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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 성경:01창세기01:27
 

창1: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고'
그러면 우리 사람을 근본 지으실 때에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었다' 이렇게 창세기 1장에 말씀했는데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었다 말은, 하나님은 형상이 없는 분이신데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었다고 하는 것은 우리가 볼 수 없는 하나님의 형상, 곧 우리 육안으로 볼 수 없는 하나님의 형상이니 그거는 뭐인가? 우리가 심령으로 볼 수 있고 믿음으로 볼 수 있습니다.

볼 수 있는 하나님의 형상은 뭐인가? 하나님의 완전성, 또 불변성, 참 단일성, 전지성, 전능성, 사랑성, 진실성, 의성 그 하나님의 인격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인격이 무엇이냐? 하나님의 속성이 하나님의 인격입니다, 하나님의 속성. 하나님의 속성을 우리가 공부할 때에 우리 사람들이 가지지 못한 공통성 없는 속성을 네 가지를 말합니다. 하나님의 스스로 계시는 거, 또 하나님은 완전하신 거, 영원 불변하신 거, 또 그분은 단일성의 하나님이십니다. 지식도 가졌고 지혜도 가졌고 사랑도 가졌고 진실도 가졌고 거룩도 가졌고 의도 가졌고 주권도 가진 이것이 하나님의 속성입니다. 우리 사람의 각양 성품 모양으로 하나님의 속성인데 그 하나님의 속성을 가리켜서 하나님의 형상이라, 또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의 신성이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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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고'
이러기 때문에, 그 한 희로애락을 가지고 전신이 사는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 우리의 생명이시요 우리의 중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의 그 모든 속성 가지고 하늘나라에 살게 되기 때문에 땅 위에 있는 동안에 네 속성을 다 부인해 버리고 하나님 한 분의 속성으로 네 속성을 삼아라. 이래서 하늘나라 갔을 때에 하나님의 그 속성으로 자기 속성을 삼아서 하나님의 속성 화된 것, 하나님의 본질화된 것, 본성화된 것, 또 하나님의 지능화돼서 하나님은 모든 것이 다 모든 것이 원형이요 원형이요, 사람은 그 원형은 아니지만 원형과 꼭 같은 모형이라.
그래서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었다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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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께서 하늘에 있는 것과 땅에 있는 것 창조하실 때 그 중에 사람은 독특하게 창조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형상과 같은 것이 있으니 곧 하나님의 모형입니다. 하나님과 같이 생긴 것이 있는데 구속받은 성도를 가리켜서 하나님의 적자라고 하지 않고 양자라 했습니다. 양자라고 표시한 것은, 양자는 그 부모의 혈육 타고 나지 않은 자로서 혈육 타고 난 자와 같은 자녀의 위치 가지고 있는 자를 가리켜서 사람의 말로 양자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자녀인데 양자입니다. 왜 양자인가? 하나님의 자녀인데 하나님의 요소 받아 우리가 된 것 아니고 하나님께 지음 받아 된 것이니, 하나님의 지음 받아 된 것이니 그 영의 본체가 하나님께 갈라 나온 것 아니고 하나님께 지음 받아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요소 가지지 못합니다. 자녀는 부모의 진액 갈라내어 부모의 피와 살로 갈라내어 된 것입니다.

이것은 다른 것으로 관계 맺고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지음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본체와 딴 것입니다. 하나님의 ??와 권?와 하나님의 후사 가지게 되었으니 양자입니다. 적자가 아닌 양자입니다. 영원 무궁토록 양자입니다. 적자 아닙니다. 피조물입니다. 피조물이 피조물로서 창조주 되려는 것은 자기 죽이는 말입니다. 적자가 되면 좋을 뻔했다는 것은 크게 죄입니다(하나님과 같이).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으니 그 형상은 무엇입니까? 다만 하나님은 모양이 없는 인격체입니다. 여기 하나님의 형상은 하나님의 인격의 형상입니다. 하나님의 그 인격의 형상은 하나님의 속성과 하나님의 지혜 지식과 그 능력 나타내는 그 인격자의 모양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은 물질의 모양이 아니고 다만 하나님의 인격의 형상이기 때문에 인격의 도덕과 인격의 지혜 지식과 그 형상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었다는 것은 우리 육이 아닙니다. 우리의 영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었다 말입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되어져 있는 그것 ? 하나님의 모형으로 된 것이 우리의 형상입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은 닮은 인격이 있는 것입니다. 곧 하나님의 도덕과 지혜 지식과 능력을 닮은 것이 곧 우리의 영이요 하나님을 닮은 속성 그것이 내 ??이요 하나님의 지혜 지식 닮은 것이 내 ??이요 하나님의 속성 닮은 그것이 내 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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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영과 육으로 창조했습니다. 창조하신 순서가 어떠할까? 동시에 창조한 것이로되 논리적 순서로 말하면 영이 먼저입니다. 왜? 하나님이 우리 형상대로 짓자고 먼저 선포했습니다. 다음으로 사람을 짓자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지으셨다고(남녀) 말씀하셨으니 거기는 영육이 있으나 영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성구요, 육은 흙으로 만든 물질이라는 것 표시한 말씀입니다.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니 산영이 되었다 했으니 이미 영을 지었으나 생기 불어넣기 전에는 생령이 되지 못하고 있다가 생기를 불어넣으니 사람이 생령이 되었습니다. 그 생기가 육에 퍼쳐서 역사할 때 사람은 생령이 되었습니다. 생령이 되었다 말은 사람 전체를 가리켜서 생령이 되었다 말입니다. 생령이 진리와 영감 받아 움직이니 육은 영에 따라 움직이니 전체는 생령이 되었습니다.

생령은 사람이 산 영물로 살았습니다. 다시 말하면 사람이 영으로 사는 자가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영으로 살 때도 있고 육으로 사는 생활이 있습니다. 영으로 살 때는 생령 생활입니다. 하나님의 모형이나(영으로 살 때) 모형 노릇 못했습니다. 모형만 있으나 그대로 움직이지 못했습니다. 그 인격성이 그대로 살지 못했습니다. 생기를 불어넣으니 하나님에게 피동되어 움직이고 하나님께 순종하여 움직입니다. 범죄 후 하나님과 끊어지니 생기 받기 전 영과 같은 형상입니다(활동에 있어서).

그러나 생기 받기 전에는 죽은 영은 아닙니다. 생기 받은 후 하나님과 끊기고 난 후는 죽은 영이 되었습니다. 받았던 생기가 떠나가니 그의 행동이 어떠한 것 추론할 수 있습니다. 생기 받기 전에는 그 영이 활동이 없는 영과 같다가 이제는, 생기 받기 전에는 활동하지 못하는 것으로 있고 과거에는 살아나지 못한 영이요 이제는 죽은 영으로 있습니다. 범죄한 영은 하나님의 인격성 노릇 못합니다. 도덕성 지능성 노릇 못합니다.

이제 사람이 생령이 되었습니다. 영육이 합하여 한 인격체가 되었다는 것을 가리켜서 생령이 되었다 말입니다. 사람이 육체가 되었다는 말은 영육이 합하여 육체가 되었다 영은 육과 함께 있기만 있지 순전히 육만 움직이니 육의 사람입니다. 생기를 코에 불어넣으니 물질에 불어넣은 것 아닌가? 하나님은 언제나 사람의 방언으로 표시하려고 할 때 사람의 수는 적은 하나님의 ?대하신 것은 많으니 사람의 말로 표시하는 ?면에 유한한 신간의 말로 무한한 진리 표시 되어있습니다. 사람의 생기는 코에 불어넣는 줄 알고 있습니다. 사람의 말로 표시하기에 적당하게 말하니 코에 불어넣었습니다. 생기라고 했습니다.

실은 생기를 말한 것도 자체의 사역과 형?사입니다. 성경은 예?되는 거기서 하나님의 역사를 알 수 있습니다. 코에 생기 불어넣으니 육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계시입니다. 문자 그대로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진리와 영감을 사람에게 넣어주는 방편을 말한 것입니다.(코에 생기를 불어넣은 것) 하나님의 역사는 순전히 육신에 하셨는데 이루어진 것은 영의 것이 이루어졌습니다. 여기 생기는 숨쉬는 것, 코는 육체의 코가 아닌 것 알 수 있고 다만 하나님이 진리와 영감을 사람에게 넣어주실 때 살아났다 함은 표시하는 방편입니다.

에덴동산은 하나님과 인생과 사는 곳이면서 정말로 하나님과 인생이 함께 살 수 있는 장소이냐? 물질로 표시하는 것입니다. 에덴동산은 물질로 결합한 곳입니다. 그곳이 아니라도 결합할 수 있습니다. 인간에게 쉽게 표시하는 것뿐입니다. 그러므로 에덴동산은 자유의 동산에서 쫓겨난 것입니다. 상징한(에덴동산) 동산에서 쫓겨난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과 연결에서 쫓겨난 것은 실물입니다. 상징적으로 말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숨쉬고 나서 '성신을 받아라' 하신 그 숨이 성령인가? 어릴 때는 성신이 바람 같은 것으로 사용물로 생각했습니다. 네가 성령님에게 사로잡히라, 성령을 입어서 네가 사로잡히라 하는 말입니다. 생기는 살리는 기운, 육을 살리는 기운일까? 영을 살리는 기운일까? 영과 육을 다 살리는 기운일까? 코라고 말한 것이 가장 코라는 말이 적절해서 말한 것입니다. 그 생기가 물질만 살리는 생기가 되는지, 영육을 다 살리는 생기인지, 영만 살리는 생기인지? 육만 살리는 생기라고 단언 못 짓습니다.

육은 자연 생명 가지고 있는데 생기 불어넣어서 살아났는지? 영육이 합할 때 생기 불어넣어 생령이 되었는지? 산영이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때 불어넣은 생기는 진리와 영감인 생기 불어넣어 산영이 된지라, 그때 바다에 있는 고기나 짐승이나 생기를 불어넣으니 턱턱 뛰논다, 사람은 진리와 영감 불어넣으니 살았다, 육은 살았다, 생기불어 넣은 그때부터 살아났습니다.

혹 어떤 이는 그때 육까지 살아났다 하나 나는 그런 주장 못합니다. 또 자기가 부인하는 것과 주장하는 것과 다릅니다. 반?은 못합니다. 그때 생기 불어넣으니 육의 생기인가? 영의 생기인가? 바른 것 잘 가게 하는 것이 이단이요 바른 길 못 가게 하는 것이 이단입니다. 앞으로 생기 불어넣은 것이 육의 생기다 영의 생기라는 말 나옵니다. 영육의 생기라는 받아들이면 손자?는 육의 생기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바른 길 가게 하시지 않으면 갈 자가 없습니다. 육체의 생기는 짐승의 생기와 똑 같습니다. 영육을 동시에 만들었으니 순서가 먼저 영을 만든 그 다음 육이 지음 받고 생기도 영이 먼저 생기 받고 다음 육이 생기 받았습니다. 사람의 영을 살리는 것은 진리와 영감 외에는 살리는 도리가 없습니다. 코에 생기 불어넣으니 산영이 되었습니다. 이 성구로 육으로 치우치고 또 영으로 치우치기 쉽습니다. 이 성구는 영과 육 속에 모순되는 일이 있습니다. 이 속에서 참이 들어 있습니다. 양 모순이 합해서 되었습니다.

코에 생기 불어넣으니 산영이 되었습니다. 영으로만 치우쳤습니다. 육의 생기 그것이 영입니다. 불어넣을 때는 생기나 그것이 영이라 합니다. 코에 생기 불어넣으면 = 육의 말인데 맺어진 결과는 산영이 되었다 하니 처음 것과 나중 것이 다릅니다. 그 둘이 모순이요 배치가 됩니다. 시발은 육으로 말하고 결과는 영으로 말했기 때문에 처음 말한 것은 상징적 말한 방편이요 모형적으로 말한 방편입니다. 그것이 들어가서 영이 살아났으니 하나님께는 하나님의 숨입니다. 하나님의 숨은(호흡) 진리와 영감입니다. 그러니 산영이 되어졌습니다. 거기에 진리와 영감 불어넣어 산영이 되었다 하지 코에 생기 불어넣었다 하는가? 거기 생령은 영육이 합하여 한 인격체로 살아났다 하는 것 표시하기 위하여 생령이라 했습니다. 코에 생기 불어넣는 방편의 표시였습니다.

생령이 된지라, 영육이 합한 진리와 영감을 받아 도덕적 지능적으로 범죄치 못하는 자였습니다. 영육이 도덕적으로 같이 살아나고 영육이 도덕적으로 같이 죽었습니다. 범죄 전에 같이 살아났는데 범죄한 후에는 진리와 영감의 은혜가 와도 영육이 같이 살아나지 못합니다. 그때 육으로는 아무런 도덕적으로 살아난 것 없이 짐승같이 되어 있습니다. 그때 도덕적으로 진리와 영감으로 우리 안에 들어와서 영원토록 우리 살리십니다. 왜 그때는 영육을 같이 살리는데 지금은 같이 살리지 않는가? 하나님이 그때만 그렇게 하는 ??가 아닙니다. 하나님께 자유권이 있습니다. 영은 의를 입혔습니다. 옛날 에덴동산에는 진리와 영감을 접촉시키면 살아납니다. 지금은 어떤 사람에게 진리와 영감 접촉시키면 살아나지 못하고 어떻게 되겠는가?

출애굽기 33장 4절 진리와 영감이 접촉하면 녹아집니다. 하나님이 오시면 마구 녹아집니다. 빛이 오면 어두움은 녹아집니다. 지금은 하나님의 법이라도 꼼짝없습니다. 사죄 칭의 입히니 비로소 하나님이 들어올 수 있습니다. 사죄 칭의 입은 자로 하나님이 들어오니 살아날 수 있습니다. 성령과 진리로 중생되어 이제는 하나님의 아들 되었는데 또 죄짓고 견딜 수 있느냐? 중생된 영이 죄 짓느냐? 이것 반대하면 기독교는 아주 뒤집어집니다. 구원론, 신론, 인론 다 뒤집어집니다.

그러므로 영은 살려 영 안에 하나님이 계시고 진리가 와서 계시나 아직 진리가 와서 직접 접촉을 하면 멸망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육을 무엇이 가리워 있느냐? 중생된 영이 가리워 가지고 있습니다. 지금 말하는 것은 영이 육을 통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육 속에 영이 있고 영 속에 육이 있습니다. 내 육을 중심하면 영이 육 밖에 있고 육을 중심하면 육이 영 밖에 있습니다. 육 밖에 이성, -영, -진리, -하나님이 가리워져 있습니다.

내가 죄짓는 육체는 육 -이성 -영 - 진리 - 하나님이 싸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 안에 죄가 들어있는가? 내 육을 구원하려는 구원의 ?? 역사가 내 영 - 진리 - 하나님, 하나님이 진리가 내 영 통하여 육을 통하고 말하고 있습니다. 구원의 바깥 울타리는 하나님으로 되어 있습니다. 제일 속에는 육입니다. 거룩과 완전적으로는 제일 속에 하나님이 들어 있습니다. 인간들의 모든 행위에 있어서는 제일 껍데기는 움직임입니다. 육 속에 이성 - 영 속에 진리가 역사해서 나옵니다. 범죄해서 죽은 자 살리실 때는 성령님과 진리 내주하여 영을 살립니다. 영을 통하여서 육을 살립니다.

육에게 하나님의 사죄와 칭의 다 입히지 못했으니 하나님이 육에게 사죄 칭의 다 입혀야 합니다(부활시키실 때). 영에게 사죄 칭의 완전히 입혀서 육체 살리는 운동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육에게 간접이요 내가 육으로 성경 읽을 때에 영은 내 육 앞에 서서 성경 깨닫게 하려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 또 성령은 이 성경 깨닫게 하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내가 성경 읽을 때 내 육, 내 영, 성도들도 역사할 수 있습니다. 지금 설교 들을 때에 나와 제일 가까운 것은 중생된 영이 제일 앞에 와서 써들고 있습니다. 그 이면에는 성령이 역사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것 밝히 깨달읍시다. 산에 올라할 때 성령 - 중생된 영, 육이 써들고 있습니다.

에스겔 1장에 번개같이 내 속에 역사하고 있습니다(성령이). 중생된 자는 내가 본질과 본성적으로 죄짓지 않는 자이니 이 자기 찾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심방 갈 때 중생된 영이 먼저 갑니다. 성경 말씀 들을 때 영이 애씁니다(육보다). 성령이 힘씁니다. 들어주려고 방해는 육덩이 이성이 방해합니다. 성령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된 것 나에게 누가 알게 하는가? 성령이 해줍니다.

로마서 8장 18절에 성령이 우리 영으로 더불어 친히 자녀인 것 증거하고 나타납니다. 나에게 증거한다 말인가? 나의 본성화된 이성에게 자꾸 말해줍니다. 하나님의 자녀된 것을 우리에게 증거합니다. 중생된 영이 내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성령이 증거하니 내게 증거자는 중생된 영이 증거하고 있습니다. 또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 증거합니다.
 ① 직접은 육이 증거합니다.
 ② 이성과 몸이
 ③ 성령이 증거합니다. 육은 말로 행동으로 덕으로 합니다.

성령- 우리 영으로 - 육으로 더불어 증거하고 있습니다.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까지도' 중생된 영들의 단체, 육체의 구속을 누가 기다리는가? 육의 양자 말한 것은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는? 처음에 양자된 것, 다음에 열매는 몸의 구속, 다시 말하면 부활, 성경에 처음 익은 열매는 양자가 분명합니다.

그러므로 성령이 탄식하면서 기다립니다. 진리와 성령으로 중생된 우리는 그리스도와 같은 깨끗한 육체가 되기를 탄식하면서 기다리는 것이 그리스도인입니다. 우리가 범죄할 때는 영과 육이 한꺼번에 검게 더러워짐이 아닙니다. 우리가 범죄할 때는 영과 육이 범죄한 자로 되어졌다가 또 환하게 되어졌다가 의를 행하고자 하는 자가 되어집니다. 이런 기독자가 아닙니다. 기독자는 벌써 착수했습니다. 구원의 씨가 왔습니다. 영은 악한 자가 만지지도 못하는 하나님의 양자가 되어 있습니다.

로마서 8장에 그리스도의 영으로 살아났습니다.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성령입니다. 그 밑에는 중생된 영입니다. 성령된 영은 영혼입니다. 육은 아직 죄 아래 있고 구속받는 중에 있습니다. 육의 구속은 점진적으로 성화적입니다. 영의 중생은 단번에 되었습니다. 우리 기독자의 목표는 어떤 것 심는가? 죄를 지어놓고 영에게 부담시킴이 아닙니다. 우리 중생된 영은 털끝만치도 죄 없이 영이 육을 지배하고 영육이 합하여 하나님의 뜻대로 살 수 있는 이것이 우리의 목표인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믿는 것은 지옥 가지 않으려고 믿는 것 아니고 중생된 영으로 살아 이미 털끝만한 죄 짓지 않으려고 힘쓰고 육도 털끝만한 죄짓지 않는 데 나아가는 것이 기독자의 올바른 생활입니다. 이것 표준하여 걸어가야 합니다. 중생된 영이 자기 육이 아직 구원받지 못하고 있으니 자기 육을 구원시키기 위해 한숨도 탄식도 하고 힘써 구원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성은 마음 속에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이렇게 하여야 되겠다 저렇게 해야 하겠다 이것이 마음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성이라 합니다. 이성은 몸에 속했고 영에게는 이성이 없습니다. 그러나 내 영은 이럴까 저럴까 사리 판단 가치 평가할 수 있을까 없을까? 이성과 마음을 육에 붙이면 영에는 없습니다. 영은 이성과 마음이 없으니 옳고 틀린 것 구별할 수 있을까 없을까? 하나님의 인격성을 모형한 것이 영이니 영 가지면 이성이나 마음이 없어도 틀린 것 구별할 수 있습니다.

창세기 2장 19절에 아담이 모든 짐승에게 이름 준 것, 하나님의 의견에 꼭 들어맞았습니다. 그렇게 할 것 영이 알았습니다. 진리와 영감이 우리에게 부어 주었으니 내주하신 성령이 범죄할까? 밖에서 비치는 영감으로 그 영이 죽었거든 하물며 예수님의 공로로 다 살렸는데 그리스도 죽었다고 하면 사죄 칭의 주신 예수님이 두 번 십자가에 못박혀야 합니다. 중생하는 생명은 완전히 사죄 칭의 입고 나왔으니, 영원한 사죄 칭의 다 입고 나왔으니 제일 범죄하면 하니 더 범죄할 수 없고 이제는 완전한 구속을 입은 자입니다.

그러므로 영으로 난 자는 영이니 이상히 여길 것 없습니다. 영이 중생된 자는 육안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바람이 동풍인 줄 아느냐? 바람의 역사를 보고 동풍인 줄 압니다. 영의 중생은 그 행동을 보고 알 수 있습니다. 생기는 진리와 영감, 하나님의 형상은 우리의 영, 한꺼번에 지음 받았으니 영이 먼저 육이 다음, 육의 생명이 먼저 영의 생명이 다음, 육도 영과 한꺼번에 되어 정상적 사람된 것을 생령이 되었다고 합니다.

영은 이성, 마음을 가진 것이 불신자들이 가진 이성과 마음, 그 마음과 이성은 영이 아닙니다. 그것은 육에 속한 것입니다. 영은 하나님의 속성대로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인격과 같이 되어 있는, 하나님의 도덕성과 같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은 하나님과 같은 희로 애락을 가진 실력을 가진 것이 중생된 영입니다. 중생된 영은 단번에 영생한 영으로 살아난 것입니다. 중생된 영은 진리와 영감이 지키시니 악한 자가 만지지도 못합니다. 중생된 영은 더 깨끗해지는 것 아닙니다. 영은 자기 육체를 마음이 잡아 쓸 수 있고 또 어떤 자는 자기 육체 쓸 수 없으니 하늘나라 ?치가 점점 충만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본질이 깨끗해지는 것 아니고 본성이 깨끗해지는 것 아니고 그의 능력이 자라가는 것 아닙니다. 이미 가진 능력이 마음이 써서 마음은 일을 하니 동?이 쌓여 가고 영이 익숙한 것 아닙니다. 육이 익숙해지니 영이 자라갑니다. 그러므로 영은 단번에 깨끗해진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사죄 칭의 단번에 다 입고 입은 공로 영원히 사용합니다. 육은 단번에 다 입지 못하고 입어 가는 중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부활시 다 입습니다. 부활시 영을 마음이 사용하고 몸 안에 영광이 있습니다. 중생된 자가 범죄한다는 주장 붙이기 위하여 이성을 영에 붙입니다. 중생한 자가 범죄한다고 하면 그 영은 지옥 갑니다. 단번에 예수님이 대속의 공로 다 입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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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성경에는 여러 계약이 있습니다. 그러나 크게 말하면 행위 계약과 은혜 계약 둘로 나눌 수 있습니다. 행위 계약은 정통 신학에서 말하기를 에덴동산에서 선악과 주신 것이 행위 계약입니다. 그 외의 것은 다 은혜 계약이라 합니다. 그 행위 계약은 누구나가 다 대상자가 될 수 없고 첫째 아담과 둘째 아담이 될 수 있습니다. 전인류의 대표자라야 하며 둘째 아담 예수님입니다. 첫째 아담은 실패했고 둘째 아담은 성공했습니다.

옛 계약은 구약이요, 새 계약은 신약을 말합니다. 은혜 받는 방편을 가리켜서 이렇게 하고 저렇게 했습니다. 노아, 아브라함, 모세로 더불어 한 계약이 있으니 다 은혜로 된 것입니다. 그 방편이 다른 것뿐입니다. 그것이 행위 계약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아담 하와 창조하시고 창조하신 아담 하와에게 어느 정도 수권 행위 주셨는가? 어느 정도 권리 받았는가? 아담은 그가 하나님의 지으신 모든 땅에 있는 땅과 만물을 다 다스릴 수 있는 권세 가졌던 것입니다.

또 그것을 다 자기에게 복종시킬 수 있는 권세를 가졌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 모든 것을 다스리되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영의 생활하기 위하여 하신 것입니다. 모든 만물을 순종할 수 있는 영이 있기 때문에 그런 권세 주었습니다. 육은 생령으로 살 때만 그런 권세 주었습니다. 생령을 살 때는 영이 주격되고 그 육은 소유격이 되어 영이 움직임에 따라 사는 권세가 생령 생활이니 만일 사람이 생령 생활하지 아니해도 땅의 것 다스릴 수 있는 권세 주었다면 타락 후 지금도 할 수 있습니다.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그때부터 이런 생활 못했습니다(생령 생활). 모든 만물이 다 다스림을 받고 만물 정복할 수 있었으니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후 이 권세 저버렸습니다. 모든 만물에게 생령에게 그 권세 주심은 지금도 그대로 있습니다. 죽은 영에게는 안됩니다. 지금도 사람이 영으로 하는 그 행동에는 모든 만물이 다 복종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3장 23절에 만물이 다 너희 것이니 바울이나 게바나 아볼로나 만물이 다 너희 것이라 하는 것이 너희는 그리스도의 것이 되면 이 모든 것이 너희 것이 된다, 너희가 그리스도에게 피동되면 네가 그리스도의 것으로 살고 그리스도의 것이 아닌 네 것으로 살면 안됩니다. 그리스도의 것이 되면 만물이 너의 것으로 움직여집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만물보다 뛰어난 것은 그리스도의 형상이기 때문입니다. 또 만물보다 뛰어난 권세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권세 받은 것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살 때에, 다시 말하면 영으로 살 때에 하나님의 대리 사람의 정복권 정치권도 있고 만물보다 가치있는 지위권도 가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만물을 다스릴 권 주신 것은 사람에게 주신 것 아닙니다. 생령에게 주었습니다. 범죄 후 그 권세 상실했으니 사람의 가치는 산 영에 있고 사람이 만물보다 뛰어난 것은 산영에 있습니다. 범죄 후 만물이 복종하니 강제 복종입니다. 범죄 전에는 자원적 복종이었습니다. 사람이 ??성이 있어서 복종했으니 영이 죽고 나니 만물이 강제 복종하니(하나님이 시키시니) 만물이 탄식하면서 복종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우리 영을 다시 살리셨으니 만물을 복종할 수 있는 권세를 가졌습니다.

로마서 8장에 영으로 사는 하나님의 자녀를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고 영으로 사는 자녀에게 복종하기를 고대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중생된 영에게 만물이 다 찬성하고 협조하고 기뻐하는 행동입니다. 우리가 이 지위에서 만물이 복종하지 못하는데 있는 까닭은 몸 속에 죄악의 요소가 들었고, 다시 말하면 육체가 깨끗하지 못하니 만물이 복종하기 싫어하고 만물이 환영하지 않습니다. 사람이 제일 영광스럽게 되는 것은 하나님께 ??받는 것이 영광스럽게 되는 것입니다.

중생된 영은 진리와 성령으로 삽니다. 우리의 육체로 진리도 성령으로 살면 모든 만물이 환영하고 기뻐하니 그 소원이 다 이루어집니다. 영육이 합하여 영으로 사는 소원은 다 자기의 것이 되어지고 영으로 사는 것은 모든 것이 소원대로 되고 ?멸될 것이 없습니다. 믿음이면 영육이 하나되어 움직임은 그의 자체가 하나님의 뜻에 맞게 하니 모든 소원이 다 이루어집니다. 마귀도 우리에게 충격도 주고 자극도 주고 협조합니다.

마치 계란 껍질이 병아리 나올 때 방해하는 것 같으나 실은 공간에 나와서 잘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결과적으로 보면 사람이 영으로 사는 데는 방해하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마귀도 죄도). 이것이 사람의 수권 범위입니다. 하나님 다음 지위 가지고 만물을 정복하고 통치받고 하나님께 받은 수권 범위인 것입니다. 이 권세가 영으로 살 때에 이 권세가 허락되었습니다.

영으로 사는 것은 어떤 것인가? 하나님은 원형이요, 우리는 모형입니다. 원형을 나타내는 것이 영으로 사는 것입니다. 원형적 지식 가지고 모형적 생활하는 것이 영으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모형적 선으로 사는 것이 하나님의 모형적 진실, 의, 하나님의 모형적 주권으로 사는 것이 영으로 사는 것입니다. 우리의 권세나 하나님의 권세나 하나입니다. 사람이 영으로 사는 것은 이렇게 사는 것이 영으로 사는 것이니 원형으로 모형으로 사는 것이니 하나님께 피동되어 사는 생활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것을 믿음이라 순종 생활입니다. '네가 내 안에 있고' 영육이 합하여 내 안에 있다 말이니 네가 영과 육이 둘이 시비하는 이 자리에 있지 말고 영은 동으로 가자는데 육은 서로 가자고 하니 하나님의 뜻이 네 뜻이 되어지면 원하는 대로 구하라 다 이루리라, 네 소원대로 되는 것이 좋은 것보다 네 소원이 하나님의 뜻과 똑같으니 하나님의 인격과 같은 인격자 됩니다. 하나님은 원형입니다. 나는 모형입니다.

사람의 특수성이 어디 있으며 사람의 능력, 사람의 부요가 어디 있느냐? 사람의 특수성은 영이 있는 것입니다. 죽은 영도 있으니 특수합니다. 사람의 가치는 산 영에 있습니다. 사람의 존귀는 어디 있느냐? 사람의 존귀는(지위) 곧 육이 합하여 하나된 영의 사람에게 있습니다. 사람의 권위는 영육이 합하여 움직여 하나되는 거기에 권위 있습니다. 만능의 권위 전능의 권위가 있습니다. 그 권위에(지혜, 도덕의 권위) 지혜에 권위는 틀린 것이 없고 힘의 권위는 힘대로 다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권위가 다 자기의 권위되는 그것이 그리스도인 얻은 수권입니다.

에베소서 4장에, '하나님의 모든 충만으로 너희에게 충만케 하기를 원하노라' 영육이 합하여 하나된 영의 사람이 된 데서만 이루어집니다. 우리보다 희망이 더 큰 사람은 없습니다. 중생된 영에게 우리 육이 순종만 하는 실력가가 되어진다면 이 이상 기쁜 일이 없습니다. 죄 없는 곳에서 사는 것보다 죄가 가득한 속에도 죄짓지 않는 자체를 만들어야 합니다. 중생된 영이 범죄한다면 부활한 육체도 범죄하지 않겠느냐? 중생된 영에게 사죄 칭의 입혀서 구속시켰는데 범죄할 수 있다면 부활한 육이 범죄치 않겠느냐? 사람들의 수권 범위는 영육이 합하여 하나만 되면 다 되는 것입니다.

영육이 합하여 하나되기 위하여 성경 주었습니다. 영을 통하여 육을 구속하도록 해놓았습니다. 이 범위는 에덴동산에서 우리에게 주신 것인데 자기에게 다스림을 받고 있는 모든 자들에게 이 권세를 줄 수 있는 것입니다. 만물에게까지 이 권세를 충만이 나눠줄 수 있도록 했습니다(에베소서 1장 23절).

우리의 희망은 영육이 합하여 하나되는 데 있습니다. 세상에서 영육이 합하여 하나된 것만큼 하늘나라에 터전이 되어 거기에 가서 그 생활할 수 있고 세상에서 이 생활한 차이보다 영원한 나라에 가서 한 번 차이 있는 그것이 영원히 계속될 뿐 아니라 시간이 가면 갈수록 영원히 계속됩니다.

이 생활한 자의 거처가 어디입니까? 하나님의 모든 충만을 받아 가지고 살 곳은 어디입니까? 거주할 위치는 에덴동산입니다. 에덴동산은 무엇을 모형한 것입니까? 에덴동산에 살라고 했습니다. 에덴동산 안에 살고 에덴동산 밖에 나오면 이 권세 상실했습니다. 하나님이 에덴동산에 다니시는데 그 위치 가리켜서 물적 장소 말했습니다. 하나님과 교제하는 위치 가리켜서 에덴동산이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결합한 그 영교에서 신령한 교제해야 합니다. 하나님과 연결에서 살아야지 이 연결 떨어지면 이 권세 떨어집니다. 만물들이 좋아함도 이 연결에서 좋아하는 것입니다. 만물이 좋아함도 하나님을 좋아하니 좋아합니다. 하나님을 좋아하고 만족히 여기고 피동된 만물이니 사람을 보고 좋아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얻은 수권은 에덴동산에 살 때만 이 권세가 사용됩니다. 또 에덴동산에 살기 때문에 모든 만물이 좋아하고 나를 기뻐합니다.

이 수권은 사람이 에덴동산에 머물 때와 떠날 때에와 딴 사람이 됩니다. 에덴동산에 머물 때는 진리와 영감과 하나되는 때입니다. 에덴동산을 떠난 때는 고깃덩이로 진리와 영감 떠난 때입니다. 에덴동산 쫓겨나오면 이 권세 상실할 수밖에 없습니다. 에덴동산 나오면 인간의 행복이 다 빼앗깁니다. 지금도 에덴동산이라는 지역이 있는가? 하나님은(우리 사람과) 원형인 인격성을 가졌습니다.

신약에 와서 문서로 계시한 계시 바로 깨달으려면 구약의 모형을 보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신약 시대 성전을 알려면 구약 시대 법궤, 향로 이것이 어떻게 된 것을 알아야 합니다. 구약에는 성전, 성막을 만들고 교회를 만들었습니다. 교회의 그림자는 성전입니다, 성막입니다. 성막의 그림자인 것입니다. 에덴동산 생활하는 것이 이 권리 빼앗기지 않는 것입니다. 아담 하와는 에덴동산 생활하지 못했으니 빼앗겼습니다.

에덴동산 생활은 하나님과 영교한 그 영교 모형한 것이라 했습니다. 하나님과 영교를 어떻게 해야 잘하겠는가? 이 영교 삐뚤어지면 이 권세가 상실됩니다. 이 영교는 어떻게 해야 바로 하는 것인가? 에덴동산 생활하는 것이 하나님의 영교 모형입니다. 영교 생활입니다. 무엇한 것이 에덴동산인가? 오늘은 무엇 생활인가? 에덴동산은 영교 생활입니다. 무엇 가리켜서 영교 생활이라 하는가? 하나님의 인격과 내 인격이 결합되는 것이 영교 생활입니다. 아담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것은 하나님과 결합이 끊어져서 쫓겨났고 인격 결합이 된 표시로 에덴동산 생활했습니다. 하나님과 결합이 끊어지니 쫓겨났습니다.

에덴동산 생활의 아담 하와의 할 일은 첫째가 거기 있는 모든 과실을 임의로 따 먹어라, 얼마든지 따 먹어라는 과실이 있습니다. 또 그 가운데 먹지 말아라 하는 것은 무엇 모형인가? 하나님이 하라는 것과 하지 말라는 것이 있으니 하라는 생활하는 것이 에덴동산 영교요, 하지 말라 할 때 하지 않는 것이 하나님과 나와 결합되는 생활입니다. 그 너머에는 영생할 수 있는 생명과 있습니다. 아담이 먹지 말라는 것 먹지 않았으면 영생할 수 있는 것이라고 추론할 수 있습니다.

아담은 영생할 수 있는 생명과 못 먹었기 때문에 영생 못했습니다. 에덴동산 지키라, 에덴동산에 원수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지키는 것이 동산 생활입니다. 아담 하와가 동산 지키지 못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는 하나님과 나와 인격 결합 가지는데 방해하는 것이 많은데 이 방해받지 않는 것이 결합입니다. 나에게 와서 원수가 와서 방해하니 방해받지 않는 것이 동산 지킴입니다. 하나님이 먹어라 한 것은 먹어야 합니다.

예) 어떤 실과 먹으라고 했는가? 오늘 우리에게 죄되지 않는 사업하라 했습니다. 가책받지 말라, 시집가고 장가감 가책 받지 말라, 부부 생활하는 것 가책받지 말아라, 공연히 사람들이 하라고 하는 범위 안에 있는 것 죄감(罪感)을 가지는 것도 안됩니다. 동산을 지키는 것은 어떤 것이 와도 방해받지 않습니다. 방해받지 않는 것이 영교입니다. 방해받지 않고 영교하는 것만 하는가? 에덴동산 지킬 때 방해가 옵니다. 방해받지 않는 것이 영교의 주?다.

설교시 말씀 받을 때 하나님 생각하는가? 말씀 받는데 마음이 기울어짐이 영교입니다. 하나님이 먹어라 한 것 먹는 것이 영교입니다. 하나님이 하라는 것 인격과 인격이 결합하는 인격 교제입니다. 돈벌이한 재미와 사랑하는 사람 만난 자마다 일과 나와 결합된 재미와 재미는 다 같은 재미이나 성질이 다른가, 같은가? 물건으로 된 재미와 일로 된 재미와 어느 것이 더 깊은 재미인가? 인격 결합한 그 재미가 물질과 사귀는 기쁨과 아주 다릅니다. 하나님의 인격 결합에서 영은 되어 있으나 육이 취미 붙여야 할 터인데 산 자의 인격 결합으로 기쁨 누릴 수 있습니다.

인격의 상대자 하나님 볼 수 없으니 금송아지 만들었습니다. 지금도 성경적 영화 꾸민 것도 마귀가 꾸민 것입니다. 우상적 ?적 기독교를 생각하니 죄입니다. 인격성 가진 하나님과 동행하지 못하고 10세 되는 어린아이와 동행하면 오히려 마음이 든든합니다. 에덴동산은 영교 위치입니다. 영교는 인격 결합입니다. 에덴동산 생활이 영교 생활입니다. 영교 생활은 인격 결합 생활입니다.

에덴동산 생활

1) 과실 먹어라 = 그분이 인격자이십니다.
그분은 생존하신 인격자입니다. 하나님이 심히 원하는 일은 내가 하기 싫어서 하지 않고 딴 곳으로 갈 때에 마음이 조마조마합니다. 무서운 마음이 생깁니다. 그것이 살아 계신 인격자입니다. 바위 밑에 앉으니 넘어질 것 같습니다. 그분이 인격자입니다. 하나님이여 잘못했습니다. 가겠습니다. 아브라함이 인격체와 결합하는 것만 보았으니 하나님이 이제야 네가 나를 두려워하는 자로 알았다, 내게 인격체가 든든히 함께 하는 것 알게 됩니다.

인격 결합이 에덴동산에서 먹으라는 과실 먹어라 하라는 일 할 때에 그것이 인격 결합인가? 하라는 일을 할 때 인격의 배?의 인격과 나와의 결합되어지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인격이냐? 인격과 나와 결합하는 결합입니다. 영이 결합할 때 영은 계속적 결합 누리고 이 결합에 인격 결합을 육까지도 가지게 됩니다. 우리가 감각하는 것은 육에 나왔습니다. 영에게 순종한 것 영육이 하나되었습니다(하라는 것 순종할 때).

2) 선악과 먹지 말라 = 안 먹는 것이 동산 생활입니다.
하지 말라는 것 안 하는 것이 결합입니다. 내게 인격체가 나타날 때 저분이 하나님의 생활입니다.

3) 동산 지키는 것 = 영교하려 할 때 방해하는 자가 옵니다. 육은 떡 들어붙습니다.

4) 동산을 다스린다 = 정리하고 사용하는 것
정리하는 것이 무엇인가? 내가 이것을 해야 할까 저것을 해야 할까? 먼저 할 것 뒤에 할 것, 힘을 적게 들일 것 많이 들일 것, 자본을 많이 들일 것 적게 드릴 것 구별하니 주님이 좋아하십니다. 이것이 명상입니다. 이것은 이렇게 쓰고 저것은 저렇게 쓰고 하니 주님이 기뻐하십니다. 당신은 인격자로 가르쳐 주십니다.(무의식중에) 또 칭찬하십니다. 그것이 결합입니다.
이것이 에덴동산 생활입니다. 이렇게 하니 먹을 것이 생깁니다.

동산에서는 네 강수가 흘러 큰 일 합니다. 천하에 제일 큰 일하는 사람이 영교 생활하면 자연히 그 사람의 영교 생활 통하여 만물을 소생시키는 힘이 퍼쳐 나갑니다. 수권 범위는 어떤 자가 이 권리 받았는지? 인생이 제일 존귀하게 되는 비결은 어디 있는지? 영육이 합하여 영으로 사는 것, 이 자가 사는 생활은 영교입니다. 그가 살 곳은 영교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피난처요, 요새요 영교입니다.

영교는 몇 가지 행위가 영교인가? 네 가지입니다.

1) 먹는 것
2) 안 먹는 것
3) 지키는 것
4) 다스리는 것

이것이 하나님과 인격 결합 가지는 것입니다. 영은 이 권세 얻었습니다. 수권. 육이 이 권세 얻도록, 영육이 이 인격적 계속적으로 이 결합 가질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64081122)


창1:27/창6:3/마9:12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그들이 육체가 됨이라'/'병든 자에게 라야'
사람은 만물의 영장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것이 사람입니다. 모든 존재는 영계와 물질계 둘로 되어 있어 영계는 영체를 가진 영물들이 있고 물질계는 물체를 가진 물질들의 것들이 있고 영계와 물질계를 탁월한 무형의 영원 자존 유일의 자로서 계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영계와 물질계에 하나님의 창조하신 모든 것이 있는 중에 영계에 속했는데 사람은 영계에 속한 영이 있고 물질계에 속한 육이 있는 영육의 양 요소를 가지고 지음을 받은 존재는 사람뿐인 것입니다.

사람은 양 요소를 가지고 지음을 받았는데 지음을 받을 때에 그 영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하나님의 형상과 같이 지음을 받았고 육은 영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것이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물질체도 없고 영체도 없는 무형의 영원 자존자이신 완전이십니다. 그는 완전자이시기 때문에 형체를 가질 수 없고 형체 안에 계실 수가 없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무형의 존재인데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다고 말씀하신 그 형상은 무엇인가?

하나님은 영체적인 형상은 없으나 하나님의 신성의 속성들이 성경에 나타났고 만물에게 나타났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라고 한 이 하나님의 형상은 하나님의 속성들을 가리켜서 하나님의 형상이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만물을 지으실 때에 이 속성대로 지으셨고 또 이 속성을 통해서 지으셨습니다.

자존성, 완전성, 영원불변성, 단일성 이 4가지는 사람과 공통성이 없는 속성으로 사람들에게 소망적으로 되어 있는, 여기 4가지 속성에 소망을 가질 수 있는 사람으로 되어 있는 것이요 공통성이 있는 속성 8가지는 완전 지식, 완전 지혜, 유일성의 완전 중심, 완전 사랑, 완전 거룩, 완전 진실, 완전 의, 완전 주권 이 8가지의 속성으로 성경에 당신이 나타내셨습니다. 그러면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다는 것은 하나님의 신성의 속성과 같은 이런 속성을 갖춘 인격성으로 지음을 받은 것이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사람이 병들었다' 하는 말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하나님의 모형적 속성인 이 하나님의 속성대로 살지를 못하고 변질 변성된 비정상의 존재로 전락해서 사람이 변하여 '육체가 되었다'고 말씀하신 그대로 이제는 사람이 신성의 모형인 인격성으로 사는 데에서 타락해서 짐승의 성품인 수성으로 살게 되니 이것을 가리켜서 '옥의 사람'이라 말씀했습니다.

정상은 하나님이 주권이시오 거기 속한 자로서 하나님의 속성이 역사하는 그 속성에 연결된 모형 속성으로, 신성과 같은 인격성이 역사하는 그 속성의 연결된 모형 속성으로, 신성과 같은 인격성으로 만물 안에서 영장으로 사는 이것이 영인데 범죄함으로 이 영이 존재하기는 존재하지만 하나님의 형상인 그 속성이 존재하기는 존재하지만 기능적으로는 온전히 작용하지 못한 죽은 속성이 되고 다만 심신으로만 된 사람으로서 움직였을 때에 하나님이 사람이 '육체가 됐다' 말씀했습니다.

영육이 사람인데 '사람이 육체가 됐다' 고기덩어리는 소유격이 되고 마음은 주격이 돼서 마음이 주격이고 고기덩어리가 소유격이 되고 그 마음이 주격이 되니 그 마음은 피조물이면서 자존자처럼, 그의 은혜로만 보존될 수 있는 것이 독립할 수 있는 것처럼 자기 중심 자기 위주로 사는 이러한 마음이 되어져서 자기 중심으로 사는 마음 거기에 통치권을 가진 자는 악령이 통치권을 가지고 통치해서 악령의 감화를 받아 가지고 자기 중심 또 혹은 어떤 피조물 중심, 조물주 중심 조물주 위주를 버리고 자아 중심이나 어떤 피조물의 큰 것 작은 것 그런 것들의 중심으로 움직이는 그 마음, 그 마음에 따라서 움직이는 몸으로 되어 있는 이것이 타락한 사람이요 이것이 변질된 사람이요 본 지위에서 떨어져서 하나님과의 관련이 끊어진 원수로 되어있는 사망과 저주 아래에 있는 사람인 것입니다. 이것을 가리켜서 인간병이 들었다 합니다.

고기덩어리가 병든 것은 물체가 병든 것이요 신비한 물질이 병든 것은 그 마음이 병든 것이요 사람이 병들었다고 하는 것은 사람은 영은 주격이요 심신은 소유격이기 때문에 사람이 병들었다 말은 그 영이 병든 것을 가리켜 말하는 것이니 영이 병든 것은 그 영이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진 것을 가리켜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 롬1:20 :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7908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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