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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01창세기13:00
 

창13:1-18

아브라함의 믿음
성경에 보면 '우리 믿는 사람들을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말씀했는데(롬4:16∼17) 우리를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말씀하신 것은 혈통적으로가 아니고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와 형편이 아브라함과 같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아브라함의 형편과 같은 형편을 가진 믿음의 자손이요 아브라함의 순종과 같은 순종을 가질 수 있는 믿음의 자손이라는 말씀입니다.

아브라함은 우리의 믿음의 조상이요 믿음의 표본이 되는 믿음의 사람인데 아브라함이 하란 지방에서 하나님의 인도 따라서 출발할 때에 자기의 조카 롯과 함께 출발했습니다. 이렇게 아브라함이 롯과 함께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 하란 지방에서 출발하여 벧엘에 왔고 이 벧엘에서 장막을 치고 살았는데 하나님께서 '벧엘을 떠나라'고 명령하시기 전에 그곳에 가뭄으로 말미암아 의식주에 어려움이 심해서 이 어려움을 피해서 조금씩 조금씩 남쪽으로 내려가다가 애굽까지 갔고 거기서 자기의 생명과 가족까지 죽임을 당할 뻔한 지경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런 지경에서 하나님의 인도를 받지 아니하고 자기의 주관대로 행하다가 하나님의 재앙으로 이런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을 깨닫고 회개하고서 벧엘을 향해서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이렇게 회개하고서 벧엘을 향하여 올라갈 때에 하나님은 재앙을 거두시고 축복하시니까 벧엘을 향하여 올라오는 도중에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벧엘에서 몇 해 동안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 때에 하나님의 축복으로 큰 부자가 되었고 종업원도 심히 많았습니다.

그런데 큰 부자가 되어 소유도 많고 종업원도 많으니까 벧엘이라는 한 지역에서 두 집이 함께 살기가 좁아서 종업원끼리 시비가 일어났고 그 시비가 아브라함과 롯에게까지 갔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롯을 보고 '나와 너는 숙질간인데 나와 네가 서로 싸울 것이 없지 않느냐 하나님의 축복으로 이렇게 강성하게 되었는데 우리가 서로 싸우면 하나님이 섭섭해하실 것이니 서로 나누어져서 살자 네가 동쪽을 취하면 나는 서쪽을 취하겠고 네가 서쪽을 취하면 나는 동쪽을 취하겠다 네가 물 좋고 풀 좋고 교통이 편리한 소돔평야를 택하면 나는 물 없고 풀 없고 교통이 불편한 가나안 골짜기를 택하겠으니 네 마음대로 택하라'고 말했습니다.

이 때에 아브라함이 이 말을 한 것은 '인간이 잘 살고 못 살고 자녀교육을 잘시키고 못시키고 사업이 성공하고 성공하지 못하고 인간이 행복하게 되고 불행하게 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축복하시든지 화를 주시든지 하는 여기에 달려 있는 것이지 형편과 조건이 좋다 나쁘다고 하는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님을 알고 택하라' 하는 이것을 말한 것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의 조카 롯도 양심이 있고 또 하나님을 섬기는 자요 자기는 아브라함의 조카인 것도 알고 또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종이요 롯 자기는 아브라함에게 속한 자인 것도 알고 있기 때문에 아브라함이 좋은 것을 취하는 것이 법적으로 경우적으로 예의적으로 체면적으로 신앙적으로 합당한 줄 알고 있습니다.

벧후2:7절 끝에 보면 '의로운 롯이라 의인이라' 말했는데 이 롯은 좋은 곳을 아브라함에게 주고 자기는 나쁜 곳을 취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마는 마지막에 결정할 때에는 좋은 곳을 자기가 취하고 나쁜 곳은 아브라함에게 주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두말하지 않고 그대로 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물 없고 풀 없고 교통이 불편한 가나안 골짜기로 갔고 소돔은 물 좋고 풀 좋고 교통이 편리하고 문화가 발달된 소돔평지로 갔습니다.

그러면 롯이 무엇 때문에 예의도 체면도 경우도 신앙도 버리고 소돔평야를 택하게 되었습니까? 소돔성이 유황불비로 멸망당할 때 롯의 가족들이 행동한 것을 연상하여 보면 다음과 같은 것을 추론할 수 있습니다.

소돔성이 멸망직전에 있을 때에 천사의 경고를 받은 롯이 자기의 아내 딸들 사위에게 말을 전했는데 그 사람들이 롯의 말을 듣지 않고 무시하고 조롱했습니다. 이것을 보면 아브라함과 롯이 지역 선정문제로 의논할 때에 롯은 아브라함에게 좋은 곳을 줄려고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롯의 아내 자녀 종업원 이런 사람들이 총동원해서 롯을 보고 '아무리 예의적으로 체면적으로 경우적으로 신앙적으로 보면 좋은 곳을 아브라함에게 양보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겠지마는 사업도 생각하고 자녀교육도 생각한다고 하면 목축하기에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는 물 좋고 풀 좋은 소돔평야 자녀교육하기에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는 문화가 발달한 소돔지방 이 지역을 취해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했을 것이요 롯은 슬그머니 그들의 주장에 따랐을 것입니다.

그래서 롯이 아브라함에게 와서 '나는 삼촌에게 좋은 곳을 드리고 싶고 또 드리면 좋겠지마는 내 아내와 자녀와 종업원들이 소돔지역을 택하자고 강하게 주장하는데 어떻게 할 수 없습니다.'라고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모든 면에 준비적으로 처리하였고 자기에게 속한 사람들을 잘 단속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근심되게 하지 아니하려고 하나님을 노엽게 하지 아니하려고 하나님을 섭섭하게 하지 아니하려고 했고 눈에 보이는 것으로 시비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을 생각하고 다른 사람의 이목을 생각하고 롯의 믿음을 생각해서 소돔지역을 양보하고 가나안을 취해야 한다'고 하면서 소돔지역을 롯에게 양보하고 가나안을 택한 것이였습니다.

아브라함은 자기에게 속한 사람들이 무슨 주장을 해도 거기에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행동했고 자기의 사업에 지장이 있어도 상관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행동했고 자기의 자녀교육에 지장이 있어도 상관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행동했습니다. 그러나 롯은 눈에 보이는 것에 따라서 행동하였고 자기에게 속한 사람들의 소원과 의견과 주장에 따라서 행동하였고 하나님의 축복보다 현재 자기 눈의 보기에 유익되는 그 면에 따라서 움직였고 하나님의 축복보다 세상적인 조건에 따라서 행동했고 아브라함은 이와 반대로 보이는 세상적인 조건보다 하나님의 축복을 더 크게 여겼고 자기 가족의 소원과 주장보다 하나님의 뜻을 더 크게 여겨서 행동하고 일을 처리했습니다.

그런데 우리 믿는 사람 앞에는 아브라함이 걸어간 길이 있고 롯이 걸어간 길이 있는데 이 두 길 가운데에 어느 한 길로 걸어갑니다. 그래서 우리 믿는 사람은 하나님의 축복보다 눈에 보이는 세상적인 조건을 더 크게 여기는 이 롯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될 수도 있고 또 눈에 보이는 세상적인 조건보다 하나님의 축복을 더 크게 여기는 이 아브라함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하나님의 축복이야 있든지 없든지 상관하지 않고 자기의 현실에 세상적인 조건이 좋은 것만 보고 행동하는 사람이 많고 형편과 조건을 보지 않고 형편과 조건보다 하나님의 축복을 바라보는 아브라함의 걸음을 걷는 사람이 적습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이 적고 롯의 걸음을 걷는 롯의 자손이 많습니다.

현실에 세상적인 온갖 조건도 중대하지마는 이것보다는 하나님의 축복이 더욱더 크고 중대하고 인간의 공론과 여론도 중대하지마는 이것보다는 하나님의 주장이 더욱더 크고 중대합니다. 따라서 우리가 지금까지 어느 걸음을 걸어왔든지 아브라함의 걸음을 걸어왔는지 그렇지 아니하면 롯의 걸음을 걸어왔는지 여기에 대해서 한 번 심사해 보아야 합니다.  

아브라함의 걸음을 걸어왔으면 아브라함의 결과와 같은 것을 보게 될 것이요 롯의 걸음을 걸어왔으면 롯의 결과와 같은 것을 보게 될 것인데 롯의 결과는 어떤 것이고 하니 창14:12절에 보면 소돔에 전쟁이 일어났을 때에 포로가 되었고 재산도 다 빼앗겼다' 그런데 롯만이 포로가 된 것을 보면 롯의 수하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자기네들만 살겠다고 도망간 것을 알 수가 있는데 의리가 없는 사람들입니다. 이렇게 롯은 배신을 당했던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아브라함이 구하여 주지 아니했다고 하면 비참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또 창19:12절 이하에 보면 소돔성이 유황불비로 비참하게 멸망할 때 롯의 재산도 전멸되었고 롯의 아내는 소금기둥이 되었고 사위들도 비참하게 죽었고 마지막에는 자기 딸들과 근친상간을 하여 수치의 조상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축복을 무시하고 현실의 조건만 귀하게 여기고 하나님의 뜻을 버리고 인간의 주장을 따라서 간 롯의 결과는 사업실패 가정실패 자녀교육실패 신앙실패뿐이었습니다. 자기와 자기에게 속한 것이 완전히 실패였습니다.

그러나 눈앞에 보이는 현실의 좋은 조건과 인간의 주장보다 하나님의 축복과 하나님의 뜻을 더 귀중하게 여기고 거기에 따라서 산 아브라함의 결과는 어떠했는고 하니 재산적으로는 자기의 재산을 지키는 군인만 318명이나 될 만큼 큰 부자가 되었고 권세적으로는 5대강국이 이기지 못한 4대강국을 자기의 재산을 지키는 군인으로서 이겼고 가족적으로는 다 성자 성녀가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사라는 여인들의 표본이 되었습니다. 믿는 사람이 딸을 낳으면 '사라와 같은 여인이 되게 해달라'고 할만큼 성녀가 되었습니다.(벧전3:6) 그리고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부모에게 효도하는 성자였습니다.(창26:25 창22:9절 참조)  또 아브라함의 수하에 있는 종업원들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이였고 자기의 의무와 책임을 성실히 이행하는 사람이였습니다. (창24:10∼56절 참조)

따라서 세상 사람은 '장소가 좋다. 자본이 많다'고 하는 세상적인 조건만 보지마는 우리 믿는 사람은 그것을 보지 아니합니다. 첩첩 산중에도 의인이 될 수 있는 교육이 있고 물 없고 풀 없는 자산에도 부자가 되는 길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축복이라야 되지 현실의 조건이 하나님의 축복보다 앞서지 못한다고 하는 것을 믿고 하나님의 축복을 바라보면서 살았습니다. 아브라함은 자기의 집안 식구들과 종업원들이 소돔평야를 소원하고 그곳을 취하자고 주장했지마는 그 사람들의 소원과 주장을 용납하지 아니했습니다.

따라서 아브라함의 자손은 모든 사람들의 소원과 주장보다 하나님의 뜻을 앞세워 거기에 따라서 행동하고 세상적인 모든 조건보다 하나님의 축복을 앞세워 거기에 따라서 행동하는 사람이 아브라함의 자손입니다. 우리 믿는 사람은 아브라함과 같은 형편 처지 입장을 가지고 있으니 아브라함과 같은 걸음을 걸으면 아브라함과 같은 결과를 보게 됩니다.

그런데 요즘 믿는 사람들 가운데에는 '농촌에서는 살기가 힘이 드니까 도시로 가자 부산으로 서울로 가자 한국은 위험하니 미국으로 이민을 가자 이 직업을 가지고서는 안되겠으니 저 직업을 가지자'고 하는 사람이 많은데 이 사람을 롯의 자손으로서 롯의 길을 가는 사람인 것입니다.

이 길은 마귀가 주는 망하는 길입니다. 따라서 우리 믿는 사람이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축복이 있겠느냐'고 하는 이것을 생각하지 않고 하나님의 축복을 무시하고 세상적인 조건을 따라서 행동하면 또 하나님의 형편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자기나 어떤 인간의 형편 생각 일을 생각하고 거기에 맞추어서 행동하면 인간 농사는 실패요 하나님 앞에서 아무데도 쓸데가 없는 인물이 될 것이요 자기의 사업과 재산이 일시에는 일어날지라도 마지막에는 전멸입니다.

롯도 창19:12절 이하에 보면 롯의 아내는 남편과 천사의 말을 듣지 않고 뒤를 돌아보다가 소금기둥이 되었고 자녀교육을 잘시키겠다고 했는데 부녀가 상간하여 서로 간통을 하여 천추만대에 수치의 조상이 되게 하는 자녀로 만들고 말았던 것입니다. 큰 사업가가 되겠다고 했는데 빈손으로 입은 옷으로 도망하는 거지중에 거지가 되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롯의 말로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적인 조건보다 하나님의 축복을 더 귀하게 여기고 하나님의 축복에 따라서 살고 인간의 소원과 뜻과 형편보다 하나님의 뜻과 형편을 먼저 생각하고 거기에 맞추어서 산 아브라함은 망하고 실패할 줄 알았는데 사업이 대 성공하여 자기 사업에 종사하는 사람과 재산을 지키는 군인이 318명이나 되었고 아브라함의 가족들은 성자 성녀가 되었고 아브라함의 집에 있는 종들도 하나님의 경외하는 사람들이 되었던 것이니 사업도 대성공이요 자녀교육도 성공이였으니 이것이 아브라함의 결말입니다.

오늘도 교회 안에는 롯의 걸음을 걷다가 망해가지고 하나님 앞으로 돌아온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처럼 어릴 때부터 땅에 있는 조건보다 하나님의 축복을 앞세우고 인간의 뜻과 형편보다 하나님의 뜻과 형편을 앞세워서 거기에 따라서 사는 사람이 심히 적습니다.

따라서 지금 우리는 어떤 걸음을 걷고 있는지 죄를 지어서 얻은 재물 지장 지위 권세 사업 출세라고 하면 내어놓아야 합니다. 하나님과 진리를 집어 던져가면서 가진 것이라고 하면 아무리 좋은 것이라고 해도 크고 많은 것이라고 해도 집어 던져야 합니다. 그리하면 수치를 당하지 아니합니다.

그래서 사49:9절 이하에 보면 '잘못된 것을 깨닫고 회개하면 사업이 쉽게 성공되고 영육의 양식부자 인간부자가 되고 세상 권세가 자기에게 복종하고 원수를 전멸되게 해주겠다'고 말씀했습니다. 따라서 우리 성도가 사업에 성공하여 부자가 되는 것도 존귀하게 되는 것도 공산주의를 이기는 것도 영육이 복스럽게 되는 것도 금생과 내세가 복되는 것도 롯의 걸음을 걸은 것을 회개하고 아브라함의 걸음을 걷는 데에 있습니다.

진리를 깨달은 후에 롯의 걸음을 걸은 것으로 말미암아 얻은 것이 많든지 적든지 큰 것이든지 작은 것이든지 다 집어던지고 자기가 손해가 보고 낮아지고 천해져도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영광스럽게 되고 존귀해지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을 소원하고 이것을 위해서 살면 하나님은 얼마 안 가서 그 사람을 올리십니다. 하나님이 올리실 때에 방해할 세력이 없고 만일에 방해한다고 하면 깨여집니다.

따라서 우리는 높아지는 것이나 낮아지는 것이나 부요하게 되는 것이나 가난하게 되는 것에 상관하지 말고 하나님을 이해서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은 자기의 현실에서 신앙양심에게 감동시키는 대로 행하는 것인데 하나님을 위주로 해서 살지 않고 물질을 위주로 해서 살면 물질의 종이 되게 하여 천대와 멸시를 받게 되고 하나님을 위주로 해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면 물질의 주인이 되게 하고 존대를 받게 하고 두려움을 받게 합니다.

(주해공과)


창13:00

1. 신앙 노선의 계시

아브람과 롯은, 아브람은 우리의 믿음의 조상이요 롯은 또 믿음의 멸망의 조상입니다. 이래서 아브람과 롯을 창세기 12장으로부터 죽 기록해 가지고 나온 이것은 그 형편과 사정이 된 그 역사적인 현실이 우리에게 신앙 노선을, 신앙 노선을 계시해 주고 있는 계시입니다.  이는 예수 믿는 사람들의 신앙의 종류는 두 종류가 있으니, 신앙의 노선은 두 노선이 있으니 이 노선이 아니면 저 노선이요, 저 노선이 아니면 이 노선인데, 아브람이 택한 그 노선인 가나안은 지금도 세계에서 우러러 보기를 가나안을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롯이 택한 소돔들 사해는 온 세계를 전멸할 독약품이 그 속에 들어 있다고 말을 하는데 그것도 넓은 범위에서 이렇게 함축해 가지고 있는 것을 깊이 궁구하면 우리에게 중요한 것을 계시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자신이 아브람에게 속했는지, 아브람의 노선을 걷고 있는지 롯에게 속해서 롯의 노선을 걷고 있는지 스스로 비판을 해야 할 것입니다.


2. 죄로 인하여 마음이 상함

롯이 걸어간 그 걸음은 얼마 후에 그 소돔 고모라 성이 전쟁을 만나 가지고 전멸당한 것을 아브람이 한번 구출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래도 롯은 아브람에게로 회개하고 돌아오지를 안했습니다. 돌아오지 안한 것은 그 뒤에 유황불비가 내려왔을 때에 그때에 보면 롯의 형편이 어떻다는 것을 잘 알 수가 있습니다.

롯이 소돔 고모라 성이 그렇게 죄악으로 관영한 그 죄악을 인해서 의로운 롯의 마음을 상했다 하는 것을 기록했습니다. 아브람은 죄로 인해서 마음이 상한 있이 없습니다. 아브람은 그렇게 좁게 곧게 바른 길을 걷지마는 죄악으로 인해서 상한 일이 없었는데 롯은 의인이나 죄로 인해서 상한 일을 많이 봤기 때문에 롯의 의로운 마음을 상했다 이랬습니다.

그러기에, 자신이 그 죄에 동참했으면 그 죄로 말미암아 많은 상심을 가지게 되는 것이 그 상당한 보응으로 받는 것이오. 죄에 동참하지 안한 그 죄악은 땅 위에 아무리 많아도 그 죄로 인해서 자기는 회개 운동만 했으면 했지 그로 인해서 상함은 받지 않는다는 이 비밀도 우리가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 벧후2:8 : ...저희 중에 거하여 날마다 저 불법한 행실을 보고 들음으로 그 의로운 심령을 상하니라


3. 신앙의 노정

아브람과 롯은 가족끼리 시비하는 이 시비, 하나님이 축복을 많이 주셔서 그 축복이 풍성함을 인해서 일어나는 시비가 생겼던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여기에서 이는 우리 신앙의 근원이요 신앙의 근본 원인이 되는 하나의 갈래길이기 때문에 이 길을 예사로이 생각하면 안 됩니다.

아브람과 롯이 하나님을 따라서 모든 것을 정리하고 벧엘까지 왔으나 벧엘까지 오면 하나님이 축복해 주신다고 했지마는 축복보다는 그때에 아주 어려움을 당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근본의 신앙의 종자적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누구든지 신앙 걸음을 걸을 때에. 신앙 걸음 걷는 걸음은 하나님 앞에 다 축복받는 걸음인데 신앙 걸음을 걸으면 하나님의 축복보다도 먼저 어려움이라는 그 어려움을 만난다는 것을 우리가 기억해야 됩니다. 그러면, 어려움 만날 때에 어려움을 피해서, 애굽은 세상을 상징한 것인데, 신앙 생활이 어려우니까 어려움을 피해서 속화돼 가지고 세상으로 차차 차차 물들어 나가게 되면은 그 뒤는 크게 참 전멸 당할 수 있는 그런 일을 아브람이 당한 거와 같이 우리도 그런 일을 당한다는 것을 우리가 기억해야 되고, 그럴 때에 거기에서 하나님이 깨닫게 해 주시는 깨달음을 받고서 다시 벧엘로 회개하고 돌아갈 때에 그때에 도중에서 하나님이 큰 축복을 주신 것을 우리는 신앙 노정으로 삼아야 됩니다. 우리 신앙의 노정이 요와 같이, 길, 노정이 요와 같이 돼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4. 나 좋게 하랴 하나님 좋게 하랴

그러면,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난 다음에 이 두 사람에게 이런 어려움을 만나게 됐습니다. 이것이 그 두 사람에게 당한 현실입니다. 아브람이나 롯이나 똑 같은 현실을 만났는데 거기에서 첫째는, 하나님 좋게 하는 것보다 자기 좋게 하느냐, 자기 좋게 하는 것보다 하나님 좋게 하느냐 요것이 딱 걸렸습니다. 고 두 가족이 시비하는 시비의 고 시비를 분석해서, 고 속에 중심을 분석해서 발견하면은 요것에 딱 걸렸습니다.

롯도 하나님 기뻐하시도록 할라고 하면은 자기가 큰집에게 양보를 해야 되겠고. 또 자기 좋게 자기에게 속한 가족들 좋게, 고만 뭐 자기 가족들이고 뭐고 자기 좋게 하려고 하면 하나님을 섭섭하게 하는 소돔들을 자기가 차지해야 되겠고, 거기에서 하나님을 네가 좋게 하느냐, 하나님보다 너 좋게 하느냐 너보다 하나님 좋게 하느냐 요 두 가지 판단에 딱 봉착된 것이 요 두 사람의 만난 현실이었습니다.

그러면, 그 현실에서 롯도 아무래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 되지 나 좋도록 해서 되느냐, 아브람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 되지 나 좋도록 해서 되느냐 이렇게 많은 논단이 있었지마는 단순히 그것은 고렇게 결정될 수가 없고. 많은 가족들이 뒤에 따라서 웅얼거리고 있고, 또 많은 종업자 들이 뒤에서 웅얼거리고 있고 또 현재에 많은 가축들이 당장 가나안에 가면은 아무것도 먹일 게 없으니까 큰 난리가 나겠고 이런 어려움이 있으니까 롯은 그만 어려움을 못 견뎌서 아무래도 하나님 좋게 할라면 내가 삼촌한테 양보를 하고 내가 가나안을, 이 풀 없는 목축하기에 안 됐는 이곳을 차지하고 우리 큰집을 목축하기에 좋은 소돔 들을 이렇게 차지하도록 양보를 해야 되지마는, 이래야 하나님 기쁘시게 하는 것이 되겠고 하지마는 아무래도 이거 뭐 가족들이 있으니까 가족들이 이래 쌓아니까 어찌할 수 없고 종업자들이 이래 쌓아니까 할 수 없고 이렇게 육축들이 이래 쌓고 이렇게 지금 곤란을 당하고 있으니까 어짤 수 없다 해 가지고서 하나님 좋게 하는 것보다 자기 좋게 하는 길을 택했습니다.

요것이 롯의 걸음이고 아브람은 네가 좌하면 내가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내가 좌하겠다고 할 때는 벌써 시비해 가지고서 자기 마음에서 판정을 한 것입니다. 아무래도 나 좋도록 해서는 안 되겠고 하나님 좋도록 해야 되겠으니까 그저 롯이 원하는 대로, 만일 그래라 한다 하면은, 그래라 해 가지고서 네가 이리 가라 해 가지고 뒤에 망해 버리는 날이면은, 소돔들에 가서 망했으니까, 망해 버리고 나면은 '삼촌이 망할 줄 알고 공연히 이 소돔들을 차지하라 했다' 이렇게 말할 터이니까 이제 아브람이 소돔으로 가라 소리를 못 한다 그 말이오. 이러니까, '네가 좌하면 내가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내가 좌할 터이니까 네 좋은 대로 선택해라' 한 그것은 내가 좋은 것보다 하나님 좋아하는 대로 해야 되지 하나님 좋아하는 것보다 나 좋은 대로 해서는 안 된다 하는 고것을 판정해서 아브람은 결정했던 것입니다.

이래서 현실에서 나 좋은 것보다 하나님 좋아하시는 길을 내가 택해야 되겠다 아브람은 이랬고. 롯은 하나님 좋아하시는 길이 좋지마는 하나님 좋아하시는 길을 택할라 하면 나와 내 가족이 절단이 나고 가정이 시비가 나 가지고 망하고 큰 분쟁이 일어날 터이니까 할 수 없다 하면서 하나님이 좋아하는 길보다도 자기 좋아하는 그 길을 택한 것이 롯이 택한 걸음이었습니다.

이런고로, 우리는 어떤 현실이든지 현실에, 그 현실에는 깊이 심사하면 그 현실은 반드시 하나님보다 자기냐, 자기보다 하나님이냐 그 시비가 없는 현실은 없습니다.

제 눈이 어두워서 '이럴 때야 뭐 하나님보다 내냐 나 보다 하나님이냐 할 것 없이 두 길이 없고 한 길 뿐이라' 이라지마는 좀 깊이 들어가서 한 꺼풀 벗겨 보면은 거기에 하나님의 좋아하시는 길 자기 좋게 하는 길 그 두 길이 갈래길로 돼 가지고 있으니까 거기에서 우리는 멸망과 구원이 결정되는 줄을 알아야 합니다. 눈을 좀 멀리 보고 떠야 되고 멀리 못 보거든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행위의 등불이니까 말씀대로 우리는 모든 것을 비판하고 평가해야 됩니다.


5. 하나님의 뜻이냐 인간들의 뜻이냐

둘째로는, 이렇게 마구 시비가 일어나니까 롯에게 문제가 닥쳤습니다. 자, 하나님의 내가 뜻을 따라야 되겠느냐 이 모든 인간들의 뜻을 따라야 되겠느냐 어느 걸 따라야 되겠느냐 이것 때문에 많이 고민했고 아브람도 고민했습니다. 하다가, 롯은 '아무래도 이 가족들의 뜻과 이 모든 목장들의 뜻을 따라야 되겠다.

이 많은 사람들의 뜻을 따라, 내 혼자 고집대로 할 게 아니라 이 많은 사람을 따라야 되겠다.' 제 고집인가? 하나님 뜻 따르니까 만유의 대주재의 뜻인데, 그러기에 우리 현실에서 현실에서는 반드시 하나님의 뜻을 따르느냐 하나님의 뜻보다도 인간들의 뜻을 따르나느냐 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아브람은 자기와 사람들의 뜻보다 하나님의 뜻이 생명이니까 하나님의 뜻을 따라야지 이래서 자기 뜻도 인간 뜻도 다 버리고 하나님의 뜻을 따른 것이 아브람이었습니다.

우리가 현실을 당할 때는 가족들의 뜻, 직장의 직원들의 뜻, 상관들의 뜻, 사회 여론의 뜻, 국가 정권의 뜻 내나 그게 그거라. 현실에는 누구의 의사를 따르느냐 하는 그것이 우리에게 반드시 현실에는 봉착되고 있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제 단독의 제 개인 의사를 딿든지, 가족의 사를 딿든지 온 사회의 여론의 의사를 딿든지, 시대의 의사를 딿든지, 전 인류의 의사를 딿든지, 뭐 어떤 정권의 의사를 딿든지 어쨌든지 그거는 인간의 의사요 인간의 의사와 하나님 의사가 있으니 인간 의사를 버리지 안 하면 하나님 의사를 딿지 못하고, 하나님 의사를 버리지 않고는 인간 의사를 딿지 못하는 것이 우리가 닥친 고 현실의 이 기로를 가지고 있는 이 현실이라 하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아브람은 자기와 모든 사람들의 의사, 다수의 의사, 대대수의 의사, 세계가, 시대가 세계가, 세계 시대가 이렇게 말한다고 '시대가 이렇게 말한다. 온 세대가 이렇다. 시대가 이렇게 말한다' 한다고 거기에 따라서 가느냐, '하나님의 뜻이 뭐이냐' 은밀한 가운데서 하나님의 뜻이 뭐이냐 하나님의 뜻을 찾아 가지고 그 뜻을 따라서 갈라고 하는 사람이냐 이것이 우리의 기로입니다.

만약 하나님의 의사를 배반하고 인간 의사를 딿는 것은 현재에는 무슨 어려움이 없지마는 형통이 그것이 다 병이 돼 가지고서 전멸을 당하는 요 사실을 우리가 알아야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 현실에서 인간 의사와 하나님 의사 이 둘이 마주 서고 있을 때에 하나님 의사를 따르면 아브라함의 자손으로서 축복을 받고 자기나 인간 의사를 따르면 망한다 하는 요것을 알아야 됩니다.


6. 보이는 조건과 하나님의 축복의 대립

거기에 또 한 가지는 이 아브람과 롯이 둘이 시비할 때 보니까 가족들이 말하기를 '여보시오. 이 가나안은 지금 풀 한 포기도 없지 물도 없지, 저게서 무슨 목축을 한다 말입니까? 풀 없지 물 없지, 무슨 목축을 한다 말입니까? 소돔들에는 물 좋지 풀 좋지, 평지지, 얼마나 좋습니까?' 이럴 때에 롯은 '아, 암만 그래도, 좋지마는 하나님의 축복이 없으면 되겠느냐? 하나님의 축복이라야 되니까 그리 가야 축복을 받겠나 저리 가야 축복을 받겠나?' 이라는데 '아, 그래도 현재 풀이 없는데 뭘로 가지고 목축을 먹인다 말입니까? 당장 '지금 소고 낙타고 모두 다 못 먹어서 막 뻐들거리는데 어짤랍니까?' 이러니까, 롯은, 눈에 보이는 현재의 조건들이 소돔이 좋습니다. 현재에 조건 좋은 그 조건 좋은 조건의 가치와 하나님이 축복하시는 축복의 가치와 두 중량을 비교할 때에 '하나님의 축복 축복하지마는 그래도 조건이 좋아야 되지 조건이 좋지 않으면 되는가' 이래서 하나님의 축복 보다 좋은 조건을 택했고, 아브람은 '아무리 조건이 좋아도 하나님의 축복 없으면 안 된다' 이라니까 모든 좋은 조건보다 하나님의 축복을 크게 여겨서 조건보다 축복을 낫게 여겨서 택한 것이 아브람이었습니다.

* 창15:1 : ...아브람아 두려워 말라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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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로 기억할 것은, 우리가 현실을 만났을 때에 하나님의 그저 축복을 현실 만났으면 내가 이리 갈까 저리 갈까. 이렇게 처리할까 저렇게 처리할까. 내가 이 직장을 그만 둘까 직장을 그대로 할까 또 내가 오늘은 뭐 이 일을 할까 말까 하는 거기에는 잘못하면, 우리가 그 일만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 일을 위주로 해 가지고 그 일이 이래야 잘되나 저래야 잘되나. 이 일이 내 보기에 암만 잘돼 봤자 소용 없습니다. 하나님이 저주하면 무슨 소용 있습니까? 이러기 때문에, 우리는 보이는 모는 현실의 이런 조건 저런 조건 그것보다도 하나님의 축복이 어찌 되느냐. 하나님의 축복이 어떻게 되느냐, 그러면 우리는 축복 위주로 사는 이것을 자꾸 연습을 해야 되겠습니다. 조그만한 데서 연습을 해야 됩니다.

이래서, 다니엘이 일생 동안 노력한 것을 가만히 성경에 나타난 대로 보면 그 사람은 자기를 기르는 노력을 했습니다. 자기를 기르는 노력 그 기르는 노력이 그만 이 세 가지입니다. 세 가지. 그저 아무리 현실 좋은 현실이라도 사람이 그만 그 현실에, 좋은 현실 닥치니까 우쭐해 가지고서 정신을 못 차릴 만한 그런 좋은 현실을 만나도 그만 그 현실에 피동되지 안했어. 그 현실에 피동되지 안하고 거기에서 하나님의 축복을 살필라고 발을 딱 버투고 달라들었습니다. 언제든지 좋은 현실이나 나쁜 현실이나, 뭐 좋은 조건이나 나쁜 조건이나 그런 모든 사물의 조건 거기에 피동되지 안할라고 딱 발을 버투고 언제든지 '여기에서는 하나님의 축복 받을라면 어째야 되느냐?' 거기에서도 항상 하나님의 축복을 위주로 해 가지고서 움직이기를 연습했습니나. 눈에 보이는 모든 현실의 조건들 좋은, 좋은 조건을 따라서 움직이고, 나쁜 조건은 피하고 좋은 조건은 취하고 이렇게 하지를 안하고 조건 좋고 나쁜 데에 딿지 안하고 하나님의 축복이냐 저주냐 거기에 따라서 걷는 그 연습을 한 것이 다니엘의 일생 노력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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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뭣 때문에 롯과 아브라함이 시비하는데, 롯에게 양보한 것이 그렇게 중요한가? 그것은.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아들이 됐고 롯은 마귀의 자식이 됐습니다. 아브라함이 그렇게 하는 것은 화평케 하는 하나님의 아들인데. 주님은 화평을 위해서 십자가에 못박혀 화목의 제물이 되셨는데. 보이는 인간 버린 게 하나님 버린 거요. 인간을 귀중히 여기는 게 하나님을 귀중히 여기는 것이요, 하나님을 귀중히 여기면 일호로 귀중히 할 것은 인간 귀중이기 때문에, 인간을 귀중히 여기지 안했기 때문에 롯은 하나님을 배반한 것이라.

이러기 때문에, 어데든지 자기 현실에서 이렇게 자기보다 하나님, 인간의 모든 전론보다 하나님의 뜻. 보이는 모든 구비한 현실보다 하나님의 축복 요 세 가지는 변치 않는 방편이요 유일한 방편입니다. 어떻게 롯에게 양보하는 게 어떻게 하나님을 위하고. 하나님의 뜻을, 하나님의 축복을 바란게 되는가? 고것이, 롯을 위한 게 하나님을 위한 것이라. 롯을 귀중히 대접한 게 하나님을 귀중히 대접한 것이라. 고것이 하나님의 뜻이라.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먼저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모든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마7:12)말씀하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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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과 롯에 대한 그것이 우리에게 얼마나 간단명료하게 우리의 발의 등불이 되는지 모릅니다. 자기 현실에서 내냐 하나님이냐 거기서 나를 부인하고 하나님을 영접하고, 거기서 인간들의 모든 의사냐 하나님의 뜻이냐, 인간의 의사를 부인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 보이는 모든 조건들의 양호한 것이냐 하나님의 축복이냐 우리가 요 세 가지만 지키면 바른 길 얼마든지 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롯과 아브라함이 그렇게 한 것이 그것이 뭐가 하나님 섬기는 것이냐 그거 자꾸 억설로 해서 한 것이 아닌가 하나님께서 네가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했습니다. 그것이, 아브라함이 롯을 대우한 것이 하나님 대우한 것이요, 롯이 아브라함을 배척한 것이 그것이 하나님 배척입니다.

* 마5:9 :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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