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1:5
'충성된'
충성된 증인은 우리의 중보자 성자 예수님을 말합니다. 충성은 자기를 뽑아서 일꾼으로 세운 그 이의 요구에 만족하도록 그 일을 완료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주인이 그 종을 돈으로 사든지 해서 종으로 세웠으면 그 종이 저를 종으로 세운 그 주인의 요구와 기대와 계획에 만족을 할 수 있도록 그 사명을 다 완료할 때에 그것을 가리켜서 충성이라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면 '충성된 증인'이라 말은 영원 자존하신 하나님께서 당신이 영원 전 정하신 목적이 있으니, 요 목적을 당신이 이루시려고 예수님이 나섰는데 이 일을 이루려면 중보자가 아니면 안되기 때문에 중보자로 나선 것입니다.
'충성되다' 하는 것은, 이것은 하나님에게 충성하는 것을 가리켜서 말합니다. 이래서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본체시나 동등될 걸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같이 되어서 죽기까지 복종했다' 하는 것을 말씀했습니다. 그게 충성이라. 이렇게 아버지의 뜻에 하나도 위반하지 안하고 그대로 알뜰히 완전히 성취한 요 충성을 말합니다.
그러면 예수님에 대해서 우리에게 이 계시로 영접하라 하면서, 우리의 구주로 영접하는 데에 제일 첫 순서가 뭐냐 하면은 '충성된' 이것을 충성된 자를 우리가 영접해야 됩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대속하신 그 모든 역사에 제일 가치 있는 일은 뭐인고 하니 충성입니다. 충성이 제일 가치 있습니다. '충성된' 이 충성이라 말은 뭘 가리켜 말한 것인고 하니 아버지께서 영원 전 예정하시고 예수님에게 분담시킨, 그 분담시킨 그 사명을 하나도 미비함이 없이 완전히 감당해서 완료를 하셨다 하는 그 점을 가리켜서 '충성된' 이렇게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우리를 부르신 것도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우리가 입기 위해서, 그러면 입는다 말은 첫째 아담의 자손은 영육으로 된 자손인데, 영육으로 된 자손이 둘째 아담의 형상을 입는 그것은 뭐이냐? 첫째 아담의 영육으로 된 이것이 하나님의 완전 모형이 되는 이 사람을 하나님께서 조성하는 것을 가리켜서 말씀합니다.
'증인'
증인의 '증(證)'이라 하는 것은 사건을 증거했다는 말이 아니라, 사람을 증거했다 말이오. 그 자체가 증인이라. 사람을 증거하다니? 예수님께서 하나님이 계획하는 사람, 하나님이 인정하는 사람, 하나님이 좋아하는 사람, 하늘나라에 가서 살 사람, 하나님하고 화친을 가진 사람을 말합니다. 이런 참사람이 세상에 왔는데 그 참사람은 누구와 꼭 같이 생긴 자입니까? 하나님과 꼭 같이 생긴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삼위일체의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람, 삼위일체의 하나님이 의논해 가지고 창조하실 때에 그때에 당신이 삼위일체의 하나님이 원하셔서 '요런 사람 만들자' 하시고 만드신, 당신이 원하시는 그 참사람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지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과 꼭 같아요. 요한복음 1장 18절에 하나님과 꼭 같다고 이렇게 말씀을 해 놨는데, 또 요한복음 14장에는 보면은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떻게 해서 아버지를 보여 달라고 말하느냐'고 했습니다. 거기는 또 아버지라고 말했어요. 아버지라고 말한 데나 하나님이라고 말하는 거나 꼭 같습니다. 하나님이나 아버지나 꼭 같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뭐인가? 우리는 예수님을 보여주어야 됩니다. 이래서 '예수님은 볼 수 없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우리를 부르신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입도록 하기 위해서 우리를 불렀다.'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이러니까 우리는 예수님의 그 형상을, 예수님의 모든 속성을 내 속성으로 가지고 보여주어야 되고, 예수님의 언행 심사를 내 언행 심사로 가지고 보여주어야 그것이 예수님의 형상입니다.
행1:8 '참된 증인'이란 말은 참된 형상이라 그 말인데 예수님은 하나님의 형상이요, 우리는 예수님의 형상이라.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면은 권능을 얻어서 땅 끝까지 내 증인이 된다.'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예수 믿으십시오' 하는 그것도 증인은 증인이지마는 그것은 예수님의 사역을 증거하는 것이고, 예수님의 그 복음 운동을 증거하는 것이고 제일 증거는 뭐이냐 하면 예수님의 그 하나님의 모형인, 하나님의 모형인 예수님의 모형을 보여주는 것이 그것이 참된 증인입니다.
(89041710)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시고'
살아났다 하면 되는데 먼저 났다 했습니다. 먼저 났다 말은 뒤에 나는 사람이 있다 말입니다. 처음났다는 말이며 제일호라는 말입니다. 그는 첫 열매라 말이니 예수님이 부활하심과 꼭 같이 우리도 부활이 됩니다. 그와 같은 순서로 우리가 다 살아납니다. 첫 열매가 열었으니까 그다음에는 다음 열매가 계속 열려지겠습니다. 일호가 나왔으면 그다음에 이호 삼호로 자꾸 계속해서 나오게 되겠습니다.
이렇게 순서가 예수님이 제일 첫째 순서요 그다음 순서는 우리들이 예수님과 똑 같은 그런 순서로 되어집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당신이 그 일을 설정하셨지마는 우리는 그 설정할 만한 그런 힘은 없고 예수님이 우리 대신 설정하신 그 설정의 은혜를 믿음으로 우리 것 삼으면 됩니다.
믿음으로 우리 것 삼는 조건은 예수님의 그 사활의 대속을, 나 위해서 하신, 내 대신 하신 그 사활의 대속을 내것을 삼으니 나는 주님의 것이 됩니다. 내 것으로 삼는데 그 법적 문제는 뭐이냐? 예수님이 대속한 것을 내걸 삼으니까 나는 주님의 것이 돼야 됩니다. 그러면 우리가 대속을 믿으면서도 아직까지 자기가 주님의 것이 완전히 되지 못하고, 주님으로 인하여서 동하고 정하지 아니하고 제 맘대로 살아 있는 것은 아직 주님의 것이 되지 못하고 나 스스로 살아 있는 것입니다. 제물이 되지 안한 것입니다. '산 제물로 드리라' 그 말씀은, 로마서 12장에. '산 제물로 드리라' 하는 말씀은 살아 있으나 이제 제물로 있어야 된다 말이오. 제물로 살아야 된다 그말입니다.
'땅의 임금들의'
땅의 임금은 영계는 내비두고 이 물질계 우주에서 우주의 모든 권세를 다 점령하는 것을 가리켜 말합니다.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된다는 이 말씀은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라는 말과 같은 말입니다.
땅의 임금들은 땅의 이런 주권 저런 주권을 말합니다. 지금이야 공산 주권, 민주 주권, 뭐 제국 주권, 일본 나라는 천황폐하가 지금도 그 나라에 주권자입니다. 이런 모든 것들의 전 머리가 되는 것이라 말입니다. '땅에 있는 임금들의 머리라' 하는 것은 땅에 있는 모든 주권을 잡은 권세들을 그 모든 것을 다 사로잡아서 복종시키는 그것을 가리켜서 '임금들의 머리가 된다', 예수 그리스도가 앞으로 땅에 있는 권세는 다 복종시키고 그 권세에게 복종하지 않는 것은 다 전멸시킵니다. 유황불 구렁텅이로 다 태워서 청산을 하고 완전히 제거해 버립니다.
'머리가 되신'
'땅에 있는 모든 임금들의 머리가 된다' 그 말은 땅에 있는 모든 권세들을 정복해서 사로잡아서 이 권세를 다 발 아래 복종케 하도록 이렇게 정복성을 가지고 하는 그것을 말하지 안하고, 머리는 그 몸이 다 원하고, 또 그 머리를 좋아하고, 머리 아니면 제가 살 수 없는 줄 알기 때문에 온 몸뚱이는 머리를 위하고 머리를 보배롭게 이렇게 제가 힘이 있는 대로는 이 머리를 잘 간수하려고 애를 쓰게 하는 복종을 말합니다. 몸은 머리를 위하고 머리가 잘되기를 원하고 머리는 몸이 잘되기를 원하니 한 생명이요 한 소망으로 가졌기 때문에 대립적이나 충돌적이나 또 원수적이나 원망 불평 그런 것이 하나도 없는 관계를 말합니다.
이래서 예수님이 땅에 있는 모든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것은 강제로 된 것이 아니고, 빌립보 2장 9절 이하에 보면은 '하늘의 것과 땅의 것과 땅 아래 있는 모든 것이 다 예수님에게 무릎을 꿇었다' 그 말은 예수님을 존대하고 숭배했다, 다 그를 평가적으로 제일 높였다, 또 주라 시인해서 아버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주라 시인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모든 존재들이 주님을 주로 모시고 다 그렇게 해서 찬양을 함으로 아버지 하나님께 저희가 모시고 살 이 주님을 주신 데 대해서 아버지 하나님에게까지 감사를 했다 하는 그런 뜻으로 '주라 시인하여 아버지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렸다' 그렇게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예수의 은혜 그리스도의 은혜, 예수의 평강 그리스도의 평강. 그러면 예수의 은혜는 뭘 가리킴인가? 예수님의 대속의 은혜입니다. 또 그리스도의 은혜는 이제 세 가지 직책, 제사장, 선지, 왕직의 은혜와 평강을 가리켜서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중보로 삼아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은혜와 평강이 있는 것을 말하고, 또 예수 그리스도의 그 방편과 같은, 예수 그리스도의 방편과 같은 그 방편으로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있다, 그러면 그로 인해서 우리에게는 은혜와 평강이 온다, 또 방편도 그 방편으로 우리에게 은혜와 평강이 온다는 것입니다.
또 예수 그리스도의 이 은혜와 평강은 원형이라고 하면 그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온 은혜는 모형적 은혜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다 이랬는데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와 꼭 같은, 예수 그리스도가 만일 원형이라고 하면은 우리는 그와 같은 꼭 같은 모형적인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우리에게 와서 있다는 말입니다.
'있기를 원하노라'
'있기를 원하노라'한 것은, 이 은혜가 있는데 이 은혜를 은혜로 모르고 하기 때문에 문제입니다. 그러니 이 은혜가 은혜인 것을 깨닫고 믿으면 곧 그 은혜가 자기 것이 되는데 이것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있기를 원하노라'했습니다. 이 은혜를 가진 자가, 자기에게 온 은혜를 자기 은혜로 삼는 자 되기를 원하신다 하는 그런 뜻입니다. 뭐 어떻게 해서 그런지를 알려고 첩첩으로 그것을 알려고 참 자기가 마음을 써서 간절히 알려고 하는 사람이면 알아지지마는 그리 안 하면 이거는 알지를 못합니다.
무한한 그 은혜와 모든 축복과 부강이 나에게 와서 부딪혀 있으니 우리는 딱 믿고 그대로 행하기만 하면 됩니다. 부강이 있다는 걸 알고 부강을 쓰면 되는데 이걸 안 하기 때문에 '원하노라' 하는 말씀은 그 말씀입니다. 실은 없는데 너희에게 이런 은혜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그런 말이 아닙니다. 이미 다 만들어 가지고 무한한 것이 충만히 있습니다.
비유를 한다면, 모든 설비가 다 되어 있고 스위치만 올리면 그 전체 기계가 돌아가면서 모든 생산이 다 나올 터이니 스위치만 올리면 됩니다. 아버지에게 상속을 받았으니까 전부 제 것입니다. 그러나 스위치만 올리면 된다는 것을 믿지 않고 걱정만 하고 근심만 하면서 아무 것도 가지지 못했다며 자기를 무능자라며 탄식만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 형편입니다.
또 하나 비유한다면 무진장한 그 저수지 물에 자기 집 수도꼭지가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이제 꼭지만 틀면 물이 얼마든지 나오는데 물이 없다고 걱정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 집에 물이 와 가지고 있으니 옆에서 해 줄 수 있는 일은, '수도꼭지만 틀어라. 물은 너희 집이 떠나가도록 나온다' 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큰 관이 깔려있으니 틀면 나오는데도 물이 없다고 물 걱정만 하고 있으니 답답하다 말입니다. 답답해요.
이 5절에서 먼저 세 가지를 배웠는데,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하는 이거는 세 가지 중에 중보이신 예수님으로 말이암아 우리에게 오는 것입니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지 안하면 우리에게 못 옵니다. 그러면 우리에게 오는 모든 은혜는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모든 것이 와서 있습니다. 이제 오는 것이 아닙니다. 기다릴 게 아니라 이미 전부 와 있습니다. 예수님이라는 이 중보자를 통해서 하나님의 충만과 그 모든 은혜가 우리에게 와서 있습니다. 이래서 여기서 중보성을 가리켜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들에게 있기를 원하노라고 했습니다. '말미암아'라는 말을 쓴 것은 이 중보성을 말을 합니다.
이 은혜와 평강은 천 년 만 년 받아도 다가 아니고 영원토록 은혜와 평강이 계속되고 충만할 것입니다. 이 은혜와 평강이 우리에게 와서 부딪혀 있는데 이 사실을 모르고 이 은혜와 평강을 자기 것으로 누리지 못하는 이 면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안타까와 하셔서 하신 말씀인 것입니다. 이 은혜와 평강은 예수님의 은혜와 평강이요, 또 그리스도의 은혜와 평강입니다. 예수님의 은혜와 평강이라는 말씀은 예수님의 사활의 네 가지 대속의 은혜를 말하고, 또 그리스도의 은혜는 내나 예수님이 그리스도신데 그리스도의 삼직의 은혜를 말합니다.
'그의 피로'
그의 피란 말은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말이요. 예수님의 피는 십자가 상에서 죽으신 것만 말하는 게 아니고 근본 하나님의 본체신데 하나님이 하나님의 그 지위, 권세, 부요, 영광, 존귀, 자유를 전부 우리 위해서 버렸습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자유가 있습니까? 자유가 있는데, '그의 피로' 하는 것은 자유를 하나도 못했습니다. 자유를 하나도 못하고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그 아버지 하나님 앞에 자유를 하나도 가지지 않았습니다.
'우리 죄에서'
우리 삐뚤어진 데서라는 말입니다.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갇혔던 자라 그 말은 우리는 죄에 갇혀서 사망 아래에 있고 마귀의 모든 주관 아래에 있던 우리들이라는 말입니다. 우리를 해방하신 것은 예수님의 대속과 우리가 연합이 돼 가지고 있는 이것 때문에 우리를 해방하셨습니다. 해방했다 말은 갇혔었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과 우리와의 연결이 언제 됐느냐? 하나님이 자존하시고 하나님만 계실 그 때에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택했습니다. 그러니까 그 때부터 우리는 예수님과 연결이 되어 있었던 우리들입니다. 그리스도란 말은 내나 예수님을 가리켜서 그리스도라고 말하는데 그리스도라고 말하는 것은 예수님이 사람되시기 전에 우리 구주이신 하나님을 가리켜서 그리스도라고 말하고 우리의 구주가 영원 전에 되어 있는 그 하나님이 사람을 입고 오셨을 때에 그 후로부터 이름 부르기를 예수라 부릅니다.
천주교에서는 연옥설을 주장하는데 연옥설이라는 것은 지옥에 있는 사람들도 예수님의 영이 가서 전도해 가지고 예수 믿게 만든다, 그러면 지금 이 세상에서 예수 믿지 않는 사람이라도 죽고 난 다음에 그 사람을 예수님이 지옥에서 전도해 가지고 예수님 믿게 만든다, 이러기 때문에 천주교에서는 죽은 자를 위해서 영세 주는 일이 있습니다. 그 영세 주는 일이 천주교가 생겨지기 전에도 이단들이 했던 것입니다.
우리 삐뚤어진 데서 우리를 다 해방시켰다, 하나만 삐뚤어져도 전체가 삐뚤어집니다. 그 삐뚤어진 것이 고쳐져야 되지 고쳐지지 않으면 해결이 안되지 않습니까? 우리가 과거에 삐뚤어진 그것을 암만 오늘부터 잘한다 할지라도 과거에 삐뚤어져 놓은 그거는 그 값이 있게 됩니다. 오늘부터 아무리 의인으로 산다 해도 과거에 삐뚤어진 것은 어쩔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를 해방했습니다. 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다가오는 모든 불행에서 우리를 다 해방시켜 주셨다 하는 말입니다. 하나님과 연결이 끊어짐으로 우리에게 닥쳐져 오는 모든 죽고 망하고 불행스러운 그 모든 것을 다 예수님의 피로 해방해 주셨다, 예수님의 대형으로 다 해방해 주셨다 하는 말씀입니다.
* 요1:18 :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 요14:9 :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 빌2:10 : 모든 무릎을
* 롬8:29 :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2)
(89040310/0420/042740/0533/0750/0753/1230/1450)
'죄'
죄는 순종함에 부족한 것이나 어기는 것이 과녁을 명중하지 못한 뜻을 가진 것입니다. 죄의 기원과 죄의 위치와 죄성질과 죄사함에 대하여 논하려 합니다.
1. 죄의 기원
1) 죄는 인간계에 들어오기 전에도 밖에 실존하였던 것입니다. 이 죄가 마귀와 배암으로 통하여 인류시조 아담 해와에게 들어 온 것이니 이때부터 전 인류에게는 죄가 들어오게 되었고, 죄로 유(由:말미암)아 사망도 들어오게 되었다. 그 순서는 다음과 같으니
2) 에덴 동산에 있는 아담에게 동산에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게는 정녕 죽으리라 (창2:16-17)는 것으로 신인간 행위 계약을 삼았던 것입니다.
이름을 선악과라 함은 과실의 선악을 독이 있음이 아니고 그 선악과 먹고 나니 먹는 것으로 하나님 명령에 순종하고 거역하는 것이 되어 순종으로 선에 속하고 거역으로 악에 속하여, 비로소 선악을 알게 되는 율법으로 정하였던 것입니다.
아담 해와는 배암에게 유혹받어 선악과를 먹어 거역의 행위를 하였습니다. 이것이 전인류의 원죄이니 아담의 보통 생육법으로 난 전 인류의 대표의 입장에서 계약하였고 또 범하는 고로 전인류가 범죄함이 되었던 것입니다.
3) 하나님께서는 선악과를 먹으면 하나님 말씀을 거역함이 되고 죄가 되어 값으로 정녕 죽으리라 하시는 의미인데 악마는 배암을 통하여 연약한 해와로부터 아담을 유혹했던 것입니다. (여기서 강한 자는 약한 자를 파수하여야 할 의무를 보인다.)
사람은 피조물의 한계를 넘을 수 없는 것과 하나님의 창조 목적과 그 계획에 응종하여야만 할 것과 독립할 수 없는 피조물이 원인됨을 그 모든 이성의 성질에서 나타내며 그 존재의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영원히 그를 즐거워 할 것으로 지식하고 있는 존재이었다. 인간들의 이성은 하나님의 사상을 유추적으로 본 받은 것이니 하나님이 모든 창조물을 통하여 당신을 나타내려 하시는 것을 자체가 실증하고 있으며, 또 하나님의 형식적 특별 계시를 청종하며 응답할 수 있었으며 상대 할 수 있으니 하나님의 뜻을 전혀 알 수 없었던 자로 핑개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창조주 대 피조물로 되어 하나님의 그 영광을 위한 것만이 의무임을 특별 계시와 자연 계시의 결합에서 얻어지는 지식, 곧 하나님과 자기에 대한 관계를 자진 계약적으로 창조함을 받은 존재인 것을 핑계할 수 없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때까지 사람은 특수 피조물로 자의식성을 가진 자유자로 의에도 죄에도 속하지 아니한 상태였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자의식으로 그의 창조주께 계약적 순종을 하는지 아니하는지 여부를 시험하시기 위하여 계획적으로 선악과로 신인계약을 세워 순종으로 영생 거역으로 사망에 이르게 하였습니다.
롬5:12-19 이 실과는 선악 지식을 아는 시험목인 만치 구별되어야 하겠고 정당한 시험되기 위하여는 일정 불변의 것이어야 합니다. 이때에 사탄은 해와에게 말하기를 하나님이 모든 나무의 과실을 먹지 말라 하시더냐 함은
① 사탄의 자기 말과 하나님의 말씀을 동등 지위와 가치에 두는 유혹이었고
② 하나님 말씀에 과장과 축소의 요동성을 붙여 확고 불변성을 훼손케 하였고
③ 하나님으로 그의 창조물보다 더 위대하지 아니하심을 암시하였고
④ 이렇게 부름은 하나님의 제정하심에 지혜로우심과 의로우심을 인간이 판단할 능이 있는 자로 대우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해와는 하나님의 말씀과 사탄의 말을 동등시하였고 자기는 중립으로 아는 죄를 범하게 되었습니다. 여기에서부터 해와는
① 자율자로 자처하게 되었고
② 자기를 위하는 자주권자로 하나님의 주권을 거부하기 시작하였고
③ 독립할 자로 알아 독립적인 선포로 선악과를 먹어 하나님의 계약을 깨뜨리고 아담은 여기에 동참하였으며 전 인류는 또 여기에 동참하게 되어졌습니다.
이때부터 인간 이성 작용은 자기 자신을 위하는 자율에 기초했습니다. 이는 자기를 모든 것에 아는 것이 온전한 자인 줄로 인증자가 되어졌습니다. 이 도덕범으로 무한한 범죄를 끌어와 그 비례로 죄책을 걸머진 것이 전 인류에게 유산이 되었고 자율로 인하여 윤리적 부패로 각 이성에게 부패가 미쳤습니다. 역시 이것도 모든 인류에게 부패 유산이 되었던 것입니다.
엡2:1에 죄와 허물로 죽었던 자라 하는 전적 부패는 의종(依從)자가 독립 자율자로 배신자 된 것을 말함입니다. 신모(神慕) 배반한 자모(自慕)인생은 각기 하나님 창조의 주위를 반역하는 소 주권적 우주가 되어졌던 것입니다. 여기에서 신인투쟁이 인인투쟁으로 물인투쟁으로 인간에게는 화평없는 저주와 멸망화되어졌던 것입니다. 이것은 현실이 밝히 보이고 있습니다. 이기주의의 부딪히는 곳곳마다 투쟁은 끝이지 않습니다. 위약후 인류통일은 파상되었고 지상권(至上權)을 다투는 하나님이 땅 위에는 많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이를수록 지상에는 불화의 관영으로 예비의 지옥을 이루고 있습니다.
자연인에게는 하나님께 대한 관심과 죄에 대한 관심이 인간 속에서도 부절히 상충하기 시작하고 죄와 자율은 부절히 하나님께 대한 관심을 눌러 전적 범죄하는 데에 기울이게 하였습니다. 이도 자율이 왕권을 잡은 데에서 이루어지는 결과입니다. 그러므로 자연인은 부패 의지 사욕으로만 타락하여 하나님과 만물과 대립된 입장에서만 살게 되었음으로 가장 무능한 자보다 더 약한 자멸을 취하는 것이 되어졌습니다.
범죄의 순서는
① 창조주와 피조물에 혼돈
② 주권의 혼돈
③ 지식에 완전자 혼돈
④ 자위자로
⑤ 자율자로
⑥ 독립계획자로
⑦ 위약범죄에 나아갔던 것이었습니다.
2. 죄의 위치
1) 죄는 실체가 전적 악입니다. 죄는 한 명사(名詞)만이 아니고 실체로 실존한 것이니
① 죄의 종자 히12:15
② 죄는 장성하는 것 약1:15
③ 죄는 투쟁력을 가진 것 롬7:23
④ 죄는 정복력을 가진 것 롬7:9
⑤지배력을 가진 자 롬6:16
⑥사멸의 악을 가진 자 엡2:1
이와같이 피조물에게 대하여 해독의 가장 강한 세력을 가진 것이 죄인데 사람은 이것을 만홀히 여기다가 회복(恢復)가 소용없는 피해를 입습니다. 하나님의 공의가 강한 것만치 죄의 세력도 필연적으로 강하게 됩니다. 상술한 해와와 아담의 범죄는 사상과 행위의 논리적 순서이요 또 그가 고범한 죄이나 그 자신이 죄가 이렇게 강한 세력을 가진 줄은 몰랐던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계시 말씀과 그 계약의 신실성에 권위를 불신하는 어두움에서 되어진 저주입니다. 아담이 선악과를 먹음이 계약 위반의 범죄가 되는 것은 확인하였던 것이나 위약으로 얻어지는 유익만 소유하고 위약된 죄는 멸시하여 버릴 자유가 있는 것으로만 알고 그가 영원히 자기의 왕이 될 것과 사망하게 할 권이 있는 것까지는 전혀 인식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죄를 자용납하였고 후에는 죽었습니다.
이와같이 오늘도 사물에 하나님의 계약이 소속되지 아니한 것은 없습니다. 예를 들면 먹어라 먹지 말라 하시는 명령과 금지로 구별되어 있습니다. 사물을 대할 때에 하나님과 그 사물과 자기와의 삼각을 잃고 자기에게 대한 이해타산에 먼저 착념함과 또 하나님의 말씀에 위반된 줄 알면서 그 죄는 경시하고 거기 대한 수입만 볼 줄 아는 것이 곧 아담이 걸은 자멸인 자율의 길인 것입니다. 죄는 왕인 줄을 알아야 합니다. 동산에는 구별된 선악과보다 허식(許食)의 일반 실과가 많을 뿐 그 품질이 못하지 아니하였습니다.
아담은 유혹되는 그 순간에는 선악과 이에 다른 것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오늘도 꼭 이것이라야 하겠다 하는 사물은 미혹물이 되기 쉽습니다. 한 개 외에 더 취하지 못한 것과 순간적 먹음으로 영원한 화가 된 것과 또 먹기 전 욕망은 다 수포되었고 후회는 영원하였던 것을 수포(水泡) 되었고 후회는 영원하였던 것을 우리는 기억하여야 합니다. 식후 ① 하나님을 애모심이 없어졌고 ② 하나님을 피하였고 ③ 벗은 몸이 생각났고 ④ 무화과 잎사귀로 치마 만들어 입었고 ⑤ 하나님 앞에 숨었고 ⑥ 하나님을 두려워하였고 ⑦ 핑게 하였고 ⑧ 원수가 생겼고 ⑨ 자유동산에서 쫓겨 났고 ⑩ 수고와 고생이 생겼고 ⑪ 죽었고 ⑫ 영원한 죽음 곧 둘째 죽음을 하였던 것입니다.
오늘도 범죄의 해독은 이상과 같은 순서로 옵니다. 이 죄의 위치는
① 내 속에 거하고 롬7:20
② 마음 속에서 자라고 (인격속에서 자라는 것)
③ 선이 있는 곳에 죄가 함께 있음 롬7:21
④ 사망 안에서 왕노릇함 롬5:21
⑤ 범죄자의 주인으로 롬5:6
⑥ 죄의 삯은 사망에 이르게 하는 왕위를 가진 것입니다.
⑦ 인간의 지, 정, 의. 기타 모든 이성 속에 내주하며 모든 활동과 함께 있습니다.
⑧ 전 인류와 가정 국가 형식 교회 기타 모든 단체 속에 있습니다.
3. 죄의 성질과 행위
1) 죄는 가속도로 장성하므로 숨기를 꾀하고 사망에 도달까지의 수입을 보려 합니다. 성령은 죄를 즉시 폭로시켜 회개를 최촉하고 불응시는 고민 고체(苦體) 실패 수치 등으로 죄각(罪覺)하여 회개케 합니다. 차제에 인간에 자율과 사욕을 이용하여 회개로 기인되는 손해 명예 훼손 환란 위명(危命)들을 보며 회개를 막게 하고 자기를 숨기는 피난처를 만듭니다. 성신은 탄식으로 다시 회개할 기회를 기다리십니다. 숨은 죄는 음밀(陰密)히 하나님과 사이를 가루며 영혼을 누르는 일을 부절히 계속합니다. 이 피해는 사람이 모르고 지나기 쉽습니다.
2) 장기간 음역(陰役)하는 죄는 장성하여 그 영혼이 그 죄를 뜨겁게 적대시 못하게 하여 통감 (痛感)이 희미하게 하고 영혼을 기진하게 눌러 소극적으로 신앙심을 약하게 하고 어떤 위급한 시험이나 중대사가 있는 요긴한 때마다 숨었던 죄도 밝히 나타나 영혼을 위협하여 신앙 소망 기도 인내 같은 영혼의 중요 역사가 있을 때마다 죄의 관념을 통하여 의심 낙망공포 조급 등을 주어 실패케 합니다. 성신은 이것을 기회로 하여 회개를 또 최촉하십니다. 나타나 위협하던 죄는 또 종전 범죄 행위 청산으로 오는 각양 피해를 보이면서 염려로 회개의 마음을 누르고 또 일반 인간들의 죄악을 열거하여 보면서 죄의 연고가 아닌 헛된 감정으로 빈약한 것이니 그 감정을 회개 하라고 오히려 유혹하고 또 깊이 숨어 버려 감각에 오르지 않습니다.
3) 이렇게 숨은 죄악은 부절히 기생충같이 영혼이 발육을 해하다가 임종시 최후 기진 혼미할 때 이 죄는 나타나 최후로 위협합니다. 회개하려하니 정신이 쇠약하였고 행위를 청산할라 하니 사람 상대 각단체 등의 상대이니 시속(時速)히 해결할 수 없고 운명은 긴급하여 평소에 가지지 못한 고민을 가지게 되어 인생 최후 결정적인 전쟁을 시래 혹은 손해케 합니다. 성신은 여기서도 요일1:9 같이 고하라 사해 주시리라고 또 권고하신다.
이와같이 죄 그 자체의 능숙한 해독을 받지 아니하는 데는 자기와 세상에 대한 어리석은 미련을 끊어야 합니다. 세상과 모든 소유와 향락과 생명을 빼앗기는 것보다 죄 아래 있는 것이 더욱 불행인 줄 알아야 하고 또 무죄한 자를 해할 권세가 없는 것도 알아야 합니다. 그런 고로 죄는 잘 숨으려는 것과 숨겨둘수록 장성하여 피해가 많은 것과 가면 갈수록 회개하기에 어려운 것을 알아야 합니다.
4. 회개와 사죄에 대하여
1) 기독교의 회개는 양심 개심이나 행위변천이 아닙니다. 자기를 향하여던 것이 하나님을 향하는 방향 전환이 기독교의 회개입니다. 이것이 기본 회개이요, 일생 생활의 범죄 회개를 평생 회개라 합니다. 회개에는 본죄의 회개와 원죄 회개가 있으니 본죄는 고하면 즉시 고하면 사함받고 개에 대하여 통회로 간절도 가질 것이요 원죄 회개는 그 죄악성을 지식하기에도 어렵고 회개하기에는 얼마나 어려운가. 이는 죽음으로 완전근절되는 것이니 죽는 고통의 성질을 가져야 차차근절하게 되는 것입니다.
비유컨대 ① 국가와 사회 곧 남의 죄악은 거림자라고 하면 ② 자타가 공인하게 자범죄는 잎사귀라 하겠고 ③ 숨어있는 자범죄는 줄기라 하겠고 ④ 자기가 모르는 죄악 곧 범죄 자료는 뿌리라 하겠고 ⑤ 자위 자율죄는 종자라 하겠습니다.
①의 전부의 해독이 ②의 하나만 못하고 ②의 전부가 ③의 하나만 못하고 차차 그대로 ④의 전부가 ⑤의 하나의 해독만 못하나 또 회개도 그림자나 잎사귀에서 머무는 것은 도리어 죄를 성왕케 함이요 그 뿌리와 종자에서 회개함이 지혜로운 일이며 유효하게 된다. 1, 2, 3은 본죄요 4, 5는 원죄에 속한 것입니다. 인간의 이성은 전토와 같아서 공허한 땅에는 잡초가 남 같이 아무리 1, 2, 3, 4, 5를 다 회개 하였을지라도 생명의 종자인 그리스도를 중심에 모시지 않게 하면 가리워 놓은 마음에는 더욱 죄마는 무성합니다.
그러므로 성화의 생활은
① 기본 죄를 찿아 주께 고하는 데에서
② 죄와 투쟁으로 범하지 아니하는데 나아가고
③ 이미 내주한 원죄를 찾아 근절하는 일에 착수하여 일생을 계속하여야 합니다.
그 법전은 성경으로 하고 역사는 성신의 감동으로 하며 사죄의 근거는 그리스도의 보혈로 하여 우리 이성은 여기에 붙들여 움직여야 합니다.
(570000)
1. '충성된 증인'
하나님께서 모든 창조물 중에 특수 창조물인 영육으로 된 사람에게는 계시의 요소도 특수하고, 하나님의 욕망도 특수하고 희망도 특수한 것만큼 지위와 직책도 그 움직임의 방편도 특수한데 첫째 아담은 이것을 상실함으로 그와 자손이 다 죽게 되었는데 둘째 아담 예수님은 이 직책을 하나님의 지성과 지공에 만족을 이루도록 충성하셨는고로 충성된 증인이라고 성령이 말씀했습니다.
2. '증인'
하나님이 어떠하신 분이며 어떠한 속성과 행위를 하시는 가를 아무도 볼 수도 알 수도 없었는데 예수님께서 밝히 우리에게 보여 주셨으므로 나를 본자는 아버지를 보았느니라고 말씀하신대로 밝히 알려 주시고 또 특수창조인 인생이 타락 되지 아니하고 근본 그대로 있는 참 사람 온전한 사람이 어떤 것인 것을 우리에게 밝히 보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생의 모든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보고 그대로 되면 참 사람이요, 완전한 사람입니다. 그가 소원하는 것은 그가 평가하신대로 그가 행동하라는 대로 그분과 같은 사람이면 참 사람입니다. 참 사람으로 밝히 보여 주셨는고로 증인이라 하신 것입니다.
3. '죽은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시고'
'죽은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시고' 함은 위의 1, 2의 것을 다 통과하고 보시니 하나님은 만족하셔서 인간에 대한 모든 사망과 저주와 진노를 다 해결짓고 생명에 속한 온갖 축복과 은혜와 권세를 제일 먼저 계승하셨으므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것이라고 했습니다.
4. '땅의 임금의 머리가 되신'
땅의 임금의 머리가 되신다고 하심은 지상의 모든 것을 심판, 통치, 구원, 멸망을 독권으로 인수 받으신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1,2의 가치는 3,4를 이루는 권위가 있는 것임을 알고 예수 그리스도의 충성과 참 사람의 본을 받아 이 둘로서 모든 저주와 사망을 물리치는 방편으로 자타를 존귀케하는 유일한 법칙으로 써서 자타의 불행을 도말하고 생명과 평강을 마련하는 여생으로 살 것이니라.
(74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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