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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잠잠하여 선한 말도 발하지 아니하니 나의 근심이 더 심하도다  
■ 성경:19시편039:02
 

시39:2

'내가 잠자마여 선한 말도 발하지 아니하니'
내가 잠잠하여 선한 말도 발하지 아니한다고 말씀하신 것은 '말을 하지 아니한다'는 말인데 말을 하는 것은 자기 안에 있는 의사를 표시하는 것이니 행동도 자기의 의사 표시입니다. 따라서 말은 자기 안에 있는 것을 표시하는 언행심사를 말합니다.

그런데 다윗은 자기가 하나님 중심이 아닌 잘못된 중심에서 일어나는 모든 운동과 사람의 행위 다시 말하면 공의와 정의가 없고 잘못되고 비뚤어 진 것을 만날 때 그것을 대항하는 행동을 하지 않고 또 그것에게 해를 받지 아니하도록 하고 또 아무리 옳은 행동이라도 상대방에게 유익을 주는 것이 되지 못한다고 하면 하지 않기로 했다고 말씀했습니다.

따라서 다윗은 사람을 대하든지 사건을 대하든지 간에 거기에서 그것으로 인하여 범죄하지 아니하려고 결심하고 조심하고 애를 쓰고 또 옳은 것이라도 상대방에게 결과적으로 유익을 끼치지 못하는 일이라고 하면 하지 않기로 결심하고 그대로 살아갔습니다.

사람은 혼자 있으면서도 범죄하는 일이 있지만 사람과 사건과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것이 많습니다. 그리고 자기 혼자 있으면서 범죄가 되어지는 그것도 원인을 캐고 들어가서 살펴보면 인인 관계에서 되어지는 것이지 단독으로 된 것이 아닙니다.

사람의 모든 행동은 대개는 다른 사람과 자기와의 관계점에서 발생된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다윗은 자기나 다른 사람의 언행심사의 행동은 단독으로 발생한 것이 아니고 인인 관계에서 원인이 되어서 발생한 것임을 알고 또 자타의 관계에서 일어난 행동과 사건을 대항 때에 거기에서 진리와 영감대로 행동하는 것은 의요 거룩이라 귀한 것이지만 그 외에 것은 어떤 행동이라도 범죄의 행동이기 때문에 거기에서 언행심사로 범죄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따라서 다윗이 결심하고 노력한 것은 시39:1절처럼 자기와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언행심사로 범죄치 않겠다고 결심하고 노력했습니다. 자타의 모든 관계의 행동에서 언행심사로 비뚤어지지 아니하겠다고 결심하고 노력했습니다. 자타의 모든 관계라고 하면 생활인데 이 생활에서 언행심사로 죄를 짓지 않기로 결심하고 노력했습니다.


'내가 잠잠하여 선한 말도 발하지 아니하니 나의 근심이 더 심하도다'
옳은 일일지라도 옳은 주장일지라도 상대방에게 결과적으로 유익을 주지 못하는 것이라고 하면 하지 않기로 결심하고 노력했습니다. 상대방에게 결과적으로 유익을 주지 못하는 언행심사의 행동은 하지 않겠다고 하는 이것을 목표로 정해 놓고 살았습니다. 따라서 다윗은 자기가 이 세상에서 모든 사람을 상대하여 살 때에 죄 곧 비뚤어짐이 없도록 하겠다는 것을 결심하고 노력했고 또 자기가 언행심사로 죄가 되어지는 일을 하지 아니할 뿐만 아니라 바르고 옳고 참된 것이라고 할지라도 이것을 하면 죄가 되지 아니하고 옳은 것이 되지만 결과적으로는 상대방에게 유익이 없고 수입이 없고 구원이 되지 아니할 때에는 그 일을 하지 않기로 결심하고 노력했습니다.

따라서 다윗은 자신이 범죄하지 아니하려는 이 면이 컸고 또 자신 뿐만 아니라 상대방에게까지 범죄하지 아니하려는 이 면도 컸습니다. 다윗은 이런 목표를 두고 인인 관계를 가졌습니다. 그러나 세상에 있는 일반 사람은 그렇지 않습니다. 다윗은 자타의 관계에서 자신이 언행심사로 죄를 짓지 아니하려는 것을 목표로 자기의 할 일로 정해놓고 살았는데 우리는 우리 자신을 볼 때에 자타의 관계에서 가진 목표가 허무합니다.

세월이 지나가면 아무것도 아닌 것 죽으면 그만인 것 하나님의 심판에 사면 그만인 것 영원한 세계에 들어가면 그만인 것 한 말로 하면 허공을 치는 것과 같은 아무런 가치 없는 그것을 자타의 관계에서 목표로 삼고 일생을 살고 있으니 너무나 허무하고 속고 속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이것을 초월해서 자타의 관계에서 언행심사로 범죄치 아니하는 이것을 목표로 삼고 일생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타락한 세상은 어떤 것인고 하니 사람마다 다른 사람으로 인하여 지위가 올라가고 다른 사람으로 인하여 돈벌이가 되고 다른 사람으로 인하여 평안해지는 이 면을 늘려서 자타와의 관계를 목표로 삼고 사는 것입니다. 자기를 의롭다고 인정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자기의 사닥다리로 삼고 자기의 의로운 격분으로서 상대방의 구원에 유익을 주지 못할 뿐만 아니라 상대방에게 정죄가 되는 이런 일을 하고 또 상대방의 실수와 실패와 불행을 원하는 그런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선을 행하여도 상대방의 유익을 위해서 상대방의 구원을 위해서 절제하는 사람이 적습니다.

우리도 과거를 돌이켜 보면 이런 일을 많이 했을 것입니다. 상대방이 잘못된 것을 주장항 때에 자신은 옳은 편에 섰다고 하여 의인인 체 선지자인 체하여 상대방의 유익을 생각하지 않기가 쉬운 것입니다. 상대방을 배나 불의에 빠지게 하는 의의 행위가 우리에게 많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렇게 살지 아니했습니다. 자기가 다른 사람 부모 형제 친구 친척 이웃과의 관계에서 언행심사로 그 사람에게 잘못됨이 없고 비뚤어짐이 없이 하려고 자기를 단속하는 생활을 자기의 생활로 삼아서 살았던 것입니다. 이 현실과 거리가 너무나 먼 차원에서 현실과 거리가 너무나 높은 차원에서 생활을 했습니다. 사람들을 보면 의를 욕망하지만 땅에 있는 것을 자기의 것으로 삼는 이것을 목표로 하고 자기와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가지는데 다윗은 그렇지 아니했습니다.

다윗은 자기와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죄가 없는 상대 관계를 하기 위해서 자기를 조절하는 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기와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하나에서부터 열까지가 '내 사업이 어떻게 되나 내 심신에 어떻게 되나 권세와 안일에 어떻게 되나' 하는 이기적이요 땅에 것을 목표로 삼아서 관계를 가지고 활동합니다. 타락한 사람들은 다 이렇게 삽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렇게 하지 아니했습니다. 일국의 왕이니까 굉장히 분주합니다. 그런데도 대인 관계에서 죄가 없도록 하려고 자기를 조절하면서 살았습니다. 자기를 위해서 노력하되 일반 사람과 같지 아니하고 이 일을 위해서 노력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종전에는 자타의 관계에서 대인 관계에서 그 목표와 소망이 무엇이었는지 앞으로는 어떻게 살 것인지 이것을 찾아서 다윗의 생애를 본받아야 합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대할 때에 어떤 목표를 세우고 살았는지 이것을 심사해서 우리는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살 사람이 아니니 이 점을 상고해서 다윗과 같이 올바른 대인 관계를 가져야 합니다.

또 우리는 대인 관계를 하질 때에 우리의 언행심사가 결과적으로 상대방의 구원에 유익을 주지 못하는 것이라고 하면 아무리 옳은 것이라도 하지 아니해야 합니다. 상대방의 구원에 유익을 가져오는 결과를 맺지 못하는 것이라면 하지 아니해야 합니다. 다윗은 그렇게 했습니다. 다윗은 돈이나 권세나 명예나 향락을 생각치 아니했습니다. 다윗은 자기를 아꼈고 다른 사람을 아꼈습니다.

주기도문에도 보면 전부가 '우리'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런데 요사이 보면 전부가 제것입니다. 의도 선도 복음 운동도 제것이 따로 있습니다. 사람이 은혜를 받아도 자기를 통해서 자기 교회를 통해서 자기 교파를 통해서 받아야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전부 '우리'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공동체를 말하고 있습니다. 계 1:5절 중간에도 보면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시고'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여러 사람이 모여서 하나가 되어지는 이 결합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기독교의 구원인 것입니다. 생명도 공동 생명이요, 구원도 공동 구원입니다. 그리고 성경의 여러 곳에 보면, 몸의 지체로 비유했습니다. 몸에는 여러 가지 지체가 있지만 한 세포 한 신경 한 피 한 생명으로 삽니다.

기독교의 구원도 그러합니다. 우리 속에 들어가야 합니다. 모든 기독자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자기는 대아이면서 단독 개인이라야 합니다. 기독자는 목표적으로 계획적으로 사역적으로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속에 들어가야 사죄의 은혜를 받을 수가 있고, 모든 불의에서 벗어 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기독자로 하여금 우리 속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고, 또 우리 속에 들어 있으면 개별로 단독으로 튀어나오게 하고 개체인 자아만 주장하고 모든 계획이나 전설이나 저축이나 주장을 재별 자아와 사욕을 표준하여 하게 하므로 일생을 허승하게 하는 이것이 마귀의 유혹인 것입니다.

다윗은 이 진리를 깨닫고 자타의 관계에서 자기의 형편과 자기의 구원을 초월해서 창조주와 모든 피조물이 공존 공영하여 진리에 비뚤어짐이 없는 행동을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다윗은 자기가 어떠한 의무를 가지고 있으며 자기 개체가 다른 존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이것을 알고 총괄적으로 상대해서 살았습니다. 다윗은 자기가 다른 사람보다 앞서 노력하여 깨달은 것이라도 이것이 상대방에게 결과적으로 유익이 되지 아니하면, 이것을 조절하여 살았습니다.


'근심이 더 심하도다'
마음에 고통이 심하다는 말인데 왜 심했는고 하니 상대방이 다윗 자기를 침략할 때 일대 일로 상대하고 싶지만 자신을 절제하여 죄가 되는 일이 없도록 하려고 하니까 그래서 참으니까 고통이요 눈에 보이게 기가 차는 일이라도 상대방에게 유익이 되지 아니하면 참으니까 마음에 고통이었습니다.

다윗은 기백이 있고 증오에 민활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자기 속에 불이 붙어서 못 견디는 거기에서 '내가 복수해야 되겠다'고 하는 데에도 나아가지 아니하고 하나님에게 기도했습니다.

(주해공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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