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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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의 주 앞에 섰는'
이 세상에서 주님이 인증(認證)하시고 또 세우시고 함께 하시는 자라는 말입니다.
'두 감람나무와 두 촛대'
슥4:3을 인용한 것이라 하여 여호수아와 스룹바벨을 가리킴이라고 해석하는 이가 있으나 본절은 과거 사람인 그 인물들을 가리킴이 아닙니다. 그들은 그 시대에 하나님의 올바른 사역자들이며 또 빛이 된 신실한 자들입니다. 여기에 말한 것도 그 인물들은 아니나 사역상, 성질상 그와 같은 의미를 가진 감람나무는 기름을 내는 나무요 등대는 불을 켜는 것인데 둘이 합하면 빛을 나타낼 수 있는 것이니 이는 신약시대의 교회가 세상의 빛의 직분을 가지고 있음을 가르치고, 2절에는 이를 두 증인이라 하였으니 신약시대의 신자는 빛에 대한 교회의 표상이 되는 중대한 책임을 보이는 것입니다.
'두 감람나무'
1) 감람나무를 예수님으로 해석하는 이도 있으니 이는 잘못이요
2) 두 감람나무는 예수님이 아닌 자로서 아담 하와가 범죄로 빼앗긴 그 생명을 다시 회복받아 산 영이 된 자이니 예수님과 동등되는 두 인물이라는 잘못된 해석도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지 아니하고 이 감람나무인 그 사람만 믿어도 구원 얻을 수 있다고 하여 예수님과 성신 대신 감람나무를 믿어 구원얻는다고 하는 파들도 있습니다. 그들은 말하기를 예수님을 믿어 피와 전 진액이 되는데 대소변으로 나오고 새로 바꾸워 넣으면 생령이 된다고 합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에게 주었던 생령이 그들이 범죄로 남겨 두었던 생령을 대신 받은 자라 하여 하나님의 교회에 생령이 셋이라고 합니다. 예수님과 두 감람나무인 2인과 합하여 셋 생명이므로 감람나무 나기 전에는 예수님만 믿어 구원 얻을 수 있으나 두 감람나무가 나오면 셋 생명 중 어느 것을 믿어도 구원 얻기는 일반이라고 합니다.
이들은 차자 심하여져 이제는 감람나무인 자기만 믿어야 구원을 얻는다고 주장까지 합니다. 그들은 찬송할 때에 성신이여 강림하사를 '감람나무 강림하사' 라고 하고 예수여 비노니 하는 것을 '감람나무 비노니' 라고 합니다. 이는 다 어린아이도 알 수 있는 이단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감동이 많다 하여 따르고 있습니다. 한국이 합하여 물밀듯 믿고 있으니 이것이 한국교계의 무실력과 무진리적인 감상주의를 나타내는 것이며 이는 교역자들이 불건전한 신비주의로 기른 것과 또 신앙의 진가를 시험하는 시금석이며 또 심판입니다. 이들은 확신을 가지고 말합니다. 확신을 얻은 근거는 실제로 피와 모든 액체가 현저히 대소변으로 유출되는 것을 보았다고 합니다. 우리는 보았을지라도 성경적이 아니면 부인하여야 합니다. 박태선씨의 이러한 주장은 다 감각적 신앙이니 곧 주관적인 신앙입니다.
3) '두 감람나무'는 성령님과 성령님의 계시한 성경 말씀을 근거로 한 은혜인데 이는 신약시대의 영감과 말씀의 역사요 영감과 말씀의 권세를 가진 사람이요, 또 '나무' 라고 한 것은 기름을 내는 나무이니 성령과 말씀의 권위자를 양성하는 기관들과 인물들을 가리켜서 말함입니다. 특히 둘이라고 가리킨 수는 기록하는 영감과 증거하는 말씀의 사람이라는 것을 구별하는 것입니다.
1절의 성전과 제단과 경배하는 생활과 3절의 두 증인의 생활하는 그 차서(次序)를 밟은 후에 특수한 권세를 얻어 '감람나무'의 사역을 하는 권위를 가리켜 말합니다.
이는 특히 상술한 바와 같이 네 가지 순서의 그 자본을 가져야 얻을 수 있는 것이요 네 가지의 그 생활도 은밀한 의미에서는 전적 은혜이나 외부적으로는 자기가 하는 것 같은 방편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생활입니다. 쉽게 말하면 '두 감람나무'는 증거하는 말씀의 권위의 사람이요 영감의 권위의 사람입니다. 감람나무는 빛을 발하게 원료를 공급하는 것이니 곧 진리의 신, 생명의 말씀이니 사람들에게 빛을 발하게 하는 진리와 생명인 영감과 말씀을 공급하는 것을 가리킴입니다.
'두 촛대'
1) 두 촛대는 증거하는 촛대라 함이니 하나님과 하나님의 구원 의지인 복음 곧,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것을 가리켜 둘이라고 합니다.
2) 촛대는 마5:14과 요1:4에 성도를 가리켜 빛이라고 한 그대로 빛의 생활을 하여 특히 진리와 생명을 나타내는 것을 가르침입니다. 빛 자체는 예수 그리스도요 성도는 빛을 맡은 자인데 여기에 기록된 촛대는 빛을 맡은 교회요 또, 예수 그리스도인을 가리킴입니다. 빛은 곧 예수님의 생명 우리들의 중생된 새생명 곧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또 진리 자체가 살고 있는 진리와 합일되는 승리의 생활들을 상징함입니다.
말과 행위로 인격으로 구원과 멸망과 참 신과 거짓 신과 죄와 의와의 정체를 드러냅니다. 어두운 밤에 등불이 각 물형(物形)과 물색(物色)을 드러내는 것처럼 증거하는 빛의 생활 곧, 암흑을 멸하는 승리의 생활을 상징함이니 이도 3절에 얻은 권세로 이루어지는 생애입니다. 이러한 성도의 영광된 생애의 권세도 성전 제단 경배 증인 생활을(스스로 은밀한 의미에서는 은혜이나 외부적으로 자기가 행하는 것같음)하는 자에게 주시기로 허락한 계약적 의미를 가진다. 신앙생활은 스스로 힘써야 하나니 이것이 없는 자가 금 한 냥쭝과 한 므나를 땅과 수건에 묻어 놓은 책망 받을 생활입니다.
(570300)
'두 감람 나무와 두 촛대니'
굵은 베옷을 입고 예언하는 이 사람이 두 감람나무요, 두 촛대인 것입니다.
'감람나무'
감람나무라고 말씀하신 것은 성령의 사람을 말합니다.
'촛대'
촛대는 이 세상에서 아버지 노릇, 어머니 노릇, 자녀 노릇, 사장 노릇, 직원 노릇, 학생 노릇, 선생 노릇, 남편 노릇, 아내 노릇, 국민 노릇, 상인 노릇, 공무원 노릇을 옳게 바르게 참되게 하려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것을 환하게 보여 주는 사람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성전 생활, 제단 생활, 경배 생활, 증인 생활, 예언 생활, 감람나무 생활, 촛대 생활을 해야 합니다. 이 생활을 하면 아무도 해하지 못합니다.
(주해공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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