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요한 복음 14장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실 때에 모든 문도들과 제자들이 크게 근심을 하였습니다. 근심한 것은 그들은 예수님이 보시는 그 광대함을 보지 못한 연고요, 그들은 다만 이 세상이라는 그 한계 안에서만 그것을 초월한 그 관찰이 없었던 연고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또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가 가서 너희의 있을 곳을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들을 나 있는 곳으로 데리고 가겠다.' 아버지의 집에는 거할 곳이 심히 많다' 말은 심히 좋다. '너희들은 이 세상을 보고서 못 잊어서 이렇게 말하지만 아버지의 집은 이 세상과 비교할수 없는 모든 면이 비교 못 하는 아주 고차원의 그런 나라이다. 그 나라에는 죽음도 없고 슬픔도 없고 병드는 것도 없고 곡하는 것도 없고 원망과 시비와 미워하는 것도 없고 시기도 질투도 없고 모든 죄악이라 하는 것이 하나도 없는 참 깨끗한 성경의 진리의 나라요 영생의 생명으로 사랑만이 충만한 그 나라다. 그 나라가 만일 없다고 하면 너희들에게 내가 세상에서 무엇을 주었을런지 모른다. 엿새 동안에 모든 것을 다 만드신 주님께서 생명을 버리기까지 이렇게 사랑하시는 우리에게 대해서 세상으로 준다면 세상에 무엇을 줄런지 너희들에게 필요한 대로 세상을 다 주고 요구대로 다 줄 것이다. 그러나 이 세상은 다 한계되어 있는 세상이기 때문에 내가 세상을 주지 안하고 내가 가는 것이니 이 가는 것을 너희들이 잘 생각하면 알 것이다. 그렇게 말씀으로 위로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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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는 요 말씀 한 마디에서라도 우리는 회개를 합시다. 이 말씀에서 '아. 무슨 근심을 하지 마느냐?' 근심은 두 가지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있는 근심을 위로 오는 위에 하늘에 속한 근심이라고 말하고, 인간 지식대로 되는 근심을 가리 켜서 땅에 속한 근심이라 말했습니다. 여게 말씀은 땅에 속한 근심을 다 버리라 말입니다. 땅에 속한 근심을 버리라 하늘에 속한 근심을 가지라 말했습니다.
우리는.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땅에 속한 근심은 버립시다. 요것을 우리가 어떻게 하든지. 이제 모든 것 다 있는 근심 다 버리고 나면 주님이 또 땅에 있는 새 근심을 줄 것입니다. 그것 또 버리십시오. 새 근심. 물질에 대한 근심을 버리고 나니까 나중에는 가족에 대한 근심이 나오고. 가족에 대한 근심을 다 버리고 나니까 자기 가까운 몸에 대한 근심이 나오고. 몸에 대한 근심을 다 버리고 나니까 생명에 대한 근심이 나오고 생명에 대한 근심을 버리고 나니까 그 다음에는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기만 원한다, 내 모든 것은 주님에게 다 맡겼기 때문에 내게 대한 것은 털끝만한 것도 내가 근심 걱정하는 것이 이게 죄인 것을 깨닫기 때문에. 내가 내게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염려가 되는 것도 죄. 내 주장도 죄, 나 할 것은 그분 믿을 것 그분에게 복종할 것이 두 가지 외에는 나 할 것이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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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하나님을 믿으니'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 것을 성경이 가르쳐 주시는 대로 지식하고 하나님에게 대한 지식이 발라야 됩니다. 하나님에게 대한 지식이 바르지 못하면 모든 것이 헛일입니다. 하나님에게 대한 지식을 성경이 말씀하는 대로 그대로 내가 하나님을 지식하는 것이 믿는 것이오. 그러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며 어떻게 하신다는 것을 우리가 바로 알면 거게서 올바른 행위가 필연적으로 나오게 됩니다. '하나님을 믿으니' 이렇게 하나님은 보니까 좋고 참 그분 한 분이면 다 되겠는데 다리가 있어야 건너가지? 다리가 없으니까 건너가지 못해. 하나님에게 우리가 나아가 건너가지를 못해요. 이런데 '또 나를 믿으라' 그러면, 예수님은 우리의 중보자로서 하나님과 우리와의 연결 될 수 없는 그 절단되어 있는 그 점을 이어 주는 중보자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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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이 말씀은 모든 것을 잘못 보고, 잘못 듣고, 잘못 알고, 잘못 발동을 하지 말아라. 잘못 좋아하는 것도 헛일, 잘못 두려워하는 것도 헛일, 잘못 욕심내는 것도 헛일, 또 잘못 만족하는 것도 헛일, 잘못 안심도 헛일, 잘못 염려도 다 헛일입니다.
이래서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실 일을 앞두고서 지금 그들에게 말합니다. 너희들은 육안으로만 보고 내가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면 너희들은 이제 모든 게 다 끝장났고 다 헛일이다 그렇게 너희들이 껍데기로만 보고 듣고 알아서 너희들이 다 정상이 아닌 비정상의 그런 마음 움직임과 몸의 움직임을 하지 말아라 그말입니다.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너희들이 도성인신해서 신인양성일위로 나타나신 예수님은 보지마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은 너희들이 보지 못한다. 보이는 나보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더 확고하고 크시고 위에 계신다. 그러기 때문에 보이는 주님과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같이 보아라 하는 것으로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너희들은 육안으로 보이는 것만 위주를 하지마는 마음의 눈으로 보는 것이 육안의 눈으로 보는 것보다 좀 더 정확하고, 마음의 눈으로 보는 것보다 양심의 눈으로 보는 것이 더 정확하고, 양심의 눈으로 보는 것보다 성신의 감화 감동으로 보는 것이 정확해서 그것은 틀림이 없다 그것을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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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라는 것은 예수님을 말씀하신 것인데 나를 믿으니 하나님을 믿으라 이렇게 하지 안하고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이는 나라고 하는 이 주님은 제자들이 보고 있고 다 믿고 의지하고 정도 들었고 또 든든하고 이렇게 하고 있지마는 주님보다 더 크신 아버지는 그들이 보지를 못합니다. 이러기 때문에 주님이 말씀하신 것은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이렇게, 하나님은 곧 아버지인데. “하나님을 믿으니 나를 믿으라” 보이는 나보다 하나님은 더 크시다.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을 먼저 말했습니다.
이러니까 제자들은 나만 너희들이 믿는데, 나만 믿는데 나 믿는 것보다 아버지를 믿으라. 하나님을 믿으라. 나보다 하나님은 더 크시다. 크시다 말은 성부와 성자와 대소의 크고 작은 무슨 차이가 있다는 말이 아니고 예수님은 인성을 가졌기 때문에 신인양성일위가 된 이것으로 사람됨을 인해서 이제 신성으로만 계시는 하나님과 차이 있는 것을 말합니다.
이래서 인성 가져서 신인양성일위이신 주님은 신성으로 말하면 완전한 하나님이시요 인성으로 말하면 완전한 사람이지마는 신인양성일위가 된 이후에는 언제든지 하나님에게 피동이 되지 하나님에게 능동이 되지를 못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땅위에 오실 때도 그렇고, 오셔 가지고서 양성일위로 생애 하실 때도 그러하고, 또 양성일위로 부활하셔 가지고서 영원히 존재하실 때도 그러합니다. 언제든지 하나님에게 피동으로 이렇게 역사하시지 능동으로 역사하시지를 아니합니다. 능동으로 역사하시면 역리가 돼. 진리를 거스림이 되고 지위를 바로 지키는 일이 되지 않기 때문에 “그는 하나님의 본체시나 동등될 걸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같이 되었고 죽기까지 복종하였으니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심이라” 종의 형체를 가졌다고 이래 말씀했어. 동등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언제든지 그 피동으로 이렇게 삼으셨습니다.
이래서 빌립보 2장 9절 이하에는 보면 “죽기까지 복종하였음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에게 피동되는 예수님이시기 때문에, 아버지에게 피동되는 주님이시기 때문에 “이러므로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고 모든 하늘의 것과 땅의 것과 물 아래 있는 모든 것으로서 무릎을 그 아래 꿇게 하고 또 그를 주라고 시인해서 아버지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리게 했다” 이랬습니다.
이러니까 피동으로 성공하고 피동으로 존귀해지지 피동이 끝나 버리면 우리와 같이 범죄함이 되고야 마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신성은 변치 않지마는 인성은 변하기 때문에 실패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보이는 나만 너희들은 자꾸 상대하고 이 보이는 이 육안으로 보는 여게만 너희들이 갇혀 가지고 앉았는데 이 감옥에서 나오라, 흑암에서 나오라, 매인 데서 나오라. 흑암에서 나오고 매인 데서 나와야 되지 거게 붙들려 매여 가지고 있으면 항상 그것이 무형의 감옥 속에 들어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래서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이는 참 중요한 말씀입니다. 제자들은 주님은 믿고 하나님은 믿지 않는데 또 과거에는 그들은 하나님은 믿었지마는 주님은 믿지 않습니다. 이거 다 헛일입니다.
하나님 믿는다고, 지금도 여기 안 믿는 사람 뭐 공산주의자들은 하나님 그 존재를 부인하지마는 일반인들은 다 하나님 존재를 인정하려고 애를 씁니다. 하나님 존재를 인정하려고 애를 쓰나 주님을 믿지 안하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하나님 믿는다는 것이. 또 주님을 보이는 주님 이 보이는 주님만 그 제자들이 믿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지 안하면 그것도 헛일입니다.
*빌2:10~11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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