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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외의 일은 고사하고 오히려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  
■ 성경:47고린도후서11:28
 

'오히려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또 수고하고 애쓰며 여러 번 자지 못하였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이랬지마는 이 일은 고사하고 「오히려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 이걸 보아서 바울이 표현을 안 하지마는 삼층천에 올라가 가지고 무엇을 보고 무엇을 들었다는 것을 짐작을 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참 자기가 빌립보서에 말한 것같이 그저 밤이나 낮이나 쉴새없이 늘 그 마음에 소원되는 것은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기를 원하다고 했습니다. 주님 외에는 그에게 사모가 없었고, 그를 위해서 이렇게 수고하고 고생하고 생명까지 바쳐서 복음의 일을 했지마는 그는 로마서 1장에 보면 모든 사람에게 자기가 하여야 할 일을 하지 못해서 빚진 자라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렇게 있는 충성 다하고 몸과 생명을 다 바쳤는데 하나님이 살려줘서 남아있는 것이지 한 번도 이 복음 위해서 몸이나 생명이나 뭐 자기의 안일이나 자기의 수고나 고생을 하나도 아껴본 일이 없고, 이 복음 위해서 있는 것을 다 바쳤지마는, 그렇게 맞고 갇히고 온갖 위험을 만났지마는 그것은 생각이 없고, 그것은 고사하고, 그건 생각이 없고 마음에 눌리는 것은 하나님의 교회를 위해서 염려하는 것이라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교회를 위해서 염려하는 것이라.

바울이 이렇게 삼층천에 가서 무엇을 봤기에, 무엇을 들었기에 인간의 말로 말할 수 없는 그것을 보고 들었는데 ‘그것을 말할 수 없다.’ 이렇게 말하고 또 그걸 말하면 도리어 결과적으로 유익이 없을까 해서 말을 안 한다, 또 자기를 지나치게 높게 인정할까 해서 안 한다 이랬지마는 그의 행동을 봐서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이북에 납치돼 가지고 갔다가 와 가지고 여기 와서 물어야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마는 그 사람 행동을 보면 그쪽이 어떻더라 하는 것이 그 행동에서 나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바울이 이 복음을 위해서는 자기가 살지 않을 수 없었고, 이 복음을 위해서 사는, 이 복음 위해서 바쳐진 것은, 이 복음 위해서 희생된 것은 하나도 아깝지 아니하고 오히려 희생을 못해서 마음의 고통이 됐고, 또 희생하게 된 데 대해서는 그는 기쁨이 측량할 수 없다고 말을 했고 이래 한 것을 보아서 삼층천에서 그가 보고 듣고 느낀 것이 무엇이라는 것을 우리는 추측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이 사도 중에도 주님을 사랑함이 뜨거웠고 또 주의 도를 전하는 것이 더욱 신령하게 유력하게 전했습니다. 그는 사랑의 사도라,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에게 사랑을 특별히 받은 사랑의 사도라 이렇게 말하는 사도 중에 참 신령한 면으로 뛰어난 사람이라고, 흠 없는 사람이라고, 실수 없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 사도인데 이 사도 요한이 밧모섬에 가 가지고 주일날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가지고 주님을 대할 때에 그 앞에 죽은 자와 같이 거꾸러졌습니다. 주님의 얼굴을 보지를 못했습니다.
거기 표현하기를 ‘주의 얼굴은 해와 같다.’ 그러면 주님이 물질적으로 환하게 비추어서 눈이 부셔서 보지를 못한다는 그 말이 아닙니다. 주님이 어떠하신 분인 것과 주님이 어떻게 하신 그것을 사도 요한이 육지에 있을 때에 받은 영감 그 영감보다 더 충만한 영감을 받아 가지고 주님을 더 밝히 보고 주님이 인간들에게, 자기들에게 하신 것을 더 밝히 보니 그만 그분 앞에 모두 한 것이 불충이요, 죄요, 황송이요, 가증스러운 것이라. 주의 얼굴을 얼굴이 바셔서 부끄러워서 보지를 못해 얼마나 그가 마음에 자책감을 느꼈든지 그 앞에서 죽은 자와 같이 거꾸러졌습니다.
이와 같은 것이 아니겠느냐?

그가 삼층천에 올라갈 때에 세상에서 자기는 참 율법으로써는 흠이 없는 자로 이렇게 살았지마는 삼층천에 가 가지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문서로, 문서로 우리에게 전달해 준, 신구약 성경으로 이렇다, 이렇다 하는 그 전달하는 이 전달한 이것을 그분이 보고 지켰고, 또 이것보다 더 확실한 것, 이보다 더 확실한 것 성신의 감화를 받아 가지고, 문서만 보고 지식적으로 깨닫는 그것을 탁월한 성신의 감화를 받아서 깨달아 그 실상에 가까운 것을 보고 그대로 살았지마는 삼층천에 올라 가 가지고,
이제는 문서로 증거한 것보다, 영감으로 증거한 것보다 더 실상에 가까운 삼층천에 가보니까 성경에 나타내준 사실이 너무도, 인간이 측량 못할 만큼 너무도 크고, 너무도 두렵고, 너무도 존귀하고, 너무도 가치 있는 그 실상을, 여기 나타낸 그 실상을 더 똑똑히 본 것이 아니겠느냐?

이러니까 바울이 그 후 모든 생애가 다른 사람보다 독특히 뛰어난 그런 생애를 하되 그분은 세상에서 어떤 위험이 왔지마는 그 위험으로 인해서 두려워해 보지를 않았습니다. 그 위험으로 인해서 두려워 보지를 않았고 또 이 복음을 인해서 고생을 수없이 했지마는 그 고생한 데 대해서 불만이나 불평이나 원망이나 불만이 하나도 없었고, 이렇게 밤낮 충성을 다하고도 ‘이제는 내가 할 만큼 했다.’ 하는 그 흐뭇한 생각은 한 번도 가져보지 못하고 늘 자기는 하지 못한 빚진 자, 무익한 종, 죄인, 괴수 죄인, 만삭되지 못해서 낳은 자와 같은 무능자,
자꾸 이것만 바울이 그이에 사무쳤기 때문에, 그는 말하기를 시간이 지나가고 자꾸 늙어져 갈수록 마치 무거운 짐 진 거와 같이 그분을 대하고, 주님을 대할 것과 주님의 나라에 가서 모든 만물 앞에서 나타날 것을 생각할 때에 세상에서 이제까지 산 그 생활이 너무 자기 마음에 후회스럽고 원통해서, 주님의 뜻대로 살지 못한 그 일이 무거운 짐 진 거와 같이 자기에게 눌린다 했습니다. 무거운 짐 진 거와 같이, 자꾸 갈수록 마음이 더 눌리고, 더 충성하지 못하고 더 그분 앞에서 더 시행하지 못했고 더 감사하지 못했고 그분을 높이지 못했고 그분을 아는 자로 살지 못한 이것을 그는 무거운 짐 진 거와 같이 고통스럽다고 말을 했습니다.

(81112201)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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