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1:1-16
마태복음 1장 1절로 16절까지는 예수님의 족보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말씀은 처음 믿는 자에게 낙망을 줍니다. 또 믿는 자들도 예수님의 족보 기록한 것에 아무런 취미 붙이지 못하고 그냥 지나갑니다. 그 중에 의문되는 사실 하나 있습니다. 예수님의 계대가 14대씩 3세이니 42대만에 예수님이 탄생하셨습니다. 42대중 조상 중 전부 남자요, 여자의 이름은 네 명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중 다말은 자기의 시부를 속여서 아들을 낳았고 또 라합은 일생동안 기생노릇하던 자요, 또 룻은 남의 남편 취한 자입니다. 우리아의 아내는 전쟁 간 남편두고 다윗 취하여 아이 낳은 흉한 여인입니다. 어찌하여 예수님이 여기서 나셨을까? 하나님의 도는 죄인이라도 중심으로 회개하고 돌아오면 된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 여인들이 죄인이 아니고 의인으로 보십니다.
먼저 기억할 것은 지방마다 풍속이 다릅니다. 선은 하나님의 법과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세상법과 다릅니다. 공산주의와 민주주의가 다릅니다. (세상법)
고전 3:21 이하에 "만물이 다 너희에게 속했고 만물이 다 너를 위하여 있습니다." 이제까지 과거 모든 일은 신령한 이스라엘 백성 거울삼은 것입니다. 고전 10: 육체의 이스라엘의 걸어간 행적은 영적으로 걸어가는 우리의 거울입니다. 그들의 육체의 길은 영적으로 바꾸면
1. 다말 = 유다
마치 하나님은 야곱을 택하여 장자의 기업을 주려고 한 때에 이제 뱃속에서 쌍둥이로, 성경 말씀가운데 뒤에 나온 자가 장자 되리라고 했습니다. 장자 기업받기 위하여 아버지 속이고 밧단 아람으로 가는 길에 천사를 만난 것이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부친을 속이고 갔으니 천사가 나타났습니다.
히 12:16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있을까 두려워하라' 한끼 식물가지고 영원한 기업팔까 두렵다. 야곱을 통하여 유다를 통하여 이 구원을 계대 시키는 일과 구원 전달자로서 책임되어집니다. 그러므로 다말은 일찍부터 신앙을 가진 자입니다. 남편 엘에게 시집갔습니다. 시집가서 보니 엘이 악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엘을 쳐서 죽였습니다. 유대 나라 법에는 장자가 죽으면 그 형제(弟)가 남편 됩니다. 유대 나라는 가까운 친척과 결혼합니다. 하나님의 계대 이을 것을 보고 시집왔는데 남편 죽었으니 둘째 아들을 취하고 자기의 배를 통하여 만인간을 구원할 자를 낳으려 했는데 오난을 하나님이 쳐서 죽였습니다. 셋째 아들...
다말의 신앙은 온 세상이 우겨싸도 자기가 죽은 입장에서 서 있으나 다말은 내적 정욕적 이치가 아니오 다만 주의 뜻을 이루기 위한 일이니 천지가 운동하여도 담대하였습니다. 땅 위의 법들이 가정의 법, 사회의 법, 국가의 법, 민중의 법이 반대하여도 낙망하지 않고 담대하였습니다. 오히려 오난을 죽이되 다말을 하나님이 살렸습니다. 인륜과 도덕을 거스려서도 하나님의 뜻만 이루었으니 야욕이나 사욕이 아니오. 구주의 씨만 받아 전도(傳道)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구원을 받으려 할 때 반드시 인륜과 땅위에 있는 법들을 거스리고도 이 구원만 바라보지 않으면 이 구원얻지 못합니다. 오직 사욕과 야욕을 버렸으므로 담대하였던 것입니다. 생명을 내어놓은 이런 신앙을 가졌으므로 만인간의 구주가 다말의 뱃 속에서 났습니다. 오늘 우리의 구주가 여기서 났습니다. 오늘 우리가 환경과 주위가 협조하지 않는 때 많습니다. 오늘 우리의 구원에 손해되는 일 얼마나 많은가?
남한은 예수 믿는 자 거스리지 않으니 무슨 구원에 방해가 있나? 오늘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면서 순조롭게 되면 좋아하고 남은 힘가지고 주님 믿고 이것을 거스려 가면서 예수 믿는 자 적습니다. 이는 새 떼들이니 일정시 새 떼들이 날라오나 겨자씨 나무는 꼼짝않고 서서 있습니다. 육체의 고난없이 만족한 생활하려하는 이 기분 죽여야 합니다. 그래야 참 예수믿는 것입니다.
2. 기생라합
기생 라합은, 여리고 성에 이스라엘 정탐꾼을 보내었습니다. 그때 기생 라합에게 '네 집에 정탐꾼이 갔으니 잡아보내라'고 호령이 왔습니다. 그러나 이 라합은 정탐꾼을 이층 삼대 속에 숨겨주었습니다. 숨기고 말하기를 '내가 당신들을 숨겨줄 터이니.... 당신들을 줄로내려 줄터이니 달아나시오' 합니다. 또 약속하기를 '어려운 때 나를 도와달라'고 했습니다.
'붉은 줄을 달아놓고 기다리면 우리가 와서 여리고 성 전멸시킬 때 너만 구원시키겠다는 줄입니다.' 그러므로 이 여리고 성민 다 죽이고 여리고 성 멸망시킬 때 그 붉은 줄 내려놓은 라합의 집만 구원얻었습니다. 온 성민과 반대되는 고독의 걸음을 라합은 걸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하려면 고독의 걸음 걷지 못하면 안 됩니다. 아무리 하나님의 뜻인줄 아나 주위가 환경이 소란하면 이 길 걷지 못합니다.
기생 라합은 여리고 성 임금과 밀접합니다. 그러나 임금보다 하나님의 능력 큰 줄 알고 온 성민과 반대되는 이 길을 걸었습니다. 그는 온 성민의 비위 맞추면 하나님의 뜻 맞추지 못하고 성민의 뜻을 반대하고 하나님의 뜻을 받들었습니다. 붉은 줄을 치면 여리고 성과 반대되는 표라 하는 줄이었습니다. 여리고 성 사람보다 정탐꾼과 간통한 자라 하는 줄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도 이 줄을 걸자. 세상 사람과 반대요 하나님과 동행한 자 또 그 구원의 뜻만 맞추는 것이 라합입니다. 두 비유다.- 맞추치 못합니다. 마리아에게 구주 잉태는 생명내어 놓아서 되었습니다. 여리고 성의 기생 라합이 온 여리고 성민의 뜻을 순종하고 하나님의 뜻 따르면 얼마나 좋겠느냐? 마리아도 그러합니다. 예수님을 잘 믿는 줄 알고 보면 가정이 반대합니다. 이때는 가정과 합작한 후 예수 믿으라 합니다. 1계명 범하면 환난 없습니다. 예수 몰래 믿으려면 목사 마귀, 장로 마귀, 집사 마귀 다 있습니다. 기생 라합같이 생명내어 놓치 않으면 이 구원 위하여 환난 당합니다. 환난 당하면 생명내어 놓아야 예수 믿지 아니면 못 믿습니다.
3. 룻
룻은 이방 여인입니다. 라오미의 며느리입니다. 룻에게는 절망입니다. 이스라엘 사람에게 시집감은 이방 여인으로 유대인에게 시집감은 왕통(王統)을 낳으려고 시집간다고 성경에 말했습니다. 그러나 남편이 죽고 시동생도 죽었으니 할 수 없고 시부죽어 헛일이요, 아무리 해도 헛일입니다. 이는 절망가운데 있었습니다. 그러나 시모에게 '당신 가는데 나도 가고 당신의 하나님이 내 하나님이오 당신이 눕는 자리에 나도 눕겠소 했습니다.' 기어코 시모를 따라갔습니다. 가을에 보리 이삭을 주웠습니다. 보아스의 밭이었습니다. 시모가 '보아스는 살아있는가? 그는 그리스도를 계대할 자다' 보아스는 기생 라합의 자손입니다. 시모가 되었습니다.
룻은 절망에서 낙망 가지지 않고 절망에서 소망가지고 땅위에 호호양양한 희망이 있으나 절망 중 소망가지는자 통하여 하나님은 우리에게 구원보여 주십니다.
4. 밧세바
시 51:5 "내가 내 어머니가 죄중에서 잉태하였나이다." 죄악의 뿌리를 찾아 눈물로 침상을 적시고 요를 썩히었습니다. 일국의 왕으로 삼천궁녀를 거느리고 무슨 큰 범죄이냐. 이를 통하여 하나님의 뜻 이루기 위하여 한 가지 죄를 통하여 자기가 알지 못하는 죄를 발견시켜 눈물로 살았던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4장에 666은 멸한다고 했고 666의 표 받지 않는 자는 매매를 못합니다. 7은 하나님의 수요, 6은 세상주의 하나님 제2주의, 아무리 믿어도 하나님이 같이 하지 않고 평안도 없습니다. 아예 천국 제일주의 하나님 제일주의를 믿어야 됩니다.
오늘의 우리가 구원얻기 위하여 인간의 협조받기를 원하나 안됩니다. 라합은 생명걸어놓고 하나님의 비위 맞추고 룻은 절망중 소망가지고 나아갔고 우리아의 아내는 깊은 회개함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셨습니다. 룻이, 라합이, 다말이 이 길을 걸었으니 자신과 천하를 구원했습니다. 오늘 인본주의로 예수 믿는 자는 이 걸음에서 다 돌아섰습니다. 이 걸음걷다가 가정 깨어지고 인륜이 깨어지고 환경에서 반대 받습니다.
마태복음 10장에 그러므로 주님은 전쟁을 일으키러 왔다. 언제나 가까운데서 방해합니다. 오늘 다말과 룻과 라합과 밧세바, 이런 여인만이 구주를 낳아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마태복음의 계대도 이런 신앙을 통하여 구주가 난 것을 말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인륜, 도덕에 잡히면 꼼짝 못 합니다. 인륜과 도덕과 여리고 성민 뛰어나와야 합니다. 우리 앞에는 절망이 온다. 절망에서 소망과 은혜로 나아가라. 우리에게 죄를 찾았느냐? 절망말고 소망 가운데서 앞 길을 나아가라.
우리아의 아내가 범죄하였으나 그가 하나님 앞에 깊이 회개할 때 하나님은 그를 미쁘게 보사 그속에서 탄생케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땅 위에 생명 유지하고 하나님을 찾아가지 못한다고 보여주었습니다. 낙망 낙망 중에 절망을 해치고 암흑을 해치고 나아감이 우리의 길이요 우리의 지은 범죄가 문제가 아니오 깊은 회개가 문제입니다.
(56052701)
1. 다말은 모든 도덕과 인륜에, 역사, 주위와 환경의 대적을 극복하고 하나님의 구원을 바라보았습니다. 모든 땅 위의 인륜과 도덕, 모든 땅위의 인륜과 도덕, 모든 인간으로 말미암아 환경의 대적을 극복하고 주를 바라보았습니다. 아무리 주를 바라본다고 하나 인륜과 도덕 끊치 않으면 주를 참 믿지 못합니다. 사렙다 과부가 참주를 바라보지 못하면...
이 다말은 인륜과 도덕을 극복뿐만 아니라 거슬리는 구원도 달게 받았습니다. 도덕과 인륜은 인간으로 말미암은 노력이 있습니다. 모든 사람을 다 버려야 주를 따릅니다. 이것이 아니고는 주를 따르지 못합니다. 일계명 지키지 않는 자에게 환난이 없습니다. 깊은 속에 왕이 들어있는데 깨뜨릴 필요가 무엇입니까? 조금 신앙 생활하려는 자는 일이 일어납니다. 예수님 버리면 가정, 사회에서 칭찬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면 모시면 땅 위에 어려움이 있습니다. 이 다말과 같이 인간이 구원 막아도 거슬립니다. 이 구원을 바라보았습니다. 유대 여인중 넷 사람이 기록되어 있습니다.(죄인)
2. 온 성민(여리고 城民=세상 사람)이 반대하나 이 여인(라합)은 이 걸음 걸었습니다. 하나님의 보호 믿으니 특수 은혜 받았습니다. 인간의 비위 맞추면 하나님의 비위 맞추지 못합니다. 어찌 인간의 뜻과 하나님의 뜻을 맞추겠느냐? 온 성민의 뜻은 좌하나 하나님의 뜻은 우하는데 성민의 반대 받으나 하나님의 뜻을 순종한 것이 기생 라합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뜻 순종하고 숨기지 못하였습니다. 모든 사람이 알기, 자기의 집 문에 붉은 줄 쳐놓고 주의 구원을 기다렸던 것입니다. 문설주에 피를 바를 때 주의 피를 상징하고 문설주에 붉은 줄을 쳤을 때에 이 집을 구원하였던 것입니다.
3. 룻에게는 한 걸음 버리면 온 행복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제 절망된 나를 따라오지 말고 호호양양한 세상을 따라가면 잘 살겠으나 어머니를 따라가니(절망 절망 중에 있는) 이것을 들고 하나님은 예수님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이 사람을 들어 당신의 몸을 맡겨 성전삼기 기뻐 했습니다.
4. 우리아의 아내는 다윗으로 더불어 협동하여 남편을 죽였으니 얼마나 그 죄가 큽니까?
시6:6, 시51:5- 자기의 발견치 못한 원죄까지 고할 때 하나님은 기뻐하셨습니다. 표현되지 않은 죄악을 찾을 때에 하나님은 기뻐하시고 구주를 주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신부될 자격은 이 네 사람이라야 합니다. 성경에 아브라함은 신앙의 씨요, 신앙은 행함 속에서 자랍니다. 아브라함의 씨가 하갈에게 들어있을 때 가나안 주지 않고 사라에게 그 씨가 심겼을 때에 가나안 주었습니다.
어떤 씨가 자랄 것입니까? 다말, 룻, 라합, 밧세바의 행동 이 네 가지 자라야 비로소 그 신앙이 자랍니다. 인간이 그 사람은 보지 못하나 하나님은 그 사람은 아십니다.
7수이라야 하나님은 합격이라 하십니다. 666은 안된다. 하나님은 7이라야 합니다. 모든 것 버리지 않고 예수님보다 더 사랑하는 자, 높이는 자, 욕망가진 자, 이는 제2주의입니다. 그러므로 옛날부터 하나님과 함께 하는 자. 오늘 본인의 신앙 생활보이지 않습니다. 사람보기에는 구비한데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중심을 아시니 죄인과 같이 하십니다. 다말은 버려서 만고의 죄인으로 들어내어야 할 터인데 만고의 의인으로 하나님은 들어셨습니다.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 룻, 라합, 다말은 죄인 중에 죄인이나 그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은 들어서 쓰셨습니다.
(56052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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