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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들은 무엇이든지 그 알지 못하는 것을 훼방하는도다 또 저희는 이성 없는 짐승같이 본능으로 아는 그것으로 멸망하느니라  
■ 성경:65유다서01:10
 

'이 사람들은'
이 사람들은 무슨 사람들입니까? 이 사람들은 가만히 들어온 사람들입니다. 자기 지위를 떠난 사람들 자기 처소를 떠난 사람들 다른 색보고 따라가는 사람들


'이 사람들은 무엇이든지 알지 못하는 것을 훼방하는도다'
훼방이라는 말은 빗고 깍는다 말입니다. 깍는다 말인데 확실히 이렇게 잘못된 것을 확실히 알아도 그 정죄는 하지 안하고 "하나님께서 너 잘못됐다고 하는 것을 지적해 주기를 바란다 잘못된 것을 지적하기를 바란다" 고서 이렇게 하나님의 판단을 기다리고 했지 제가 그 사람에게 대해서 정죄하거나 심판해서 판단하거나 저주하거나 그런 일을 하지 안했습니다.

이랬는데 이 '가만히 들어온 사람들은 무엇이 듣지 알지 못하는 것을 회방하는 도다' 알지 도 못하고 훼방하는 것 훼방이라 말은 무슨 말이지요? 훼방이라 말은 빗고 깍는다 그 말입니다. 훼방이라 말은 점점 사람을 헐고 뜯는다 말입니다.


'알지 못하는 것을 훼방하는도다'
다른 사람이 한 것은 무조건 훼방하고 저 하는 것은 전부 무조건 잘했다고서 칭찬하고 다른 사람은 무조건 틀렸다고 생각하고 자기가 한 것은 무조건 잘됐다고 하는 것은 무슨 죄지요? 알지도 못하고 다른 사람하는 것은 무조건 틀리기를 원하고 원하는 중심을 가지고 있고 또 그거 틀렸다고 주장하고 자기 주장이 옳다고 주장하는 그것이 인간에게 무슨 죄입니까? 원죄 그것이 원죄성입니다.

우리는 여기에 미가엘 천사에게 배운다고 하면은 잘못한 것을 똑똑히 아는 것 잘못을 똑똑히 아는 것도 "하나님께서 그거 잘못됐다 그래 꾸중하시기를 원한다"는 거기에서 말한 것은 옳은 것은 옳다, 아닌 것이니까 아니라 하는 그 말이 되겠습니다. 거기에서 더 지나가서 그만 "너 이렇고 하니까 너는 어떤 정죄를 받는다 너는 저주 받는다 너는 하나님 앞에 큰 저주와 진노 받을 거리가 됐다" 이렇게 우리가 말하는 일은 혹 있습니다.

말하는 것은 그 사람에게 알리기 위해서 하는 그런 말 있지마는 중심은 그래서는 안됩니다. 아무리 잘못됐다 할지라도 잘못됐으면 잘못된 것을 저가 잘못됐다고 이리 말하고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잘못된 것을 잘못된 줄 알게 해달라고 하는 그것만 해야지 저거 잘못됐으니까 어떻게 심판할라 하는 그런 것은 하나님 앞에서는 우리가 별로 입을 열어서는 안됩니다.


'저희는 이성 없는 짐승 같이 본능으로 아는 그것으로 멸망하느니라'
사람은 영과 육으로 된 것이 사람입니다. 영은 물질계의 것이 아니고 영계의 것입니다. 마음은 물질계의 것입니다. 마음이라는 것은 그것을 성경에 혼이라고 표시한 것이 마음입니다. 마음은, '사람의 혼은 위로 올라가고 짐승의 혼은 밑으로 내려간다'(전3:21) 이렇게 성경에 말했습니다. 그러면 혼은 사람의 혼도 있고 짐승의 혼도 있으니 짐승은 영물이 아니요, 영계의 것은 아니고 물질계의 그 물질로만 되어진 그 짐승인데 짐승에게도 혼이 있습니다. 짐승에게도 마음이 있다 그 말이오. 그러면 마음이 있는 그것을 성경에서는 표시하기를 짐승은 그걸 본능이라 이렇게 말했고 사람은 그 이성이라 마음이라(유1:10) 그렇게 말을 했습니다.

어린 아이 갓 낳았을 때에는 짐승과 꼭 같은 그 본능적인 아주 저급적인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고 이성도 다 뜻도 저급적인 그런 걸 가지고 있고 그게 차차 차차 하면은 마음이 자라서 이성이 자라서 뜻이 자라서 감정이 자라서 또, 기억성이 자라 가지고서 이렇게 자라가는데 짐승이나 다 같지만 그 자란 것은 나중에 가서 발달이 다르다 그 말이오. 그래서 모든 안 믿는 그 철학자들이나 심리학자들이나 말하기를, 그러기에 그 영은 모르기 때문에 사람은 고등 동물이요, 또, 이런 것들은 다 저급의 동물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앙고라라는 원숭이는 사람만큼 큽니다. 그거는 뭐 운전도 하고 돌아다니고 아주 그렇게 그 사람의 말을 말 안 하지 저거끼리 말도 하고서 오만 거 다 하고 있는데 그 이성 발달이 아주 짐승 중에는 많이 발달된 것이 앙고라라는 그 원숭이입니다.

* 전3:21 : 인생의 혼은 위로 올라가고 짐승의 혼은 아래 곧 땅으로 내려가는 줄을 누가 알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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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는 이성없는 짐승같이 본능으로 아는 그것으로 멸망하느니라'
저희는 이성없는 짐승 같다. 짐승에도 이성이라는 그것이 저급이라 그런 것 있습니다. 저급인 이성이 있습니다. 왜 그러면 성경에는 없다 했습니까? 성경에는 없다고 한 것은 이성은 뭘 가르쳤나 이성은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뜻을 알고 이 피조물을 아는 그 수준 높은 데에 "옳다 그르다" 하는 걸 판단하는 것을 가리켜서 이치를 따지는 이치의 성품이라 해서 이성이라 했지만 서도 짐승은 하나님을 따지고 자기가 뭘 가지고 자기 아닌 그 무엇을 비판해 가지고 이렇게 하는 것보다도 그저 자기중심의 자기중심 자기위주로만 하는 그것 밖에 없기 때문에 그걸 가리켜서 이성이 없는 본능적이라 그렇게 말을 했습니다.

본능이라는 것은 자기에게 속한 것이요. 이성은 자기에게 속한 것이 아니라 인간 이성은 하나님을 위주로 중심해 가지고서 따져 나가는 것이 이성이라 말입니다. 짐승은 그것 없습니다. 그러면 지금 불신자들에게 이성이 있소 없소? 없습니다. 이성이 없습니다. 그거는 이성이 아니라 그거는 뭐 입니까? 본능입니다. 자기중심 자기 위주로 하기 때문에 그 본능이라 말입니다.

그러기에 칼빈도 이성은 고급으로 이렇게 인정을 했습니다. 그래서 갈빈이 영에 대해서 말하기를 영은 이성적 존재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이성적 존재라? 이성적으로 모든 것을 처리하는 것이 영이라 그러면 영에는 이성이 있습니다. 그렇게 영이 이성이라 말은 안하고 이성적 존재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이성없는 짐승같이 본능으로 아는 그것으로 멸망하느니라'
그러면 본능은 무엇인가? 자기를 근본으로 삼아 가지고 하는 것이 본능인데 본능으로 아는 것은 인간들로 아는 것입니다. 본능으로 아는 것은 인간으로 말미암아 알아지는 것이 다 본능으로 아는 것입니다. 그러면 또 이 진리와 영감은 인간으로 말미암아 아는 것입니까? 하나님으로 인해서 아는 것입니까? 하나님으로 인해 아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이성 없는 짐승같이 본능으로 살아서는 안됩니다.

본능으로 산다는 말은? 자기가 목마르니까 물 마시고 싶다 추우니까 따뜻한데 가고 싶고 또 더우니까 또 서늘한데 가고 싶고 하는 그거 자기 자체를 위주로 해 가지고서 움직이는 것이 그것이 본능입니다. 그러기에 어린 아이들이 날 때부터 뭘 입에다 되면 줄줄줄 빱니다. 빠는 것이 뭐입니까? 그게 이성입니까? 본능입니까? 그게 본능입니다. 그러기에 사람이 우리가 이성적으로 사느냐 본능적으로 사느냐? 본능이라는 그것을 죄의 이름으로 말하면 본능이 무슨 죄입니까? 원죄입니다.

본능적인 원죄. 그래 우리는 현실에 살아 나갈 때에 그러면 본능으로 사느냐? 이성으로 사느냐? 이성으로 사는 것은 자기 중심이 아니고 전인류를 중심해 가지고 이렇게 사는 그것이 이성에 나아가는 것인데 거기에서 피조물이라는 한계 안에서만 살지 안하고 이 조물주에게  까지 이 범위를 널리 잡아 가지고서 이렇게 살아나가는 그런 중에 있는 것은 이성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그런데 이성 그것보다 좀 위에 있는 것은 뭐입니까? 이성보다 위에 있는 것은 뭐입니까? 이성보다 위에 있는 것은 양심인데 양심은 이성위에 있습니다.

이성도 자기를 떠나서 그게 대한 사실에 대해서만 옳은 판단할라 하는 그것이 양심입니다. 양심은 자기 것이지만 자기를 자기에게 붙들지 아니한 것이 양심입니다. 자기에게 사정두지 않는 것이 양심입니다. 자기에게 붙들렸으면 그것은 양심이 못됩니다. 이성도 자기만이 생각하는게 아니라 자기와 모든 자기 밖에 있는 만물과 같이 한꺼번에 이래 가지고서 거기에서 옳은 것을 찿아서 할라 하는 것이 이성입니다. .

본능이라 하는 것은 자기 밖에 무엇이든지 생각하지 안하고 저 추우니까 추우니까 따뜻하게 해야 되겠고 더우니까 서늘하게 해야 되겠고 배고프니까 먹어야 되겠고 그러면 본능이 활동 범위가 넓습니까? 이성이 활동이 범위가 넓습니까? 이성이 활동 범위가 넓지요. 이성 활동 범위와 양심 활동 범위를 말하면 무엇이 넓습니까? 양심 활동 범위가 넓습니다.

그러면 양심 활동 그 범위보다 이제 진리 활동 범위는 어떻습니까? 더 넓습니다. 하나님과 존재 모두 다 들었습니다. 또 영감도 이 진리의 활동 범위보다 영감은 자존자에게부터 나왔기 때문에 그 범위가 더 넓습니다. 우리는 사람이 육체가 됐다 그랬는데 사람이 육체가 됐다 하는 그런 말은 다른 말로 하면 무슨 말인고 하니? 이성없는 인간이 됐다. 육체가 됐다 그 말은? 이성없는 인간이 됐다. 한 동물과 같이 돼 버렸다. 또 말하기를 그 사람은 이성은 있는 사람 이성적으로는 살지만 양심없는 사람이라 또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좀 경계가 됩니까?

이성으로만 살지, 그 사람에게는 이성뿐이지 양심없는 사람이라 이성이라면은 자기와 모든 존재가 이래 따져 가지고서 무슨 이해나 수지 계산이나 그런 걸 맞출 수 있는 그런 지혜가 있는 사람이라 그러니까 이성은 가졌지마는 양심은 없다 말이요 옳고 바른 것을 찾아 가질라니 양심은 없어 양심은 없는 사람이입니다.

또 양심은 그 사람이 양심대로 하려고 양심은 가진 사람이라 양심은 쓰기는 쓰는 사람인데 진리가 없다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까? 양심은 쓰는 사람인데 그 사람이 진리는 없다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까? 양심을 쓰는데 어찌 진리가 없습니까? 네, 양심은 지식의 지배를 받기 때문에 양심은 그 사람이 쓰기는 쓰지마는 서도 불교적인 양심이나 유교적인 양심이나 다른 이 종교적인 양심 또 일반 그 사회적인 양심. 그런 것은 양심 가지지마는 서도 진리는 없을 수 있습니다.

양심은 있어도 공산주의도 양심있고 이 종교들도 양심있고 도덕가들도 양심있고 다 양심있지만 그 진리는 거기에 없을 수 있습니다.

진리가 그 양심에 밑바탕이 되어 가지고 있을 때에는 그 양심을 가리켜서 무슨 양심이라 말합니까? 신앙 양심이라, 착한 양심이라 그러면 그 사람에게는 진리는 있지마는서도 영감은 없다 그럴 수 있소? 그렇게 할 수 있소?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그 진리 영감은 나누어지지 안하지만 사람이 제가 진리를 이용하니까 이용하는 것 같으면서도 그 진리가 이용을 당합니까? 안 당합니다. 그러나, 그 사람에게는 진리는 있지마는서도 영감은 없다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 사람에게 영감은 있지마는서도 하나님은 안 계신다 그렇게 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다.


'또 저희는 이성없는 짐승같이 본능으로 아는 그것으로 망하느니라'
그러면 본능으로 아는 그것으로 멸망하느니라 이 인간의 본능이 뭐지요? 원죄. 부패성 원죄 그것입니다. 그러면 자기 중심이라 말입니다. 그 본능이 진리도 아니라 진리는 하늘에서 내려온 객관 율법 아닙니까? 객관 법칙도 없고 성신의 감화도 없고 찍해야 있다 해봤자 인간의 지식, 인간의 마음, 인간의 생각, 인간의 중심 그것으로 하기 때문에 본능으로 아는 것으로 그 사람은 망하고 맙니다. 아는 것으로 망하느니라.

우리는 이 생활할 때에 제일 먼저 우리가 취할 것은 뭐입니까? 입학생으로서 우리 생활에 제일 먼저 취급할 것은 무엇입니까? 이성으로 해야 됩니다. 우리가 이성을 잃으면 안됩니다. "아 그 사람이 지금 이성을 잃고 있다." 사람에게 감정이라는 것이 있는데 이제 어떤 시기에 가서는 이놈이 전신을 거머쥐고 움직입니다.

또 욕심 그놈이 들어서 그 사람을 마음대로 거머쥐고 움직입니다. 정욕도 육체의 정욕과 또 하나 정욕은 뭐이라고 했지요? 안목의 정욕. 안목의 정욕은 자기의 몸에서 나는 욕심이 있고 눈으로 보는 눈으로 들어오는 욕심 그걸 가리켜서 안목의 욕심인데 안목의 욕심도 있겠고 귀 정욕도 있습니다. 귀정욕. 그래서 귀는 들어도 뭐라 했습니까? 차지 안해. 귀는 암만 들어도 차지 않는다 말입니다. 암만 그래 보와 끝이 없는 것인데 거 가서 그 붙어 가지고 날 뛰면 속는다 말입니다.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습니다.  이러니까 우리는 이성을 잃으면 안됩니다. 이성 잃으면 무엇 되지요? 네. 본능 되니까 본능 되면 그 뭐입니까? 짐승 된다 말입니다.

그만 이성 잃으면 짐승입니다. 그것으로 멸망한다 그 말입니다. 하나 했으면 그거 멸망이고 둘 멸망이고 그래 가지고 인간 제 신체를 제가 망치지 다른 사람이 망치는 사람 없습니다. 전부 재 신세를 제가 망쳐. 그러니까 망하는 길이니 우리는 본능으로 살아서 안됩니다. 그 본능도 좋은 것이지만 이성의 지배를 받는 본능이라야 되고 이성도 좋은 것이지마는 하나님의 진리의 지배를 받는 그 양심이라야 되고 또 진리도 영감된 진리라야 되지 영감에 떨어진 진리는 안된다 그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짐승으로 돌아가면 안됩니다. 그 이성을 잃게 되는데 이성을 잃게되는 것은 이성을 잊어버리게 하는 것은 무엇이 이성을 잊어버리게 하지요? 본능 본능 그것이 이성을 잃어버리게 하는 것 본능이 이성보다 강하면 이성이 쳐박혀 버리니까 본능 이놈이 주장을 해요 본능 그것이 무엇입니까? 원제인데 자기 중심 내나 정욕 사욕 그것이 본능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본능에게 이성이 매몰되면 안됩니다.


'멸망하느니라'
위에 죽 내려온 사람이 지금 이런 사람입니다. 이걸 여러분들이 딱 그려 가지고서 집에 가서 공부를 하면서 "아 보자 옛적부터 멸망 받기로 그 기록되어 있는 사람인데 이 사람은 불택자다 그런데 거기에 아닌 이 사람들도 거기에 가담해 가지고 지금 그런 꼴하고 있구나" 그 사람 어찌 되느냐 쭉 내려오면 그 사람의 행위는 어떻다 하는기여 쭉 나와 기록했으니까 요것만 알아도 여러분들이 당회든지 노회든지 총회든지 제직회든지 그렇지 않으면 여러분들 학생회라도 모여가지고 보면 이 유다서에 있는 이단을 가르치는 이 진리를 안경으로 딱 쓰고 보니까 그 사람에는 "아 이 말은 뭐이다. 저 말은 뭐이다" 다 알 수가 있다 그 말입니다.

(주해공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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