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3:1-13
1. 구원의 도리로 주신 말씀
앉은뱅이를 낫게 한 것은 예수님의 이름으로만 낫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 이십 세기의 과학도 얼마든지 낫게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그 앉은뱅이를 낫게 한 그것이 무슨 큰일이라서 기록하려면 온 세상에도 둘 곳이 없는 많은 기록할 그 재료 중에 이것을 기록했겠습니까?(요21:25) 그런고로 우리는 나면서 앉은뱅이에 대한 것을 기록하신 것이 우리에게 구원의 도리를 가르치고 있다는 것을 우리가 명심해야 됩니다.
여기에는 불쌍한 사람 세 사람이 있고 복된 사람 두 사람이 여기에 나타나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면, 불쌍한 사람 세 사람의 길은 우리가 걷지 안하도록 여기에서 배워야 하겠고, 복된 사람 두 사람의 길은 우리도 걷도록 배워서 복된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2. 첫 번째 불쌍한 자 - 앉은뱅이를 성전에 메다 놓은 사람(사람을 교회로 인도해서 주님으로 혜택 받아 살게 하지 않고 피조물의 혜택으로 살게 하는 구걸하는 사람을 만드는 자)
성전 미문에는 많은 사람들이 성전에 출입할 때에 그 사람들에게 구걸을 하는 병신들이 모인 곳이 성전 미문입니다. 이래서, 이 사람들은 앉은뱅이를 메어다가 날마다 성전 미문에 둔다 이랬습니다. 뭐 하려고? 그것은 구걸하려고 둔다 그렇게 했습니다.
교회에서 교역자든지 장로든지, 전도사든지, 권사든지, 권찰이든지, 집사든지 어떤 사람이든지 교회에서 사람을 인도하는 사람은 다 여기에 속한 사람이 되겠습니다. 사람을 인도해서 하나님의 성전 미문에 두는 거와 같이 하나님의 교회 속에는 들어가지 못하고 하나님의 교회 외부에만 가서 자리나 채워 앉고 이렇게 하나님의 교회에 껍데기 신자를 만들도록, 교회로 인도해 가지고서, 인도하는 것은 뭣 때문에 인도하는가? 인도하면 이 병신이 다른 사람에게 구걸을 하니 그 구걸하는 돈을 '너는 구걸하고 우리는 메어다 놓으니까 둘이 갈라 먹자' 하고서 이렇게 메어다 놓는 이런 일을 하고 있는 그 사람이 불쌍한 사람 중에 한 사람입니다.
사람을 교회로 인도하나 성전 안에는 인도하지 못하고 그 사람을 교회로 인도해서 그 사람에게 가르친다는 것이 찍해야 구걸하는 거 가르칩니다. 구걸하는 것은 우리는 예수님에게 얻어서 모든 것이 족하고 풍족한데 예수님에게 얻지 안하고 인간들에게 덕 봐서 살라 하는 그것이 다 구걸쟁이입니다.
내 아무것도 없는데 무슨 덕 보이는 사람 되겠습니까? 네가 예수님에게만 덕 보는 사람이 되어지면 나중에 다른 사람들에게 덕을 보일 수 있는 사람이 되어진다. 그러면 예수님에게 덕 보는 사람은 어떻게 해야 됩니까? 너가 신구약 성경 말씀 도리대로 살고, 네 양심에 가책되는 일 하지 말고, 도덕면이나 물질면이나 사회면이나 윤리면이나 경제면이나 모든 면을 하나님의 말씀대로 네가 살게 되면 하나님의 축복이 너에게 얼마든지 올 터이니까 다른 사람에게 구제하고 너도 넉넉히 살 수 있는 것이 되어진다 말씀을 하셨는데, 이렇게 사람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3. 두 번째 불쌍한 자 - 하나님이 아닌 피조물의 혜택으로 살려는 자
둘째로 불쌍한 사람은 교회 나오기는 나와도 그런 신앙 지도자에게 신앙을 받아 가지고서 예수 믿어도 송사하고 예수 믿어도 시비하고 예수 믿어도 사기 협잡하고 못 할게 없어. 이렇게 신앙을 배워 가지고, 예수 믿고 난 다음에도 큰 부자 되는데,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라 후히 주고 꾸짖지 안하겠다(약1:5).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 두지 말고 모든 것을 후히 주어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에게 소망을 두라'(딤전6:17)주님에게 소망두라 했는데, 주님에게 구해서, 이분이 부자인데 이분에게 들어붙으면, 그까짓 거지하고 들어붙어 가지고서 밥 한 그릇 가지고, 싸우면 찍해야 박이 터지면 터졌지 무슨 유익이 있겠소? 부자들 돈 많은 부자, 부자 집에 가 가지고서 '밥 한 술 주십시오' 해도 좋은 거 얻어 먹을 수 있겠지. 그런데, 하물며 하나님 아버지께서 주시마고 말했는데 '사랑하는 독생자도 너희들 위해서 아끼지 안하고 주셨는데 하물며 모든 만물을 은사로 너희에게 주시지 않겠느냐' 말씀했습니다(롬8:32). 이걸 믿어야 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면, 씨와 양식을 주는 자에게 씨는 심으고 양식은 먹으면은 얼마든지 자꾸 더 준다 했어.(고후9:10) 왜, 이분이 있는데 뭣 때문에 인간에게 자꾸 속여야 되고 거짓말을 해야 장사를 하고 속여야 돈을 벌고 이래 할 그런 칙칙한 일을 할 필요가 뭐 있습니까? 이러니까, 예수 믿고 난 다음에 하나님의 축복으로서 자기가 잘 될 이 길을 찾지 못하고 인간 대 인간으로서 깍쟁이 노름 하고 독하게 하고 잔인하게 하고 인색하게 하고 악독하게 해 가지고서 이렇게 해서 살아 볼라고 하는 그 사람보다 불쌍한 사람이 없는 것입니다. 요것이 둘째 불쌍한 사람, 요것이 나면서 앉은뱅이라, 날 때부터 병신이라. 인간은 날 때부터 원죄와 본죄로서 다 병신 되어 있는 것이 인간이라는 것인 것입니다.
* 약1:15-17
* 눅16:13 : 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 고전15:42 :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며
4. 세 번째 불쌍한 자 - 진리 앞에서도 땅의 것만 생각하는 자
셋째로 불쌍한 자는 이 앉은뱅 이가 베드로와 요한 사도를 만났으니까, 하나님의 사람을 만났으니까 저를 살려 줄 사람을 만났고, 저를 고쳐 줄 사람을 만났고 영원한 해결을 지워 줄 사람을 안났고, 영생과 생명의 평강을 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났는데, 이 사도들 만나 가지고도 여전히 과거에 구걸 하던 거 그것을 지금도 원하고 있으니 불쌍한 사람입니다. 베드로 요한이 응하지 안하고 주목을 하고 보고 있으면 거기에서 깨달아야 될 터인데 지금도 무엇을 그것 줄까 싶어서 손을 내밀고 있기 때문에 이 사람이 불쌍한 사람이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사람들을 통해서 저를 살릴 수 있는 요 기회. 병신을 고칠 수 있는 기회, 죽은 자를 살릴 수 있는 요 기회 여기에서도, 여기에서도 첫째 아담에게 속한 거 그런 것을 욕망하고 그런 것을 구하고, 성경은 '그런 거 구하지 마라 이방인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들의 천부께서 너희들에게 있어야 될 것인 줄 아시느니라 고기 덩어리 병신 된 것도, 그거나 고칠라 하는거 그거 다 모두 불쌍한 사람이오, 셋째 불쌍한 사람.
셋째로 불쌍한 사람은 교회에서 이제까지 배우기를 사람에게 깍쟁이 노릇 해 가지고서 인인 관계로서 잘 살려고 하는 요걸 배워 나오던 자가 이제 하늘의 복음을 들어서 예수님을 바로 믿어.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시리라'(신28:1) 하는 이 말씀을 가르치는 그 가르침 앞에서도 항상 어떻게 하면 세상에 없어질 거 돈이나 밥이나 뭐 줄까 싶어서 없어질 거 그것만, 하나님의 진리 앞에서도, 진리를 배우면서도 '아, 어떻게 하면 이 세상에서 잘 살까 뭐 잘 될까?' 이 진리를 배우면서도 항상 자기 병 고치는 데에다가 소망 두지 못하고 이제까지 소망 두고 있던 이 모든 물질에 소망 둔 그자가 불쌍한 자입니다. 이 앉은뱅이는 두 번 불쌍한 자 됐습니다.
* 마6:32 : 이는 다 이방인들이...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5. 첫 번째 복된 자 - 예수님의 이름으로 인간병을 고쳐준 자
복된 사람 두 사람은 어떤 사람이 복된 사람입니까? 구걸하라고 메어다 놓지 안하고 그 사람이 요구하는 요구에 응해 주지 안하고 돈이나 뭐 빵이나 줄까 싶어서 손 내미니까 탁 차서 '네가 원하는 은과 금은 내게 없다. 내게 있는 것으로 너에게 주겠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서서 걸어라' 하고서 잡아 일으켜서 그 사람 병을 고쳤습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그 사람 병이 나았습니다. 나은 것은 베드로가 그렇게 말을 하고, 그 병신이 베드로의 말을 듣고 믿고 하니까 예수님이 와서 고쳐 줬다 했습니다. 고 다음에 보면은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 그 종 예수를 영화롭게 했다'(행3:13) 그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을 통해서 그 병을 고쳐 주신 것입니다.
이런고로, 행복된 사람은 어떤 사람이 행복된 사람이냐? 땅 위에서 인간으로 인간을 복되게 해 주려는, 인간으로서 인간의 요구에 응해서 그를 좋게 해 주고 유익되게 해 주려는 이런 방식을 가지는 이런 불쌍한 자가 되지 말고, 이제는 사람을 상대할 때에 '이 사람에게 인간병을 예수의 이름으로 고쳐 줘야 되겠다.' 사람에게 대해서 사람병을 고쳐서 참사람. 이 병을 고쳐 준 사도들은 복있는 사람 중에 한 사람입니다. 떡 그래 가지고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그 병을 고쳤습니다.
오늘도 예수님의 이름으로서, 다른 걸로서 인간을 고치지 못합니다. 다른 거는 인간을 고치지 못하지만 예수님의 이름으로 네가 사죄받고 칭의받고 화친의 하나님의 자녀 됐으니까 진리와 영감과 피가 너를 역사 해 가지고서 고칠 수 있으니까 믿어라, 믿어라 하고서 권유해서 한 마디 두 마디 시키면 그 사람이 변해서 새사람이 된다 그거요. 이러니까, 그 사도들이 사람을 그렇게 고쳐 줬으니까 복있는 사람입니다.
* 약3:1 : ...선생 된 우리가 더 큰 심판 받을 줄을 알고 많이 선생이 되지 말라
6. 사람을 얻는 방편은 인간병을 고쳐주는 것
나중에 그 사람이 병이 낫고 난 다음에는 베드로와 요한을 떨어지지 안할라 합니다. 자꾸 달라붙어요. 아마 '야, 너 지금 이제까지 매일 널 업어다 놓고 또 널 메어다 놓고 또 너 간호하고 그렇게 네게 대해서 성심성의를 다 기울인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에게 가서 감사라도 하고, 그 사람에게 인사라도 하고 그 사람에게 안 가고 왜 처음으로, 생전 처음 보는 베드로 이 사람들 따라다니며 거석하느냐?' '하, 거기 안 갑니다.' 거기 안 가고 베드로 따라다닙니다. 이러니까, 그 사람은 베드로의 사람이 됐습니다. 막 붙잡고 따라 다녀요. 이러니까, 모든 사람들이 주목하면서 놀랬습니다. 이것이 행복된 사람 중에 하나입니다.
여러분들, 인간을 세상에서 구걸하는 걸 가르친, 학교 공부를 시켰다, 학비를 댔다, 과학을 가르쳐서 과학자를 만들었다, 다 창조주 그분의 혜택으로 살지 안하고 그분에게 유익 보고 그분을 바라보고 그분을 믿어 그분의 것으로 사는 요 길을 가르치지 안하고, 모든 피조물에게 인간에게 덕 보는 거, 물질에 덕 보는 거, 과학에 덕 보는 거 암만 가르쳐 봤자 마지막에는 이별입니다. 알겠습니까? 과학으로 인간을 가르쳐서 여러 수 천 명 제자를 뒀다 할지라도 마지막에는 원수 되고 이별입니다.
7. 두 번째 복된 자 - 인간병 고침 받은 자
거기에서 제일 행복된 사람이 어떤 사람입니까? 병 나은 앉은뱅이 나은 사람입니다. 그 사람이 뭐 구걸해서는, 헤아려 보니까 '오늘은 돈이. 구걸이 얼마 됐다. 하 좋다.' 좋다 해 봤자 그 이튿날 또 구걸해야 돼. 그거 가지고 해결은 안 돼. 병이 낫고 나니까. 병이 낫고 나니까 그만 어떻게 기뻤든지, 아마 그 가운데에서 제일 기쁜 사람이 앉은뱅이 병 고친 사람일 것입니다. 모든 사람에게 기이하게 존대하게 주목을 끈 사람이 병 고친 사람이었소. 인간이 자기를 모든 사람에게 존귀히 여김을 받는 데에는 뭐이냐? 존귀히 여김을 받는 데에는 내가 인간병을 고치면 그 사람들이 날 존귀히 여깁니다.
인간병 고치는 거보다 더 기쁨이 없습니다. 인간병 고치는 거보다 더 상쾌한 일이 없습니다. 자기가 어떤 욕심 하나에게 걸려 가지고서 가정이 다 절단나도 그 욕심을 버리지 못하는데 그 욕심 하나 딱 병 고쳐 욕심 하나 딱 정리하고 나니까 매인 데가 없고 어떻게 자유롭고 할 일이 없고 어떻게 기쁘고 평안하고 수월하고 시간도 많고 힘도 많은지, 그러기에, 회개의 기쁨을 보지 못한 사람은 회개의 기쁨이 어떤 것인지 말로 해 가지고는 모릅니다. 회개의 기쁨.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서 사는 그 믿음의 능력의 사람되는, 그 능력의 사람되는 것.
(85050501/02/0613/0721/0722/0831) 9
행3:1-13
1. 인간병
여기에 기록된 이 계시가 인간병을 고치기를 목적으로 하시고 택한자들의 그 인간병을 고쳐 주시기를 목적으로 하여서 기록해 주신 이 사실을 우리가 믿어야 합니다. 인간병은 어떤 것이 인간병인고 하니 세 가지가 인간병입니다.
2. 영병
하나는 영이 하나님으로 더불어 연결이 돼서 중생했습니다. 살아났습니다. 우리의 영이 살아난 것은 무슨 물질의 힘으로 살아난 것 아닙니다. 육체의 생명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피의 대속의 그 광대하시고 구비하신 그 무한하신 예수님의 대속의 피의 능력으로 살아났고 피공로를 인해서 우리에게 온 성령의 능력으로 살아났고, 피공로로 인하여 온 진리로 우리가 살아난 것입니다.
성령과 진리는 예수님의 피공로를 위해서 왔고, 위해서 일하는 것이 성령과 진리의 역사인 것입니다. 그러면 이 세 가지 능력으로 우리가 살아났습니다. 우리 힘은 무슨 힘이냐? 우리 힘은 진리의 힘입니다. 우리 힘은 영감의 힘입니다. 성령의 힘입니다. 우리 힘은 주님의 대속의 힘입니다. 이것이 우리 힘입니다. 이 힘은 영생합니다. 이 세 가지 힘으로 영은 살아났습니다. 살려줌을 받았습니다. 영은 아무런 주관적 노력 없이 순전히 하나님의 객관 능력의 역사로 영은 살아났습니다. 살아났으나 하나님과 진리와 예수님의 대속과는 연결이 단단히 돼 가지고 있는 영이지만, 영이 아직까지도 고쳐야 할 것은 죽을 때도 영은 이 심신의 범죄를 주격 책임에서 죽었습니다. 지금도 심신의 연약은 주격인 영의 연약이요, 심신의 병신은 영의 병신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의 영은 예수님의 심신을 완전히 점령하고 완전히 포용해서 그 심신의 털끝만한 기능이나 동작도 예수님의 그 인성의 영의 피동 아닌 것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도 인성의 그 영에게 심신은 순전히 피동돼서 세포 하나도 거기에도 반역은 없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죄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인성은 그 신성과 일위가 돼 가지고서 함께 동하고 정하고 하여 신인 양성이나 한 격위를 이루어서 역사 하셨습니다.
그러면 우리의 첫 열매시요 우리의 표본이신 그에게까지 자라가야 하나니 곧 그는 뭐이냐? 예수 그리스도시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예수님에게까지 자라가는 것은 중생된 영이 예수님의 피의 대속과 성령의 감화 감동과 진리의 힘으로만 움직여 영생을 가진 이 영이 가진 그것으로서 마음과 기능에 전달되고 몸의 기능에 전달되어 이 마음이 순전히 영에게 피동되어 영은 마음을 완전히 점령해서 예수님이 점령하신 것처럼 점령을 해서 예수님의 그 인성의 마음이 인성의 영에게 절대 복종한 것처럼 이렇게 복종하게 하는 이 일이 이루시기 위해서 했는데, 우리의 영들은 벌써 우리의 마음을 많이 죽였습니다. 우리의 마음을 죽인 것이 천분의 구백 구십 구를 죽였는지 만분의 구천 구백 구십 구를 죽이고 하나만 살려 있는지 이것이 영원한 무궁한 하늘나라의 영광의 차이가 되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중생된 영은 시기가 지나가기 전에 자기의 영원한 소유요 하나님의 사명이요 자기의 소유의 보배 중에는 보배로운 그 영을 점령해서 영을 다스릴 수 있는, 영을 다스릴 수 있는 이런 권위를 가질려고 애를 써서 다스릴라 하고 악령은 빼앗아서 제가 다스릴려고 애를 쓰는 이것이 우리의 대내전의 전투인 것입니다.
여기에서, 중생된 영이 우리의 마음을 어느 정도 점령했는가? 만일 이 자리에 와 가지고서 근번 목적은 자기의 남은 아 마음과 몸의 심신의 이 모든 기능은 완전히 중생된 영이 점령하여 중생된 영이 동하면 동하고 정하면 정하여 이 세 가지 능력으로 인하여 동하고 정하는 그 영에게 피동되는 이 심신이 되어지게 하려는 이것이 하나님의 목적이시요 근번에 이 계시를 우리에게 주시는 목적이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영의 병은 심신을 점령하지 못하고 그것을 통치하지 못 하는 모든 미완성이요 모든 연약성이요 무능성이라, 이것이 영의 병이라.
2. 마음병
(1) 지식병
또, 다음에는 우리의 마음의 병이라.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의 모형대로 된 마음인데 우리의 마음이 병들었습니다. 우리 마음이 병들은 것은 우리 마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의 하나님의 속성대로의 그 속성으로 되어 있는 것이 우리의 마음인데, 우리 마음은 하나님같이 이 지식성을. 지식성을 가지고 있는 것인데 지식성이 병들었습니다. 우리의 있는 지식이 병들었습니다. 병든 것은 순전히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만 알아서 하나님의 지식을 우리가 받아 가지고 하나님의 지식의 모형적 지식이 되어서 하나님의 지식대로의 지식을 우리가 가져 하나님의 지식과 원형 모형만 차이 있지 모양은 같고 권위는 다르지마는 하나님의 지식은 능동적이요 우리의, 지식은 모형이기 때문에 피동적으로 되어 있는 이것만 차이가 있는 것이 우리의 지식인데 우리의 지식은 완전히 병들었습니다. 우리의 지식은 하나님의 지식의 모형적 지식이 아니고 배암의 지식의 모형적 지식입니다. 이 지식이 병들었기 때문에 이 지식의 병을 고쳐야 합니다.
이래서, 지식이 병들었지, 이러니까 아는 게 전부 병들었어. 모두 다 배암들이 말해 놓은 이 세상 지식대로 그 사람이 경영하고 그 사람이 소원하고 이러니까 지식이 병들어 놓으니까 욕심도 병들었어. 외나 욕심 낼 것은 안 내고 성령의 소욕은 안하고 전부 육체의 소욕만 가지지, 욕심도 병들었지, 뜻도 병들었지, 소원도 병들었지, 경영도 병들었지 모든 방법도 병들었지, 비판도 평가도 다 병들었지 이러니까 다 병들었으니까 가치를 평하는 것이 세상 사람들이 가치 평가하니까 평가하는 것이 세상 사람들의 평가와 꼭 같은 평가를 하고 있는 것이 교회의 평가니 이 평가는 다 죽은 평가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평가하는, 마귀의 지식이 평가하는 평가와 같은 평가를 가진 그 지식이 하나님의 지식은 껍데기로 줄줄 하나의 이용이나 해 먹고 하나님의 지식이 자지의 지식의 근본이 되지 안했기 때문에 자기의 모든 움직임이나 소망함이나 경영함이나 모든 것이 다 세상과 같이 되어지는 것은 그것이 열매이니까 그 열매로 볼 수 없는 뿌럭지를 알아야 할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제일 중요한 것이 지식이니 지식이 잘못되면 그이의 전 생애는 다 잘못될 수밖에 없고 그의 생애가 잘못되면 그이의 모든 구원이라 하는 것은 구원의 결과가 사람인데 그 사람의 사람이나 해 놓은 모든 이력이나 모든 것은 잘못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2) 지혜병
지식의 병을 고치고 지혜의 병을 고쳐서 나는 날마다 연습하고 길들인 것이 이제는 신구약 성경 말씀은 나에게 하나의 이 상식이요 이 하나님의 산지식을 직접 연결하기 위한 하나의 준비 모든 공작이요 준비에 필요한 모든 방편들이요 지혜들이니까 이제 여기에서 현실을 만날 때에 하나님이 나에게 뭐라고 알라고 하는가? 하나님이 나에게 무슨 지식을 주시는가 무슨 지혜를 주시는가? 이러기 때문에, 너희가 총독과 감사와 공회에 잡힐 때에 너희들이 잡혀 끌려가는 것은 전도하기 어려운 그 자리에 전도하라고 보내는 것인 것을 네가 알아라 하는 그것이 하나님의 지식이오. 그러면 거기에 가서 뭐라고 말하랍니까? 말은 네가 할 것이 아니라 말 할 이가 따로 있으니 말하시는 이는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너에게 말하게 하는 고대로 말하라 했습니다. 그대로 말하라. 평소에 그분이 말하게 하는 대로 말하는 것을 평소에 연습해서 훈련되어 있지 않다면은 더우기 과도기에 어떻게 그분이 말하는 대로 말하고 그분이 지식하라는 대로 지식하고 그분이 동하라는 대로 동하고 정하라는 대로 어떻게 정할 수 있겠습니까? 평소에 능숙한 것도 과도기를 만나면 떨리고 실수하기 쉬운데 평소에 안 되는 것이 그때에 어떻게 될 것입니까? 그러기 때문에, 주님 말씀하시기를 내가 올 때에 믿음을 보겠느냐고 말씀하신 그 말씀하신 그 말씀이 과연 오늘 우리들에게 해당된 말씀인 것입니다.
(3) 중심병
우리는 마음에 병이 든 것을 우리가 알고 이 병을 어짜든지 고칠라고 애를 써야 됩니다. 삼십팔 년 된 병자에게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첫깨로 요구하는 것이 그것이었습니다. 낫고자 하는가 하는 것을 요구했습니다. 낫고자 하느냐? 낫고자 하느냐? 지식과 지혜의 병이 마음병이요 우리에게 중심병이 마음의 병입니다.
내가 무엇을 중심해 사는지, 내가 명예를 중심해 사는지, 내 영광을 중심해서 사는지. 유명하기를 중심해서 사는지. 돈을 중심해서 사는지 내 가정이 등 따시고 배부르기를 중심해서 사는지 내가 훌륭한 교회 큰 교회 많은 교인들을 모으는 것을 중심해서 사는지, 세상에 누구보다도 호의호식하고 사는 것을 중심해서 사는지.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내 육체에 충만히 와 가지고서 모든 사람보다도 앞선 일등이 되기 위해서 사는지 무슨 중심인지 바울은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려는 고것이 중심이었습니다. 떠나든지 거하든지 그를 기쁘시게 하려는 고것이 중심이었습니다. 시작도 나를 대속하신 주님이시요 중간도 주님이시요 마침도 주님이시요 영감을 원하는 것도 요 중심 때문이 요 신구약 성경 지식을 원하는 것도 요 중심 때문이요 어서 세상에서 떠나서 주님 앞에 가고 싶은 것도 요 중심 때문이요 세상에 더 있기를 원하는 것도 주님 중심 때문에 요 중심을 다문 얼마라도 성취할까 해서 요 중심 때문에 전부 요 중심 외에는 기독자의 중심이 아닌 마귀란 놈이 사이비한 중심을 줬으니 요것은 옛사람의 중심이지 새사람의 중심은 아닌데 우리는 중심이 뭐인지, 우리는 선이 뭐인지, 우리는 중심을 무슨 중심으로 우리는 가졌는지 중심 병을 우리가 고쳐야만 할 것입니다.
(4) 사랑병
하나님 한 분만 가지신 사랑, 곧 이 사랑이 우리에게 왔으니 하나님은 독생자를 보내신 그 동기와 목적의 그 사랑. 보내심을 받은 예수 그리스도는 그이의 도성 인신하여 신인양성일위되신 그분의 동기와 목적과 그분의 방편 계속해서 피와 성령과 진리가 계속해서 당신의 사랑을 털끝만치라도 받은 사람은 털끝만한 사랑이 털끝만한 사랑이 재물이 되어 지고, 주먹덩이 만치 받았으면 주먹덩이 만치 받은 사랑이, 그 주먹덩이 만치 받은 사랑이 희생하여 받은 대로 자기의 소유와 몸과 생명을, 아버지의 소원. 주님의 소원 곧 사죄, 칭의, 화친의 이 세 가지 목적, 죄 없이 하려는 하나님에게만 피동되려는, 하나님과만 하나 되어 있는 요것을 이루는 요 사랑이 우리의 사랑이 되어 있는지, 이 사랑이 되지 못하고 만일 이 세상에서 말하고 있는 에덴 동산에서 하나님이 사랑하는 그 사간 아닌 배암의 사랑을 받아 들여 가지고 그때부터 배암을 사랑했고, 배암의 사랑을 받았고 배암의 사랑으로 아담을 사랑했고, 사랑의 감염 받아서 이제는 배암의 사랑으로 해와를 사랑하고 모든 만물을 사랑하는 그 사랑이 가득 퍼져서 세상에 가득 찼으니 사람들은 이 사랑의 매력을 느껴서 다 사랑을 동경하고 거기에 끌려서 있는데 그 사랑을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인지. 내가 사랑에 병들지 안했는지. 배암의 사랑으로 내가 사랑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닌지, 사랑은 여기에 있으니 하나님은 독생자를 보내셨고 독생자는 우리의 죄를 없이 하시려고 당신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기까지 하시고 또 부활까지 하신 이 사랑이 하나님의 사랑이,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이 사랑을 우리가 산 사랑인 줄 알고, 이 산 사랑을 내가 가지지 못한 사랑의 병든 것인 줄 알고, 이 산 사랑을 내가 가질려고 하고 있는지, 배암으로 말미암아 모든 정욕의 사랑 모든 성욕의 사랑. 동류의 사랑. 이런 모든 배암의 사랑이 사랑에 지금 부딪쳐서 이 사랑에 못 끊고 이 사랑에 끌리고, 이 사랑의 매력에게 감염되어서 이 사랑에 갈급해서 울고 불고 웃고 된 줄도 모르고 피곤한 줄도 모르고 늙는 줄도 모르고 죽는 줄도 모르고 날뛰고 있는 이 사랑에 병든 것이 아닌지 우리는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3. 치료의 이치
이 세상에서 아무리 암병 든 사람 뭐 하지마는 암병 들어 봤자 찍해야 그까짓 병이 이미 죽을 자 죽게 만들지 뭐 별 큰 일 할거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미 세상 떠날 자 떠나게 만드는 것뿐이지. 또 그 까짓게 아무리 그 사람에게 해친다고 해도 그로 인해서 그것에게 미혹받지 안하고 그로 인해서 더 주님에게 감사하고 그로 인해서 더 부르짖고 간구하면 주님 앞으로 더 가까이 나아가는 모든 동기나 운동 말만 돼졌지 무슨 그게 소용이 되겠습니까? 그러나, 우리의 이 사람이 병든. 사람 병든 것은 세 가지 병든 거라. 영이 병들었고, 마음이 병들었고, 몸이 병든 것이 이것이 사람 병든 거라. 이래서 영이 병든 걸 깨닫고 이 병을 치료하기를 원하고 여기에서 치료받는 것만치 마음이 병든 것을 깨닫고 기막힌 이 사실을 깨닫고 마음의 병을 고치기를 원하여 고침을 받은 자 받은 것 만침 고기덩어리의 병은 다 낫아. 낫은 것 만침 다 낫아.
앉은뱅이도 다 낫아, 누운뱅이도 낫아. 문둥이도 낫아, 암병도 다 낫아. 일호 이호 삼호의 병에 걸리면 일호 병 낫고 이호 병 나으면 나은 것같이 삼호는 당신의 손해기 때문에 그대로 둬 두지 안해. 그것은 당장 고쳐 줍니다.
(85050720) 9
행3:1-13
1. 구걸과 은혜
그러면, 주님에게 받은 것은 어떤 것이 주님에게 받은 것인가? 주님의 계명대로 그 법칙대로 지켜서 사는데 그런 것이 이루어져 왔으면 주님에게 받은 것입니다. 내가 믿음으로 받은 것이면 주님에게 받은 것입니다. 내가 주님의 법도대로 순종하는 생활을 해서 주님에게 순종으로 농사짓는 사람이 있고 구걸로 농사짓는 사람이 있고 여러 가지 있으니, 주님에게. 공부 하는 것도 '너 공부하나?' '아, 나는 믿음 지킵니다.' '너 장사하나?' '나는 믿음 지킵니다.' '너 농사 짓나?' '나는 믿음 지킵니다.' '믿음으로 행치 아니한 것은 다 죄니라.'(롬14:23) 주님에게 순종으로만 이렇게 하는 그 사람의 생애에 이루어진 거라야 주님이 주신 것이지 입술로는 주님에게 받았다 하면서도 하나님 말씀은 다 저버려 버리고 제 지혜 방법 수단, 인간들의 모든 권고 지도 방편대로 해 가지고서 얻어진 그것이 구걸입니까 그것이 주님에게 받은 은혜입니까? 어떤 것입니까? 우리가 요렇게 자꾸 구별을 해서 살아야 됩니다.
그러기에, 하나 하나를 자꾸 구별해서 구걸이냐 하나님의 은혜냐? 은혜 보고 사느냐 구걸 보고 사느냐? 구걸이 아니면 주님의 은혜입니다. 구걸이 아니면 주님의 은혜요 은혜가 아니면 구걸입니다. 둘 중 하나입니다. 구걸이 아니면 은혜요 은혜가 아니면 구걸입니다. 요런 것도 요럴 때 배울 때 딱 확정을 지워 버려야 됩니다. 확정을 지워서, 그러면, 하나님에게 받은 은혜라고 말을 했는데, 은혜라고 말은 하기는 했는데 심사를 두 번이나 해 봐야 됩니다. 그 사람의 받은 걸 하나님의 은혜로 받았다고 했는데 그 사람이 참으로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무엇을 통해서 주셨든지 주셨다는 것을 확고히 인정을 하고 있느냐? 확고히 인정을 하고 있으면 그 사람은 하나님 앞에 믿음으로 은혜 받은 사람이냐? 또 좀 더 살펴봐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주신 것이라 하는 것을 자기는 확실히 믿고 인식하고 있어도 이제는 그 사람의 행동 면을 살펴봐서 그 사람의 행동이 그 일을 하는데 하나님의 법칙대로 해서 받았는지 사기 협잡 모든 범죄를 해서 그걸 취했는지 조사해 봐서 하나님의 뜻대로 함으로 말미암아 자기가 받아졌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지마는 그렇지 안 하면 그거는 전부 다 구걸입니다. 인간에게 다 착취한 것이고 인간에게 다 빼앗은 것입니다.
2. 구별(거룩)의 중요성
이러기 때문에, 구별이 잘못 되면 행동이 잘못되고 그라면 모든 구원은 다 잘못되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제법 하나님의 말씀을 알기는 아는 거 같은데 현실을 당해 가지고서 그 전후 좌우를 구별할 고 단계 와서 구별하는 거 보면 아주 전혀 판이하게 엉뚱한 소리를 하고 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는 사람 중에 그 구별성이 어떻게 정확지 안 한지, 그래서, 작은 일 큰 일을 구별을 바로 하고 사람을 바로 구별하고 사물을 바로 구별하고 시대를 바로 구별한다고 하면 그 사람이 성도입니다. 하늘에 있는 너희 아버지의 거룩하심 같이거룩하라(벧전1:16) 그 말은 하나님은 따지는 하나님이라 그 말이오. 하나님처럼 따지고 따져 가지고서, 그렇게 따져서 참이라는 고 참을 잡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처럼, 수많은 것이 복잡해도 따지고 따져 가지고서 요것은 틀리고 요것은 옳다 요렇게 잡으시는 것처럼 우리 믿는 사람들도 많은 사람이 말한다고 따라갈 것이 아니고 많은 사람이 정죄한다고 따라갈 것이 아니고, 천인 만인이 의롭다고 해도 따져 봐야 되겠고 천 인 만 인이 죄라고 해도 따져 봐야 되겠고. 자기대로 성경 지식이 있으니까 따져 보고 따져 가지고서 옳은 참이라는 하나인 옳은 그것을 딱 잡는 고것이 거룩입니다.
3. 영병, 마음병, 몸병
병든 영이 고침 받고. 어떤 병신이라도 다 고칠 수 있어. 자기의 병든 영이 고침 받는 것이 일호라. 병든 영이 고침 받아. 병든 영이 고침 받다니? 병든 영이 고침 받는다는 이 말을 하면은 마귀의 물의가 많이 일어날 것입니다. 중생된 영도 병 들었으면 그게 내나 범죄했다는 말 아닌가? 병은 들었는데 범죄했다는 말은 아니오. 무능도 죄라, 무능도 죄 하나님의 말씀을 어겨 죄가 아니라 중생된 영은 자기가 책임진 자기의 소유인. 자기에게 영원 생사가 달려 있는 제 마음을 제 몸을 제가 살리지 못하고 다스리지 못 해서 그것들이 영원 멸망으로 둘째 사망의 사망으로 영원 멸망으로 옮겨져 가니까 자기는 무능자이지. 무능자의 천대를 영원히 받아야 되지. 불 가운데 구원 얻는 것같이 부끄러운 구원을 얻어야지.
병도 무능도 병, 지나친 것도 병, 자기 의무와 책임과 본분을 못 하는 것도 병, 자기 지위를 감당치 못하는 것도 병. 영이 자기 마음을 책임지고 살리고 다스려야 될 터인데 다스리지 못하고 책임지지 못해서. 그 육을 책임지지 못해서 그 육이 패망이 되어지니까, 육이 패망이 되어지니 '심신 그 까짓 거 패망 되든지 말든지 영 내게 뭐 상관 있나?' 심신이 패망되니까 그 영은 영제 가도 타고 다닐 게 없어. 영계 가도 제 무기가 하나도 없어. 우주에 와도 다닐 데가 없어. 한 사람의 영은 우주를 일 초 동안에 억억만 바퀴도 주 도는데 이 영은 우주에 와도 육의 기능을 다 죽였기 때문에 뭐 생각할 게 있어야지? 느낄 게 있어야지? 깨달을 게 있어야지? 아는 게 있어야지? 그러니까, 제 심신의 기능을 죽인, 살리지 못한 상당한 보응은 영 제가 받지. 이러기 때문에 가련한 영입니다. 영은 뭐 죄를 지은 죄병이 아니오. 무능병이오, 무능병. 감당을 못 하는 병, 자기 소유를 뺏기는 병.
이런데, 이 앉은뱅이는 이렇게 살릴 수 있을 때도 엉뚱한 거 그런 걸 지금 꿈꾸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제 영을 치료하는 말씀으로. 딴거 없어. 돈드는 거 아니라. 아무것도 안 들어. 여기에서 가르치는 말씀을 '아멘' 믿고 요 대로 확정지우면 살아나. 이제는 영이 누군데? 여러분들, 영이 누굽니까? 진리의 힘으로, 영감의 힘으로, 예수님의 대속의 힘으로 거기에 붙들려서 그 힘 가지고서 움직이는 내가 영입니다. 알겠습니까?
옛사람이 누구요? 옛사람이 진리와 성령과 주의 대속의 공로를 떠나서 배암의 지식, 배암의 말, 땅의 것을, 첫째 아담의 것을 탐을 해 가지고서 그게 귀중하다고 평가해 가지고서 거기에 붙들려서. 거기에 피동돼서, 그것의 사람이 돼 가지고서 그것으로 말하고 움직이고 그것으로 경쟁하고, 자기의 회로애락과 모든 가치와 행복이 모두 다 거기에 있다고 해서 날뛸 때의 자기가 그것이 옛 사람인 것입니다.
이러니까, 영의 병든 것을 고치고 마음의 병든 것을 고치면 고만 그라고 난 다음에는, 영의 병든 거 고쳤어, 마음의 병든 거 고쳤어. 고쳤으니까 이제는 영도 하나님 뜻대로 마음도 하나님 뜻대로인데 고기 덩어리가 병신이라 못 해. 그러면 누가 애터질까요? 누가 애터지겠소? 누가 애가 터지겠소? 그 본인이 애가 터지요, 하나님이 더 애가 터지요? 하나님이 애가 더 터지시요. 죽기까지 당신이 하신 것이 이 목적인데. 영도 강건케 해 놨는데. 마음도 다 고쳐서 강건해졌는데, 영과 마음은 단결이 됐는데 이 고기 덩어리가 뭐 병신이니까 기어다닐 수가 있소 어짤 수 있소? 이러니까 주님이 애 터져 그럴 때 그거 고치기는 문제도 없이 쉬워. 그만 일어나라 하면 일어나고 고만 고칠라면 고치고 낫아 줄라면 낫아줍니다.
(85050721/2233/2600) 9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