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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 성경:02출애굽기20:06
 

출20:6

'천대까지'
여게 천 대라 말은 두 가지 뜻을 가졌는데 하나는 끝없는 영원을 가리켜서 천이라 이렇게 말을 했고, 또 대수라는 그 대는 자기 한 사람을 통해서 자녀 나고 또 손자 나고 또 중손 고손 뭐 오대손 육대손 칠대손 자꾸 이렇게 벌어져 나가는데, 자기 한 사람을 통하여서 나온 육신의 자손이든지 믿음의 자손이든지 그것이 영원히 복 받는다 하는 그런 뜻으로서 천 대까지라는 대수라는 대는 그것을 말하고, 천이라는 것은 무한한 세월을 가리켜서 말합니다. 이는 하나님이 약속하신 약속인데, 이 약속이 얼마나 좋은 약속인지 이보다 더 크고 좋은 약속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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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사랑하고'
나를 사랑하고 하는 말씀은 삼위일체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는 말씀입니다. 위에 있는 사람이 아래 있는 자에게 사랑을 베푸는 것은 사랑해 주는 것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큰 자가 작은 자를 사랑하는 것은 사랑해 주는 것이 사랑입니다. 또 작은 자가 큰 자를 사랑하는 것은 큰 자의 사랑을 받는 것입니다. 여기는 '나를 사랑하고' 했으니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하는 말입니다.

주님을 앎이 자라가고 그분을 든든히 믿는 믿음이 자라가고 자기의 전체를 그분에게 다 담당해 놓고 안심하고 만가지를 할 때에 그분을 의지해서 그분이 자기에게 모든 것을 잘해 주고 도와 주시리라 하는 것을 의지하고 그분의 법도대로 명령대로 뿍뿍 순종해 나아가는 이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계명은 신구약 성경에 그 범위 넓은 계명이 있지마는 그 계명을 간추려서 강령적으로는 십계명입니다. 곧 십계명은 모든 성경에 기록된 계명의 강령이라 이렇게 할 수 있습니다. 강령이라 말은 그물이 그렇게 수많은 뭐 그물이 참 천 고도 넘고 이렇게 많지마는 벼릿줄만 들면 그 그물이 다 들려 올라오는 거와 같이 이 십계명을 지키면 신구약 성경에 있는 모든 계명을 다 지키는 그 결과가 된다 하는 것입니다. 이래서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하는 말씀은 모든 신구약 성경을 지키는 것이나 알기 쉽게 말하면 십계명을 지키는 것이 주님의 모든 계명을 지키는 것이 됩니다.

이렇게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복 주겠다 하는 말은 영원히 복 주겠다는 뜻입니다. 성경에 천이라고 말하는 것은 이 수학적으로 천이라는 그것이 아니고 영원한 무한을 가리켜서 천이라 이렇게 성경에 표현할 때에 그렇게 표현했습니다. 만일 천 대라면 숫자적으로 계산한다고 해도 이십 년을 한 대로 삼으면은 천 대면 이만 년입니다. 이만 년이니까 이 지구상에 있는 교회 시대만은 아니고 무궁시대까지 다 연결된 그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천 대까지 베푼다 하는 이 말은 시간적으로 영원을 가리켜 말하고 또 범위적으로는 이 계명 지키는 그 한 사람을 통해서 그에게 소속되고 그로 말미암아 생겨진 것이 얼마가 되든지 그 전부가 다 복받는다는 하는 그런 말씀입니다. 이 대라 하는 것은 거기서 난 소생들 자손들 대대 그것을 두고 하는 말이기 때문에 아브라함에게 한 말씀과 같은 성격의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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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사랑하고'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하나님에게서 자기가 나왔고, 하나님이 모든 것의 주권을 가지시고 처리하시고, 또 하나님이 자기를 구원하시려고 하고자 하시는 이 사랑이 제일 강하고, 제일 자기를 책임지고, 이렇게 절대자이신 이분이 자기를 사랑하고, 자기를 제일 아끼고, 자기를 제일 좋아하고, 자기를 제일 복되게 하려고 애를 쓰시는 이 사실을 자기가 인정할 때에 그분은 그 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지마는 자기가 자기를 사랑하는 것만치는 사랑하지 못한다,
어떤 사람이 나를 사랑하는 것만치는 사랑하지 못한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고 돕지마는 내 이 기업체, 어떤 사업이나 재물이나 이것만치는 나를 위하지 못한다 하는 그 사람은 하나님이 그를 살리는 복된 길로 인도를 하실 때에, 자기가 하나님보다 낫게 여기는 그것과 마찰이 되어질 때에는 하나님의 인도를 버리고 그 인도를 따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그때가 자기 지식을 초월한 망하고 흥하는 게 결정되는 때인데, 그때는 자기에게 수많은 죽음에서 구출하는  이 대목장 같은 중요한 일이 닥쳤을 때에 자기가 마음을 이래 먹어야 될 것인데 자기가 생각할 때는 ‘아무래도 마음을 이래 먹어야 되겠다.’ 내가 말을 하나님께서는 이래 하라 하는데 자기 생각에는 ‘말을 저래 해야 되겠다.’ 하나님은 행동을 네가 이래 해라 했는데 자기 생각에는 ‘행동을 저래 해야 되겠다.’
또 하나님보다 더 믿는 사람도 그렇게 말한다 말이오.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고 있는 모든 자기의 소유나 기업도 또 그렇게 말하고 있다 말이오. 그 기업도 그렇게 해야 된다고, 그 기업이 말은 안 하지마는 그 이치로 말하고 있습니다.이러니까 최종, 최고, 최종 최고 의지하는 것은 땅의 것이고
최종 최고 인도를 받는 그 인도자는 땅의 것이니까 , 피조물 그까짓 게 조물주 인도를 반대하고, 조물주 의사를 반대하고, 조물주의 하는 그 돕는 것을 반대하고 그리 나가니까 결국은 망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이러니까 우상을 버려야 되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사랑한다 말은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것을 믿습니다. 의지합니다. 하나님이 자기 현실을 닥쳤을 때에 하나님의 계명을 ‘이 계명을 지키려고 하면 나는 죽는다.’ 모든 사람이 ‘죽는다.’‘네가 기도한다는 이 기도하라는 계명을 지키면 너는 지금 사자구덩이에 묶어서 던져야 되니까 너는 죽는다.’ 그 나라에 파사 나라에 있던 사람 의견 쳐놓고 안 죽는다는 사람 하나도 없습니다. 그때까지의 역사의 통계도 사자구덩이 집어넣으면 배고픈 사자들이 잡아먹으니까 죽지 안 죽는 일 없습니다. 안 죽는 통계가 없습니다. 다 죽습니다. 통계가 다 죽는다 하고 있소. 이러니까 그럴 때에 기도한다 소리를 못 하게 되지.그러나 다니엘은 기도한다는 것은 자기 주관보다도, 역사의 통계보다도, 전인류보다도, 이제까지 역사에 있는 법칙보다도 하나님을 더 사랑하고 더 의지해. 하나님의 사랑을 더 믿고 의지해.이러니까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그 하나님의 인도는 자기를 속이는 인도가 아니고 또 그분이 능력있기 때문에 인간의 볼 때에는 죽는 것 같아도 하나님은 능치 못함이 없기 때문에 어쨌든지 죽는 게 유익하면 나에게 죽게 하시고 사는 게 유익하면 살게 하시는 하나님,이 세상은 이것 한 토막이지 인간에게는 영원이 있기 때문에 이 모든 것을 계산해서 염려없이 조금도 주저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믿기 때문에 하나님의 인도를 믿고 담대히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가는 것을 안심하고 기쁨으로 따라갔다 그말이오. 그 결과가 어땠습니까? 그것은 하나 우리에게 이치를 가르친 하나의 형식계시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성공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법칙대로 하는 것이 그것이 성공하는 한 이치뿐입니다. 이 외에는 다른 이치가 없어요.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성공'
흥하는 것은 뭐이냐? 그러면 성공하는 것, 흥하는 것, 사는 것, 복되는 것, 좋은 것 그 방편은 뭐인가? 그 방편도 하나로 꼭 같습니다.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성공을 준다고 했습니다.

하나님 사랑하고, ‘그 법칙 어기면 망한다. 그 법칙대로 하면 성공한다. 그분은 나에게 제일 사랑하고 가장 권세있고 모든 것의 주인이기 때문에 그분이 하시면 다 된다.’ 이렇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계명을 지켜서 이래 하는 그것이 무슨 농사든지 다 성공입니다. 그 성공은 지금만이 아니고, 금생만이 아니고, 세상으로 말하면 천 대까지, 영원 무궁까지 성공입니다.그러기 때문에 ‘어떤 집에 이사를 왔는데 예배 봐 달라 하는데 무슨 설교를 할까요? 이제 자녀가 하나 났다고, 귀동자가 났다고, 귀한 딸이 났다고 이래 가지고 한번 예배 봐 달라고 하는데 가서 무슨 말씀을 증거할까요?’ 나는 언제든지 2계명입니다, 1계명은 너무 어렵고 하니까 2계명.‘그저 복받는 방편은 딴것 없다. 그 집에서 잘되는 방편은 딴것 없다. 하나님 경외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사랑하여 그 계명 지키는 것 이것뿐이다. 2계명 가서 읽어 줘라.’ 그렇게 말합니다.그 법칙 어기면 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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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계명을' 출20:6
계명이라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모르는 것을 알려 가지고 그대로 잘 지키라고 하신 명령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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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계명을'
그러면, 우리는 하나님의 지식을 가지고 사는데, 하나님의 지식을 가지고, 하나님의 지식이 곧 하나님의 계명인데 이 계명을 가지고 사는데 어디서 사는가? 이 계명 생활을 어디서 하는가? 이 계명 생활을 사회라는 그 현실에서 하고 있습니다. 이 계명 생활을 사회에서 하고 있고 이 계명 생활을 정치에서 하고 있고, 이 계명 생활을 모든 인류 속에서 하고 있고 이 계명 생활을 공간에서 하고 있고, 이 계명 생활을 시간에서 하고 있고 이 계명 생활을 이 모든 과학 속에서 하고 있고 이 계명 생활을 세상 지식 속에서 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 하나님의 계명 생활을 할 수 있는 무대가 지식도 무대가 되고 사상도 무대가 되고, 세상 정치도 무대가 되고 사회도 무대가 되고, 윤리도 무대가 되고. 모든 인류도 무대가 되고 그것은 우리가 그 자리에서, 그곳에서, 거기서, 그 종류에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지식으로 사는 거 아닙니다. 이 말이 알아 들립니까? 이 말은 좀 아주 어려운 말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의 지식으로만 사는데 하나님의 지식으로만 살면 세상 지식은 어떻게 하느냐 하는, 하나님의 지식으로 사는 사람들이 세상 지식에 대해서 어떻게 사느냐는 세상 지식에 대한 관계를 전혀 모른다 그 말이오.

하나님의 지식으로도 살고 세상 지식으로도 살기 때문에 마귀란 놈은 여기서 꼬웁니다. 하나님의 지식 한 시간 살고 세상 지식 한 시간 살고, 하나님의 지식과 세상 지식 두 가지를 혼합해 가지고 살고. 하나님의 지식이 필요할 때에는 하나님의 지식으로 살고 세상 지식이 필요 할 때에는 세상 지식으로 산다 이렇게 사는 것이 세상이라 그거요. 이것이 타락한 교회들이라 그말이오. 우리는 하나님의 지식에만 복종하고 하나님의 지식으로만 살지 세상 지식으로는 사는 것 아닌 것입니다.

그러면, 세상 지식은 어떤 것인가? 세상 지식은 마치 자기의 현실에 자기가 어떤 일을 하는 현장이 있습니다. 자기 현장 자기의 활동하는 그 현장 장소가 있소.

공장이든지 회사든지 무슨 어떤 직장이든지 관공서든지 뭐 중앙청이든지 어디든지 자기가 살고 있는 현실이 있다 말이오. 그러면 내가 중앙청에 있으면 내가 중앙청에 따라서 사는 중앙청에 따라서 중앙청으로 사는 게 아니라 나는 중앙청이라는 그 무대에서 하나님의 계명 지키는 생활합니다. 나를 세상에 장관을 됐으면 내가 장관 생활하는 게 아니라 장관이라는 그 직장 무대에서 나는 하나님의 계명 지키는 생활합니다.

알아 들리요? 이거 모르면 안돼. 여기서 다 혼합이 되고 혼돈이 돼. 이것을 구별할려고 생각지도 못해. 이런 것을 구별해서 말하면 '까다로운 말한다' 어떤 사람 말하기를 '아이구, 서부교회 예수는 믿기가 어려워서 나는 못 믿겠고 잘 깨닫지도 못하겠고 못 믿겠고 이러니까 믿기 쉬운 교회로 가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는데. 듣지도 못하는 사람이 깨닫기는 어떻게 할 것이며 깨닫지도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그 생활을 할 건가? 그러면, 어렵고, 듣기 어렵고 깨닫기 어려운 그것이 순 틀린 것인가? 그게 맞은 것이라 말이오. 맞다 말이오. 맞은 것은 성경대로이기 때문에 맞지 그러기 때문에, 지식에 대해서 혼돈되기 쉬운데, 지식을 어떤 것으로 봐 야 되느냐? 지식이 그것이 인간 지식은 세상입니다.
막바로. 세상 지식 그러면, 세상 지식이, 인간 지식이 필요한 것은 뭐이 필요하냐? 우리가 밥도 있어야 되고 물도 있어야 되고 공간도 있어야 되고 장소도 있어야 되고 흙도 있어야 되고 바위도 있어야 되고 식물도 있어야 되고 다 있어야 된다 그말이오. 그것은 뭐 할라고 있느냐? 그것으로 인하여 사는 게 아니라. 그것으로 인하여 사는 게 아니라 그것들을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데에 그것을 이용합니다. 알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생활을 그것들이 없으면 순종 생활 못해 하나님의 말씀이 '저 건너가라, 저 물 건너가라' 할 때에 하나님의 순종으로 물 건너가는 데에 배가 없으면 못 건너가니까 배를 타고 간다 말이오. 그렇다고 해서 배로 내가 사는 것이 아니고 배에 복종하는 것이 아니고 배를 섬기는 것이 아니고 배를 위주로 사는 것이 아니고. 사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데에 배가 필요하면 배 이용하고 또 산이 필요하면 산 이용하고 작지가 필요하면 작지 이용하고 불이 필요하면 불 이용하고 이렇지 그것을 따라 사는 것이 아니라 그말이오. 따라 사는 게 아니다. 그것을 하나님 말씀을 순종하는 데에 그것이 필요한 대로 내가 이용한다.

그와 마찬가지로 세상 지식이라 하는 것은 요거라 하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거게는 생명이 없어. 생명이 없어. 흙이나 돌이나 식물이나 꼭 같아. 식물을 글자로 기록해 놓은 것, 흙을 글자로 기록해 놓고 물을 글자로 기록해 놓은 그게 지식이라. 요걸 똑똑히 알아야 돼. 이게 어두운 흑막을 확 뚫고 나서는 거라 말이오. 어두운 흑막을 확 뚫고 광명에 나서야 되지 문을 닫아 놓으면 몰라요.

이러니까, 그 문 밖에서 어정어정 하기 때문에, 이런 말을 퍼뜩 듣고 가면 '아.
하나님의 지식으로만 산다? 그러면 세상 지식은 뭐 하는가?' 이렇게 생각하기 쉽다 그거요.

그러기 때문에. 믿는 사람은 무엇으로 사느냐?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계명을 지키는 것이 우리의 생의 법칙입니다. 그 법으로 살고 있소. 하나님 사랑하고, 어디든지. 아무리 정계에 들어가도 중앙청에도 하나님 사랑하는 것이 아니면 못 합니다. 우리를 죽이려 하는 죽음 앞에서라도 하나님을 사랑치 않는 일은 우리가 못 합니다. 내 살림살이가 다 뺏겨져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이라면 우리는 합니다. 생명이 뺏겨져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이면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우리의 하는 일이오. 또 그 계명 지키는 것은 신구약 성경 말씀이 그 계명인데 그 계명 지키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이 우리의 사는 법칙이라 그말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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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사랑하고'
"아들에게로 삼 사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6절에, 이제 지난밤에 봉독 한 다음 주일 공과의 본문입니다. '나를 사랑하고' 이제 이게 다릅니다. 종류가 달라요.

자기를 위하고 자기를 사랑하고 피조물을 위하고 피조물을 사랑하는데 여게는 창조주를 사랑합니다. 이렇게 아주 차원이 아주 틀립니다. "나를 사랑하고" 창조주를 사랑하고 자존자를 사랑하고 우리를 구속한 구속주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이제는 세상 법칙 따라서 살지 아니하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법칙이 있으니 그 법칙을 따라서 삽니다.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이제 자기네들이 무슨 자기 힘으로 무엇을 해 가지고 그 힘으로 살고 그 덕으로 살고 자기가 만든 무엇 가지고 사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 가지고 삽니다. 이제 순전히 하나님을 위해서 하나님의 법칙대로 해서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것이 그것이 한 종류 있고, 자기를 위해서 자기 노력과 자기 법칙대로 해 가지고 그것으로써 살려고 하는 종류가 하나 있기 때문에 사람은 근본부터 아주 판이한 두 종류로 되어 있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됩니다. 그것을 알지 못하면 사람들은 다 혼합된 신앙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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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세상 성공 방편 근검절약과 과학)
기독교는, 근검절약의 그 생애를 가지는 것이 기독교 아닙니다. 부지런하고 모든 것을 아끼고 조심함으로 잘 되어 나가는 그런 것이 기독교 아닙니다. 물론 그것도 다 좋지만 그것은 이 세상에 속한 사람들이 그렇게 사는 것인데 그것은 안 믿는 사람들도 다 그렇게 사는 거기 대한 상당한 댓가를 받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도 세상에서 그렇게 살면 그렇게 사는 것 만치 댓가를 받습니다. 그러면 그것도 이 세상에서는 행복이라 성공이라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람이 부지런히 하고 모든 것을 조심하고 아끼고 그렇게 힘을 쓰므로 그 효력을 상당히 받아서 다 세상에서도 그렇게 하는 사람들이 조반 석죽을 하고 그래도 세상에서 남에게 누 끼치지 안 하고 제 생활을 제가 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것은 다 인간만으로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또 그런 거는 다 그것이 실은 사망 아래에 있는 것이며 저주 아래에 있는 것이며 다 멸망 아래에 있는 것이어서 그것이 현재에 어떻게 찬란하고 구비하게 서 있다 할지라도 시간 문제지 조만간에 다 멸망이 되고야 마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기독자들이 그런 것을 가지고 자기를 성공되게 복되게 유력하게 강하게 그렇게 할라고 하는 것은 다 그것은 세상 사람들의 방편이지 기독자의 방편은 아닌 것입니다. 기독자가 그렇게 살라고 하면 세상살이 되고 세상 사람들과 다를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것이 좋지만 기독자들에게는 몹쓸 생활입니다. 그거 가지고는 안 됩니다. 암만 잘 해 받자 불신자와 같은 생애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또 기독자들은 과학으로 사는 것 아닙니다. 과학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그말은 무슨 이 물리에 맞추어 살므로 이루어지는 그런 것으로 사는 것이 기독자의 생애가 아니요 그런 것으로 성공할라고 하는 것이 기독자들이 가지는 성공 방편이 아닌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모든 일을 할 때에 과학적으로 하는 것이 효력을 가지고 또 성공 못 합니다. 성공을 한다도 해도 그것은 다 피조물만으로 이루는 성공이기 때문에 그것은 다 저주 아래에 있는 것이요 원죄와 본죄로 사망 아래에 있는 것들이기 때문에 그것이 사망을 꿰뚫고 생명선에 올라가지를 못하는 것이고, 또 멸망의 선 아래에 있고 멸망을 꿰뚫어 영원 불멸의 그 위치에 성장하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세상에서는 이 두 가지 생애를 제일 이상적인 최고의 방편이라고 그렇게 사람들이 평하고 있습니다. 근검 절약하는 것, 또 과학적으로 사는 것 그것이 하나님을 알기 전에는 하나님의 그 대속의 이 은혜의 약속을 받기 전에는 그것이 제일 좋은 방편입니다. 좋은 방편이나 그 방편은 다 사망 아래에 있는 방편들인 것입니다.

이북에 있는 김일성씨는 그는 가르치는 모든 그 가르침의 원리를 들어보면 그는 모두 다 과학적으로 살아라 그렇게 말합니다. 대단히 좋은 것을 잡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다 세상에 속한 것이요 저주 아래에 속한 것입니다. 우리는 그런 것이 우리에게는 해당되지를 아니합니다. 기독자들은 그렇게 아무 침노가 없는 그런 위치에서 살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수많은 악령들이 우리의 생애를 방해 합니다. 또 악령의 일군들이 되어 있는, 악령이 그 속에 주관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은 궁극적으로는 다 우리의 대적이요 우리 하는 일은 방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나아가는 신앙 걸움에는 우리의 대 적이 뭐 천천이요 만만이라고 하는 그 말이 지나친 말이 아니고 다 우리 기독자들은 그렇게 방해자가 천천 만만의 방해를 받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이제 말한 그 두 가지 방편 그런 방편 가지고는 성공을 못 합니다.


(기독자의 성공방편은 기적과 축복)
그러면 기독자들은 어떻게 사는가? 육체의 이스라엘 때로부터 우리에게 보여 주고 있습니다. 기독자들이 사는 것은 하나님의 기적과 축복으로 사는 것입니다.

전지 전능의 대주재이신 주권자가 우리와 함께 하심으로 그의 초인간의 능력의 도우심의 그 기적으로만 우리가 성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기적으로만 성공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이 방해할 수 없는 방편입니다. 또 우리는 하나님이 축복하심으로 그 축복으로 모든 것을 성공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기독자들이 이렇게 적이 많은 것을 깨닫지 못하고, 또 우리가 믿기 전에 세상에 속한 그런 최고 이상적이라고 하는 그 두 방편도 우리에게는 다 무용한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그 방편이 수지가 안 맞습니다. 폭이 안 닿습니다.

이것을 모르는 사람들이 그런 생활 가지고 그런 방편 가지고 되리라고 생각하지 참된 기독자는 이런 거 가지고는 까마득하게 바라보지도 못하고 종적도 찾을 수 없다는 이 사실을 알기 때문에 아예 그런 방편은 지금 쓸라고 하지 안하고 다 포기합니다. 기독자들은 근검 절약으로써 우리가 뭣을 해 보겠다, 또 우리가 과학적으로 이렇게 뭘 해 가지고 무슨 성공을 해 보겠다 하는 그런 것을 생각을 가지는 사람들은 아예 그것은 몰라 그렇기 때문에 철이 없는 그 어린이의 생각입니다. 경험이 없는 사람들의 판단입니다. 해 보면 안 됩니다. 해서 된다고 하면 되는 것은 마귀가 볼 때에 해도 안 해도 제 것이 되어 있을 때에는 그 한계까지는 내비둡니다. 방해하지 않습니다. 암만 해 봤자 다 마귀의 것이요 사망의 것이기 때문에 그 뭐 하나 안 하나 상관 없기 때문에 마귀가 방해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 가지고 영원히 멸망하지 안할 수 있는 그런 하나님의 심판을 통과할 수 있는 영원 불멸의 뭣을 해 볼라고 하면 아예 얼토당토 안 하고 그만 다 전멸된다는 것을 사람이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기독자들은 근검 절약의 생활이나 과학의 생활로 가지고는 그 방편 가지고는 안 된다 그런고로 기독자들은 초인간의 그 모든 기적으로만 살 수 있다. 기적이 아니고는 살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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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양심을 통하여 은혜를 받음)
그러고, 6절에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들에게는 은혜를 베풀어 천대까지 주신다. 주님을 사랑하고 그 세명을 지키는 자들에게는 주님이 천 대까지 은혜를 베풀어주신다 천 대까지 주신다 그말은 뭐 햇수로 천 년이나 이래 간다 말이 아니고 천이라 말은 끝없는 그 무한을 가리켜서 성경에는 천이라고 그렇게 표시를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천 대 수라 말은 대 수라 말은 저만 아니라 아들 손자, 또 믿음의 아들, 손자 모든 인연의 아들, 손자, 이러니까 통털어 결론을 말하면 자기와 관련 가진 자 자기에게 속한 자 전부에게 그 혜택이 가도록 하겠다 그렇게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자기 앞에 필요한 것이 마구 구비되어 있습니다. 필요한 것이 열 가지 백 가지 천 가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많이 앞에 꽉 놓여 있습니다.

있으나 그 사람에게 눈이 어두우면 없는 것입니다. 아무리 백 가지 천 가지 자기에게 필요한 것이 가득 쌓여 있다 할지라도 눈이 어두우면 하나도 안 보이니까 그 사람에게는 없는 것이라 그 사람에게는 하나도 소용이 없어. 안 보이니까 어떻게 가질 수 있소? 지금 눈이 어두운 것도, 요새와 같이 생각하면 안 돼요. 나는 눈이 없어도 다른 사람 눈이 있기 때문에 그 사람 눈뜬 혜택을 본다 그 말이오. 그래서 어떤 다이나젝스 라는 사람은 소경이 등불 들고 다니라 했오 소경이 눈 밝은 사람이야 등불 들 것 없이 환하게 돌아다니지만 소경이 등불을 들고 다니라 했어. 뭐 할라고? 소경이 등불 들고 다니면 등불 들고 다니니까 눈 성한 사람들이 다 보고 이리저리 피해 가고 부딪히지 안하거든. 그 소경이 등불 들고 다니라고 눈이 어두우면 자기 앞에 필요한 것이 천 가지 만 가지가 필요한 것이 앞에 가득히 있다 할지라도 눈이 어두우면 하나도 안 보이니까 자기에게는 하나도 소용이 없다 그거요.

또, 자기에게 필요한 복된 소리가 꽉 찼습니다. 너 그리 가면 죽는다 거기가면 지금 보배가 있다, 아주 자기에게 필요하고 요긴한 소리가 많이 있지만 귀가 어두워 놓으니까 그 사람은 하나도 필요가 없어. 귀 어두운 사람에게는 아무리 자기에게 유익된 소리가 많이 있고 자기의. 멸망을 피하는 그런 참 중요한 소리가 많지만 귀가 어두우면 하나도 없는 거와 같이 되기 때문에 자기에게는 효력이 하나도 없다. 그리 가면 죽는다. 말하면 귀가 어두우니까 못 들었으니까 그리 죽는 곳으로 뻑뻑 갈 수밖에 없다 말이오. 귀가 있으면 그리 가면 죽는다 하는데 들으니까 그만 그리 안 가고, 또 지금 뭣이 너에게 지금 오는데 저 위험한다, 저 지금 집이 무너지니까 어서 이리 바깥으로 나오라 이랬지만 바깥으로 나가라고 하지만 귀가 어두우니까 그리 못 듣고 거기 떡 편하게 앉았다 말이오. 또 바깥으로 나가라고 하는데 나갈라고 하지만 이거는 눈이 어두우니까 어디로 갈지를 모르니까 벽으로 자꾸 갈라다가 이라다가 그만 거기 치어 죽을 거라 말이오. 이러니까 자기에게 필요하고 유익한 소리가 많이 있어도 귀 없으면 소용없고 자기에게 중요하고 보배가 아무리 놓여 있다 할지라도 눈이 어두워 보지 못 하면 소용이 없습니다. 우리의 인격의 눈이 되고, 인격의 귀가 되는 것은 뭣이라고 배웠지요? 양심. 신앙 양심. 양심 없으면 소용없어. 양심 없으면 신구약 성경 말씀을 막 통달해서 아무리 외운다 할지라도 신학 박사가 된다 해도 양심 없으면 자기에게는 안 들리요. 양심 없으면 자기에게는 그것이 들리지 안하기 때문에 아무 소용없어. 아무리 수많은 성경 말씀이 자기에게 있다 할지라도 자기에게는 필요 없어. 양심 없으면 자기에게는 안 들립니다. 또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주신 모든 은혜가 자기에게 아무리 앞에 있다 할지라도 그 소망이 좋은 소망이 많이 있고 위험한 일이 아무리 많이 있다 할지라도 그 양심이 없으면 보지 못합니다. 양심이 없으면 보지 못하고 양심이 없으면 듣지 못하기 때문에 신앙 양심 없는 자에게 신구약 성경 공부 암만 해봐야 소용없다 그말이오. 요새 지금 양성원에서는 조직 신학을 공부하고 있지요. 조직 신학이 중요합니다. 중요하지만 양심을 안 쓰면 조직 신학 아는 조직 신학 박사라도 소용없어. 자기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어.

그런고로. 신앙 양심이 없으면 눈이 어두운 자기 때문에 소경에게는 자기 앞에 아무리 귀한 보배가 많이 있다 할지라도 그것이 소용이 없고, 자기 앞에 아무리 위험성이 있다 해도 그것도 자기는 피할 수가 없고 자기에게 모든 위험을 피할 수 있는 그 길이 있지만 피난 길이 있지만 눈이 어두우니까 소용이 없고, 또 아무리 필요하고 중요한 소리가 있지만 자기 귀가 어두우니까 한 마디도 못 들으니까 소용이 없다 말이오. 자기에게 어떤 좋은 것이 많이 있다 할지라도 눈 어둔 자에게 소용없고 자기에게 필요하고 요긴하고 생명되는 그런 말씀이 아무리 있다 할지라도 귀 어두우면 소용없어. 그러기 때문에 인간이 믿는 사람이 자기 신앙 양심을 쓰지 안하면 아무 소용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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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대'
출애굽기 20장 6절에는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은혜를 천대까지 베푼다' 그렇게 약속을 선언했습니다. 성경에 천(千)이라는 말은 우리가 계수하는 대로의 계수법이 아니고 여러 군데 쓰여진 것을 보면 영원과 무한을 가리켜서 천으로 그렇게 표시했습니다. 천대라 말은 영원이라 말이요 또 무한이라는 말입니다. 이러니까 주님을 사랑하고 그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금생과 내세 영원, 또 육과 영. 또 자기와 자기에게 속한 모든 것 그 전부를 가리켜서 천 대라고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천대라 말은 그 속에는 무한수를 가리켜서 말하고 자기에게 소속한 모든 전 인류와 모든 것들을 총칭해서 다 천대라고 대수라고 거기에 표현을 하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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