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
너희가 본래 범사를 알았으나 내가 너희로 다시 생각나게 하고자 하노라 주께서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여 내시고 후에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멸하셨으며  
■ 성경:65유다서01:05
 

유1:5

'너희가 본래 범사를 알았으나 내가 너희로 다시 생각나게 하고자 하노라'
그럼 아는 것과 생각하는 것이 다릅니다. 아는 것은 지식으로 알고 있는 것이고 지식으로만 알고 있으면 그 사람에게 교만이 나오지 구원이 나오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지식으로 알고 있는 그것이 그 현실 현실을 만났을 때에 자기 몸밖에 현실을 만났을 때에 그 말씀이 생각나야 될 때도 있고 또 몸밖이 아니고 자기 혼자 마음안에서 자기 안에서 무슨 작용이 나올때에 그때 이 말씀이 생각나야 할 때도 있습니다.

이 말씀이 내 몸안에서 나를 정리 정돈 정비 모든 잘못된 것을 정리하고 이 모든 것을 이렇게 질서있게 잘 나열하고 정비하고 그 없는 것을 더 갖추어서 구비시키는 것이니까 그렇게 하려고 이 말씀이 우리에게 역사하고 우리가 영접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영접할 때는 이 말씀이 와야 우리에게 정리할 것도 정리해 주고 정돈할 것도 정돈해 주고 또 정비할 것도 정비해 줍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자기가 지식적으로 알고 있는 그 말씀이 하나님께서 그 말씀에 해당된 현실을 주실때에 그 말씀이 생각나서 그 말씀을 생각하면 그 말씀이 생각나 가지고 다 되는 것이 아니고 그 말씀이 내 안에 와서 내 심신을 정리하고 정돈하고 정비하고 또 그 말씀을 생각할 때에 그 말씀이 내 몸밖에 있는 모든 내 행위. 접촉의 행위라면 대인관계인데 대인의 행위에 이 말씀이 와서 정리할 것을 정리하고 정돈할 것을 정돈하고 정비할 것을 정비하데 이것이 다 자기가 말씀을 지식으로 기억하고 있는 것으로만 아니고 기억하고 있는 것이 그때 그때에 이 말씀에 도움을 구하고 이 말씀에 인도를 구해서 이 말씀이 인도하는 데에는 틀림없고 이 말씀이 도울 수 있도록만 내가 그 도움을 반대하지 아니하고 이 말씀이 도울수 있도록만 내가 내 자체가 구하는 사람이 되면 이 말씀은 전능의 말씀이기 때문에 할 것이 염려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다 생각에서 시작합니다.

1. 그 말씀을 알고
2. 아는 것 그 다음에 말씀을 생각하는 그것에서부터 시작이 되며
3. 그 다음은 이 말씀대로 정리하고 정돈하고 정비해야 그래서 비로소 구원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럼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내가 무슨 독침 모양으로 지키는 것으로 이렇게 생각을 우리가 가지는 것만큼 그렇게 말씀을 해났습니다.

'계명을 지키느니라' 이랬으나 실은 계명을 지키는 자가 아니라 이 계명에게 지켜주심을 받는 자라 말입니다. '그 이름을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하는 것처럼 그런 성질의 말입니다.


'다시'
'다시'하는 그것은 시간을 말합니다. 그 시간은 무슨 시간을 말하는 것입니까? 현실입니다. 그 현실을 대외에 대한 것. 대내에 대 한 것. 그때그때 이 말씀이 와야 우리를 정리 정돈 정비하는데 이 말씀이 무엇이기에 이 말씀이 그 전에는 무엇을 한 말씀입니까? 없는 가운데에 모든 것을 지으신 말씀입니다. 그분이 와서 라오디게아 교회에 말씀 하시기를 창조의 근본 되신이가 가라사대 하는 것은? 그분이 창조하고 창조한 것 그 능력 가지고 우리에게 온다 말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을 다시 생각나게 한다' 는 말은? 자기의 현실에 그 말씀이 와 가지고 정리, 정비, 정돈을 할수 있는 그런 장소 그런 시기를 가르쳐서


'다시 생각나게 하고자 하노라'
그럼 그말은? 그 말씀을 이용 할 라고 생각하는 것입니까? 그 말씀을 지키려고 생각하는 것입니까? 그 말씀에게 지켜 보호하심을 입기 위해서 생각하는 것입니까? 지켜 보호하심을 입기 위해서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말씀은 우리보다 무한히 탁월하게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잘못하면 위대한 사람들처럼 대통령 직영이라 해서 지키는 것처럼 그렇게 우리가 생각하기 쉽습니다. 이 말씀을 내가 지키는 것이 아니고 그 말씀을 내가 떠나지 않으면 그 말씀이 나를 지켜주십니다.

그러기에 제일 크신 분이 누구십니까? 하나님이시지요. 그다음에 큰 것은 무엇입니까? 진리입니다. 진리는 사람보다 무한히 탁월하게 사람보다 위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진리가 크냐? 사람이 크냐? 진리위에 사람이 있느냐? 사람위에 진리가 있느냐? 이것을 혼돈하기 쉽습니다. 누구를 위해서 있는 것입니까? 진리를 위해서 사람이 있는 것입니다.


'주께서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여 내시고'
이 말씀을 우리에게 거울로 주신 것입니다. 구원해 내심 가지고도 멸망을 다하고만 것처럼 오늘에 애굽은 무엇을 상징한 것입니까? 세상을 상징한 것입니다.


'애굽에서 구원해 내시고'
이 세상에서 구원해 내시고 그럼 애굽에서 구원해 내셨다 우리를 세상에서 구원해 내셨다 하는 것을 우리가 ○○ 때문에 알려 해도 '아 주님이 날 세상에서 구원해 내셨는데  어떻게 하였다'는 것을 잘 모릅니다. 그러나 이제 구약에 있는 이스라엘을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구원해 내실때에 어떤 역사로 구원해 내셨습니까? 그걸 생각해보면  그때 하나님께서 그 역사로 구원하심 같이 지금도 꼭 그 역사로 우리를 구원해 내십니다.

애굽에서 열 가진 재앙한 것이 다 애굽이 신으로 종교로 삼아서 있든 그런 것들로 다 재앙을 내렸는데 파리 신이 있었고 개구리 신이 있었고 메뚜기 신이 있었고 또 나일강 신이 있었고 다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걸 다 모르지만 이걸 볼 때에 자꾸 대조해 보라는 말입니다.

'이런 재앙을 내렸다' 그 재앙을 내리니까 우리가 떨어져 나와 해방 받은 자가  되었습니다. 우리를 세상 이런 저런 크고 작은 온갖 것에서  해방시키기 위해서 그것을 치신 것을 우리가 압니다. '뭐 어떻게 치시어 가지고 어떻게 구원하셨다' '어떻게 그걸 멸해 가지고 우리를 예수님 믿는 사람 만들었다' 그저 이스라엘을 열 가지 재앙으로  하나님께서 능력으로 구원하신 것처럼 우리도 다 그 종류에 순서에 하나님의 권능의 역사가 있어 이렇게 했지만 그렇치 않는 사람은 자기가 잘나서 예수님 믿고 제가 믿고 싶어서 믿고 이렇게 생각할 수 있지만 우리는 이럴 때에는 묵상하는 것을 '아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출해 내셨다'는 말씀을 했습니다.

'나는 너를 애굽에서 종 되었던 것을 구원해 냈다' 그런 말씀을 10계명 초두마다 말씀하셨는데 '나는 하나님께서 나를 이 세상에서 인도하실  때에도' 이런 순서, 이런 방편, 이런 종류의 것들이 있었나? 하는 것을 자기가 한번 과거를 반성하면서 명상해 보면 자기가 몰라 그렇치 참 그때와 꼭 같은 그런 권능으로 모든 애굽 그 신들을 다 깨뜨리고 애굽의 신들을 다 무시하고 멸시하고 구원해서 이렇게 하신 것처럼 우리가 과거에는 보 잘 것 없는 것을 신으로 삼아 가지고 그렇게 걸려 가지고 있었습니다.

지금 보면 그것 무서운 일도 아무 것도 아니지만 그 사소한 일에 우리가 걸려 가지고 있든 그런 자들이라 하는 것을 반성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또 이런 저런 죽음의 사상, 죽음의 운동, 죽음의 동류들이나 세상의 이런 정실 저런 정실 그게 걸려서 떠들고 하든 그런 것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걸 다 끊고 갈라내어 우리를 구출하신... 자가 세상에서 구출해 나온것이 얼마나 어렵다는 것 하나님께서 얼마나 큰 권능으로 구출한 이것을  깨달을 때에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구출한 것이나 우리를 세상에서 구출한 것이나 꼭 같습니다.

그것이 억지로 주워서 된게 아니라 실지로 그런 것을 우리가 잊어서 그렇지 실상을 그렇다 그기요 그런고로 그걸 생각하면 과거를 반성해서 생각 할 때에 사람들이 말하기를 "그전에 지내 올때는 그런 일을 무의미하게 지내 보냈는데. . ." 그걸 생각해 보면  그것 전부는 우리 구원을 위해서 없어서는 안될 그런 조건이였다는 것을 우리가 느끼게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한 걸음, 한 순서 닥쳐진 그 모든 것이  내 구원을 위해서 과연 하나님께서 조성하셨고 내게 다 역사한 것이구나 하는 것을 자기가 느낄때에는 한 토막 한토막의 그 역사에서 감사의 눈물이 안나올 수 가 없고 하나님께서 나를 구원하기 위해서 이렇게 역사하신 것이 깨달아 질때에 점점 분명해지고 확고해짐으로써 자기 신앙이 든든히 서지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자꾸 그걸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주께서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여 내시고'
'애굽에서 하나님께서 큰 능력으로 인도해 내셨다' 나를 세상에서 구원해 내셨다 그러기에 안 믿을 때에 이런 경험 체험하는 것이 그 모든 것을 믿고나서 보니까 우연히 아니라 내 구원을 위해서 조립한 것 같이  탁탁 순서를 해서 한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것이 자기에게는 전부 주님의 사랑이요, 주님의 인도요 주님이 내 구원을 위해서 주권적으로 섭리하셔서 그 모든 것을 요렇게 물 샐틈 없이 딱딱 들어맞는 그 순서를 통해서 날 끌어가지고서 여기까지 날 끌어 왔다하는 것을  그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아 지정 감격한 그 사람이면 그것 만침 미래에 대해서 하나님을 확실히 믿고 바래보는 것이 생겨집니다.

그러기에 '주께서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해 내시고' 구원해 내신 그것을 우리가 그냥 "애굽에서 구원해 냈다" 그냥 그래 알 것이 아니라 이 성구로서는 "나를 세상에서 구원해 내셨는데 과연 내게도 장자 재앙이 있었나? 파리 재앙이 있었나?" 모두 다 애굽 사람들이 섬기던 것은 범실론 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들이 섬기던 신들은 전부 유력하게 섬기던 신들에게 재앙을 내렸습니다.

'재신 후에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멸하셨으며' 하나님께서 강제로 믿으라고 합니까? 믿을만한 그런 증거를 많이 보여주고 많이 믿을만한 자료를 줬는데 안 믿는 것을 하나님께서 책망을 하십니까? 그런 것 없이 당장 안 믿는다고 책망을 하십니까? 하나님께서 믿지 아니하므로 멸망을 시켰습니까? 안 믿는 그것을 큰 책망하시고 벌을 주신 것인데 믿지 않는 그것을 하나님께서 믿을만한 그런 뒷받침도 해주지 아니하시고 안 믿는다고 했습니까?

뒷받침을 해준 것이 애굽에서 인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하나님께서 참 뒷받침 될만한 증거가 될만한 그런 하나님의 섭리 역사를 우리에게 보여주시고 했는데 그걸 저버리고 하기 때문에 우리가 현재로써 미래에 믿는 그 결과가 나오지를 아니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 사데교회가 왜 살았다는 이름만 있고 실상은 죽어있는 교회가 되었느냐 하면 들은 것, 받은 것 다 잊어버렸다 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믿는 사람은 하나님과 자기와의 관련된 그것을 하나도 빠짐없이 기억하고 그것을 자꾸 추억하고 새김질해야 합니다. 그러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나는 너를 애굽 종 되었던 데에서 인도해 낸 하나님이다." 그 말을 자꾸 거듭거듭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인도 받아 나올 때에 그때에 자기 내에 닥쳤던 그 어려움보다 더 얼마나 큰 어려움을 닥친 것을 주님으로 말미암아 다 해결 지운 것을 기억하고 그걸 기억하는 데에서 힘이 나오고  또 그걸 기억하는 데에서 믿을 마음이 나오고 또 미어지는 마음이 나오고 이렇지 그러기 때문에 우리의 신앙에 있어서 과거는 그것이 뿌리와 같고 미래는 밭으로 돋아올을 잎사귀와 같고 현재는 둥치 나무가지 그와 같습니다.

둥치나무 잎사귀 그게 다 윌 현실입니다. 거기에서 새움이 터져 나오는 그것을...
뿌리가 실해야 둥치가 실하고 뿌리와 둥치가 실해야 그 다음에 새 움이 실하게 나오지  실하지 않으면 새움이 실하게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믿는 사람들이 자기와 하나님과 과거의 그것을 찾아가지고 "참 하나님께서 나를 위하여 큰 일을 하셨다" 그것을 생각해야 감사가 나오고 눈물이 나오고 또 현재에 확실히 용기가 나오고 현실에 대해서 절대적인 소망이 굳게 나와지면 그 사람은 구원을 잘 이뤄 나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과거는 과거로 청산하고 버리는 사람되면 안됩니다.

다윗이 가장 하나님 앞에 기쁨이 된 것은 자기의 죄를 모태에서 잉태되는 그기까지 과거를 추억하고 이래가지고 과거로 인해서 자기가 언약한 자가 과거로 인해서 더 연약한 자로 알았고 과거로 인해서 자기는 더러운 자인 것을 알았고 과거로 인해서 얼마나 위험한자 이며 과거로 인해서 얼마나 망령된 자인 것을 알았고 또 과거로 인해서  얼마든지 자기에게는 유망한 승리인 것을 알았고 이래서 죄인인 것도 과거로 인하여 의인된 것도 과거로 인하여 희망 있는 것도 과거로 인하여 약한 것도 과거로 인하여 과거 그것이 현재에 와가지고 거름같이 이용이 되어졌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과거를 참 명상하는 것이 좋아요 저도 경험으로 보면 제일 은헤가 깊이 들어갈 때가 어떤 때인고 하니? 하나님의 그 자존에서부터 생각할 때에 그때의 그 은혜가,... 그 사람을.... 자기의 옛날을, 자기의 어릴 때부터 그기서 "내가 이런 사람이 되었으면 어찌 됐겠나 저런 사람이 되었으면 어찌 됐겠나" 그러기에 모든 사람이 생각해 보면 그게 다 이리 망하고 저리 망하고 "어떻게 나에게 이렇게 인도를 베푸셨나?" 참 감사의 그 눈물 감사의 기쁨이 용솟음 안 칠수가 없습니다.

'세상에서 인도해 내시고' 우리를 인도해 내신 것이 큰 힘들어서 내신 것을 우리가 다 기억해야 합니다. 거짓말로 그래 만든 것이 아니고 인도해 내신 것을 모르셨는데 그것을 깨달고 기억하고 추억하고 알게되면 아는 것만큼 자기는 현재에 대해서 조심할 것이 생겨지고 과거를 아는 것만큼 현재에 대해서 조심할 것이 생겨지고 현재에 겸손한 사람이 되어지고  주님에게 부르짖는 사람이 되어지고 지금까지는 내가 검어쥐고 날뛰다가 실수했다 말이요 그러나 과거를 아는 것만큼 주님에 맡기는 사람이 되어집니다.

과거를 아는데에서 자기의 부족을 알게 되고 자기의 더러운 것을 알게 되고 주님에게 바라봄이 더 의지하게 되고 주님에게 맡김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를 때에 한말로 말하면 자기는 부인되고 자꾸 주님은 자기에게 확고해 진다 말입니다. .


'후에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멸하셨으며'
안 믿는 사람을 멸하셨는데 왜 안믿는 사람이 되었습니까? 과거를 잊어버렸기 때문에 안 믿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자기내들이 과거에 그것을 경험하고 체험한 일이지마는 "과거는 그랬지마는 앞으로 어찌 될지 알겠나?" 그게 무슨 죄입니까? 그것은 시험 죄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과거를 자기가 안 믿을 때에  "과거에 위험한 일도 많았다" 그래서 오늘까지 구원해서 이리 저리해 가지고 주님이 나를 구원한, 세상에서 나온 이 과거를 우리가 추억하고 회고하면서 현재를 믿음으로 나갈수 있는 거기에서 우리가 됩니다. 믿음으로 나갈수 있는 것을  과거에서 얻어야 됩니다. ''내가 과거에 어떤자 인데, 만일 하나님이 안 계셨으면 어찌되었을까?' 뭐 자랑할 것이 하나도 없고 주님 앞에 머리 숙일 것 뿐이고 아무 것도 나타낼 수 없는 존재입니다.

(주해공과)


'너희가 본래 범사를 알았으나'
알고 있지만 생각하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79032350)


'범사를 알았으나'
범사라 말씀 하신 것은 사람마다 아는 지식이 같지는 못하고 각각 다르기는 하지만은 사람마다 제대로는 지식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범사를 알았다는 말씀은 모든 것을 다 알았다는 말씀이 아니고 사람마다 자기대로는 가진 지식이 있는데 이 지식을 네가 지식으로만 가지고 있지 말고 이 지식을 사용하라는 말입니다.

(73032353)



'주께서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여 내시고 후에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멸하셨으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인도해 내실 때에 전부 다 하나님의 기적으로 인도해 내셨고, 또 하나님의 축복으로 그들을 다 보육하였던 것입니다.

그러기를 얼마나 했는고 하니 40년 동안이나 계속해서 그렇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 백성 중에서는 하나님이 그렇게 인도하신 기적과 축복의 역사를 저희들이 친히 눈으로 봤고 또 하나님이 어떠하신 분인 것을 저희들이 알만치 많은 하나님께 대한 지식을 들었고 배웠고 이랬으나 그들이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기 때문에 안타깝게도 그 사람들이 다 광야에서 가나안에 들어갈라고 준비하다가 들어가지 못하고 다 죽었습니다. 다만 몇 사람만 들어갔습니다.

여호수아 갈렙만 들어가고 나머지기 사람은 다 광야에서 난 자손들만 들어갔지 애굽에서 나온 사람들은 거기서 다 멸해졌습니다. 성경에, 신약에 거기 대해서 해석하기를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왔으나 믿지 아니함으로 모든 사람들이 다 광야에서 멸해졌다 그렇게 유다서에 똑똑히 밝혔습니다. 그때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 대해서 말씀하신 말씀입니다.

'범사를 알았으나'

"범사"라고 말씀을 하신 것은
사람마다 아는 지식이 같지는 못하고 각각 다르기는
하지만은 사람마다 제대로는 지식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범사를 알았으나’
범사를 알았다는 말씀은
모든 것을 다 알았다는 말씀이 아니고
사람마다 자기대로는 가진 지식이 있는데
이 지식을 네가 지식으로만 가지고 있지 말고
이 지식을 써 먹으라.

네가 현실을 대해서든지 과거를 대해서든지
미래를 대해서든지 자기를 대하든지
자기 아닌 타를 대하든지

네게 있는 지식을 하나도 쌓아두지 말고
그대로 창고에 물건 제놓는 모양으로
이 지식을 네가 아는 것으로만 가치있는 것으로

(여기는) 그런 시험에 들지 않고 아는 대로 그 지식을
써 먹는자 되도록 하기 위해서 다시 성경을 기록해
보낸다 하신 말씀인 것입니다.

그 다음에 몇가지를 예를 들어났읍니다.
사람이 아는 것으로 그 지식에 효력있는 줄로 알고
아는 것으로 그 지식에 가치 있는 것으로 알고

이 지식을 자기가 활용하지 아니하는 요기에서
실패되는 것을 몇가지 예를 들어 났읍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해 내실 때에
사람들이 상상 못할 만치 방해하는 것이 많았고
인도해 내시기가 심히 어려워서

인간으로서는 아무도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할 만한
그런 능력이 없는 극히 어려웠으나

하나님께서 그 모든 어려움 중에서
하나님에 지혜와 능력과 사랑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해서 해방시켰읍니다.

그러나 그 후에 사람들이 믿음을 지키지 아니함으로
여호수아와 갈렙 그 두사람만 가나안에 들어갔지
나머지기 사람들은 전부 광야에서 다 멸해졌읍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특수한 사랑으로 특수한 기적과
특수한 역사로 이스라엘 백성을 참 해방 받을 수 없는
그 어려운 첩첩 그 원수의 결박속에서 인도해 내셨으니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극히 사랑하신 것입니다.

또 큰힘이 들었읍니다. 큰 수고를 하셨읍니다.


이렇지만은 일단 인도해 내시고 난 다음에
그들에게 부담된 것이 믿음입니다.

인도해 내실 때에는 그때는 그들에게 믿음은 상관없소
하나님께서 혼자 단독 그 역사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나오지 않을래야 안나올 수도
없었고,

또 그들이 붙들려야 붙들수 없는
순전히 하나님의 역사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해 내셨지만은

일단 내신 후에는 그들에게 분담된 그 부담이 있으니
그것은 무엇이냐 ?
하나님에게 순종하는 이 믿음이었읍니다.

그 안에는 이보다 더 말할수 없는 큰 과오가 있었지만은
하나님은 그를 상관치 아니하시고 인도하셨읍니다.

그러나 일단 인도해 내시고 난 다음에는
그들에게 하나님에게 순종해야 되는 이 믿음에 멍애를
매웠읍니다.

이 믿음에 멍애를 매워서 순종으로만 구원이 되고
순종외에 다른 뭐 수단이나 방법이나 모략이나
어떤 방법으로도 하나님이 허락하신 그 가나안 복지에
가지 못하고

또 거기에 방해하고 대적하는 그 모든 대적들도
어떤 방편으로도 그것을 물리 칠수 없고,

오직 하나님에게 순종하는 요 믿음 하나만 가지고
모든 것을 해결짓도록 그렇게 하나님께서 요 믿음의
멍에를 메어놨읍니다.

그 때에 무지하든지 약하든지 믿음을 가졌을 때에는
전진을 했고

믿음을 가졌을 때에는 대적들이다 물러갔고
믿음을 떠나가지고는 아무 방편이 없었습니다.

그런고로 주께서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여 내시고
후에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멸하셨으며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이렇게 사랑하였지 만은

이렇게 큰 수고하시고 큰 힘들어 인도하셨지 만은
인도받은 후에는 믿음지키지 않음으로 멸망을
받았읍니다.

그런데 믿음 지키지 않은 것이 어디서 생겨졌느냐 ?
그들이 몰랐던것 아니라 다 알고 있었지만은

저들이 당면한 현실에서 알고 있는 지식을 다 활용해서
생각했더라면 믿음을 지킬수 있었을 것인데

지식을 지식대로 그대로 두고
저희들의 그 현실을 아무 생각없이
하나님께 들은 계명도 있었고
하나님의 종을 통해서 말씀하신 말씀도 있었고

또 경험도 있었고 체험도 있었고 온갖 지식이 있었는데
그 지식을 하나도 활용하지 아니하고
하나도 써먹지 아니하고

다만 저희들의 욕심대로 저희들의 소원대로
이대로 행해서


저희들의 전 생활은 자기가 주장을 해서
자기 주장대로 살았지
하나님에게 순종하는 이 생활을 하지 아니한 그것 때문에
멸망받았읍니다. 간단합니다.

그들이 애굽에서 듣고, 보고, 경험하고 체험한
하나님에게 받은바의 지식이 있으니
이 지식을 가지고 좀 생각해 봤으면
그들이 믿음을 안 지킬수 없었을 터인데


왜 ? 하나님이 아니면 저들은 사는길이 없고 멸망밖에
안되기 때문에 순종 안할 수 없고 의지 안할 수 없고
바라보지 않을수 없고 할터인데

이제 과거에 경험,체험 듣고 보고한 모든 지식 다 버리고
알고 있기는 있지만은
생각을 해보지 아니하고 써 먹지 않고
요 지식을 다 버렸읍니다.

생각해 보지 않고 저 좋은대로 제 생각되로
저 소원대로 했소.

저거 생각나는대로 저희들의 원하는대로 말도 하고
행동도 하고 했읍니다.
그것 때문에 멸망받았소

(79032353) 6

 
                    답변/관련 쓰기 수정/삭제     이전글 다음글           창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