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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 성경:19시편023:01
 

시23:1

'여호와'
여호와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말하는데 계약을 선포하시고 그 계약대로 신실하게 이행하시는 하나님을 말합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여호와는 나의 목자라'고 하신 말씀은 '신구약 성경에 계약을 선포하시고 선포하신 계약대로 이행하시는 하나님은 나의 목자라'고 하신 말씀입니다.

그런데 우리 믿는 사람이 하나님을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으로 계약대로 이행하시는 하나님으로 알고 믿어야 되지 그렇게 하지 아니하면 불신자가 말하는 그런 하나님과 동일시하기가 쉬운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에 목자와 양을 말씀하신 것은 팔레스틴에 있는 목자와 양을 두고서 말한 것입니다. 양이 목자를 읽어 버리면 절단남과 같이 믿는 사람이 신구약 성경에 나타나신 하나님을 잃어버리면 절단납니다.

그런데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을 목자로 삼았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목자로 섬기고 바라보고 의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목자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 많습니다. 그러면 여호와 하나님을 목자로 삼고 있는데 목자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여호와 하나님을 자기의 목자로 의지하지 않고 바라보지 않고 섬기지 아니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여호와 하나님을 자기의 목자로 삼아서 바라보고 의지하고 섬긴 자는 어떻게 되는고 하니 '자기에게 조금도 부족함이 없다'고 말씀했습니다. 아버지를 목자로 삼은 예수님도 '내게는 머리 둘 곳도 없다'고 말씀했지만 예수님에게는 부족한 것이 조금도 없었습니다. 예수님을 목자로 삼은 베드로도 '내게는 금과 은은 없어도' 이렇게 말을 했지만 베드로에게는 부족한 것이 조금도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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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
여호와는 하나님의 이름입니다. 하나님의 성호. 하나님의 이름은 성호라고 하는데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입니다. 하나님께서 구약 처음에는 하나님이라고 이렇게 나타내시고 그 후 인간과 계약을 선포하고 난 뒤에는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늘 이렇게 당신을 나타내셨습니다. 그라다가 오랜 후에는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이름은 나타내지를 아니하고 그저 하나님이라 이렇게 나타냈고 또 메시야라 이래 나타냈고 그렇게 나타내셨습니다.

그러면 그때 창세기 1장에 천지를 창조하시고 물위에 운행하신 그분이 누구시며 또 만물을 만드시고 마지막에 사람을 만드실 때에는 우리가 사람을 어떻게 만들까 하는 그런 복수로 나타났으니 그때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삼위일체를 우리에게 알리기 위해서 우리라고 그렇게 복수성을 나타냈습니다. 하나님이 세 분이 아니고 위를 가리켜서 삼위로 그렇게. 삼위가 의논해 가지고 사람을 지었다는 것입니다. 그 뒤에 아담 하와를 에덴동산으로 인도하시고 거게 머물도록 하나님이 또 약속을 세우시고 그 뒤 범죄했을 때에 또 하나님이 나타나셔 가지고 그들을에덴동산에서 쫓아내시고, 또 여인의 후손으로 구원할 것을 약속하시고, 그 후 가인과 아벨에게도 나타나셨고, 에녹에게도 나타나셨고. 노아에게도 나타나시고, 아브라함에게도 나타나신 그 하나님은 누구신가? 그 하나님이 삼위 중에 이위가 언제든지 나타나서 역사했습니다. 삼위중에 이위가 나타나서 역사하셨고, 또 거게 이위가 역사하시는 데에 돕는 것은 곧 그리스도의 성령이, 그리스도의 영감이 돕는 일을 했습니다. 그때 나타나신 하나님이 때가 되매 사람되어 세상에 나타나셨습니다.

이래서, 요한복음 1장에는 '그가 만물을 지으셨다' 그렇게 말씀하셨고 또 '그가 세상을 지으셨다' 그랬습니다.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다' 그렇게 말씀하셨고, 또 세상을 가리켜서 자기 땅이라 이렇게 말씀 했습니다. '자기 땅에 오나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안했다' 인류를 당신의 백성이라 이떻게 했습니다. '그분이 세상을 지으시고 만물을 창조하시고, 땅과 인류는 당신의 것인데 그분이 사람으로 나타나셨으니 아버지의 독생자요 곧 진리와 은혜가 층만하더라' 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이렇게 기록한 이 성구를 보고 여호와 하나님은 상고 때 하나님이요 옛적 하나님이니 곧 성부를 말하는 것인가? 그러면, 성자 위에 성부를 말씀하는가 이렇게 사람들이 생각합니다. 이래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세 하나님이라고 하는 그런 이단들도 나와 가지고 하나님의 사람들을 많이 유혹을 시키고, 또 '성부와 성자와 성령 삼위일체는 다 같은 하나님이시다. 그러나 차별이 있다' 그래 가지고, 또 그런 이단을 가지고 사람들을 유혹을 시키고, 정통은 지혜도 권능도 모든 사랑도 꼭 같고. 본체는 하나이신, 이래서 삼위나 일체의 하나님이라 그렇게들 말합니다.

그래서, 우리들도 잘못 생각하면 여게 여호와를 바로 도성인신하신 주님의 그 신성으로 믿지 않는 사람이 되기 쉽습니다. 여기 여호와는 도성인신하신 주님의 신성이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사람되어 오셨고. 또 성령의 하나님이 사람되어 오셨고, 성자의 하나님이 사람되어 오셨고 이렇기 때문에 예수님을 이사야 선지는 가리켜서 '영존하신 아버지라' 그렇게 발표했습니다.

지난 주일에도 많이 말했지만 이 여호와는 하나님을 가리켜 말하는데, 이 여호와 하나님이 상고 때 하나님이나 지금 우리에게 나타나신, 도성인신하셔. 가지고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다가 삼일만에 부활하신 이 주님과 다른 하나님으로 그렇게 보는 사람들이 있기 쉽습니다. 그거는 잘못 보는 것입니다. 곧 여호와 하나님이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시고 물위에 운행하셨고 아담 하와를 인도를 하셨고 또 그를 축출할 때도 예수님이 주장을 해 가지고 삼위가 의논해서 에덴동산에서 쫓아냈고, 또 그 후에도 늘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같이 계셨기 때문에 베드로전서 3장에는 말씀하시기를 '그가 영으로 옥에 갇힌 영들에게 다 전파했다.' 옥에 갇힌 영이라 말은 무엇을 가리켜 말하는고 하니 예수님이 십자가의 대속의 공로를 베푸시기 전에는 인류는, 전부 다 사망과 죄악의 옥에 갇혀 있던 자 들인 것입니다.

그러면, 타락해서 원죄 아래에 있을 때부터 주님이 늘 인간 구원을 책임지시고 역사하셨다는 것을 가리켜서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그러기에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라' 여호와라고 하는 이름은 하나님의 이름인데 여호와 하나님은 어떤 뜻을 가지고 있는가? 계약의 하나님이라 말입니다. 계약의 하나님. 하나님이 사람으로 더불어 계약을 세우신 이 계약을 세우시고 계약대로 된 목자라 그말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계약을 세우시고 계약대로 이행하는 하나님이신데 이 계약대로 이행하시는 이 하나님은 계약으로 계약의 상대자인 우리들의 목자가 되셨다 하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 계약의 하나님, 계약의 목자.

계약의 목자, 그러면, 계약으로 목자 됐고 계약을 세우고 계약 이행하는 계약의 목자시요 계약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런고로,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하는 이 여호와는 곧 십자가의 대속의 공로를 베푸시고 부활하신 주님은 우리들에게 목자가 되신 주님이신데 목자가 되시되 계약으로, 계약대로 목자가 된다 그말입니다.

계약대로 목자가 되신 주님이시라.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그러면, 이 계약대로 목자가 된 하나님이신데, 그러면, 이 계약대로 목자된 하나님이시면 이미 목자가 되어 있는 하나님이시냐 앞으로 우리 행위 여하에 따라서 우리의 목자가 되실 하나님이시냐? 되실 하나님이 아니고 이미 우리의 목자가 되어 있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요것을 단단히 믿어야 됩니다.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이시나 성령님이시나 또 하나님 아버지라고 우리들이 부를 때의 성부님이시나 다 한 하나님이신데, 성부도 성자도 성령도 다 우리의 목자가 되어 있는데, 목자가 되어 있되 계약 목자라. 계약적 목자라, 계약대로의 목자라. 그러기 때문에, 주님이 우리의 주님 되신 것도 계약을 선포해 놓으시고 계약대로의 우리 주님이십니다.

그런고로, 하나님이 계약해 놓으신 이 계약은 곧 주님을 나타내신 계시입니다.

'나'
그런데, 여게 여호와는 우리의 목자시니 우리라고 이렇게 복수를 쓰지 안하고 나의 목자라고 단수를 썼습니다. 단수를 쓴 거는 왜 단수를 썼는고 하니 여호와 하나님이 내 목자로 나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나를 보호하시고 나에게 모든 약속을 이루어 주시는 데는 꼭 개인적이지 단체적이 아닙니다. 아무리 수많은 그 단체가 여호와 하나님의 계약대로 이행을 해서, 그 단체의 99명이 계약대로 이행을 해서 하나님이 99명에게 계약 대로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데 나 한 사람이 그 계약대로 이행 안 했으면 이행 안한 나 한 사람에게는 아흔아홉 사람이 계약대로 이행했지만 이행하지 안한 나에게는 하나님이 내 목자가 되질 않습니다. 내 목자가 되 지 안하고 나와는 이 목자 면에서 상관이 없게 됩니다.

또 그와 반대로 모든 사람이, 백명 가운데에 구십구 명이 이 계약을 어겨서 주님을 배반했습니다. 계약을 어기는 것이 주님을 배반하는 것이 요 주님을 떠나는 것이니까 계약을 어겨서 백명 중에 99명이 계약을 어겼으니까 이 도매금으로 말한다고 하면 '백명 가운데에 99명 이 계약 범했으니까 한 사람 그것이야 뭐 범했거나 안 범했거나 그것 또 말할 게 뭐 있겠나? 전체가 다 범한 것이지.' 그만 이렇게 도매금으로 우리는 생각하기 쉽겠는데 하나님께서 그걸 구별해서 아흔아흡 사람이 계약을 지키지 안했다 할지라도 한 사람이 계약을 지켰으면 지킨 그 한 사람에게 대해서는 하나님이 계약적으로 상대를 하신다 하는 그것을 가리켜서, 이 목자되신, 계약의 하나님이 계약적으로 목자된, 계약으로 목자된 이 하나님에게 대한 이 계약 상대는 단체적이 아니고 개인적이다, 개별적이다, 단체적이 아니고 개별적이다 하는 요것을 요게서 똑똑히 가리켜서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의 목자시니' 이랬더라면 이 전체를 다 통합해서 한 것이기 때문에 거게 여간 잘한 사람이 있고 또 잘못한 사람이 있다 해도 이래 하겠는데 요게는 '여호와 하나님은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부족함이 없다는 말은 이는 그저 띄워 놓고 하는 말이 아니고. 여호와가 목자가 되어 이 목자만 모시고 목자를 떠나지만 안하면 그에게는 부족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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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런고로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우리에게 신구약 성경을 선포해 놓으시고 이 성경대로 이행해 주시는 이 하나님은 나의 목자시니. 그러기에 신구약 성경은 누구를 가르치는가? 신구약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신구약 성경은 뭐인가? 신구약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낸 예수그리스도의 사진판이라고 하면 좀 인간의 말로 이거 좀 맞지는 안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사진판이라 예수님은 누구인가? 신구약 성경 이 문서 가운데에 있는 하나님이시라.

문서 가운데에 있는 주님이시라. 그러면, 신구약 성경 중심이 뭐인가? 예수님이시라.

신구약 성경이 누구를 가르치는가? 예수님을 가르치고 있다. 신구약 성경이 그러면 예수님을 가르쳐 뭐 할라고? 예수님이 주신 구원을 이루게 할라고 가르치고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제 여호와에 대해서 간단하게 그만 간단하게만 해석합니다. 뒤에 또 시간 있으면,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이 목자는, 우리는 양이요 그는 목자입니다. 양과 목자라, 목자는 사람이요 양은 짐승이오. 양은 짐승이라. 우리와 주님과는 그 차이성이 심히 크지만 선한 목자는 양을 위해서 목숨을 버렸다고 이랬습니다. 그러면, 선한 목자이기 때문에 양을 위해서 목숨을 버렸습니다. 선한 목자는 양을 위해 목숨을 버렸다.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분이 우리를 책임지고 있기 때문에 부족함이 없다.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를 책임지고 있기 때문에 부족함이 없다.

그러면, 여호와 하나님을 배반하는 게 뭐인가? 계약 배반이 여호와 하나님 배반이다. 여호와 하나님과 동행하는 게 뭐인가? 계약과 동행하는 것이 여호와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을 모시는 것이 뭐인가? 계약을 자기가 지키고 모시고 있는 것이 여호와 하나님을 모시고 있는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의 보호를 입는 게 뭐인가? 이 말씀 말씀 슬하에, 이 말씀 그늘 아래 있는 것이다. 그늘 아래 있는데 우리가 이 말씀을 지키는 거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가 지킴으로 뭐 되는 거 아니오. 어리석소. 이 말씀 우리가 지킬 수 없소. 이 말씀에게 지킴을 받는 것이오.

그러기 때문에, 이 말씀을 모시고 이 말씀을 떠나지 안한 자는, 이 말씀이 진리요 곧 이 말씀이 하나님이시라. 말씀이 하나님이라. 이거 그라면 진리가 하나님이라 말입니까? 아니오. 하나님은 진리가 아닌데 이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말씀 안에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이 말씀 안에는 그리스도의 영이 계십니다. 그리스도의 영이 이 말씀 안에, 그리스도의, 그리스도가 영으로 이 말씀 안애 계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말씀을 순종하면 영이 좋아하고 말씀의 인도를 받으면 성령이 같이 인도를 하십니다. 이러기 때문에 말씀과 이 성령은, 말씀은 진리요, 말씀은 진리요 인격 존재가 아니나 이 말씀 안에 인격 존재인 성령이 내주하고 계시기 때문에 이 말씀 배척이 주님 배척이요 이 말씀 동행이 주님 동행이라는 것을 우리가 똑똑히 알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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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이러기 때문에, 여러분들, 우리들은 우리가 무슨 우리의 두뇌를 연마시키는 것도 좋습니다. 우리의 모든 기술을 연단시켜서 기능 발달시키는 것 도 좋습니다. 또 우리가 부지런히 하는 것도 좋습니다. 근검 절약하는 것도 좋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유익이 매우 적습니다. 유익이 매우 적습니다. 우리에게는 첩경으로, 지름길로 바로 가는 지름길이 있습니다. 지름길이 뭐이냐? 여호와는 나의 목자라. 그분을 목자로만 모시고 있으면, 그분을 목자로 모시고 있으면 의식주, 퇘동, 모든 우리의 거주 우리가 대적으로 싸우는 모든 투쟁, 또 모든 만물과의 관계 이 전부 다 당신이 완전하게 이루어 주십니다. 완전하게 이루어 주십니다. 이러니까 그저 우리는 제일 힘쓸 것이,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까 내게 부족함이 없어. 이러기 때문에, 여호와, 목자이신 여호와만 내가 배반치 안하고 여호와를 모시도록 요 하나에만 전력을 기울이면 좋습니다. 요 하나에만 전력을 기울이면 거게 생명과 능력이 다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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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계약의 하나님은 내 목자가 되셨으니, 계약의 하나님은 우리의 목자가 됐지만 여게 '나의 목자시니' 나의 목자가 되셨으니, 그러면, 내 곁에 있는 모든 사람이 여호와를 다 배반하고 여호와의 진노가 소돔 고모라 성에 유황 불비 내리둣이 내린다 할지라도 내가 나의목 자되신 계약의 하나님을 배반치 아니하면 나에게는 목자되신 이 역사를 다 하시고 또 모든 은택을 다 받을 수 있습니다. 이래서, 여게 우리라는 말을 쓰지 안하고 '나의' 하는 내라는 이 단수로 기록해서 개인이라는 이 개인 성을 우리가 단단히 기억해야 됩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계약을 선포하시고 계약대로의 하나님이 하나님이 곧 나의 목자가 되셨으니, 계약대로의 하나님이 계약대로 나의 목자가 되셨으니 하는 요것을 단단히 기억해서 이 목자를 내가 떠나지 않고 이 목자의 품안에 안겨 있으면 우리는 모든 것이 다 형통하고 성공입니다. 그러면, 이 목자를 내가 떠나지 않는 것. 내가, 이 목자를 내가 떠나지 이 목자는 우리를 떠나지 않습니다. 내가 목자를 떠나는 것은 이 계약을 내가 떠나면 목자를 떠나는 것이요 계약을 어기면 목자를 배반하는 것이요 대항하는 것이요, 이 계약을 지키고 있으면 목자를 모시고 있는 것이요 이 계약대로 실행하면 목자의 인도를 받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 목자는 계약의 목자라 하는 요 계약이라는 것을 우리가 명심하고 놓지 말아야 합니다.

또 '나의 목자시니' 개인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개인의 목자다. 수땀 은 사람이 목자로 다 모셨어도 나 개인이 목자로 모시지 안하면 소용이 없고. 수많은 사람이 다 이 목자를 버려서 하나님의 재앙이 노아 흥수 때와 같이 그렇게 내린다 할지라도 내가 개인적으로 이 목자를. 계약 목자를 모시고 있으면 목자의 이 은택은 내게 계속되고 있다 하는 요것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에 대해서는 우리의 원죄에 조심을 하지 안하면 안 됩니다.'우리 원죄에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말은, 원죄는 어떤 것이 원 죄인고 하니 자기 중심의 죄가 원죄입니다. 자기 중심의 죄가 원죄이기 때문에 모든 것을 자기 중심으로 비판하고 평가하고 그라기 때문에 잘못하면 '나의 목자시니' 하는 여게 대해서 이 개인성을 우리가 가지고 이 전체성 이 전체성을 잘못하면 잊어 버리기 쉽습니다. 우리는 언제든지 개인성 이라는 이 사욕 자기 중심 자기 위주인 사욕 요것 때문에 우리가 망하는 것이고 다 시험에 드는 것인데. 여게는 전체를 안 하고 개인, 요 개인성 개체성을 말씀을 이와 같이 했기 때문에 잘못하면 그 원죄가 기뻐해서 원죄 그것으로 자기 중심 그것으로 여호와를 모실라는 그런 것이 되기 쉽습니다. 그리 되면 어찌 되느냐? '마음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해서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와 같이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같이 하라' 하는 요 계명을 마귀란 놈이 범하게 만듭니다. 그러면 다른 사람을 나만치 생각지 안하고 다른 사람보다 나를 생각해서 다른 사람이야 어찌 됐든지 내 개체가, 내 개인이 구원 얻게 된다 하는 요 말에서 고 개인성, 원죄인 자기 중심성 요것이 나타나 가지고 잘못하면 '미워하는 것은 살인하는 죄이니 그 속에는 영생이 없다.' 미워하는 것은 어떤 게 미워하는 것이냐? 중간은 없습니다. 사랑치 않는 것이 미워하는 것이요 또 미워하지 안하는 것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고 중간은 없는데 우리는 그 중간을 두고 생각을 가집니다. '내가 뭐 내가 어디 미워하느냐? 내가 미워하지 안했는데.' 이렇지만 사랑치 않는 것이 바로 미워하는 것입니다. 고 중간은 없습니다. 사랑이 아니면 미움, 미움이 아니면 사랑이지.

그러기 때문에 잘못하면 요 '나의 목자시니' 뭐 천인 만인이 다 엎드러져도 내가 여호와를 버리지 안하면 여호와만은 내 구원의 주가 되신다 하는 요 깨달음을 자기가 가질 때에. 모세가 말하기를, '이 민족이 목이 곧고 강퍅하기 때문에 내가 이것을 다 진멸하겠다. 이스라엘을 다 진멸하고 너를 세워서 이제 큰 민족을 만들겠다.' 그랄 때에 모세가 말하기를 '하나이여, 만일 그와 같이 한다면 애굽에서 인도하신 그 인도의 선포함이 어찌 됩니까? 또 모든 내 민족이 다 멸해지면 나 혼자 살아야 필요 없습니다. 나도 같이 멸해 주시옵소서.' 그렇게 그 민족의 전부와 자기와의 꼭 같은 소원을 가지고 했을 때에 그때에 자기 중심인 원죄가 없고 다 그리스 도의 그때는 예수님이 대속의 제물 되지 안했지만 하나님의 선포 한 법칙과 모돈 예표로. 예표로 베푼 그 제사를 하나님 앞에 드렸었습니다. 이러니까, 그때에 하나의, 한 아버지요 한 아버지 밑에 있는 자녀들이요 선생님도 한 분이요 아버지도 한 분이요 주도 한 분이요 성령도 한 분이시요 또 소망도 하나요 또 한 몸인 한 지체인 여게 모순되지 않는 고 마음을 가지고 그대로 행동하는 말을 할 때에 하나님께서 모세를 긍휼히 여기셨고 모세에게 구원이 왔습니다. 그때 만일 모세가 '아, 하나님이 이렇게 한다 하시니, 참 나로서 큰 민족을 이루겠다고 하시니까 기쁘다. '체면상으로 하나님이여, 그래서 되겠습니까?' 이렇게 만일 말을 했더라면 이스라엘은 회망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중심으로 '나와 같이 멸하시고 구원할라면 나와 같이 구원해 주옵소서.' 이라는 그것이 하나님 앞에 만족이 돼서 '그러면 내가 네 소리를 듣고 내 뜻을 돌이키겠다' 하시고 멸하시는 일을 중단 하시고 거게 범죄한 몇몇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멸했습니다.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내게 부족함이 없다 말은, 그래 말한다면 여호와 목자가 내게 모든 일을 베푸셔서 내 밖에서 날 도와 주셔서 내가 부족함이 없다는 그말이고, 내가 부족함이 없다는 그 말은 무엇을 표시하는고 하니 여호와 하나님이 내 속에 계시는데 무슨 꿀밤만한 덩어리가 돼 가지고 계셔도 뭉클 할 것인데 꿀밤만한 덩어리 형체로 계시지 안하고, 또팥 내끼만한, 그런 뭉치를 가지고 내게 계시지 안하고 서숙알만한 조그만한 형체를 가지고 내 안에 계시지 안하고 형체는 전연히 없이 내 안에 전지 전능자로 계시기 때문에 이거는 암만 봐야 하나님이 아니고 내라 그말이오.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이거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되 내 안에서 내 중의 내가 돼 가지고, 내 중의 내가 돼 가지고, 참 내 안의 내가 돼 가지고 역사하시기 때문에 내 안의 내가 역사하시니 내게 통해서 내가 하는 말이 주님의 말이고 내가 생각하는 것이 주님의 생각이고 내가 말 하는 것이 주님의 말이고 내가 하는 것이 주님의 능력이라. 이러니까, 전지 전능 사랑의 것이 다 나타나셔 가지고 이와 같이 하기 때문에, 원수 앞에, '원수의 목전에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발랐다.' 이 원수로 더불어 싸우는 이 전투에서 승리할 뿐만 아니라 요렇게 내 안에서 계신 요것이 완전 무결한 요 주장이요 요 공평된 이 주장으로 승리하기 때문에 패전하고 나한테 진 그들이 원수를 품지 안하고 패전한 그들이 마지막에는 다 감탄 하면서 '옳소이다' 하고 주라 시인하는 거와 같이 그렇게 존대할 수 있는 이런 가치 있는 영광의 승리를 한다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승리하는 것은 죄인으로 더불어 싸우는 것이 죄로 더불어 싸우는 것이요 마귀로 더불어 싸우는 것이요 사망으로 더불어 싸우는 것이기 때문에, 처음에는 그 사람이, 무신론주의가 나하고 싸워서 원수가 대적할 지라도 만일 내가 옳게 싸워 가지고 이겼다면 어느 게 이겼느냐? 그사람이 죄에서 벗어나는 게 이기는 것이요 사망에서 벗어나는 것이' 이기는 것이요 마귀에게서 벗어나는 것이 이기는 것이기 때문에 벗어나고 난 다음에 그 사람이 진정 감탄해서 견디지를 못할 것이라 말이오.

그런고로, 우리는,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하는 이 말씀이 주님이 내 안에 계셔요. 내 안에 계셔서, 내가 아니고 내 안에 계셔. 내 안의 여호와신데 내 안에 주님이 계시니까 내 안의 내라. 내 안의 내라. 내 머리에 나로서 주님이 계셔 가지고 역사하시는 것을 가리켜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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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여호와란 말은 계약의 하나님이란 뜻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라. 계약의 하나님은 내 목자라. 그러기 때문에, 이 하나님이 계약으로 나한테 나타나시고 또 나도 계약으로 이 하나님을 모시기도 하고 이 계약으로 하나님을 배반하기도 하고 또 이 계약으로 하나님 목자의 인도를 받을 수도 있고 또 목자를 배반할 수도 있는 것을 말씀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말은 계약의 하나님이라, 그러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목자가 된다고 그렇게 말씀하지 안했고 여호와는 나의 목자라, 이 계약을 선포해 놓으신 하나님이 나의 목자라.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이 곧 내 목자요 계약이 곧 내목자라 그런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이 목자이신 하나님을 어떻게 우리가 영접하며 또 이 목자 하나님을 어떻게 모시며 또 이 목자 하나님을 어떻게 배반할 수가 있으며 이 목자 하나님과 동거 동행할 수가 있겠는가? 그러면, 이 목자를 자기가 그냥 동거 동행하겠다 모시겠다, 또 안 버리겠다 이리 되면 우리는 미혹에 들기 쉽습니다.

마귀는 그걸 틈을 타 가지고서 우리를 다른 탈선의 길로 인도하기 쉽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여호와는 나의 목자라, 하나님의 이름이 여럿이 있지만 특별히 여호와라는 이름을 들어 가지고 여호와는 나의 목자라 그렇게 우리에게 발표해 주신 것입니다.

그러면, 이 목자는 우리가 목자를 삼을라고 애를 쓰는 것이 아니고 이미 우리의 목자가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피공로로 목자가 되어 있고, 예수님의 피공로보다도 하나님의 창조로 우리의 목자가 되어 가지고 있고, 또 창조보다도 하나님이 예정하실 때 벌써 우리의 목자가 되어 가지고 있습니다. 예정보다도 하나님이 목적을 정하신 그 목적 안에서 다 우리의 목자가 되어 있습니다. 있는데, 요는 우리가 이 목자를 배반하느냐 이 목자를 모시고 있느냐 하는 그것이 문제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목자를 우리가 모시지 안할 까닭이 있는가? 이 목자를 배반 할 까닭이 있는가? 이 목자는 우리에게 모든 좋은 것을 다 해 주는데 육체나 영이나 금생이나 내세나 또 내나 내게 속한 모든 것이나 전부를 다 전지한 지혜로 볼 때에 부족함이 없이 전능한 능력을 가지고서 다 잘해 주시는데 이 분을 우리가 배반할 리가 있는가? 네, 배반할리가 없는데 배반을 하게 됩니다. 배반하게 되는 것은 그것은 무엇으로 인해서 배반하게 되는고 하니 이 악령으로 인해서 배반하게 됩니다.

악령이 이분을 배반하도록 그렇게 우리 마음을 만듭니다. 우리 마음을 악령이 사로잡으면 우리 마음이 악령화되고 성령이 사로잡으면 성령화됩니다. 성령으로 변화된다 말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마음에 악령이 들어와서 악령이 우리 마음을 주관하지 못하도록 그것을 단속을 해야, 악령의 미혹이 내 마음을 미혹시키지 안해야 내 마음이 여호와 하나님을 내 목자로 모시게 되지 악령이 내 마음을 주관해 가지고 벌써 내 마음을 미혹을 시켜 놓으면 내 마음은 여호와 목자를 내가 목자로 모시지 못하도록 그것이 만들게 됩니다.

그러면 악령이 우리에게 와 가지고서 유혹을 주면 얼마나 유혹을 주느냐? 유혹을 주면, 에덴 동산에 해와와 아담에게 악령이 와서 미혹을 줬는데 그 미혹을 받고 나니까 아담 해와에게 제일, 천상천하에 제일 해독이요 참 독하고 악하고 그 해가 굉장히 큰, 제일 해독이 많은 것이 선악과였는데 제일 해독 많은 것이 선악과였는데 악령이 그 마음을 미혹시키고 보니까 천상 천하에 제일 보배롭고 좋은 것이 선악과로 보여졌습니다. 그렇게 꺼꾸로 보였습니다. 이래서, 하나님이 그렇게 아담 해와에게 좋은 하나님이지만 하나님보다 더 좋은 게 있으니까 하나님을 버리고 선악과를 먹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선악과가 참으로 더 좋으냐? 더 좋지 안 하고 그 보다 더 해로운 것은 없습니다. 이런데도 그렇게 해로운 것이 그렇게 좋게 보였다 그거요.

이러니까, 악령의 감화를 받으면 여호와는 나의 목자라는 이 말씀이 아주 거짓말로 들려지고 아주 그 말이 멸시가 되어지고 조롱이 되고 뭐 별별 작용을 해서 이 여호와를 자기 목자로 인정한다는 것이 자기에게 털끝만치도 섞여 있지 않도록 완전히 변질을 시켜 버립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 마음에 악령을 용납지 안해야 여호와가 내 목자인 줄 알고 목자를 내가 배척하지 안할라고 애를 쓰게 되고.

또 내 안에서는 내 마음을 이게 주관해 가지고서 여호와를 목자를 삼지 못하도록 날 자꾸 오해를 시킵니다. 오해를 시키고 곡해를 시키고 모두 다 꺼꾸로 해석을 하도록 그렇게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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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러기에, 우리가 이 여호와 목자만 배반치 안하고 이 목자가 이미 내 목자가 되어 있는 목자인데. 여호와 목자를 우리가 배반치 안하고 모시고 만 있으면 우리에게는 모든 면에 부족함이 없이 다 충족합니다. 그러나 이 여호와 하나님을 모시는 일이, 어제 아침에도 그 말씀인데, 모시는 일이 그 있이 쉽지 안합니다. 쉽지 안하는 것은 왜 쉽지 안하느냐? 우리 몸 안에 방해하는 것 있습니다. 우리 몸 안에 방해하는 것이 많이 있고. 또 우리 몸 밖에는 전부 다 방해를 합니다. 이러니까, 여호와를 목자로 이렇게 모시고 있지를 못하고 목자를 배반합니다. 이 목자만 배반치만 안하면 우리는 모든 면에 부족함이 하나도 없게 되는데. 이 목자를 배반을 안 하는 이것이 우리에게는 제일 중요한 일인데. 이 목자를 배반 안 하면 예수님의 제자가 됩니다. 예수님과 같이 되어집니다. 이 목자를 배반을 안 하는 것이 제일 중요한 것인데 목자를 배반 안 할라고 하면 자기 안에서 이 목자를 배반토록 하는 그 마음을 악령이 미혹시켜 가지고서 자꾸 여호와를 목차로 모시지 못하도록 애를 쓰고 있고, 또 우리 몸 밖에는 많은 사람들과 모든 악령의 역사들이 또 그렇게 방해를 합니다. 그래도 이 방해를 받지 안하고 여호와만 목자로 모시고만 있으면 모든 것은 다 성공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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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주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서 의로운 생활, 가치 있는 생활. 거룩한 생활 이 생활을 하는 것은 형체가 없으신 주님이 우리 안에서 역사하셔 가지고 되기 때문에 하는 일이 다 자기가 한 것같이 여겨지게 되는 그런 방편으로 일이 이루어집니다. 주님이 뚜렷이 형체를 가지고 우리를 도우시면 우리가 주님의 도우심으로 이렇게 됐다' 그렇게 생각하기 쉽고 또 '주님이 돕지 안하고 내 단독이 했다' 이렇게 할 수 없지만 주님이 형체를 가지지 안하시고 무형의 존재로, 형체없이 무형의 존재로 우리 안에 역사하셔 가지고 의로운 그 승리의 가치 있는 걸음이 걸어지게 되기 때문에, 우리는 형체를 항상 중하게 여기는 이 껍데기 사람이 늘 습성이 돼 있기 때문에 주님이 무형의 존재로 내 안에 역사하셔 가지고 내가 그 승리의 참 가치있는 그 고귀한 걸음을 걷게 되니까, 돕는 주님은 보이지 안하고 그와 같은 승리의 생애를 하게 되니까 꼭 자기 혼자 한 것같이, 자기가 한 것같이 그렇게 보여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계약대로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그분의 은혜로 됐지 은혜로 안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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