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3:10
'세우기를 조심할지니라'
이런 말씀을 보면 그때에 구속받은 성도들의 영육의 그 본체는 다 구원 얻어서 새 하늘과 새 땅에 가는 것을 가리켜서 우리라고 말씀했고, 그다음에 '의의 거하는 바' 하는 이것은 곧 우리 성화구원에 있어서는 하나님의 뜻대로 행해진 그것만 성별되어서 불심판의 해를 받지 안하고서 그 나라에 새 하늘과 새 땅에 간다 하는 말씀으로 우리가 해석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또 다른 데도 보면 '이 터 위에 세우나 모두 다 조심해서 세워라' '조심해서 세워라' '그날에 그 공력을 시험할 터인데 불로 시험한다' 그래 놓고 건설 재료를 금과 은과 보석과 풀과 나무와 짚으로 이렇게 해서 탈 수 있는 것과 타지 안할 것을 가리켜서 말씀했는데 또 말씀의 불이라 하는 것을 또 성경에 말씀을 했습니다.
오늘 모든 성도들의 생애가 다만 불심판에 통과하나 통과 안 하나 그 불심판이 우리 눈에 보일 때에 이 우주 안에 있는 것은 불심판이지마는 우주 밖에 전체에게 있는 그 심판은 하나님의 공심판이다. 하나님의 공심판은 예수님의 대속으로 우리가 통과했지마는 공심판받은 자라 할지라도 네가 그리스도의 대속을 얼마나 믿고 얼마나 준행했느냐 하는, 구속받은 자들의 심판이 있으니 그것을 가리켜서 그리스도의 심판이라 말씀하셨다.
그러면 우리는 당신이 제사장 선지 왕이 되게 그 자본을 줬기 때문에 그 행위, 우리의 심은 것은, 우리가 짓는 것은 뭐 건설하느냐? 우리의 지식으로 건설하고 행위로 건설하고 우리 자체로 건설하는 이것이 다 세 가지다. 제사장 선지 왕의 그 재료요 자격이요 지식이요 행동이요 권위요 그 자체다.
* 벧후3:13 :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바
(988121760)
'내가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터를 닦아두매'
바울이 지혜로운 건축자같이 좋은 터를 이제 닦아 두었으니까 이 터 위에 건축하는 자가 건축을 하되 조심해서 건축하라, 그런데 이 터 외에 다른 터는 없다 그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세우나 그러나 각각 어떻게 그 위에 세우기를'
각각이라고 말하는 것은 중생된 모든 사람들을 가리켜서 말합니다. 중생된 모든 사람들이 그 터 위에 세우되 그 터 위에 세우는 것은 뭣을 세우는가? 자기를 건축하는 것을 가리켜서 말합니다.
'조심할지니라'
이러기 때문에 조심해서 해라. 조심이라 말은 붙들 조자 마음 심자, 마음을 붙드는 것을 가리켜 말합니다. 마음을 붙드니까 붙드는 자는 누구요? 마음을 붙든다 하니까 마음을 붙드는 주인이 있지 않소? 마음을 붙드는 주인이 누구입니까? 피와 성령과 진리로 중생된 사람이 우리 속사람이요 새사람이요 이것이 참사람입니다.
(88121430)
'은혜를 따라'
받은 지능의 말씀, 건축자도 지혜 많아야 대사를 성공할 수 있음과 같이 기독자도 지혜가 많아야 크게, 넓게, 높게 자기 구원 집을 지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지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바울은 참 완전한 지혜를 얻어 터를 닦고 두었으니 다른 터는 닦지도 못할 뿐 닦아서는 안됩니다. 모자란 줄 아는 분은 더하려고 하고, 더한 줄 아는 분은 감하려고 합니다. 가르치는 자를 멸시하고는 가르침 받지 못합니다. 교인 노릇과 제자 노릇할 줄 알아야 합니다. 성인이라야 능히 성인을 안다 함과 같이 내가 선생만큼 자라야 평한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큰 인물입니다. 큰 인물이 가르침과 큰 인물에게 배움은 같은 성경일지라도 큰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바울이 스데반 죽인 것은 양심 속인 자 행위가 아닙니다. (딤전1:12) 큰 사람이 되어 가르치면 참 좋겠습니다. 인생으로 인생 알기가 어려울 뿐 더욱이 자기 알기는 어려우면 그보다 자기가 배우려고 자기를 가르치려고 애쓰는 인물은 더욱 극히 귀합니다. 바울은 큰 사람입니다. 위인입니다. 그는 위인인 고로 잘못인 줄 알고는 양심과 전심전력을 기울여 힘씀으로 20년 좌우에 인생으로 될만한 절정에 도달하였다. 참 잘난 인물입니다. 자기 망하고 또 잘못인 줄 알고 틀린 줄 알고도 돌아서거나 고치지 않는 것은 못난 인물입니다. 자기 못 만들고 남만 가르치는 자는 저주받을 일입니다. 자기가 만들어지기 전에 가르치는 은사를 아니 주시는 것은 축복입니다.
자기를 알아 하나님 앞에서 고치는 자는 하나님이 떠나지 아니하시고 지키십니다. 사람이 몰라주어도 좋습니다. 일정때 경관이 예배당에 침입 못했다. 이와 같이 바울이 자기를 지혜롭다고 자랑같이 한 말은 교만이 아니라 필요한 고로 인식 아니하는 사람들에게 속지 않게 하기 위하여 자랑같은 말을 했습니다.
이유는 바울이 가르치는 지혜의 말씀을 지혜의 말씀으로 알아야 건축에 성공할 것인 고로 그러했다. 터는 신인양성일위 완전자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표본인 목표가 되었고, 예수 그리스도같이 신인양성일인격된 자를 만들 수 있는 전자료와 그 근거가 예수 그리스도의 설정으로 다 되었다는 것이요, 닦아 두었다 함은 예수 그리스도가 불완전하여 완전케 하셨다 함이고, 감추어 있는 복음을 계시하였고, 성령 은사도 전달하여 놓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복음에 전심전력만 기울여 믿고 지키면 건물된다. 참입니다. 건물은 영을 온전케 만든 것입니다.
삼각산 피골상접은 안 먹으면 마르고 먹으면 살 오른다. 보라. 네가 행하면 영이 살지고, 행치 아니하면 영이 마르는 것을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극단경 곧 자아와 거리 먼 하나님이 나타나실 때는 하나님을 알 자가 없다. 여기서는 원망하고 대립하게 된다. 이는 자기가 유치하여 하나님을 이해 못함입니다. 그러므로 큰 은혜에는 반역으로 시은하고 후에 회개로 노 풀어 드립니다.
그러므로 자기가 불완전하므로 하나님이 불완전 주로 인식됩니다. 그러므로 자기가 만들어짐에 따라 하나님의 완전이 점점 나타나고 이해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터는 예수 그리스도인데 닦아 둔다고 (잘 만들려는 것이라고) 한 것이니 바울의 신앙 기록입니다.
나를 만드는 것이 하나님을 아는 것이요, 보는 것이요, 가까이 가는 것이요, 배우는 것이요, 입는 것입니다. 바울 자기가 하나님 닮는 첫열매로 사울이 바울된 도리를 전하노니 헛수고 말고 일심정력 기울여 힘쓰라 함입니다.
(59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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