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5:4-11
(성도의 성공)
1. 중생된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에서 살 때에 주님과 그 계명을 버리고 하는 일은 아무리 열중해도 실패뿐이요 만일 성공 같은 것이 일시 있었다면 그것은 다 화근이 되는 것이니 주님과 그 계명을 떠나서는 아무것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2. 중생된 그리스도인들이라면 누구나 주를 모시고 그 계명대로 신앙 행위를 할 때 잘 되고또 일시적으로 주의 계명대로 살면 실패같이 보여질지라도 낙망이나 두려움을 가지지 말고담대히 그대로 행하여 세월이 얼마가 지나가든지 계속만 하면 하나님의 권능으로 가장 적절한 시기 적당한 은혜 축복을 주어 자타가 놀랄 만한 하나님의 축복과 은혜를 받게 됩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은 믿음을 인해서 자타가 놀랄 만한 이 축복을 받는 것이 증거입니다. 오랫동안 믿어도 이 증거가 없는 사람은 어느 면인가 고치지 않은 것이 있으니 이것을 찾아 주의 계명대로 빠짐없이 하나 둘 고쳐 갈 것입니다. 고친 정도를 따라서 하나님의 축복과 은혜가 점점 크게 오는 것입니다.
3. 이렇게 믿음으로 말미암아 세상 축복을 받아 본 사람이라야 여기에서 깨닫고 영원 무궁한 하늘나라의 축복을 받기 위하여 믿음에 힘쓰는 사람들이 될 수 있는 깨달음을 세상 축복받는 데에서 이 경험에서 체험에서 받아야 합니다. 믿는 것은 실행을 통해서만 모든 것은 이루어집니다. 실행이 없는 데에는 헛것이요 다 죽은 믿음입니다.
(790225)
(상등 믿음)
그러면, 베드로가 밤새껏 고기 잡아도 한 마리도 잡지 못할 그때는 뭣하는 사람입니까? 믿음 없는 사람입니다. 믿지 안한 사람이오. 주님 시키는 대로 하는 거 아닙니다. 주님도 배반하고 주님이 시키지 안한 일을 제맘대로 제 생각대로 밤에 가 가지고서 제 수단 방법 기술 가지고서 밤새껏 날뛰었지마는 아무것도 잡지 못했다 그거요.
믿지 안하는 믿음은 믿음 없는 믿음, 또 베드로가 예수님께서 저 깊은 데로 그물을 내려서 잡아 봐라 이라시니까 가서 ‘그라면 내려 보리이다’ 하고서 그물을 저 깊은 데로 던졌습니다. 던졌으니까 그 믿음은 믿어보지 않는 믿음입니까 믿어보는 믿음입니까? 똑똑히 됩니까? 믿어보는 믿음입니까? 예, 믿어보는 믿음입니다. 믿어보는 믿음. 그거는 ‘한번 순종해 봅시다. 던져 봅시다.’ 믿어 보는 믿음을 가지고서 던졌습니다. 그러니까 그다음에 뭐이 생겼습니까? 그물이 찢어질 만치 고기가 잡힌 것을 봤습니다.
보니까, 이제는 베드로가 고기고 뭐이고 그런 거 다 그만 마음에 들지 안하고서 이제 주의 말씀대로 살아서 영원 무궁한 참 보배로운 하늘의 보화를 마련치 못한 것이 원통하고 기막혀서 예수님의 발아래 꺼꾸러져 참 떨면서 죽은 자와 같이 되어지니까 예수님께서 네가 이제 후로는, 네가 고렇게 회개를 하니까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하니까 “모든 것을 버려 두고 예수님을 좇으니라” 했으니까 그 믿음은 무슨 믿음입니까? 그 믿음은 무슨 믿음이지요? 믿어보는 믿음입니까 보고 믿는 믿음입니까? 보고 믿는 믿음입니다. 보고 믿는 믿음. 그 믿음은 그래도 상등축에 갑니다. 그 믿음은 상등 믿음이오. 또 보지 안하고 믿는 믿음도 그 믿음은 더 상등입니다.
그래서, 믿음도 땅에 속한 믿음 하늘에 속한 믿음, 복도 땅에 속한 복 하늘에 속한 복 이렇게 둘로 따로 있습니다.
(86070602)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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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가 ‘그물 던지라’ 할 때는 비웃었지만 그물을 던져 가지고 그 결과를 보고 난 다음에는 꺼꾸러졌습니다. 성령과 성경에서 천국과 주님이 어떤 분이신 것을 소개받고 그분 인도하심을 따라서 한 자욱 두 자욱 걸어보면 과연 천국이 어떠하며 주님이 어떤 분이시라는 것을 알게 되고, 알면 그 앞에 소유와 몸과 생명을 기울여 바치지 아니할 자 한 사람도 없는 것입니다.
뭣 때문에 장사꾼이 백 원 들여 가지고서 억만 원을 버는데 백 원 투자 안 할 자가 어디에 있습니까, 있기를? 사람들이 볼 때에 ‘저 사람은 예수 믿는 사람으로 의지가 굳다.’ 아니오. 의지 굳은 것 아니오. 다 욕심입니다. ‘저 사람은 참 미련한 등신이네. 저렇게 손해보는 일을 하네.’ 아니오. 등신이 아니오. 욕심이오. ‘저 사람은 창수도 없는 사람인가 참 속도 없는 사람이다.’ 속이 없는 것 아닙니다. 욕심이오. ‘저 사람은 마음이 관대하다.’ 관대한 것 아니오. 욕심입니다. 하늘나라와 주님에게 대한 이 성령의 욕심이 거기 욕심으로 일합니다. 욕심이오. 돈 욕심 내는 사람은 예의도 체면도 수고도 죽는 것도 가리지 않고 돈이라면 달라드는 것처럼 하늘나라와 주님이 어떤 분인 것을 확실히 깨달은 사람들은 죽는 것 사는 것 상관 없습니다. “이제도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기만 원하노라”
(81030802)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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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표본(標本)인 사람 베드로를 보십시오. 그가 자기는 도무지 이치에 안 맞지만 하나님이, ‘주님이 말씀하니까 주님의 말씀에 의지해서, 주님의 말씀을 의지해서, 주님이 말한 그거만, 내가 된다 하는 것 아닙니다. 당신이 된다 하니까 내가 이거 바랍니다.’ 소망하고 의지하고 휙 던지니까 소원 성취대로 고기가 많이 잡히지 않았습니까? 잡히는 그게 문제가 아니라. 잡히게 한 그것은, 고기 많이 잡고 배부르게 하기 위해서 주님 오신 거 아닙니다. 그로 인해서 깨닫도록,
많이 잡히니까 베드로는 ‘아이쿠야, 주님만 바라보고 의지하고 순종하는 이거 헛일인 줄 알고 한번 시험해 보자, 하고 한번 했더니만 그대로 되는구나! 주님 바라고 의지하고 순종하는 거는 그대로로구나!’ 그대로라는 것을 생각하고 보니까 고기 잡은 그까짓 거 눈에 보이지도 않습니다. 그 말씀의 신실(信實)을 지금 믿고 보니까 그거 뭐 억억 만 배라 할 게 아니라 무한히 큰 게 많이 있는데, 이러니까 당장에 고기고 배고 그물이고 다 집어던져 버리고 이제는 인간(人間) 수입, 영원(永遠)한 수입을 보려고 예수님을 따르지 않았습니까?
(80050731 집회)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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