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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 사단의 회 곧 자칭 유대인이라 하나 그렇지 않고 거짓말 하는 자들 중에서 몇을 네게 주어 저희로 와서 네 발 앞에 절하게 하고 내가 너를 사랑하는 줄을 알게 하리라  
■ 성경:66요한계시록03:09
 

계3:9

'자칭 유대인이라 하나'
유대인이라 말은 하나님의 선민을 말합니다. 하나님이 택한 선민, 가릴 선자 백성 민자, 하나님이 가린 백성들을 선민이라, 지금으로 말하면 성도라 신자라 하는 말과 같은 말입니다.
따라서 자칭 믿는 사람이라 자칭 성도라 이렇게 말하나 실상은 그렇지 않고 거짓말 하는 자들이라. 그 위에 보면 그들은 다 사탄의 회들이라고 했습니다. '보라 내가 사단의 회 곧 자칭 유대인이라 하나' 교회는 제가 스스로 믿는 척 하고서 믿는다고 이렇게 자랑하고 남에게 믿는 것을 내보일려고 하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 실상은 그것이 유대인이 아니요 사탄의 회다, 성도가 아니고 마귀의 회다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유1:12에서는 이들을 가리켜 '너희 애찬의 암초'라고 했습니다. 애연이라 말은 사랑하는 잔치라 말인데 너희들이 하나님의 사랑의 영감과 진리의 양식을 나누고 있는 이 잔치, 지금 새벽기도 이런 것도 애연입니다. 하나님의 애연, 사랑 애자 잔지 연자, 유다서에 보면 애연이라 했는데 애연이라는 그 한자는 사랑 애자 잔치 연자입니다.

'네가 내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네가 내 인내의 말이라 말은 계속하는 말씀을 지켰다 그말입니다. 사람들이 말씀을 지키다가 그만 그것을 계속하지 안하고 시작은 잘하는데 그만 중단을 해 버립니다. 예수 믿는 것은 계속이 돼야 무슨 효력을 내는 것이지 한 시간 천사노릇은 다 할 수 있습니다. 일주간 천사노릇도 할 수가 있어. 계속이 돼져야 되는데 계속이 안 되고 지키다가 말고 지키다가 말고 이러기 때문에 헛일입니다.


'내가 또한 너를 지키어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시험이라 하는 것은 우리에게 모든 어려움 닥치는 것이 시험 아닙니까? 물질로 시험 오는 것도 있고, 또 사건으로 시험 오는 것도 있고, 또 가족으로 시험 오는 것도 있고, 뭐 감정면 시험, 이성면 시험, 명예면 시험, 자기의 사업면 시험, 자기가 또 출세할라 하는데 거기 방해되는 시험 명예적 시험 뭐 온갖 시험의 종류는 굉장히 많습니다. 시험이라 하는 것은 내가 견디기 어려운 그 모든 어려움을 가리켜서 시험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네가 내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네가 내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키어 시험의 때를 면케 하리라' 시험의 때를 면케 하리니 하는 말은 그런 시험의 때에 시험이 되지 안하고 그 시험이 없고 지나간다 말이오. 시험이 되지 안하고 시험이 지나가 버려요, 자기에게는. 이 말은 달리 말하면 네게 어려움이 없게 해 주겠다 말입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에 애로가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애로와 굴곡이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걸 애로와 굴곡을 가리켜서 시험이라 하는데 애로와 굴곡이 있을 때에 너에게 애로를 주고 굴곡을 주는 거기에 관련된 그 사람들이나 사건들이나 물건들이나 거기다가 책임을 전가시켜 가지고서 거기 대해서 원망이나 원수나 그 물건을 아주 멸시하고 포기하거나 그런 짓을 하지 마라.

만일 십 년 동안을 그랬으면 사람들이 놀랠 만치 그는 모든 질적으로나 양적으로나 다른 사람들에게 이해 받는 신임적으로나 인정적으로 굉장히 이는 그 가속도로 성장될 수 있는 것이 사람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뭐 힘만 쓰면 굉장히 영육이 다 존귀해질 수 있는, 소유도 존귀해질 수 있는 것인데 자꾸 힘을 쓰지 안하고 이 말씀을 계속 지키지 않기 때문에, 인내의 말씀이라 말은 한 말씀을 계속 지킨다는 말이 아니오. 우리 현실마다 하나님이 주시는 뜻이 있기 때문에 이 현실에도 하나님 말씀 찾아 가지고 고대로 하고 저 현실에도 그대로 하는 것입니다. 현실이라 하는 것은 날마다 자꾸 변해 나가는 것인데, 변해 나가는 것인데 그 현실 현실마다 거기 대한 하나님 뜻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찾아 가지고서 그와 같이 지키는 것입니다.

* 유1:12 : 애찬의 암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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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칭 유대인이라 하나'
또 말씀하시기를 “네가 너 있는 데에 그 유대인이라고, 내가 예수 잘 믿는 사람이라, 내가 정통파라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지마는 속지 말아라. 자칭 유대인이라고 하지마는 그들은 다 거짓말 하는 자들이라. 다 유대인이 아니다.” 그러면 예수 믿으면서 지금도 보면 ‘우리가 정통이라, 우리가 정통이라, 우리가 보수라.’ 뭐 보수라고 서로 보수라고 자랑하고 서로 정통이라고 자랑하는데, 보수라고 서로 자랑하고 정통이라고 서로 자랑하는데 그들은 다 ‘나는 보수파다, 나는 정통파다, 우리가 예수를 잘 믿는 파다.’ 이렇게 말해도 그것들은 다 거짓말쟁이다.
뭐이냐? 내 말을 배반치 아니하고 내 이름을 배반치 안한, 내 말을 배반치 안하고 지키고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고 지키고 있는 그것이 정통이지 그 무슨, 무슨 이 파가 정통파라 저 파가 정통파라 하는 그런 건 다 전부 거짓말쟁이라. 거짓말쟁이들이다. 파에 있지 않다. 파에 있지 안하고 그저 예수님의 말씀을 지키나 안 지키나, 또 예수님의 이름을 배반하나 안 하나 거기에 모든 것이 달려 있는 것이지 무슨 파라 무슨 파라 하는 그것은 그 파 가지고 말하는 건 다 거짓말쟁이다 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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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
다음에 기록한 사실에 대하여 주목하여 그것으로 한 증거와 또 참고를 삼고 그들의 하는 일에 유혹이나 위협을 당하지 말고 지혜와 담대를 가지라는 의미로 ‘보라‘하고 다음 사건을 말합니다.


‘사탄의 회 곧 자칭 유대인이라 하나 그렇지 않고‘
빌라델비아 교회에 두 파가 있어 올바르고 칭찬 받는 교우들의 반대자들이 있었습니다. 일곱 교회 중 라오디게아 교회 외에는 두 파로 나누이지 않은 교회는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나 다른 교회는 다 회개하라는 권고가 있습니다. 그러나 서머나 교회와 빌라델비아 교회 이 두 교회에 대립된 자들에게는 회개하라는 권고의 말씀이 없는 것이 기이합니다.

여기서 하나 생각되는 것은 두 파가 있는 중 회개하라는 권고가 있는 교회들은 옳은 편에 선 부분도 온전치를 못하였고 칭찬 받은 두 교회는 옳은 편에 선 부분은 인간으로는 왼전하다고 표시되었습니다. 이 점을 보아 두 교회는 택한 자라면 다 회개할 만한 빛을 보였으므로 반대편에는 회개할 희망자가 없는 듯 함이 보이고 4교회는 그 자체들의 증거 생활이 불충분하여 반대편 중에도 회개할 희망 있는 것으로 보여집니다.

그 이유는 회개하라는 권고가 있는 까닭입니다. 오늘도 우리 교회들이 주의할 것은 교회마다 하나되어 있으면 죽은 교회인 것이 분명하니 인본에서 전부가 돌아서야 하겠고 두 파가 생긴 교회는 진리 편에 선 자로 가질 주의는 4교회에 속했느냐 칭찬 받은 두 교회에 속했느냐의 문제입니다. 대적의 편에 선 자 중에 주님 보시기에 참 회개할 희망자 곧 택자가 하나도 없기까지 증인의 사명 생활이 완전하였다면 칭찬 받을 입장인  그대로 끝까지 계속하기를 힘써야 하겠고 만이 상대편에 유망자가 있다고 하면 회개에 대한 책임을 쌍방에서 져야합니다. 이 빌라델비아 교회의 대적 편을 ‘사탄의 회‘라고 명칭을 붙인 것은 순 사탄의 소속 불택자회라는 것입니다. 그들의 주의는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유대주의들입니다. (계2:9 해석 참조)

그들의 간판과 선전은 하나님의 백성이요 또 세계에 제일로 하나님을 바로 섬긴다는 말과 실 생각까지를 가지고 빌라델비아 교회를 반대하는 고로 가책 없이 그들의 양심대로 대적하면서 그것이 하나님 섬기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요16:1-4 참조) 그러므로 이를 가르쳐 자칭 유대인이라 함이라고 하였고 다음에 밝히기를 ‘그렇지 않고‘라는 증거를 하셨습니다.

교회의 양파와 노선이 생길 때에는 어느 것이 주님께 소속되었으며 옳은 편인지 (불완전하나 그 중에서 옳은 것) 생사의 문제이니 감정이나 이해나 고집 등을 벗어나 냉정한 비평으로 심사하여야 합니다. 하나님 편의 대립의 입장에 선 자로 가질 주의는 택한 자로 옮겨 서지 않을 때에는 일생의 수고가 헛되고 진리에 대적한 책임을 회개하여야 하는 일이 있습니다. 그 편도 진정 옳은 줄 알고 다 속아서 하는 일일 것을 이렇게 예언하였으니 신중한 비판을 가하여야 합니다.


‘거짓말하는 자들 중에서 몇을 네게 주어 저희로 와서 네 발 앞에 절하게 하고‘
무흠한 빌라델비아 교회의 대적들은 이차로 칭호하기를 거짓말하는 자라고 하였습니다. 거짓말하는 자라는 표시는 사탄의 소속이라 함이오. 혈통 오늘 종교의식으로 아브라함의 자손 곧 예수님의 신자라고 생각하고 아브라함의 신앙과 예수님의 주의를 그대로 가진 것으로만 참 기독자 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는 자들이 거짓말하는 자입니다. (끝까지 이러한 주장을 가진 자)

그 중에 ‘몇을 네게 준다‘ 해석이 각이합니다. 박윤선 목사님은 ‘유대인들 중 몇이 회개하고 복음을 믿을 것을 예언한 듯하나‘라고 하였고 혹설에는 끝날 심판 때에 유대인들이 성도들 앞에 굴복하고 심판 받을 것을 가르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9절 초두에 ‘보라 사탄의 회 또 거짓말하는 자들 중에서 몇을 네게 준다‘고 하였고 이 교회는 회개하라는 권고가 없는 것을 보아 굴복하는 몇 사람은 실지 유대인도 그 시에 있으려니와 지상 전 교회에 이런 류가 있을 것을 말함인데 이들은 택자로 회개하는 것이 아니고 그들의 비행과 자연 보응으로 굴복하기 싫은 부득이의 자연 굴복을 하게되는 것을 말함이니 감화의 회개가 아닌 것입니다. 오늘도 참 진리의 대적들은 하나님께서 직접 그들을 쳐서 과격할 때는 꺽는 일이 있는 것을 종종 본다. 과연 몇을 함같이 진리의 대적들이 세상에서 꺽어지는 양패가 되는 일은 희소하게 보이고 육적 승세가 많은 것을 말함이니 역사와 신앙 경험에 그러합니다.

또 이들이 택자로 회개하고 돌아옴이 아닌 것이 분명함은 거짓말하는 자들 중 몇이라고 하고 굴복만 말하고 회개라는 말은 하지 아니하였으며 또 전체로도 회개하라는 허락을 주신 일이 없고 또 와서 ‘발 앞에 절하게‘한다고 하였으니 계22:8에 요한이 천사에게 ‘절하는 것‘을 동등 형제니 불가하다고 엄금하고 주께만 경배하라 하였으며 마4:10에도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고 주님은 말씀하였고 행27:24에 선객(船客)들을 네게 ‘주셨다‘ 하였으나 절하라 말은 없습니다. 사60:14, 45:14 절하리라 한 그 대상은 주님을 가르쳤고 49:23에 절하는 자들은 이방 권세자들이 진리대로의 사람들을 존경하리라 하는 것을 의미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절하는 자들은 불택자들의 불의 세력이 가끔 꺽어짐과 또 회개하는 듯이 돌아와 아첨하는 자중에도 이종(異種)인 불택자가 있으매 일층 주의를 가지라는 그런 뜻과 또 주께서 굴복을 다 시킬 수 있으나 필요한 정도는 꺽고 있어 유익할 정도는 두시는 전지의 지혜로 절대 주권적으로 처리하나니 빌라델비아 교회야 두려워말고 굳게 종전같이 지키라 하신 주의를 준 것입니다.


‘내가 너를 사랑하는 줄을 알게 하리라‘
‘내가 너를 사랑하는 줄을 알게 하리라‘한 2인칭은 친밀을 의미하고 또 미래사로 되어 있음은 과거는 많이 훼방을 받고 참은 너희에게 앞으로 천하가 만나는 큰 시험을 승리케 하여 여간한 힘으로 주의 이름을 믿는 일과 말씀 파수에 충성하는 너를 내가 참 사랑하는 것으로 증거하여 보이겠다는 위로와 약속입니다.

‘알게 하리라‘ 하시는 자칭 유대인들로 확인하게 하리라 하심이니 이는 시험을 일으켜 그들이 죽쩡이 인 것과 너희가 알곡인 것을 그들 앞에 나타내어 입을 벌리지 못하고 굴복하게 하리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들은 이 점에 대하여 경외하며 근신할 것은 주님 편에선 옳은 일에 대적하는 입장에 서면 주님께 복수 받을 행위이니 두렵고 스스로 된 줄 알고 태만 하다가 시험 때에 실패할까 두렵습니다.

(57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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