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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요약  
■ 성경:42누가복음19:11-27
 

눅19:11-27

1. 므나 비유를 말씀하신 동기는 천국과 행복이 당장에 이루어질지 아는 기독자를 바로 깨닫게 하기 위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천국은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로 가는 것입니다. 그 영광을 누리고 기쁨을 가진 것은 자체의 성화와 수고가 섞여 있어야 본인으로서 누리고 가질 수 있게 됨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성화되지 못한 옛 사람은 교회 생활보다 세상 생활이 재미있고 악인은 악인의 생활이 의인의 생활 보다 취미 있는 것과 같이 천국도 그러한 것입니다. 오늘에 자체 성화와 하나님의 역사에 동참 수고가 있어야 천국을 자기 천국으로 누리게 됩니ㅣ다.

므나는 믿음의 씨입니다. 믿음은 위로 하나님에게 다스림을 받고 아래로 자기 현실을 다스리는 것입니다. 이것을 점점 연습하면 믿음 생활이 익숙하고 장성해 집니다. 믿음이 어린것은 하나님에게 통치 받음이 빈약하고 만물통치가 빈약하다는 말입니다. 열 므나 남긴 자는 하나님의 통치를 완전히 받고 자리 세상 통치를 완전히 한 자를 비유합니다. 한 므나도 남기지 않은 자는 주님에게 대한 인식이 잘못되어 세상 권력자와 같이 생각함으로 믿음생활을 하지 않고 세상 사람 생활함과 같이 생활한 자이니 천국 가서도 하나님과 동행이 하나도 없고 만물 통치가 하나도 없는 무용의 존재로 영존 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여기에 큰 뜻은 한 므나는 장정 하루 품삯입니다. 하루 품삯인 한 므나에 예수님이 오셨을 때는 한 고을 권세를 주신다고 했습니다. 이는 므나의 가치가 억억만배로 폭등한 샘입니다. 이와 같이 이 세상에서 믿음 가진 이 믿음의 천국대우는 억억 만 배도 더 되는 배율로 영원한 보상이 되는 이 사실을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오늘의 사소한 복종은 무궁세계의 지극히 큰 복종 지극히 큰 통치 지극히 큰 봉사와 시은이 된다. 이것을 마련하는 것이 기독자의 믿음을 기르는 것입니다.

(770731)


어떤 사람은 하나님과 영이 연결됐지만 마음과 몸은 연결이 됐다가 떨어졌다가 됐다 떨어졌다가 이래서 이 심신은 한번도 연결 못하고 천국 간 사람들도 있고, 어떤 사람은 또 잠깐 이래 연결하고 간 사람도 있고. 잠깐 연결하고 간 사람은 잠깐 연결됐기 때문에 연결된 고 심신만 살았지 다른 것은 살지 못했기 때문에, 부활이야 뚱뚱한 몸으로 이래 부활 다 됩니다. 부활이 되지만 고 부활의 기능이라 하는, 마음의 기능이라든지 몸의 기능이라든지 그 기능은 연결이 한번도 못 됐으면 부활은 하지만 기능은 하나도 없습니다. 기능은 하나도 없습니다. 몸은 있어도 기능은 없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부활을 하지만 주님과의 연결된 기능은 하나도 없는 사람으로서 부활된 사람이 있고, 연결의 기능이 조금 있는 사람으로 부활하는 사람이 있고, 그 연결의 기능이 많은 사람 있고, 그러니까 주님과 연결된 고 기능만 천국 가 가지고 역사하지 딴 거는 못 합니다. 이 세상에 첫째 아담에게 속한 기능은 역사하지 못하기 때문에, 연결된 기능으로만 천국에 역사하니까 천국 가 가지고 부활은 했지만 천국의 일은, 하나님에게 피동 되는 그 일은 하나도 할 수 없는 사람 있고, 아주 참 눈곱만큼 조금 하는 사람이 있고, 하나님이 동하면 동하고 정하면 정하는 것을 다 하는 사람이 있고, 이러니까, 하늘나라에 가서 많은 하나님의 수종을 들고 많이 하나님에 피동이 되어서 많은 것을 관할할 수가 있고 적은 것을 관할할 수 있습니다.

이래서 '한 므나를 만들면 한 고을을 준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 말은 하나님에게 피동 된 그 기능을 말하는 것인데, 비유입니다. 하나님께 피동 된 기능이 하나가 되면 한 고을을 통치할 수 있고, 둘이 되면 두 고을을 통치할 수가 있다. 요렇게 하나님께 피동 되는, 요 접선으로 피동 되는 요 기능이 많고 적은 그것으로써 하늘나라에 하나님께 많이 필요한 사람 적게 필요한 사람, 하늘나라에서 실상 구속만 받았지 하나도 필요 없는 사람. 하나님께 필요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하나님이 무슨 일에 필요합니까? 하나님이 모든 피조물들에게 은혜를 베푸는 그 역사에 필요한 하나님께 필요한 사람이니까, 피조물에게 필요한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무슨 일 시키느냐 하면, 하나님이 모든 피조물에게 충만케 하지 않습니까? 그분 아니면 피조물이 다 죽지 않습니까? 망하지 않습니까? 그러면, 하나님의 하시는 하나님의 그 무형의 존재에서 모든 유형의 존재들이 살 수 있는 그 모든 것이 은혜로 나오는데, 은혜로 나오는 그 은혜에 피동 되어 가지고 피조물들에게 전달하는 것이니까 피조물들에게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 하나 필요한 사람은 피조물에게 뭐 필요합니까? 하나 필요합니다. 열 필요한 사람 열 필요합니다.

그러면, 한 므나는 어떤 것인가? 한 므나는 하루 품삯입니다. 하루 품삯인데. 한 므나를 남긴 사람은 한 고을을 차지하게 됩니다. 그것을 해석하기를 2가지로 해석합니다. 하루 동안을 연결이 끊어지지 안 했으면, 하루 연결에 하늘나라에서는 한 고을 통치의 한 고을에게 은총을 베풀 만한 그 만한 능력을 얻는다고 그렇게 해석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리고 한 므나는 하나님에게 한 복종을 했으면, 하나님에게 어떤 자기의 현실 지나가는데 그 한 현실을 하나님에게 복종했으면 한 므나를 남긴 것이 된다고 합니다. 박윤선 목사님은 이것을 취해서 해석한 것 같습니다. 그분은 '하나님에게 순종한 그 지극히 작은 한 의가 어떻게 큰   일을 할지 우리는 그것을 모른다.' 그렇게 말합니다. 이것은 바로 깨닫고 바로 증거한 것입니다. 그는 한 현실에서 연결된 고 연결이 그 결과로서 얼마나 확대되고 얼마나 필요하고 중요한 그 원인이 되는지 모른다, 하나님과 연결이 되는지 모른다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현실에서 그 명령을 지켜 행하는 것은 하나님과 연결되는 걸 가리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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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기본구원은 영이 구원 얻는 것인데, 사람들 마다 꼭 같습니다. 사도 바울의 기본구원이나 아브라함의 기본구원이나 내 기본구원이나 꼭 같습니다. 즉, 하늘나라의 시민권도 꼭 같고, 영생도 꼭 같고, 하나님의 아들된 것도 꼭 같고, 부활할 것도 꼭 같습니다.

그런데 이 심신의 구원이라 하는 건설구원에서 차이가 납니다. 다 같이 하늘나라에 가서 살기는 사는데, 그의 실력이 다르고, 일하는 사역, 활동이 다릅니다. 그것을 그저 알아듣기 쉽게 표시해서 '한 고을을 다스린다, 두 고을을 다스린다, 열 고을을 다스린다.' 그렇게 말을 했습니다. 그리고 사역이 다르니까 대우가 다릅니다. 대우가 다른 것은 영광이 다르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존귀하게 여기시고, 또, 모든 피조물들이 우리를 평가해서 다 호평을 가지고 우리에게 감사하는 것이 영광인데, 그것은 우리의 사역이 다른 데서 나왔습니다. 사역이 적으면 적고, 사역이 크면 크고, 그 사역으로 말미암아 그 혜택을 입은 존재가 아니면 거기 대해서 영광을 돌릴 리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내 사역이 한 사람에게만 가고 두 사람에게 못 가는 것도 있고, 내 사역이 천 사람에게 가는 것도 있고, 내 사역이 인류에게만 가고 그 다른 데 못 가는 것도 있고, 내 사역이 인류와 모든 영물과 모든 피조물들에게 다 갈 수도 있고, 이는 사역에 따라서 그 영광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역은 어디에 따라서 달라지나? 사역은 자기의 실력에 따라서 달라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부활한 사람의 실력 차이는 얼마나 차이가 있으며, 부활한 사람의 활동의 차이는 얼마나 차이가 있으며, 부활한 사람이 모든 인간과 하나님과 모든 존재들에게 환영 받는 그 영광의 차이는 얼마나 차이가 있느냐 하는 그 차이를 고린도전서 15 장에 '형체는 다 같은 형체이지만 서도 형체마다 그 영광을 가지고 있는 것인데, 그 형체의 영광이 차이가 있는데, 땅에 있는 형체도 있고, 하늘에 속한 형체도 있고, 하늘에 속한 것, 별의 형체도 있고, 달의 형체도 있고, 해의 형체도 있다.'(고전15:39-41)

그러면, 땅 위에 있는 모래알 그것도 한 형체라 말입니다. 우리가 해수욕 갈 때, 모래알 그 하나도 전부 형체 가지고 있는 것인데, 그 형체와 하늘의 태양 한 개와 그 형체와 크고 작은 것이 얼마나 차이 있으며, 세력이 얼마나 차이 있으며, 그 영광이 얼마나 차이 있느냐? 해 하나에 대해서 천하 사람이 다 은혜를 입기 때문에, 만일 누가 '해 이거 없애 버린다.' 하면, 아마 천하 인간이 다 반대할 것입니다. '아, 해 없으면 우리 못 산다. 없애면 안 된다.' 이렇지만, '이 모래알 이거 전부 불에 태워서 없애 버린다.' 뭐 할지라도 혹 해수욕 가는 사람이나 반대할까 그까짓 누가 반대하겠습니까? 이러니까, 이렇게 형체와 형체라는 이름을 가졌고, 그 형체는 다 같은 게 아니고 '형체의 권세와 그 활동과 영광의 차이는 이렇게 차이 있는 것처럼 예수 믿는 사람의 차이는 이렇게 차이가 있다.' 그것으로써 그 비해서 말씀을 해 놨습니다.

* 고전15:3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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