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에 두고'
여기에 첫째로 우리에게 보이시는 것은 아흔 아홉 마리를 여게 '들에 두고' 했는데 들에 두고 했다 말은, 이 목축을 할 때는 이리 저리 다니면서 방목하기 때문에 들에서 방목을 합니다.
방목할 때에 장막을 치고 양떼를 장막 안에 가두어서 보호하기도 하고, 장막을 치지 않을 때에는 목자들이 주변에 둘러에워 가지고 그 양들은 맹수들이 해하지 못하게 그렇게 지키는 것이 그들의 목축하는 상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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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 중에 어느 사람이 양 일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도록 찾아다니지 아니하느냐'
이 비유에서 우리에게 있는 확신을, 확신을 약화시키는 유혹이 여기에서 될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는 '아흔 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들에 두고' 이랬으니까 이거는 내나 잃어버린 양이나 찾은 양이나 그 빈 들판에 둔 것으로 그렇게 보기 쉽습니다. 여기에는 들에 뒀다 했으나 다른 데서는 양의 우리에 들지 안한 양이 있으니 양의 우리에 다 모아 들여야 되겠다 그렇게 말씀했고, 또 일반적으로 양을 칠 때에 양을 한 군데 모아 놓을 때는 반드시 거게 목자와 목부가 그 양을 지켜서 다른 이리가 와서 해하지 못하도록 해 놓고 양을 찾으러 다니는 것입니다. 양을 많이 기르는 그 지대에는 양을 해하는 이리가 많기 때문에 언제든지 목자가 맹수를 방어할 수 있는 그런 모든 기구를 차려 가지고 지킵니다. 그러기 때문에 여게 '들에 두고' 이래 했으나 '목자의 보호 안에 두고'하는 그 사실인 것을 믿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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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 중에 어느 사람이 양 일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도록 찾아다니지 아니하느냐'
누가복음 15장에 양 잃은 비유, 또 드라크마 잃은 비유를 해석을 아무리 해도 일반적 해석이 인본의 해석이 그것을 주장을 하고 모두 주석들도 다 그래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해석을 아무리 해도 인본의 해석이라야 사람들이 듣지 그 해석을 정말 바른 해석을 하는 것은 듣지 않는다 그 말입니다.
그러면 의인 아흔 아홉 사람은 제쳐 두고 그 죄인 하나를, 잃어버린 한 양을 그러면 예수 믿는 사람은 다 집어 던져 두고 예수 안 믿는 사람 예수 믿게 하는데 주력한다 말입니까? 그거 아니요. 그 한 양, 한 죄 거기에 주님의 근심도 걱정도 고통도 노력도 소원도 막 기울어졌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이러다가 그 해결되니까 주님이 기뻐했어요. 모든 것도 기뻐했어요. 그 죄가 무슨 죄이냐? 그 죄가 믿는 사람이나 택한 사람이나 자기의 현실에서 주님과 자기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고것을 안 틔우면 주님과 멀어져 있고 잃어 버린 양이 되어 있고 주님과 하나될 수 없는 그 죄악 그것이라는 그것을 얼마든지 역설했습니다. 역설했지만 그게 지금도 성경 보면 그리 삐뚤어져 나갔지 이리 나가지를 아니합니다.
열심을 내라, 회개해라, 사랑하는 자에게는 몇 번이든지 징계한다. 그러면 그거 버려 뒀다 말입니까? 고것을 주님과 나 사이에 가로막고 있는 것은 단일 죄악이라. 그 청년이 하나님의 징계 다 지켰지만 주님과 자기와 멀어져 있고 자기는 주님 만나지 못했기 때문에 교만하기만 하고 다른 사람에게 악화만 끼쳤지 유익을 끼치지 못하는 주님과 자기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자기에게 사망을 주고 있는 그 무서운 죄악이라 하는 것은 엉뚱하게 따로 있는데 자기는 그것을 모르고 자꾸 벌써 자기 자랑하려고 자기는 흠 없는 사람으로 선한 사람으로 이렇게 지금 자인하고 뭐 또 부족한 것 있습니까? 이렇게 물을 만큼 그리 된 자기에게 그게 있다 그 말입니다. 우리 각자에게 그게 있다 말입니다. 그 죄악, 그 죄악을 가리켜서 잃어버린 한 양입니다. 그 사람은 고것 때문에 지금 주님과 결합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83042360)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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