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 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  
■ 성경:60베드로전서01:07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믿음의 연단은 지식과 행위의 연단을 말합니다. 지식이 있어야 행동이 있는 것인데, 세상에는 수많은 지식이 있고 거기에 따라서 수많은 행동 나타납니다. 우리는 어떤 지식을 가졌든지 지식에도 반드시 연단이 있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지식 연단은 모든 지식들이 연단을 시킵니다. 이 지식이 있고 저 지식이 있는데, 지식과 지식이 비교되고 비중이 될 때에 반드시 져서 없어지는 지식이 있고 거기서 승리하는 지식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러므로 일시적으로 사람들에게 인기나 끌고 다수를 차지하면 된다는 생각은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반드시 지식도 거기에 가치를 평가하는 반드시 판단의 그 비판이 있는 것입니다. 만약, 일시에 그 지식이 떠들어서 세계를 점령했다 할지라도 그 지식이 어떤 지식보다 못되고 틀려서 온전함에 도달하지 못한 지식이라면, 그 지식에는 정죄를 받을 것입니다. 정죄 받을 때 그때, 그 지식의 무너짐이 심히 클 것입니다.

또한, 행동도 그러하고 주장도 그러하고 말도 그러하고 사상도 그러하고 방편도 그러하고, 모든 것이 다 힘과 힘은 그것을 심사해서 비중을 저울질 할 것이고 가치를 평가할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때가 오나니, 그것을 가리켜서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말을 합니다.

우리는 대주재가 되시고 주권자가 되시고 완전자가 되시는 그분의 지식을 접하게 됐다는 것이 얼마나 참 담대하고 평안하고 행복한 일인지 모릅니다. 또 힘과 힘도 대결이 되는데 가장 큰 힘, 완전한 힘 전능의 힘 그 힘에 우리가 연결돼서 그 힘을 힘입어서 우리가 산다는 것도 얼마나 평안하며 얼마나 고귀하며 얼마나 안심하고 담대한 것인지를 모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임시 일시의 주장으로 행동하는 그 행동이나 경영하는 그런 경영을 말아야 합니다. 언젠가 그것이 비중이 다 따져지고 가치가 따져지고 진가가 따져질 때에 영원히 가도 없어지지 않을 말을 해야 되고, 영원히 가도 꺾어지지 안할 지식을 주장해야 되고, 영원히 가고 가도 조금도 침노를 받지 않을 수 있는 그런 소망과 사상과 주장을 가져야 합니다. 이렇게 우리가 예수님의 피공로로써 진리와 영감과 그의 은혜의 힘을 얻게 된 것이 얼마나 큰 것인지 모릅니다.

우리가 이런 지극히 큰 소망에 소속되어 이런 소망을 두고 향하여 가는 우리들이기 때문에, 우리는 평소 생활 때에 크고 작은 모든 것에 대해서 자기 힘대로는 연구해 가지고 뒤에 깨어지지 안할 거, 정죄 받지 안 할 거, 후회하지 안할 거, 하나님이 잘못된 자는 다 멸한다 하는 그 음성이 들려와도 안심되고 튼튼할 수 있는 그런 길을 찾아서 걷고 말도 하고 생각도 하고 경영도 하고 계획도 하고 소원도 하고 방편도 취하여야 할 것입니다.

(85011151) 9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그러기 때문에, 우리 믿는 사람의 구원은 신앙생활이 되고  난 다음에 구원이 되는 것이지 신앙생활이 되기 전에는 구원이 안 됩니다. 신앙생활이 되고 난 다음에 구원이 된다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신앙생활이 돼야 전능하신 그 성령님이 오셔 가지고 우리를  붙들고 완전한 것. 영원한 것 불변한 것. 영생한 것, 이것을 만듭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세상을 떠날 때 하늘나라 갈 때에 가지고 가는 것은 전부 하나님이 만든 것입니다.

하나님이 새로 만든 것과 또 첫째 아담에게 속해서 저주 아래 있는 것을 이제 성령님이 와서 새로, 개조를 한 것과 개조한 것을 가리켜서 썩어질 것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약한 것이 강한 것으로 욕된 것이 영광스러운 것으로 혈육이라는 것이 신령한 것으로 이렇게 변화 된다(고전15:42-44)는 것은 성령님이 와 가지고 이렇게 완전히 만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믿음을 불로 연단하듯이 연단한다 그 말은 믿는다고 해도 영감으로 믿는 믿음이 있고. 아직까지 양심생활이 있고. 양심생활도 아닌 제 욕심대로 살면서 예수 믿는다는 이름만 가지고 사는 그런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이름만 가지고 제 욕심대로 사는 사람이 제 욕심대로 사는 사람이 성공을 하면 무슨 생활이 됩니까? 제 욕심대로 사는 욕심대로 사는 그 욕심대로 신앙생활 하는 사람이 그 사람이 욕심대로 신앙생활 하다가 이제 옳게 바르게 성공을 하면 성공한 그 생활을 가리켜서 무슨 생활이라고 말합니까? 여기 양성원 학생들, 양심생활 그것이 기독자의 양심생활입니다.

(85061233) 9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 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
예수님의 자녀의 자격을 일으키는 과정을 말합니다. 이는 비유한 것이니 금을 불로 연단하면 먼저 모든 잡철(雜鐵)이 제소(除消)되고 동과 은이 다음으로 제소되고 순금만 남게 됩니다. 이와 같이 신앙생활에 있어서 각양의 어려움이 봉착하는 것은 먼저 금속이 아닌 진토가 소멸되는 것과 같이 진리가 아닌 불의의 요소가 제거되고 다시 말하면, 세상에 속한 것이 제거되고 다음으로 금속에 철과 같은 불의가 아닌 선에 속한 자아의 것이 환난으로 통하여 제소되고 동은과 같은 인간적인 선과 인간적인 의, 인간적인 의지, 인간적인 양심, 인간적인 열심과 충성, 인간적인 계획과 목표, 낱낱이 다 제거됩니다. 순객관의 것,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예수님의 심판을 그대로 통과될 것만 분량 적게 단순하게 가지게 됩니다. 이것이 어린 아이입니다.

무능자면서 유능자가 되고 어리석으면서 지혜있는 자되고 주장이 없으면서 강한 계획이 있고 목표를 정하지 못하면서 불변하는 목표를 가졌고 모든 세력에 지는 자로서 완전히 이기고 순낙망자이면서 소망중에 사는 자인 것입니다.

시장에는 황금의 융통이 없습니다. 천국문에는 신앙의 융통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것만큼 연단이 있고 연단이 있는 것만큼 온전하여지고 온전하여진 것만큼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됩니다. 기독교는 얻을 때의 수입보다 잃을 때의 수입이 크고 광명한 때보다 암흑의 때에 더욱 빛과 가깝고 슬플 때에 참된 기쁨을 맞이하는 문에 도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는 인간의 지식의 계획이 나열하지 못하고 만들어진 오랜 후에 비로소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신은 약1:2-에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고 하였습니다. 시험은 물질의 시험, 사업의 시험, 명예의 시험, 몸의 시험, 생명의 시험이니 겨울과 여름같은 시험보다 봄과 가을같은 시험이 더욱이 손해보기 쉬운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험에 유일의 승리의 비결은 소망 중에 인내하는 것뿐입니다.

(561127)


'너희 믿음의 시련이'
믿음의 시련은 어려우나 하나님의 자비하신 긍휼을 베푸심이니 참고 하나님을 든든히 믿고 신실한 분이심을 믿고 있으면 하나님이 나의 못하는 것을 하나님이 하시는 것을 뚜렷이 보게 됩니다. 고문같은 것은 인간이 견디기 어려우나 제 힘껏 다하면 모자라는 면은 하나님이 해주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지극히 어려운 곳에서 견딘 사기의 순교자들을 보니 참 거짓말같이 견뎠습니다. 화학약품과 전기고문같은 것에도 헛된 소리를 안하고 참말을 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가 어려웠던 것은 신경 세포 하나 하나가 대속을 다 소원해야 했기 때문에 이것이 어려웠습니다. 하나님의 지공법이 볼 때에 세포 하나까지 끝까지 견디는 것은 피조물로서는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죽음이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니고 세포 하나 하나까지 원하고 원함이 되기가 어려웠던 것입니다.

우리 성도가 겁내는 것은 죽음이 겁나는 것이 아니라 죽음에서 실수할까봐 걱정입니다. 주님은 다른 사람의 죄를 위해 하셨으니 그것이 강제가 아니고 순전히 자원이라야 하기 때문에 참으로 어려웠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유법은 인간의 자유법을 인정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형을 대신 받으려면 원하고 원함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인성은 영과 육이니 여기도 신경 하나 세포 하나까지 찬라라도 억지가 되었으면 하나님의 지공법에서 용납되지 않습니다. 이래서 예수님은 땀방울이 피 방울이 되기까지 고민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인성으로 할 수 있는데 까지 하고 그 다음은 신성이 맡을 수 있도록 완료하시고는 제자들에게 '이제는 자고 쉬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정신 세포 하나까지 능동적으로 순종하는 것으로 그의 자유의사를 가지고 유기적 관계로서 죽으신 것입니다. 이 순종이 인간으로서는 감당 못할 어려움이 오면 인간은 다 떨어지게 되니 이 신성과 연결에 접선되어 전능의 능력이 인계 받도록 하려는 이것 때문에 죽을 고민이 되었던 것입니다. 기도하신 후 이제 연결이 되었으니 쉬신 것입니다.

우리의 노력은 바로 이것입니다. 어떤 성도가 서장나라에 가서 복음을 전하다가 거머리에게 물려죽는 고문고형을 받는데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모릅니다. 그런데 오히려 기뻐하고 즐거워함을 보여줬던 것입니다. 인간이 할 수 있는 것까지 하고 자기가 할 수 없는 것은 주님에게 맡기면 주님이 인수하십니다. 이것이 기름 준비입니다. 이 능력이 역사하도록 지극히 작은 데서부터 훈련하고 연습하면 됩니다. 이것은 평소의 현실에서 내게 온 진리에 순종하면 이것이 점차적으로 되어집니다. 내게 온 능력을 영접하는 것은 평소에 내게 온 진리에 순종함으로 기름 준비가 되어 최고의 고문과 고형에서도 등불 들고 설 수 있게 됩니다. 이것이 기름 준비입니다. 평소 노력하여 순종해서 이 능력을 받아야 최고도의 어려운 고문고형에서도 주님의 능력이 내게 올 수 있도록 해주십니다. 이것이 곧 성화시키는 것입니다. 이 기름은 갈라서 다른 사람에게 나눠줄 수 없습니다. 이 기름은 평소에 쌓은 그의 실력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시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한 것입니다.

(71050750)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연단 받은 믿음이, 시련 된 믿음이 순금(純金)보다도 더 보배롭다고 하기 쉬운데 그것이 아닙니다. 금을 연단하면 금에 섞인 잡철이 없어져 금만 남는 것보다도 우리에게 신앙의 잡된 것이 있는데 잡된 것은 다 제거되고 금같이 연단된 순전한 믿음만 남는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시련할 때에 어느 정도 시련하시는고 하니 금을 연단하면 돌, 쇠, 은 등 잡된 것은 다 타고 순전히 금만 남도록 연단할 수 있는 것처럼 너희 믿음도 연단하면 순전한 것만 남게 하시되 금보다도 더 깨끗하게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자비하심으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구약의 모든 것은 다 준비 공작이요, 신약의 것은 다 추수적이니 영적 시련입니다. 하나님이 사울에게 아말렉을 진멸하라고 명령하셨으니 사울이 그대로 행함이 믿음입니다. 이것을 순종한 것이 잡되게 순종했습니다. 순전히 하나님을 생각한 것이 아니고 순종 중 공명심(비석 세움)으로 순종하면서 보기 좋은 물질은 남기고 인물 중 잘난 아각을 남기고 남은 것은 다 멸했습니다. 이 순종에는 공명심, 물욕, 정욕이 들어 있었습니다. 이것을 드러내어 사울을 멸망시켰습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거울입니다. 우리를 순종하는 자 만드시되 순종을 원하시되 사울같은 순종은 멸하심을 보이시고 하나님이 어떤 순종을 요구하시는가를 보이셨습니다. 또 다윗도 순종 중 정욕으로 된 것이 있어서 범죄하여 고통을 당했습니다. 이런 것이 다 우리에게 거울입니다.

구약시대도 이러하거든 신약시대인 우리에게는 더욱 그러하지 않겠는가?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이런 잡된 것을 불태우시기 위하여 연단하십니다. 하나님으로 인한 동기와 방법 또 하나님과 연결된 능력으로 된 것만을 가치로 평가하는 것이 이 세계인데 이리되도록 안 하면 자비의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이렇게 되게 하시니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이리되어 우리로 대우받게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여기 연단 받은 믿음을 잘 해석해야 합니다. 가치면이 아니고 잡것을 제거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연결되어 있기에 이것이 가능합니다. 연단 받은 참 믿음이 얼마나 귀하고 보배로운지 모릅니다.

연단 받은 참 믿음, 순전한 믿음의 그 요소를 분류하면 다음 네 가지로 말할 수 있습니다.
① 나로 인하여 살리라.
② 목적, 순종, 완성, 피 뿌림의 완성이니 제 이의 예수가 되는 것입니다.
③ 방편은 진리와 성령의 인도대로 하고
④ 힘은 하나님의 능력과 나의 힘의 합함으로 됩니다. 이것이 합해져야 순전한 믿음입니다.

성경대로 행함도 자기에게 해당되는 그 말씀을 행하여야 합니다. 그 현실에 자기에게 해당된 진리가 따로 있다. 자기 진리를 바로 찾아 순종할 것이니 순종하면 결과적으로 순전한 믿음이 되어집니다. 이것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연단하신십니다.

(71050643)


'너희 믿음의 시련이'
순종의 시련이란 말씀입니다.


'연단'
이라고 하면 잡것을 태우는 것을 말하고 '시험'이란 그 속에 있는 사실을 사실대로 폭로하는 것을 말합니다.


'시련'
시련은 양면을 말하나니 자기가 누구며 물질은 무엇이며 세상과 세상 것은 무엇이며 하나님과 하나님의 역사가 무엇이며 이와 같은 많은 사실들이 드러나지 않은 것은 드러내는 것이 시련입니다. 즉 나타나지 않은 것을 나타내 알게 한다는 말입니다. 이 시험과 연단으로 독사 같은 독이 나의 속에 들어있음을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이것에서 자기 실력이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자기의 믿음을 아는 면은 시험이요, '죽어도 순종해야지'하고 불 속에 들어간 것은 잡탱이가 없어지니 시련 중 연단입니다.

시련이란 우리가 닥치는 모든 일에서 나와 이웃과 하나님, 또 모든 소유가 감추어져 있어서 내가 모르던 것인데 나에게 드러내어 알게 해주는 것이 시험입니다. 얼마나 좋은 것인지 모른다. 잘 기억하자! 우리 하나님에게 돈이나 건강, 사건, 지식, 지혜, 사랑, 긍휼, 자비, 생명과 평강, 위로, 모든 좋은 것이 다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참 아들에게 징계도 있습니다. 철없는 우리는 등 따시고 배부른 안일한 평생을 원하지만 이것은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모릅니다. 나의 모든 것을 하나님에게 다 맡기고 많은 시련을 받아 내가 나를 모르고 살던 것을 알아지게 하고 내가 모르던 세상을 보고 알고 또 내가 얼마나 허무한 자인 것을 알고 나를 부인하여 진공으로 돌아가면 하나님으로 충만되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세상을 떠나기 전에 허무한 참 나인 줄 알고 하나님을 바로 알고 세상을 바로 알고 전부를 바로 알고 가야하기에 인도하셔서 시련을 주십니다. '해 아래서 수고하는 인생의 수고가 헛되고 헛되고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전1:2)고 고백이 나오고 하나님을 영접하여 경외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온갖 것을 다 가르쳐 주시려고 세상을 만드셨다. 우리가 순종하는 것보다 이것들을 만드신 하나님이 더 큰 수고를 하신 것입니다. 우리에게 잡것을 태우고 주님의 나라만 바라보고 주님의 도우심만 바라보고 사는 자되게 하려하십니다.

인본주의가 인간의 의지까지는 같이 가나 인간을 탁월한 것을 줄 때 어려움은 못이기고 떨어지고 맙니다. 인본주의 신앙은 불신자가 할 수 있는 데까지는 따라오나 그 이상은 못 따라옵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순종으로 올라와 자기 힘있는대로 하고 나머지는 하나님이 해주시는 것을 경험한 자는 쉽고 어려울 것이 없이 승리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신앙은 제힘 가지고는 못합니다. 순전히 주님의 힘으로라야 됩니다.

연단은 헛된 소망, 헛된 동기, 잘못된 방편으로, 산 힘 아닌 것으로 하는 것, 이런 것을 다 태우기 위해 시련을 주십니다. 오늘날 시험은 잘못 들은 것, 잘못 관찰한 것, 마음 잘못 먹은 것이 다 시험입니다. 그러므로 신약시대의 시험은 어렵다. 잡것을 태우기 위해 시련 주시나 시키는대로만 하면 됩니다.

그러면 시험은 왜 하는가? 모르는 것을 알려 주시기 위해서다. 자기와 이웃, 세상일, 물건, 하나님, 진리, 중생된 영, 의, 죄, 이 모든 모르는 것을 알려주시기 위해서 시험을 주십니다.

연단을 주시는 목적은 잡된 것을 태우기 위해서 주십니다. 즉 헛된 목적, 잘못된 방편, 잘못된 동기, 산 힘으로 하지 아니한 것, 잘못된 힘(하나님과 연결되지 아니한 힘)을 다 없애기 위하고, 온전한 것만 남게 하시기 위해서다. 우리는 살든지 죽든지 순종만 하면 다 잡것을 태워주십니다.

우리가 기억할 것,
1. 믿는 우리는 지극히 큰 능력이 책임지고 있습니다. (보호)      
2. 우리는 항상 근심과 기쁨으로 걸어가야 합니다.
3. 우리는 세상에서 시련을 받아야 합니다. 감추인 것을 하나님이 알려주시는대로 알고 잡된 것을 태우기 위한 것입니다. 진리와 성령의 연결은 (마25:1-13)의 기름이니 갑자기 못 가집니다. 평소에 마련해야 합니다. 기름 준비해 놓으면 밤중에도 빛납니다.

(710506)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
말세에 기독자의 구원은 어떤 구원인가? 예수님이 재림하신 이후 영원 무궁토록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되는 것이 이것이 믿는 사람의 구원입니다. 믿는 사람의 구원은 영원 무궁토록 모든 피조물과 하나님을 향하여 영광 있는 자 되어지는 것이 이것이 말세에 신약교회의 구원입니다. 우리 신약 시대에 난 사람들은 영원무궁토록 하나님과 모든 피조물들에게 영원히 칭찬 받을 수 있는 이런 구원을 이룰 수 있는 우리들입니다.  

또 영원토록 하나님에게도 피조물에게도 존귀히 아주 높이고 귀하게 여겨서 존귀히 여겨줌을 여겨주심을, 존귀한 대우를 받을 수 있는 이 구원을 이룰 수 있는 우리들입니다. 위로 하나님에게는 영광을 돌리고 이웃과 모든 피조물들에게는 영원 무궁토록 그들에게 은혜를 입혀서 그들이 모두 감사하고 환영하고 존귀히 여기는 이런 영광스러운, 만물이 우리를 영광되게 해주는 이런 구원을 이룰 수 있는 희망이 있는 우리들입니다. 우리 기독자들은 이 지구에 있는 어느 강대한 그런 한 나라에서, 한 민족에서 칭찬 받고 영광 누리고 존귀히 대우받는 이런 정도의 구원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라 말은 무궁 세계를 말합니다, 무궁 세계. 그때는 하늘과 땅의 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이 된 그 세계인데 참 큰 나라입니다. 영원무궁한 나라입니다.  그 나라는 알파와 오메가여서 끝이 없는 영원한 나라입니다. 그때는 파괴나 이런 변동들이 없는 때입니다. 이런 나라인데 이런 세계에서 모든 존재에게 칭찬 받을 수 있는 우리와 우리 행위를 마련할 수 있고 또 모든 존재들이 우리로 인해 잘 되었다고 은혜를 입었다고 사은, 은혜를 감사하는 사은의 이 영광이 있도록 우리 자신과 행위를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뭐 조그마한 한 동리에서도 칭찬, 영광, 존귀가 있다면 그것은 참 귀한 것이라고 하고 모두 부러워하는데, 우리 한국은 남한은 참 조그마합니다. 남한에서 그렇게 할 수 있는 그 사람이 되었다고 하면 얼마나 그것이 영광되다고 생각을 합니까? 영광이라는 것은 내가 그에게 은혜를 베풀어서 그가 은혜에 감사하는 그 감격의 모든 행위 그것이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이 한국이나 이 지구 땅덩어리 여기만이 아니고 물질계 우주와 영계 이 모든 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다 통일이 될 터인데 그 때에, 그리스도 안에서 이 모든 것이 통일될 그때에 하나님에게도 모든 피조물들에게도 칭찬 받을 수 있는 자기와 자기 행위, 모든 것에게 감사하다고 사은의 표시를 하는 이런 자기와 자기 행위, 모든 존재들이 이렇게 높이고 귀하게 대우해 주는 존귀히 여겨줌을 받을 수 있는 이런 자기로 행위로 이렇게 짧은 이 한 토목에서 만들어 갈 수 있는 것을 여기 말씀합니다.

이제 칭찬과 영광과 존귀히 여기는 이것이 귀한 것보다도 모든 존재들이 내게 대해서 칭찬과 영광과 존귀히 여길 수 있는 이런 나로, 이런 내 행위로 하고 간다는 것이 얼마나 존귀한지 모릅니다. 얼마나 존귀해요. 이것을 무엇을 가지고 바꾸겠습니까?

하늘나라의 영광은 차이 있습니다. 아무리 그 사람이 구원을 얻었지마는 그 나라에 가 보니까 감사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고 그 사람에게 칭찬 받을 일한 것이 하나도 없고 이러니까 서로 보고 알기야 알지마는 자기가 이 세상에서 산 것이 그에게 아무 상관없는 생활을 했으니까 그가 또 내게 아무 상관없다 그 말이요. 내가 그에게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을 수 있는, 존귀함을 여길 수 있는 이런 생애를 세상에서 하고 무궁 세계에 그들을 척 만날 때에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이것이 얼마나 참 가치 있고 고귀한 생애입니까? 이것이 우리에게는 가능합니다. 우리에게는 가능해요.

자기가 온 천하를 다스린다는 그것보다도, 우주와 영계를 통치한다는 것보다도 모든 존재에게 칭찬 받을 수 있는 과거의 세상살이, 존귀히 여김을 받을 수 있도록 세상에서 살던 나, 영광을 받는 이런 자기로 이 세상에서 살고 무궁 세계에 만물을 척 대할 때에 얼마나 그게 고귀합니까? 가치 얼마나 있으니까 이것을 무엇으로 바꾸겠습니까?

먹을 것이 없는 것보다도 입을 것이 없는 것보다도 자기에게 대해서 원망 불평하고 불만스럽게 여기는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이 몰라서 오해와 곡해를 해서 하는 것도 불안한데 정말로 그 사람이 자기에게 대해서 이렇게 원망하고 불평하고 참 마음에 불만스럽게 여길 수 있는 이런 행위가 있어 그 사람을 대할 때에 그 불안이야말로, 그 고통이야말로 얼마나 크겠습니까?  

* 엡1:10 :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한 믿음이 되면 이렇게 칭찬과 영광과 존귀로 관 씌움을 받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금은 불로 연단하면 잡철은 다 타 버리고 순금만 남는 것처럼, 이제 잡것이 없는 순금 같은 믿음은 어떤 것이 순금 같은 믿음이냐?

이것은 그 동기와 목적이 순전히 조물주 구속주 하나님을 영화롭게 기쁘시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을 자기 것으로 완전히 삼았고 하나님의 능력을 자기 능력으로 삼아 그 사람이 비록 사람이지마는 그 중심이 하나님 중심 하나님 위주의 사람이 되어졌고 하나님의 온갖 충만으로 자기 것을 삼아서 세상에 있는 동안에도 하나님 위주의 삶과 하나님의 온갖 충만으로 자기 충만을 삼은, 자기를 부인하고 하나님의 충만으로 자기 충만을 삼는 요 결합을 하는 요 행위를 해서 그 행동할 때마다 모든 피조물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는데,

이제 그 사람이 피조물과 하나님 사이에서 인간이 자기 위주 자기 중심으로 해 가지고 하나님 은혜를 가로막아서 모든 피조물이 저주받아 가지고 있는데 가로막은 자기를 완전히 원수 시해서 부인해 버리고 자기를 완전히 꺾어 죽여버리고 하나님에게 소속되어 하나님의 것으로 충만하여 하나님과 하나 되어서 하나님과 모든 피조물 사이에 하나님의 충만을 피조물들에게 전달할 수 있는 이 중보자,

완전히 은혜의 기관이 되어져 가지고 이렇게 하늘나라 왔으니까 그는 세상에 있는 동안에도 하나님과 만물 사이에 가로막아서 만물이 저주받고 탄식했던 이것을 완전히 정리해서 이런 자기를 완전히 부인해서 자기를 꺾어 버렸고 하나님과 피조물 사이에 하나님의 충만을 전달해줄 수 있는 이 은혜의 기관, 하나님의 온갖 충만의 기관으로 하나님의 충만을 모든 존재들에게 전하여 줄 수 있는, 영원히 모든 피조물을 위해서 수고하고 봉사하고 시은하고 그들이 자기가 아니면 행복을 누릴 수 없을 만치 이러한 존재를 이루어 가지고 무궁 세계에 나서니까 모든 것들이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돌릴 수밖에 없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잡것이 없는 믿음입니다.  


순전히 완전자의 것으로만 움직여 사는 요것이 금을 불로 연단해서 순금만 남은 것처럼 요런 저런 모든 순서를, 모든 현실을 겪고 나니까 이제는 이 사람은 순전히 하나님으로만 살고 피조물인 자기는 하나님에게 복종하는 것뿐이지 하나님으로만 살고 하나님의 지혜로만 살고 하나님의 능력으로만 살고 하나님의 성품으로만 살고 하나님의 소원으로만 살고 하나님으로만 살지 하나님으로만 사는 것 외에 잡것이 하나도 없으니 금이 순금된 것보다 인생들아, 하나님으로만 살고 인간의 요소는 하나도 없고 하나님의 것으로만 살수 있는, 이렇게 완전히 변화될 수 있는 것이 너희들에게 가능하다 하는 것을 말씀해 준 것입니다.  

(79083153)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그러는데, 그러니까 “너희 믿음의 연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금은 이래 불에 구으면 잡철은 타고서 이거 순금만 남습니다. 잡철은 타고 순금만 남소. 순금만 남는데 이 잡철이 타고 순금만 남는 것보다 더 하다 그 말은 뭐이 탔다 말이요? 뭣이 탔다 말이지요? 뭣이 타고 순금이 됐다 말이지? 잡철이 탔다 말이지. 잡철이 타면 순금되지. 잡철이 뭐인데? 잡철이 뭐인데? 자기 심신을 붙들고 있는 악령, 악성, 악습, 이 모든 세상에 있는 전부, 인간들의 말, 그 전부가 뭉쳐 가지고서 그것으로 예수 믿는 척 하고서 악령 악성 그놈이 들어서 예수 믿으라 하며 자꾸 예수 믿으라 하고 믿는 줄 알았는데 요 현실을 딱 당해 가지고서 비로소 잡철인 인적의 요소 이 모든 이 세상 요소 가지고서 믿는, 세상 요소 가지고 믿는 그런 것이 다 불타 버리고, 이제 순전히 이거는 위에서 내려온 그로만 믿고, 그로만 믿고, 이 세상과 모든 악령 악성 악습을 완전히 부인해 버리고, 이 모든 그런 것을 부인해 버려 잡철이 타 버렸고 또 이 뭐 세상을 부인해 버려 잡철이 타 버렸고, 자기를 부인해 버리고 세상을 부인해 버려서 잡철은 타 버렸고 완전한 것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제 알겠습니까?    

(86070560) 5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불로 금을 연단하는 것보다 더 보배롭다 말은 무슨 말인가? 하나님의 지극히 큰 능력이 와 가지고 복으로 해 주시는 거, 지극히 큰 능력이 와 가지고 우리에게 해 주는 그것이 구원이 되는 것이지, 우리의 충성이라는 그 충성은 다만 당신의 계약 상대자로서 ‘네가 이렇게 내게 순종하면 내가 해 주겠다' 하는 그 계약을 지키려고 바들바들 지킬 때에 우리 할 일 다 했습니다. ‘네가 이 계약을 지켰으니까 계약한 대로 내가 이행하겠다.' 하며 해 주는 그것이 당신의 축복이요 지극히 큰 능력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분의 능력이 와서 하는 그것이 무엇인가? 창수가 내리고 바람이 불어도 넘어지지 않는 반석 위에 세운 집이라는 반석이 뭐입니까? 그 반석은 곧 하나님을 말한 것입니다. 반석은 하나님을 말한 것이니까 그 위에 세운 것은 뭐이냐? 지극히 큰 능력이 와 가지고 만들어 놓은 것이라 그 말이오. 지극히 큰 능력이 만들어 놓은 거.

또 풀과 나무와 짚으로 지은 집이라는 것은 불 탈 것이기 때문에 이것은 보기는, 외형은 꼭 같지만 이것은 다 인간의 지능으로 만든 것이요 하나님의 지능으로 만든 게 아닙니다. 그러니까 진리에 불타고 말지요.

*마7:25 :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이는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연고요
*고전3:12 : 만일 누구든지...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85010713) 2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모든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것이 믿음을 연단하는 것이다.' 네가 여러 가지 어려움을 당하는 것이, 완전한 하나님의 무한하시고 영원하시고 불변하시고 완전하신 그 능력이 만들어 놓은 것은 타지 않는다. 그 능력이 만들어 놓은 것은 세상이 태우지 못한다. 해하지 못한다. 왜? 그것이 모든 피조물들을 창조한 고차원의 것인데, 근본이 거기 있는 것인데 그것이 피조물들에게 피해를 받습니까?

이러니까, 네가 속고 있는 거, 사이비한 것에 속고 있는 거, 아니면 없으면서 있다고 아는 거 그것이 이제 드러나 가지고 그게 다 타서 없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이거는 마치 금을 불로 연단할 때에 잡것이 다 타 버리고 순금만 남는 그보다 더 귀하다. 더 귀하다는 말은 가치 있다는 말 아니오. 금을 불로 연단해서 잡철이 다 타고 순금만 남는 그보다도 더 귀하다 그 말은 그보다 더 정밀히 정선돼 가지고 하늘나라에 간다 그 말입니다. 하나도 섞여 있지 못해요.

*약1:2: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85010713) 2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그런고로, 우리 믿음이 자라가는 것은 그 믿음의 유래를 우리가 연구하고 생각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또 우리의 믿음이 이것이 가짜냐 진짜냐, 인본의 믿음이냐 하나님께로부터 온 이 선물의 믿음이냐 하는 것을 우리가 궁구할 때에도 우리의 믿음의 족보, 믿음의 그 유래, 믿음의 그 근원부터 내려온 연장된 그 순서를 우리가 생각할 때에 우리의 믿음은 건전해지고 또 잡탱이들이 다 제거되어지고 그런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성경에 “믿음의 연단이라” 하는 말을 많이 읽어 봅니다. 믿음의 연단이라는 것은, 이 믿음이 연단받는다 말은 순전히 하나님의 목적에서부터 움터 가지고 나온 그 순진한 믿음에, 인간들에게 와 가지고서, 일호 이호 삼호 사호 오호까지는 거게는 잡것이 없지마는 그 육호에서부터 인간의 그 심신 속에 믿음이 내주하는데 육호에 내주하는 그 육호에서부터 수많은 잡된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수많은 잡된 것들이 많이 있는데 그 잡된 것의 믿음은 암만 믿어봤자 하나님이 거게 응해지지 않습니다. 처음에 어릴 때는 응하는 것은 그거는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에 그렇지마는 믿음이 틀렸을 때에 하나님이 응하지 않습니다. 또 믿음이 잘못된 믿음이 되었을 때에 그런 것은 다 깨어 버립니다.

대개는 믿음의  연단이라 하는 것은 하나님께로 말미암아 온 믿음이 아니면 그 믿음이 그때 유지되지를 못하고 그 믿음이 그 현실 환경에 피동되어 가지고서 변동되어지고 하나님께로 난 믿음은 그런 게 올수록 더 강하고 빛나고 견고해지는 것입니다.

거게서 믿음의 그 응답이라는 응답이 이루어지고 결실이 있고 또 없고 하는 데에서 그 믿음은 차차 차차, 금을 연단하는 것처럼, 금을 연단하면 잡석과 잡철이 다 타고 순금만 남는 것처럼 이 모든 믿음이 연단돼서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선물로, 당신이 믿도록 또 하셔 가지고 믿을 때에 하나님께서 응해 주시는 그 순진한 믿음이 이루어지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86101202) 5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그것을 가리켜서 “너희 믿음의 연단이 불로 연단해도 없어질 금보다 더 보배롭다” 그말은 가치가 금보다 더 가치 있다 그말 아니오. 너희들의 믿음이 비유컨대 금을 불로 연단할 때에 그 정금만 남으면 거게는 잡철이 하나도 없고 순전히 순금만 남는 것, 자꾸 불에다가 구으면 순금만 남게 되는 것, 잡것은 타고 순금만 남게 되는 것, 이것보다 너희들의 믿음이 잡것은 다 타 버리고 탈 것은 하나도 없고 타지 안할 것만 남아 있도록 하려 함이라 하는 것입니다, 믿음 연단이라 말은.
“금보다 보배로워” 하는 그말은 금보다 가치가 있다 하는 그말이 아니고 금을, 잡철하고 금하고 섞였는데 불로 가지고서 연단하면은 잡철은 다 타 버리고 순금만 남는 거와 같이 이렇게 너희들의 믿음도 인적 요소는 다 타 버리고 순전히 영원히 타지 안할 전지 전능의 완전의 그 신적 요소만 남아 있기를 금을 연단해서 순금만 남아 있고 잡철 은이나 금이나 구리쇠나 뭐 주석이나 또 돌이나 이런 거는 다 타 버리고 순전히 금만 남도록, 왜? 금 외의 거는 다 탈 수 있는 그런 높은 고도의 불로 연단을 하면은 다른 것도 다 타고 제일 마지막에 타는 것이 은이 마지막에 탑니다. 은이 제일 안 탑니다. 은도 다 타 버리고 이제 금 외에는 다 타 버리고 남은 거는 금만 남도록 그렇게 정선해서 하는 그보다 너희들의 믿음은 더 세밀하고 더 정선하신다.

(86112850) 5


 
                    답변/관련 쓰기 수정/삭제     이전글 다음글           창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