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 14:34 소금이 좋은 것이나 소금도 만일 그 맛을 잃었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눅 14:35 땅에도, 거름에도 쓸데없어 내어 버리느니라 들을 귀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하시니라
여기 소금이 맛을 잃으면 소금이 맛을 잃으면 아무 데도 쓸 데가 없어서 밖에 버린다
거름에도 쓸 데가 없고 밭에도 쓸 데 없다, 거름에도 못 쓰고 또 밭에도 못 쓴다, 아무 데도 쓸 데 없는 사람이 된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밖에 버리면 사람에게 밟힐 뿐이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믿는 사람이 하나님이 주신 이 법칙대로 하면 심히 존귀해지고. 또 이 법칙을 어기면 심히 천해집니다.
(* 마 5:13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밭에도 쓸 데 없다 거름에도 쓸 데 없다 이 말은, 밭에도 쓸 데 없다는 말은 비유인데 이 세상에도 쓸 데 없다는 말입니다. 세상에도 쓸 데 없다. 세상은 우리를 위해서 있는 밭입니다. 기독자가 잘못되면 세상에도 쓸 데가 없고, 또 거름에도 쓸 데 없다 그말은 밭에 그 곡식을 위해서 있는 거 름인데 그 거름으로서 밭에 곡식이 잘되게 되는데 그거는 거름에도 쓸 데가 없으니까 곡식 잘되게 하는 데도 쓸 데 없고, 또 밭에도 쓸 데 없다. 세상에게도 아무 쓸 데 없는 사람, 세상에게도 쓸 데 없는 사람이 되고 거름에도 쓸 데 없다. 믿는 사람에게도 쓸 데 없는 사람이 된다.
거름에 쓸 데 없다는 말은 믿는 사람들에게 쓸 데 없다는 것을 말합니다.
기독자가 잘못되면 세상에도 무용지물입니다. 안 믿는 사람들은 아무리 악해도 세상에 쓸모가 있습니다. 또 아무리 악해도 기독자에게 다 필요한 거름입니다. 악한 자는 악한 대로 거름이 되고 선한 자는 선한 대로 거름이 되고 어리석은 자는 어리석은 대로 거름이 되고 독하고 잔인한 사람은 독하고 잔인한 대로 거름되고 또 부랑자는 부랑자대로 거름되고 어쨌든지 요 불택자는 택자를 위해서 거름이라 그걸 비유합니다. 불택자들은 택자를 위한 거름인데 그 불택자들은 이렇게 저렇게 어떻게 그 사람이 됐다 할지라도 된 대로 하나님의 교회 건설에 이용을 당합니다. 거름에 쓸 데 없다 말은 불택자들은 택자들의 구원을 위해서 이용이 되지만 택자들은 못되고 못 쓰면 그거는 거름에도 못 쓴다. 택자는 잘못 되면 택자의 구원 이루는 데에도 쓰지 않기로 작정이 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거게도 소용이 없다 하는 말이요, 불신자에게 대해서도 아무 소용이 없다 그말입니다.
그러니까 기독자는 어디 가나 천대를 받기 마련입니다. 기독자가 잘못 되면 비참하게 천해 집니다. 불신자편에 가도 거게도 어울리지 안하고 쓸 데가 없고 또 기독자의 구원에 이용물로 거름 모양으로 이용되는 데에도 아야 그거는 기독자의 구원을 위해서 이용될 거름이 아니기 때문에 그 질이 다르기 때문에 소용이 없습니다. 나무도 썩으면 거름이 되고 흙도 썩으면 거름이 되고 풀도 썩으면 거름이 되고 짐승도 썩으면 거름이 됩니다. 되지만 이 비니루 이거는 암만 해 봐야 아무짝도 못 씁니다. 비니루는 비니루 못 쓰면 그만 그거는 그저 태우기나 할까 그거는 아무 데도 못 쓰는 것처럼 기독자들은 믿는 자의 구원을 위해서 지음 받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구원에 거게도 필요 없고. 또 불신자들에게도 필요 없고, 그 불택자라야 모든 불택자들에게 필요가 있는데 택자는 잘못 되면 교회에도 쓸 데 없고 세상에도 쓸 데 없고 하기 때문에 그 사람은 아무짝도 쓸 데 없는 사람인고로 다 밖에 버려서 발에 밟힘 된다 그렇게 성경에 말씀들을 했습니다.
그러면, 요것은 그저 기억만 합시다. 믿는 사람이, 소금이 맛을 잃으면 다시 짜게 못한다 이 말은 기독자들이 그 땀 한 방울이라도 참 조그만한 사소한 재물이라도 그것이 바로 희생을 하면 굉장한 가치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여게 대해서 참 너무 믿음이 허무합니다.
보리떡 다섯 덩어리와 물고기 두 마리를 그 아이가 내놔 가지고 희생을 했습니다.
손해를 봤습니다. 보리떡 다섯 덩어리와 물고기 두 마리를 자기가 내 놨습니다.
내놔서 주님에게 바쳐 주님의 손에 갔을 때에 보리떡 다섯 덩어리와 물고기 두 마리면 그것이 꼭 한 사람이 먹을 수 있는 도시락이랍니다. 한 사람이 먹을 수 있는 도시락인데, 한 사람이 먹을 수 있는 도시락인데 그 도시락에 하나님이 축사하시니까 한 사람 먹을 도시락 이 오천 명이 먹고도, 오천 명도 뭐 사나이 수만 오천 명이니까 그 여자는 안 따라 다니겠습니까? 사나이 수만 해도 오천 명이 먹고 남은 것이 또 열 두 바구니에 찼습니다. 이것은 뭣을 보이는고 하니 예수님의 구속을 받은 사람들은 구속을 받은 사람들의 그 이용 가치가 얼마나 있다는 것을 그것을 모르기 때문에 구속 받은 자의 이용 가치가 큰 것을 보이는 하나 표적입니다.
구속을 받은 사람이 바로 돼 가지고 바로 돼서 참 그게 소금처럼 바로 희생을 할 때에 기독자가 바로 돼 가지고 바로 희생을 하면 보잘 것 없는 존재이요 사람이요 분자지만 그것이 큰, 세상 구원에 효력을 나타낸 다. 여게 소금 비유는 그것을 말합니다. 기독자가 바로 돼 가지고 희생을 하면 기독자의 희생이 어떻게 귀한 결과와 참 상상도 못할 아주 좋은 기회 좋은 그 결과를 맺게 된다. 기독자의 희생은 기독자의 희생은 이거 일반인의 희생이나 일반 모든 그 만물들의 희생하는 것이나 투자하는 것이나 그런 게 아니고 그런 투자와 같지 안하고 기독자가 바로 돼 가지고 희생하면 그 희생의 그 결과는 측량하지 못한다.
그 말은 다른 말로 말하면 그 사람이 수고를 했는데 그 사람 한 시간 수고하면 돈이 만 원이 벌게 된다. 또 그 사람은 한 시간 수고 하면 백만 원 벌게 된다. 이 사람은 한 시간 자기가 희생을 하고 수고를 하면 일억만 원을 벌게 된다. 그라면 한 시간 수고 해 가지고 만 원 버는 사람, 천 원 버는 사람, 백만 원 버는 사람, 일억만 원 버는 사람이 있는데 자기 한 시간 수고에 한 시간 희생해서 일억만 원의 그 수입을 보는 사람이 가치 있는 사람입니까. 한 시간 수고에 천 원 수입을 보는 사람 이 가치 있는 사람입니까? 어떤 사람이 가치 있는 사람이겠습니까? 예? 어떤 사람이 가치 있는 사람이겠습니까? 한번 대답해 보십시오. 어떤 사람이 가치 있는 사람이지요? 예. 한 시간 수고해서 한 시간 수고 해서 한 시간 자기의 정력을, 투자하니까 일억만 원을 벌었어, 또한 사람은 한 시간 수고하니까 천 원 벌었습니다.
한 시간 수고해서 만 원 벌 고, 그라면 어느 사람이 가치 있는 사람입니까? 예? 천 원 번 사람이 가치 있는 사람이요? 예? 일억만 원 번 사람이 가치 있지. 그렇지 안해요,? 일억만 원 벌은 사람, 일억만 원 벌은 사람이 가치 있지 않습니까? 그 사람은 한 시간만 자기의 정력을 희생을 하면 일억만 원을 번다. 그런데 한 시간 희생하면 일억만 원 벌 수 있는 사람이 그 사람이 잘못되면 일생을 희생해 봤자 한 닢 푼치 가치도 천 원도 벌지 못하고 아무 가치 없어서 이거는 아무 데도 쓰지 못해서 천해서 집어 던져 가지고 지끈지끈 밟히게 된다.
그게 기독자입니다. 바로 되면 기독자의 그 사소한 희생에 지긍히 큰 댓가를 이루는 것이 기독자요, 또 기독자가 잘못돼 놓으면 뭐 자기 일생을 아니라 여러 수천 명이 희생돼 봤자 그까짓 거 이 세상에도 소용 없고 거름에도 쓸 데없는 그거는 잘못된 그거는 죽자껏 희생해 봤자 하나도 교회에 대해서도 유익을 하나도 주지 못하고 이 세상에도 유익을 하나도 주지 못하는 그렇게 천하게 됩니다.
기독자가 잘되면 굉장히 고귀하고 존귀한 자가 되고 잘못되면 굉장히 천한 자가 되는 것이 기독자다 하는 것을 여게 나타내 보입니다.
그러니까, 소금이 좋거니와 고 맛을 잃으면 어찌 써 다시 짜게 하리요. 다시 소금 못 만든다 말이요. 요것은 간으로 희생하는 걸 말합니다. 간으로, 희생하는 것.
'밭에도 쓸 데 없고 거름에도 쓸 데 없고 오직 버릴지니 귀 있어 들을 자는 들을지어다' 소금이. 그것이 간을 가지고 희생하는 거와같이 기독자가 잘 돼서 바로 돼서 기독자가 잘 돼고 바로 돼서 그게 바로 진리로 희생을 한다고 하면 진리로 녹아진다고 하면 바로 옳게 생애를 해서 그것이 희생된다고 하면 굉장한 가치가 있다.
아, 보리떡 다섯 덩이와 물고기 두 마리는 점심 먹을 도시락 한 사람 먹을 도시락 밖에 안 됐는데 그것을 바로 바로 희생을 해서 바로 도시락 한 개를 희생했더니만 도시락 한 개가 사나이 수만 해도 오천 명이 먹고 남은 것이 열두 바구니나 됐고, 보리떡 다섯 개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 먹은, 어떤 아이가 하나 그 도시락 하나를 희생해서 제공했다 이 랬는데 그 아이의 도시락 한 개 희생으로써 오천 명이 먹고 남은 부스러기가 열 두 바구니나 됐고 그것이 벌써 근 이천 년 둥안 내려오면서 기독 자들에 주는 그 혜택과 영향이라 하는 것은 굉장히 크다. 그것이 소금이 변질돼지 안하고 그대로 녹아지면 이렇게 가치가 있습니다.
소금이 변질되지 안하고 바로 녹아지는 것처럼 기독자가 바로 돼서 진리와 영감대로 바로 돼 가지고 희생을 하면 그 희생의 가치는 굉장히 크다. 오병이어에서 나타내 보이는 것같이 그렇게 가치가 크다. 그러나 기독 자가 자기가 진리대로 희생하지 안하고 자기를 아끼든지 해 가지고 진리대로 희생하지 안하면 그게 좋을 줄 알아도 그것은 밭에도 쓸 데 없고 거름에도 쓸 데 아무 데도 쓸 데 없다. 귀가 있거든 들으라 그말이오. 귀가 있거든 귀가 있거든 들으라 요 무슨 말씀인지 그걸 잘 모르면 안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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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기 때문에, 성도들이 바로 옳게, 바로 옳게 바로 옳게 희생만 해라. 겁내지 말고 희생만 해라. 그러면 상상도 못 할 거 보리떡 다섯 덩어리와 물고기 두 마리면 그,아이의 한끼 도시락밖에 안 되지만 그것이 오천 명이 먹고 남았으니까 도시락 오천 개 된 거 아닙니까? 또 남은 부스러기가 열 두 바구니가 됐지, 또 그 사실이 기록돼 가지고 이 천추 만대에 있을 것이지, 기록이 돼서 그것이 사람 구원에 얼마나 큰 공헌이 됐으며 얼마나 좋은 효과를 나타냈습니까?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이 이렇게 하셔 가지고 예수님이 올바른 소금으로 녹았습니다. 예수님이 맛 있는 소금으로 됐습니다. 가치 있는 소금으로 됐어요.
예수님이 가치 있는 소금으로 녹았다 말이오. 예수님께서 모든 높음과 모든 영광과 부요와 모든 것을 내어놓으셔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기 까지 하셨으니 그는 참 희생인데 그 희생이 세상에서 보면 뭐 희생이라 하는 것이 그게 무슨 가치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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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 잃은 소금은 어떤 게 맛 잃은 소금이냐? 맛 잃은 소금은 우리 현실에서 이 세상 거게다가 부모 형제 자매 처자를 이렇게 말했지만, 세상에 무엇이든지 세상에 무엇이든지 그것이냐 주님과 주의 말씀이냐 둘을 비중을 다는 그것이 현실인데 이제 주님과 진리를 위해서 현실을 가지고 이것 저것 할 게 있지만 어떨 때는 이거냐 저거냐 보다 어느 것이냐? 이것 취할래 이것 취할래 둘 중에 어느 것 취할래? 이걸 취할라고 하면 세상을 내놔야 되고 세상을 취할라 하면 주님과 진리를 내놔야 되고 이럴 때에 세상에 모든 것보다 나를 더 사랑치 안하면 내가 싶어서 걸어간 이 걸음을 네가 걸을 수가 없고, 내가 승리한 이 승리를 할 수가 없고, 내가 하늘의 것과 땅의 것을 취득한 이 취득을 너도 할 수 없다, 내가 아버지의 보좌에 앉음같이 너도 아버지의 보좌에 내 보좌에 앉지를 못한다 그럴 때에 맛 잃은 소금은 어떤 게 맛 잃은 소금인고 하니 주님과 주의 뜻 보다 세상이 귀하다 하여 그것을 더 사랑하는 자는 맛 잃은 소금이 되나니 너는 인간에게도 쓸 데 없고 마귀에게도 쓸 데 없고 세상에도 쓸 데 없고 따무 데서 영원히 쓸 데 없는 비참한 자가 된다. 하늘 나라 가기는 가지요. 기본 구원 있으니 하늘 나라 가기는 갑니다. 하늘 나라 가도 불 가운데 구원얻은 거와 같으니까 뭐 좋을 게 있겠오? 이렇게 천해진다.
그러나, 나와같이 나와같이 성공하고 모든 존재에게 다 감사를 받게 되고 모든 존재가 다 주라 시인해서 영광을 돌리게 하는 이 내 제자 내 승리의 걸음을 네가 따라 올라고 하면 바른 희생 해야 한다. 바른 희생 해야 한다. 네 현실에서 네가 좋은 거, 뭐 높은 권세든지 지위든지 큰 회사든지 아주 어떤 재벌이든지 어떤 정권이든지 또 가족이든지 애인이든지 뭐 세상에 명예나 영광이나 취미 쾌락 어떤 것이든지 그거보다 나와 내 뜻을 더 귀하게 여겨서 그걸 희생하고 나와 내 뜻을 잡으면 너는 맛 있는 소금이 될 것이고 내 제자가 되어서 내가 승리한 것같이 승리가 될 것이고, 네가 그렇지 안하고 그게 아깝고 나보다 좋아서 나와 내 뜻을 버렸으면 버렸지 그거는 버릴 수가 없다, 그것 네 것인데 그것 버릴 수가 없다고 하는 자는 맛 잃은 소금이 된다. 기독자가 희생할 올바른 그 희생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그는 아무짝도 쓰지 못할 자가 된다. 올바른 희생으로서 기독자가 존영해지는 것이고 기독자가 승리하게 되는 것이고 구원얻게 된다 그것을 여기에 말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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