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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 여자들아 내가 노루와 들사슴으로 너희에게 부탁한다 내 사랑이 원하기 전에는 흔들지 말고 깨우지 말지니라  
■ 성경:22아가02:07
 

아2:7

'예루살렘 여자들아 내가 노루와 들 사슴으로 너희에게 부탁한다'
'예루살렘 여자들아' '예수 믿는 사람들아, 모든 성도들아'하는 말입니다. 그리고 '노루와 들 사슴'은 순진한 들짐승입니다. 그래서 조금만 바싹해도 놀라서 멀리 달아나 버린다. 조그마한 소리에도 놀라서 멀리 달아납니다.


'내 사랑이 원하기 전에는 흔들지 말고 깨우지 말지니라'
'내 사랑이 원하기 전에는 흔들지 말고 깨우지 말라'고 하신 이 말씀은 '내가 사랑하는 주님을 위해서 고난을 당해야 만족하니 주님이 만족하시기 전에는 내가 이 감옥에서 나가는 것을 원하지 아니하니 너희들이 나를 감옥에서 나오게 하는 이 운동을 하지 말아라. 너희들이 이런 운동을 할까 해서 염려가 된다'고 하는 말씀인 것입니다.

땅 위에 역사 세계는 하나님의 보통 계시입니다. 성경 말씀으로 하늘의 사실을 알 수가 있고 만물계를 보아서 하늘의 것을 넉넉히 알 수가 있습니다. 밤이 지나면 낮이 오고 낮이 지나면 밤이 오는 것과 같이 우리의 신앙 노정에도 그러합니다. 술람미 여인이 환난 가운데에서 기뻐 한 것처럼 참된 성도는 환난 가운데에서 기뻐합니다. 수많은 성도들이 환난 가운데에 들어 있지만 세상 사람이 보기와는 다르다. 수풀 속에 사과나무와 같이 그리스도의 사랑에 붙들려서 즐거움을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잔치 집에 들어가는 것처럼 거기에서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을 위해서 죽는 것으로 만족을 누리는 것입니다.

땅에 속한 사랑은 사망을 이루고 하늘에 속한 사랑은 생명을 이룹니다. 들에 꽃을 보고 어린아이는 자기 하나만 생각하고서는 그 꽃을 꺾지만 어른은 여러 사람을 생각해서 잘 자라도록 흙을 덮어 줍니다. 땅 위에 있는 사람은 어린아이가 자기를 위해서 꽃을 꺾는 것과 같이 자기의 유익을 위해서 모든 것을 도모합니다. 그러나 일시적으로는 자기에게 유익이 있는 것 같지만 영원히 자기에게 손해가 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땅에 속한 사랑은 이기적인 사랑이요. 죽이는 사랑입니다. 주님은 하나 뿐인 생명 있는 사랑을 우리에게 주시고자 합니다. 그러나 땅 위에 있는 사람은 자기의 유익을 도모하기 위해서 모든 것을 사랑합니다. 그리고 교인들 중에도, 교역자 중에도 서로 사랑하는 데에 있어서 자기 본위로 자기 입장, 평강, 소원, 만족을 위해서 사랑합니다. 이것은 너무나 이기적인 사랑이요. 당파를 짓는 사랑이요. 땅에 속한 사랑이요. 무지한 사랑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무지해서 주님의 사랑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이 서로 사귐에 있어서 상대방의 유익을 위해야 합니다.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겨야 합니다. 안 믿는 사람이나 믿음이 어린 사람은 술람미 여인과 같은 그런 신앙 사상과 행위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술람미 여인과 같은 참된 성도는 주님을 사랑하므로 환난을 당해도 주님의 불변의 약속을 자기의 소망으로 삼고 주님의 승리의 능력을 의지하여 환난 가운데에서도 평안하게 지내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아무리 주님을 위해서 고난을 당한다고 해도 사과가 달지 아니하면 소용이 없는 것처럼 기쁨이 없으면 안됩니다. 구레네 시몬처럼 억지로 십자가를 지는 것 외에는 아무런 유익이 없습니다. 우리는 어떤 역경에서도 사과를 찾고 건포도를 먹어야 합니다. 술람미 여인이 깊은 수풀 속에 들어 있으니까 다른 사람들이 이것을 보고 '저 여인은 수풀 속에 있으니까 햇볕을 보지 못한다'고 생각하겠지만 이 술람미 여인은 사랑하는 자의 사랑에 붙들려 있기 때문에 기쁨과 만족을 누리고 있으니 이것은 예수의 환난으로 맺어진 사랑의 사과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앞에는 잔치집, 곧 복음 운동으로 잘 먹을 때가 있으니 이 때가 우리 앞에 곧 올 것입니다. 그때에 잘 먹도록 하고 또 주님을 사랑하고 위해서 주님의 뜻대로 살다가 죽을 것뿐입니다.

그러므로 술람미 여인이 '내 사랑이 원하기 전에는 나를 흔들지 말고 깨우지도 말라'고 말한 대로 우리가 환난을 당해서 감옥에 있게 되면 주님이 원하시고 만족하시기 전에는 우리가 감옥에서 빨리 나오도록 기도하지 말고 주님을 사랑하고 위해서 환난을 이기고 잘 죽도록 하라고 모든 성도들에게 말해야 합니다. 술람미 여인은 그렇게 했습니다.

(주해공과)


'내 사랑이 원하기 전에는 흔들지 말고 깨우지 말지니라'

아가서에 보면은 그런 말씀이 있습니다. “왼손으로 베개하고 오른손으로 나를 아듬고 계시는 주님께서 원하시기 전에는 나를 깨우지 말아라” 했습니다. 아듬고 누워 자는데 원하기 전에 나를 깨우지 말라 했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요? 그것이 지금 감옥에 들어 가지고 있는 그게 뭐이냐 하면 감옥에 들어 있는 것이 사랑하는 주님의 왼팔 베개하고 오른손으로 주님의 품 안에 안기워 가지고 지금 환난에 시험받고 있는 것이니까 주님이 원하시기 전에 깨우지 말라는, 주님이 원하시기 전에는 이 환난이 없어지도록 그렇게 기도하지 말라 그 말입니다. 알겠습니까? 그 환난이 없어지기를 기도하지 말라 말입니다. 주님이 만족하도록까지, 만족하시도록 까지 시험하시고 주님이 ‘이제 됐다’ 할 때 그때 이제 나를 깨우고 그전에는 나 백지 지금 석방 운동하지 말아라 그 말입니다. 갇혀 놓으면 교인들은 막 자꾸 석방 운동한다고 돈을 들이고 뭐 들이고 이래 가지고 이제 주님을 근심하게 한다 말입니다. 그럴 때에 “나를 사랑하는 자가 원하기 전에 나를 깨우지 말아라” “왼팔로 베개하고 오른팔로 아듬고 계신다”


또 이번에 내가 찬송 하나 간단하게 하나 지어 놨는데 그 찬송이 몇 장이요? 그러니까 ‘흉흉한 파도 입고 고문 고형 잔치’ 하고 또 뭐라 했지? ‘섭리의 고개턱' `섭리의 고개턱 너머' 하나님이 섭리의, 섭리하는 그 섭리의 고개가 있습니다. 절정이 있다 그 말입니다. ‘섭리의 고개턱’ `섭리 고개턱 너머 숨어 엿보시는' 가만히 숨어 가지고 `어짜는고 보자. 나의 사랑하는 자가 저거 정절을 팔아서 저 간부들에게 굴복을 당하나 안 당하나? 죽을 지경이면 그만 정절을 양보하나 안 하나?’ 가만히 뒤에 이래 숨어서 엿본다, 창살틈으로 엿봐요. 아가서에 보면은 창살틈으로 엿본다 했습니다. 방안에 가만히, 방안에 앉아서, 방안에 앉아서 사랑하는 자가 밖에 돌아다니면 어떤고 볼라고 고거 바늘로 구멍을 똑 뚫어 놓으면, 그래도 그거 환하게 보이요. 온 마당이 다 보이요. 바늘 구멍 뚫어 놓으면. 그래 놓고 딱 보면 저는 몰라서 사랑하는 자가 모르는 줄 알고 오만 수치스러운 것 다 하지. 이러나 그거 다 보거든. 이제 주님이 창살틈으로 본다 요래 놨어.


이러니까 지금 우리가 이 {승리를} 전투를 만났는데 이 전투 만났을 때에 이때에 이제 섭리의 고개턱 너머서 사랑하는 주님이 나를 숨어 엿보시고 계시는 ‘마중의 주님’ 숨어 엿보시고 계시면서 나를 마중 나와 가지고 ‘네가 얼마나 나를 사랑하는가 보자. 얼마나 정조를 굳게 지키는가 보자.’ 이렇게 딱 숨어서 가만히 엿보면서 지금 나를 마중 나와 가지고 고개턱 너머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마중의 주님’ `생명을 전하고 가리다. 생명을 전하고 가리다.’ 이렇게 말을 한 것입니다.


이래서, 시험받는 기간도 열흘 동안이라는 그 환난 기간이 있습니다. 이것도 믿어요. 지금 믿어 둬야 돼요. 그때 어려움이 있으면 ‘이 어려움이 얼마나 갈 것인가?’ 이래 가지고, 그래 벌써 ‘아이고 이거 어서 그만 끝났으면 좋겠다.’ 그라면 벌써 귀신이 자꾸 충격을 줘 가지고 안 돼요. 그저 어쩌든지 나는 그것으로 끝나면 되는 것이지. 끝나면 되기 때문에 더 뭐 딴것을 바라거나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래서 그것도 인제 그것보다도 아는 사람은 더 쉬워. 열흘 동안이라 했으니 이것도 한정이 있다. 그 한정이 차면 저거가 가둬 둘라 해도 가둬 두지 못한다. 한정이 있으니까 한정이 차면 안 내보낼라 해야 안 내보낼 수 없고 또 한정 차기 전에는 안 된다. 이라기 때문에 한정이 있다는 이 지식을 미리 예비 지식으로 알고 있는 사람에게는 그 너머에서 또 평안하고 유익이 있고 든든하다 그것입니다.

(89080972)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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