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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좆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 성경:58히브리서12:14
 

히12:14

'거룩함을 좇으라'
거룩이라는 것은 깨끗한 걸 거룩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이 거룩이라 하는 것은 양면을 가진 것을 가리켜서 말합니다. 일면은 한없이 더럽고 일면은 깨끗한 경우, 더러운데 더럽지 안하고 깨끗하다는 그럴 때에, 이 양면을 가졌을 때에 거룩이란 말을 쓰지 깨끗 그것만이 일면으로 됐을 때는 거룩이라는 말을 쓰지 않습니다.

(89080822)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화평함과 거룩함이 없으면 아무도 주님 만나지 못한다. 주님 만나지 못하면 주님에게 얻을 것 다 못 얻고, 물을 것 다 못 묻고, 배울 것 다 못 배우고, 지도 받을 것 다 지도 못 받았고, 고침 받을 것 다 고침 못 받습니다. 그러니까 주님 못 만나면 우리 생활은 전멸 아닙니까?

화평함과 거룩함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한다 했습니다. 화평함과 거룩함이 없어도 몇몇 사람들은 주를 볼 수가 있다 했으면, 특수인들은 주를 볼 수가 있다 이랬으면 하지마는 '아무도' 했으니까 여기는 한 사람도 빠짐이 없는 것을 말했습니다.

화평 없는 사람들은 하나도 없습니다. 아무리 맹수 사자 새끼라도 저거끼리는 화평이 있습니다. 화평 없는 맹수가 없고 화평 없는 인간이 없습니다. 그런데 ‘모든 사람으로' 화평하라 하니까 어렵습니다. 이 사람 저 사람 할 것 없이 모든 사람으로 화평해야 된다는 이것이 어렵습니다. 화평에는 모든 사람으로 화평하는 이것에 나아가야 그것이 정상적으로 바로 되어 가는 것입니다.

또,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하라 하니까 이거는 더 어렵습니다. 그 사람하고 나하고 둘이 있는데, 그 사람이야 나한테 원수를 품고 있든지 말든지 나는 그 사람에게 그저 그 사람 좋도록 하면 화평될 수 있으니까, 화평은 소금을 두고 화평하라 했으니까 자기 희생하면 다 화평되지 별것 있습니까? 그러나 여기 '더불어'라는 말은 더 어렵습니다. 너만 그 사람에게 화평할 것이 아니라 그 사람도 너에게 화평하고자 하는 그 사람을 만들어라 하는 말입니다.
이러니까, ‘모든이 있으니 이 화평이 어렵고, '더불어'가 있으니까 또 더 어렵습니다.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화평을 가지려니까 거룩이 모순되고 거룩을 가지려니까 화평이 죽어집니다. 둘이 정 상극의 모순입니다. 서로 사람 좋게 하려 하니까 콩팥을 안 가려야 되겠고, 콩팥을 가리려 하니까 사람하고 자연히 금이 가고 쪼개지고 이리 되니 이것이 참 문제입니다.

그런데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는 말씀은 화평하면 거룩되고 거룩하면 화평된다. 이 둘이 각각 딴것이 아니고 단일성을 가진 단일체이니까 이것을 가지라 하는 말입니다. 어떤 것을 가지라는 말인가?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좇으라는 말은 따라가라 말입니다. 본받으라는 말입니다. 배우라는 말입니다.

누구의 화평과 거룩을 배우고 닮아가고 따라가고 좇아가고 그를 향하여 갈 것인가? 우리가 그 속에 살고 영원히 바라보고 사는 그리스도의 화평과 거룩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화평과 거룩을 좇으라는 말입니다.

주님의 화평과 거룩은 어떤 것인가? 사죄, 칭의, 화친입니다. 죄는 대신 형벌 받아서 없앴고, 의무와 책임은 대신 행해서 완성했고, 불목은 대신 원수의 값을 받고 화목의 제물이 되어짐으로써 되어진 예수님의 화목입니다. 예수님이 대형의 사죄, 대행의 칭의, 대화친의 생명을 건설하셨으니 이 방편을 취하면 그것이 화평이요 그것이 거룩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둘이 아니고 하나입니다.

이분의 것만 따라가고 이분만 본받고 이분만을 좇아가서 그 양식, 그 방법, 그 역사, 그 행동, 그 방식으로 건설하면 모순의 세계를 꿰뚫고 나가서 모순이 없는 일치된 진리의 세계에 주님이 계셨구나 하는 것을 발견하게 되고, 그럴 때에 이것은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거룩함을'
거룩이라는 것은 구별 구별 해 가지고 옳고 바른 것을 자꾸 궁구하고 증거하고 밝혀 나가는 것을 말합니다. 잡탱이가 많이 있는 데서 옳은 것은 하나뿐인데 이것도 아니다, 아니다, 아니다, 아니다 하는 그것을 구별이라 합니다.

거룩이라는 것은 잡된 것과 깨끗한 것이 섞여 있을 때에 다른 것을 구별해서 제거하고 참을 잡는 그 과정까지를 거룩이라고 말했고, 진실이라 하는 것은 과정은 떼 내고 이미 완전으로 단일로 되어 있는 그 자체만을 들어서 진실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이것 없으면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합니다. 그래서 거기 대한 해석을 밑에다가 해 놨습니다. 거기 대한 구체적인 방법론에 대해서 15절에 해석을 해 놨습니다.

(88050650)


'화평함과'
화평함이라는 말은 화친이라는 말과 같습니다. 또 화목이라는 말과 같은 말입니다. 구약 시대에 제사를 지낼 때에 네 가지 제사를 지냈는데 일호 제사가 허물을 사하는 속건제요, 그다음이 모든 죄를 속함받는 속죄제요, 속죄제 속건제 그 둘을 이래 드리고 저래 드리고 했습니다. 속죄제라는 것은 뚜렷한 죄를 다 회개해서 주님 앞에서 사함받는 것이 속죄제요, 속건제라고 하는 것은 다른 사람이 죄라고 볼 수도 있고 죄라고 보지 않을 수도 있는, 실수라고 할 수 있는, 사소한 그런 죄라고 할 수 있는 그런 것을 가리켜서 허물 건자, 허물을 속하는 것이라 합니다.

속건제 속죄제가 있었고 그다음에는 화목제가 있었습니다. 세번째는 화목제가 있었습니다. 마지막에 제사는 번제가 있었습니다. 번제는 제물된 그 양의 전부를 불에 태워서 하나님께 바치는 것이 번제요 화목제는 하나님으로 더불어 불목한 것은 사람으로 더불어 불목의 열매를 맺게 되고 사람으로 더불어 불목한 것은 차차 하나님으로 더불어 불목의 자리를 찾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람과 불목, 하나님과 불목 이 불목을 다 없이 하는, 양의 피, 그러면 예수님이 십자가의 대속의 죽으심으로 이 화목이 될 것을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수님을 대신해서 짐승으로 화목제를 드렸습니다. 화목제를 드리고 난 다음에 이 화목 제물은 그들이 식구들과 모든 원수되는 사람들까지 다 청해 가지고 한 자리에서 이 제물을 같이 먹었습니다. 이래서, 속건제 속제제 화목제가 있은 지 후라야 하나님께 바쳐지는 번제가 있지 이것이 준비되기 전에는 하나님에게 헌신하는 것이나 뭘 바친다는 것은 그것은 다 온전하지 못하고 미달되는 일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화평함과 거룩함을'
화평은 화목이요 화친하는 것이요 또 화평하는 것입니다. 그 속에 뜻은 약간 좀 다른 뜻이 있지만 화친이 화목이요 화목이 화평입니다. 화평이라는 것은 자기 혼자 화평하는 것이 아니고 쌍방이 있어서 상대방으로 더불어 화평하는 것이 화평이요, 화목하는 것이 화목이요, 화친하는 것이 화친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화친이라든지 화평이라든지 화목이라는 것은 자기 혼자는 못 하는 것입니다. 쌍방이 돼야만 되는 것입니다.

또 거룩이라는 것도 자기 혼자는 거룩이 안 됩니다. 그 쌍방이 있어야 거룩이 됩니다. 거룩이라는 것은 일을 접할 때 거룩을 이룰 수 있고 불결을 이룰 수도 있고, 또 물건을 접할 때에도 거룩을 이룰 수도 있고 불결을 이룰 수도 있고, 사람을 접할 때도 거룩을 이룰 수도 있고 불결을 이룰 수도 있는 것입니다. 화평이나 거룩이나 다 쌍방이 있어야 된다 하는 것을 여기서 깨달아야 합니다.

화평이라는 것은 순전히 인인 관계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고, 거룩이라 하는 것은 자기와 사람과 사물로 더불어 관계를 가질 때에 거룩이라 하는 것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화평은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하는 것인데 이 화평이 얼마나 중요한고 하니, 하나님을 볼 수 있고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화평이 없으면 하나님을 보지 못하고 화평이 있으면 하나님을 볼 수 있고, 또 거룩이 있으면 하나님을 볼 수 있고 거룩이 없으면 하나님을 만날 수 없는 이렇게 중요한 것입니다.

화평은 인인 관계에서만 있는 화평이니 이 화평은 화평보다 먼저 회개와 자복이 있습니다. 상대방에게 잘못한 것이 있으면 자복을 한 다음에 화평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혹 생각하기를 화평은 갑과 을 두 사람이 화평하는 것이기 때문에 여기서 서로 잘못한 것을 고하고ㅡ이것은 자복입니다ㅡ또 잘못된 것을 회개를 하고 이러는 것이 화평인 줄로 생각하는데 화평은 그 너머 있습니다. 화평하려고 달려들기 전에 먼저 자기를 살펴서 잘못한 것이 있으면 그것을 회개하는 것이 먼저 있습니다. 회개를 하고 난 다음에 그 상대방으로 더불어 화평이 그다음에 있지 회개하기 전에는 화평이 이루어지지를 않습니다.

회개는 자기 혼자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자기의 잘못된 것은 자기 혼자 할 수 있습니다. 상대방과 관계에서 자기가 잘못된 것은 상대방으로 더불어 하지 않아도 자기 혼자 잘못된 것을 다 고칠 수 있습니다. 회개로 고칠 수 있고 또 자기 혼자 잘못된 것은 상대방에게 그다음에는 자복으로 고칠 수 있습니다. 그러면, 회개하고 자복하고 난 다음에 그다음에 화평이라 하는 것은 있을 수 있는 것이고 시작되는 것이지 회개와 자복이 없이 화평이라 하는 것은 시작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기에 화평함을 하려고 할 때에는 그 사람으로 더불어 둘이 화합하고 화친하고 화목하는 것인데, 이것을 둘이 쌍방이 화친을 하려고, 화평을 하려고, 화목을 하려고 이렇게 시작하면 안 됩니다. 이것은 그 수준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회개의 수준에 있는 것이 아니고 또 자기의 잘못된 것을 용서받는 그런 수준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잘못된 것을 자기가 고치고, 고치고 난 다음에는 잘못된 것을 상대방에게 고하고, 자복을 하고, 자복을 하고 용서를 받고,회개하고 자복하고 용서받고 난 그다음에 화평이라는 것이 비로소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 뒤에 화평이 되냐 안 되냐 하는 것은 그다음의 노력입니다.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화평만 가지고는 안 되고 또 '거룩함을 좇으라' 했습니다. 거룩함을 좇으라 말은 거룩함을 주장하라 말이요, 거룩함을 따르라 말이요, 거룩함을 향해서 가라 말입니다. 네 생애의 목표가 어디냐? 너는 화평을 목표로 두고 달리라, 거룩을 목표로 두고서 달리라 하는 말입니다.

그러면 화평과 거룩의 목표가 어디냐? 거기는 곧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혀서 화목 제물이 되셨고 또 거룩이 되셨기 때문에 주님이 어떻게 하셔서 이 화평의 성공을 했으며 이 거룩의 성공을 했는가, 화평과 거룩을 성공하신 그분을 목표로 두고, 그분을 표준으로 두고, 그분을 표본으로 두고, 그분이 한 방편 그 방편을 써서 세상을 떠나기 전에 이 화평함과 거룩함을 마련해라, 이래야 네가 주를 보게 된다 하는 것입니다. 주님 만나게 되면 우리의 구원은 완성입니다.

그런데 잘못하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려고 해도 시야가 좁아서 아는 대로 몇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하면 됐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화평함이 됐느냐 안 됐느냐 하는 그것은 뭘로 볼 수 있느냐? 화평함이 되고 안 된 그 표현은 무엇이냐? 화평함이 되고 안 된 그 표현은 거룩입니다.

거룩이 미완성으로, 거룩하려고 결심해도 안 되고, 작정하고 한 시간 지나가면 더러워지고 하루 지나가면 더러워지고 이렇게 거룩을 이루지 못하는 것은 거룩의 밑받침이 모자라 그런 것이니까 거룩의 밑받침을 다시 더듬어서 거룩의 밑받침을 힘을 써야 됩니다. 화평이 이루어진 것만치 거룩이 이루어지지 화평이 구비하지 못하면 거룩은 구비하지 못합니다. 화평이 원만하지 못하면 거룩은 원만하지 못합니다.

화평을 하려고 해도 화평이 안 되거든 그 밑을 더듬어 보라, 화평은 무슨 토대 위에 서느냐? 화평이라 하는 것은 회개의 토대 위에 선다, 그러기 때문에 화평이 안 되거든 자꾸 회개를 파라, 회개를 파서 회개의 온전함이 됐으면 된 것만치 화평이 될 것이다, 회개의 완전은 화평의 완전이다, 화평의 완전은 거룩의 완전이다, 거룩의 완전은 하나님과 동거 동행의 완전이 된다 하는 것을 여기서 말씀해 주는 것입니다.

(87120601)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마5:21-26에 사람에 대해서 얼마나 조심해야 될 것을 말씀해 놨습니다. 구약에는 살인하면 심판받는다 이랬지마는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다른 사람을 무시하고 또 멸시하고 욕하고 하는 그런 것을 다 '심판받는다, 공회에 잡힌다, 지옥불에 들어간다'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사람에게 대해서 아주 조심해서 거리낄 것이 없도록 그렇게 해야 된다는 것을 말씀하시고, 하나님 앞에 무슨 예물이든지 예물을 드리려고 하다가 혹 다른 사람이 자기에게 대해서 무슨 원망하는 그런 것이 생각이 나거든 그 예물을 두고 가서 먼저 화친하고 그 뒤에 예물을 드리라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호리라도 갚기 전에는 결단코 그 매인 데에서 풀려 나오지 못한다' 했습니다.

사람으로 더불어 맺혀 있는 것을 세상에서 풀 수 있지, 세상에서 풀지 못하면 다른 데 가서는 풀지를 못합니다. 세상에서 풀지 못한 그런 것은 무궁세계 가서는 다시 풀지 못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니, 세상에서 서로 맺혀 있는 것은 언제든지 그게 없어지지 않고 영원히 맺혀진 것만치 자유하지 못한다는 것을 말씀을 했습니다.

막9:50에는 '너희 속에 소금을 두고 화목하라' 했습니다. 소금을 두고 화목하라 말은 자기를 완전히 부인해야 이 화목이 되지 자기 부인하기 전에는 참 화목은 안 된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녹아지고 없어져야 화목이 되지 자기가 녹아지고 없어지기 전에는 화목이 안 된다, 화목이라는 것은 자기를 완전히 부인해야 되어지지 그렇지 않으면 화목될 수 없는 것을 말씀을 합니다.

'소금을 두고 화목하라' 네가 네 속에, 네 마음 속에 아예 네가 녹아질 요량하고, 네가 어떻게 손해가 되든지, 어떻게 천하게 되든지, 어떻게 매장이 되든지, 어떻게 박살이 나도 ‘어쨌든지 이 화목만은 내가 깨지 않겠다’ 하는 그런, 네 마음에 소금을 두지 않고는 화목이라 하는 것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하신 것입니다.

약03:13-18에는 화평함이 먼저 있고 난 다음에 의가 이루어진다, 화평함을 심어서 거기에서 열매맺는 것이 의다, 화평이 없는 곳에는 열매가 없다 했습니다. 화평이 없는 생애에는 성령의 결실이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기에, 옳은 가정이 되는 데는 먼저 화평이 있어야 되고, 옳은 단체가 되는 데는 먼저 화평이 있어야 되고, 옳은 모든 역사가 있는 데에는 화평이 밑에 밑둥치가 되어지고 밑뿌럭지가 되어져야 되지 화평 없는 거기에는 좋은 것이나 옳은 것이나 행복된 것은 생겨지지 않습니다. 화평 없는 부부에는 행복이 없고, 화평 없는 가정에도 행복이 없고, 화평 없는 그 어떤 단체에도 행복이 없습니다. 화평이 모든 의의 성공의 밑둥치와 밑바탕이 됩니다.

모든 명철과 지능과 용감과 열심과 모든 총명은 그것은 있을지라도 화평이 없으면 그 모든 것이 다 악의 자본이 되고 자료가 돼서 결국은 악을 달성하는 것이 되지 아무 효력이 없습니다. 아주 무지 무능한 사람에게 화평이 있는 것과 화평이 없고 모든 지혜와 총명과 명철이 있는 것과 그 두 곳을 비교하면 어찌 되는가?

지혜, 총명, 부강, 권세, 명철, 열심 그런 모든 기능이 없어도 화평 있는 곳에는 꽃이 피고 열매가 맺을 수가 있습니다. 어떻게 훌륭하고 구비하고 하다 할지라도 화평이 없는 거기에는 결국은 사망 외에는 다른 것은 맺어지지를 않는 것입니다. 화평 위에는 생명이 맺고 화평 없는 모든 지능에는 사망이 맺어집니다. 아무리 그 사람이 지능이 훌륭해도 화평이 없으면 그 사람에게는 좋은 미래가 없습니다. 아무리 그 사람이 무지하고 어리석어도 화평이 있으면 그 미래에는 생명의 꽃이 피고 열매가 맺게 되는 것입니다.

골1:20에는,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죽으신 것이 화목을 위해서, 화평을 위해서 죽으셨습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람들과 불목한 여기에서 화평을 주기 위해서 주님이 십자가 못박혀 죽으셨고, 또 인간과 인간 사이에 화평을 주시기 위해서 주님이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모든 불목과 불화를 다 멸했고, 또 하나님과 인간과 만물과 만물 사이에 화평을 이루기 위해서 주님이 십자가에 못박히셨습니다.

주님이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은 세 순서가 있습니다. 첫째, 죄와 사망과 마귀를 멸하기 위해서 보혈을 흘리셨고 둘째, 우리들을 의롭게 하기 위해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습니다. 그러나 이런 것은 다 하나의 준비 공작입니다. 마지막 결말이 되는, 제일 결성이 되는 주님의 대속은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심으로 화목 제물이 되신 이것으로써 완성을 하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렇게 화목하시고 또 화목케 하는 직책을 우리에게 맡기셨고 화목케 하는 말씀도 우리에게 부탁해 주셨습니다.

창33:1-17에는 야곱이 형 에서가 받을 장자의 축복을 가로취해서 받았습니다. 그러고 나서 에서가 아버지 이삭에게 축복해 달라고 할 때에 '나는 너인 줄 알고 축복을 다 했는데 다시는 네게 복 빌어 줄 복이 없다' 그렇게 하면서 세상 축복을 해 줬습니다. '네가 세상에 있어 용감스러운 자손들이 날 것이고 또 모든 투쟁에서 승리를 할 것이고 또 모든 땅에서 부강하게 될 것이라' 했습니다. 그래서 신령하고 영원한 축복,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장자의 영원한 축복은 에서는 받지 못하고 신령한 면에는 완전히 패배자가 됐습니다.

이러니까 에서가 야곱을 죽이려고 하니까 야곱이 미리 알고 밧단 아람 외삼촌 집에 피해 가지고 거기서 결혼하고 자녀 낳고 있다가 하나님이 그 형 에서에게로 돌아가라 해서 갔습니다. 그런데 에서는 4백여 명의 군인을 양성해 가지고서 어느 기회라도 야곱을 만나면 야곱과 그 모든 가족들을 다 살해하려고 도모하고 있었습니다. 야곱은 하나님이 명령을 하니까 형 에서에게로 돌아가기는 가야 되겠는데 가면 에서의 손에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얍복강 가에서 에서에게 가면 죽을 터이니까 가지 못하겠다고 밤새껏 씨름하다가 날이 샐 무렵에야 비로소 가겠다고 자복을 하고 갔습니다. 가는데 에서가 군대 4백 명을 거느리고 온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야곱이 참 생명을 내놓고 갔습니다. 에서에게 미안하게 된 것을 다 사과를 하면서 얼굴을 땅에 대고 여러 번 절하고 예물을 또 여러 가지를 보내고 이래 가지고 비로소 에서를 만났습니다.

만날 때에 하나님 은혜로 에서는 야곱의 목을 안고 울고 야곱은 에서의 목을 안고 울었습니다. 둘이 화목을 취했습니다. 취해서 에서가 야곱의 길을 안내하고 아니면 군사를 남겨서 호위해 주겠다고 했습니다. 야곱이 거느린 식구들 때문에 천천히 간다고 해서 서로 나뉘었습니다.

그때에 만일 화목이 없었다면 어찌 됐을까? 화목이 없었다면 야곱도 망하고 에서도 망하고 다 망합니다. 왜? 에서가 무기가 있기 때문에 야곱을 죽일 것이고 야곱을 죽였으면 하나님이 에서를 죽일 것이고 완전히 그만 그 가족은 전멸을 당하는 것인데, 전멸당할 때에 이 화목이 들어서 그 가정을 구출했습니다.

창 45장에는 요셉의 사적과 그 형제들 만난 사적이 간단하게 기록돼 있습니다. 그 형들이 요셉이 아버지 심부름 온 것을 보고 죽여서 땅에 묻고 짐승이 찢었다고 피를 옷에 묻혀서 아버지에게 갖다주기로 그렇게 의논이 됐습니다. 그랬는데 맏형 르우벤이 죽이지는 말고 구덩이에 던지자 해서 던졌다가 다시 이스마엘 장사꾼들에게 팔아서 요셉이 애굽으로 팔려갔습니다. 애굽에서 보디발 집에 종이 되었다가 감옥에 들어가게 됐고 감옥에서 마지막에는 애굽 나라의 총리대신이 됐습니다.

그 형제들은 한 동태 형제간이 이복 형제들로서 그들이 단합해서 요셉을 미워하고 죽이려고 한 것이 한 두번이 아닙니다. 오랫동안 계획하고 경영하고 맺히고 맺혀 있는 원수입니다. 이랬는데 마지막에 그들이 요셉이 총리된 줄은 모르고 흉년이 들어서 양식 사러 애굽으로 갔다가 요셉을 만났습니다. 형들은 몰랐지만 요셉은 그 형들을 알았습니다. 그러면 이제는 애굽 나라의 총리대신이 되어 있으니까 복수하려고 생각하는 것이 마땅한데 요셉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이리저리 심문해서 그 속에 형제를 서로 미워하는 죄악을 뿌리뽑고 어쨌든지 화평을 취해서 하나님의 노를 쌓지 않고 축복을 받으려고 애를 썼습니다.

나중에 요셉이 자신을 알리고 이래 했지만 형들은 겁이 나서 가까이 오지를 않았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마음에 어떻게 반갑고, 또 과거를 생각하니까 마음에 견딜 수 없어서 사람들을 다른 데로 보내고 얼마나 대성통곡을 했던지 그 애굽에 있는 궁성에서 다 듣고 모두 다 소동이 될 만큼 그렇게 됐었습니다. 그리고 형들에게 자기 동생 베냐민을 데리고 오라 해서 만나 서로 껴안고 울면서 통곡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다른 형들은 ‘베냐민은 한 동태 형제간이니까 그렇지만 우리는 이제 복수를 당해서 죽는다’ 그렇게 생각을 했지만 요셉은 또 모든 형들을 만나 목을 껴안고 입을 맞추고 통곡을 하고 하니까 비로소 그 형제들이 요셉에게 가까이 왔습니다.

그때 요셉이 말했습니다. 내가 여기 온 것은 당신들이 팔아서 온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우리 이스라엘 족속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나를 앞서 보낸 하나님의 섭리로 내가 왔고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하신 것이니 거기 대해서 자기네들 뜻대로 했다고 생각지 말라 했습니다. 그 모든 일을 하나님의 섭리에다 두고 형제들에게 조금도 원망이나 책임이나 그런 것을 가지지 않고 화친했습니다. 그래서 그 화친한 것이 요셉에게도 생명을 구원하는 일이 됐고, 또 그 형제들도 생명을 구원하는 일이 됐습니다.

에서와 야곱이 화친하지 않았으면 야곱은 에서를 만나서 죽었을 것이고 그러면 하나님은 또 에서를 쳤을 터이니까 에서도 망하고 야곱도 망하고 다 망했을 것입니다. 그런 관계에서 화친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런 원수가 어디 있습니까? 그런데 화친하는 데에서 두 사람이 다 생명을 보존했고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던 것입니다.

요셉과 그 형제들도 만일 그때 요셉이 그 형제들에게 복수하는 마음을 가지고 화평을 가지지 못했다면 요셉은 그후로 하나님을 만나지 못합니다. 하나님 말씀에 '화평함과 거룩함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했기 때문입니다. 요셉이 그 아주 먼 타국, 민족도 다르고 아주 무정하고 잔인한 애굽 나라에 일자무식꾼으로서 총리대신이 되어 명정치를 하게 된 것이나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의 은혜인데, 만일 요셉이 형제들의 그 악한 마음에 조금이라도 섭섭하게 생각해서 복수를 했다면, 하나님이 자기를 향해서 섭리하시는 광대하신 그 섭리를 깨닫지 못하고 인간적으로 단편적으로 편견해 가지고 복수를 했다고 하면 하나님은 요셉과 다시 같이 할 수가 없습니다. 왜? 화평이 없이는 하나님 보지 못한다 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보지 못하면 요셉이 하나님의 지능의 도우심을 어떻게 받을 수가 있었겠습니까? 이러니까 그리 됐다면 요셉도 하나님과 끊어지니 비참하게 망해졌을 것이고 또 그 형제간도 비참하게 망했을 것입니다.

그들이 다 이렇게 인간적으로서는 불목할 만한 그런 일이 많이 있지마는 광대하신 하나님의 경영과 하나님의 섭리를 생각하고 모든 것을 이해하고 양해하고 어쨌건 화평하려고 해서 화평했습니다.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주를 보지 못하리라' 하는 것이 여기뿐 아니라 구약에 있는 모든 성경 중심의 뜻이 다 그러합니다.

참 어려운 관계에서 화평하기가 어렵지 않았던 것은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니까 어렵지 않았고, 에서와 야곱은 하나님의 뜻을 생각지 못하고 화평을 하려 하니 심히 어려웠지만 하나님이 화평케 해서 그들이 화평했습니다. 다른 데도 보면 그런 게 많습니다. 이래서 화평은 구원이라, 화평은 생명이라, 화평은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것이라 하는 것입니다. 이래서 말하기를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 마5:21-26 / 막9:50 / 약3:13-18 / 골1:20 / 창33:1-17 / 창33:1-17 / 창45:00

(87120602)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화평의 반대는 불목입니다. 불목은 어디서부터 생기며 화평은 어디서부터 생기느냐? 불목은 첫째 아담에게서부터 생겨졌고 화평은 둘째 아담에게서부터 생겨진 것입니다.

첫째 아담에게서 불목이 생겨졌는데 그 불목이 어디서부터 시발됐는가? 인간에게는 아담과 하와에서부터 시발됐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두 몸이 아니요 한 몸입니다. 한 몸에서 나와서 아담의 갈빗대를 빼 가지고 하와를 만들었기 때문에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그렇게 발표를 했습니다. 이랬는데 불목이 생겨진 후에는 제일 첫 행동이 뭣인고 하니,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네가 어떻게 해서 내가 금한 선악과를 먹었느냐?’ 할 때에 ‘하나님께서 나에게 짝으로 주신 하와가 먹으라 해서 먹었습니다’ 해서, 아담과 하와가 한 몸인 그것이 벌써 분리돼 가지고 서로 그 사이가 벌어져 있는 것을 발표했습니다.

또 하와에게 '네가 어떻게 내가 금한 이 선악과를 먹었느냐?' '하나님께서 지어 주신 이 배암이 나에게 주면서 먹으라 했기 때문에 먹었습니다.’ 또 배암은 하나님이 지으신 피조물인데 피조물과 사이가 벌어졌습니다. 그 전에는 모든 피조물의 이름을 지었습니다. 배암이라고 이름 지은 것도 아담이 지었고 다 이렇게 했었는데 그만 한 몸인 사람과 사람 사이가 벌어져서 불목이 시발됐고 또 하나님의 지으신 만물과 자기와의 사이가 벌어져서 불화가 돼 버렸습니다.

그러면 이렇게 불화되고 불목된 원인이 어디 있는가? 그 원인은 곧 배암이 와서 미혹을 해서 불목이 됐습니다. 배암은 어떻게 해서 불목을 일으키는 존재가 됐는가? 하늘에서 모든 천사 가운데에 자기 중심 자기 위주로 첫 행동한 것이 천사인데 그 천사가 악을 행하여 악한 천사가 되어서 하늘에서 쫓겨 내려왔습니다. 미가엘 천사장으로 더불어 싸워서 쫓겨났는데 하늘에서 쫓겨 나와 가지고 우주에 있다가서 하나님이 사람으로 하여금 당신의 모형으로 지어서 당신을 계대해서 그 상속자가 되게 하려고 존귀케 하는 것을 보고서 시기해 가지고 내려와서 하와를 먼저 꾀워 가지고 아담을 꾀워서 그렇게 했던 것입니다.

그것은 인인 관계에 불화가 되어졌고, 또 사람과 모든 물질이 불화가 생겨진 원인은 배암이 그렇게 작용했고, 배암이 그런 역사를 하도록 된 것은 타락한 악령이 들어서 그렇게 한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사람들의 모든 불목하고 불화하는 것도 그 사람의 심신이 불목하고 불화한 주격자가 아닙니다. 사람의 심신으로 불화 불목하게 한 것은 반드시 배암이 있습니다.

에덴 동산에서는 다른 것은 이용할 것이 없기 때문에 배암을 이용을 했지마는 그후에는 사람을 이용합니다. 배암보다 더 속기 쉽고 껍데기가 다 같은 사람이기 때문에 사람을 미혹의 도구로 삼습니다. 배암이 자기 사람이 된 그 사람을 다른 사람을 미혹시키는 도구로 삼아 가지고 불목을 일으킵니다.

* 창2:23 : 아담이 가로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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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로 은혜를 우리가 입는 유월절에서 제일 금물은 누룩입니다. 유월절은 무교절이라고도 합니다. 없을 '무(無)' 누룩 '교(酵)'입니다. 유월절 절기를 기념할 때에는 누룩 있는 떡을 먹지 말고 '무교병'을 먹어라고 했습니다. 누룩 없는 떡을 먹는 절기인데 이 유월절에는 이스라엘 백성들 집에 누룩이 어떤 구석에 모르게라도 끼어 있으면 하나님은 아시기 때문에 그 누룩 끼어 있는 집은 재앙을 받아서 멸해지게 됐습니다.

누룩은 무슨 뜻을 가르치는가? 누룩은 가루에 들어가면 가루를 부풀게 해 가지고 마지막에는 썩혀버리고 마는 것이 누룩의 성질입니다. 그들이 누룩을 사용한 것은 전곡만 가지고 살기 때문에 떡을 해 가지고 먹고 사는 지방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누룩을 넣어서 부풀지 않으면 그게 소화가 안 되고 하기 때문에 부풀게 해서 평소에 늘 먹었습니다.

누룩은 곧 사람의 마음을 부풀게 해 가지고 그 사람을 범죄케 하는 것, 또 사람과 사람 사이를 부풀게 해서 그 사이를 벌여트려 가지고서 범죄케 하는 그런 것을 가리켜서 누룩이라고 가르쳤습니다. 누룩 없는 떡은 속에 공기가 하나도 없으니까 전부 빈틈없이 한 덩어리가 된 것입니다.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의 은혜에는 인인 관계에 화목이라는 것이 중요합니다. 화목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히브리서에,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한다고 말씀을 했습니다.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의 은혜에는 인인 관계에 화목이라는 것이 중요합니다. 화목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히브리서에,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한다고 말씀을 했습니다.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에 대한 모든 은혜, 모든 은혜는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에 대한 은혜가 근본이요 제일 많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님을 부르는 데에나,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데에나, 또 예수님의 돕는 은혜를 바라는 것이나 그 모든 일에는 금물이 서로 불목하는 것이 금물이라 이겁니다. 누룩을 금한 것은 불목을 금했다 이것입니다. 불목이 대금물입니다. 불목이 있으면 재앙을 받아서 멸해지게 됩니다.

유월절은 없는 것이 생겨진 출생의 은혜, 죽을 것이 살림 받은 구원의 은혜를 말하고
오순절은 생겨지고 살아난 것이 지도받고 인도를 받는 은혜를 말하고
장막절은 그 인도를 따라 갈 때 안보하고 보호하는 은혜를 말합니다.

* 출12:8 : 무교병과
* 출12:19 : 누룩을 너희 집에 있지 않게 하라
* 출34:18 : 너는 무교절을 지키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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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하라'는 것은 사람으로 더불어 친화하는 것입니다. 사람으로 더불어 화친하고 화목하고 우애 있게 서로 하나 되어 친하라는 말씀입니다.


'거룩함을'
'거룩'은 깨끗을 말합니다.


'좇으라'
'좇으라'는 것은 따르라는 말이요 본받으라 말입니다. 예수님을 표본으로 삼고 모본으로 삼아 예수님이 가졌던 그 화평과 거룩을 본받아서 동기도 그 동기, 방편도 그 방편, 또 결과도 그 결과를 이루도록 해라는 말입니다. 이렇게 좇는 것이 믿음입니다.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모든 사람'이라는 말씀이 있는데 이는 믿는 사람들이 화친도 거룩도 일반적으로 얼마든지 할 수가 있습니다. 또 부분적으로 하는 것은 대단히 쉽습니다. 세상에서 자기와 화친된 사람이 없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이러기에, 자기에게 맞은 그런 화친을 가지지 말고 반드시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친하라,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거룩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화친할 때에 자기 중심, 자기 위주, 자기 본위 이것으로써는 화친을 다 하고 있습니다. 그 화친은 악령 악성 악습으로 된 옛사람을 성장시키는 것이요 옛사람이 하는 일입니다. 이것은 구원의 적이지 구원을 이루지는 못합니다. 자기에게 맞은 사람으로 더불어 화친하는 거기에서 자기와 가장 먼 사람으로 더불어 화친을 하려고 할 때에 자기 중심 자기 위주인 옛사람은 죽어집니다. 자기가 왕 된 것은 죽어집니다. 이러기 때문에, 화친을 가지나 모든 사람을 빼 버리면 그것은 다 사망을 이루는 것이지 구원을 이루는 것은 아닙니다.

또, 거룩도 아끼는 자기 자녀에게는 다 거룩을 지킵니다. 또 자기가 아끼고 사랑하는 자에게는 다 거룩을 지켜서 실수하지 아니하고 좋은 본을 보이려고 애를 씁니다. 그러나 자기와 반대되는, 자기와 적이 되어 있는, 자기와 마찰되어 있는 그 사람에게 거룩을 지키기는 힘듭니다.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화평함과 거룩함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하는 것은 더욱 중요합니다. 그런데 인간은 유한하기 때문에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하는 이것이 다 완성이 안 됩니다. 그러나, 그 사람이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는 것을 자기의 중심으로 자기의 소원으로 자기의 목적으로 삼아 사는 사람이면,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가지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면 됩니다.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높은 사람이나 낮은 사람이나 유식한 사람이나 무식한 사람이나 어떤 계급 어떤 족속 어떤 종류의 사람이든지 하나도 빠짐없이 화평함과 거룩함 이 두 가지가 있어야 주님을 만날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주님만 만나면 주님은 모든 것의 주재시요 자기에게 필요한 것은 다 가지고 계시기 때문에 다 됩니다.

(88041701)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라는 말은 자기만 그 사람에게 일방적으로 화평하면 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도 자기와 화평하는 노력을 하고 자기와 화평하는 사람이 되도록 하라는 말입니다. 이것이 최고의 절정으로 어려운 것입니다.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는 것은 예수님을 본받아 따라가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는 화친을 하기 위해 당신의 것을 다 투자하셨습니다. 당신의 것을 다 투자함으로써 이 일이 이루어졌고 이 투자함으로써 하나님께서 옳다 인정을 하셨습니다.

이래서, '저는 나의 사랑하는 아들이요 나의 기뻐하는 자라' 세례를 받으실 때 곧 이 일을 경영하고 출발하셨을 때에 이 말씀을 하셨고 또 변화산 상에서도 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아들'이라는 말은 받을 수 있는 자격을 말하고 또 '사랑하는' 말은 다 줄 수 있는 것을 말합니다. 이래서 '사랑하는 아들'이라는 말은 하나님께서는 아낌이 없이 다 주실 수 있고 예수님은 하나님의 모든 것을 다 받으실 수 있다는 말이요 또 '기뻐하시는 자'라  하나님이 만족하시는 자라는 말입니다.


'화평함'  
'화평'이라는 말은 서로 화친뿐만 아니라 타락에서 인간의 본 지위를 회복시켜 사람의 평등을 회복시킨 것을 말합니다. 사람의 평등을 회복시킨 것을 '평'이라고 말합니다. '평등을 회복시켰다'는 말은 동등을 회복시켰다는 말인데 '동등을 회복시켰다'는 말은 하나님에게 대한, 사람에게 대한, 만물에게 대한 가치가 같고 의무와 책임이 같고 본분이 같은 것을 말합니다. 이래서 '남을 자기보다 낫게 여기라' 말씀했습니다.

그러기에, 인간의 본 가치를 바로 찾아 본 위치에 바로 있기 때문에 평등이 됐습니다. 따라서 비평할 때에 이것과 저것을 비교해서 차이가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자기의 생활에서 자기가 그 차이를 만들고 자기의 행위에서 자기가 그 차이를 만드는 것이지 근본 그 가치도 같고 또 그 의무와 본분도 같고 또 상대방과의 관계도 꼭 같습니다.

그러면 만물과 자기와의 관계도 같은데 자기 행동으로 말미암아 만물과 자기와의 차이가 납니다. 어떤 사람은 만물이 자기에게 복종하고 어떤 사람은 만물이 자기에게 하나도 복종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한 푼도, 물건 하나도 쓰려고 해야 쓰지 못하는데 어떤 사람은 다 쓸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도 꼭 같이 다 동등으로 받을 수 있는데 자기 행동으로 말미암아 그 가치가 달라졌고, 그 관계가 달라졌습니다.

* 마3:17 :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2)
* 마17:5 :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2)
* 빌2:3 :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3)

(88042030)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화평이 그 속에 거룩이 들어 가지고서 거룩을 만들기 위해서 모든 불화한 것들을 점령해서 거룩을 만들기 위해서 화평은 거룩의 작용으로 화평이 돼야 되고, 또 거룩을 달성하는 거룩의 목적으로 화평이 돼야 되는데 사람들은 거룩 없는 화평만 주장하기 때문에 점점 사망이 이루어져 가고 있습니다. 배암의 사랑은 화평에서 끝나는 것이요 하나님의 사랑은 거룩을 위한 화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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