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 모친 마리아의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  
■ 성경:40마태복음02:11
 

'엎드려 경배하고'

1.엎드려

  (1)최고의 경배를 말하는 것이다. 이는 예배 대상으로 믿었던 것이다. 우리는 세상에서 존경할
    만한 사람도 일도 많고 그 앞에 낮아져야 할 만한 위험도 권세도 조직체도 인간도 많기는 하
    나 여하한 과도기 위기 일지라도 무엇을 주보다 높이거나 내가 주께 보다 더 숙이거나 하면 이
    는 주님께 수치를 줄뿐 아니라 죄감을 가져야합니다. 여하한 혜택자 愛者라도 그러합니다. 직
    접 주님께 대하여서나 주님께 소속한 간접의 일, 혹 일이나 혹 사람이나 대우에 있어서도 그러
    하다. 자기 일보다 교회 일 등한히 하면 수치인 줄 알아야 합니다. 예를 들면 다니엘 체 식주
    의 구주를 변케 아니함.

   (2)박사의 지위요 장거리의 고행한 그들은 이 표 없이 엎드렸다. 우리도 주님 앞에는 자기 지위
    나 공로는 기억조차 않는다면 죄송한 일인 줄 알아야 합니다.

   (3)신약 중 예수님의 발아래 엎딘 사람 몇 명이 있다.
       a. 눅5:8-11    베드로는 권능의 주님 앞에 엎드려 세상을 포기하는 권세와 사람을 낚는 권세
                          를 얻고
       b. 눅7:38-50. 죄인 여인은 사랑의 주님 발 앞에 엎드려 사죄 와 평안을 얻었고
       c. 요11:32-44. 마리아는 위로의 주님 앞에 엎드려 눈물의 동정 과 나사로의 부활에 위로를
                          받았다.
       d. 계1:17       요한은 영광의 주님 발 앞에 엎드려 주님과 천국과교회에 영광을 보았다.
       e. 우리는 주님 앞에 겸손하다고 보여질 만큼 그 중심이 주께 굴복을 당한 그 마음 가지지
          못했으면 주의 공로를 모르는 사람이다. 참 겸손은 영광의 앞잡이다.

    (4) 해석, 일편단심 구주만 소망한 시므온 안나
        안나는 100여 세요 시므온은 구원이 이르기를 원해서 주님보고 죽겠다고 늘 성전을 떠나지
       않고 있다가 주님 보았다. 그러므로 그러므로 주님 영접하는 데는 그 기도와 헌신도 귀해도
       주님 기다리는 것이 제일 귀하다. 피 흘리신 주님 아니 기다리는 것 얼마나 섭섭하뇨. 마24:
       에 종 둘이 있는데 하나는 주인을 기다리다가 영접하였고 하나는 졸다가 못 영접했다. 거기
       는 깨여 기다리는 것이 중점이다 누워 자고 졸고 있다가 주인 만난 자와 하나는 충성하여 있
       다가 주인 올 때에 졸고 있어나 이것을 주님은 바로본다 우리는 날마다 주님을 고대하면서
       기다리는데 주인이 아니 오는 날 고대 한 것과 차이는 같다.
        그러므로 평소에 깨여 있으나 주님 오는 날 깨여 있으나 황금은 같다. 그러므로 깨여있는
       종에게 중대한 것 다 주마고 하였다. 마24:27. 우리가 아무 것이 없어도 주인과 종 사이에 무
       엇보다도 고대하는 것이 제일 크다. 어떤 사람은 일생동안 주님 믿어도 그날 주님 오셨으면
       좋겠다고 하는 마음 한번도 가져보지 못한다. 우리가 주님 오시는 날에는 내가 주 앞에 내
       죄는 영영히 이별 된다. 다만 오시기 전에 그 죄를 이별하면 거룩으로 채워주고 고하지 못
       한 죄는 그날 벗는다. 그러므로 언제든지 택자는 예수님 오시면 좋다. 그러니 내 신앙 없으
       니 어찌하랴 하는 의심 말고 주님 오시지 아니하는가 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나는 공로
       없고 의가 없어도 예수님 피 밖에 없다. 내 죄를 대속하여 죄 사유하여 주시고 대신 순종하
       여 우리를 의인 만들었다 마귀는 어떤 죄든지 들고 나서나 주님 피공로 들고 담대히 서서 아
       버지의 은혜를 감사의 눈물을 흘리어야한다.

    (5)동방박사들은 전부를 포기하였다.
         이들은 육신으로, 이스라엘 된 그들은 원거리를 걸어와서 만났다. 우리는 신령으로 주님
        맞이하는 데는 우리의 생활이 고생스러운 생활하는 것이 장거리 걸은 자와 같다. 걸으면 동
        방에서 나설 때 거리와 순서를 통해 만난다. 천국 순서가 있으니 신앙에는 반드시 경력이
        필요하다. 우리가 믿는다고 단박에 의인 되려고 말고 그만큼 순서가 걸려야 된다. 사람에
        게 인정받는데도 시간이 걸리니 신앙에는 경력이 필요하다. 그래도 일정 시부터 믿는 신앙
        이 다르다. 그와 같이 동방박사가 먼 거리를 걷는데 열 발자국만 더 걷지 못하면 못 만나는
        것 같이 우리도 단박 예수님 못 만난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암흑도 있겠고 성화 된 자 같
        이도 보여지나 이 모든 것은 온전히 성화 시키는 순서이다. 이는 택자들에게 있는 것이다.
        퇴보도 타락도 없다. 우리는 포기하는 것은

        ① 이때까지 내 것으로 있던 것은 주님의 것으로 알고

        ② 내가 그것으로 인해 있지 아니하고 주를 위해 있는 것

        ③ 그것들에게 붙들려서 충성에 대하여 추호도 양보 말 것이다.
            내가 주를 위해서는 조금도 방해받지 말 것. 이 세 가지 지장 없이 살림도 가족도 가져
          야 한다.



(보충)

‘엎드려 경배’

이는 최고 경배인데 오늘 우리는 최고 제일 높이 대접하고 나는 아무 것도 아닌 것을 알아서 주님 앞에 나를 내놓지 않아야한다. 우리가 땅 위에서 존경할 사람 높일 사람은 은혜 받은 사람만큼만 조직체 권세만이 있고 하나 우리들은 언제든지 그 앞에 가면 머리 숙이지만 이제 머리 숙일 만한 자만큼만 예수님 앞에 머리 숙이는 것보다 더하면 예수님 수치 준다.

※ 자기의 것 있는 것 만큼 들고 주님 앞에 나가면 적은 것 있는 것이 주님과 나와 가리워지고 후에는 큰 것으로 가리워진다. 이만큼 주님과 나와 가리워지고 후에는 큰 것으로 가리워진다. 이만큼 주님과 나 사이에 내 존재와 명예 있다고 보면 잘 가리워진다. 주님 앞에서 나라는 것 내 세운 것 만큼 죄인즉 이미 주님 이 피로 값주고 내 모든 것 산 것인데 다 바치지 못하고 내 것으로 세우는 것만큼은 죄다. 성전기구도 속하지 않고는 쓰지 못했다. 거룩하게 만들고야 쓴다. 우리에게 속한 것만큼 전부가 예수님 피에 팔리운 것인즉 전부를 주님께 드려야 한다. 내게 있는 것을 가지고 드릴 라면 불의한 것이니 주님과 나와 가리워지나. 아무리 박사라도 이모든 것을 주께 드려, 바칠 때 주의 것이 된다. 오늘 우리는 조금 일하고 논 내가주의 일을, 이만큼 했는데 한다. 눅17:에 밭과 양을 맡기고 주인 대접 또 하는 것이. 믿음 더하는 방법이다. 종이니 주님의 피에 팔린 종이니 무익한 자라함에 신앙은 자란다. 동방박사 가 수천 리 길을 고행으로 왔으나 어린 주님 앞에 납작 엎드려 경배했다. 종이 주인 위해하는 것 마땅하건만 제 것 내세울 것 어디 있으리요.



마2:11-12

‘경배는 예수님에게만 하였다.’ 박사들이 주님 앞에 갈 때는 많은 사람을 거쳤다. 그러나 오직 아기에게만 경배했다. 오늘 우리들도 사랑하는 사람 은혜 받은 사람이 많지만 오직 주께만 경배 드리고 주님만 대접하고 아무리 위협해도 제일 숭배하고 존경하고 우리 주님께만 드리지 양보하지 않겠다는 이것 하나만 두어야 하겠다. 주 한 분만 제일 사랑 제일 두려움 제일 존경하고 저하는 마음가지지 아니하면 주님은 노여워한다.

◎마치 다니엘이 바벨론에서 왕에게 뽑히어서 공부 시키는 일이 있었는데 다니엘과 세 친구였다. 이 네 사람들이 공부만 하면 대신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왕이 이들에게 제일 힘쓸 만한 영양음식을 먹이는데 이 음식 먹여 왕을 잘 섬기도록만 하게 한 것이다. 모든 사람들은 다 ‘느부갓네살 왕만 섬기고 거기 등용할려고 전 소망을 가지고 있었다. 이 네 청년은 아무리 우리가 잡히워 왔어도, 우리의 공부 잘하고 못하는 것이 왕이 먹는 육식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채식만 먹겠다 하였다. 이제 이 청년들도 왕에게 좋게 보여 높은 자리에 앉힐라면하나님 앞에 배신하게 될 것이다. 예를 들면 변화산 삼자가 변화하신 주님만을 생각지 않고. 모세와 엘리야에게만 쏠리어서 그만 하나님께서 너희는 그 말을 들어라 했다. 즉 구정을 버리고 신정을 가진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두려운 자리에 나가던지 소망에 나가던지 할 때 세상 소망이나 두려움을 가지지 말라. 다니엘은 느부갓네살만 옳게 섬기고 그의 말만 들으면 이는 하나님 잊어버리게 된다. 또 이제까지 하나님 섬기던 처지에 왕에게 곱게 보이고 공부 잘해서 높이 되겠다는 생각하지않았다. 그것 하나 사랑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십배 나 주었다. 다니엘이 하나님의 구원을 받으려면 기도해야겠고 왕에게 살리우려면 기도 아니해야겠으니 왕에게 살기를 원하지 않고 하나님이 구원 해주실 그것을 확실히 믿었다.

◎
하나님이 나를 구원해 주시고 나를 도와주시는 하나님으로 의지해야지 어떠한 입장 어떠한 형편이던지 하나님 제일로 사귀지 않고 열심히 중심에 사랑하고 의지하고 사귀고 존경하는 여기 취미 붙이고 예수님 사랑하고 두려워하지 않고 배신한다. 택자는 이런 일 만나는 것이 눅5:8-10 게네사렛 호수가에서 베드로가 세상 포기하는 권능 없었다. 우리가 앞으로 일하여 나가는 데는 사전에 생각할 것은 성경 말씀대로냐 주관이냐 꼭 비판해보아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대로냐 내 의사대로냐 객관이냐 주관이냐 베드로 역시 거꾸러진 것은 주의 말씀대로 한 것이 신실함으로 거꾸러 졌다.

① 일을 시작하기 전에 주관이냐 객관이냐 하고 통과하고 난 다음에는
② 성공이냐 실패이냐 보고
③ 사전사후 연결시켜
④ 판정내리고 거꾸려져야 한다.
a. 이렇게 되어야 세상 포기
b. 복음 생활 권능 요11:32-34 마리아가 주님 발아래 거꾸러 졌다. 마르다가 마리아에게 와서 말하기를 예수님이 말씀하시되 이제라도 믿으면 산다고 하였다. 영광을 보리라 했다 한즉 마리아는 주님 앞에 와서 나사로의 죽은 것에 대하여는 원통하고 또 주님이 이제라도 살려준다고 하니 주님은 마리아의 원통이 여기는 대하여 주님도 원통이 여기고 마리아가 나사로 살릴것을 바라고 기뻐하는 그 순 소망 그 기쁨을 주님도 가졌다. 내가 열 낭 중 잃어 원통한 것 만큼 주님도 원통히 여긴다. 모든 일의 실패도 있고 부활도 있다. 그러므로 이와 같이 우리들은 실패하였으면 실패하여 원통히 여기는 동정을 얻고 거기서 주님이 다시 살리는 소망을 가지고 기뻐하는 그대로 기뻐한다.

◎
우리가 무엇이든지 실패할 때 낙망 가지고 여기 소망 가지여야 됨은 주님이 동정하다. 부활에 소망 준다. 우리가 옳은 일에 실패하여 죄가 되고 불의에 대하여 실패되면 성공이니 우리가 원통함으로 거꾸러지고 소망도 간구도 거꾸러지면 주님이 위로와 소망 준다. 원통한데 동정 눈물 많이 눅7:38-50 주님이 죄사하여주시는 은총 베푸시는 것 감사하여 거꾸려졌다. 눈물로 발을 씻어준 것도, 자기 애정을 기우리고 머리털로 씻은 것은 자기  영광을 받치고 입맞춤은 생명을 기우려 바칩니다. 그저 주님 앞에 거꾸려져야 한다. 주님의 발은 주님 몸 된 교회에 지극히 적은 일에도 교회 적은 일에 내 정을 기우리고 나의 영광을 바치고 생명 내바치고 주님 앞에 나오면 평강 온다. 오늘 우리가 그렇게 살면 교회에서도 업수이 여기고 멸시 한다. 그러나 거기서 사죄를 누릴 수 있다. 주님이 나에게 피 흘려 주었으니 감사 하여야겠다 하면 그럴 때는 반드시 교회에 거짓부리들의 반대가 있습니다.


'아기에게'

1.이적과 기사를 행하는 장성한 예수님께도 유대인은 경배하지 않았는데 이 동방 박사들은 이성 없는 어린아이께 경배했다. 이것은 그 아이에게 소망을 둔 까닭이다. 오늘 또 참된 소망을 주님께 두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간단한 말씀과 적은 감동에도 경배를 드리는 것이다. 하나님에게 참된 소망 을 가진 자는 적은 성구 간단한 말씀에도 경배 드리나 참된 소망에 진실한 마음 가지지 않은 자는 기이한 역사와 특수한 성신 역사와도 같은 예사로 엮이는 것 많다. 우리는 이 적은 말씀에 경배하여야한다.

2.이 박사들은 아기에게 경배하였으나 이 아이가 장성하여 자기에게도 구주가 되고 다른 사람의 구주도 되어졌다. 오늘 우리들이 하나님의 말씀의 적은 한 성구에 순종하여 큰 성공 있는 것 깨달아야한다. 보리떡 다섯 덩이와 물고기 두 마리도 오천명 먹이고 남은 부스러기를 주어라 함은 하나님의 은혜는 많고 적은 것이 없다. 주님이 남은 부스러기를 주어라 하니 12 광주리였으니 이것으로 얼마나 먹이겠느냐. 이는 초자연적 능력이요 성신도 초자연적 능력이요 이 성신 강림은 하나님이 나에게 강림하심이요 높은 말씀을 하면 큰일이 있을 줄 알아도 고넬료집에 들어가서 설교 몇 말씀 안 했어도 성신 충만하여 물세례 주었다. 이 동방박사들이 적은 예수님께 경배함은 진리에 말씀과 성신에 감화인즉 예수님의 신이 없는 자는 기독교인이 아니다. 예수님에 화상 그린 것은 추상하여 그린 것이요. 주님은 초상을 그린 일이 글도 땅에 썼다가 뭉개버리고 말았다. 이는 우상시할까봐. 성화도 글도 남겨 놓은 것이 없다. 성경 말씀은 얼마나 권위 있고 능력 있느뇨. 한 말씀에 천지를 지으 셨다. 로고스로 대문자로 쓴 것이고, 소문자로 쓴 로고스가 있 으니 대문자 쓴 로고스가 천지야 있어라 할 때 되어졌다. 천지 만물은 말씀이 창조하였고 주님 명령하니 되어졌다. 우리에게 오신 말씀은 우리에게 이렇게 능력있는 말씀이다.  

행20:30 내 그 말씀이 너희를 든든히 세우사 거룩한 자 앞에 든든히 세우라 이제 불 탈 창조물이 더 크냐 천지 만물 만드는것이 더 크냐. 우리에게 주신 말씀은 우리를 하나님의 아들 만들게하는 큰 말씀이다. 어찌하여 이 성경 말씀을 박대하느뇨? 이 성경은 능력의 말씀이 가득히 들어 있는 말씀이요.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성경말씀과 성신을 받아야 하건만 어찌 어마어마한데 찾아가리요. 그림만 보고 도를 믿으면 그림이 우상이 되나 오늘은 진리 말씀인 줄 알고 진실하고 사랑인 동시에 자비하신 예수님인 줄을 성신 감화로 받아 드릴 때에 예수님은 어떠한 예수님인 것을 신앙사상에 척 들어간다. 이런 인격적 인 예수님을 믿어야 한다. 하나님의 속성을 가진 예수님을 참으로 믿어야 한다. 우리가 찾는 예수님은 진리와 진리의 신이 우리와 같이 세상 끝날까지 같이 한 시간도 예수님에 영이 같이 하겠다는 말씀이다. 그런즉 적은 은혜를 귀하게 간수하면 적은 은혜가 크게 된다. 별스러운 감동이 나올 줄 알고 기기모모한 말씀이 나올 줄 알고 그러나 이 말씀에 권능 능력이 얼마나 큰 것을 믿지 않기 때문이다.


'경배하고'
① 경배는 인격 상대만이 할 수 있다. 이는 희로애락을 다 나와 같이 가지고 있는 자에게만 경배할 수 있다. 임금에게만은 .. 암만 잘 단장해도 거기 절할 수 없나니 인격 없는 데는 절 못한다. 당이나 단체에게 절할 수 없다. 죽은 자에게도 절할 수 없다. 이것은 우상이다. 아주 높은 자라 해서 먼데서 절하면 그는 그 사람을 사람의 자리에 두지 사람의 자리 이상에 평가를 둔 까닭이다. 또 국기에게 절할 수 없다. 그렇다면 예수님에게 절하지 말라고 하였다. 안된다. 지금 예수님에게 절하면 우상이다. 다만 신령으로 주님께 경배함은 주님을 내가 인격의 대상으로 맞이하여 그에게 모든 것 의논하고 맡기는 것이 경배하는 것이다. 이제 재림 시에는 절할 일이 있을는지 모른다.
② 박사가 주님께 경배함은 아주 뜻이 깊다. 얼마나 자본이 많이 들고 먼 거리 고행으로 온 것이다. 오늘 우리들은 주님을 섬김은 수고 적게 들고 돈벌이 많이 하는 것이 좋고 공부를 단박 해놓은 것이 좋으나 박사들은 먼 거리에서 경배해도 좋을 것이나 수고를 많이 하여 경배하는 것이 좋다. 어째건 많이 들고 힘들고 하는 것이 좋다. 동방박사는 하나님 찾아 경배 한번하고 아멘 할렐루야하고 척 돌아가서 안심하고 있다가 천당 같다. 시몬과 안나도 예수님 한번 아듬어주고 구원 얻었고 목자들도 경배 한번하고 구원 얻었고 엘리사벳도 찬송 한번 하고 구원얻었다. 사렙다 과부는 떡 한 개 대접 하고 구원 얻었나니 이 떡 한 개 대접은 오랫동안 주의 종들을 대접하던 나머지였다. 마가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는 늘 주님 대접하기를 원하고원하다가 성만찬 차렸다. 그런고로 날마다 돌아다니다가 예수님 오실 때 척 만나는 사람과 오래동안 이상한 구름만 보아도 오늘이나 주님 오실려는가 하고 기대하는 자를 귀하게 믿는다.그러므로 우리 주님은 인격적이시요 사람 보기에 부흥이 되고 안 된 것을 비판하지 않는다. 그러기에 주님을 대접하려다가 못하고 또 대접한대다가 못하고 여러 번 하다가 대접하게 되는 것이 귀하다. 그러므로 하나님 나라는 그렇게 층이 많아도 불편이 없다. 그런데 오늘 우리들은 그저 낙망하고 불편하다. 다만 성심성의로 주님께 바치는 것만이 할 일이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이 성공과 실패에 표준을 어디 세우리요. 현재에 삼지 말고 내가 얼마나 주님께 충성했나 아니했나 이것으로 표준 삼지 나타나는 것으로 표준삼지 말라. 동방박사들은 어린 예수님을 만나 경배하고 중심하고 돌아간다. 주여 내 생명을 맡기나이다 하고 내 영생 내 부요 내 구원을 맡기나이다 하고 돌아갔다. 구스 내시가 단 한마디 전도의 그는 주여 감사합니다 하고 고국에 돌아가서 예수교를 세웠다. “이도그(000)” 는 가족에 늘 성구를 읽은 열심히 성지도 구경치 않고 가는 이것이 그 한 성구로 구원했다. 나다나엘도 그 은밀한 가운데 기도 한 고로 단번에 주님 만나 바로 구원 얻었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보이는 데 두지 말고 은밀한 가운데 있는 그 정성을 주님은 보신다. 숨어 있는 공적이 같이 있으니 그것을 주님이 보신다.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
1.황금을 드림 - 믿음을 가리킴, 벧전1:에 금같이 보배로운 믿음이라고 한 말씀이 있다. 육신으로 이스라엘이라고 한 것은육신으로 오신 메시야요 육신인 이스라엘인 고로 예물도 물품으로 드렸다. 오늘은 우리 신령적 이스라엘인 고로 우리는 물품으로 드릴 수 없나니 믿음으로 드려야한다.
요1:12, 요6:29, 믿는 것이 하나님 일이라. 그러므로 우리가 주님 만날 때 모든 것 다 가지고 가는 집 가장 기뻐하는 것 믿음으로 다 각양 환경과 주의가 의심할 수 밖에 없는데 서로 의심하지 않은 것이 믿음이다. 이는 가나안 주겠다고 하였으나 그 일생 주지 않아도 의심하지 않고 더좀 가야 줄 것을 믿음으로 의심하지 않고 세상 떠날 때 한 말씀은 진동되지 않은 더 좋은 터를 나에게 주라는 것이다 하였다. 이것이 믿음이다. 모세가 홍해를 당도함에도 의심하지 않고 들어갔음으로 홍해는 갈라졌다. 그러므로 우리는 의심할 만한 입장이지만 의심치 않고 믿는 것이 믿음이다. 우리는 의심할 자리에 또 믿고 믿는 것이 믿음이다. 의심은 가장 하나님이 미워한다.

◎겨자씨 믿음을 말하였나니 겨자씨는 적어도 땅에 심으면 수분과 온도 비료가 들어와서 우리에게 썩지 않은 씨가 들어왔구나 하고 수분 온도 비료가 썩히려고 한다. 그러나 씨는 점점 통통하게 불어서 그 속생명은 자라서 움이 나오나니라. 천국은 겨자씨 나무와 같다. 자라서 새들이 와서 깃들인다. 오늘 우리들의 믿음을 말하였는데 겨자씨 믿음의 수분 오르는 것은 자비 있는 생활 세상사람이 행복이라고 하는, 목마른데 물마시면 시원한 것이 올 때에 생명 있는 믿음은 여기서 더 믿으려고 하지만 생명 없는 믿음은 썩는다.

◎온도는 평안을 말하나니 이제까지 생활 곤란이 평안하고 몸이 건강하니 평안. 국가도 사회도 평안하니 이제 아니 믿는다. 남에게 짓밟히고 핍박 받을 때는 예수님 잘 믿으니 평안하오니 안 믿는다. 그러나 생명 있는 믿음은 이러한 모든 것이 평안 하여지니 더 믿어야겠다 고 하며 더 주의하며 나아가는 것이 겨자씨 믿음이다.

◎이제 비료는 모든 죄 다 이제 아이들이 와서 내 믿음을 떨어트리려고, 친구도 남편으로 말미암아 예수님 못 믿겠다고 하지만 생명 있는 믿음은 오히려 더 잘 믿으려고 하니 이것은 생명 있는 믿음이니 더욱 나는 영생 취해서 믿어야겠다 한다. 누구는 외동 아들 죽어서 못 믿겠다고 하지만 더 잘 믿는다. 이것이 주 앞에 드리는 믿음이다.

◎동방박사들에게 이제 황금이 무슨 소용이 있으리요? 하나님(000) 여는 황금 길이요 보석이다. 황금이 쓸 때 없나니 우리는 믿음 가지고만 가야한다.

◎그런즉 동방 박사들이 황금덩이를 가지고 오는 데는 이 황금 을 건사하는 데는 생명을 걸고 간수하였을 것이다. ◎먼 거리 국경을 넘는 위협 ◎도적의 위협 ◎굶주림이 있어도 이 황금덩이는 내어놓지 않고 가지고 온 것같이 이제 ◎우리는 온 분위기가 다 나를 공격해도 다만 믿습니다. 이것이 주님께 대접하는 것이요 예물이다. 모든 것이 실패되도 의심말자 약속을 믿고 그의 성공을 믿고 의심 말자.

 2.유향을 드림.
유향은 아라비아에서 나는 감람유인데 이는 몸에 피부병이 나서 그 유향을 바르면 다 낫는다. 또 향기도 나며 동시에 피부병이 났고 속병도 그 유향을 먹으면 낫는다.
그러면 유향은 무엇을 말하느냐.
눅10:30 여리고로 내려가든 여리고 성을 가다가 불한당을 만난 사람에게 그 터진 곳을 술(포도주)와 유향을 발라 나았다고 하였다.

◎우리는 전체가 상한 것 터진 것이다. 혹 이목구비 전신이 다 병든 자다. 육신의 문둥병은 고치지 못 하는 줄 아나니 곧 영에 문둥병 들면? 어째 고치리요. 다만 인간들의 죄로 인하여 생긴 병은 단지 예수님께서 피 흘려 구속하여 주었나니 이 만신창 같이 되어 있는 자들에게 이 복음 전하는 것이 곧 유향을 드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유향은 사랑이다. 요나의 아들 시몬아 너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주님은 부르시며 네가 나를 세 번이나 나를 모른다고 부인한 것이 원통하여 이리저리 다니느냐. 네가 이제라도 나를 사랑할 수 있다 하시니 그럼 주님은 부활하셨는데 무엇으로 사랑하며 대접하리까. 주님은 나를 위하여 죽어 셨는데 나는 3번이나 부인했으니 주님을 사랑할 도리가 없다고 한다. 그러면 요나의 아들 시몬아 내 양을 먹이고 치라 이제 너를 원치 않은 곳에 사람이 띠를 띠워 묶어가리라. 네가 이제 나를 사랑할진데 내 양을 먹이고 치라. 생명까지 아낌없이 바치라 지극히 적은 자를 사랑하는 것이 주 사랑하는 자다. 이것이 유향을 드리는 것이요.

◎예수님 나신 후에 먼저는 시므온과 안나가 만났지만 다음은 목자들이다. 이 모든 것은 목자의 사명감을 가지라 말씀이니 온 세상 끝날에는 모든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되 끝까지 사랑하는 자가 승리한다. 어떤 이는 감당할 수 없는 억울한 매와 욕을 당해도 그 속에 있는 유향으로 담대하다. 많은 파란을 겪으면서도 가지는 것이 무하다.

◎내 속에 있는 사랑을 깨트리는 것이 어디서부터 오느냐. 사회 에서부터 온다. 이것은 한번 치르고 나면 국가에서 온다. 끝까지 이 사랑 안 내어줄라고 하는 자만이 이 환란시험 당한다. 이 시험 극복 할수록 한 계단씩 올라가서 세상 끝날에는 모든 사람의 사랑이 식어진다고 하였지만 국가에서 넘어트리려 해도 아니되면 가정에서 오나니 이 사랑 끝까지 가지는 자 주님 대접하고 사랑하는 자다.
○후란시스는 밤중에 누었는데 쥐들이 달려들어서 밤새도록 뜯어라 이 사람은 형제여 나는 너를 해하지 않는데 어찌 너는 나를 해하느냐고 하였다고 한다. 주님 사랑하는 그 사랑을 상대편에 뭇사람에게 사랑하며 연단받은 사랑을 끝까지 가지고 주 앞에 드리는 자 되어야 한다.]
○가장 사랑을 뺏기기 쉬운 것은 가정에 아이들에게 부부간에 뺏기기 쉽다. 그런즉 우리는 사랑 없는 것 위해 놀기도 하면서 나가면 한 번씩 부닥치는 시험을 이기고 또 이기고 최후까지 대적하는 것이 주의 사랑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순교를 당해도사랑없이 죽이는 자를 미워하면서 순교를 당하면 이는 주님을 입 맞추면서 뺨 때리는 것과 같다.

 3.몰약을 드림.
◎이 몰약은 감람나무 진인데 몰약의 특징은 썩는 것을 썩지 않게 하는 방부제다. 사람이 죽었을 때 발라 놓으면 수십 년 이 가도 수백 년이 지나도 그대로 있다. 이제 몰약은 색이 불고 자색과 그 사이에 색을 가지고 있는데 갈수록 더욱 단단하여 지며 갈수록 빛난다. 그러기에 더 야물어지는 것인 즉 그러므로 소망을 가르킴이다. 우리의 소망은 오랜 세월이 지나감에 없어지리요. 주님의 피로 죄 사유하심 받고 우리 위해 죽으신 주님은 나를 구속해주시고 영원한 영광 주시려고 하는 것 소망 은 더욱 굳다. 우리들은 썩을 것 썩지 않은 소망에서 나아가야 하나 좀 기도나 막히면 그만 주님이 날 버렸나보다 하고 또 좀 기도나 좀 잘되고 성경이나 잘 보게되면 주님은 나만 사랑하는구나 하고 기뻐한다. 주님은 낙망치 않으신다. 다만 공연히 우리들이 낙망하나니 우리는 이 몸둥이가 누워도 불타도 소와 같이 잡혀가도 죄를 자꾸 지어도 낙망 말라. 어떠한 일이 있어도 낙망 말고 주여 당신만 믿나이다 할 때 욥에게 베푼 역사를 보아도 욥은 겸손하여 끝까지 소망하였으니 모든 것 배로 주었다.
① 여가 있는 자녀가 있으니 배를 땅에는 많이 주었다. 욥의 소망에 대한 것은 그가 소망을 바라보았음으로 인내가 있었다. 우리들이 소망을 가질 때 낙망할 수밖에 없이 만드는 것은 그 몰약을 가치있게 만들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우리들에게 귀한 선물 주시기 위하여 이런 의심주시는 것이다.
◎ 죄 중에는 불신 의심 낙망이요 의는 믿음 사랑 소망이다. 고전13:13 믿음 소망 사랑 중 제일은 사랑이다. 성경 절수마다  믿음 소망 사랑으로 듣고 보면 전부가 그대로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낙망과 의심올 때 대적하는 것이 믿음, 소망, 사랑이다.

(58년 주해 노트)





 
                    답변/관련 쓰기 수정/삭제     이전글 다음글           창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