었고 물과 땅을 나누었고 낮과 밤을 나누었습니다. 이렇게 모든 것 구별하여 나누고 일반 명령했습니다. 새는 공중에서 살아라, 고기는 물에 살아라 한 번 명령한 그대로이지 이것을 어겨서는 살 수 없습니다. 새는 공중에 살라고 했으니 땅에 앉아도 공중이지만 땅속에 못 들어가 삽니다.

창파에 뛰노는 고기라도 공중에 나오면 죽습니다. 이와같이 인생에게도 명령이 있고 명령 중에도 자기에게 명령한 것 있으니 자기는 무능하고 고통되고 죽습니다. 무능하고 고통된 것을 안 자는 형벌이 경하나 자기가 모르는 형벌은 더 중합니다. 하나님은 하후하박이 없으십니다. 누구든지 자기 진리 발견하여 거기서만 능력있고 권위있지 자기 진리 떠나서는 망하는 것입니다. 너무 우리가 하나님의 하시는 그 자체와 역사에 대하여 항상 우리 자신을 비추어 알려고 하니 하나님은 알기 어렵습니다.

하나님은 밑천을 버리지 않고 그 밑천에서 새 것을 만드니 영원토록 인연 맺게 하니 인생은 끊으려고 해도 끊기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자기의 범죄도 영원히 영향이 있습니다. 나쁘게 있든지 좋게 있든지 반드시 있습니다. 아담의 타락이 인생에 구원이 됩니다. 그것이 좋게 됩니다. 그러나 아담의 타락이 수많은 영혼이 지옥 갑니다. 그러므로 자기가 거짓되니 조물주도 거짓된 줄 아는 것으로 죽습니다. 그러므로 썩을 것을 생명으로 만드는 것도 있고 생명을 죽이는 것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썩은 수왕이 좋은 화초를 만들 수 있습니다. 자기의 먹을 것을 버리지 말고 밑천 삼아 살아야 합니다.

(61010210)


1. 안식일, 곧 오늘의 주일
 1) 창조를 마친 날 곧 그리스도의 부활로 완성함
 2) 복을 주심 ... 도덕과 진리와 영감을 주시는 날
 3) 거룩을 주시는 날 ... 성화와 영장(靈長)을 주시는 날


2. 타락 전 사람의 지구
 1) 산 영 ... 하나님의 대리 주인
 2) 에덴 동산과 받은 유업들의 다스리는 권세
 3) 벗은 몸도 부끄러워하지 아니 함


3. 에덴 동산
 1) 에덴 동산의 위치는 하나님과 피조물 사이
 2) 에덴 동산의 구성 내용 = 세 가지 과실밖에는 네 가지 강, 그밖에는 그룹들과 화염검
 3) 동산을 다스리고 지킬 권세를 가짐 하나님의 대리 행사는 동산을 지킬 때에만 가질 수 있음


4. 남녀의 존재 의무
 1) 여자의 머리는 남자,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 일하기 위해서
 2) 서로 한 몸같이 협조하고 사랑하기 위해서 ... 이는 특별히 인인관계를 표시하는 것이니 사람
     과 사람끼리 단결되는 것
 3) 동산을 지키는 생활, 동산을 지키는 생활은 먹고, 안 먹고, 먹고, 넷 강, 뱀 출입 금지, 그룹과
     화염검을 힘입어


하나님이 만물을 지으실 때에 당신의 성품, 뜻, 힘대로 지으셨기 때문에 모든 창조물은 하나님대로 되어 있습니다. 그 만든 것이 하나님이 움직이시는 대로 따라서 움직이고 있습니다. 모든 만물이 하나님대로 되었습니다. 하나님과 꼭 같습니다. 하나님이 움직이는 대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무엇하고 있느냐? 하나님의 하시는 일 협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모든 피조물 마귀든지 무엇을 대하든지 그 모든 것은 하나님과 같이 지음받고 하나님과 같이 일하고 있는 것 알아야 합니다. 마귀도 그러한가? 마귀도 직접 간접이 있습니다. 마귀도 순전히 하는 것은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돕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존재를 우리가 대할 때에 내가 하나님과 같이 한 때는 모든 것이 하나님과 대립이 없고 내가 산에 가서 어떤 맹수 만나도 그 맹수로 더불어 밀접해지고 맹수에게 피해보지 않는 것은 그 맹수는 나를 돕는 일 합니다. 내가 하나님과 함께 할 때에 마귀는 나의 돕는 일하고 죄도 나의 돕는 일하니 내가 하나님과 함께 할 때에 추위도 더위도 다 하나님이 함께 합니다. 내가 하나님과 배치될 때에 모든 것이 나의 대립인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믿음이 자라야 합니다.

예수 믿는 것은 순전히 자기의 자율을 꺾어서 하나님의 타율을 자기 삼는 것이 예수 믿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교입니다. 오늘 그리스도교는 자기의 믿는 자율에 따라 갑니다. 참을 찾아가려고 애쓰지 않습니다. 신앙이라는 것은, 우리의 믿음이라는 것은 원만하고 온전합니다. 구원은 천군 천사도 다스릴 수 있습니다. 원만한 구원입니다. 예수 믿는 것은 예수님이 나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힌 것 이것뿐만 아니라 이것은 구원의 씨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은 원만한 신앙이라야 하는데 높아지지 않을 때 높아지고 꺾어지지 않을 때 꺾어지지 않습니다. 정상적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신앙은 어느 과학이든지 어느 세상이든지 꺾어 지도할 수 있는 것이 그리스도교입니다.

우리가 이것 압시다. 모든 존재는 성질도 ?도 능력도 다 하나님이 주관하고 계십니다. 공산군이 와서 예수 믿는 사람 죽인다고 합니다. 공산주의가 하나님을 협조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 성질이 움직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움직이고 있습니다. 능력이 움직이고 있습니다. 이제 직접이 있고 간접이 있고 간간접이 있고 또 결과적인 접촉이 있고 영향적인 관계 있고 모든 것이 이 땅 위에 하나님의 뜻에 반대되는 것이 없습니다. 있다면 그것은 멸할 것입니다. 공산주의의 운동이 하나님에게 협조하고 복종하고 성자 손양원 목사 죽였는데 하나님을 협조하는 일인가? 과연 하나님의 뜻대로 성질대로 움직였는가? 도무지 지당한 말인가? 합당한 말인가? 지난 밤 설교에 맞는가? 맞지 않는다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오늘 예수 믿는 사람은 천당 갈 사람이 믿습니다. 천국 얻어 놓은 사람이 예수 믿습니다. 앞으로 천국 얻으려고 예수 믿는 사람은 아닙니다. 지옥에 있는 자가 천국 옮기기 위하여 예수 믿는 것 아닙니다. 택한 자가 때가 되니 중생됩니다. 중생되면 중생된 자의 행동이 나타나니 그것이 신앙 생활입니다. 중생은 언제 되는가? 예수 믿어도 중생 못했습니다. 부흥회 때 은혜 받아야 중생됩니다. 요한일서 5장, 중생받은 자 죄 짓지 않습니다. 중생은 은혜 받아 뒤집어져야 중생입니다. 이것이 10의 7, 8이 이렇게 믿습니다.

사람이 예수 믿을 때는 벌써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중생된 자입니다. 중생된 자라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중생된 자는 죽은 영이 살아났으니 다시는 죽지 않습니다. 벌써 진리를 아는 자, 이런 이단 저런 이단 알고 있습니다. 이 말이 긍정되는가? 회개 안 하면 지옥 갑니다. 그러면 회개치 않으면 그 부분만 지옥 간다 말인가? 그 전체가 지옥 간다면 틀렸습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그 전체가 지옥 간다 하면 회개 다 한 사람이 있을까? 자기의 죄 다 깨달은 사람이 있을까?

고린도전서 4장 4절, 사도 바울이 스스로 자책할 것이 없으니 나의 양심은 어두워서 보이지 않는 흠점이 숨어 있다 했습니다. 많이 회개한 사람은 정죄받지 않고 적게 회개한 사람은 지옥 간다 말입니까? 그러므로 하나님의 심판에 걸리지 않는 사람이 없습니다. 예수님이 내 죄 대신 대형 대행으로 하늘나라 가는 것이지 자기의 행위로는 하나도 하늘나라에 소용없습니다. 만일 바울이 자기가 선행한 행동으로 하늘나라 가는 것에는 하나도 소용없었습니다. 그러면 그 선행은 하늘나라 귀속으로 소용(유)했습니다. 바울이 나쁜 것을 이 선행으로 고쳤습니다.

회개는 은혜입니다. 협박으로 회개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진리를 떠나면 성신의 역사는 없습니다. 설교를 할 때는 중생된 영에게 설교합니다. 죄에게 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죄에게 설교하니 옛사람을 기르고 어떤 사람은 중생된 영에게 설교하니 중생된 영을 기른다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설교자는 신본주의를 기르고 어떤 자는 인본주의를 기른다고 했습니다. 예수 믿어 구원 얻기 위함이라 하면 하나님의 공의가 많지 않습니다. 이 목적, 저 목적이 다릅니다.

예) 시험을 칩니다. 한 종이 안에 답안은 다 들어 있습니다. 1번의 답을 2번에 쓰고 3번의 쓸 답을 1번에 썼습니다. 한 답안지인데 10개 답이 다 들어 있습니다. 그것이 만점 될까? 안 됩니다. 자기의 자체가 바로 되어야 영광과 존귀가 있을 것입니다. 하늘나라는 자기의 행위로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우리 구원은 기본구원, 건설구원 둘이 있습니다. 모래 위에 집 짓는다, 반석 위에 집 짓는다 하는 이것은 행위구원을 말합니다.

베드로전서 1장 3절, 예수님의 죽으시고 살아나심으로 우리 중생시켰습니다. 이것이 기본구원입니다. 또 기본구원은 순전히 예수님의 대속으로만 된 것입니다. 기본구원은 영 중생, 육체 부활은 기본구원입니다. 이것은 순전히 예수님이 대속으로만 얻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택자는 영 중생, 육체 부활로 얻습니다. 육체 부활은 예수님의 재림으로 살려냅니다. 예수 믿는 우리는 영원히 죽지 않을 것으로 다시 살았으니 이 육체는 죽은 그대로 있지 다시 살아나지 않습니다. 우리가 중생하면 영도 다시 살아나고 이 몸도 구속함을 입지 않았는가?

이 몸이 예수님의 공로로 인하여 죄의 도구가 의의 도구로 변한 희망을 받았습니다. 순전히 죄에 이용당한 몸이 의에 이용될 것으로 희망이 있습니다. 이 몸은 악을 행해 천해질 것인데 이것이 예수 믿어 점점 의로워질 희망성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로 영원히 늙지 않을 중생될 몸으로 되지 않았습니다. 이 몸은 중생되어 점점 고쳐가고 있습니다. 사망 세계에 두고 고치는가 생명 아래 두고 고치는가? 사망 아래 두고 고치면 고쳐놓아도 죽습니다. 이 몸을...

어떤 몸은 의로 행할 수 있는 능력의 몸으로 부활하고 어떤 몸은 의 행한 능력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의를 행할 수 있는 몸을 만들기 위하여 노력합니다.

로마서 8장 10절-11절,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나' 영은 살아났으나 몸은 죽은 그대로 있습니다. 11절 '너희 죽을 몸을 살리시리라, 너희 영을 살리신 이가 몸도 살리시리라, 이뿐 아니라 성령은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 중생 되었으니 양자 되었습니까 안 되었습니까? 여기 양자 될 것을 기다린다 했으니 양자 안 되었습니다. 우리가 중생되었으니 양자 되었는데 양자 될 것 기다린다 했으니 양자 안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안되었습니다. 양자 되었습니까? 되었습니다. 양자 안 되었습니까? 안 되었습니다.

내 영은 양자가 되었고 내 몸은 양자가 안 되었습니다. 몸은 양자 되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몸이 하나님 닮으려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 영은 본질과 본성이 하나님 닮아 있으나 몸은 양자 되려고 애씁니다. 하나님 닮아가려고 애씁니다. 하나님 닮아가는데 10분의 9가 닮았습니다. 10분의 1이 남았습니다. 그 사람의 몸이 완전 의가 되었습니까 안 되었습니까? 10분의 9는 되었고 10분의 1은 안 되었으니 그 사람을 의인 가두는데 가두었을까요? 죄인 가두는 데 가두었을까요? 우리 영은 구속받았습니다. 양자 되었습니다. 몸은 양자 안 되었습니다. 하나님 아들 안되었습니다. 말 새끼는 말, 개 새끼는 개라야 합니다. 우리의 영은 본질과 본성이 하나님과 같습니다. 이 몸은 양자 되려고 애쓰고 있고 하나님의 아들 되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100의 99는 의인되었습니다.

그러니 이 사람의 육체를 죄인 가두는 데 가두었을까요? 의인 가두는 데 가두었을까요? 죄인 가두는 데 가둡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예수님 닮아가는 노력을 합니다. 완전히 닮았으면 안 죽습니다. 닮지 못한 부분은 죽습니다. 죽으면 어떻게 하는가? 예수님께서 하나님 아들로, 예수 믿는 우리로, 하나님 아들로, 진리요 성령으로, 구속하신 우리로 죄에서 예수님의 공로로 죄를 벗겨 이제 부활할 때는 죄 없는 몸으로 구속했으나 100분의 99는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로 구속했고 100분의 1은 의 행치 못했으니 100의 99는 의 행할 수 있는 자요, 100분의 1은 의 행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자녀로 부활했습니다. 일생동안 자기가 노력하여 건설하기로 힘썼는데 그 사람이 세상에 하나님 닮지 못했으면 그 사람의 수고와 노력이 효험?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습니다.

기본구원은 영 부활과 육체 부활에 하나도 상관없습니다. 그러므로 영 중생과 육체 부활은 바울이나 우리나 꼭 같습니다. 순전히 예수님의 공로로 구원 얻었습니다. 사도와 우리의 차이가 있다고 합니다. 행위구원은 차이가 있으나 기본구원은 차이가 없습니다. 여기는 어린 것(이 구원) 빼앗기지 못 합니다. 우리가 어려 있으나 하나님 아버지 아들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아들도 죄 지을 수 있는가 보라 하니 하나님 아버지 아들 죄 지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아들 죄 지을 수 없다고 똑똑히 말했습니다.

중생된 영은 하나님 아들입니다. 중생된 영은 죄 지을 수 없습니다. 중생된 영 그 부분만은 죄 지을 수 없습니다. 중생된 사람이라도 죄 지을 수 있는(그 전체)것입니다.  구별 잘 해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 믿는 그 도리 굳게 잡아야 합니다. 감동 일으키는 것 소용없습니다. 믿는 도리 똑똑히 배워야 합니다. 중생된 영은 죄짓지 못합니다. 중생된 자의 몸은 죄지을 수 있습니다. 몸은 물질이니 죄의 책임 없습니다. 물질은 인격이 없습니다. 마귀는 인격을 가졌습니다. 마귀가(인격 가진) 움직이니 죄 짓는 것같이 보입니다. 그러나 중생된 영이 짓는 것 아닙니다.

로마서 7장 19절,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치 아니하고 원치 않는 죄가 행하여지는도다. 이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행하는 죄니라.' 그러므로 기본구원은 영이 거듭나는 것과 몸이 부활하는 것입니다. 우리 영 중생하기 위하여 우리 몸 부활하기 위하여 예수 믿는 것 아닙니다. 우리가 다 중생하지 못했다 하고 믿는 것입니다. 이 면은 중생하도록 노력하여야 합니다. 이 중생이 육의 노력으로 중생하는 줄 알면 이것은 이단입니다. 전 성경이 틀린 것입니다. 이것은 펠라기우스 주의입니다.

육체 노력은 인간의 선은 때묻은 옷과 같습니다. 인간의 선으로 그 몸을 중생시킨다니 이 근거가 완전치 못합니다. 타락의 희망성이 있습니다. 영의 중생은 완전무결한 중생입니다. 그러므로 다시는 사망이 없고 다시는 타락이 없습니다. 근거가 완전합니다. 우리는 건설구원 얻으려고 힘씁니다. 중생된 영 길러 점점 장성하게 만들어 하나님을 닮은 몸으로 점점 고쳐가야 합니다. 고치지 못했으면 고치지 못한 몸으로 부활할 것입니다. 영을 기르면 기르는 대로 기르지 못했으면 기르지 못한 대로 부활할 것입니까? 영은 중생했습니다. 한 번 중생했으면 다시는 죽지 않습니다.

육체는 하나님 닮은 것만큼 하늘나라 갑니다. 죽음은 육체와 영 나뉨입니다. 육체는 아직 그리스도의 완전한 몸이 아닙니다. 죄 아래 있으니 죽고 영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완전한 것이니 죽지 않고 이 영은 고깃덩어리의 주인공으로 책임자로 짊어졌으니 육체 떠나지 못하고 있다가 하나님이 오라 하니 기한이 되니 이 영은 아버지께로 갑니다. 그러므로 나를 믿는 사람은(영과 육을 말함) 죽어도 살고 육체도 죽어도 살고 살아서 믿는 사람은(영) 영원히 죽지 않으리라, 죽을 자로 믿는 자는 육체입니다. 죽을 자로 믿는 이 육체는 살아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도리 사랑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도리 영들을 사랑하고 하나님과 같은 성질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하나님의 소원 같은 소원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하나님의 힘과 같은 힘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하나님의 힘은 선을 행하는 힘입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힘과 같은 성질과 같은 것, 뜻과 같은 것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이런 하나님의 소원에 반대되는 것이 우리에게 있습니까? 하나님과 같은 것도 있고 마귀와 같은 것도 있습니다. 분명히 둘이 있습니다. 어느 힘이 강합니까? 하나님과 같은 것의 힘이 강합니다. 또 마귀와 같은 것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마귀와 같은 것 없어도 삽니까? 못 삽니까? 마귀와 같은 것 없어도 살 수 있습니다.

중생된 영은 옳은 것 감각하는 것이 일입니다. 죄를 감각하니 고민입니다. 내 주격이 바꾸어졌으니 그러합니다. 중생된 자가 마귀와 죄 떠나고 보니 보는 것이 달라집니다. 산 나를 보니 아름답고 보는 것마다 귀합니다. 내 안도 바깥도 깨끗하니 보니 참 좋습니다. 이 몸을 사로잡을 때입니다. 이것이 육과 죄와 거리가 멀어져 있는 때입니다. 그러나 근방에 가리워 짐짐합니다. 영과 육체와 나누일 때는 아주 명랑합니다. 성도들이 육체 떠날 때는 아주 명랑한 때입니다. 죽음이 별 것이 아닙니다. 정도 성질도 힘은 다 깨어짐 아닙니다. 중생된 자가 죄의 권세 떠나면 흔한 것 아닙니다. 죽는 그 시간이 제일 기쁜 시간입니다.(세상에서) 영계에 가서는 영을 어디까지 길렀든지 그대로 삽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영계 발견하고 한없이 기뻐했습니다.

* 요일5:18 :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범죄치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 고전4:4 : 내가 자책할 아무것도 깨닫지 못하나 그러나 이를 인하여 의롭다 함을 얻지
* 롬7:19 :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은 행하는
* 벧전1:3 :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61103120)


창2:1­25절을 읽은 말씀 중에는 천지를 창조하신 내역을 다시 상기 시켰고, 또 사람을 흙으로 만들어서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니 생령이 되었다는 그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가 알 것은 구약 성경은 역사적 사실을 기록하였고 기록한 목적은 구원 도리를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기 위해서 실물을 만들어서 계시로 나타내 보이셨습니다. 그러므로 이 계시 가운데는 실물을 만들어서 계시한 계시가 있고, 형식을 통해서 계시한 계시가 있고, 문서로 기록해 주신 계시가 있습니다.  

기독 자들에게는 이 계시관이 중요합니다. 이 계시관이 잘못되면 탈선할 수 있고, 불건전한 신비주의와 자유주의로 흐를 수 있습니다. 계시란 하나님의 뜻을 열어 보인다는 뜻입니다. 계시는 특별계시와 자연계시가 있습니다. 특별계시는 선지자들과 사도를 통해서 성문화 시켜놓은 문서화시킨 것을 말하고 보통계시는 자연계시는 동일한 명칭으로 말씀하는데 이 삼라만상의 1차 창조물인 모든 것이 다 보통계시에 속한 것입니다.  

지금 불건전한 신비주의로 흐르는 방언파, 예언파, 계시파, 또 꿈과 환상을 보는 것, 이런 사람들은 계시를 셋으로 분류해서 말하는데, 자기에게 직접 지시하시고 음성으로 들려지는 그것을 특별계시라고 믿고 있고 신구약 성경 말씀은 보통계시로 삼라만상을 자연계시로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성경을 보아서 계시관이 잘못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22:21(18­19? ) '예언의 말씀을 가감하지 말라' 그러므로 우리는 이 계시관을 똑똑히 기억하고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고 에덴동산에 대한 계시관을 통일교에서는 상징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창세기 1장에는 상징이 아니고 역사를 그대로 계시한 것입니다. 사람들이 말하기를 사람이 타락하기 전에는 자연만 보아도 하나님을 알 수 있었는데, 사람이 범죄함으로 특별계시를 주셨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1차 창조물은 하나님께서 자연 수평선 이하 것을 계시하였고, 2차 창조이신 특별계시는 자연 수평선 이상을 계시하셨습니다. 특별계시가 없이는 하나님의 온전하심과 영원성을 알 수 없습니다.  

첫째아담과 중생된 자의 그 관계는 비교할 수 없는 탁월한 사람들인데, 아담의 영에는 중생이 없었고, 타락 이후에 그리스도의 대속을 입은 자들에게는 중생을 가졌습니다. 그러므로 똑같은 영이나 예수님께서 입힌 대속과 거듭난 그 영이 영 자체는 아담의 영과 같으나 주님으로 인해 탁월해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아담의 타락은 궁극적인 면에서 허용한 타락입니다.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의 파괴를 허용하신 것은, 건설을 위해 파괴를 주님이 하신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타락을 허용하지 아니했으면 중생이란 건설이 없었고, 범죄가 없으면 주님의 대속이 없었습니다.

또 기억할 것은 안식일에 대해서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이 안식일은 창조가 끝나는 날에 있는 것이 안식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엿새동안에 창조하시고 제칠일에 쉬셨습니다. 그런데 이 안식일은 이미 창조된 것을 복을 주시는 날입니다. 안식일이 없으면, 창조된 모든 것이 복을 받지 못합니다. 이 안식일은 창조된 것을 복만 주시는 것이 아니라 이 안식일을 통하여 거룩하게 하시며 깨끗하게 하시는 이 역사를 안식일에 하셨습니다. 그러기에 창조된 창조물은 안식일을 가져야 향상하고 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모든 날 중에 안식일은 중심되는 날입니다.

그러면 이 안식일을 어떻게 이스라엘이 지켰는가? 그날은 아무 일도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문 안에 유하는 객도 일하지 말고 그날을 거룩히 지키면 복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출애굽기 16장 27절, 이 안식일 날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만나를 거두려고 나갔습니다. 안식일날 나가서 거두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안식일날 일하는 것은 실상은 전혀 소득이 없습니다.

만일 그날 껍데기의 소득이 있었다면, 있는 것이 없어진다면 어찌 되겠습니까? 그냥 없어질 수 없으니 병을 통해서, 사업의 실패하는 것을 통해서 없어진다는 말씀입니다. 출애굽기 31장 14절, 성일을 범한 자가 받는 벌 제가 노력해서 잘사는 것이 이 세상의 통계니까 복 있는 사람이 잘사는 것이 통계니까 사람이 제 아무리 노력해야 복 없으면 안 됩니다. 하나님이 도우셔야 내가 살지 하나님이 막으셔야 내 가정이 살지 하나님이 갖다 주시는데 막을 자 없습니다.    

민수기 15장 32절, 이것이 안식일을 범한 자가 받는 벌입니다. 그러므로 엿새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안식일이 중요합니다. 그러면 이 안식일이 왜 주일로 변했는가? 이 주일은 2차 창조의 것들이 안식하는 날입니다. 2차 창조물이란 죽은 영이 예수님의 대속으로 중생함을 받은 것을 말씀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것이 계명 중 첫째 계명이요, 신인 관계에는 4계명이 첫째 계명이요 인인 관계에는 5계명이 첫째 계명이요, 그러면 예수님께서 1차 창조물을 자본으로 삼아 가지고 2차 창조를 하셨는데 2차 창조의 것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창조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히 변동이 없으신 분이 택한 백성을 위해서 33년 동안 세상에 계시다가 모든 대적을 이기시고 승리하시고 부활로 2차 창조를 끝낸 날이 주일날입니다. 그러면 1차 창조의 것들은 어떻게 지었습니까? 말씀으로 지었습니다. 전부 말씀으로 하셨습니다.

그러나 2차 창조를 완성하는 데는 신성인 하나님이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것이 2차 창조의 시발입니다. 그러므로 동정녀 탄생은 2차 창조를 위해서 도성인신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죄는 죽어야 된다고 하셨는데, 하나님이 정한 법칙은 호리도 변개할 수 없습니다. 선악과를 먹으면 정녕 죽으리라 한 대로 죽었습니다. 죄값은 사망인데 사망한 자를 살려 내려고 하면 죄 없는 분이 살려내야 죄 있는 자를 살려낼 수 있기 때문에 도성인신 하신 것입니다.

이 때문에 예수님은 그 성이 신성인데 죽을 수 있는 사람의 몸을 입은 것이 동정녀 탄생입니다. 예수님은 부정모혈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신데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셔서 33년 동안 계시면서 고통을 당하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사망 아래 있는 자를 살리셨습니다. 그러면 1차 창조에 자본을 많이 들였습니까 2차 창조에 자본을 많이 들였습니까? 그것은 너무나 커서 말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나 한사람이 입은 대속이 천하에 있는 것보다 고귀함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기에 천지만물은 말씀으로 지으셨는데 나 하나 살리는 데는 주님이 죽고 나를 살리셨으니 천지만물의 가치가 큽니까 나 한사람의 공력이 큽니까? 어디에 공력이 많이 들었습니까? 그러기에 내라는 존재의 가치는 천하에 있는 것보다 택자의 구속 하나의 중수가 무겁고 더 가치가 큽니다. 이것을 깨달아 느끼는 것만큼 주님을 사랑하게 됩니다. 사람이 제 가치를 몰라서 돈만 조금 생겨도 예수님을 배반하고 나가고 취직자리 하나 있어도 그만 나갑니다. 2차 창조가 이만큼 가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기독자가 이것을 알면 자존심이 생깁니다. 그리스도로 인하여 거듭난 것은 모든 존재보다 가치 있는 것이라! 우리를 대속 시키신 것은 생명으로 하셨습니다. 바울은 이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무엇이든지 주님과 나 사이를 끊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환난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무엇이 들어서라도 주님과 나 사이를 끊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아무리 말해도 그것이 자기 속에 느껴지지 아니하면 안 됩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의 사활로 2차 창조는 완성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사활로 택자의 구속과 신령계를 연결한 것이 부활이니 그 부활을 주일날 하셨습니다.


1. 안식 후 첫날  
역사 이래 많은 교주가 왔다 갔지만 죽었다가 살아난 자가 없습니다. 그러기에 이렇게 택자의 구속과 신령계를 연결하신 것이 2차 창조를 완성하신 것이요, 우리의 구원은 다 이루어진 것을 배정시키는 것입니다. 이 구속을 각자에게 배정시키는 것을 주일날 하는 것입니다. 내가 구원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만드신 것을 내가 배급받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 주일날을 통해서 이 구원의 은총이 우리 속에 들어옵니다. 제2차 창조로 완성하신 구속을 배정하는 것이 주일날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2차 창조를 완성하신 날이 이레 중 첫날 곧 주일날입니다. 하나님께서 2차 창조인 그리스도인들에게 복을 주시려고 정하신 날입니다.

그러므로 주일날 거두러 나가서 얻지 못했습니다. 아니 주일날 일해서 당장 3000원을 벌었는데 얻은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없는 것이 생겨졌으니 그것은 없어질 것입니다. 사람들이 말하기를 '야! 이놈의 돈아! 이왕에 나갈 바에야 소리 없이 나가거라!' 없을 것이 나갈 때는 꼭 울리고 나갑니다. 예수님께서 2차 창조의 완성인 이 주일을 주심은 우리에게 복 주시고 거룩케 변화하는 날로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주일을 통해서 성도를 깨끗하게 당신의 형상대로 만드는 것이 주일날입니다. 그러므로, 구속도리 전체가 주일날 완성되고 그리스도인의 인격이 주일날 변화합니다.

마태복음 21장 6절 - 나귀 타고 예루살렘 입성, 만주의 주로 장차 재림하실 것을 예표하신 것입니다. '누가 묻거든' - 이것은 만물의 주인공임을 친히 보이신 것입니다. 또,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40일 동안 세상에 계시면서 주일날만 만났습니다. 2차 완성의 부활도 주일날이요, 오순절 성령강림도 주일날입니다. 일곱 안식일을 지나고 첫날입니다. 49일 다음날 50일째 날인데 그날이 주일날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도들이 주일날 모였습니다. (롬14:5, 고전16:2)

그러므로, 성도가 자기가 하는 일은 영이 길러지고 자기의 구속이 이루어지는 것이 자기의 일입니다. 그러나, 이 일을 등한히 하고 돈보고 움직이고 지위보고 움직이는 것은 다 어리석은 일입니다. 주일을 범해서 얻은 돈 가지고 고양진미를 먹어도 비참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주일을 지키므로 배고프면 그것이 좋고 주일을 지키므로 잘 먹으면 그것이 좋고 주일을 지키므로 지위를 받으면 그것이 좋습니다.

주일 성수를 말하는 것이 흐려져 있습니다. 주일 거룩히 지키지 못하면 아예 축복은 바라보지 못합니다. 광야에서도 먹이신 분이 주일 잘못 지키겠다고 직장에서 나왔으면 하나님이 책임지지 않겠습니까? 내가 주님의 계명대로 살려고 모든 것 다 버리고 나섰는데 주님이 어쩌겠소? 수입을 내고 수입이 더 되는 것이 나는 문제가 아닙니다. 나는 그저 계명대로만 하면 됩니다. 하나님이 책임져 주셔야 야무지게 책임지지, 하나님이 복수해야 다시 머리를 들지 못하지, 결단코 징계가 미움이 아닙니다. 잘못된 것을 잘못됐다 하는데 그것은 미움이 아니요 사랑입니다.


2. 타락후 인간의 위치
창2:7절- 여기도 굉장한 문제점이 있습니다. 이 생기를 영으로 보는 사람, 안식교 여호와증인 그들은 영의 실존을 부정합니다. 이 생기는 힘이요, 실존이 없는 것이니 그러기에 이 생기는 ?과 ?으로(영감과 진리?) 봅니다. 그 영에게 불어넣으니 생령이 된지라, 이 생령이 되었기 때문에 만물에게 대해서 하나님의 대리자입니다. 만물에게 하나님의 대리자인 아담, 하와에게 에덴동산을 유업으로 주신 것입니다. 에덴동산을 다스리며 지킬 권세를 주셨습니다.

이것이 무슨 뜻인고 하니 산 영이라는 것은 하나님과 연결된 영입니다. 하나님과 연결된 영인 고로 하나님과 얼마든지 교제할 수 있고 서로 통할 수 있고 하나님의 능력과 하나님의 지혜와 하나님의 지식을 받아서 가진 자로 하나님의 주권과 하나님의 속성의 사랑을 입어서 하나님의 원형적인 속성을 아담을 통해서 나타내는 이 권세를 아담이 받았습니다. 나타내는 이 권세를 아담이 받았습니다. 피조물이 창조주와 연결된다는 것은 피조물로서는 말할 수 없이 영(靈) 영광입니다.

마28: -'세상 끝날까지 너와 같이한다.' 아담과 하나님의 연결은 끊어질 수 있는 연결이요, 우리는 하나님과의 연결이 끊어질 수 없는 연결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어디에 가거나 누구와 함께 합니까? 인격자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셔서 동행하는 이것을 알아야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우리 속에 상주하셔서 어두운 것을 밝게 하는 실력을 가진 자들이요, 다시는 범죄할 수 없는 이런 깨끗한 우리들입니다.

아담의 갈빗대를 뽑아서 여자를 만드니, 아담이 그 여자를 보고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타락하기 전에는 이렇게 좋았는데 선악과를 먹고 난 후는 아주 달랐습니다. 3:12 - 타락한 후. 선악과를 먹고 난 후부터 사람 사이가 금이 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므로 기독자가 계명을 범하는 것은 불행의 원인인 줄 사람들이 모르기 때문에 잘 되기 위해서 계명을 어기면서 공부를 시켰는데 이것이 무엇을 만듭니까?  부모와 자녀 사이를 원수 만듭니다. 선악과 먹고 나니 그렇게 좋던 부부간이 이렇게 되었습니다. 핑계가 그때부터 생겼습니다.

(77012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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