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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므로 우리가 항상 담대하여 몸에 거할 때에는 주와 따로거하는 줄을 아노니  
■ 성경:47고린도후서05:06
 

'이러므로 우리가 항상 담대하여'
항상 담대하다니? 항상 담대하다니 무엇이 담대해? 공산주의자들이 사람 죽이기를 겁내지 않고 담대함 같은 그런 담대 아니오.
이 담대는 어떤 담대냐? 세상과 세상에 있는 일을 인하여 염려하고 떨고 걱정하고 시기하고 질투하고 원망하고 불만했는데 이제는 땅에 있는 것에 대해서 소망을 다 버렸어. 땅에 있는 이것 가지고 하늘의 것으로 변화시켜 가지려고 했기 때문에 땅에 속한 근심과 걱정 염려 욕심은 다 없어지고 이제는 하늘에 속한 것으로 바꿔진 것을 가리켜서 담대하다.
땅에 것에게는 담대하다. 죽인다 해도, 죽여도 이미 죽는 그 생명을, 이미 죽는 생명을 진리와 영감화되어서 진리와 함께 영감과 함께 죽는 그 생명이라면 그 생명은 영원한 순교요 존영한 것이 되어지기 때문에 이래 놓으니까 땅의 것들이 땅의 것을 ‘안 줄련다 줄련다, 끌어 내릴련다, 뭐 매를 때릴련다.’ 매 때리면 더 좋지.
이렇게 영원한 처소와 무너질 장막집이란 것을 확신하고 보니까 이 일이 탄식되고 간절히 사모되고 짐진 것같이 탄식되고, 이 죽을 것이 생명에게 삼키려고 애를 쓰니까 가만히 눈 뜨고 보니까 세상이 하는 일은 어서 땅의 것을 하늘의 것으로 바꾸라고, 더 하늘의 것으로 복되게 하려고, 하나님께 저주받았던 것을 하나님이 기뻐서 가지고 놀 만치 즐거워하는 하나님의 선물이 되도록, 환영받는 게 되도록,
전부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은 우리의 구원을 좋게 만들고, 영광스럽게 만들고, 가치 있게 만들고, 하나님과 나와 진리와의 가깝게 만드는 중매 노릇이나 하지 손해보이는 게 하나도 없기 때문에 이제 “담대하여” 담대, 이 담대가 있느냐? 이 담대가 없으면 믿지 않는 증거입니다. 믿는 증거는 이 담대가 나옵니다.



'우리가 항상 담대하여 몸에 거할 때에는 주와 따로 거하는 줄을 아노니'
이 몸, 옛사람, 안 믿을 때의 사람과 같은 안 믿는 사람과 같은 그런 사람으로 되어 있는 그것은 주님과 아직도 대립적이요 상관없는 것인데 이것이 주님과 연결을 하려고 하면 반드시 현실이라는 그 현실을 통해서,
‘네가 하나님과 진리와 하나될래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과 하나될래 둘 중에 것 될래? 보다 어느 것이냐?’ 이렇게 시비가 나는 그 시비를 통해서 ‘세상보다 나는 하늘나라, 나보다 주님, 땅의 것보다 영원한 것, 이대로의 것보다도 진리와 영감의 것이 되어지는 것.’이렇게 시비를 투쟁을 해 가지고 되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이 결성을 하기 전에 것들은 주님과 상관없는 것들인 줄 알기 때문에 “몸에 거할 때는 주와 따로 거하는 줄 아노니 이는” 우리가 이러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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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므로 우리가 항상 담대하여'
"이러므로"가 무엇을 가리켜 이러므로 말하는가? 땅에 있는 장막집은 자기가 아무리 아껴봤자 단속해 봤자 이 장막집은 벌써 무너질 집이니까 이게 무너질 것이라 하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세상에 대해서 ‘이것 무너지면 어쩔까? 이걸 잘 지어야 되겠다.’ 안 믿을 때에 안 믿는 사람들이 염려하고 원하고 노력하고 힘쓰는 땅의 것을 무너지지 않게 하려고, 하나님께서는 이 집이 무너진다고 말씀했는데 안 무너지게 하려고 하는 그런 헛된 근심 걱정은 다 없어졌습니다. 그러니까 거기에 대해서 담대해졌습니다.
또 담대한 이유는 이것이 무너져야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을 우리가 입을 수 있다. 이 집은 자기가 하늘에서 오는 집을 이 집이 무너질 그때에 이 집을 입어야 입어진다. 이러기 때문에 땅에 있는 장막집이 무너지는 그때는 어떤 때인고 하니 하늘에서 오는 영원한 집을 덧입어서 개조할 수 있는 그런 기회다.
개조할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에, 개조 안 하면 절단나는데 개조할 수 있는 이런 기회가 있어서 개조할 수 있는 기회가 오니까 기쁘고 즐겁지 마음 눌릴 필요가 없다 그거요. 그러면 무너질 집을 무너지지 않는 영원한 집으로 개조할 수 있는 이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모든 두려움이 없어지고 담대합니다.
또 그뿐만 아니라 “이 일을 우리에게 이루게 하시고” “곧 이 일을 우리에게 이루게 하시고” 이루게 하시기는 누가 이루게 하시는고 하니 삼위일체 하나님이 이루게 하십니다. 밑에 “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라” 하는 그 하나님이 거게만 기록했지마는 그러면 이루게 하시는 이는 누군가? 이루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십니다.
삼위일체의 하나님이 이루게 하시고, 삼위니까, 위가 셋이니 삼위일체이신 하나님이 이 일을 이루게 하시고 이 일에 책임자는 삼위 중에 제 셋째가 되는 성부 성자 성령, 이 성령님을 책임자로 세우셨다, 책임자로 세우신 이분이 또 삼위일체 중에 일위가 아니고 성부 성자 성령 이 삼위가, 삼위일체인 이 하나님께서 이 일을 성령님께 책임을 지우셨다. 이러기 때문에 세상에 대해서 두려움이 없고 담대해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6절에 “이러므로 우리가 항상 담대하여” 이러므로 우리가 항상 담대하다. 이러므로가 무엇인데? “이러므로” 장막집은 이미 무너지기로 정하여져 있는 것, 이 장막집이 무너질 그때에 영원한 집 하늘의 집으로 개조를 받을 수 있는 그런 기회는 한 번밖에는 없는데, 한 요소에 한 번밖에는 없는데 무너질 기회에 개조가 되지 무너질 기회에 아니면 개조가 안 되고 그것은 항상 미결로 돼 있는 것이기 때문에 무너질 기회에 개조가 되는 것이니 개조를 해야 된다는 데 여게 전심 전력이 다 기울어지지 이미 마음 쓰나 안 쓰나 무너질 집인데 그것 무너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마음쓰고 힘쓰는 그런 일은 이제 떠났다 그거요.
또 담대한 것은, 그러면 이 일을, 개조를 해야 되겠는데 이 일을 나 혼자 하는 것 같으면 그렇지마는 하나님이 이 일을 지금 되게 하려고 삼위일체 하나님이 힘을 쓰고 계신다. 또 삼위일체 하나님이 힘을 쓰고 계시면 그 일이 으례히 잘되겠는데 삼위일체 하나님이 우리에게 오시려고 하면 대단히 좀 만만치 아니하고 서로 접하기가 힘들 터인데 성령님을 책임자로 지워 주셔서 성령님이 이 일을 책임을 짊어지고 우리 가운데 계신다.
그런데 이분이 책임을 지시고 첫째로 한 일이 무슨 일인고 하니 우리도 모르는 데에 우리 죽은 영을 중생을 시켰습니다. 우리의 참 자기는 죽어 있는데 죽어 있는 자기를 중생시켰습니다. 이 보증자 성령님이 보증으로 앉았기 때문에, 책임을 졌기 때문에 첫째로 중생을 시켰습니다.
중생시키시고 난 다음에는 우리를 위해서 뭣 하시는고 하니 기도를 하시는데 참 탄식으로 기도를 하십니다. 마음에 안된 것에 대해서 안된 면 지나가서 지나가 벌써 안돼 버리고, 덧입지 못하고 지나간 걸 인해서 탄식을 하시고 어쩌든지, 탄식이 있는 것만치 앞으로 힘은 더 쓰는 것입니다. 이래서, 이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성령님께서 전심 전력을 다 기울이신다 말입니다.
이래서 기도하시지, 또 성자가 또 이 일을 위해서 아버지 우편에서 계속 기도하시지 또 성령님께서 중생된 영을 붙들고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우리 마음에게 자꾸 증거를 해 줍니다. 자꾸 이 일을 책임을 지고 역사를 합니다.



'우리가 항상 담대하여 몸에 거할 때에는 주와 따로 거하는 줄을 아노니'
"몸에 거할 때에는" 우리가 무너질 장막집으로 있는 그것은, 아무리 내가 주님을 부르고 주님을 바라본다 해도 무너질 장막집으로 되어 있는 그것은 주님과 따로 떨어져 가지고 있다. 무너질 장막집이 하나님이 지으신 하늘에서 오는 이 집을 입어서 이 집으로 개조가 되었을 때에는 하나님과 하나가 되어 있다. 주님과 하나되어 있다. 그러면 주님의 참 집이 됐다. 주님의 영원한 집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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