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그러기에 요한계시록에 보면 일곱 교회에 대해서 말씀하실 때마다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라고 말씀했습니다. 귀 있는 자는 듣는 다고 말했는데 그 귀는 우리 육체의 귀야 없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다 있지요 그런데 거게 귀를 말하는 것은 양심을 말하는 것입니다. 양심은 인격의 귀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하는 말은 양심이 있는 자는 양심을 쓰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가 있고 양심을 쓰면 하나님의 움직이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양심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가 있고. 양심은 하나님의 하시는 그 모든 형태를 볼 수가 있는 것이 양심입니다. 그러기에 착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간다(벧전3:21)고 그렇게 여게도 말씀을 하셨습니다.
(85060902/1560) 9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신구약 성경대로 된 신앙양심은 새사람의 눈도 되고 귀도 됩니다.)
그러면, 그 산 양심은 누가 가졌는가? 신자가 가졌습니다. 신자가 가지 믿는 사람이 가진 것입니다. 믿는 사람이 가졌다면 기독자는 다 이 산 양심을 가졌는가? 아닙니다. 기독자라고 산 다 양심을 가진 것이 아니고 기독자로서도 산 양심 가진 사람이 그 중에 있고 대개는 모두 죽은 양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왜 기독자가 죽은 양심을 가지고 있는가?
기독자가 하나님의 성경말씀을 가지고 성경 말씀대로 이래야 저래야 어떻게 하면 옳으냐 하는 것을 성경 말씀을 법전으로 삼아 가지고 찾아서 성경대로 바로 할라고 하면 그 양심이 살아나고 산 양심이 되겠는데. 예수를 믿는다고 말 하지만 성경 말씀대로 모든 것을 비판하고 평가하지 안하고 인간 자기 생각. 자기 지식. 자기 주관이 세상 지식대로 모든 것을 비판하고 평가하고 사고하고 하기 때문에 기독자도 다 대개는 죽은 양심을 가지고 있고 산 양심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면, 양심은 산 양심은 어떤 양심이 산 양심인가?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 지식을 삼아 가지고 하나님의 지식대로 어떻게 하면 옳게 하고 바로 하고 참되게 하는 것인가 해서 하나님에게나 사람들에게나 자기에게나 모든 사물들에게 대해서 어떻게 하면 바로 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을 성경이 가르쳐 주시는 대로 그대로 할려고 하는 그 양심이 산양심인 것입니다. 그러면, 산 양심은 새사람 참사람의 귀도 되고 눈도 됩니다.
마태복음 6장에 말씀하시기를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둡고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은 거 와 같이 네게 있는 빛이 밝으면 온 생활과 인격이 밝고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모든 인격이나 행위나 생활 전체가 다 어두워진다'.(마6:22-23) 그렇게 말씀 하신 그 빛은 양심을 가리켜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또 요한계시록 일곱 교회마다 말씀하시기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여러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그러면 귀, 육신의 귀 없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거게 귀라고 말하는 것은 양심을 가리켜서 말하는 것입니다. 양심이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으라 하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85061233) 9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리라'
생명나무가 뭐입니까? 하나님과 연결된 나무에서 맺는 열매, 하나님과 연결되어 하나님과 하나되어 가지고 맺어지는 그 하나 하나의 결실 그것이 자기 양식이라. 하나님하고 동행해 가지고, 한 사건을 성취하고 한 승리를 성취하고 한 목적을 달성하는 그 하나 하나를 하면서 그것으로 먹고 양식 삼는다 말이오.
나무라는 것은 행위를 말합니다. 생명 행위의 결과를 먹게 한다. “생명나무” 생명나무라 말은 하나님과 연결된 행위. “생명나무” 하나님과 연결된 행위. 그 결과는 뭐이요? 그 열매가 결과인데 그것은 하나님이 하신 일이오. 내가 했지만 하나님이 하신 일이오. 전지 전능자가 하신 일이라. 완전자가 하신 일이라.
(89080822/0830)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리라'
기독자에게 이 세상에서 제일 좋은 곳은 낙원인데 거기는 죽음이 없고 근심이 없고 근심이나 고통이나 걱정이나 원망이나 시기나 불만이나 불평이나 그런 것이 없고 항상 기쁘고 감사하는 그 생명이 충만한 것이 낙원 생활입니다. 낙원 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무엇으로 가야 낙원으로 들어간다 했습니까? 계2장에 ‘이기는 자는’ 하지 안했소? 이기는 자는 하나님의 낙원에 생명 과실을 주어 먹게 하신다, 처음 사랑의 행위를 하는 것이 이기는 자라.
처음 사랑의 행위는 대속 입은 행동입니다. 대형으로 삐뚤어진 걸 없애는 그 운동, 대행으로 옳은 것을 건설하는 운동, 대화친으로서 화목을 이루는 그 운동, 예수님이 대신 했기 때문에 나는 예수님의 공로로 살아났으니까 나는 다른 사람을 위해서 대신 하는 고것이 하나님과 연결되는 것이요 고것이 빛의 행동을 하는 것이요 그것이 낙원 생활이요 생명과실을 먹는 것이라. 제가 한 게 아니고 다른 사람의 삐뚤어진 것을 대신 형벌, 삐뚤어진 형벌을 제가 책임지고 그 사람을 거기서 구출하고 또 대신 행해 가지고 그 사람을 건설시키고 또 대신 화목의 제물이 돼 가지고서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친하고 모든 것으로 더불어 화친하도록 이래 만들어 나가는 이것이 처음 사랑의 행위입니다. 이것이 다른 말로 말하면 소금 생활이라. 이것이 자기가 사죄, 칭의, 화친 이 세 가지로 자기가 녹으면 영생합니다. 그러면 낙원 생활합니다.
(88053120)
'이기는 그에게는'
이긴다 말은 받은 세 가지 대속을 모든 사람들에게 내가 기념하는 것으로서 증거하는 것입니다. 기념이라 말은 과거에 있었던 그것을 그 뒤에 그와 같은 그 모형으로, 처음에 있은 거는 원형이 된다면 그 다음에는 모형이 되는 것인데 처음에 있었던 거와 같은 그 형상을 계속하는 것을 가리켜서 기념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주님이 우리를 대형 대행 대화친하신 이것은 원형으로 하신 일인데, 근본 행동 원형이 되는 행동인데 그 행동을 닮은 모형 행동을 우리가 계속하는 것이 기념하는 것이요 그것이 하나님과 나와의 연결된 생활입니다. 그거 끊으면 연결 끊어지고 그거 계속하면 연결되고 그 연결 되면 빛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그러면 교회의 본분, 우리 기독자의 본분을 할 수 있고 그거 끊어지면 본분을 하지 못하고 촛대는 옮긴다 이랬습니다. 이기는 자는 그 생활을 계속하는 자라는 말입니다. '이기는 그에게는' 그 생활을 계속하는 자에게는 하는 말입니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이기면 하나님의 낙원에 가서 살 수 있다 말입니다. 낙원은, 하늘나라는 하늘나라의 실상이요 세상에 있는 하늘나라를 가리켜서 낙원이라 그렇게 여기 표현한 것입니다. 하늘나라는 죽음이 없고 고통이 없고 눈물이 없고 슬픔이 없고 모든 곡하는 것과 모든 불행이 없고 평강과 모든 소망과 강건뿐인 것이 하늘나라입니다.
하나님의 낙원이라는 이 낙원은 곧 땅위에 있는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땅위에 있는 천국, 지상 천국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낙원 생활 세상에서 근심 고통 불안 같은 사망에 속한 종류의 것들이 하나도 없고 전부 생명에 속한 것들만으로 가득 찬 그 세계가 하나님의 낙원입니다.
기독자가 이렇게 아무리 훌륭하다 하고 또 다른 사람이 볼 때에 그 사람은 행복되다 해도, 남이 볼 때에 행복되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은 많이 있지마는 자신이 자신을 볼 때에 행복된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자신이 보거나 남이 보거나 모든 게 다 봐도 진정 행복된 사람은 낙원 생활입니다.
기독자가 죽음 앞에서도 죽음이 없는 낙원에서 살고, 원수들이 수없이 다 집중 사격을 하는, 천천만의 원수 있는 거기에 포위된 데서도 항상 기쁘고 즐겁고 평안하고 강하고 담대하고 생기가 청청한 그런 생활은 곧 천국 생활인데 땅위에 있는 하나님의 낙원입니다.
그러면 이 낙원 생활은 무엇으로 할 수 있는가? 어떻게 하면 이 낙원에 들어갈 수 있는가? 낙원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은 이기는 자, 처음 사랑을 가진 자, 다시 말하면 기독자가 세 가지 예수님이 대속하신 대속 입은 것을 증거하는 기념 생활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대속 생활하는 이것 외에는 낙원에 들어가는 길이 없고 하나님과 연결되는 방편이 없고 세상에서 빛으로 나타날 수 있는 그런 방편이 없습니다.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리라'
생명나무 과실이라 말은 하나님과 자기와 연결된, 성령과 자기와 연결된, 진리와 자기와 연결된, 하나님과 연결된 그 결과를 자기가 먹는다 그말입니다. 하나님과 연결된 그 결과의 행위, 그 성공, 하나님과 하나되어 성공하는 그 성공을 인생들이 가져서 자기의 인격의 양식을 삼을 수가 있다, 그것으로서 배불리 살 수 있다 하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88052902)
'하나님의 낙원'
하나님의 낙원은 지상 천국입니다. 하나님의 낙원은 세상 속에 들어 있는 천국입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너희들에게 이 말 하는 것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케 하려 함이라' 하신 것은, 십자가에 지금 못박기로 정죄했을 때에 주님은 한없이 기뻐하셨습니다. 십자가에 못박히시는 그 일을 못 할까 싶어서 고민하다가 십자가에 못박게 될 때는 한없이 기뻐했습니다. 십자가에 못박혀서 십자가상에서 그분이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이여 나의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시나이까 하는 것은 어떻게 나를 이렇게 대우하고 이렇게 나를 영광스럽게 합니까 하는 뜻입니다. 그 기쁨은 한량이 없었습니다.
'내 기쁨'이라 말은 예수님의 기쁨이란 말인데, 예수님의 기쁨은 피조물들이 조금도 침노하지 못하는 그런 피조물을 완전히 초월한 기쁨이었습니다. 그러면 이런 모든 기쁨과 평강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이 세상 죄악 속에 들어 있는 이 낙원입니다.
* 요15:11 :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88053010)
'생명나무의 과실'
생명 과실은 하나님과 연결된 결과의 행위, 그 결과의 성공, 그 결과의 승리, 승리의 양식을 먹는다 그말입니다. 여기 생명나무의 실과를 주어서 먹게 하리라 이랬는데 이 생명 과실은 곧 하나님과 연결된 승리의 결과를 말합니다.
승리의 결과는 아브라함도 승리의 결과요, 노아도 승리의 결과요, 엘리야도 승리의 결과요, 모두 다니엘도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도 승리의 결과요, 요셉도 승리의 결과요, 다윗도 승리의 결과요 모두 다 승리의 결과입니다. 그 승리의 결과는 사람들 보기에도 승리니까 좋지마는 그 승리의 결과는 무엇이 먹습니까? 승리의 결과를 먹는 자는 고기덩어리가 먹습니까 그 심령이 먹습니까? 심령이 먹습니다. 인격이 먹습니다. 인격이 이 승리의 결과를 먹어봐서 맛을 본 사람들은 그 승리 결과 외에는 맛있는 양식이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옥중에 매여 있어도 양심은 자유하는 그 결과를 먹고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다 승리의 결과 생명과라 말합니다. 생명과가 곧 하나님과 연결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에 성령으로 승리한 성령의 결실을 말합니다. 성경에는 이런 성령의 결실을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인내와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 이런 것이 다 승리의 결과라 했습니다.
어디서든지 불만할 수 있는 데서 만족할 수 있는 것이 성령의 결과요, 또 어디서든지 미움을 가지지 않을 수 없는, 천인 만인이 다 미움을 가질 수 있는 가운데서도 사랑을 가질 수 있는 것이 성령의 결과요, 모든 사람이 이제는 다 천인 만인이 낙망하고 절망할 수 있는 그런 현실을 만나도 그 소망 가운데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그런 것이 다 생명과입니다.
* 갈5:22 :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
(88053010)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여기 낙원은 이 세상에 있는 낙원입니다. 눅23:4에 주님이 한편 강도에게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말씀하신 죽어서 영원한 무궁세계를 대기하고 있는 그 낙원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이 세상에서 하나님과 동거 동행하는 그 낙원을 가리켜 말합니다.
'낙원에 있는' 낙원은 삼위일체 하나님이 계시는 곳입니다. 요14:23에 '우리가 저에게 와서 거처를 저와 함께 하리라' 했습니다. 낙원에 있다 말은 하나님이 계시는 곳이라는 말입니다. 삼위일체 하나님과 동거한다 말입니다. 같이 거한다 말입니다. 곧 골방을 말하는 것입니다. 은밀한 곳을 말하는 것이요 영원한 완전한 피난처를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계셔.
* 눅23:43 :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 요14:23 : 우리가 저에게 와서 거처를 저와 함께 하리라
(87100250)
'생명 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리라'
하나님과 연결됨으로의 그 연결된 결과로 인해서 양식이 있습니다. 힘을 돕는 것이 있습니다. 요6:57에 '내 피와 살을 먹는 자는 나로 인하여 살리라' 했습니다. 피와 살을 먹는다는 것은 물질을 먹는 것 아닙니다. 인격의 양식이기 때문에 생각으로 먹고 영감으로 먹는 것입니다.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겠다' 본체인 하나님과 연결됨으로 인해서 본체의 힘이 와 가지고 차차 그 힘이 자꾸 많아집니다. 배고플 때 음식 먹으면 기운나고 자라는 것처럼 그 양식 먹으면 자꾸 갑니다.
* 요6:57 :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인하여 살리라
(87100250)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리라'
'이긴다'는 말은 처음 사랑을 잊어 버렸는데 처음 사랑을 도로 찾아가지는 것이 이기는 것입니다. 이기는 것은 처음 사랑을 도로 찾아가지는 것인데 처음 사랑을 도로 찾아 가지면 네가 낙원에 살게 된다고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지옥 속에서라도 천국 생활을 하는 그 생활은 아무리 천인 만인이 지옥 생활을 하고 있는 그 속에서라도 그 사람만은 혼자 천국 생활을 할 수 있는 그 천국이 세상에 있는 낙원인데 그 낙원 생활을 하는 것도 그 처음 사랑을 도로 찾은 것,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깨닫고 믿는 데에서 낙원 생활이 이루어지는 것을 말합니다.
또 '생명'은 하나님과 연결이 생명입니다. '과실'은 결과를 말합니다. 그러면 '이 사랑을 믿고 가졌을 때에 생명 과실을 먹게 된다'는 말은 하나님과 연결돼서 하나님과 동거 동행하는 그 결과의 생활을 이룰 수가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면 낙원 생활이 되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을 믿는 증거입니다. 믿는 것만큼 낙원이 되어지고 아무리 자기가 어떻게 한다 해도 그 사랑이 우리에게 믿어지지 아니하면 낙원은 없습니다. 믿어지는 증거가 바로 낙원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낙원이 이루어지지 아니하거든 우리가 이 사랑을 안 믿는 줄 알고 자꾸 믿도록 하나님께 기도하고 노력을 해야 됩니다.
또, 하나님의 사랑이 자기와 함께 하는지 안 하는지 그 증거는 뭐입니까? 그 증거는 '생명 과실'입니다. 생명 과실은 주님하고 동거 동행하는 그것이 열매라는 말입니다. 그게 내나 희생과 봉사가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의 평강은 하나님의 사랑을 내가 믿을 때에 또 내가 모든 것을 사랑함으로서 봉사할 때에 봉사가 본능적으로 되어지고 자연적으로 되어지고 안 하고는 견딜 수 없는 사랑의 본능이 들어서 이와 같이 하는 것은 희생인데 그 희생이 되어지는 것도 사랑입니다.
그러면 내가 희생을 하는데 억지로 하는 게 아니고 안 하고는 못 견디고 하는 것이 피곤치 안하고 기쁘고 즐겁고 하고도 마음에 모자라고 불만스럽고 부족하다는 이게 있을 때에는 그 사랑이 내게 와서 역사 하는, 주님과 동거해서 연결되는, 하나님과 연결돼 가지고 하는 증거고 내가 어떤 가운데서라도 세상이 나를 두렵게 하거나 불안하게 하거나 불평하게 하거나 슬프게 하거나 근심되게 하는 그것이, 세상이 와서 다 하려고 달라 들어 해도 하지 못하는 그것이 내가 하나님의 사랑을 믿는 그 믿음이 내 속에 있다는 증거입니다.
이러니까, 사랑의 증표는 희생이요 봉사입니다. 그게 본능적입니다. 항상 주고 하고도 못다 준 것같이 그렇게 여겨지니까 피곤치 아니합니다. 그래서 '피곤치 아니하면 때가 되면 거두리라' 말씀했습니다.
* 갈6:9 :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88040960)
'낙원에 있는'
낙원은 염려나 고통이나 심판이나 벌받을 것이나 사망이나 그런 것이 하나도 없는 곳이 낙원입니다. 믿는 사람들이 세상을 떠나서 예수님의 재림 때까지 머물러 가지고 있는 그 대기소를 낙원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주님의 사랑을 알고 믿을 때에 그 사랑이 내 속에 들어와서 역사하고 그 사랑이 내 속에 들어와서 역사 할 때에 아무런 두려움이나 염려나 근심이나 고통이나 이런 게 없고 평안과 기쁨만이 있을 수 있는 낙원 생활을 할 수가 있습니다.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리라'
'생명 과실'은 절대자이신, 자존자이신, 주권자이신, 모든 것의 주재자이신 하나님과 연결이 돼 가지고 맺는 결과를 가리켜서 생명 결과라 말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과일을 먹으리라' 하는 것은 하나님과 연결이 돼 가지고 연결된 그 결과의 행위를 먹으리라, 그 결과의 모든 역사를 먹으리라하는 말입니다. 그러면 그 결과가 모든 사람에게 주는 양식이 되고 물이 되고 그들에게 다 생명이 된다 하는 말입니다.
(88040630)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리라'
이 처음 사랑을 가진 자가 하나님의 낙원에 살 수 있고, 아무리 이 세상이요 참 사막 같은 무정한 이 세상이라도 하나님의 사랑 속에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낙원 속에 살 수가 있고, 결국 모두 다 죽는 것이요 썩는 것인데 자존자 완전자로 더불어 연결된 이 연결의 생애가 이루어질 수 있다 하는 것을 결론으로 말했습니다.
(88040520)
'귀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사람에게 참 있어야 할 귀, 유익이 되는 귀, 가치가 있는 귀는 하나님의 계시 말씀을 듣는 귀한 말입니다. 이것을 들을 줄 모르는 귀는 그 사람에게 있어 필요한 귀로는 없는 자와 같다는 것으로 귀의 가치를 평가하는 동시에 귀를 창조하신 목적을 밝히시는 것이며 사용의 유일의 법칙을 가르키는 말입니다.
'이기는 그에게'
이것은 과거분사가 아니고 현재분사니 승리의 완필이 아니고 진행을 염두에 둔 말입니다. 마 24:13 참조 신앙의 승리는 현세에 완성되는 시간을 가지지 않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별세시간까지 되어가는 일입니다.
이긴다 함은 처음 사랑을 가지고 처음 행위를 하는 것을 가르쳐 말함입니다. 다시 말하면 주인을 바꾸어 주의 것으로 주만 위하여 살고 주께만 소망을 가지는 자이니 자율이나 자행은 없나니 요동함이 없는 행위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실과를 주어 먹게 하리라'
내가 함은 주님이 직접이란 말이니 신실성과 친밀성을 가짐이요.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 과실은 영생하는 나라에서 먹지 못하였으나 그리스도는 승리하였으니 그리스도와 올바른 관계를 맺어 처음 사랑을 찾은 자에게는 승리자이니 생명과실을 먹을 수 있습니다. 이 생명과실은 실물이 있는 동시에 진리와 진리의 신의 은혜도 포함합니다.
하나님의 낙원은 천국을 말함이니 곧 자유와 영생의 세계, 하나님을 섬길 권세가 있는 세계입니다.
이 낙원과 생명과실은 재세에서도 처음 사랑을 가진 자는 얻고 먹을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자유의 세계에서 진리의 은혜와 성령의 은혜를 날마다 받아 영혼 윤택하게 자랍니다.
(570121)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리라'
일곱 교회마다 다 이 말씀이 있습니다. 이기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새로운 축복 주시는 것을 말씀했습니다. 제일 처음 교회가 에베소 교회요. 맨 마지막에 말씀한 교회가 라오디게아 교회 인제, 라오디게아 교회에 계3:21에도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요 이기는 사람에게만 새로운 축복이 있습니다.
이긴다는 것은 싸워서 이긴다는 말인데, 우리의 싸움은 언제 있는가? 우리 싸움은 언제나 현실에만 있습니다. 싸움 없는 현실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계속하고 있는 이 현실이라는 현실에서 싸움이 있는 것을 기억하고, 이 싸움에 이기도록 노력해야 되겠습니다.
현실마다 싸움 없는 현실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기에 현실마다 내가 승리를 하든지 패전을 하든지 둘 중에 하나는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승리하면 다 생명의 면류관, 낙원에 있는 생명 과실(계2:7), 횐 돌(계2:17), 만국을 다스리는 철장(계2:27), 영광의 보좌에 앉는 것(계3:21) 뭐 이기는 자에게만 다 이 상급이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요 현실에 싸움이 있다는 걸 이걸 그만 잘못하면 잊어버리기 쉽습니다. 현실에 싸움이 있다는 걸 잊어버리고 그만 이 마귀가 미혹하는 미혹의 욕심에 떨어지기 쉽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현실에는 언제든지 나를 꾀우는 나를 꾀우는 마귀로 더불어 싸우는 현실이라는 것을 기억하고, 그러면 내가 마귀를 이기고 하나님 편에 붙든지 마귀에게 져서 마귀의 종이 되든지 또, 현실은 언제나 죄로 더불어 싸우는 전투가 있습니다. 그러면 현재에 죄로 더불어 싸워서 죄에게 져서 죄의 종이 되든지 죄를 이겨서 하나님에게 속하게 되든지, 또, 현실은 생명과 사망으로 더불어 싸우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현실에 사망 이놈에게 지면 그만 사망에게 삼켜서 사망의 종이 돼 가지고 죽게 됩니다. 그러면 현실은 우리는 죽음으로 더불어 싸우는 것이요, 죽음으로 더불어 싸워서 이 사망에게 지지 안하면 영생합니다. 마귀에게 지지 안하면 하나님의 자녀됩니다. 죄에게 지지 안하면 다 영생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요 현실에는 이 싸운다. 내가 현실에는 지금 보이지 않는 마귀하고 싸우고 죄하고 싸우고 이 사망하고 싸운다 하는 요것을 기억하고, 요 싸우는 현실이니까 내가 현실에 요거 지지 않겠다 하면 우리가 다 이길 수 있는데 그만 마귀 그놈이 어떻게 꾀 있게 주위 환경을 이렇게 몰아쳐 가지고 이래 하든지 그만 마귀에게 끌려 가지고 패전하기 쉽습니다. 우리를 꼬우는 마귀란 놈이 우리 욕심을 붙들고 꼬습니다. 미혹의 욕심 우리를 꼬우는 욕심이라 이랬습니다. 꼬우는 욕심에게 끌려 가지고서 그만 패전 하게 됩니다. 그런고로 현실에 현실만 싸워서 이기면 우리는 모든 면에 대성공자가 되는 것입니다.
(85040551) 9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리라'
낙원이라 말은 무궁세계 영광 세계를 말하는 게 아니고 골방이라는 말과 같은 말이요 또 은밀한 중에 계신다는 은밀한 중이라는 말과 같은 말입니다. “여호와로 피난처를 삼고 지존자로 거처를 삼았다” 하는 곧 그곳입니다. 이는 세상에 있는 낙원인데, 옛날로 말하면 에덴동산입니다.
이러니까 하나님이 계시는 곳입니다. “하나님의 낙원에” 하나님 계시는 “그 곳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리라” 생명나무의 이 과실이라는 말은 곧 생명이 먹고 자랄 수 있는 그 실과라. 이러니까 신령한 은혜라. 그러면 이 영감과 진리로 되어 있는 신구약 성경 속에 네가 양식으로 먹을 수 있는, 그 속에 있는. 그 은혜를 네게 주겠다.
성경을 일반적으로 보는 사람이 그 사람이 느낄 수 없는, 깨달을 수 없는, 어림이나 댈 수 없는 그런 깊은 은혜를 너에게 주겠다. 이는 성경을 잘 아는 성경 학자가 가진 그런 걸 준다 말이 아니고 아무리 신앙이 어려도 네게 양식이 돼서 네 중생된 새사람이 잘 자라고, 그리스도의 그 형상이 잘 자라고, 새사람이 잘 먹고 자랄 수 있는 새사람의 양식을 주겠다 하는 그런 것을 가리켜서 말씀합니다. 처음 믿는 사람들도 이 은혜를 받을 수 있고 아무리 성경 대학자라도 이 은혜는 받지를 못할 수 있습니다.
“낙원에 있는” 하나님이 계시는 하나님과 같이 계셔서 하나님이 너희에게 이 생명이 먹고 자랄 수 있는, 하나님과 너와의 연결된 그 연결이 먹고 자랄 수 있는, 하나님과 너와 둘이 하나가 되어지는 하나된 그 연결이 자랄 수 있는, 그 연결이 힘을 얻을 수 있는, 그 연결이 강건해지고 그 연결이 장성해질 수 있는 그 양식 네게 주겠다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시91:9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는 나의 피난처시라 하고 지존자로 거처를 삼았으므로'
(87092920) 4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귀 있는 자라 말은 들을 귀를 말하는 것인데 이것는 마음의 귀를 말하는 것이요 영감의 귀를 말하는 것이오. 영감 받아서 영감이 없으면 듣지 못합니다.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깨닫지 못한다” 다만 하나님의 이 지극히 큰 대속의 역사가 있어야 들을 수도 있고 깨달을 수도 있지 제가 혼자 제맘대로 듣고 깨달으리라고 생각하면 헛일입니다.
이 은혜가 같이 하지 안할 때에는 뭐 그 자리에서 설교해 가지고서 모든 사람들이 막 울고 구불고 야단을 지겨도 아무 소용 없습니다. 그거 다 껍데기요. 아무 생명 역사는 없어. 생명 역사는 순전히 위로부터 내려와 가지고 역사하는, 피조물의 역사가 아니라 자존자 완전자의 그 역사입니다. 이것도 여러분들이 자꾸 들으나 구별 없이 듣고 모르기 때문에 예사로 알아.
이 세계에서 기독자의 구원이 땅위에 있는 모든 것이 자꾸 이렇게 개량하고 연구하고 이래서 발전해 나가는 것이냐 땅위의 것이 자라나가는 것이냐 순전히 하늘의 것이 내려와 가지고 새 것으로 되어지는 것이냐 이것이 지금 문제점인데, 온 세계는 땅위의 것이 자라가고 하는 것이 그것이 바른 깨달음이고 해석이다 하는 것이 세계에 십분지 구는 될 것입니다.
‘아니다. 이것은 순전히 하늘에서 내려온 새 것으로 이루어진 것인데 하늘에서 내려온 새 것이 땅에 속한 헌 것을 전부 물들이고 감화시키고 감동시키고 변화시키고 성화시켜서 되는 것이지 땅의 그게 되는 것 아니다. 이거는 뭐 땅의 것은 안 될라고 애를 쓰고 방해하는데 하늘에서 나온 능력이 역사해 가지고 이것이 되어진 것이다.’ 이렇게 깨달은 것은 세계에 십분지 일이 될까 말까 할 정도입니다.
제가 신학교 다닐 때도 이 문제에 대해 가지고서 말이 언제 한번 나왔습니다.
나왔는데, 그러면 지금 어느 것을 취택하느냐 할 때에는 강의하는 분도 ‘이것은 세계 모두 정통에서도 이렇게 말하는데’ 이렇게 말한다는 것이 어느 것을 취한다는 그것은 확정을 지우지를 안했습니다. 그때 그것이 제가 듣고서 좀 섭섭한 일이었습니다. ‘어째 그것이 확정이 안 될까?’ 이러니까 이런 것도 여러분들이, 참 힘들게 가치 있게 생각해야 되지 그렇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성령이 가르쳐 주시지 안하면 이 예수 믿는 도리는 암만 신구약 성경을 외워도 제 복음은 하나도 아닙니다. 바로 깨닫지는 못하요. 예수 믿어야 되지 이 알고 예수 안 믿는 것은 자기를 정죄하는 것밖에 아닌데 그걸 모른다 말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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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는 그에게는'
이기는 자가 무엇이 이기는 자입니까? 처음 행위를 가지는 그게 이기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리라'
창세기 3장에 보면 생명나무의 과실을 따먹지 못하도록 그룹들로써 지키고 쫓아냈습니다. 생명 과실을 먹고서 영생할까 해서. 이 생명 과실은 뭐인고 하니 하나님과 연결되므로 그에게서 나오는 것이 생명 과실입니다.
하나님의 본성에서 나와서 우리에게, 그 본성에 피동되어 우리도 하나님의 그 속성과 꼭 같은 그 속성 행위를 할 수 있는, 전능에 피동되어 전능할 수 있는, 전지에 피동해서 전지할 수 있는, 얼마든지 원수를 사랑할 수 있는, 그 사랑에 피동되어서 사랑할 수 있는, 곧 그분과 연결되어서 그분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와 가지고 역사하는 걸 가리켜서 “생명나무의 과실이라” 이랬어.
생명나무라 말은 그분과 연결된 그 원인으로 인해서 우리에게 맺어지는 그런 것을 가리켜서 과실이라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낙원에 있다 말은 하나님이 계시는, 이 세상에 있는 낙원이오. 한편 강도에게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이래 말씀하신 이제 죽어서 영원한 무궁세계를 대기하고 있는 그 낙원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이 세상에 하나님과 동거 동행하는 그 낙원을 가리켜 말합니다.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낙원에 있다 그 말은 낙원은 하나님이 계시는 곳입니다. 그러면 삼위일체 하나님과 동거한다 말이오. 같이 거한다 말이오. 곧 골방을 말하는 것이라. 은밀한 곳을 말하는 것이요 영원한 완전한 피난처를 말하는 것이라.
“하나님과 동행하고” 동행하는 그곳에 네가 살게 되고, 하나님과 같이 동거하게 되고, 또 “낙원에 있는 생명 과실” 하나님과 연결됨으로의 그 연결된 결과로 인해서 너희에게 양식이 있다. 너희에게 힘을 돕는 것이 있다. “내 피와 살을 먹는 자는 나로 인하여 살리라” 뭐 피와 살을 먹는다는 것은 그것 그 물질을 먹는다는 그 말이 아니오. 인격의 양식이기 때문에 자꾸 이렇게 생각으로 먹고 영감으로 먹고 자꾸 이래 먹는 거라.
이래 가지고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겠다” 연결됨으로 인해서 그 연결됨을 인해서 본체인 그분에게 연결됨으로 인해서 본체의 힘이 와 가지고 네게 차차 그 힘이 자꾸 많아진다. 배고파서 이럴 때는 음식 먹으면 기운나고 자꾸 그 음식 자꾸 먹으면 자꾸 자라가지. 그러기 때문에 기독자의 구원은 처음 사랑 이것이 아니면 헛일입니다.
(87100250) 4
'이기는 그에게는'
처음 사랑을 버렸던 자가 이제는 처음 사랑의 행위를 가지는 자 그것을 가리켜서 이기는 자라 한 것입니다. 버린 사랑을 찾고 곧 버린 행위를 찾아라. 버린 행위 찾는 것이 이기는 것이요 버린 사랑 찾는 것이 이기는 것인데 버린 사랑이나 버린 행위나 같습니다. 그러면 밑에는 행위라고 말했고 위에는 사랑이라고 말했고, 그러면 사랑이라는 말이나 행위라 말이나 꼭 같은 말입니다.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리라'
하나님과 연결된 그 결과로 내게 대한 하나님의 뜻을 뿍뿍 행하며 온전히 이루는 그것을 가리켜서 “먹게 한다” 말했습니다. 내 피와 살을 먹는다는 것은 주님이 대속하신 그 대속의 공로 그 대속의 공로를 자기가 점점 연구하고 깨닫고 그 대속의 공로로 한 걸음씩 두 걸음씩 점점 더 뿍뿍 깊이 들어가고 넓게 퍼져 나가는 요것을 대속의 공로가 내게 와 가지고 역사해서 그 공로가 내게 충만히 역사해 이루어지는 것을 가리켜서 먹는다 그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한다. 하나님과 나와의 연결된 그 연결의 결과로 내게 대한 하나님의 뜻을 나는 이루고 온전히 행한다. 내게 대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입니까? 내게 분담된 내 구원과 내게 분담된 모든 사람의 구원 아닙니까? 그것이 우리를 보내신 이의 뜻 아닙니까? 당신이 이 세상에 나를 두셔서 ‘이것 저것 하고 오라’ 이랬는데 그분이 맡겨 주신 하나님의 뜻, 내게 대한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이루었다고 하면 그 이상 더 뭐 성공이 있습니까? 완전 아닙니까?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한다” 너는 생명나무 과실, 하나님과 연결된 결과 가지고 네게 해당된 모든 하나님의 뜻을, 너를 보내신 하나님의 뜻을, 네가 감당하고 가야 될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이루게 할 것이다 하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과 연결됨으로 하나님의 그 충만은 원동력이 되고 너는 거게 속해서 피동이 되어서 하나님의 충만에 피동되어서 네가 충만되어서 네게 해당된 구원, 네가 만 명을 구원하기로 됐으면 만 명 다 구원할 것이요, 억만 명 구원하기로 됐으면 억만 명 다 구원할 것이고, 열 명 구원하기로 됐으면 열 명을 구원할 것이요, 네 구원도 완전하고 네게 속한 본분과 의무와 책임과 모든 하나님의 요구와 명령을 다 완료하게 될 것이라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87100253) 4 / (87100401) 4
'이기는 그에게는'
“이기는 자에게는” 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성구를 보면 처음 사랑과 처음 행위를 제가 그저 버리고 싶다고 해서 버린 것이 아니고 버리게 하려고 하는 모든 그 대적들과 환경이 있어서 그것을 못 견디고 못 이겨서 처음 사랑과 처음 행위를 버렸다 하는 것을 여게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87100402)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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