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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2:19
'나중 행위가 처음 것보다 많도다'
나중 행위가 처음 것보다 많다 함은 상기한 다섯 가지 행위에 대한 질과 양이 점점 더 진보(進步)되고 향상하며 강하여진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칭찬하심이 아니고 크게 책망한 것이 그 다음 20절을 보다 분명합니다. 점점 열심 있게 나가는 그것이 곳 이세벨 용납한 그런 작동들이니 외면은 가장 주께 대한 충성한 것 같으면서 그 이면의 실(實)은 주의 뜻을 대적하는 운동이 되어지므로 이 두아디라 교회에는 소위 사탄의 깊은 것을 알지 못한다는 옳은 자들이 교회를 주장하지 못하고 미루어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들의 열심을 낼수록 이상 10가지 외식이므로 전지하신 심판의 주로 큰 댓가 낸 주인공으로 나타나사 멸하시고 찾으시겠다는 것입니다. 금일도 이런 사이비한 외식교회들에게 성도는 미움과 순교를 당합니다.
믿음으로만 주와 연결되는 것인데 믿음은 사랑 다음 셋째 순서의 위를 찾아 하였으니 그들은 기독교 사업주의 도덕주의 사회주의가 분명하고 인내를 보면 정치적인 모략지혜가 농후한 정치주의가 분명하였습니다. 믿음의 토대 위가 아니니 주와 연결 없는 순 인본주의의 것들로 시작하여 사업하기 위하여 서로 사랑하고 사업과 사랑을 세우기 위하여 믿음을 주장하는 방편을 썼고 하나님 섬기는 것을 간판으로 삼아 저희들의 목적 달성인 사업 위하여 서로 인내하였던 것입니다.
올바른 순서는
1) 믿음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섬기기 위하여 서로 사랑하고 그 명령순종으로 사업을 할 것이며 그의 지혜 곧 뜻대로 경영하고 그에게 얻은 능력으로 시작 하였으므로 그가 잘해주실 줄 알고 참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2) 그러므로 외식의 형식과 강약과 성패의 그것보다 그같은 이면의 것이 하나님이 주장하시는 신본의 것이냐 불연이면 인본의 것인가가 문제입니다. 언제나 말세성도는 공회나 치리회나 교회나 은사교권이나 기본 교권이나의 진가(眞假)를 심사할 때에 이 점에 총 중점을 두어 주시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이 동기가 잘못되면 방법과 결과가 좋으면 좋을수록 많은 사람은 속고 피해는 많습니다.
진리운동과 개혁운동에도 장기간의 고독과 쇠퇴의 암흑을 만날 때에 사람들은 인재욕과 흑암욕에 갈정(渴情)을 가지는 연약한 인간입니다. 악마는 이것을 잘 알므로 이럴 때마다 자연인재와 인위성사를 가져와서 유혹하게 됩니다. 10년 수절에 하루밤 실수로서 그 익일 오는 본남편에게 변절자로 실패한 거와 같이 진리의 생활의 절정의 고독과 쇠퇴는 마25:6 밤중과 같은 것이니 신랑되신 주께서 완승의 선물을 가지시고 문 앞에 이른 때입니다. 악마가 유혹에서 실패하고 퇴장하기 전에는 주님은 그 광경을 보시면서 좌우판정을 기다리시는 순간입니다.
① 인재냐 ② 주님이시냐
① 전성(全盛)이냐 ② 주의 뜻이냐 함이니 선자(先者)를 택할 때는 주님 떠나시고 후자를 택하여 인내로 노아같이 고요히 주만 기다리는 자에게 주님은 대면하십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성공을 세상 안에서만 준비말고 영원에 두며 언제나 주만 의지하고 주의 뜻대로만 순종하는 것으로 성공을 삼아 길이 참아야 합니다.
(57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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