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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요약  
■ 성경:40마태복음07:07-12
 

마7:7-12

구하라 하신 말씀은 기도하라는 말씀과 같은 말입니다. 기도는 내 뜻을 이루려 함이 아니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 하는 것이 기도의 원리입니다. 그러므로 기도는 하나님에게 유일의 즐거움이 되어지므로 향이라 했습니다.

성도들에게 있어서는 모든 악취같은 죄악을 제거하는 것같이 되어지므로 향이라 합니다. 제삼자에게 구원 전달되어지므로 향이라 하는 것입니다. 특별히 향이라 하는 것은 예수님과 성도들과 가장 밀접한 관계인 신랑과 신부의 관계를 가리켜서 말씀함이니 다시 말하면 하나님과 성도와 가장 밀접한 면에서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도에서 맺어지는 보배는
1. 하나님과 밀접해지는 것입니다.
2. 그 형상을 닮는 것입니다.
3. 하늘나라의 영광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행함으로 하늘나라의 영광이 이루어지는 것보다 기도하여 이루어지는 것이 더 많습니다. 그는 주님께서는 구하는대로 주시마 하셨고 또 연대의 선지사도들이 기도한 것은 신앙이 높아갈수록 땅의 것 구하는것보다 하늘의 것 구한 것이 많습니다. 그들이 구하는 것이 땅에서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하늘에서 이루어져야만 확실합니다.

4. 땅에서도 연약한 신앙이 확신을 얻을 수 있는 증거입니다. (기도하여 이루어질 때 확신이 자랍니다.)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그 면에 확인 얻지 못합니다. 어려운 문제 있을 때 구하면 하나님이 지혜 주십니다.

이 지혜는 특히 기도하려는 자에게 주시고 기도하는 가운데서 완전한 지식을 얻게 됩니다.
그러므로 기도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의 뜻을 구별할 수 없고 기도하는 가운데서 기도의 시작의 때와 결국은 자신이 정반대의 사람이 되어지는 수가 많습니다. 처음에는 주시오 하는 자가 장기간 기도 가운데서 주는 것보다 안 주는 것이 감사하다고 기도할 수도 있고 성공하기 위하여 기도하는 것이 성공되지 않는 것이 더 좋다고 기도할 수가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러므로 기도는 땅위에 있는 성도들에 신앙생활에 내속에 있는 확신을 자라게 하는 증거를 얻게 됩니다. 구하여 얻어서 확신에 증거가 되는 수가 있고 하나님의 그 완전한 사랑과 온전한 지혜로 나에게 부조함이 없는 섭리를 스스로 오해하던 자리에서 기도함으로 이해하여 원망이 감사로 변하여 범사에 확신과 소망을 가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도하여 땅위에서 이루어지는 것은 하늘나라의 준비요소와 역할이 되는 것이요 영원히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기도에 있어서
A. 평소에 기도가 있습니다.
   1. 요셉의 옥중에서 참기까지의 그 생활은 평상기도입니다.
       인과응보율(律)로 이해 못한 역경에서 소망으로 인내함의 기도였습니다.
   2. 이삭이 모든 시험을 인내하여 나가는 것이 평상 기도입니다. 이 기도가 제일 유력한 기도입
       니다. 이삭은 물질에 대한 역경에서도 인내하는 기도였습니다.
   3. 다니엘의 불굴의 신앙을 일생동안 가졌던 것이 평상기도입니다. 다니엘은 적이 많은 역경에
      서 불굴의 인내함을 그 생활이 기도였습니다. 그들의 일생동안 이렇게 역경에서 인내하며 근
      신하며 전진한 것은 큰 소망을 가졌던 것입니다.

구원에 대한 큰 소원을 가지고 일생동안 떨고 지냈습니다. 이 기도는 일생동안 전인격과 그 생활이 경존하였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 기도를 해야겠습니다. 그러므로 아침부터 저녁까지의 신자의 생활은 기도뿐입니다. 그 연고는 기도로만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온 지체는 기도의 기관이 되어야겠습니다.


B. 특수기도
변화산에서 내려오셨을 때에 주님이 기도하지 않고는 이런 귀신이 이런 류가 나가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행12: 베드로가 체포되었을 대에 모든 무리들은 단결하여 기도하였습니다. 이런 기도는 현재의 어려운 문제를 면키 위한 기도입니다. 이 기도는 직접 유익은 없고 간접 유익입니다. 즉 직접 하늘나라에는 상관없고 하늘나라 준비재료가 되는 세상에 있어서 유익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기도를 우리는 해야겠습니다. 오늘의 실패는 영원한 장래의 원인이 되는 원인이 실패이므로 이 기도 해야합니다.


C. 미래의 환난 위해 기도해야겠습니다.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시험에 들지 않게 기도하라 하신 것은 그 익일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제자들이 공포와 비겁에 눌려서 회개하여야될 그 좋지 못한 점을 이룰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기도할만한 그런 자격이 없었습니다. 그 때에 주님의 기도는 두가지의 요소였습니다.

모든 억울함에 함구하실 것과 고문과 고행 가운데에 처하심과 십자가상에서 죽으심을 느끼면서 기도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그 가운데에 현재 머무시면서 (그런 어려운 일 당하시기 몇 시간 전에 믿음으로 현재에 당하고 있는 그 상태에서 기도하셨다.) 기도하셨습니다. 그 상태는 타인이 하여줄 터인데 억울함, 고행, 고문도 타인이 해 줄 것인데 당할 필요 없고, 죽음도 그러합니다.

그런 이유는
1. 있는 능력(주관능력)을 쓰지 않기 위해 기도한 것이요
2. 없는 능력을 쓰기 위해서 기도했던 것입니다. (객관의 하나님의 능력)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도 일생의 생활은 이 세가지 종류의 기도로서만 전진할 수 있습니다. 이 기도가 없이는 전진도 못할뿐만 아니라 신앙생활한다면서 하나님의 노를 격발케 하는 것과 저주를 저축하는 외에 아무것도 없습니다.

평상시의 "요셉"같은 기도와 이미 입고 있는 피해를 벗어나기 위한 현재의 특수기도와 미래의 난제를 위한 환난의 기도를 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우리도 앞으로 회개하지 않을 일을 하지 않으려면 지금 환난중에 내가 살아야겠습니다.

지금 환난중에 살면 자연적으로 있는 능력 쓰지 않기 위하여 없는 능력 쓰기 위하여 기도 나옵니다. 기독교는 두 길 뿐이니 이길 것은 주님 길이니 승리하고 그 길 반대는 베드로의 길이니 반드시 회개할 것입니다. 이 두가지 기도뿐입니다. 기도해야 될 때가 왔습니다.

(55042030)


(진실되이 주를 찾으라)
7-8절에 이중으로 말씀하신 것같이 보여집니다. 그러나 그 내용은 아주 다릅니다. 7절은 명령하신 것이요 8절은 확실히 이루어질 것을 보증하는 말씀입니다.

9-11절까지는 인간의 사랑과 하나님의 사랑을 비교하여 인간의 사랑도 그 일이 이루어지거든 하물며 하나님의 사랑으로야 더욱이 이루어질 것이 아니냐 하는 것을 인간의 사랑만치 하나님의 사랑을 믿어드리지 못하는데 대하여 경계하여 하는 교훈입니다.

12절은 이루어지는 절정을 표준한 것입니다. 이루어지면 얼마나 이루어지겠느냐 하는 최고절정의 표준을 가리켜서 이와 같이 이루어진다. 다시 말하면 내 자신이 모든 이웃에게 대하여 어떤 사람이 되어졌으면 좋겠다 하는 다시 말하면 내 생각의 최고적인 이상의 인격, 그 인격이 이루어진다 하는 말씀입니다
.
이것이 율법과 선지자가 가르치는 이상입니다. 율법이 가리키는 이상(理想)한 인격이 이루어집니다. 다시 말하면 성경에서 가장 이상적인 그 인격을 표현했는데 그 인격을 가지게 됩니다. 그 인격은 곧 그리스도이니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를 닮을 수 있다 하는 말입니다. 그러면 이런 은혜가 이루어지는 방법 셋을 논하였는데

1. 구하라, 주실 것이요,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이것은 그리스도에게 소속된 모든 소유 그리스도에게서 얻어 내가 가질 모든 기업들이 다 세상으로 말하면 재물보물 같은 것

2.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찾으라고 명했지만 찾지 않는 자는 못 만난단 말입니다. 이는 그리스도와 나와 하나되는 연결을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성화입니다. 제일 중요한 것입니다. 영교입니다. 신령한 지위입니다. 이는 영원한 나라의 지위입니다. 천국에서 영원한 나라에 소속된 지위가 오늘 세상에서 찾는 자에게 결정됩니다. 귀한 지위입니다. 한국은 불행이면서 행복입니다. 한국같이 없으면서도 배짱이 좋은 것 없고 타국은 한국같이 지위의 권세가 없습니다. 국회 하나 당선되도 있는 자본 다 넣어도 몇십배를 얻게 됩니다. 그 지위의 세력이 얼마나 큰지 의례히 뇌물이 정가되어 있습니다. 지위에 크게 권세 있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없어질 것도 이렇게 좋거든 하늘나라 가서 영원한 권세는 얼마나 좋겠느냐? 지위보다 인격이 잘난 것이 더 좋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인격의 지위를 얻는 것이 얼마나 귀하겠느냐? 그러므로 찾으라.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찾으면 그리스도의 인격 발견됩니다. 예수님을 찾는 것입니다. 찾고 또 찾고 한 번 찾으면 또 새로운 주님 또 새 예수님 만나게 되며 평생 찾아도 다 찾지 못합니다. 찾으면 원하게 되고 원할 때에 나에게 성화가 이루어집니다.

3.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열릴 것이니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이는 주님이 세상에서 거처하시던 골방이요 곧 믿음의 세계요 소망의 세계요 사랑의 세계입니다. 믿음의 세계이기 때문에 믿음 없는 사람은 구경 못했고 소망의 세계이기 때문에 어리석게 빼앗기는 소망없는 사람은 몰랐습니다. 그 희생하는 사랑이 모든 것을 정복하는 세력이었건만 가져보지 못한 사람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이제 여기서 중대한 문제는 실행을 말합니다.

구하는 이마다 논리와 상상이 아니란 말입니다. 실제로 구하는 이마나 두드리는 이에게 현재사입니다. 이것도 실행입니다. 두드리는 자에게 찾는 이가 이것도 현재사입니다. 이제 8절은 다 현재사(現在詞)로 되어 있습니다. 구하는 이에게 찾는 이에게 두드리는 이에게 여기 대하여 기독자로서 구하지 아니한 자가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구하고 얻지 못한 사람이 없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에는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데 대하여 이 정한 표준이 있는 것 기억해야 되겠습니다. 한 번 구하면 줄는지? 두 번 구하면 줄는지? 세상에도 모든 것이 다 그러합니다.

얼마 이상은 합격이다 하는 것처럼 여기도 일정한 한정이 되어 있는 줄 압니다. 그러므로 여기는 어떤 표준 가지며 그 표준을 누가 정했을까? 물론 얻는 자가 정한 것은 아닙니다. 물론 얻을 자가 정한 것은 아닙니다. 줄자가 정했든지 그렇지 않으면 이 말씀을 하신 이가 정했든지 그 둘 중에 정할 수 있습니다. 주실 이도 하나님이시오 말씀하신 이도 하나님이시니 그 표준을 정하신 이도 하나님이심이 분명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보실 때에 구하는 자로 인정이 되어야겠고 찾고 두드리는 자로 인정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입설에서 유혹을 받거나 일시의 감정에 행동에 미혹을 받으시는 그런 하나님은 아니십니다. 오늘 벌써 내일의 내 행동을 다 아십니다. 오늘 구하나 내일에는 박찰 사람인 것도 아십니다. 오늘은 필요있어 구하나 내일은 필요없어 박찰 자인 것도 주님은 아십니다. 또 그 말로는 아무리 구할지라도 그 중심에 구함이 없는 것도 주님은 아십니다. 이것은 부속물로 혹은 자기의 유희물로 가지고 노는 것으로 주실 것은 아닙니다.

이것은 인생에게 있어서 최대의 최귀의 세 보배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에는 최대의 간구와 최대의 탐색과 최대의 노력을 하여야만 그 구하는 것을 가치를 아는 사람입니다.

8절에 "마다" 하는 말은 구하고 얻지 못한 사람은 하나도 없다는 말입니다. 이 말씀은 다시 말하면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한 증거라. 구하였다고 하면 하나님이 인정하실 수 있는 진실에 구함이 아니라 하는 말입니다. 주님은 하나님이십니다. 창조주십니다. 시은자십니다. 은혜 베푸시는 이런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면 그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겠느냐? 창조주니 그에게 지음받기를 원하는 것과 그에게 얻기를 원하는 하나님이십니다. 인생의 의무가 무엇이뇨? 하나님에게 얻어서 가지려 하는 것이 인생의 의무입니다 .무리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에게 구하라. 반드시 주시리라. 오늘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도 우리 자신들이 행복되는 것도 전체는 당신에게 얻으려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인생의 최대의 의입니다. 그러므로 인생이 하나님 앞에 바치는 일이 있을지라도 내 것 가지고 그에게 드려서 유익하도록 한다고 하면 월권이요 가증스럽습니다.

창조주의 지위를 가로채려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주의 것인 줄 알고 또 앞으로 더 얻기 위하여 드리는 그것이 인색이 아니고 의입니다. 무슨 이유로? 첫째는 내가 당신에게 얻어서 드려야 당신을 기쁘시게 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에 대하여 당신이 아니면 죽고 당신이면 산다 하는 것이 그것이 의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참 구하는 자, 참 찾는 자, 참 문을 두드리는 자, 이것이 되어야 할 터인데 내가 구하는 그 모든 것이 성품으로 마음으로 내 지혜로 구하는 힘, 찾는 힘, 두드리는 힘 내기에 제일 귀한 주력을 주께 기울이느냐? 이것을 주님에게 기울이지 않고 땅위의 것을 구하고 찌꺼기 가지고 구하니 그것이 죄란 말입니다. 단연 내가 내 재물을 얻기 위함같이 상비하고 있는 것처럼 주력 가렸느냐? 내 조그마한 내 생활만치도 주력을 주께 기울였느냐? 이제 구하는, 찾는 주력이 어디 기울여 있느냐?


공부하는 사람이면 공부하는 것만치 주력으로 구했느냐? 주부이면 네 가정의 행복을 구하는 이만치 주께 주력하여 구하였던가?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입니다. 구하는 이는 입설에 있지 않습니다. 일시 감동으로는 아무 일이 없으니 구하다가 말 한마디에 던지고 감정만 네 비위에 맞지 않아도 던지는 그렇게 가볍게 구하는 그런 보배는 아닙니다. 그렇게 가볍게 구하는데 주실 이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1. 내가 구하는데 상비적으로 구하고    2. 간절적으로 구하고    3. 내 지혜와 정성과 힘이 (합력) 이것들의 주력이 이 세가지를 얻기 위하여 기울여지는지? 거기 대하여 기도할 것입니다. 우리는 너무도 외식의 도군(道軍)입니다. 얼마나 부업적으로 신앙하는가? 내 몸, 내 가정, 입신양명보다 내 가정문제 해결보다 더 주력해야 합니다. 내 자녀 양육보다 이 세가지를 더 주력해야 합니다. 결코 부업적으로 구해서 되는 일이 아닙니다.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않은 탓입니다.

(57010600)


1. 기도는 그리스도의 공로로 하나님의 자녀된 자가 하나님으로 더불어 의논하며 좋고 나쁜 모든 것을 하나님으로 인하여 잘 해결하고 승화하는 유일한 교제 방편입니다. 기도가 없이는 하나님과 교제함이나 의논함이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1)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일의 시작에 기도로 하였으니 곧 마 4:1- 40일 동안 단식기도를 하였고

2) 매일 생활에도 막 1:35에 오히려 새벽 미명에 일어나 가셔서 한적한 곳에서 기도 하셨습니다. 하루의 일과의 첫 시간을 아버지와 의논하는 기도로 시작하셨고

3) 가다가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따로 산에 올라가셔서 밤이 맞도록 기도하시는 이 기도로 어려움 들을 매꾸어 나갔고 또 해결했고 승리와 성공을 이루셨습니다.

4) 행사가 있을 때마다 기도로 그 일을 이루셨으니 요 11:410- 이하 나사로를 살릴 때 또 겟세마네 동산에서 십자가 대속을 이루시고 눅 22:41- 전심 전력을 기울여 기도하셨고 힘이 모자라 아버지에게 간구하여 천사를 보내 그 도움을 힘입어 기도의 완성을 이루셨음으로 완전한 대속을 이루셨습니다.
히 5:7 심한 통곡의 간구로 기도하였음으로 아버지가 그 기도를 들으시고 이루어주셨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기도로 일하는 사람이 되자

(76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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