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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기울고 그림자가 갈 때에 내가 몰약산과 유향의 작은 산으로 가리라  
■ 성경:22아가04:06
 

'날이 기울고'
6절은 차차 시대가 어두워져가고 또 진가를 구별하지 못하게 되는 이 혼탁한 어두운 시대가 올 때에는 우리가 어디로 가야 주님을 만날 수 있을까 하는 것을 말씀했습니다. 날이 기울어진다 말은 해가 이제 진다 말입니다. 날이 기울어지고 차차 햇빛이 없어지니까 이제는 어두워져 간다 말이지요.

그러면 해는 왜 기울어지는가? 계9:2에 무저갱에서 나오는 연기 때문에 햇빛이 가리워서 안 보인다 이랬습니다. 무저갱에서 나오는 연기는 인간들 끝없는 욕심에서 나오는 그 모든 악의 세력으로 인해서 진리가 가리워지는 것을 말합니다.


'그림자가 갈 때에'
햇빛이 있을 때에는 그림자가 있고 또 빛이 있어 음지 양지가 있지만 차차 해가 넘어가게 되면 이제 그림자가 없습니다. 그림자가 없어지는 거는 밝아진다 말이 아니고 빛이 없으면 그림자가 없어집니다.

그러면, 날이 기울고 그림자가 가는 때가 개인으로 그럴 때도 있고 가정으로 그럴 때도 있고 또 어떤 단체로 그럴 때도 있습니다. 정권 아래에서 그럴 수도 있고 또 다른 정권 아래에는 괜찮지만 어느 한 정권 아래에서 그럴 수가 있고, 또 지역적으로 동양은 괜찮은데 서양이 그럴 때도 있고 서양은 괜찮은데 동양이 그럴 때도 있습니다. 이렇게 그저 넓고 좁고 크고 작은 차이만 있지 그렇게 날이 기울고 그림자가 갈 때가 그렇게 여러 층하로 종류로 있다는 것을 여기 말합니다.

이와같이 이 교회라는 것은 혹 개인으로 해가 기울고 그림자가 갈 때도 있고 또 가정적으로 그럴 때도 있고 또 한 교회적으로 그럴 때도 있고 한 민족적으로 국가적으로 또 지역적으로 제일 크게는 시대적으로 이렇게 어두워지고 빛이 없으니까 그림자가 표가 나지 않는 거와 마찬가지로 옳고 그른 그런 구별성이 없어지는 때를 말합니다.

그럴 때는 주님을 만나기가 어려운 때입니다. 사람이 주님을 만나고 싶다 말은 빛을 만나고 싶다는 말이요 거기에 진리 곧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혼탁해 놓으니까 가르쳐 주는 사람도 없고 다 모두 다 세상에게 녹아서 그만 다 이런데, 그러면 그때에 영감을 만나려 해도 영감도 하나님의 뜻을 찾으려고 해도 또 올바른 신앙을 찾으려고 해도 찾기가 어려운 때입니다.


'내가'
나라는 것은 주님이 당신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산'
산은 밑 발치는 너르지마는 차차 올라갈수록 좁아지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신앙이라 하는 것은 자꾸 이렇게 깨끗해져 가면 동무 숫자가, 동행 숫자가 줄어집니다. 그러면 거기서 모든 불의한 것들로 더불어 한테 뭉쳐 있던 불의한 것들이 차차차차 떨어지니까 점점 외로와지고 좁아지게 됩니다. 열이 있다가 하나가 썩어질 때에 그때 같이 따라 썩는 자, 다섯이 썩어질 때에 같이 썩는 자, 그러면 아홉이 썩어질 때 같이 썩는 자, 이렇게 차차차차 썩는 것은 많아지고 썩지 않는 그 숫자는 적어지는 것을 가리켜서 산이라 이렇게 말했습니다.


'몰약 산과 유향의 작은 산'
세상이 어두워지는 이런 때에 주님 만나는데 어떻게 만나느냐? 몰약산과 유향의 작은 산에서 만난다고 했으니 주님이 가니까 거기서 만날 수 있습니다. 몰약이라는 말은 방부제를 말합니다, 썩지 못하게 하는 여기 농약 같은 이런 것이 다 방부제 약입니다. 그러면 주님이 방부산으로 가겠다는 말입니다.


'산'
산은 올라가야 되고 또 올라갈수록 좁아집니다. 처음에는 백 명이 한 마음 한 뜻으로 시작했다가 차차차차 신앙 걸음을 걸어 올라가다 보면, 이 몰약산을 올라갈라 하면 사람이 다 떨어져 버리고 나중에는 몇 사람 안 올라가요.

이렇게 어두워질 때에 다 어두워지니까 '세상이 다 그런데 뭐 나 혼자 그럴 게 뭐 있나?' 이래서 그만 '다 그라는데' 하고서 자기도 속화되고 세상화 되기 쉬운데 주님은 거기 계시지 안하고 몰약산에 있다, 썩지 않는 그 언덕에 계신다, 썩지 안한 그 만당에 계신다는 말입니다. 썩는다 말은 죄짓는다 말이오. 처음에는 나도 안 썩겠다 안 썩겠다 이렇게 한 사람들이 많았지만 차차차차 어려움이 오니까 다 모두 다 주저앉아 버리고 주저앉아 버리고 해서 나중에 가서는 아주 숫자가 적어집니다. 그러기에 신앙 걸음은 자꾸 갈수록이 잘 믿어 갈수록 고독해지는 게 신앙이오. 또 신앙 걸음은 갈수록 자꾸 올라가는 게 신앙 생활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세상이 해가 기울고 그림자가 갈 때에 그때에 주님 만나는 길은 썩지 않는 봉우리에서 주님 만날 수 있다. 그러면 방부의 산에서 주님 만날 수 있다 하는 요것을 기억하고 앞으로 점점 이 세상이 어두워지고 환난이 심해서 교회가 자꾸 속화될 때 그때에 주님 만나는 곳은 썩지 않는 봉우리에서 주님 만나는 요것만 기억하십시오. 썩지 않는 봉우리.


'유향의 작은 산'
기도의 산을 가리켜 말하는 것인데 그럴 때에는 유향의 큰 산이 아니고 작은 산이라고 했습니다. 지금 평안할 때는 기도하는 사람들이 뭐 뭉텅뭉텅 몰려다니며 기도하지만 그럴 때는 기도하는 사람을 보지를 못해요. 그럴 때에는 기도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어려울 그때는 기도하는 사람들이 적어요. '유향의 작은 산으로 가라' 그러면 뚤뚤 뭉쳐서 기도하는 것이 아니고 그때는 외롭게 고독하게 기도하는 그 봉우리에 가서 주님 만나라.

그러면 이렇게 해가 기울고 그림자가 갈 때에는 주님 만날 곳은 방부의 산과 외롭게 외롭게 조용히 고요히 외롭게 기도하는 그 산에서 주님을 만난다, 그 봉우리에서 주님 만난다, 외롭게 기도하는 그 기도의 절정, 기도의 만당에서, 기도의 절정에서 주님 만나게 된다 하는 말씀입니다.

(88110450/0453)


'날이 기울고 그림자가 갈 때에'
날이 기운다 말은 날이 이제 해가 넘어간다 말입니다. 해가 넘어가고, 해가 넘어가면 그림자가 없어집니다. 해가 넘어가고 그림자가 없을 그때에 내가 몰약산과 유향의 작은 산에 거게 가서 성도를 기다리겠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날이 기운 것은 하나님의 성령의 은사가 가리워지고 또 진리가 가리워져서 마치 해가 없으면 음지인지 양지인지 분별 못 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진리와 영감이 이렇게 가리워지면 죄인지 의인지 모르는 이런 혼탁 세계가 되는 것을 가리켜서 말씀합니다.

왜 이 해가 가리워져서 해가 지는가? 해가 지는 것은 계9:2에 보면 사람들 속에 끝없는 욕심이 자꾸만 일어나서 전부 세상은 인간 욕심 세상이 되고 옳고 바르고 맑은 것이 하나도 없고 전부 인간 욕심으로, 이 사람 욕심 저 사람 욕심 욕심으로만 가득 차서 제 욕심에게 자기를 비추어 살릴 수 있는 진리와 영감이 가리워져 버리고 또 다른 사람들의 욕심 행위로 인해서 진리와 영감이 가리워져서 진리와 영감을 찾아보지 못할 만큼 이렇게 진리와 영감이 가리워지고 인간 욕심만 마치 옹기점에서 연기 올라오듯이 풍풍 올라와 가지고 그 심령을 어둡게 해서 영감과 진리의 빛을 받지 못할 것을 말씀을 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지만 자타의 욕심으로 삽니다. 자타의 그 끝없는 욕심. 내 욕심 이루어야 하지 다른 사람 욕심 또 이루도록 협조해 줘야 됩니다. 말세가 되면 전부 욕심 놀음입니다. 이렇게 욕심 놀음이 돼 가지고 진리의 빛을 다 잊어버리기 때문에 음지 양지를 모르고 전부 새카매지는 거와 같이 빛이 어두워지니까 이제는 처음에는 죄니 의니 뭐 저거는 비성경적이니 성경적이니 이렇게 말 있지만 이제 그런 것이 없어서 음지가 양지가 구별이 없이 그만 전부가 다 새카매지는 것을 가리켜 말합니다.

지금도 뭐 교회는 많이 서고 믿는 걸 많이 말하지마는 실은 한 가지만 가지고라도 저 진영이 인본주의냐 신본주의냐, 저 교회가 인본주의냐 신본주의냐, 저 사람이 하고 있는 것이 인본주의냐 신본주의냐, 저게 세상주의냐 천국주의냐, 참말로 십자가의 운동이냐 십자가의 원수인 운동이냐? 이것을 도무지 분별하지 못할 만치 대단히 혼란되어 가고 있습니다. 그러면, 지금이 바로 날이 기울고 그림자가 갈 때입니다.

그러면 지금은 어디서 주님을 만날 것인가? 몰약산과 유향의 작은 산으로 주님이 간다 했습니다. 그러니까 몰약산에 가서 만날 수 있고 유향의 작은 산에 만날 수 있다.

몰약산이라는 말의 몰약은 방부제 약을 말합니다, 방부제 약. 그러니까 이렇게 온 세상이 다 의고 죄고 그런 것이 없고 뭐 다 혼탁해서 의니 죄니 말만 해도 듣기 싫어하고 또 하나님의 뜻이니 사람 뜻이니 이렇게 구별만 할라 해도 모든 사람들이 다 징그럽게 생각하고 싫어하여 도무지 진리를 만날 수 없고 영감을 만날 수 없는 이런 어두움의 때가 될 때에 그때에는 주님을 어데 가서 만나겠느냐? 그때 주님 만나는 그 길을 가르쳐 줍니다. 몰약산에 가 있겠다. 몰약산에 가야 주님 만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모두 다 진리도 없지 영감도 없지 뭐 이 사람도 저 사람도 전부 뭐 세상주의고 자기 욕심주의이라서 엡5:16말씀처럼 때가 악합니다. 때가 악하다 말은 주위 환경 전부가 다 피조물 중심 자기 중심으로 되어 있는 세상이기 때문에 아주 조심하지 안하면 다 거기에 삼키기 쉽다고 했는데 그럴 때는 몰약산으로 가라. 그렇게 주위 환경이 다 부패해질 때 그때에 네가 방부제 산으로 가라 그말이요, 방부제 산으로 가라. 몰약은 방부제, 썩는 것을 썩지 못하게 하는 방부제인데 방부제 산으로 가라 하는 말입니다.

방부제 산으로 가라 말이 무슨 말인가? 온 세상이 다 썩어도 너는 썩지 말고 참고 견뎌라. 뭐 장로도 썩고 목사도 썩고 또 집사도 권사도 반사도 부장도 다 썩고 나이 많은 사람도 썩고 젊은 사람도 썩고 다 이렇게 세상이 썩어져 가니까 너도 다 세상이 이런데 뭐 나 혼자 이렇게 이러니 저러니 뺄쭉나게 말할 게 뭐 있느냐? 이렇게 뭐 독선으로 이렇게 할 게 뭐 있느냐? 그래 가지고 네가 멸망하기 쉬우니까, 몰약산으로 가라. 그럴 때에 너는 썩지 말아라. 썩지 않는 데, 그때 썩지 않는 거기에 주님이 계시기 때문에 썩지 않는 그 사람이 주님을 만나게 됩니다.

사람이 안 썩는 것도 처음에 접할 때는 다 안 썩습니다. 처음에 접할 때는 안 썩지마는 차차 차차 접하면 썩여져 가요. 그게 뭐이냐? 그런 말이 있어요. 십벌지목이라, 나무를 열 번 쪼아서 안 넘어갈 나무가 없다. 이래 가지고 자꾸 갈수록 썩어져 가는데 몰약산이라, 방부산이라, 썩는 것을 막는 산이라. 그러면 썩지 않는 산이라, 썩지 않는 절정으로 점점 안 썩고 안 썩고 나가니까 그곳은 평면이 아니고 자꾸 만당이 생겨집니다. 그러면 차차 좁아지고 외로와집니다. 이제 동무가 적어집니다. 또 거기는 바람이 셉니다. 우리가 성결을 지킬라 할 때에 외로와지고 거기는 힘이 들어요. 올라가기 때문에 힘이 들고 또 거기는 좁습니다. 자꾸 좁아져요.

또, 유향의 작은 산으로 가라 이말은 유향은 기도를 가리켜서 말하는데 지금은 뭐 우리 서부교회가 양산동으로 기도 간다며 몇십 명씩 또 삼사백 명씩도 가는데, 지금은 그렇지만 이제 해가 기울고 그림자가 가면 다 썩어지고 기도하는 사람들이 없어집니다. 그럴 때에 유향의 작은 산으로 가라. 네가 모든 사람 움직이는 이런 큰 단체 운동에 거게 네가 휩쓸리지 말고 그저 너 혼자 어느 한 골방에서 한 구석에서 조용 조용히 은밀한 가운데 계시는 하나님에게 기도하는 사람이 되라. 그러면 거기서 만날 것이다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전적으로 부패해졌을 때에 요1:48의 그때 나다나엘은 고요히 무화과나무 밑에 가 가지고서 혼자 기도했습니다. 이랬는데 기도하니까 그는 썩어지지 안하고 모든 이스라엘이 패망의 길을 걸어가는 것을 답답하게 여기고, 뭐 이라다가 잘못하면 '다 이런데 나 혼자 뭐 이 기도해 봤자 무슨 소용이 있느냐?' 이렇게 낙망하기 쉬운데 그래도 나다나엘은 꼭 계속해서 기도했습니다. 베드로의 동생 안드레가 나다나엘을 예수님에게 데리고 왔는데 메시야를 보라 해서 나다나엘이 따라오니까 예수님께서 이는 참 간사함이 없는 이스라엘 백성이다. 간사함이 없어. 그는 참 원리적으로 자주 대격적으로 그 신앙 생활하는 굳건한 사람이다 이라니까 나다나엘이 깜짝 놀래 가지고 '선생님 나를 언제 봐서 아십니까?' '무화과나무 밑에서 내가 봤다. 네가 무화과나무 밑에서 나에게 기도할 때에 내가 너의 기도를 듣고 거게서 내가 너를 만났다.' 그렇게 주님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 요1:48 : 무화과나무 아래 있을 때에 보았노라

(881110233/0340)


'날이 기울고 그림자가 갈 때에'
이 말씀은 '어두워지면'하는 말씀인데, '죄악이 관영 하여 교회가 부패하여지고, 사회가 부패하여 지고, 시대가 부패하여 질 때에' 하는 말씀인 것입니다. 이렇게 '날이 기울고 그림자가 갈 때에'주님을 만나려고 하면 어디에 가야 합니까?


'내가 몰약산과 유향의 작은 산으로 가리라'
6절 중간에 말씀하신 대로 '몰약산과 유향 산으로'가야 합니다. 주님이 그곳으로 가시기 때문에 그곳에 가야 주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몰약 산에 가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인가? '몰약'은 썩는 것을 방지하는 방부제인데 '몰약 산'이라고 함은 썩는 것을 방비하는 몰약이 있는 산을 말하는 것으로서 골고다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골고다에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우리의 썩는 것을 방비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몰약 산으로 가는 것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심과 같이 우리도 우리의 생명을 제물로 희생하여 우리 자신과 이웃의 썩는 것을 방지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더러워지고 썩는 것은 어떤 것인가? 예수님의 대속을 벗는 것입니다. 사죄를 벗고 칭의를 벗고 새 생명을 벗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기의 소유와 몸과 생명을 제물로 내어놓고 자기와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사죄와 칭의와 새 생명을 벗지 아니하도록 노력하는 이 사람이 몰약 산으로 가는 사람이요. 예수님은 이 사람을 찾으시고 만나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유향 산으로 가는 것은 어떤 것인가? '유향'은 기도를 말하는데, 유향 산은 기도의 동산으로서 겟세마네 동산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유향 산에 가는 것은 기도의 제물이 되는 것을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자신과 이웃의 사죄, 칭의, 새 생명 문제를 위해서 기도의 제물이 되는 것인데, 주님은 이런 사람을 찾으시고 만나 주십니다.

(주해공과)


'날이 기울고 그림자가 갈 때에 내가 몰약산과 유향의 작은 산으로 가리라'
신구약 성경 말씀 외에 모든 지식은 다 뱀의 지식이요 다 불법입니다. 불법이기 때문에 이 불법은 다 정죄만 하고 저주만 하는 것이지 이것이 사람을 구출하는 지식은 인간 지식에는 털끝만치도 없습니다. 요거 알아야 됩니다. 이거 혼돈돼 가지고 인간 지식에도 생명 있다 없다 벙벙하이 널럴하이 이래 가지고서 뭐 팔방 미인으로 하는 그거 다 신앙적으로 다 정조 판 자요. 그런 자들은 환난 오면 다 팝니다. 왜정 말년에도 무엇 때문에 신사 참배를 다 해서 정조를 팔았습니까? 이러기 때문에, 오늘은 천주교에 미사 드린다는 것은 우상에게 절하는 것인데, 그것도 양심이 썩었기 때문에, 해가 기울어지고 그림자가 갔으니까 검은 거 흰 게 꼭 같애. 아무 음지와 양지, 그늘과 볕이 없어. 그게 말세입니다. 해가 기울고 그림자가 갈 때에 내가 몰약산과 유향의 작은 산으로 가리라(아4:6)네가 세상이 아무리 썩어도 너는 썩지 않는 그 봉우리로 너는 하나님과 연결한 그 기도의 봉우리에서 너는 살아라 하는 말입니다.

이러니까, 현저히 천주교는 이렇게 하고 있어서 불교와 꼭 같이 돼 가지고 있지마는 이걸 기독교라 '기독교가 하나라. 이러니까 요거 구별하면 안 된다' 이것은 선교의 발단은 이래야 됩니다. 알겠습니까? 선교의 발단은 이러나 속에 들어가면. 그렇지마는 속에 들어와 가지고는 자꾸 지금 구별해서 나가야 되는데, 이미 구별해 가지고 되어서. 아닌 것을 구별하고 구별해서 아니라는 것으로 이래 가지고 점점 구별돼 나가는 이것이 다시 뒤로 후퇴해 가지고서 지금 범벅 타령으로 나가는 것이니까 완전히 부패한 것입니다. 요것을 보는 눈이 있어야 됩니다.

(85041953) 9


'날이 기울고 그림자가 갈 때에'
이러나 요새는 인본주의 신본주의 말을 일 년 내내 가도 한 마디도 듣지 못하기 쉽습니다. 이게 없어졌습니다. 인본주의니 신본주의니 뭐 도덕주의니 정치주의니 윤리주의니 사회주의니 또 세상주의니 지상 현실주의니 하는 이런 것이 그만 다 없어져 버렸습니다. 없어져서 참, 없어졌으니까, 아가서에 말하기를 '해가 기울고 그림자가 갈 때에' 해가 기울어지니까 그림자가 없어집니다. 전부 해가 있을 때에 뭐 음지 양지가 있고 또 어두운 거 밝은 것이 있지만 해가 딱 넘어가고 나니까 전부 어두움뿐이니까 네나 내나 꼭 같은데, 그래서 그런 암흑 시대가 오는 걸 가리켜서 해가 기울고 그림자가 갈 때에 그랬습니다.

'내가 몰약산과 유향의 작은 산으로 가리라'
그럴 때는 유향의 작은 산과 몰약산으로 가라 이랬는데 유향의 작은 산이라 말은 그때는 단체 행동은 안 되니까 아예 개인 행동으로 네가, 나다나엘이 무화과 나무 밑에서 그 암흑 시대에 주님을 찾고 진실히 교제했기 때문에 나다나엘이 가니까 '이는 참 이스라엘 백성이라. 간교함이 없다, 간사함이 없다.' 이랄 때에 '나를 어찌 알았습니까?' '네가 무화과나무 밑에서 나한테 기도할 때 내가 보지 안했느냐?' 이렇게 말했어.

그와 마찬가지로 이렇게 모든 걸 구별을 했지만 지금은 그만 깜깜하게 어두운 때가 돼 놔서 그런 소리 다 없습니다. 누가 인본주의니 신본주의를 말하면 막 목사들이 지금 소리 없는 총이 있으면 저놈 놔 죽여라 이랄 것이오. 소리 없는 총이 있으면 놔 죽이라 이랄 것이오. 왜? 인본주의니 신본주의 이래 쌓아니까, 신본주의는 그래 안 합니다. 인본주의가 제 인본주의가 드러날 터이니까 저놈 때문에 내가 목회 못 하겠다 해 가지고 인본주의가 총 놔 죽이라고 할 것이오.

도덕주의니 정치주의니 유물주의니 세상주의니 지상 현실주의니 이래 쌓으면 환하게 자기가 들나 버리니까.

(86050621 집회) 5


'날이 기울고 그림자가 갈 때에'
하나님의 교회는 보이지 않는 지금 다 까물어져 가는 벌써 그림자가 없어서 그림자가 없어지는 햇빛이 가리워질 때에는 있을 때는 그림자도 검고 흰기 있지만은 그림자가 햇빛이 다 가리워지면 음지 양지가 없습니다. 어둡고 밝은게 없어. 점점 그림자가 가서 이제는 주님의 빛이 없는 이거 세상인지 뭐인지 교회나 세상이나 아무 구별없어. 이것이 오늘 교회입니다. 이것이 신사요 이것이 위대한 교역자들이요 통분할 일입니다. 통분할 일입니다. 요런 인본주의 요런 세상주의 요런자가 주의 요런 물질주의 주님이 원수로 갚을 날이 옵니다.
이북에서 칼을 갈고 있는 이 칼은 이 칼입니다. 이런 자들을 다 칠 칼입니다. 이것을 박살시킬 칼입니다. 깨십시요 깨시요 깨요. 어리석지 말아야 합니다. 공연히 교역자의 이 하늘나라와 예수와 복음을 팔아 가지고 세상을 사는 이것만 보고 아야 그러면 돌아서야 됩니다. 오늘에는 이 세가지 없는 교역자는 필요가 없습니다. 이 세가지 없는 교인도 다 떨어집니다. 이것이 있을까 해서 그렇지 과거 외정말년에도 보면 교역자만 승리하는게 아니요 교역자에게 그 승리한자의 수나 그 교역자 가운데서 승리한 그 승리으 프로수나 평신도에게 승리한 프로수나 같습니다.
그러기에 평신도든지 교역자든지 이세가지는 준비됩니다. 이 세가지 준비되지 않으면 앞으로 하나님을 증거할수도 없고 나타낼 수도 없고 이제 하나님께서 칼을 가는 이 칼을 피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82030220)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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