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25:14-30
(항상 감사하며 충성하라)
금을받은자는 성도요 맡긴 일군은 예수 그리스도요, 타국은 세상이 아닌 천국 승천. 금은 구원받은 자의 전부요, 주인이 다시 옴은 재림 적은 것은 유한의 세상 것. 많은 것은 무한의 천국의 것 쫓겨남은 재세도 기회...가 있고 영원히 쫓겨나는 지옥도 있으나 누구나 다섯이든 셋이든 하나든 다 하나는 받고 있는 자들입니다.
한냥중 받은 자
⑴ 제일 나중 나왔습니다. 게을합니다
⑵ 주인책망 면하기 위해 반박
⑶ 받은 은혜가 적다함
⑷ 주인이 가혹했다고 말
⑸ 독제권(獨制權)과 주권을 빙자하고 게을 함.
주 섬길 처지 분위기를 내가 정하지 마라. 표준을 내가 정하지 마라. 피동 순종자로 살고 주장자 되지 마라. 이는 자율, 인본, 육본입니다. 이미 받은 은혜가 적다고 불평하는 자 (환경, 몸, 경제, 이웃, 모든 처지)는 결과가 어두운 (세상에서는 번민 교통 범죄, 어둔 마음, 낙망계:界) 데 쫓겨나는 것이며 영원한 멸망입니다.
두말 할 것 없이 멸망이니 기존 은혜 적다 여기고 지옥 가려느냐. 감사하고 천국을 가려느냐. 그리스도 교는 은혜의 종교이면서 계3:18에는 사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대가를 내란 말씀입니다. 은혜의 대가가 무엇입니까? 즉 감사입니다. 감사가 없는 자는 은혜의 절도입니다. 있는 것도 빼앗기고 더 받을 리는 천부당한 일이요, 결과는 멸망입니다. 감사하게 되는 방법과 불평을 가지게 되는 이유.
특수은혜와 보편은혜에 대하여 내 위에 있는 자를 보지 말고 나만 못한 자를 보라. 이것이 마땅하니라.
내가 주님께 바치는 생활은 내 이상 충성된 자를 보거니와 받은 은혜는 내 아래를 보는 것이 마땅합니다. 많이 받고 불만하는 자는 친족간입니다. 이는 많은 것을 바라 본 연고입니다. 또 우리에게 주신 은혜는 만족합니다. (눅19:11-27 므나 요6:10-12 오병이어)
감사할 만한 족한 은혜 = 식물도 짐승도 아니하고, 하나님 형상인 인생 인생 중에도 택정,
예수 그리스도 구원, 하나님 자녀, 신부, 천국, 영생, 영체, 찬양 천사도 부러워하는 전도자, 전능주가 마28:20 생명보다 가까이 계시고 수호 집사하니 무엇 불평하랴. 시온산은 예수 그리스도만 만나게 하는 험로입니다. 감사 아니하니 악마 미혹으로 불만불평하게 됩니다. (빌4:4,6 엡5:20 계11:2-7, 11-15)
보편은혜 대 나환자, 앉은뱅이, 풀과 나무껍질, 감옥, 이상, 가족 전멸해도 감사합니다.
특수은혜 ... 불택자, 부르심을 입지 못한 자, 하나님 진리말씀과 기도, 예배, 형편없는 산간을 보라. 갈라디아서에 날 위하여 란 말씀이 16차나 있는 하나님 사랑을 보면 내 충성은 너무도 배은인 것을 자복 아니 할 수 없습니다. 남고 자기를 보는 자는 혹 불평할지 모르나 자기가 자기를 보면 저주와 즉각 벌로 죽어 합당할 죄인이 아닌가? 무엇 불평하랴. 감사부터 찾자. 그 후라야 능력인 생활을 역사하십니다.
두 냥중 닷 냥중은 받은 은혜 양만큼 전부를 그리스도를 위하여 사는 것을 장사라 합니다. 한냥도 자본을 놀리지는 아니하였습니다. 내 것 다 주님 위하여 살 때, 사는 것으로 만족이 아니고 받아 가지고 있는 것만큼 주 위하여 생활하여 결과를 맺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매일 이런 결과 중에서 회계하는 자는 매일 은혜세계 신앙세계 하나님만 왕되어 계시고 전부가 되어 계시는 세계, 계21:1-7 까지 신천신지의 생활을 하는 자이니 같은 자리를 앉지만 참석치 못하는 자 있습니다. 누구나 피택자라면 최후라도 전부 결과가 2=2, 5=5 되는 시기가 있기는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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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25:14-30
계3:8에 보면, 아주 모든 면으로 빈약한 그 힘을 가지고도 하나님 말씀을 지키고 또, 주님의 이름을 배반치 아니했다 그랬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은 성경 말씀을 지키는 것입니다. 또, 주님의 이름을 배반치 않는 것은 주님의 이름이라는 것은 주님의 이력을 말하는 것이니까 주님이 우리를 대속하신 그 대속을 저버리지 않는 것을 가리켜서 주의 이름을 배반치 아니한다 이랬습니다.
이런데, 여기 특별히 적은 힘 가지고 네가 지켰다 이렇게 말씀을 하신 것은 주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과 주의 대속을 입고 벗지 않는 이것은 택한 자면 누구든지 다 할 수 있다 하는 것을 여게 표현합니다. 적은 힘 가지고 지 켰으니까 많은 힘 가지고는 의례히 지킬 수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러니까 주의 말씀과 주의 공로를 배반치 안하고 입고 있는 것과 주의 말씀을 지키는 것은 누구든지 다 택한 자면 다 지킬 수 있다 하는 그것을 여게다가 특별히 표현하는 말씀입니다. 어떻게? 그 능력이 아주 적은 능력을 가진 사람도 있고 능력을 많이 가진 사람도 있는데 많이 가진 사람이 지킬 수 있는 일을 어떻게 적게 가진 사람이 지킬 수 있을까? 그것은 여게 적은 힘 가지고 지켰다 말은 많은 힘 가지고는 의례히 지킬 수 있기 때문에 많은 힘 가지고 지키지 안한 것은 말하지 안한 것입니다.
다른 데 성경을 본다든지 우리 신앙 경험을 통해서 능력이 있는 사람이나 아주 힘이 없는 사람이나 주님이 주시는 이 건설 구원을 이루는 것은 꼭 같습니다. 왜 같은가 하니 능력이 많은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그 많은 힘을 다해야 지킬 수 있는 그런 현실을 주십니다. 또, 아주 보잘 것 없는 적은 힘을 가진 사람에게는 그 적은 힘 가지고도 다하면 지킬 수 있는 고런 현실을 주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현실을 가지고 하나님이 조절하시기 때문에 그의 뭐 선천적이나 후천적으로 가진 능력이 많고 적은 것은 상관이 없습니다.
다만 요는 다하는 거기에서만 결정은 되는 것입니다. 적은 힘을 받은 사람도 그 힘 다하면 주님의 말씀도 지킬 수 있고 또, 주님의 대속의 공로를 벗지 않고 입고 살 수 있고, 또, 많은 힘을 가진 사람도 뭐 적은 힘 가지고 지키니까 나는 많은 그 실력을 가졌으니까 내야 그 힘 적게 써도 될 것 아닌가 이렇게 생각하지만 선천적으로 후천적으로 많은 힘을 주님이 주신 자에게는 또, 많은 힘 그것 다해야 지키는 고런 현실을 주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비유에 닷 냥중 가지고 열 냥중 만든 사람이나 두 냥중 가지고 넉 냥중 만든 사람이나 대우도 칭찬도 영접도 꼭 같은 영접과 대우와 칭찬을 하신 것입니다(마25:14-30). 그러기 때문에 누구든지 건설구원을 이루는 데에는 뭐 무식해도 상관없고 유식해도 상관없고 신체가 건강해도 상관없고 병신이라도 상관없고 또, 모든 지능이 뛰어나도 상관없고 아주 못난 그런 저능자라도 상관없다. 왜? 그렇게 선천적으로 후천적으로 그것을 많게 적게 해 주신 분이 주님이시요. 또, 주실 때도 그렇게 주셨고, 또, 이 두 가지를 지키는 데에도 주님께서 아야 많이 준 자에게는 많이 준 거 그거 다 해야 지키도록 고렇게 조절하시고 적게 준 자에게는 적게 준 거 고것만 다하면 또, 지킬 수 있도록 고렇게 현실을 가지고 어렵고 쉽게 조절하시기 때문에 다하는 자는 다 이길 수 있고 아무리 능력이 많은 자라도 다하지 않는 자는 이 건설구원은 이루지 못 한다 그것을 여기서 찾아 볼 수가 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세상에서 모든 면에 부한 자나 가난한 자가 그렇게 구원 이루는 데는 꼭 같은데, 위험한 것은 부한 자는 교만하기 쉽고, 또, 게으르기 쉽기 때문에 이루기가 어려우니까 오히려 가난한 자가 믿음의 부요를 받았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가난한 자가 복 있다. 가난한 자가 믿음의 부요를 받았다. 부자들은 믿음의 부요함을 받은 사람들이 드물다 그렇게 말씀 했습니다.
그러니, 여게서 다하지 안하면 안 된다. 그러면 다한 자에게는 하나님이 열린 문을 주신다. 다한 자에게는 하나님이 열린 문을 주시기 때문에 하나님이 열린 문 주면 아무도 닫을 자 없다. 그러면 여게까지 보면 우리의 가진 것을 다하면 아무도 방해할 자 없다. 가진 것만 다하면 건설구원은 아주 완전히 이루어 가질 수가 있다 하는 것을 여게서 볼 수 있습니다.
* 계3:8 :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였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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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 비유에서 우리가 잘못 생각하고 있던 그 모든 것을 회개할 것이 많은 줄 압니다. 여기 금을 맡긴 비유에 있어서 이 주인은 주님 당신을 가리켜서 비유했고 또 여게 백성들은 우리 구속받은 성도들을 다 가리켜서 비유하셨습니다.
그러면 금을 맡긴 것은 당신의 그 구속의 은혜, 이 세상에 없어질 그런 것을 말함이 아니고 예수님으로 말미암은 영감의 은혜라든지 진리의 은혜라든지 또 여러가지로 우리에게 준 그 은혜를 비유한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신령한 것을 이루기 위해서 이 없어질 물질의 것도 우리가 받아 가지고 없어질 것들이 없어지지 아니할 것으로 변화되고 바꾸어집니다. 이런 것을 가리켜서 “죽은 것이 생명에게 삼킨바 되게 하려 함이라”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거둔다”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런고로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는 이렇게 되든지 저렇게 되든지 없어지지 아니할 그런 것들 영원히 있을 것들을 가리켜서 말씀을 했는데 여게서 우리가 첫째로 깨달을 것은 맡기고 가신 주인이 다시 돌아와서 회계한다 하는 이것을 첫째로 하나 우리가 명심해야 되겠습니다.
우리에게 모든 이 세상 준비 기간에 이 처세 형편을 주시고 가신 주님은 반드시 구름타고 오십니다. 가신 주님은 구름타고 오시는데 구름타고 오시면 우리 각자들에게 은혜 주신 대로 그대로 하나도 빠짐없이 역력히 회계하신다 하는 것을 우리가 둘째로 기억해야 되겠습니다.
가신 주님은 반드시 오시는 것과 오실 때에는 가실 때에 우리에게 각자에게 주신 은혜대로, 오셨을 때에는 다시 낱낱이 회계가 있다, 우리와 계산이 있다 하는 그것 우리가 둘째로 생각해야 되겠고, 셋째로 생각할 것은 그 주신 은혜는 어떤 종류의 것이든지, 종류도 물론 많습니다.
종류도 많고 또 종류마다 그 양이 다릅니다. 많은 양도 또 적은 양도 그렇게 각각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은혜의 양이 다르다, 그러면 양이 다른데 많이 준 자에게는 많이 거두고 적게 준 자에게는 적게 거둔다고 말씀하신 대로 양을 주신 대로 그렇게 계산을 댑니다.
대는데 닷 냥중 받은 사람도 있고 두 냥중 한 냥중 받은 사람도 있는데, 닷 냥중 받은 사람도 그걸로 장사해 가지고서 열 냥중 만들었고 두 냥중 받은 사람은 장사해서 넉 냥중 만들었는데 주인이 와서 회계할 때에 꼭 같은 비율로 심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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