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03:01-10
*전체요약
창세기 2장 15절에 보면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동산에 두사 그것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시고'라고 말씀하셨는데, 인류시조 아담이 하나님의 명령대로 에덴동산을 다스리고 지킬 때에 어떤 위치에 있었는고 하니 하나님의 지으신 모든 만물을 다스리는 위치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인류시조 아담이 하나님의 명령대로 에덴동산을 다스리고 지킬 때에 아담의 지능이 어느 정도였는고 하니 하나님께서 전지 전능하신 지혜와 능력으로 모든 만물을 관리하시고
처리하심과 같이, 아담도 그런 지혜와 능력을 가지고 모든 만물을 관리하고 처리하였습니다.
또 창세기 2장 19-20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당신의 지으신 공중에 날아다니는 각종 새들과, 육지에 있는 각종 들짐승과 육축을 아담에게로 이끌어 들여서, 아담이 그것들의 이름을 어떻게 짓는지 그것을 보실 때에 아담이 그것들의 이름을 지었는데, 이름을 지은 그것이 하나님의 생각하신 것과 같이 된 것을 보면 아담의 지능이 하나님과 같았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또 인류시조 아담이 하나님의 명령대로 에덴동산을 다스리고 지킬 때에 아담의 권위가 어떠하였는고 하니 아담이 만물에게 한 번 명령하면 그 명령에 항거하거나 거역하는 것이 없고 복종하는 그런 권위였습니다.
그러므로 인류시조 아담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에덴동산을 다스리고 지킬 때에는 하나님과 같은 그런 지위를 가지고 있었고, 하나님의 지능과 같은 그런 지능을 가지고 있었고, 모든 만물이 아담의 명령에 복종하지 거절하거나 반항하지 아니하고 복종하는 그런 권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인류시조 아담이 에덴동산을 다스리고 지키는 이 일을 게을리 하고 하지 아니했을 때에 아담의 지위는 심히 크게 떨어졌는데 그것을 가리켜서 '타락'이라고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지으신 들짐승 가운데에서 제일 낮고 천한 뱀에게 농락을 당하는 그런 낮고 천한 지위로 떨어졌습니다. 뱀에게 놀림을 받는 그런 낮은 지위로 떨어졌습니다. 뿐만 아니라 아담의 권위와 지혜와 능력은 제일 낮고 천한 뱀에게 끌려 다니는, 뱀이 끄는 대로 끌려가지 아니하면 안 되는 그런 무지하고 무능하고 천한 자가 되었습니다.
뱀은 마귀가 보낸 것이요 마귀가 뱀을 이용한 것인데, 마귀가 뱀을 이용하여 인류시조에게 첫째로 행한 행사는 무엇인고 하니 아담을 먼저 유혹한 것이 아니고 하와를 유혹했습니다.
그러면 마귀가 뱀을 이용하여 하와를 어떻게 유혹했는가? 간단하게 몇 가지를 말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하나님에게 대한 지식을 흐리게 하고 어지럽게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에게 대하여 정확무오한 지식을 흐리게 하고 어지럽게 하고 잊어버리게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전지 전능 영원 불변, 완전 무결하심을 흐리게 하였습니다. 창세기 3장 1절 중반절에 보면 뱀이 하와에게 '하나님이 참으로'라고 말한 것은 하와로 하여금 하나님에게 대한 지식의 정확무오함을 흐리게 하기 위하여 그 말을 한 것입니다.
2. 진리를 모르게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진리는 절대 불변의 진리요 천지는 변해도 변하지 않는 진리인데, 진리의 정확무오성을 흐리게 하고, 어지럽게 하고, 잊어버리게 했습니다. 창세기 3장 1절 하반절에 뱀이 하와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라고 말한 것은, 하와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인 진리의 정확무오성과 불변성을 흐리게 하고 어지럽게 하기 위하여 그 말을 한 것입니다.
3. 가져서는 안 되는 욕심을 가지도록 하였습니다.
하와의 욕심 구덩이를 헐어서 아담과 하와로서는 욕심을 가져서는 안 되는 욕심을 가지도록 하였습니다. 창세기 3장 5절에 뱀이 하와에게 '선악과를 먹으라 결코 죽지 아니한다. 먹으면 하나님처럼 되니까, 하나님이 먹지 못하도록 하셨다'라고 말한 것은, 하와의 욕심 구덩이를 헐어서 욕심을 가지도록 하기 위해서 그 말을 한 것입니다.
4. 선악과를 먹게 하였습니다.
하와가 뱀의 유혹을 받아서 선악과를 보니까 '먹으면 반드시 죽는다'고 하신 하나님의 경고의 말씀이 두렵게 여겨지지 아니하고 선악과를 먹으면 하나님이 될 것으로 보여져서 하나님의 경고의 말씀을 거역하여 선악과를 먹었고, 자기 혼자만 하나님이 되면 아담이 섭섭하게 생각할 것 같아서 자기 남편과 함께 하나님이 되기 위해서 아담에게 주었던 것인데,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으면 틀림없이 하나님이 된다'고 하는 뱀의 말을 믿고 먹었는데, 하나님이 되지 않고 자기네들도 고통과 사망이었고 자손대대로 고통과 사망이 되었습니다. 지금 안 믿는 사람이나 믿는 사람이 죽는 것도 아담과 하와가 뱀의 말을 믿고 선악과를 먹은 그 죄 때문인 것입니다.
인류시조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을 다스리지 아니하고 지키지 아니했기 때문에 뱀을 용납하였고, 뱀을 용납하였기 때문에 뱀의 유혹을 받아서 '먹으면 반드시 죽는다'고 경고하신 하나님을 무시하고 거역하여 아무런 겁도 없이 선악과를 먹게 되었고, 먹음으로 말미암아 자손 대대로 죽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 에덴동산은 어떤 곳입니까? 에덴동산은 하나님과 교제하고 의논하는 곳이요 하나님과 동거 동행하는 곳인데,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에게 에덴동산을 거처로 주신 것은 인류
시조 아담과 하와의 때는 원시 시대로서 신령한 면이 미개한 때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이라고 하는 특정 지역에서 아담과 하와로 하여금 하나님과 교제하고 의논하고 동거 동행하도록 하시고, '에덴동산을 다스리고 지키라'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에덴동산을 다스리라고 하신 말씀은 에덴동산 곧 하나님과 교제하고 의논하고 동거 동행할 수 있는 이 에덴동산에게 이용당하지 말고, 피동되지 말고, 지배를 당하지 말고 에덴동산을 이용하고 지배하라고 하신 말씀입니다.
또 에덴동산을 다스리라고 하신 말씀은 에덴동산 곧 하나님과 교제하고 의논하고 동거 동행할 수 있는 위치를 빼앗기지 말라고 하신 말씀인데, 이 에덴동산에서 일어난 것은 하나의 형식계시인데 하나님께서 이것을 성경에 기록하여 오늘 우리 믿는 사람에게 주신 것은 우리 믿는 사람으로 하여금 이 형식계시를 사용하여 아담과 하와처럼 실패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인 것입니다.
그런데 인류시조 아담과 하와의 때에는 에덴동산이라고 하는 특정 지역에서 그들이 하나님과 의논하고 교제하고 동거 동행하였지만 오늘에는 우리 믿는 사람이 하나님과 교제하고 의논하고 동거 동행하는 그것을 언제 할 수가 있는가? 현실에서 할 수가 있습니다. 현실 외에는 할 수가 없고, 자기의 현실 외에서는 그 일을 한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님과 동거 동행하는 것은 이제까지 수천 년이 경과한 오늘에 이르기까지 현실에서만 했지 과거에나 미래에 한 번도 하지 못하였습니다. 과거는 지나갔기 때문에 할 수가 없고, 미래는 아직까지 이르지 아니하였기 때문에 할 수가 없습니다. 현실에서만 할 수 있습니다. 현실 외에는 한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인류 시조 때의 에덴동산이 오늘 우리 믿는 사람에게 있어서는 어떤 것인고 하니, 현실인데, '에덴동산을 다스리고 지키라'고 하신 말씀은 '현실을 다스리고 지키라'고 하신 말씀으로서, '현실을 다스리고 지키라'고 하신 말씀은 '현실에게 지배를 받지 말고, 피동되지 말고, 현실에게 이용당하지 말고, 현실에게 지지 말고, 현실을 지배하고 현실을 이기고, 현실을 이용하고 현실의 능동자가 되라'고 하신 말씀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을 다스리고 지키는 이 일을 하지 아니한 그 결과가 어떠했는지를 창세기 3장 1절 이하에 보면 말씀했는데,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명령대로 에덴동산을 다스리고 지킬 때에는, 실력이 있었고 권위가 있었고 존귀가 있었습니다. 하나님 다음으로 실력과 권위와 존귀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에덴동산을 다스리고 지키는 그 일을 그냥 두었을 때에는 어리석고 무능하고 움직이는 일은 망하는 일이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지위는 뱀에게 놀림을 당하는 대로 떨어졌고, 지혜와 능력은 하나도 없게 되었고, 생각은 망할 생각뿐이었고 행동은 망할 행동뿐이었습니다.
이제는 좋은 것은 다 버리고, 나쁜 것만 가지게 되었습니다. 사람에게 있어서 제일 좋은 것은 하나님이신데 이 하나님을 버렸고, 그 다음에 좋은 것은 진리인데 이 진리를 버렸고, 나쁜 것 곧 사망과 고통과 수치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인류시조가 에덴동산을 다스리고 지킬 때에는 하나님 다음가는 지위와 지혜와 능력을 가졌고, 소원하는 것은 하나님과 진리뿐이었고, 행동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었고, 만물을 다스리는 능력을 가졌고 존귀한 일만 하였습니다.
인류시조가 에덴동산을 다스리고 지킴으로써 존귀하게 되었고, 존귀한 소원 존귀한 행동을 하게 되었고, 에덴동산을 다스리고 지키는 그 일을 버리는 데서 천하게 되었고 무지하게 되었고 무능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 믿는 사람은 이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자기의 믿음과 구원에 척도로 삼아야 합니다. 에덴동산에 있었던 일을 상고시대에 있었던 하나의 역사적인 사실로만 보고 지나가면 안됩니다. 참된 이치는 가감되거나 변질되는 것이 아닙니다. 시간과 공간과 존재에 따라서 가감되거나 변질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에덴동산에서 인류시조가 멸망을 받게 된 이치는 오늘도 인간이 멸망을 받게 되는 그 이치요, 에덴동산에서 인류 시조가 성공하게 된 이치는 오늘도 인간이 성공하게 되는 그
이치이기 때문에 오늘 우리 믿는 사람은 그것을 거울로 삼고 타락하지 않고 성공하도록 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것 때문에 에덴동산에서 일어난 이 사건을 성경에 기록해서 오늘 우리 믿는 사람에게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인류시조 때에는 에덴동산에서 하나님과 교제하고 의논하고 동거 동행한 것과 같이, 오늘에는 현실에서 하나님과 교제하고, 하나님과 의논하고, 하나님과 동거 동행합니다. 현실 밖에서는 하나님과 교제할 수도 없고, 하나님과 의논할 수도 없고, 하나님과 동거 동행을 할 수도 없고, 찬송도 할 수가 없고 기도도 할 수가 없는데, 신령한 이스라엘인 우리 믿는 사람에게는 에덴동산이 자기의 만나는 현실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 믿는 사람도 이 현실을 다스리고 지키면 하나님 다음 가는 실력과 지위와 권위를 가지게 되고, 지혜와 능력을 가지게 되고, 존귀와 영광을 가지게 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게 되고 만물을 다스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믿는 사람이 자기의 현실을 다스리고 지키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입니까? 오늘 사람들을 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슬픈 현실을 만나면 거기에 피동되어서 슬픈 사람이 되어지고, 기쁜 현실을 만나면 거기에 피동되어서 기쁜 사람이 되어지고, 가난한 현실을 만나면 거기에 피동이 되어서 생각하고 소원하고 말하고 행동하고, 부요한 현실을 만나면 거기에 피동되어서 생각하고 소원하고 행동하는데, 우리 믿는 사람은 그렇게 하지 말고, 슬픈 현실이 오면 거기서 하나님과 진리에게 피동되고, 기쁜 현실이 오면 거기서 하나님과 진리에게 피동되고, 가난한 현실이 와도 부요한 현실이 와도 거기서 하나님과 진리에게 피동되어야 합니다. 생각하는 것도, 소원하는 것도, 말하는 것도, 행동하는 것도 하나님과 진리를 따라서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자기의 현실을 다스리는 것이요 지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현실은 하나님과 교제하고 결합하고, 의논할 수 있는 현실이요, 이와 반대로 하나님과의 결합을 끊을 수도 있는 현실입니다. 이 현실은 자기를 존귀하게 하고 하나님과 같은 지능을 가지는 자가 되게 하는 현실이요, 이와 반대로 자기를 무지 무능한 자가 되게 하는 현실입니다.
이 현실은 영원히 후회가 없는 것을 소원하고 마련할 수 있는 현실이요,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을 구원 할 수 있는 현실이요, 이와 반대로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을 멸망시킬 수 있는 현실이요, 이 현실은 자기 자손을 복되게 할 수 있는 현실이요 이와 반대로 자기 자손을 화되게 할 수 있는 현실입니다.
그러므로 현실은 이렇게 중요한 것이기 때문에, 예사롭게 여기지 말고 이 현실을 다스리고 지켜야 합니다. 이 현실을 지배하고 이용해야 합니다. 현실에게 지지 말고 이겨야 합니다. 에덴동산을 다스리고 지키는 행위, 자기의 현실을 다스리고 지키는 행위, 이 행위는 왕권을 가지는 행위요,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전지 전능의 행위요,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을 구원하는 행위요, 의를 이루는 행위요, 자기 자손을 복되게 하는 행위인 것입니다. 이렇게 자기의 에덴동산을 다스리고 지키는 행위, 자기의 현실을 다스리고 지키는 행위는 귀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현실은 잠깐 있다가 지나가는 것이지마는 이 현실 속에 영원한 나라의 지위와 권세와 존귀와 영광과 실력이 있기 때문에 현실에게 지배를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계명대로 현실을 상대하고 처리하고 하나님의 인도대로 행하는 이것을 빼앗기지 아니하면 금생과 내세에 있어서 영원한 성공과 구원을 가질 수가 있습니다. 영원히 가치있는 일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현실이 이렇게 귀중한 것이지만 마귀의 유혹으로 말미암아 현실을 무시하고 마음이 미래에 가서 있는 사람은 영원토록 좋고 가치 있는 것을 이루지 못하고 취하지 못합니다. 다시 말하면 '내일에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 장래에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고 하면서 장래만을 생각하고 현실을 무시하는 사람은 영원토록 좋고 가치 있는 것을 이루지 못하고 취하지 못합니다.
인류역사 6천여년 동안에 수많은 사람들이 이 세상에 왔다가 저 세상으로 갔지마는 과거와 미래를 현실에 전부 다 끌고 와서 살고 간 사람이 많지 못합니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분리시켜서 사는 사람, 과거와 현재를 무시하고 미래만 위해서 사는 사람, 현재와 미래를 무시하고 과거로 만족하는 사람, 과거와 미래를 무시하고 현재만 생각하고 위해서 사는 사람 그런 사람이 많지마는 과거와 미래를 현재에 전부 다 끌고 와서 과거에 있었던 잘못되고 비뚤어진 것을 현재에 수정하고, 과거에 바르게 행한 것을 현재에 그대로 행함으로 더욱 더 바르게 행하고 강성하게 하고, 미래가 현재로 다가왔을 때에 후회함이 없도록 현재를 바르게 사는 그런 사람이 많지 못합니다. 현재는, 현실은 이렇게 귀중한 것입니다
그런데 마귀는 현실의 중요함을 알기 때문에 우리 믿는 사람을 망치기 위해서 '내일이 있고, 모레가 있고, 내년이 있고, 장래가 있고, 미래가 있다'고 하면서 현재를 빼앗기게 하여 실패하게 합니다.
인생에게는 현재만이 자기 시간이기 때문에 현재를 빼앗기면 전부를 빼앗긴 것입니다. 현재 외에는 자기 시간이 없고 현재의 생활만이 자기 생활입니다. 현재에서만이 모든 것을 취할 수가 있고 이룰 수가 있습니다.
과거와 미래가 필요한 것은 현재 현실 때문입니다. 우리 믿는 사람은 과거와 미래를 현재에 전부 끌어다 놓고 살아야 합니다. 현실에서, 현재에서 옳게 바르게 살려고 하기 때문에 과거
도 필요하고 미래도 필요하지마는, 현재에서, 현실에서 마구잡이로 사는 사람에게는 과거도 필요가 없고 미래도 필요가 없습니다. 과거와 미래를 현실이라고 하는 구멍으로 통과시켜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과거와 미래를 현실에서 조절하고 관리해야 합니다.
인생이 백년을 살아도 현실에서만 삽니다. 과거는 지나갔기 때문에 살지 못하고, 미래는 아직까지 오지 않았기 때문에 살지 못하고 현실에서만 사는데, 현실을 빼앗겼으면 전부를 빼앗긴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이번에는 형편이 이러니까 이렇게 하지마는 이 다음에는 이렇게 하지 않겠다'고 하면 그것은 현실을 빼앗긴 것인데, 기회는 두 번 있는 것이 아니고 한 번뿐인 것입니다.
과거와 미래는 현실에서만 사용할 수가 있는데, 이 현실 속에는 어마 어마한 성공도 있고 구원도 있고, 이와 반대로 어마 어마한 실패도 있고 멸망도 있습니다. 그래서 현실을 다스리고 지키면 어마 어마한 성공과 구원을 이루어 가질 수가 있고, 현실을 빼앗기면 어마어마한 실패와 멸망을 가져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믿는 사람은 자기의 현실을 다스리고 지켜야 합니다. 자기의 생각이나 말이나 행동이 현실에게 지배를 받지 말고 현실을 다스리는 생각이나 말이나 행동이 되어야 합니다. 현실을 다스리는 자가 되고 현실을 다스리는 일을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에덴동산을 다스리고 지키는 것입니다.
이렇게 에덴동산, 곧 현실을 다스리고 지키면 하나님 다음에 가는 지위를 차지하게 되고,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을 구원하게 되고, 영원토록 후회가 없는 그런 일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에덴동산 곧 현실을 다스리지 아니하고 지키지 아니하면 영원토록 비천하게 되고, 무지
무능하게 되고,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랑을 멸망시키게 됩니다.
(701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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