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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 성경:66요한계시록03:20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우리가 예수님의 이 3가지 대속의 공로를 실상으로 입고 있지 안 할 때에는 예수님이 우리에게 오면 우리를 전멸시켜야 되기 때문에 실상의 공로를 우리가 입고 안 있을 때에는 예수님은 피해 버립니다. 이것은 예수님을 쫓아내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왜 나가십니까? 당신은 빛이시기 때문에 죄가 있는 자를 죽여 버리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사랑의 하나님이 우리를 딱 멸해 버리면 그만이기 때문에 당신이 자꾸 피해 주신다는 말입니다. 지극히 큰 능력이 우리에게 와서 역사하시고자 원하지만 역사하시려면 이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입고 있어야 되는 것인데 대속의 공로를 벗어 버렸으니까 와서 역사할 수가 없으니까 부득이 피해서 입을 때까지 기다리고 섰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니까, '문을 두드리라' 말은 대속의 3가지 공로를 입으라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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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이 문은 우리 심신이 갇혀 있는 문을 말합니다. 우리의 심신을 가둬 가지고 있는 문인데, 우리 심신을 가둬 가지고 있는 것은 죄악이 가둬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면, 문을 열어라 말은 죄악의 문을 열어라 말입니다. 이러니까, 그 안에 갇혀 가지고 죽으면서도 이 심신이 죽는 줄 모르고, 이 악령과 악성 악습에게 미혹을 받아 가지고 이 죄악 속에 있으니까 그게 저거 사는 세계인 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자기 주관대로 자기 욕심대로 자기 생각대로 자기 소원대로 자기 지식대로, 자기 자율대로 이렇게 사는 것이 저 사는 것인 줄 알고 그렇게 살고 오히려 진리와 성령과 주의 피의 공로를 자꾸 멀리 하려고 애를 씁니다. 고게 뭐이냐 하면. 마귀 요놈에게 꼬여서, 고것이 악령과 악성 악습으로 된 옛사람인데 옛사람 고것이 자기인 줄 알고, 옛사람 요놈하고 악령 악성 악습하고 우리 마음하고 몸뚱이하고 철통같이 하나가 돼 가지고, 제라고 생각해 가지고 요렇게 감쪽같이 죽는 일 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심신을 살리기 위해서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가 들어가면, 우리 마음이 예수님의 대속을 믿습니다. 예수님의 대속을 믿으면 벌써 이 악령이 왕 노릇을 못 합니다. 왕 노릇을 못 하고, 예수님의 대속을 믿어서, 실상 예수님의 대속을 입고 예수님의 대속의 행위를 할 때에, 악령과 사망과 죄악과 모든 악습은 다 깨어지는 것이요 녹아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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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내가 문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들어가서 나는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이렇게 말씀을 하셨는데 문 밖에서 두드린다는 그 말은 어데서 두드린다는 말이냐 하면은 우리의 마음 밖에서 우리의 몸 밖에서 두드린다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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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네가 문을 열면 내가 들어가서 나는 너로 더불어 먹고 너는 나로 더불어 먹는다 말은 나는 너를 통해서 내 무한한 포부를, 무한한 소망을, 무한한 목적을, 무한한 계획을 너를 통해서 다 달성할 것이고, 또 너는 나로 더불어 먹는다. 너는 나를 힘입어 가지고서 너에게 무한한 희망이 있는 그 희망을 다 달성할 수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소망은 끝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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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문을 열어라 그러면 내가 들어가서 너로 더불어 같이 먹고' 이 말은 마음의 문을 열어 가지고서 마음 밖에 밀어내고 쫓아낸 그 중생된 영과 이 진리, 성령, 피공로 이 넷이 함께 있는데 이 넷을 네가 영접하면 다시 들어가겠다 말입니다.

'문을 두드리노니 문을 열라 그러면 우리가 너 안에 들어가겠다' 들어가는 것은 넷이 들어갑니다. 넷이 들어가면 '너는 나로 더불어 먹고 나는 너로 더불어 먹는다'. 먹는다는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행한다는 말입니다. 인격은 뭘 먹는 게 아니고 인격은 행하는 것이 양식이요 아는 것이 양식이요 느끼는 것이 인격의 양식입니다. 이래서, 너로 더불어 먹는다 말은 네게 대한 의무와 책임 영원한 의무와 책임을 이 넷이 들어가면 완성을 할 수가 있다 하는 말입니다.

나는 너로 더불어 먹는다 그말은 중생된 영은, 중생된 영과 진리와 성령과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는 그 심신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또 그 심신은 하나님을 힘입어서 이루고 이래서 우리가 합작이 되면은 우리는 진리와 성령과 예수님의 대속 이 세 가지 공로를 힘입어서 우리에게 대한 의무와 책임과 사명과 행복을 다 갖추어 완성할 수가 있고 이 셋은 또 우리를 통해야 완성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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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문 여는 것이 어떤 것이 문 여는 것입니까?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그 위에 말했습니다. 사랑하는 자는 회개 안 하면 자꾸 채찍을 깔려서 징계를 해서 회개 안 하고 못 견디도록 하시는데, 자꾸 권고하시다가 안 들으면 그만 그대로 둘 수밖에 없습니다. 안 듣는 걸 자꾸 징계를 하고 이래도 안 들으면, 징계하다 보면 죽으면 절단나 버릴 터이니까 할 수 없이 참아 기다릴 수밖에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문을 여는 것은 무엇인가? 주님과 나 사이에 가로막혀 있는 것을 틔우는 것이 문을 여는 것입니다. 가로막힌 게 뭐인데? 가로막힌 것이 죄입니다. 죄를 회개하는 것이 문을 여는 것입니다.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어떤 자에게로 들어가는가? 문을 여는 자에게 들어갑니다. 문만 열면 주님이 들어오십니다.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문을 여는 것은 주님과 나 사이에 거리끼는 모든 죄를 다 회개하는 것이 문을 여는 것입니다. 문을 열면 주님이 내 안에 들어오십니다. 문을 안 열고 암만 들어오라고 해도 들어오실 수가 없습니다. 문을 열고 영접하면 들어오십니다.

문을 여는 것은 죄를 회개하는 것이요, 영접하는 것은 내가 마음으로 주님을 믿는 것, 마음으로 주님을 내 마음에 영접하는 것입니다. 회개하고 주님을 들어오도록 영접하는 것은 내 마음으로 주님을 영접하는 것입니다. 내 마음으로 주님을 생각하고 사모하고 자기 안에 주님으로 모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음으로 모시는 것입니다. 이것을 가리켜서 믿는다 이렇게 말합니다.

아무 형체 없는 영으로 오시는 주님을 영접하는 것은 육안으로 볼 수 없게 마음으로 영접합니다. 마음으로 영접하면 주님이 오셔서 전지 전능의 지극한 능력이 형체 없이 내 속에 들어오는 것입니다. 형체 없이 내 속에 들어와서, 보이는 형체는 없으나 그 능력은 들어오셔서 역사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 능력이 들어와서 역사할 때에 아무 형체도 보이지 않고 역사만 하니까 사람들이 나중에 잘못 생각하면 교만해져서 제가 한 줄로 이렇게 오해를 하게 됩니다.


'나는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주님이 나로 더불어 먹는다 말은 주님이 나를 통해서 당신이 땅위에 오신 목적을 다 완성한다 말입니다. 먹는다 말은 완성한다 말입니다. 또 나는 주님으로 말미암아 내게 대한 하나님의 뜻을 다 완성한다는 말입니다.

여기 먹는 것은 육체가 먹는 것이 아니고 인격이 먹는 것입니다. 새사람 참사람이 먹는 것입니다. 인격이 먹는 것인데 곧 중생된 새사람이 먹는 것입니다. 새사람은 이런 물질을 먹지 않고 새사람은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와 영감과 진리를 먹고 삽니다.

그러면 먹는 것은 어떻게 먹는가? 그 뜻을 이루는 것이 먹는 것이기 때문에 그 뜻을 행하는 것이 먹는 것입니다. 그 뜻을 사람들이 행할래도 행할 수가 없는데, 자기에게 대한 하나님의 뜻을 다 행한다 하는 말은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명령하시는 것 다 행하고 요구하시는 것 다 행하고 교훈하신 것 교훈대로 다 행하는 그것을 가리켜서 먹는다 그랬습니다. 인격이라는 것은 입으로 먹는 게 아니고 올바른 교훈이나 지도나 지혜를 들어서 깨닫고 믿을 때에 인격이 자라게 되고 또 그대로 실행을 할 때에 인격이 자라게 됩니다.

요한복음 4장에 예수님이 물을 달라 하시니까 시장하신가보다 해서 식사를 사 가지고 오니까 한 사마리아 여인하고 얘기를 주고 받고 있었습니다. 제자들이 ‘여기 떡을 사 가지고 왔으니까 떡을 잡수십시오’하니까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내게는 너희들이 알지 못하는 내가 먹을 내 떡이 있다.’ 이러니까 제자들이 ‘아마 사마리아 여인이 잡수실 것을 드렸는가보다’ 이렇게 생각을 했습니다.

주님이 제자들의 그 생각을 보시고 다시 설명을 했습니다. ‘너희들이 알지 못하는 내가 먹을 양식은, 떡은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것이요 또 보내신 아버지의 뜻을 완전히 이루어서 완성하는 것이다.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는 것이 양식을 먹는 것이요 완전히 행하는 것이 그것이 양식을 먹을 대로 다 먹은 것이다.’ 했습니다. 인격의 양식은 듣고 깨달음으로 양식이 되고 또 행동하는 데에서 완전히 양식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가리켜서 심령의 양식이라 합니다. 안 믿는 사람들도 이걸 따 가지고 마음의 양식이라 그렇게들 더러 말을 합니다.

그러면 아버지의 뜻을 주님이 다 이루신 것과 같이 우리가 주님의 뜻을 다 이루면 주님이 승리하신 승리 우리도 승리하기 때문에 승리의 대우를 주님이 받은 것과 같이 우리들도 승리의 대우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성공이 무엇인가? 주님의 보좌에 앉는 이것이 우리의 성공이요, 그러면 성공하는 실력은 무엇인가? 실력은 주님으로 더불어 먹는 것이 실력입니다. 주님도 나 아니면 내게 대한 뜻은 이루지 못합니다. 나도 주님이 아니면 내게 대한 주님의 뜻을 이루지 못합니다. 승리는 뭣이 승리인가? 내게 대한 주님의 뜻을 다 이루는 것이 승리입니다. 다 이루는 것을 가리켜서 먹는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다 이루는 것이 무엇인가? 주님이 나에게 교훈하신 대로 다 행해서 교훈하신 그대로의 사람, 성경대로의 사람이 되는 것이요, 또 교훈하시고 명령하시고 요구하신 대로 다 행하는 그것이 승리입니다. 주님의 뜻대로 다 행하고 또 주님의 뜻대로 다 된 사람이 되고, 또 주님의 교훈대로 다 하고 이러면 온전한 사람입니다. 온전한 사람에게 하나님이 영계와 물질계의 모든 것에 대한 주권을 주십니다. 주권 주시는 것은 가리켜서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노릇한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주권 받는 것이 왕노릇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과 우리와의 뜻이 하나되어서 하나님이 주권하시는 그 주권 우리도 주권합니다. 그것은 사상이 같기 때문에, 소원이 같기 때문에, 주님의 소원과 우리 소원과 같아서 주님의 소원이 이룰 때 우리 소원도 이루어집니다. 그것이 주님과 같은 사람 되는 것입니다.

이래서 요15:7에 '너희가 내 안에 있고 내 말이 네 안에 있으면 원하는 대로 구하라 다 이루리라' 했습니다. 소원한 대로 어떻게 다 되겠습니까? 소원하는 대로 다 되는 것은 주님의 소원과 내 소원이 일치가 되어야 되지, 주님의 소원은 동으로 가자 하는데 우리가 서로 가자 하면 되지 않습니다. 원하는 대로 구하라 다 이룬다 말은 내 잘못된 소원대로 다, 내 사욕대로 다 된다 말이 아닙니다. 주님의 뜻 이루어진 것이 내 뜻 이루어진 것이요, 주님의 소원 이루어지는 것이 내 소원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주님과 나와의 사람이 본질과 본성으로 하나되는 것을 가리켜서 말합니다.

그런데, 주님이 나로 더불어 먹는 것은 어떻게 하면 됩니까? 아버지의 보내신 뜻을 다 이루시는 것과 또 주님이 내게 명하신 모든 것을 내가 다 이루는 것이 먹는 것인데. 이 먹는 것은 어떻게 하면 먹는다 했습니까? 문 열면 주님이 들어오셔서 같이 먹는다 말씀했습니다.

* 요4:32 : 내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먹을 양식이 있느니라
* 요15:7 : 무엇이든지 원하는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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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찌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먹는다는 것은 뜻을 행하고 그 일을 다 이루는 그것을 가리켜서 말하는 것이니 이것이 영의 양식, 인격의 양식입니다. 영의 양식 인격의 양식인데, 나는 너로 더불어 먹는다 그 말은 주님은 그 문 연 사람을 통해서 주님의 그 받은 바의 아버지의 뜻을 다 행할 수 있다 말입니다. 주님은 아버지의 뜻을 문 연 그 사람을 통해서 그 사람과 협동해 가지고 뜻을 다 이룰 수 있다, 주님은 아버지의 뜻을 이루실 때에 문 연 그 사람하고 협동해 가지고 아버지의 뜻을 다 이룰 수 있고 또, 아버지의 일은 문 연 그 사람하고 함께 해 가지고 다 이룰 수 있다 그 말씀입니다.

그러면 주님은 우리로 더불어 완성할 수 있고 우리는 주님으로 더불어 완성할 수 있는데 이 완성하는 것이 어데서 완성할 수가 있느냐? 완성할 수 있는 것은 문만 열면 완성 된다 그 말이오, 문만 열면 완성 된다. 문 밖에서 들어오시려고 문을 두드리고 있으니까 문만 열면 저절로 들어올 것 아니겠습니까? 뭐 영전할 것도 없이 문만 열면 들어오십니다. 얼마나 간단합니까?

그러면, 주님 영접하는 것은 이렇게 쉽습니다. 문을 퉁퉁 두드리고 있는데 잠가 놓은 문을 그만 열면 쑥 들어오신다 그 말이오. 이러니까, 우리가 주님 영접하기는 이렇게 쉽습니다. 이렇게 주님 영접하기 쉬운데 우리가 무슨 힘이 들어서 못하는 것도 아니요 어려워서 못하는 것도 아니요 할 줄 몰라서 못 하는 것도 아니요, 하기 싫어서 안 합니다. 그러니까, 순전히 우리가 얼마든지 쉽게 할 수 있는 일인데 영접을 안 해 그렇습니다.

그러면, 주님을 영접하는 것이 어떤 것이 주님을 영접하는 것인가? 우리가 자기의 현실을 만났을 때에, 하나님의 말씀은 이렇게 하라고 하고 마귀는 저렇게 하지 말라 하고 이럴 때에 하나님의 말씀이 하라 하는 그대로 내가 하면 그만 영접됩니다. 하면 영접돼요. 뭐 힘드는 거 없어. 그러니까. 주님이 하라 하시는 대로 고대로 하면 그만 영접됩니다.

자기 혼자 이렇게도 할 수 있고, 마음대로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도 할 수 있고, 하나님 말씀대로 할 수도 있고 말씀을 또, 어겨서 제 마음대로 할 수도 있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할 수도 있고 제 마음대로 할 수도 있고, 제 마음대로 할 때에는 제 마음이 아니라 마귀란 놈이 들어 가지고 하기 때문에 옛사람이 하는 것이라 말이오. 옛사람이 하고 싶은 대로 할 수도 있고 또, 하나님이 하라 하는 대로 할 수도 있고, 이러니까 제가 뭐 이리 하는 것도 힘드는 거 아니오. 이래 하는 것도 아주 쉽습니다. 이래 하는 것도 힘들지 안하고 이래 하는 것도 뭐 그것도 힘드는 거 아니오. 다 힘드는 거 아니오. 제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거라. 하나님이 하라는 대로 할 수도 있고 또, 제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제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고것은 뭐이냐? 타락한 우리들이기 때문에 악령이 하라 하는 대로 하는 것이 되는 것이고 하나님 말씀에 하라 하는 대로 하면은 하나님이 하라 하는 대로 하는 것이고, 이러니까 우리가 그 현실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하라는 대로 하면 그것은 주님을 영접 한 것이 되고 또, 저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마귀하고 한 덩어리 돼서, 마귀를 영접하는 게 아니라 마귀하고 한 덩어리가 돼 가지고 하는 것이고, 우리가 마귀하고 하나가 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기 하고 싶은 것을 버릴 때에 마귀를 배척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현실에서 자기 하고 싶은 것을 버리는 것이 마귀 배척이요, 마귀 이별이요 마귀를 배척하는 것이오. 하나님 말씀대로 하는 것이 하나님을 영접하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원수가 누구입니까? 원수가 누구지요? 예? 원수가 누구요? 원수가 자기요. 자기라니? 자기가 왜 원수라? 자기 속에 뭐이 들었는데 원수라? 자기 속에 뭣들었어? 예? 자기 속에 뭣 들었지? 대답 해 봐. 예? 악령, 마귀, 사탄 그놈이 자기 속에 들었거든. 제 마음이 아니라 마귀 마음이 들었어. 우리가 인생이 타락하고 난 다음에는 마음을 뺏겼습니다. 선악과를 먹으니, 선악과 보니까 그렇츰 좋았는데, 선악과 보니까 그렇게 좋은 해와의 마음이 그게 해와의 마음입니까 뱀의 마음입니까? 뱀이 그 마음을 점령했기 때문에 뱀의 마음이 돼서 그렇다 그 말이오.

이러니까, 현실에서 저 좋게 하면 자기는 영원히 비참하고 가련하고, 현실에서 주님 좋게 하면 그만 존영하게 돼져. 뭐 간단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 현실에서 내게 대해서 금생 내세 모든 것을 해 주고, 내 몸도, 내 몸에도, 내 경제에도, 내 생활에도, 내 가정에도, 내 사업에도 금생에도, 내 지위에 명예에도, 내 권위에도, 내 능력에도, 내 지식에도 내세도, 영에도 모든 것이 다 완전케 해 줄 수 있는 이분을 이 현실에서 배척하든지 이분을 영접하든지, 영접하기도 쉽고 배척하기도 쉬워. 간단해. 배척하기도 쉽고 영접하기도 쉬운데 배척해 놓으면 그 뒤가 큰 멸망이 오고 영접해 놓으면 그 후 생명과 평강이 한없이 옵니다.

(85040440) 9


'문을 열면'
문을 열라 말은 무엇을 열라 말인고 하니 자기 주관을 버리라 그말입니다.
문을 열라 말은 자기 주관을 버리라.

(87080420)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문을 열면 내가 들어가서 너로 더불어 먹고 너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하는 그 말씀은, 문 밖에서 기다리는 것은 벌써 영은 중생했기 때문에 영 안에는 와서 계시지마는서도 아직 마음과 몸에는 건너오지를 못하셨기 때문에 우리 중생된 영 안에서 이 심신에 건너오실라고 지금 심신을 두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심신을 두드리고 있는데 주님을 영접해 들이면은 주님은 우리를 통해서 뜻을 다 이루시고 우리는주님을 통해서 다 뜻을 이룰 수 있는 것을 가리켜서 서로 먹는다 이렇게, 양식을 먹는다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86032852)5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문만 열면 나는 너로 더불어 먹고” 이 말은 주님은 우리를 통해서 당신에게 명한 아버지의 뜻을 다 이루고 “너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우리는 주님을 통해서 주님이 우리에게 명령하신 주의 뜻을 다 행하게 된다 그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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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예수님이 우리로 더불어 성공하고 우리는 예수님을 힘입어서 성공하는데 성공하는 그 비결은 ‘문을 열어야 됩니다’ . 문 열어 주면 돼요. “문을 두드리노니 문을 열라” 문만 열면 주님이 그만 들어오셔 가지고서 이거 성공합니다. 문 열어 주는 것는 하나님께서 이렇게 모든 것을 천지는 없어져도 없어지지 아니하는 이 교훈과 계약 약속과 모든 예언을 선포해 놓으셨는데 이 선포해 놓은 이것을 믿지 안하고 만날 믿지 않는 것, 믿지 않는 게 문이라. 그 문을 열어라. 믿지 않는 걸 확 열어닥쳐 버려라.

성경에 하나님 말씀했고, 하나님의 약속 말했고, 하나님의 교훈 말했고, 하나님이 앞으로 이래 된다 예언 말씀했고, 이렇게 말했는데 성경이 말한 대로 하나님도 그렇게 믿지 안하고 약속한 것도 믿지 안하는데 안 믿는 그것 때문에 실패합니다. 이제 문을 여는 것은 안 믿는 불신의 문을 확 열어서 불신을 없애버려, 불신을 깨뜨려 버리면 믿습니다. 믿으면 전능의 능력이 자기에게 와 가지고서 역사하게 됩니다.

“문을 열라” 들어올라고, 주님이 어데 들어올라고 지금 문 열라 합니까? 우리 마음 속에 들어올라고 하시는 것이라. 그러면 지금은 성령님이 하나님이신데 성령님이 어데 거처합니까? 우리 마음에 거처 안 할 때는 어데 계십니까? 우리 영 안에 계시요. 딴데 있지 안해. 영 안에 계시나 우리 마음 안에 들어오지를 못해.

우리 마음에 들어오는 것은 어떻게 하면 들어와요? 문 열면 들어오요. 문 여는 게 뭐라요? 문 여는 게 뭐입니까? 의심을 불신을 확 열어재껴 버리면은 믿으면 들어와요. 알겠습니까? 천지는 변해도 변치 않는 방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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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문 밖에 서서 두드린다 말은 마음 문 마음 밖에서 두드린다 그말입니다. 마음 밖에서 두드린다. 그러면 주님은 어데 계시면서 마음 밖에서 두드리고 계시는가? 우리 중생된 영 안에 계시면서 우리 마음에 들어오실려고 마음 문을 두드리는 것입니다.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문을 여는 그 문은 뭐이냐? 주님이 들어오지 못하게 막아놓은 닫아놓은 문입니다. 닫아놓은 문을 열면 주님이 들어오실 수가 있습니다.

닫겨 있는 문은 뭐인고 하니 자기 주관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제 생각, 제 마음, 제 주장, 제 뜻, 제 지식 저를 인정하는 그것이,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인정하는 그것이 하나님을 부인하게 하는 것입니다. 자기를 인정하느냐 하나님을 인정하느냐? 자기는 이미 마귀에게 끌려 가지고 마귀하고 하나가 되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하시는 일은 전부 부정이 됩니다.

마귀는 하나님과 대립이요 반대입니다. 마귀의 유혹, 악령 악성 악습에 그 마음이 유혹받아 끌려 가지고 있는 마음이기 때문에 그 마음은 전부 악령적이요 악성적이요 악습적이라. 악령 악성 악습적이라 말은 다 자기 중심이요 자기 위주라 말입니다.

악은 자기 중심 자기 위주, 피조물 중심 피조물 위주 이거 전부 악입니다. 인류 중심도 악이요, 국가 중심도 악이요, 민족 중심도 악이요, 가정 중심도 악이요, 자기 중심도 악이라. 무엇이든지 피조물 중심은 다 악입니다. 그러면 선은 뭐인가? 창조주 주재자 완전자이신 그분 중심, 그분 위주, 그분 본위 이것이 선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문을 닫아 있다. 이 문은 자기 주관, 자기 중심, 자기 위주, 자기 본위, 악령 악성 악습, 자기 주관, 옛사람 그것이 문을 가로막고 있습니다, 옛사람 그것이. 옛사람이 딱 주님 들어오지 못하게 딱 가로막고 있습니다.

그러면 누가 들어오는고 하니 중생된 영하고 또 진리하고 성령하고 이 셋이 들어올라고 하는데 막기를 어떤 놈이 막는가? 악령 악성 악습 이놈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고 있습니다. 이것을 가리켜서 자기 주관입니다. 자기 주관이 막고 있습니다.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문을 연다는 것은 자기 주관을 부인하고 자기 중심 자기 위주를 부인하고 악령 악성 악습으로 된 옛사람을 부인하면 무엇이 열려지느냐? 부인하면 믿음이 열려집니다. 부인하면 중생된 영과 진리와 성령과 자기와는 하나가 됩니다. 그러면 길이 확 열려 버립니다. 자기를 부인하면은 자기 마음과 중생된 영과 진리와 영감과 탁 트여서 하나가 되고 아무 경계가 없고 층어리가 없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자기 중심 자기 위주의 옛사람 그놈을 부인해서 쫓아버리고 나면은 중생된 영, 진리, 영감은 한 덩어리입니다. 그만 우리 마음에 중생된 영도 들어오고 진리도 들어오고 성신의 감동도 들어와 가지고서 한 덩어리가 됩니다.


'나는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주님은 그 사람을 붙들고 그 사람에게 대한 하나님의 목적과 계획의 뜻을 다 성취합니다. 그 사람에게 대한 주님의 뜻, 주님의 목적, 그 사람에게 대한 구원 이것을 완성을 하게 됩니다.

이 먹는다는 단어를 모르면 곤란합니다. 먹는다는 것은 요한복음 4장에 보면 시장하셔서 할 때에 마을에 먹을 것을 사러 갔다가 제자들이 오니까 사마리아 여인하고 주님하고 둘이 얘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제자들이 ‘선생님 여게 음식을 가져 왔으니까 잡수십시오’ 이라니까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내게는 너희들이 알지 못하는 내 양식이 있다’ 이라니까 제자들이 ‘저 여인이 아마 주님에게 자실 것을 드렸는가보다’ 이렇게 말하는 그것을 주님이 아시고 다시 말씀하시기를 ‘너희들이 알지 못하는 양식 내 양식은 다른 것이 내 양식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 것과 온전히 행하는 것이 나의 양식이다.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멸망 가운데 있는 이 사마리아 여인에게 복음을 전해서 이 여인을 구원하는 것이 이것이 아버지의 뜻이요 이것이 나의 양식이다.’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래서, 인격의 양식은 입으로 먹지 않습니다. 인격의 양식은 알고 인정하고 행하는 믿음으로 먹는 것입니다. 인격의 양식은 믿음으로 먹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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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3:20)
말씀대로 너는 내가 너를 통해서 이런 것들을 나타냈으니까 이거 네가 한 게 하나도 없다. 내가 이거 전부 너를 붙들고 내가 했다는 것입니다. 먹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 자기에게 대한 의무와 책임과 그 본분의 궤도를 걸어가는 것을 가리켜서 인격으로서는 먹는 것이라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이래서 “나는 너로 더불어 먹고” 하는 것은 주님은 우리를 통해서 당신의 사명과 목적을 달성하고 “너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하는 것은 우리는 주님으로 인하여 주님과 함께 주님으로 인하여 우리의 사명과 목적과 본분과 우리의 달려갈 길을 다 목적지까지 달려갈 수 있다는 것을 가리켜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회개하지 아니한 죄과로 가루어진 장벽을 문으로 상징한 것이니 회개로 이 장벽을 헐면 인생이 여는 것이요. 심판의 정죄로 하나님을 만나게 되면 하나님이 강제로 문을 여시는 것이 됩니다. 그러므로 여기 문밖에서 두드린다 함은 주님이 위하여 간절히 권면하시되 강제하지 아니하시는 것과 또 심판 때 또는 개인 별세의 때에 택한 성도를 그리스도께서 만나게 되면 마치 방종한 처녀가 나체와 부정한 행위 중에 수치스럽게 발견되는 것처럼 그리스도의 구속을 입고 세상과 짝된 수치로 나타날 것인 고로 별세와 재림 전에 회개를 최촉하시는 주의 사랑입니다. 두드림은 자기 생활의 환경 또는 어떤 사랑 하나님의 말씀 영감 등으로 회개의 제목들을 두드리십니다.

우리는 이런 회개의 권고가 내게 임할 때마다 먼저 주님이 내 앞에 오셔서 간절한 자모(慈母)의 권면으로 비할 수 없는 그 주님을 바라보면서 어떠한 어려운 단절이라도 실지라도 착수할 것이며 어떠한 깊은 죄에서라도 낙망으로 주를 섭섭게 말아야 할 것입니다. 언제나 소망을 굳게 잡고 신앙으로 주를 영화롭게 하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누구든지'
얼핏 보면 인류 전부에게 회개하려면 할 수 있는 전 인류 구원설 같이 보여지나 외부적으로는 아무나 회개만 하면 구원 얻는다는 공의를 선포함이 되고 은밀한 의미에서는 택자에게만 유효적으로 선언한 것입니다.


'내 음성을 듣고'
직접 음성을 들은 성질로 말함이니 이는 주님이 어떤 형식적 계시로 통화함을 말함이 아니고 이미 나타난 문서계시를 당신의 직접 음성의 말씀으로 표시하신 것입니다.

사람들은 주님이 지금 재림하셔서 말씀하신다고 하면 그 말씀과 이 문서계시와 차이를 둔다. 이는 부패한 심령이 강퍅한 까닭이요 말씀에는 조금도 차이가 없다. 권위적으로만 말함이 아니고 실지로 계시 말씀을 접촉할 때마다 주님의 직접인 음성인 것을 믿어야합니다. 이것이 실지요 가상이 아닙니다. ‘듣고‘ 함은 말씀을 신앙함을 의미하고 어느 것은 회개하는 것입니다.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회개를 하면 그 회개를 통하여 주와 나와 가까워지고 주님은 나를 점령하시고 나는 주님께 붙들리며 주님을 영접하게 되어 내 안에 주님, 주님 안에 나, 상호 내주 관계를 가르쳐 ‘들어 가‘라고 함이요 ‘그로 더불어 먹고‘ 함은 주님은 그를 붙들고 뜻을 이루시고 주님의 일을 하시고 그는 주님의 시장을 면하여 드리는 대접을 하게 되고 함이니 그는 주님을 위하는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회개하는 자는 주님이 그에게 붙들림같이 그의 능력과 지혜와 사랑과 소망과 생명의 자람이 되어 주를 힘입어 그의 소원을 곧 그의 사명과 본분 곧 재세에 자기의 총의무(總義務)를 다 하게 하여 완전한 구원 준비에 나아가게 하시겠다는 약속입니다. 다시 말하면 주님은 그의 참 주님이 되어 그의 소원을 다 이루시고 그를 위하여 일하시며 영원히 살으시겠다는 말입니다. 이 얼마나 영광으로 이보다 더 큰 것은 없습니다. 이 행복의 후궁은 오직 회개의 열쇠로 만들어 갈 수 있습니다. 회개자의 소원이 이루어지니 행복 되는 그 이면에는 보이는 행복보다 더 영광됨이 내설 (內說) 되어 있음이니 이는 주님의 모든 뜻이 그의 뜻이 되어 그는 주님과 참 한 형상을 입은 자요 목적과 행복이니 같은 자이니 성공과 영광과 모든 기쁨이 하나입니다. 이는 참 부부유별인 그리스도와 교회와만 가질 수 있는 올바른 연결을 가진 은총이니 회개의 나무에 맺힌 열매라 (요15:7, 요4:34 참조)

(570121)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내가 문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노니 네가 문을 열면' 하는 그것도 현실입니다. 그 현실에 주님이 찾아오셨는데 문을 여는 것은 당신을 영접하는 것이니 당신이 내게 명령하신 그 명령을 찾아 가지고 그대로 행하려고 하는 것이 당신을 영접하는 것입니다. 그대로 행하면 '내가 너로 더불어 먹고 나는 너로 더불어 먹는다' 그 말씀은 너는 나를 통하여서 네 목적과 소원과 네게 대한 사명과 책임을 구원을 완성하고 '나는 너로 더불어 먹는다' 나는 너를 통해서 내가 하나님의 내 지극히 큰 뜻을 너를 통해서, 다 이루겠다 한 말씀입니다.

(85011302)sh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먹는다. ‘네가 문을 열면 내가 들어가서 나는 너로 더불어 먹고 너는 나로 더불어 먹는다’ 그 말은 나는 너를 통해서 내 무한한 포부를, 무한한 소망을, 무한한 목적을, 무한한 계획을 다 너를 통해서 달성할 것이고, 또 너는 나로 더불어 먹는다. 너는 나를 힘입어 가지고서 너에게 무한한 희망이 있는 그 희망을 다 달성할 수가 있다. 그러면 우리의 소망은 그거 끝이 없습니다.

이래서, 고린도전서 13장 13절에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이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믿음이 항상 있을 것이라 말은 또 소망이 항상 있을 것이라 말은 믿음은 성취를 시키는 것이 믿음이요 소망은 아직까지 얻지 못하고 앞으로 내가 얻을 것들을 가리켜서 소망이라고 말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소망이라는 것은 앞으로 얻을 것들을 말하는 것이고 믿음이라는 것은 소망하는 것을 실상으로 성취시키는 것을 가리켜서 믿음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이러니까, 우리가 소망하는 것도 끝이 없다, 항상 있다 하니까 끝이 없다, 끝이 없다. 얼마나 커졌으면, 그 사람이 어디까지 커졌으면 인제 다 컸는가? 아니, 다 큰 것 끝이 없다. 다 큰 것이 끝이 없고 그 소망은 또 소망 이루니까 또 그 다음에 또 소망 있고 소망이 무한하다. 영원하다. 또 얻는 것도, 믿음은 바라는 그 소망, 미래에 두고 소망하는 것을 자기가 현재로서 취득해서 실상을 만드는 것이 믿음입니다. 이래서 ‘믿음은 소망하는 것들의 실상이요’ 이런 것은 소망하는 것을 실상으로 만드는 것은 믿음입니다.

(88081270)sh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내가 문 밖에서 문을 두드리노니 문을 열면 내가 들어가서 나는 너로 더불어 먹고 너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하는 그 말은 먹는다는 그것은 그 행사하는 것을 가리켜서 말합니다. 여기에 양식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행하고 이루는 것이 양식이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이러니까, 그러면 완전 행위가 된다 하는 그것을 가리켜 말했는데 문을 두드릴 때에 문을 열어라 하는 그 문 여는 것은 뭣이 어떤 것이 문을 여는 것인고 하니 문을 여는 것은 자기는 주의 것 되고 주님의 대속은 자기 것 되는 요것이 문을 여는 것입니다.

비로소 자기를 부인하고 예수님의 대속을 자기 것으로 삼을 때에 이제 일곱 가지 대속을 입은 자에게는 하나님이 맘대로 출입할 수 있습니다. 맘대로 출입해도 그에게 도움이 되고 생명이 되고 영광이 되고 승리가 되지만 대속을 입지 안한 자에게는 이 성령님이 오시면 소멸돼 버리고 맙니다.

(86120702)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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