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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 성경:49에베소서01:04
 

엡1:4

'사랑 안에서'
이 사랑 안에서라 말은, 하나님이 완전 책임을 지시고 우리를 하나님처럼 완전케 하시는 그 계약 안이라 말이요 구속 안이라 말입니다, 이거. 사랑 안이라 말은, 하나님이 우리를 뭐 사랑해서 밥 주고 옷 주고 그런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은 두 종류 있는데 이제 하나님의 사랑 곧 우리를 사죄, 칭의, 화친, 성령, 진리, 하늘의 소망으로 이렇게 완전케 하는 이 완전의 책임 안에서, 완전의 그 완성하실 그 하나님의 계획 안에서 하나님의 그 목적 안에서 거기서 우리가 된 것을 가리켜서 '사랑 안에서'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 안에서'라 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안에서 하는 말입니다, 말하자면. 사랑 안에서, 이거는 아직까지 대속도 나오지도 안했는데 뭐 이렇게 말하는가 하지만 아닙니다. 그 위에서부터 다 벌써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하는 데부터 다 거기서 다 시발이 됐습니다. 그러니까 시공 세계의 것을 말할 때도 있고 하나님의 의지 세계의 것을 말할 수도 있는데 우리 구원은 모든 존재적으로 하나님이 처음에 존재했고 그다음에 둘째로 존재한 것이 우리의 구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나이가 많습니다.


'그 앞에 거룩하고'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여기 거룩이라는 것은 '보다'라는 말이오. 거룩이라는 것은 보다 낫고 보다 낫고 그 이상이 없는 하나님 다음에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보다는 못하지만, 모든 피조물 모든 존재보다는 나은 구원입니다.


'흠이 없게 하시려고'
아무런 흠이 없으니까 영광의 찬미가 되지요. 아무 것도 조그만한 흠도 없어요. 우리를 구원하는 것은 조그만한 흠도 없는 구원으로 우리에게 주셨어요. 이런 걸 자꾸 새겨봐요.

(89051142)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창세 전에 이 일이 그리스도 안에서 시작됐다.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시작됐다. 이 창세는 모든 걸 창조하신 것을 가리켜 말씀하시는 것인데 창조는 두 단계가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예정적 창조, 하나님 당신이 이 모든 만물을 짓기 전에 당신의 그 마음 안에서, 당신의 뜻 안에서, 당신의 그 의사 안에서 당신이 예정하실 때의 그 창조가 있고, 그러면 예정 창조가 있고 또, 이거는 실질로 지은 게 아닌데, 예정 창조를 실질적으로 이 우주를 창조하신 창조가 있습니다.

(82021250)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에베소 1장에는 있는 창조는 하나님이 시공 세계의 시공 창조를 말하고 의지 창조를 말하지 안하고 다른 것은 의지 세계를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창조도 그것이 의지 세계의 창조다. 그렇기 때문에 창세 전에 벌써 의지 세계에서 창세 전에, 존재하기 전에 우리가 예택함을 받았다. 또, 창조 전이라는 그것은 하나님의 의지 세계에서 창조가 아니고 그 창조는 시공 세계의 창조를 가리켜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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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 전에'
우리를 예수님 믿는 자 되게 *하시려고* 이 구원을 시작하신 때는 언제부터인가? 이 모든 천지를 창조하시기 전 또 *하나님이* 모든 것을 예정하시기 전부터 시작하신 구원입니다. 그러면 하나님 한 분만이 *홀로* 계셨고 영계도 이 물질계도 아무것도 없이 하나님만 혼자 계실 그때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로 목적을 정하신 그것을 성경에 “택하셨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우리 구원은 우리가 있고 난 다음에 시작된 구원이 아니고 하나님만이 계실 때에 이 구원을 하나님이 목적하시고 모든 것을 계획으로 이루시고 창조로 이루어 가지고 우리가 존재하기는 언제부터 존재했느냐 하면은 창조함을 받을 그때부터 존재했고, 우리가 존재하기로 있기로 작정된 것은 하나님의 예정하실 그때부터 예정으로 있게 됐고, 또 그보다 하나님의 목적에 하나님의 뜻에서 “이런 자를 하나 만들겠다” 하는 그것은 하나님의 목적에서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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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이 천지를 창조하시기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셨다 말씀했어. 이 창세 전이라는 말는 시공 창조를 말한 것 아닙니다. 이 시공 창조 지금 이 영계나 물질계에 창조한 것을 말하지 않고 하나님의 의지 속에서 예정의 창조를 말합니다. 하나님의 의지 속에서 예정하실 때에 당신이 예정하신 순서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목적을 정해서 택하시고 그다음에 예정하시고 창조하셨는데 그 창조 전이라 말입니다. .

이거는 예정 창조안에 예정 창조를 한 지 오래 후에 이 시공 창조를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입니다.

이 선택에 대해서 정통 학자들 가운데에 어떤 사람은 후택설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후택설이라 말은 창조 후 우리가 존재 후에 택했다 해서 후택설이라. 그 후택설을 주장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이 시공 창조 전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예정 창조전에, 우리가 있은 지 후에 택한 게 아니고 우리가 있기 전에 예정 전 에하나님께서 곧 목적을 정하신 그것이 우리의 선택이라 그렇게 선택설을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우리 나라에는 정통 학자들이 대개는 미국 웨스트 민스터 신학교에서 나온 그 학자들이 유력하고 또 와서 일을 많이 하셨습니다. 그 신학에서 배운 사람들은 전부 다 후택설을 주장합니다. 창세 후에 존재 후에 택했다 이래 가지고 후택설을 주장을 합니다. 우리는 선택설을 우리가 주장을 합니다.

옛날은 선택설과 후택설의 논쟁이 있었으나 후택설이 승리하고 선택설 이 패전했습니다. 왜? 그것은 그때는 선택설은 영감으로 짐작만했지 거게 대한 구체적인 깨달음이 없었기 때문에 그 변중할 때에 패소를 당한 셈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선택설이 어데까지나 성경적이라는 것이 드러나기 때문에 후택설 주장하는 사람들이 선택설이 틀렸다는 그런 말을 하지를 못합니다. 선택설을 말하는 사람들은 후택설은 그것은 잘못됐다 그렇게 말을 합니다.

이 택한 것은 하나님이 목적으로 정하신 목적을 우리에게 대해서는 "택했다" 말씀한 것입니다.
`그러면 택했으면 있기 전에 어떻게 택할 수가 있겠느냐? 있는 가운데서 택하지 않겠느냐?' 이렇게 하는 데에서 후택설이 유리하다고 이랍니다. 이 택한 것은 존재하기 전에 하나님이 목적을 정하신 그 정함이 이것이 하나님의 택함에 있었기 때문에 당신의 의지 예정 선택이지 존재의 선택이 아닌 것입니다.

'사랑 안에서'
이 사랑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말하는데 이 사랑 안에서라 하는 이 사랑을 요새는 이 사랑의 정의가 아주 모호해 가지고 있습니다. 사랑은 두 종류가 있는데 하나님의 사랑이 있고 뱀의 사랑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단일 사랑이요 그 사랑은 영원 불변의 완전 사랑입니다. 뱀의 사랑은 이거는 변하는 사랑이요 뱀의 사랑은 자기가 끌어당겨서, 사랑하는 것을 끌어당겨서 제 것을 만드는 것이 이것이 뱀의 사랑입니다.

땅위의 사랑을 가리켜서 정욕적인 사랑이라, 동류적인 사랑이라, 혈육적인 사랑이라 그렇게 그런 세 종류로 나눠서 말하는데 뱀의 사랑은 자기를 중심한 것이 뱀이기 때문에 악이기 때문에 뱀의 사랑은 무엇이든지 자기를 중심해서 그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마치, 꽃을 사랑하면 꽃이 고우니까 이것을 내비두고 가면 다른 사람이 꺾어 갈란지 모르니까 자기가 꺾든지 캐서 자기 정원에 갖다 심든지 해야 만족이 되는 그와 같은 것입니다. 그러면 남자가 여자를 사랑하는 것도 저것을 내것을 만들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또 여자가 남자를 사랑하는 것도 저걸 내것을 만들겠다는 것입니다. 이러기에 끌어당겨서 제게로 붙이는 그것이 뱀의 사랑이요 하나님의 사랑은 상대방의 유익을 위해서 자신을 주는 사랑입니다.

이래서 어데까지나 힘이 있는 데까지, 미치는 데까지 상대방의 유익과 상대방의 그 행복을 위해서 자신을 투자하는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러면 이 사랑은 전능자가 아니면 이 사랑을 가지지 못합니다. 전능자가 아니면 이 사랑을 가지면 밑천이 떨어져 버립니다. 완전자가 아니면 이 사랑을 가지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래서 하나님의 사랑과 뱀의 사랑이 다른데 "우리를 사랑 안에서" 하는 말은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하는 말인데, 요한일서에 보면 "사랑은 여기 있으니 곧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보내 가지고 우리를 범죄로 영원 멸망 무지 무능의 모든 그 불행스러운 것은 다 하나도 빠짐 없이 갖추어 가지고 있는 그 모든 것에서 완전 구원으로 구출하고 성장시키고 승격시키기 위해서 하나님은 독생자를 보내셨고 독생자는 생명을 바쳐 죽으시고 또 영원히 창조주가 피조물 되어 가지고 우리를 구원하신 이 사랑입니다.

"사랑 안에서" 그러면 우리를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로 이렇게 삼는 것은 이 세상 육신의 부모가 아무리 사랑한다고 해도 자기를 위해서 자녀를 사랑하는 것처럼, 아무리 사랑해도 자기보다는 더 사랑하지 않습니다. 인간들이.

또 사랑할라고 해도 지혜가 모자라기 때문에 사랑이라고 했는데 세대가 지나가니까 미움이 될 수 있습니다. 또 아무리 사랑한다 하지만 능력이 유한하기 때문에 끝까지 행복되게 해 주지 못하기 때문에 나중에 이 세상 사랑은 사랑하는 것만치 미움이 되고, 좋은 것만치 싫게되고, 또 자기와 가까운 것만치 멀리 되는 것입니다. 이거는 틀림없이 다 이와같이 돼집니다.

"사랑 안에서" 이 말은 하나님의 전부를 하나도 빠짐없이 남김없이 하나님의 전부를 나를 사랑함으로 나를 위해서 전부를 다 주신다는 뜻을 가리켜서 "사랑 안에서" 라고 말했습니다.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거룩이라 말은 구별하고 구별하고 구별해서 제일 완전한 것을찾았을 때에 거룩이라 그말입니다.
"거룩하고 그말은 천사보다도 낫다. 천군보다도 낫다. 지구 땅덩어리보다도 낫다. 우주보다도 낫다. 영계보다도 낫다. 보다 낫다. 보다 낫다. 보다 낫다. 보다 낫다.

우리를 하나님의 창조하신 영계와 물질계에 모든 것보다. 보다 우리를, 보다 우리를, 보다 우리를, 보다 우리를, 모든 것보다 우리를 깨끗게 하실라고, "그 앞에" 하나님 앞에. 하나님은 완전자인데 완전자 앞에 하나도 거리낌 없도록, 전지자 앞에 하나도 흠점이 없도록, "거룩하고 홈이 없게 하시려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이렇게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셨는데 사랑하시는데 사랑하셔서 우리를 어떻게 하는가? 우리를 하나님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실라고 지금 이 작정을 하시고 역사하십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사랑하심으로, 하나님의 사랑은 당신의 전부를 다 사랑하는 자를 위해서 다 주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 앞에서 거룩하고" 거룩하다 말은 보다 온전하고 보다 온전하고, `천사와는?' 천사보다 온전하고. `천군?' 천군보다 온전하고. 보다 온전하고, 보다 가치 있고, 보다 귀하고, 보다 깨끗하고,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하나님 앞에 전지의 지혜로 봐도 아무 홈과 점이 없게 하시려고, 완전케 하시려고. 이렇게 하실려고 우리를 택했고우리를 구속하시고 지금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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