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와서
“찾은즉 어깨에 메고 집으로 목자가 돌아갔다” 찾아서 집으로 돌아가는 것은 우리가 범죄 가운데 있다가서 회개하고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가리켜서 집으로 돌아간다 말한 것입니다.
잃은 양이 목자 만나 가지고서 이제 집으로 돌아간다 하는 것은 우리가 범죄해서 하나님을 떠나서 멀리 떠났다가 이제는 하나님에게로 회개로 돌아가는 것을 가리켜서 비유한 것입니다.
그러면 돌아갈 때에는 제가 범죄할 때에는 저 혼자 탈선 행위로 하나님 떠나는 행위를 제가 했지마는 회개라 하는 것은 우리 인간이 스스로 하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회개하는 그것은 벌써 하나님께서 나를 찾아 오셔서 나를 붙들고 회개하도록 하시기 때문에 그 은혜로 우리가 회개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자기에게 잘못된 게 깨달아지고 ‘잘못된 행위를 이것을 고쳐야 되겠다’ 하면서 고치게 되는 그것은 벌써 주님이 나를 찾아 다니시다가 나를 만나서 나를 당신 품에 안으시고 당신 어깨에 메시고 지금 생명의 나라로 주님 계시는 곳으로 자꾸 이렇게 이끌고 가는 것입니다. 요것을 가리켜서 비유했습니다. 그러면 요거는 회개하는 걸음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범죄하는 것은 나 혼자 하나님을 떠나서 방종하는 행위고 회개하는 것은, 내가 회개하는 것은 내가 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이 나를 붙들고 회개 시켜서 내가 회개하는 것이니 회개를 하는 그것은 대주재이신 하나님의 품안에 안기고 어깨에 메여서 가는 걸음이라는 요것을 우리에게 똑똑히 가르쳤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회개하는 것은, 회개가 되는 것은 나 혼자 회개하는 것이 아니라 회개되는 그것은 하나님의 큰 은총을 입어 가지고 우리가 회개하게 되는 것입니다, 무엇이든지 잘못된 것을 고치게 되는 것은.
고치게 되는 것은 내 힘으로 고치는 게 아니라 목자되신 주님이 나를 찾아 헤매다가 나를 만나 가지고서 나를 붙들고 당신의 나라로 옮겨져 가는, 탈선됐던 데에서 본집으로 돌아가는 그것을, 정상으로 돌아가는 그것을 가리켜서 여게 “어깨에 메고 다시 양의 우리로 돌아간다” 그렇게 비유한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회개하는 것은 나 혼자 하는 것이 아니고 내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고 목자되신 주님의 이 은혜로 주님이 아듬고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회개하는 걸음은 지극히 크신 전지 전능의 주님의 품안에 안겨서 이 생명의 나라 하늘나라 주님의 세계로 점점 이 생명 세계 진리 세계로 옮겨져 가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이것을 굳게 잡고 우리가 잘못된 데에서 회개할 때에는 주님이 나를 붙드시고 나를 아듬고 어깨에 메시고 지금 나를 회개시켜 가고 있다 하는 요것을 굳게 잡아야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회개하는 걸음은, 회개하는 걸음은 담대해야 됩니다.
이 양이 목자를 떠나서 그렇게 탈선했을 때에는 가다가는 뭐 개울도 만났을 것이고 덤불도 만났을 것이고 이리도 만났어.
이리 만났으면 죽을 지경 지내서 참 안 잡아먹힌 게 다행이지 제가 죽을 어려움을 당했을 것이고 들강을 만났으면 제가 뭐 그 어린양 아무것도 모르는 것이 주 터러기는 양의 터러기는 부풀부풀하이 똑 솜뭉텅이 같습니다. 솜뭉텅이 같은 것이 양의 새끼인데 그게 들강 속에 들어가 놓으면 감겨 놓으면 못 나갑니다. 감겨 놓으면 터러기, 터러기 빠지면 가죽 다 벗겨져요. 그런 것이 양입니다. 이런데 들강 만났을 때에 제가 얼마나 곤고를 당했으며 개울을 만났을 때에 얼마나 곤고를 당했겠는가? 이러니까 그만 딱 배어 가지고 있어.
양이, 양을 목자가 아듬고 양의 우리로 돌아갈 때에 이 들강을 보고서는 양이 막 발동을 합니다, 과거 경험이 있기 때문에. ‘아이구, 이 들강에 이거 내가 지금 또 찢겨서 죽을 지경이었는데 또 이 들강으로 지금 간다. 들강 거석하겠다.’ 이러나 제가 목자를 떠나서 갈 때의 만난 들강은 자기가 찢기고 이렇게 어려웠지마는 목자에게 안기고 어깨에 메여서 가니까 들강이고 뭐 그런 것이 아무 상관이 없어.
저만 놀랬지 실상 닥치고 보니까 상관이 없어.
개울도 그렇게 저만 놀랬지마는 실은 목자의 어깨에 안겨서 개울을 건너는데 개울을 보기는 보고 저만 놀랬지 개울을 어째 건너가는지 그런 것이 상관이 없어.
이리가 와 가지고서 보이니까 막 발동을 치는데 발동치는 걸 목자가 볼 때에 ‘이 양이 이리 만나 가지고 욕을 봤구나’ 하는 것을 안다 그거요. 목자가 아듬고 가니까 이리 그까짓 게 무슨 상관이 있어? 근방에 오지도 않애. 보이기만 보이지 근방에 오지도 못한다 말이오.
그러니까 혼자 갈 때에는 이런 것들이 어려웠지마는 목자의 어깨에 안겨서 목자에게로 가까이 나아갈 때에, 우리로 나아갈 때에는 ‘주님을 떠날 때의 그 모든 어려움과 꼭 같은 사정 형편이 회개하고 주님 앞으로 돌아가는 데에는 아무 어려움이 없구나’ 하는 것을 이 양이 깨닫는 거와 같이 우리들도 요것을 가르친 것입니다.
(87051920)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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