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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저를 붙잡으시며 가라사대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하시고  
■ 성경:40마태복음14:31
 

마14:31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믿음의 대상에 신은 소망이 있고 소망은 인내로.
만사는 생존경쟁입니다. 우리의 싸움은 믿음과 의심과 싸움입니다. 소망과 낙망과 싸움. 패자는 승자의 종이니 기독교는 시험의 종교이니 통과한 후에야 주십니다. 만물은 자연 계시오. 보통계시로 깨닫지 못하므로 특별계시가 있습니다.

곤충의 부활을 비유하셨습니다. 껍질이 단단하니 나와야 합니다. 병아리 비유. 나무에 껍질이 단단하면 바르게 장성합니다. 진동이 없고 없어지지 않는 나라에 들어가 영원히 후회가 없는 하늘나라. 하나님의 뜻이 내게 와서 이루어지기까지 참자.
첫째 기도하라 둘째 하나님께 영화를 돌리라.(고전11:24)

* 롬8:24 :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
* 히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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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두려워서 두려워하는데 또 자꾸 물속으로 빠져 들어갑니다. 곧 지금 빠져 들어가니까 이제는 죽을 지경이라 고함을 질렀습니다. '주여 나를 구원 하소서 내가 지금 죽게 되었습니다.' 이라니까 주님이 손을 내밀어서 베드로를 들어 올리면서 말씀하시기를 '믿음이 적은 자야 왜 의심 하였느냐?' '믿음이 적은 자야 믿음이 끝까지 이루어질 때까지 믿음을 계속하지 아니하고 믿음을 시작했다가 마니까 네가 믿음이 있을 때는 물위로 걸어왔지만 믿음이 끝났으니까 네가 물위로 걸어오던 그 능력의 걸음도 끝나지 앉느냐' 이라시면서 배 위로 들어 올렸습니다. 그라고 둘이 바다 위로 걸어서 배에 가서 올랐습니다. 제자들 배에 가서 오르니까 모든 제자들이 보고 '이는 참 하나님의 아들이다' 이라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또 바람은 잔잔하고 이래서 목적지까지 잘 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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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시'
여게 31절에 "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저를 붙잡으시며 가라사대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할 때에 주님이 즉시 손을 내밀어 저를 붙잡으셨다 하는, 요 즉시란 말을 우리가 언제든지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신앙을 바로 갖추지 못했을 때에, 하나님은 지극히 공평되시고 또 약속에 정확하십니다. 또 하나님만 그런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지으신 물건들도 다 정확합니다. 그중에 타락한 천사와 타락한 사람들에게 거짓이 있지 다른 데는 거짓이 없고 그렇게 가감의 에누리하는 일이 절대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지금 이렇게 20세기의 최고로 타락한 창조 벌써 육천 년이 다 돼 가는 말세지말을 당한 이때지만 물리는 거짓이 없습니다. 물리는 거짓이 없습니다. 뭐 물질이 이치에 맞은데 안 되는 일도 없고 이치에 안 맞은데 되는 일도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만온 사람의 바른 이차에 틀런 게 오히려 잘되고 바른 것이 안 되는 사람과 타락한 천사만 심판을 받지 다른 것들은 심판 받을 만한 아무런 그런 것들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주도권이 없고 다 우주에 있는 것은 사람들에게 속했기 때문에 사람들로 말미암아 억울한 저주도 받고 그렇게 사망도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정확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틀렸을 때에 당신이 틀린 것을 그대로 용납하시지 않습니다. 또 틀렸는데 당신이 틀린 법을 통해 가지고 당신이 은혜 베푸시는 그런 죄를 범하지 아니하십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하나님을 향한 소망이나 의지나 복종이 당신에게 틀림이 없이 정확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사람이 거짓되니까 사람처럼 하나님에게도 그런 거짓이 섞여 있는 줄로 생각하고 하나님을 상대하는 그 생활이 이렇게 정확지 안하고 거짓되이 이래 해도 되리라 생각을 하고 참고 기다리는 가운데서 허송세월만 하게 됩니다. 정확지 안하면 안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안될 때는 즉시 정확지 안한 무엇인가 삐뚤어진 것이 있다 하는 걸 우리는 언제든지 생각을 하고 거기서 고치기를 빨리 노력을 해야 합니다.

이런데, 주님이 이 삐뚤어진 데 대해서 어떻게 말씀하셨느냐? 한 마디로 말하면 네가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제가 잘못한 것을 깨닫고 뉘우쳐 돌이키거든 용서하라 하는 이 말씀을 우리에게 가르치셨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의 삐뚤어진 데 대해서 오래 동안 그 삐뚤어진 것을 잡고 삐뚤어짐에 대한 그 보응을 베푸실라고 힘쓰시는 그런 정의의 법정만 가지신 하나님이 아니시고 그것보다 긍휼과 자비를 가지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삐뚤어진 데에는 당신이 우리에게 은혜도 베풀지 못 하시고 또 삐뚤어진 것은 용납도 못 하시고 동시에 삐뚤어진 것을 우리가 고쳐서 당신에게 '내가 이거 삐뚤어졌습니다. 이거 용서해 주옵소서. 이 삐뚤어진 이것을 고치오니 은혜를 주옵소서' 할 때에 즉시입니다. 요 즉시라는 것을 우리가 단단히 기억합시다.

'예수께서 즉시' 31절에 "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즉시 손을 내밀어. 우리의 잘못된 것을 고치면서 용서해 달라고 할 때에. '내가 이 방편이 틀렸으니까 이 방편 고칩니다. 나를 구원하소서' 할 때에 방편 틀린 것을 그것을 얼마든지 잡고 있지를 안하고-말씀을 들었어야 말씀의 능력이 속에 들어서, 말씀에 붙들려 이래야 되지 말씀 떼 내버리고 하면 믿는 자는 죽어요. 힘이 안 나. 말씀은 하나님의 능력이라.

이치를 깨닫는 데 돼지지 이치를 깨닫지 안하고, 깨닫지 안하면 믿는 것이다 거짓부리요. 바로 이치를 깨닫고 이치대로 믿을 때에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 가는지라. 소리 질러 가로되 주여 나를 구원 하소서 하니" 잘못 됐다 말이오. 지금 베드로가 모든 게 틀려 버렸어. 신앙이라 하는 것은 하나 틀리면 다 틀리는 건데 이거 틀렸으니까 틀린 것을 깨닫고. 틀리니까 낭파를 당하고 다 틀리니까 다 절단난다 말이오. 틀린 것을 깨닫고 자기가 즉시 주님에게 부르짖습니다. '나를 구원하소서' 하니까 주님이 그 호소하는 소리를 듣고 '네가 삐뚤어진 길을 걸었으니까 좀 당해 봐라.' 이렇게 하지 아니하시고, 주님은 호소하는 그 호소에 '즉시 손을 내밀어' 즉시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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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빠져 가는지라 소리 질러 가로되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하니 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저를 붙잡으시며 가라사대" 주님이 하시는 말씀에서 이게 판정이 난다 말이오. 주님이 그것을 보고 거게 대해서 어떻게 판단하셨는가? 판단 보니까 "믿음이 적은 자여" 믿음이 적다는 요 믿음은 무엇을 말했는가? 주님을 바라보는 그 바라봄이 단일 집중 의 소망이 흐려졌다 말이오. 적다 말은 흐려졌다 그말이오. 또 주님만을 의지하는 그 의지가 흐려졌다 말이오. 믿음이 적은 자라 말은 흐려졌다 그 말이오. 그것이 백 프로 되어야 되는데 오십 프로가 됐는지 사십 프로가 됐는지 벌써 흐려졌다 말이오. 흐려지니까 흐려진 결과로 흐려진 행동이 나요니 흐려진 행동은 소망을 해치고 또 흐려진 행동은 의지를 해치고 또 흐려진 소망은 의지를 해치고 흐려진 소망은 행동을 해치고 이 셋은 하나가 삐뚤어지면 서로가 다 해쳐 버리고 맙니다.

"적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의심하였느냐' 하는 이것은 벌써 하나님을 주님만을 바라보는 것이 벌써 흐려졌고 의지하는 것이 흐려졌고 당신에게만 피동 당신에게만 피동되는 이 피동이 흐려졌다 그거요. 이것이 전부 "의심하였느냐" 이랬으니까 물에 빠져 들어 가는 그것도 마음 작용 아닙니다. 요거 잘 알아야 돼요. 물에 빠져 들어가는 것도 마음 작용이 아니요 배에서 내려 서는 그것도 마음 작용이 아니요, 물위로 걸어가는 것도 마음 작용 아니오. 이 배에서 내려 서는 것이나 또 물위로 걸어가는 것이나 또 빠져 들어가는 것이나 아것은 전부 마음 작용이 아니고 행동 작용인데 행동 작용인데 요 행동 작용이 어디서 나왔느냐 요것을 우리가 살펴 봐야 됩니다. 요 행동 작용이 어디서 나왔느냐? 행동 작용이 될 때에 사람들은 볼 수 있고 할 수 있지만 사람들이 볼 수 없는 행동 작용이아닌 그 마음의 작용 거기서 이 행동 작용이 나왔지 행동 작용에서 그게 시작된 것이 아니고 마음 작용에서 행동 작용이 나왔다 말이오. 이러니까, 행동 작용은 사람들이 볼 쑤 있지만 마음 작용은 사람들이 보지 못합니다. 이러니까, 우리의 시앙은 사람들이 볼 수 없는 마음 작용 거기서 다 결정돼 버립니다. 고 결정된 그것이 행동 작용으로 나오기 때문에 행동이 되었을 때에는 벌써 마음 작용에서 이루어진 것이 거게 소산으로 나오는 것이라 그거요.

그런고로 '왜 의심하였느냐' 하는 것은. 물에 빠져 들어가면 '왜 네가 물에 빠져 들어가느냐' 이렇게 말씀하지 안하고 주님은 이 고장을 어디다가 뒀습니까? 이 고장을 어디다가 부담을 시켰습니까? 이 고장을 '네가 왜 물로 빠져 들어가느냐? 왜 걸어오다가 빠져 들어가느냐?' 이렇게 그 행동 사람이 볼 수 있는 행동에다가 책임을 부담을 시켰습니까 어디다가 부담을 시켰습니까? 마음에다 부담을 시켰습니다. 의심하였느냐는 그거는 마음을 말하는 거라 '의심하였느냐.' 그 마음 작용에서 이 두 가지가 틀렸기 때문에 그 사람이 볼 수 있는 행동이, 행동 개시가 돼 가지고 타락한 행동 빠져 들어가는 행동이 돼졌다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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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그라다가 바람을 보고 무서워합니다. 바람을 보고 무서워해요.이제는 뭐이냐? 주님을 바라보는, 주님을 바라보는. 주님이 무엇이든지 다 해 주신다. 주님이 말씀하시는 것은 틀림이 없다. 주님의 능력은 날 안보하기 때문에 아무도 해하지 못한다 했는데 주님이 안보하시는 안보도 흔들렸고, 주님을 봐라보는 소망도 흔들렸고, 주님의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다는 요것도 흔들렸고, 주님같이 되기뜰 소원하는 것도 흔들렸고 요 네 가지가 병들었습니다. 요 네 가지가 병드니까 빠져 들어간다 말이오. 요 네 가지가 병들었는지 안 들었논지 뭘 보고 아느냐? 물에 빠져 들어가는 이게 병 들었다 말이오. 무엇을 가지고 그 사람이 확고한 진실한 신앙을 가졌는지 알 수 있느냐? 물위로 걸어가는 것 보니까, 그게 결과라. 그게 표시라.

그게 표적이라. 물위로 걸어가는 것이 빠져 들어가는 것은 뭐이냐? 네가 의심한 증거라 말이오. '이 적게 믿는 자야.' 적게 믿는다는 것은 처음에 시작할 때는 믿어 가지고 물위로 걸어왔는데 물위로 걸어오다가 마지막에는 차져 들어갑니다. 그게 적게믿 눈 거라. 믿다가 동가리가 끊어져 버렸어. 그라고 다시 해석하기를 '왜 의 심하느냐?' 하나님에게 대해서 소망하는 것, 의지하는 것, 또 복종하는 것, 주와같이 되기를 원하는 것 요것이 흔들렸다 말이오. 의심한다 말은 흔들렸다 그말이오. 의심한다 말은 나사가 풀어졌다 말이오. 나사가 풀어졌다. 흔들린다. 풀어졌다 풀어졌다. 의심한다, 풀어졌다. 그것을 보입니다. 주님은 요 신앙을 원하십니다. 요 신앙 가지고 모든 것 다 돼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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