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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 성경:19시편001:02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여호와의 율법이 뭐인데 여호와의 율법이 여호와의 율법을 왜 즐거워하는가?  
즐거워 하는 이유는 여호와의 율법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사랑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사랑이 딴데 있지 안하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그 사랑 그 율법을 받아서 내가 가져보니까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 율법을 가지고 행해 보니까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 그 사랑이 나를, 하나님이 나를 사랑했습니다. 그  율법은 하나님의 사랑이요 또 하나님의 지혜요 또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이러니까 여호와의 율법이 하나님의 사랑이요 하나님의 지혜요 하나님의 능력이니까 그보다 더 좋은 것이 어디 있으며 더 반가운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러니까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주야로 묵상한다'
이는 기도한다 말인데 그 말씀을 자꾸 새기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그 하나님의 사랑이 거게 왔기 때문에 내가 사랑을 받아서 누리고 또 지혜를 받아서 내가 가지고 능력을 받아서 가지고 하는 그것이 뭐이냐 묵상이라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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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첫째는 복을 생각해야 되고, 둘째로는 이제 세 가지 행동을 우리가 구별을 해서 해야 되고, 고라고 난 다음에는 세째는 뭐인고 하니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라면 이 두 가지 순서가 통과하고 난 다음에 성경을 봐야 성경이 은혜가 돼지고 또 깨달아집니다. '여호와 율법을 즐거워 하 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요것이 세째입니다. 성경에 대해서가 세째. '여호와 율법을 즐거워하며 묵상한다' 묵상하는 것은 거게 뭐이 나와야 자꾸 묵상이 나와지지 아무 나오지 안하면 묵상이 됩니까? 암만 성경 말씀을 생각해도 자기가 생각해도 나오지 아니하면 묵상 안 됩니다. 성경 말씀을 생각하니까 거게 자꾸 꿀이 나온다 말이오. 단꿀이 나와.

성신의 감화가 와서 깨달음이 새로 깨달음이 나오고, 또 깨달음이 나오고 그러니까 자꾸 깨달음이 나오니까 깨달음이 나오니 내 마음은 평안해지고 밝아지고 내가 평소에 이기지 못했던 죄는 멀어지고 쓸 데 없는 소용 없는 욕심은 멀어지고. 그만 자꾸 그리 돼지니까 자기가 자기를 봐도 아주 제법 성자다 할 만침 그렇게 자꾸 자기가 깨끗해진다 그말이오. 그것이 세째 순 서입니다. 세째 순서,  

첫째는 복, 둘째로는 마음으로서 세 가지 구별하는 행위, 고라고 나면 성경 맛이 있습니다. 세째로 이제 성경을 읽으면서 성경을 새김질합니다. 새김질하고, 이제 그라고 나면 네째가 뭐이냐? 그리 되면 네째가 자기의 사상이라든지 의지라든지 자기의 욕망이라든지 그런 게 청청해집니다. 왜? 모든 자꾸 이 세 가지 하는 데에서 병든 병균을 털었기 때문에 병균을 다 없애 제해 버렸고 자기 속에 쏘과 같은 쓸 데 없는 생각, 쓸데 없는 욕심, 쓸 데 없는 감정, 쓸 데 없는 복수, 쓸 데 없는 시기, 쓸 데 없는 원망, 쓸 데 없는 낙망이 모든 잡된 것이 싹 이것이 그만 제거돼 버리니까 이러니까 아주 자기가 아주 청청해진다 말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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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여호와의 율법의 그 맛을 벌이 꿀맛을 보고 난 다음에는 고만 제가 본능적으로 못 견뎌서 그 즐거움에 끌려서 자꾸 꿀을 탐해서 다니는 거와 마찬가지로 여호와의 율법에 대한 그 계약에 대한 맛이 있고 계약의 효력이 있고 계약이 자기에게 얼마나 필요하고 요긴하다는 것을 맛을 본 사람들은 자꾸 계약을 파고 들어가고 계약을 자꾸 묵상해 가지고 이렇게 해서 가는 고것을 가리켜서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한다.' 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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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이러니까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게 되고, 또 주야로 묵상하고, 자꾸 묵상한다.

여호와의 율법을 묵상을 하니까. 묵상하니까 그 속에 자꾸 진미가 나오거든. 진미가 나오니까. 육 년 동안 감옥에 신사참배 때문에 감옥에 갇힌 사람들 말을 들으니까, 그만 그 육 년이지만 그렇게 나중에 가서 세월 가는 줄을 몰랐대요. 성경 말씀을, 성경 없지만 자꾸 외우니까 성경을 외우겠더랍니다. 외우는 그 말씀을 가지고 자꾸 새김질하니까 성경 말씀 속에서 진미가 자꾸 나오는데, 바깥에 나가 가지고야 성경을 그래 연구할 수 없고 그래 진미를 모르는데 그만 거기서 성경 연구한 사람들은 나와 가지고 설교를 하니까 모든 사람들이 놀란다 그말이오. 은혜를 받아서.

이러니까, 투쟁의 마찰이 있어야 성경의 맛이 있고, 일을 해야 밥이 맛이 있지 일 안 하면 밥이 맛이 없어요. 이저 모양으로 이제 투쟁이 있어야 성경 맛이 나고 또 성경 맛이 나야 거기서 자꾸 이제는 묵상하니까 깨달음 이 나오니까. 자꾸 양식이 나온다 말이오. 씹으니까 자꾸 양식이 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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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하나님의 계약 말씀이 성경에 있기 때문에 그 계약을 자기가 부지런히 상고한다 말이오. 상고한다는 것이 즐거워하는 건데 즐거워한다는 것은 상고한다는 것이 첫째 뜻이요. 둘째로는 뭐이냐 하면 좋아야 상고하지요? 상고하면서 그 모든 계약에 대한 것은 자기가 어떤 배치된 게 많으나 배치될 때에는 자기 배치된 자기를 부인하고 꺾어 버리지 그 계약에 대해서는 자기가 도무지 신빙성은 하나도 요동치 않는 것이 그게 즐거워하는 거라 말이오. 첫째는 좋아서, 마구 벌이 꿀을 좋아하듯 자꾸 좋아서 달라 들고 그라고 난 다음에는 자기와 대립이 되고 뭐 모든 거와 대립이 되면 모든 걸 다 배제하고 그 말씀을 위주로 중심으로 세우는 그것이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는 거라.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주야로 묵상하는 거는 뭐이냐? 묵상하는 것은 이 말씀의 계약이 이러니까 이 계약 가지고 '보자 하나님과 어찌 되노?' 그게 묵상이라. 눈감고 이 말씀대로 하면 하나님과 나와는 어찌 되느냐, 하나님은 어떤 분이냐 나는 어떤 존재냐, 모든 피조물은 어떤 존재냐, 그러면 내가 하나님께 대해서 어떻게 해야 되느냐, 피조물에게 어떻게 해야 되느냐, 내게 대해선 어떻게 해야 되느냐, 아, 이런데 이 것이 지금 삼각 조화가 바로 됐나 안 됐나 그것을 밤낮 생각해 가지고 잘못된 걸 고쳐 나가니까 모든 형통이 하나님께 바로 되지 자신에게 대해서 바로 되지 만물에게 대해서 바로 되지 이러니까 형통할 수밖에 더 있습니까? 이 기독교라고 하는 것은 이것은 과학보다도 이거는 필연성입니다. 과학보다도 과학을 초월하는 인격성 그 신성을 이루어 나가는 더욱 합리적이요 더욱 이치적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비합리적이라 말은 인간의 썩은 이 밑의 그 찌그러기 그 이치에 맞지 않는다 그 말이지 최고의 이치에는 딱 들어맞는 것이 기독교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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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베드로가 그물 던져 가지고 고기 잡은 것도 그 근본을 캐 보면 주님의 가르치는 말씀을 다 배우고 난 끝에 주님이 인도하실 때 그 인도를 따랐고, 따르면서는 믿지 안하고 그저 다른 생각 가지고 형식만 따랐지마는 하나님의 능력이 이루어졌다 말이오.

육신의 축복받는 이런 것도 하나님의 말씀을 자꾸 많이 생각하고 읽고 재독 듣고 또 설교 듣고 또 성경 읽고 이 일을 많이 하면은 뭐이 떠오르느냐? “네 속에 샛별이 떠오르기까지 이를 사모하는 것이 가하니라” 뭘 사모하는 것이? 하나님의 더 확실한 이 문서계시의 말씀이 있으니까 이 말씀을 네가 읽고 생각하고 사모하고 또 설교를 자꾸 재독해 자꾸 듣고 그라면 자신이 변화가 되기 때문에 하나님이 이래 해라 하는 하나님 음성을 바로 들을 수가 있어. 들은 그대로 하면 그만 형통입니다.

*벧후1:19  '또 우리에게 더 확실한 예언이 있어 어두운데 비취는 등불과 같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이것을 주의하는 것이 가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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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악인의 꾀를 좇지 안하고 죄인의 길에 서지 안하고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안한 요 사람으로 애를 써 요 사람으로 된 사람, 그 사람에게 제일 좋은 곳은 여호와의 율법 외에는 좋은 게 없습니다.

모두 보니까, 내놓으니까 가서 건드려 보니까 내음새가 풍풍 나고서 뭐 세상에 공자의 도덕론도 가 보니까 아이구 내음새 나고 다 나고 있어. 여호와의 율법만 보니까 자기보다 깨끗해서 얼마든지 따라갈 수 있으니까 깨끗하고 깨끗하니까 필연적으로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는 사람 됩니다.

필연적으로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는 사람이 되고 주야로 묵상해. 여호와의 율법밖에는 생각할 것이 없고, 구경할 것이 없고, 사모할 것이 없고, 자꾸 생각하게 된다 말이오.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면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하면 여호와 율법 외에는 즐거워할 것이 없다. 다른 건 다 썩었고 더럽고 전부 거짓말쟁이고 다 속는 것인데, 뭐 철학이 말해 쌓고, 과학이 말해 쌓고, 도덕이 말해 쌓아도 과학이 말하는 그것, 너거 전부이 사람 속여서 죽이는 전부 이것 거짓말쟁이지 이것뿐이고 그 밑둥치는 모른다 그 말이오.

이러니까 전부 살인이요 기만이요 다 거짓부리라. 결론은 다 사람 죽이는 것뿐이라 말이오. 이러니까 아무것도 볼 게 없어. 여호와의 율법만, 그가 가치로 삼아서 볼 것은 여호와의 율법밖에 없고, 기뻐하고 즐거워할 것도 여호와의 율법밖에 없고, 또 만족하는 것도 여호와의 율법밖에 없고, 더 기어 들어갈 곳도 여호와의 율법밖에 없어.

여호와의 율법은 자꾸 보니까 아이구 이것 씻어야 되겠고, 여호와의 율법을 보니까 또 씻어야 되겠고 또 들어가야 되겠고, 씻고 들어가야 되고 씻고 들어가야 되고 자꾸 이러니까 그 사람이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이리 되면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와 같이 되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를 행하는, 네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고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고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면 반드시 여호와의 율법 외에는 철학 서적이든지 만화든지 뭐 이런 것 암만 봐야 자기와 이질의 것이기 때문에 그것 보면 미움이나 나고 그것 보면 더럽게나 보여지고, 그것 보면 그만 사람 속이는 것이기 때문에 흉악한 사기 협잡밖에는 보이지 안하기 때문에 하나도 볼 게 없어. 여호와의 율법밖에는 즐거워할 것이 없어. 그러면 밤낮으로 묵상할 수밖에 없어.

이렇게 결론으로 말하면 사람이 자기가 이 세 가지 전투에서 자꾸 세 가지 구별하는 데에서 자신이 깨끗해지고, 자기의 모든 사물 관계가 깨끗해지고, 자기 비판이 깨끗해지고 이렇게 점점 자신이 성화된다. 이 세 가지로 성화된다. 성화되면 여호와의 율법밖에는 즐거워할 게 없다. 밤낮으로 사모하는 것은 거게 유익이 있으니까. 거게밖에 유익이 없으니까 여호와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것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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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신구약 성경 말씀을 말합니다. 여호와의 율법이라는 것은 하나님이 선포해 놓는 계약인데 신구약이 여호와의 율법입니다. 하나님이 선포해 놓은 이 계약서 신구약 성경 말씀을 즐거워하고 그 율법을 밤낮으로 생각하고 하는 그런 사람 이 사람이 복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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