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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면 아무라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  
■ 성경:43요한복음06:44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면 아무라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사람이 자기 주관을 가지고서 하나님을 믿는 게 아닙니다. 그러나 다른 모든 이종교는 자기가 그 도를 믿습니다. 자기가 그 도를 따릅니다. 뭐 불교나 뭐이나 그런 거는 자기가 주동이 돼 가지고 자기가 주체가 돼 가지고 이런 도나 저런 도나 자기가 지금 받아들이고 따라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예수교는 그렇지 않고 저는 안 오려고 하는데 하나님께서 강제로 잡아끌고 오는 것입니다. 강제로 끌고 오기 때문에 제 주관이 이해가 되고 제 주관이 주가 돼 가지고 하는 게 아니고 자기의 그 주관은 하나님의 인도를 안 받을라고 하지만 하나님께서 끄니까, 전능하신 능력의 하나님이 그걸 고 싫으면서도 끌려 가지고서 그렇게 오게 된다 그 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 그 말씀이 이해가 되면, 벌써 그 속에 그 도가 들어 가지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자기 속에 그 도가 들어 있기 때문에 자기 속에 들어 있는 도와 이제 하나님의 종들이 가르치는 도와 둘이 맞아 떨어지기 때문에 이해가 됩니다.

그러나 처음에는 이해가 안 되고 반대가 되고 환영도 되지 안하고 설교 하는 사람도 그렇고 설교하는 말도 미워서 견디지 못할 만치 이렇게 반발이 납니다. 반발이 나는 그것은 그게 뭐이냐? 그것이 아직까지 지금 도를 참 새로 듣는 도입니다. 새로 듣는 도이기 때문에 자기의 반대 도이니까 그렇게 됐는데 그렇게 돼서 하나님의 도를 반대하고 듣기도 싫고 이해도 안 되고 이랬으나 그 말씀이 속에 들어가서 역사하기 때문에 역사해서 변화시켰으면, 변화가 됐다고 하면은 뒤에는 고 말을 들을 때에, 고 사람에게든지 누구에게든지 고 말을 들을 때에 고 말이 이해가 되고 납득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마귀란 놈이 자꾸 작용하기 때문에 고 말을 고 사람이 하면, 그 사람에게 대해서는 이해가 안 돼서 반발심, 마귀란 놈이 '과거에 네가 들을 때에 반발하지 안했느냐? 이해가 되지 않지 않더냐? 요걸 가지고 자꾸 유혹을 주니까, 다른 사람이 그 말 하면 얼른 수락이 되는데, 그 옛날 반발한 그 사람이 말하면 그게 수락이 잘 안 됩니다. 안 돼도 그 말에 대해서 이치에 틀렸다, 반발되는 지식은 역사하지 안하고 사람을 향해서 '네가 말하는 건 뭐이든지 듣기 싫다' 이래 가지고서 마귀의 유혹으로서 그와 같이 반발하는 일이 생겨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이 말씀을 우리가 믿어야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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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면 아무라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예수 믿게 되는 것이 벌써 내가 전도를 받아 가지고 믿는다고 하지만, 그 전에 영원 전에부터 역사해 나오고 위로부터 역사돼 나오기를 얼마나 수십 차례 역사가 나와 가지고서 그 결과적으로 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예정에서부터 작용 된 그 작용이 지금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전도하는 것은, 내가 전도로써 그 사람을 예수 믿게 시작하는 시발을 시키려고 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세서 영원 전부터 역사하시는 그 역사의 한 순서로 내가 하나님에게 이용을 당해 가지고 도를 전하게 되는 것이고, 그 도를 전함으로써 당신의 절대적인 영원한 그 계획이 하나로 이루어 나가는 것이되, 나도 하나님의 그 계획을 이루어 나가 성취 요소 중의 하나요, 성취의 그 분자 중의 한 분자라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도는 이런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버지가 다 작정해 가지고 이끄는 사람이 예수 믿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러면 전도할 필요가 없지 않느냐고 물을 수도 있으나 전도할 필요가 없는 게 아니라 네가 전도하고 싶다고 전도하는 게 아니라 전도하고 싶은 것도 하나님께서 마음의 역사를 일으켜 가지고 그 사람이 전도하게 되니까 또 전도가 돼지고, 또 열심히 해서 목회를 열심히 해 가지고 잘하는 거 또 이와 같이 게으르게 하는 거 이게 다 그 사람에게서 원인이 되는 것이 아니고 지극히 큰 데서부터 원인이 되기 때문에 아무도 잘하는 사람으로서는 교만할 자가 하나도 없고 아무리 못 하는 사람을 보고서 멸시할 자가 하나도 없다 그 말입니다.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
아버지로 말미암아 역사된 그 구원이 이제 예수님을 통해서 완성된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의  삼대 구속으로 대속으로 인해서 구원이 완성 된다 그 말입니다.

불택자들은 그 세상 생활을 하고 나면 끝나는 줄 알지만, 그 생활하는 것이 죽는 그 죽음이, 죽음이 자꾸 죽고, 죽고, 죽고, 죽고 자꾸 이래 죽는데, 마지막 날에 예수님이 재림하셔서 심판을 통과하면 그 죽음이 나타나 가지고 영원히 이제 죽음으로서 계속하게 됩니다.

또, 예수 믿는 사람은 자꾸 지금 이거 사는 그것이 살고 나서 없어지는 거 같지만 없어지지 안하고 요것이 전부 살아 있어 가지고 마지막 날에는 부활할 때에 그것이 다 형체를 가지고서 나타나게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오늘 우리가 신앙 생활 하는 그 생활은 죽지 않는 것입니다. 영원히 안 죽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볼 수 없지만 예수님의 재림 때는 환하게 볼 수 있게 그것이 부활합니다. 부활한다는 것은 그때 새로 죽은 게 살아난다 말이 아니고 살아 있는 것이 그때 다른 사람이 볼 수 있도록, 또 모든 물질계에 활동할 수 있도록 꺼풀을 입고 나타나고, 또 영계에 활동할 수 있도록 마음의 지체를 도구를 입고 나서고 이래 가지고서 부활할 때에, 그러니까 이 세상에 살아나는 그것이 살아난 그대로 부활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부활의 권능이라, 빌립보 3장에 바울이 말하기를 '부활의 권능에 참예를 한다.' 부활의 권능 하는 것은 지금 우리가 부활의 권능을 장만하는 것입니다.

지금 그러면 권능 있는 그것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부활할 때는 그 권능으로써 고기 덩어리 가지고 살아나기 때문에 어떤 사람은 아주 실력 있는 부활하고 어떤 사람은 실력 없는 사람으로 부활합니다. 부활의 몸뚱이는 뚱뚱하지만 속의 기능은 그렇게 차이가 있습니다. 이러니까, 이다음에 부활했지만 이 물질계에 돌아다닐 수가 없습니다. 물질계에 돌아다닐 수가 없는 것이 이 고기 덩어리의 육체의 그 성화, 육체의 기능이 성화된 게 없으니까 물질계에 다니지를 못합니다. 암만 다닐 자유는 있지만 다닐 수가 없습니다. 또 영계도 얼마든지 돌아다닐 수 있는데 영계 다닐 수 있는 힘이 없기 때문에 부활의 힘이 없기 때문에 영계를 못 다닙니다.

영계의 힘은 무슨 힘으로 가지고 갑니까? 물질계는 무엇 가지고 다닙니까? 우리는 그러기 때문에 피조물 가운데에 특수하게 지음을 받은 존재입니다. 영계는 신령한 우리 마음의 기능이 이것이 완전히 다시 죽은 것이 살아나 가지고서, 썩을 것이 썩지 안할 것으로 살아났고, 약한 것이 강한 것으로 살아났고, 욕된 것이 영광스러운 것으로 살아났고, 혈육의 것이 신령한 것으로 살아났으면, 마음이 살아난 마음의 기능 이거 가지고서 우리 영이 우리 마음을 타고 영계를 마음대로 돌아다닙니다. 지금 살려 놓은 이 몸의 기능, 살려 놓은 고기 덩어리의 기능 이 기능을 타고 그때 돌아다닙니다. 이 우주를 일 초 동안에 몇 천 반퀴라도 돌 수 있는 기능을 오늘 만드는 것입니다.

이렇게 마음의 기능은 영계에 타고 다니는 내 승구요 내의의 병기요, 또 이 고기 덩어리의 기능은 물질계에 타고 다니는 이 병거요 기능이요, 이러니까, 이게 얼마나 보배지만 지금 이걸 알뜰히 차각차각 하는 사람 있고, 우리는 그만 이리저리 해서 그만 그것을 마귀에게 꼬여 가지고 이 땅의 것을 인해 가지고 그것을 하지를 못 했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얼마나 이거 비참한 일인지 참 기가 찹니다. 주님이 말씀 하시기를 너희들이 하나님 말씀 한 말씀의 한 마디 순종한 것이 온 천하를 얻는 거 보다 낫다 이렇게 말씀했습니다(마4:8-11). 한 번 순종하는 것이 온 천하를 얻는 것보다 가치가 낫다 이렇게 주님은 평가했는데 뱀의 지식 가지고 하니까 돈 천 원만도 못하다는 말입니다.

* 빌3:10 :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예함을 알려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 고전15:4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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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면 아무라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
'이끌지 아니하면 올 자가 없다' 그 말은 하나님의 그 예정 구원을 말합니다. 하나님이 구원 받을 자를 예정했기 때문에 오지, 예정하지 안하면 구원이 없다는 말입니다. 마지막 날에 살린다는 것은 예정 구원에서 이 세상 통과해 가지고서 예수님의 구속의 토막의 시작 시발을 가리켜서 예정을 말하는 것이고, 그러면 예정 구원보다 먼저 되는 건 뭐입니까? 목적 구원인데, 목적 구원에는 그때 우리가 존재하는 것 아닙니다. 존재가 언제서부터 시작됐습니까? 우리 구원이 어디서부터 존재가 시작됐습니까? 예정서부터 시발됐습니다.

그래서 '이끌지 아니하면 내게로 오지 못한다' 거기서부터 예정서부터 시작해 가지고서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린다' 그 말은 이 세상 끝에 부활하는 것을 가리켜 말합니다. 생명의 부활로 부활 받을 것. 그 부활이 거기서부터 시작해서 이래 왔다 그 말입니다. 우리 기독교의 구원이 저 하나님의 그 목적하신 거기서 우리가 존재하지는 안 했지마는 목적을 정한 그 목적 있는 거기서부터 우리의 구원이 뿌리박았습니다. 그래서 예정으로 이제는 예정부터는 내가 예정되었기 때문에, 예정부터는 내 개체가 벌써 예정에 존재하게 됐다는 말입니다. 목적 속에 내 존재 개체로 존재한 것은 예정에 존재 됐고, 예정에 존재된 것이 그 다음에 창조로 존재됐습니다.

이래서 아버지에게 듣지 안하면, 듣고 배우지 안한 자, 45절에 듣고 배운 자는 뭐이냐? '이끌지 안하면' 예정 구원을 말하고. '듣고 배우지 안한 자는 모른다' 그 말은 뭐냐 하면 창조 구원이라는 말입니다. 내가 벌써 내가 창조됐기 때문에, 내라는 것이 있는데, 내가 창조 될 때 벌써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고 배울 수 있도록 그 은택을 우리가 입고 있다는 말입니다.  듣고 배우는 그 은택을 우리가 입고 벌써 창조됐다 그 말입니다. 그러니까 '그런 사람은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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