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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 성경:40마태복음06:09-11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주님이 주기도문으로 가르쳤습니다. '이렇게 기도하라' 우리가 주기도문을 예배 순서에도 같이 외우고 이렇게 합니다. 이러면 주기도문에 간단하게 가르쳤지만 주기도문의 이 뜻을 깨달아서 순서도 그 순서로, 주님이 가르치신 기도의 순서로, 또 주님에게 기도하는 그 종류도 그대로, 순서도 그대로 종류도 그대로 또 기도하는 자신도 그런 사람이 되어 그대로 이렇게 기도하라고 주님이 가르치셨습니다.


하늘에 계신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하늘에 계신다 이 말씀은 저 영계에 계시는 아버지라는 말이 아닙니다. 하늘에 계신다 말은 지극히 높으신데 지존하신 데 계시는 아버지라 그 말입니다. 그러면, 그 이상이 없는 지극히 존귀한 위치에, 또 지극히 큰 그 전능의 위치에, 전지의 위치에, 대주재의 위치에, 창조주의 위치에, '하늘에 계신다' 말은 하나님의 지극히 크심과 높으심을 표시해서 이렇게 '하늘에 계신'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우리 아버지라 말은 여기 복수인데 우리 아버지라 말은 내 개인 아버지는 되지 아니하고 이렇게 우리 아버지로 복수의 단체의 아버지로 이래 하는 것은 주님과 나와의 한 덩어리가 돼야 하나님 우리 아버지가 되지 주님과 끊어지면 우리는 하나님 앞에 대하면 멸망 받지 아무것도 은혜 받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이래서, '우리' 하는 것은 우리의 대속주, 우리의 구속주, 주님과 나와의 하나 된 이 복수를 가리켜서 여기서 ‘우리’라고 그렇게 표시하신 것입니다. ‘우리 아버지’....   예수님의 대화친으로 아버지가 됐습니다. ‘우리 아버지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기도할 때에 기도는 서로 대화하는 것인데 서로 상대해서 말하는 것이 그게 기도인데 우리가 기도할 때에 제일 먼저 누구를 상대할 것인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를 상대해서 기도해야 된다 그 말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기도할 때에 하나님은 지극히 크신 분, 지극히 완전하신 분, 모든 면이 완전하셔서 지혜도 그 이상이 없는 완전하신 지혜, 완전하신 능력, 완전하신 성결, 완전하신 공평 이렇게 이런 하나님인 것을 우리가 먼저 깨달은 것만치 기도할 자격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자기가 바로 아는 것만치 그 기도할 자격은 있고 하나님을 전혀 모르는 사람은 암만 해 봤자 그 기도를 하나님이 들으실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래서, 주기도문에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 말씀하신 것은 우리가 기도하는 그 기도의 대상, 우리가 서로 대화하는 우리의 대화자가 되는 이 하나님은 하늘에 계신 분이라 하는 것을 우리가 깨닫고 지존하신 분인 것을 깨닫고 이 지존하신 분을 상대하는 것으로 상대해야 되지 지존하신 분을 상대하면서 아주 저거 동무 상대하듯이, 얼러키운 호로 자식이 부모에 만만하게 대하듯이 이렇게 버르장이 없이 대해서는 안 됩니다. 이래서, 기도할 때에 ‘함부로 입을 벌리지 말아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가 구하는 상대, 이 하나님은 이분은 어떤 분인 것을 자기가 그분의 크심을 아는 것만치 자기는 기도를 하게 되고 또 조금 알면 조그만 기도할 수 있고 많이 알면 많은 기도할 수 있고 다 알면 다 하는 기도를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고 어떤 분인 것을 내가 믿는 거기에서 하나님도 내 기도를 들으실 수 있고 나도 또 하나님에게 정당한 기도를 하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 것도 모르고는 기도해 봤자 그거는 여기 미신 자들이 그저 돌팔이 점쟁이들이 귀신에 소리 하는 것 모양으로 그런 것이지 그거 소용없습니다. 먼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 것을 알아야 된다 하는 것을 주님이 가르쳤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우리는 이거 멸망 받을 인간인데 우리 구속주 예수님과 나와 합할 때에 하나님은 나의 아버지가 된다 하는, 주님의 대속으로 하나님은 내 아버지 된다. 하나님과 나와는 이렇게 친밀하고 밀접한 바로 부자간 된다. 육신의 부모는 부정모혈, 부정인데 나는 부종이라 해, 아이들 주일학교 할 때는. 종자라고, 정이라 하면 아이들이 잘 몰라요. 부종, 아버지의 종자와 어머니의 기름의 피 그래 이제, 부종 모혈로 났지만 이 하나님 아버지 아들은 예수님께서 흘려주신 피공로, 또 영감, 진리 셋으로 났습니다. 부종과 같이 예수님의 대속의 종자로, 모혈과 같이 영감과 진리로 이제 대속을 우리에게 충만 시켜 줘 가지고 우리들이 하나님과의 이 관계가 맺어진 것입니다.

이래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 아버지를 불러도, 부르기야 얼마든지 자유로 부를 수 있지요. 불러도 저 혼자 부르지. 대답할 수 없는 것은 하나님을 하늘에 계신 자임을 모르면 그 사람의 행동한 것이 자연히, 아버지가 만일 그 사람 만날라고 오면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모르고 하는 행동이라면 그 행동에는 반드시 하나님이 오시면 벌 받아 죽을 일이라 그 말이오. 빛이 오는데 빛을 청하는 것은 어두움이 빛이 와도 녹아지지 안할 수 있는 게 돼 가지고 이를 청해야 되지 어두움 그것이 빛을 청하면 빛이 오면 어두움은 소멸돼 버리고 말지 않습니까? 이러기 때문에 하늘에 계신 분을 모르면 암만 불러도 대답도 못 하고 오지도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 아버지’ 우리는 하나님과 이렇게 밀접한 관계가 예수님의 공로로 말미암아 밀접한 관계가 됐다. 됐는데, 아버지와 아들 이렇게 밀접한 관계가 됐는데 곧 아버지의 요소가 우리에게 와 가지고, 실제로 와 가지고 우리가 생겨졌다. 육신의 부모는 부종모혈로 우리의 부모가 됐고 우리의 영의 아버지는 피와 성령과 진리로 우리의 아버지 됐습니다. 피와 성령과 진리로 우리를 낳았습니다. 야고보 1장에는 '진리의 말씀으로 너희를 낳으셨느니라' 이랬어. ‘너희를 출생하셨느니라' 말씀했어. (*야고보서 1:18 그가 그 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좇아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 )

이래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이러니까 우리가 기도할 때는 기도의 상대방이 되는 하나님을 똑똑히 알고 또 그와 나와의 관계가 어떤 관계가 맺어져 가지고 있는 걸 알고 또 이 관계는 하나님 대 나로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나 사이에 중보자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됐다하는 이런 인연을 똑똑히 알아 가지고 믿음으로써 이제 기도의 대상을 바로 찾아라 그 말이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여게까지는 우리가 기도하는 기도의 상대를 바로 알고 바로 상대하라 하는 그것을 가리켜서 말합니다. 위에 한 데는 골방에 들어가서 은밀한 중에 계시는 너희 아버지를 찾아가지고 기도해라 하는 그 말이나 꼭 같은 그 뜻을 가졌습니다.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이름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그 자체, 하나님 자체, 하나님 본체, 내나 위에 말한 대로 '하늘에 계신' 말씀한 대로, ‘이름이’, 이름이 하는 것은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시라. 지극히 크신 분이시라. 완전하신 분이시라. 능치 못하심이 없으신 분이시라. 알지 못하심이 없으신 분이시라. 지극히 거룩한 분이시라. 불의를 용납지 아니하시는 분이시라. 이것도 이름입니다. 또 이분이 어떤 역사를 하는가? 이분의 자체와 이분의 역사 이것을 가리켜서 ‘이름이’, 이 이름은 이 하나님 자체의 어떻게 그 크심 또 그분의 역사의 어떻게 크고 세밀하고 충만하심, 그 자체와 하나님의 모든 역사를 통틀어 한마디로 말해서 이름이라 이렇게 말씀한 것입니다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거룩히 여김’이라는 것은 구별하고 구별해서, 거룩이라 하면 여러분들이 오랫 동안 공부했는데 거룩이라 하는 것은 많은 것 가운데서 구별하고 구별하고 또 구별해서 또 거기서, 선별하고 선별하고 선별해 가지고 나중에 완전에 도달하는 그것을, 과정과 완전에 도달한 그 결과, 과정과 그 결과를 합해서 거룩이라 그렇게 공부했습니다.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그러면 하나님 자체와 하나님의 역사를 구별해서 대우하는 그 대우를,
구별해서 하나님의 본체와 하나님의 자체와 하나님의 역사를 구별해서 상대하고,
구별해서 그분과 관계를 가지고,
구별해서 상대함을, 곧 '거룩히 여기심을', 구별해서 상대함을 받으시오며,
구별해서 상대하는 우리가 되게 하사,
구별해서 상대하는 것이 구별만 해서 상대하는 게 아니고,  
구별해서 상대한 그것이 ‘하나님이 구별해서 상대하심을 받으실 수 있는’ 그런 구별을 할 수 있는 그런 우리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하는 것을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제 여기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 것을 자기가 깨닫고 그분과 나와의 어떤 관계가 예수님의 대속으로 말미암아 맺어져 있다 하는 이것을 먼저 언제든지 기억하고, 맺어져 있는데,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의 뜻은 “그분 자체를 그분 자체로 상대하고 대우하고 또 그분의 모든 행사와 이력을 또 이력대로 대우하고 상대하고 이렇게 상대하는 생활이 우리가 되도록, 하나님이 어떤 분이심을 우리가 알고 거게 대해서 합당하게 정당하게 대우하고 상대하고 이렇게 하는 우리 생활이 되게 하시옵소서” 하는 뜻이 아닙니다.

상대하는 우리 생활이 되는데 상대해서 생활하는 이 생활을 당신이 “오, 됐다. 과연 네가 나를 두려워하는 두려워함을 그렇게 나를 두려워하니 내가 너한테 욕보는 게 아니고 네가 나를 정당하게 두려워한다. 또 네가 나를 인식하기를 이렇게 인식해 가지고 인식을 하고 하니까 그 인식이 내게 대해서 바로 인식을 했다.” 해서, ‘받으시오며’ 이거 얼마나 어려운 말인지 모르겠습니다.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그래 내가 아까 좀 전에 '이름을 거룩히 여기심을 받으시오며' 했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했나 하니까 '이름을' 해. 그래서 내가 '저것도 벌판이로 외우고 돌아다니는구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이러면 여러분들이 자꾸 이래 새겨 가지고 깨달아라 그거요. 이것이 우리 기도하는 데에 제일 첫째 기도입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이것이 하나님 앞에 우리가 기도할 때에 제 일 호 기도라 그 말이요, 일 호 기도. 우리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 것을, 우리 하나님이 하늘에 계시는 분이신 것을 우리로 하여금 알도록 해 달라는 이것을 기도하는 것이 우리가 일호 속에 든 기도요, 또 그분이 중보자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우리와의 관계가 어떤 관계가 맺어져 가지고 있다는 이 사실을 실상을 알아야 될 대로 알도록, 그러면 다 알고 간 사람이 있느냐? 다 알고간 사람이 없습니다. 영원히 알아도 부족합니다. 여기 대해서 바로 알도록 이렇게 아는 자 되도록 하는 것이 일호 속에 들었고,

그런데,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라고 기도하면, “그 본체와 그 자체와 또 그분의 모든 하는 역사가, 구별해서 바른 데에 도달, 구별해서 정확히 알아 정확한 대우를 우리들이 하는 사람이 되게 해 주옵소서”하는 이 기도입니까?
“하나님을 두려워할 대로 두려워하는 사람이 되게 해 주옵소서, 하나님의 사랑이 무한하심을 우리들이 알도록 무한하심을 우리가 아는 사람이 되게 해 주옵소서, 하나님은 정확 무오하고 진실하시니 그분은 거짓부리나 삐뚤어진 것을 하나도 용납하지 아니하시는 분이심을 알게 해 주옵소서” 하는 그 기도와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하는 거와 같은 말입니까 다른 말입니까? “이름을 거룩히 여기게 해 주옵소서”하는 기도와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하는 기도와 그 기도의 뜻이 같습니까,  다릅니까?

하나 예를 들면 “하나님은 지극히 크신 분이심을 우리들로 하여금 알고 지극히 크신 분으로 대우하게 해 주옵소서” 하는 기도와 “지극히 크신 분으로 대우함을 받으시도록 하게 하옵소서” 하는 거와 같습니까? 어떻습니까? 같소, 다르요? “거룩히 여기게 하옵소서”,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하는 거와 같은 말인지? 다릅니다.

하나는 우리 사람들이 하나님을 이렇게 지극히 거룩하게, 거룩하다 말은 하나님은 구별이 “이 우주에 삼라 만상의 만물이 있다. 그거는 지음 받은 것이요 하나님은 창조주시다.” 또, 이렇게 모든 인간들의, 요새 세계가 강대국의 대원수라 하면 자기네들이 지금 나라의 운명을 좌우하는 듯이 그 나라의 제일 머리되는 사람하고 머리되는 사람하고 지금 정상 회담, 정상 회담 그래쌓는데 그 사람들에게 권리 있는 것 같은데, 그 정상 회담하는 세계의 머리되는 사람들 회의가 있는데 그 사람 머리되는 사람들의 회의하는 회의와 우리 하나님과, 거룩히 여기는 것은 우리 하나님과 그와는 구별해서 ‘그거는 피조물이라 오늘도 그분이 숨 딱 끊으면 다 쭉 뻐드러져서 송장되고 그분이 없게 하면 없어지고 있게 하면 있게 하는 그분이다.’

이제 그와 피조물과 창조주의, 피조물의 역사와 창조주의 역사를 구별하고 구별하는데, 구별하는 데에 정확히 구별하는 사람, 조금 구별하는 사람, 좀 비슷하다고 생각하는 사람 이렇게 구별하는데 이렇게 똑똑히 구별해서 하나님 섭섭지 않게, ‘큰 거는 크다 작은 거는 작다.’ 이래서 하나님과 모든 데 대해서 이렇게 구별하는

‘이 구별을 정확히 하도록 해 주옵소서’ 하는 그 말과 ‘정확히 함을 주님이 받으시도록 해주옵소서’ 하는 거와 같습니까 다릅니까? 다릅니다. ‘받으시오며’ 하는 것은 우리가 아무리 해도 하는 것이 하나님에게 불합격이 많다 그말이요, 불합격이 많아. 불합격이 많은데,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서 이렇게 하나님을 구별하고 구별해서 하나님 본체와 하나님의 그 역사에 대해서 이렇게 구별하는 것은 혼자 두고 구별할 수 있습니까 둘을 두고 구별할 수 있습니까? 둘을 두고 구별할 수 있습니까 하나만 두고 구별할 수 있습니까? 구별은 어째요? 구별은 둘 이상이 있어야 구별이 됩니까 하나만 가지고 구별이 됩니까? 이것보다 이게 둘 이상이 있어야 구별이 된다 말이오.

구별하는 것을 여기 뭐 모든 수많은 피조물 있지 않습니까? 모든 수많은 피조물들이 있는데 이 피조물과 하나님과의 언제든지 내가 보고 접할 때에는 여기서 구별해서, 아무리 불미 속에 집어넣어 죽인다 이래도 거기서 구별해서 ‘죽이는 것은 불이 죽이지도 못하고 느부갓네살 왕이 죽이지도 못하고 죽이는 권리는 주님이 가지고 있습니다' 하는 그것은 거룩히 여기는 것이라 말이오. 거룩히 여기는 것인데 ‘여김을 받으시오며’ 하면 거룩히 여겼는데 거룩히 여긴 그것이 합격이 됐는지 안됐는지 모르겠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하는 것은 합격이 되게 해 주옵소서 그말이오. 여게 까지 우리로 하여금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하는 것이니까 주기도문이 이러니까 우리가 기도하는 제 일 호 기도가 이겁니다.

그러면, 일호 기도가 하나님께 대한 기도인데 그 일호 기도가 돈달라는 기도입니까? 뭐 권세 달라는 기도요, 병낫게 해 달라는 기도요? 그 기도가 하나님이 어떤 분인 것을 나로 하여금 똑똑히 아는데 내가 아는 것을, 내가 똑똑히 아는 것을 하나님이 옳다 인정하실 수 있도록 똑똑히 알게 해 주옵소서. 또 모든 거와 구별할 때에 그 구별이 하나님 보실 때에 ‘오, 네가 바로 구별했다.’ 당신이 인정할 수 있는 구별에 도달하게 해 주옵소서.

이러니까, 하나님을 아는 것, 하나님에게 대해서 내가 어떻게 해야 되나? 하나님을 내가 어떻게 대우해야 되나? 그분을 어떻게 대우해야 되나? 크신 분을 크신 분만치 대우 못 하면 그 모욕 아닙니까? 기독자의 신앙생활이 짜다라 연보하고 뭐 전도하고 심방하는 것도 좋습니다.

그렇지만 '이름이 거룩히 여기심을 받으시오며' 이 사람은 아무리 땅 위에 큰 것도 복잡한 것도 찬란한 것도 아름다운 것도 모든 것이 있지만 거기서 이름을 거룩하게 자기가 구별하는데, 그분의 크심과 그분의 역사를 구별하는데 구별하면 저도 '내가 이렇게 구별해서 하나님을 대우하니까 하나님이 기뻐하실 것이다' 하는 게 아니라 구별해서 대우하는데 이 대우한 이것이 과연 그분이 보실 때에 '됐다' 이렇게 하시나 나는 구별한다고 했지만 그분이 보실 때는 도리어 걱정거리가 됐나? 이래서, 바울이 말하기를 '내 마음에 자책할 것이 없지만 이렇기 때문에 알지 못하심이 없으신 그분 앞에 설 걸 생각하니까 항상 두렵고 떨리는 것뿐이다' 말한 것이라 말이오. (*고전 4:4 내가 자책할 아무것도 깨닫지 못하나 그러나 이를 인하여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하노라 다만 나를 판단하실 이는 주시니라)

이래서, 뭐 이렇게 뭐 하나님 섬기는 것도 그거 좋기는 좋지만 우리가 어디를 대하든지 무엇을 대하든지 하나님과 그거와의 관계를 똑똑히 판단해 가지고 그분을 그분으로 대우하는 것을 이것이 하나님이 제일 기뻐합니다.

이래서, 시편 91편 14절에는 보면 '저가 나를 안즉 내가 저를 높이리라'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알아서 바로 대우하는 그것이 피조물 위에 뛰어 올라가는 거라. 그러면 그 사람에게 얼마든지 줄 수 있지 주지만 이것이 아주 버르장이 없는 거 모양으로 이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모르고 날뛰는 그런 자에게 하나님이 줘 놓으면 저 망하고 말지 유익되지를 않는다 그말이오. '저가 나를 안즉 내가 저를 높이리라' (*시 91:14 하나님이 가라사대 저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저를 건지리라 저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저를 높이리라)


그래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것을 자꾸 이거 말로만 해가지고 안 되니까 여러분들이 명상하고 기도하면서 이것은 자기 생활가운데에서 자꾸 날마다 자기가 변화되는 것만치 알아지게 됩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러니까 기도할 때는 ‘똑똑히 상대를 바로 찾아 가지고 기도해야 되지 기도의 대상을 찾지 안하고 벌로 기도하는 거는 소용없는 기도’다 그 말이오.


마 5:6-8
위에도 내나 해석하기를 사람에게 보이려고 외식하는 자들 회당과 거리 위에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는 그것은, 기도는 하나님을 서로 상대해가지고 서로 대화하는 것이 기도인데 하나님을 찾지도 못하고 항상 사람만 상대해 가지고 기도하기 때문에 그것은 그 효력도 다 받았다. 너는 사람보고 상대했기 때문에 사람이 너 갚아 줬으면 갚아 줬지 하나님께는 상관이 없다 그 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기도할 때는 꼭 기도의 대상인 하나님을 바로 찾아 가지고 바로 상대해서 대면해 가지고 기도해야 되는데 이분을 찾을라고 하는 데에는 골방에 들어가야 거게 계신다. 딴데 계시지 않는다. 거게 계신다.

네가 네 양심 속에 들어가야, 양심 속에 들어간다는 말은 ‘자기가 자기 양심으로 생각할 때에, 자기 양심으로 생각하는 것은 뭐이냐 하면 옳게 바르게, 안할 거 한 거, 할 거 안한 거, 삐뚤어진 것, 잘못된 것 그런 것을 자기 지능대로는 찾아 가지고 옳고 바르게 하려 하는 그 마음을 가지고, 그 사람이 되어서 그럴 때에, 옳고 바른 것을 찾을라고 애를 쓰다보니까 그게 너거 하나님이 계신다.

'네 진리 속에 하나님이 계신다' 그 진리도 이 시간도 지금 여기 있지만 하나님이 다 우리 각각 자기에게 주신 진리가 있습니다. '너는 좀 도둑이다 정직해라', '너는 간사하다, 너는 좀 원만해라. '너는 질투다', '너는 시기다', '너는 원망 불평이다' '너는 돈 욕심이다' '너는 권세 욕심이다' 각각 다 사람이 다르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에게 대해서 지금 주시는 진리가 따로 있습니다. 각각. 그 다른 사람이 다 맞은 게 아니라 자기는 자기대로의 자기에게 해당된 진리가 있으니까 그 해당된 그 진리를 찾아 가지고 거기서 해결을 지워야 주님 만나지 딴데서는 만나지 못한다 그거요.


이러니까,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거는 기도의 상대를 똑똑히 바로 찾아 가지고 기도해라. 그러면 우리 하나님은 하늘에 계신분이시다. 요것은, 하늘에 계신다는 이것도 무슨 영계에 계신다고 이렇게 생각하고 어린 사람들은 이 공중에 계신다 이래 생각하는데 이거는 평가적으로 하늘입니다. 평가적으로. 또 비판적으로 하늘이라. 가치적으로 제일 그 이상이 없는 거게를 가리켜서 하늘이라고 말한 것이고 비판적으로 옳고 옳은 데 그 완전 무결인 거게를 가리켜서 하늘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공간적인 하늘이 아니고.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이런데 이분이 지극히 크신 분인데, 모든 것이 그분의 것이고. 전지, 전능, 완전, 주권, 주재, 창조주 이분이신데 그분이 '내 아버지'가 아니고 '우리 아버지' 그분이 우리 주님의 대속으로 말미암아 나와의 이래 큰 이제 부자의 밀접한 관계가 돼졌다. 내가 첫째아담에 속한 내 육체로 말하면 아버지와 어머니의 그 혈육을 받아 가지고 났고, 이랬는데 우리에게 영원히 없어지지 안할 그 인격이 들어 있으니 이 영육은 항상 그 영육인데 그 영육이 마귀에게 속해서 마귀화된 그 영육으로 살던 것을 이제 거기서 해방시켜 가지고 이제는 피와 성령과 진리로 사는 이 영육이 됐으니 영육은 그 영육이지만 그 영육의 기능이나 그 영육의 본질과 본성이나 그 영육의 가치나 그 영육의 생명은 첫째아담의 생명 그런 것이 아니고 이거는 다 하늘에 속한 자의 생명이 됐다 그거요.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이름’이라는 것은 하나님 본체도 다 포함해서 이름이라. 하나님이 이렇게 역사하시고 저래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도 다 포함해서 이름이라, ‘거룩히 여김을’ 이래서, 하나님 본체와 모든 존재와, 모든 존재가 많이 있는데, 모든 존재가 천상 천하에 영계나 물질계에 꽉 찼는데 존재와 존재를 구별할 때에 하나님 본체와 모든 존재와 구별하는, 이 구별해서 하나님의 본체는 어떤 존재이며 또 모든 존재는 어떤 존재인가 요 구별을 바로 하는 그것이 하나님을 대우하는 것입니다. 이해가 됩니까? 요, 구별을 바로 하는 게 하나님을 대우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의 역사와 땅 위에 있는 모든 수많은 것들이 다 움직이고 있는데 움직이는 그 역사와 하나님의 역사를 구별해. 하나님은 이떻게 역사하고 땅 위에 있는 움직임들은 다 이렇게 역사한다. 그 역사하는 그것을 구별하는 그것을 우리가 하도록 노력을 해야 되겠고, 구별하는데 구별하는 그것이 하나님 앞에 합격이 되면 구별 대우함을 하나님이 받으셨다 그말이오. 내가 구별 대우를 했지만 그게 잘못 될 때는 하나님께서는 그 대우를 받지 못해요. 내 구별해서 대우함이 하나님 앞에 과연 상달이 되고 하나님이 그 대우를 받으시기에 기뻐하실 수 있고 받으실 수 있는 온전한 완전한 그런 구별 대접이 되게 해 주옵소서 하는 그런 말이라 그거요.

그래서, 땅 위에 온갖 역사가 있지 않습니까? 역사가 있는데 이제까지 모든 신학자들이 생각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구원하는 그 구원 역사, 구원 역사 그것은 하나님이 주권으로 이래 가지고 하고 계시지만, 그 구원 역사는 주권하고 계시지만 뭐 개미 한마리가 나고 가고 개미 수염을 요래 흔들고 조래 gms드는 그런 거까지 하나님이 다 주권하고 계신다는 것은 그것은 뽀얀 거짓말이다 이래가지고 모두 다 오늘까지의 사람들이 '하나님이 어떻게 주권 역사를 하고 있느냐? 굵닥굵닥한 그런 것만 하나님이 주권 역사하고 계신다.' 또, 하나님이 예정은 어떻게 했느냐? 하나님이 예정도 간추려서 대들보 같은 아주 중요한 것들만 다 예정했다 이랬는데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과 예정이 다릅니다.

주권은 개미 한 마리가 수염을 요리 혼들고 조리 흔드는 것도 하나님 그분이 낱낱이 주권해서 하지 다른 거는 아무것도 월권하지 못한다. 하나님 그분이 홀로 주권한다는 것은 다른 데에게 도움이나 침해나 받지 안하고 당신 꼭 뜻대로 그것을 혼자 주장대로 혼자 능력으로서 그 일을 역사한다 하는 것을 주권으로 역사하신다 주권 섭리라 이렇게 말하고.

또, 어떤 분들은 '대략만 그렇지 전체는 다, 큰 것만 그렇지 작은 거는 그렇지 않다.' 하나님의 예정도 우리가 지금 믿는 예정과 우리가 깨달은 또 하나님의 주권과 다릅니다. 그러면 어째요? 강령만 하나님이 예정하셨다는 그 예정과 모든 지극히 작은 것, 개미 한 마리가 났다가 죽었다가, 하루살이가 요리 나고 조리 났다고 하는 것도 다 하나님의 예정이라, 열 마리 나왔고 스무 마리 나왔고 다섯 마리 나온 것도 예정 그대로 딱 수자가 나왔고 그대로 또 죽어지지 그 예정의 수를 벗어나지 못하고 예정 그대로다 요렇게 예정을 믿는 것과 그렇게 그렇지 안하고 그저 강령적으로 대략적으로만 이래 하나님께서 예정하셨다 하는 것과,

하나님의 역사에 대해서 두 종류가 있는데 오늘까지에 내려오는 학자들의 예정론과 또 하나님의 주권론과 오늘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예정론과 주권론이 다른데 어느 것이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는 것인지가 문제입니다. 거룩히 여김을 받는 것인지.

우리가 깨달은 것이 하나님 앞에 '오, 너거가 나를 그렇게 구별하고 구별해 가지고 대우한 것이 그것이 맞다.' 하실란지, 오늘까지 '그런 것까지는 하나님께서 다 그렇게 예정하시고 주권하시는 게 아니고 대통 틀어서 그 아주 원 줄기 굵닥굵닥한 것만 예정하시고 그렇게 주권하시지 그런 자잘한 뽀스래기 까지 다 그렇게 하시지를 안했다.' 이렇게 하나님이 하실란지!

그러면, '거룩히 여기심을 받으시오며' 하는 것은 하나님이 이 구별하는 것을 당신이 지금 평가하실 때에 인정하시는 평가를 말하는 것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한 것입니까 인정하든지 안 하든지 우리 인간 편에서 거룩히 여기는 행동을 개시하고 행동했으면 행동을 가리켜서 ‘여김을 받으시오며’ 한 것입니까, 어느 것입니까? 첫째 것이요 둘째 것이요? 첫째 것. 이것이 중요합니다. 그라면 누가 받을란지 모릅니다. 이다음에 우리가 깨달은 그 예정론과 주권론을 하나님이 받으실 란지, 또 오늘까지의 모든 학자들이 말해 놓은 그걸 받으실 란지, 그걸 받으면 우리는 낮을 뻘거이 해 가지고 돌아섭니다. 우리는 그때 수치를 당합니다. 또 우리 한 것을 하나님이 옳다 인정하시면 이제까지의 말한 그런 것은 얼굴이 뻘거이 수치를 당합니다.

이러니까, 우리가 기도하는데 이런 것이 기도에 제일호의 중대한 문제라. 기도에 대해서는 기도의 대상을 찾는 것이 제일 중요하고 그다음에는 내가 하나님에게 대해서 올바른 관계를 가지고 살 수 있는 내가 되도록 하시고 올바른 관계를 가지고 살라고 하는데 올바른 관계를 가지고 올바른 관계 가진 생활을 할라고 하는 이것이 하나님 앞에 옳다 인정받을 수 있는, 합격될 수 있는 그 생활이 되게 해 주옵소서.

요것이, 우리가 돈 구하는 것보다 훅 죽음에서 생명을 구하는 것보다 권세 구하는 것, 모든 것 구하는 것보다 이것이 구하는 것이 제일 일호라 하는 것을 주기도문에 주님이 우리에게 가르쳤습니다. 이것을 알아야 돼요. '여기심을 받으시오며' 또 그다음에는 뭘 기도할 건가? 또 돈 기도하지 안해.


나라이 임하옵시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그말은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통치하시는 모든 나라인데 이 하나님의 나라가 건설되도록, 하나님의 나라 건설을, 하늘과 땅위 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는 이 통일을, 하나님의 나라가 건설되기를, 하나님의 나라의 모든 조직과 정치가 다 수립되고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들이 만들어지고 이렇게 해서 하나님의 나라,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의 나라,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이 죽음이 없는 영생하는 나라, 완전한 나라, 사랑의 나라, 진리의 나라, 이 하나님의 나라, ‘나라이 임하옵시며’ 이 나라가 이루어지기를, 천국이 내게 이루어지기를, 내가 천국 사람이 되기를, 모든 천국 조직과 천국 건설들이다 되기를 이걸 위해서 기도하는 것이 우리의 두번째 기도입니다. 두번째 기도. 이거 다 영원하고 완전한 것을 소망하는 것이라. (*엡 1:10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 *엡 4:6 하나님도 하나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

이러니까, 하나님의 나라가 자기에게 이루어지기를, 또 하나님의 나라가 모든 사람에게 이루어지기를,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기를 원하는 이것이 성도들이 우리가 구하는 것이라 말이오, 그것을 두번째로 우리가 기도하고, 하나님의 나라 되기를, 하나님의 백성 되기를, 모든 이 교회가 다 천국이 되기를, 천국은 뭐이 천국인데? 하나님이 왕이 되시고 하나님의 사랑의 이 진리 법칙이 그 나라의 법칙이 되고 조직이 돼 가지고 통치하는 나라가 하나님 나라입니다. 이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기를 우리가 기도하고, 그것은 자기가 자기 자체에도, 자기 생활에도, 하루에도, 내 생활도 천국이 이루어지기를, 내 마음도 천국이 이루어지기를, 성질도 천국이 이루어지기를, 행동도 천국이 이루어지기를, 사상도 천국이 이루어지기를, 내가 같이 일하는 그 모든 단체에도 천국이 이루어지기를, 천국이루어지는 이 천국 이루어지는 것은 다 영생이 있는 나라가 천국나라요, 완전이 있는 나라가 천국나라요, 하나님의 통치로써 통일되는 나라가 천국나라요, 이것이 되어지기를 원하고,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세째로 원할 것은 하나님의 뜻 이루기를, 자기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하나님의 뜻이 성취되기를, 하나님의 이 천국 건설의 이 뜻이 요것이 완성되기를 요것을 원하는 것이 우리들이 기도할 것입니다. 주님이 가르치신 것은 3가지 기도인데, 3가지 이것을 구했습니다.

그러면, 이것을 구할 때에 그 사람은 쓸모있는 사람이 됩니다. 이것을 구할 때에 그 사람은 차차차차 자꾸 온전한 사람이 되어져 갑니다. 이거 외에 딴것을 구하는 건 다 불탈 것들이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그 다음에는 일용할 양식 주시고 하는 이거는 일용할 양식은 거석해봤자 이런데 이거 왜 네째로? 이거 구하는 것은 위에 3가지 기도한 이것이 밥을 먹어야 된다 그말이요, 먹어야 돼. 먹어야 되기 때문에 하는거라. 일용할 양식을 주는 거는 많은 양식을 말하지 않고 하루. 먹을 양식이라 그 말은 하루 종일 자기가 먹는 것이 이 3가지를 위해서 투자할 수 있는 그 자본이 되도록 해 달라는 것을 가리켜서 말씀하는 것입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이래서, 시간 많이 갔기 때문에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기도의 대상을 먼저 바로 찾는 것이 이것이 중요하다. 기도의 대상을 바로 찾는다 말은 기도의 대상을 바로 알고 자기와의 관계가 어떻다 하는 그 관계를 바로 알고 기도해야 되지, 기도의 대상을 바로 알고 그와 자기와의 어떤 관계가 돼 가지고 있는 거 이것을 아는 것이 이것이 기도의 제일호로 중요하고 그 다음에는 이제 하나님에게 대한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하나님은 본체와 모든 역사와 구별하는 역사, 또 본체와 모든 본체들과 구별하는 문제. 그러기 때문에, 자기가 땅 위에서 어떤 존재를 봐도 '이 존재는 주님이 다 지으신 것이다.' 어떤 움직임을 봐도 '이것은 주님의 움직이심이다.' 주님의 움직임으로 말미암지 않은 것 하나도 없습니다.

이번에 칼기 사건에 사람이 몇 명이 죽었다 하나 그런 것도 이것도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그가 뭣이 잘못했다, 뭐가 잘못했다. 아, 이거는 하나님이 이 일에 대해서는 당신이 주권적으로 섭리해 가지고 이래하셨는데 뭣 때문에 이렇게 됐나? 왜 이 일이 왔나? 이 일에 대해서 우리가 깨달을 것이 뭐이며 우리가 할 일이 뭐이며 여기 대해서 취할 태도는 뭐이냐? 이것이 이름을 거룩히 여기는 것인데 그게 하나님 앞에 '합격' 됐으면 여김을 받으신 것이라. 합격되기까지 할라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이번에 대번에는 안 될 것이고, 앞으로 새벽으로 늘 계속하는데 새벽으로 나오는 사람들은 알게 될 것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88011553) 3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기도할 때는 기도의 대상을 바로 알고 바로 찾아 가지고 바른 관계를 가지고 기도해야 된다 하는 이것을 첫째로 강조했습니다. 기도는 하나님하고 둘이 의논하는 것인데 하나님 아버지와 서로 대화하는 것이고 또 모든 일을 같이 계획하는 것이고 경영하는 것이고 또 하나님과 동행하고 동역하는 일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상대하지 안하면 아무 소용없습니다. 기도할 때에 제일 중요한 것이 하나님 아버지를 기도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 제일 중요하고, 기도의 대상은 하나님인데 하나님을 상대 하지 않고 하는 그 기도는 다 소용 없는 기도입니다.

땅 위에 사람들이 기도하는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안 믿는 사람들도 저거대로 다 기도합니다. 저거대로 다, 기도라 말은 빌 기(祈)자, 빌 도(禱)자 인데, 비는 것인데 땅 위에 있는 사람들이 전부 기도 다 하는 사람이요, 안 하는 사람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다 이방인들이 하는 것이요, 외식하는 기도라. 인간끼리만 하고 있는 것이지, 다시 말하면 피조물끼리만 하고 있는 것이지 창조주와는 상관없는 기도이기 때문에 그것 암만 해 봐야 전부 사망이요, 사망을 넘어서지 못합니다.

하늘에 계신
그런데, 우리는 기도할 때에 ‘하늘에 계신’ 하늘에 계신다 말은 공간적으로 높은 데 계신다는 뜻이 아니고 첫째는 가치적으로 제일 높다 말이오. 가치적으로 제일 높다 하는 그말도 좀 알아듣기가 좀 힘드는 말인데 아무리 이 면 평가해 봐도, 이 면을 따져 봐도 저 면을 따져 봐도 하나님보다 높은 이가 없어. 제일 높아.

평가적이라 말은 권세적으로라 말이 아니고 지혜적으로라 말이 아니고 이모 저모의 모든 면에 가치를 따져봐도 하나님보다 더 가치 있는 이가 없다 그말이오. 평가적으로 제일 높은 평가, 또 그다음에는 이제 도덕적으로 하늘에, 또 지혜적으로 하늘에, 능력적으로 하늘에, 또 소원적으로 하늘에, 소원으로서도 제일 옳고 바르고 참된 소원이라. 또 경영적으로 계획적으로 모든 면으로 '하늘에 계신' 그라면 여러분들이 하늘에 계신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지금 말로만 지금 이렇게 표현해서 이래 말하는 것이지, 그러면 우리가 기도의 상대로 삼는 이 하나님은 어떤 분이시라는 것을 그것을 자기가 바로 알고 이렇게 기도하는 이것이 제일 효력 있어. 하나님을 만나야.

예를 들어서 사람이-그게 아니지만-어떤 참 아주 의인을 하나 만났는데 그 의인을 도적으로 알고 만났으면 잘못 알고 만나면 거게 대해서 잘못 알았기 때문에 잘못 인식한 인식으로 인해서 잘못 상대하니까 그분을 바로 상대하지 못하니 그 상대해서 하는 모든 일들이 다 실패될 것이라 그거요. 이러니까, ‘하늘에 계신’ 이러면 떡 이렇게 ‘하늘에 계신’ 이렇게만 말해 가지고는 우리가 기도하는 대상이 되는 하나님 아버지를 바로 아는 것이 되지 못하기 때문에 ‘하늘에 계신’ 이랬으면 ‘하늘에 계신’ 이래 놓고는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냐 하는 것을 자기가 자꾸 새겨야 될 것입니다.

‘내가 기도하는 분은 어떤 분인가?’ 자꾸 새겨서 그분을 아는 것만치 나는 그분에게는 기도해야 되겠고 아는 것만치 그분에게 대해서 바로 기도를 하겠고 아는 것만치 그분이 내게 응답하고 내 소리를 들어서 서로 대화를 할 수 있는, 서로 의논할 수 있는, 사람도 서로 말할 수 없다 말이오. 말이 통하지 않으면 말할 수 없다 말이오. 그 사람하고는 말을 할 수가 없다. 대화할 수가 없다, 말이 통하지 않는다. 그 사람하고는 무엇을 의논할 수가 없다. 그 사람은 무엇을 같이 할 수가 없다. 같이 할 수 없는 그런 사람이 돼 가지고는 되는 것 아니니까,

이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이럴 때에 그분이 어떤 분인 것을, 내가 이렇게 성경이 가르쳐 주시는 대로 자꾸 생각하고 깨달을 때에, 나도 하나님 아버지를 아는 것만큼 내 자신도 알게 되고, 또 그분을 아는 것만큼 그분을 바로 상대할 수 있는 그런 자체 변화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사람을 상대할 때에도 상대방을 아는 것만치 자기도 그 사람에게 대해서 벌써 상대합니다. 암만 의인이라 해도 저놈은 도둑놈이다 이렇게 똑똑히 알면 내가 모든 대화하는 그 전부는 말로는 겉어머리 그 사람을 이래 껍데기로 이래 대우해도 속으로, 말과 마음이 딴거 같아도 실은 말과 마음이 하나입니다. 마음 있는 대로 말합니다. 껍데기 음만 다르지 속은 같다 그거요.

(23:15)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하늘에 계신" 하늘에 계신 이거는 지극히 크심을 말합니다. 지극히 크신, 지극히 온전하신, 지극히 깨끗하신, 지극히 공정하신, 지극히 모든 것이 다 정확 무오하신 하나님, 절대이신 하나님, 이것을 가리켜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아버지라고 하는 것은 자기를 깨닫고, 자기는 거기서 났다 하는 것을 깨닫고 거기서 났으면, 마치 육체로 말하면 육체의 부모라 하면 나는 거기서 나왔다, 그로 말미암아 생겨졌다 하는 그것을 아는 것 아닙니까?

말 들으니 언제 그 이산가족을 찾는 그때에 자기의 그 부모, 자기의 결혼한 시부모니까 상관도 없는 사람이지만 그 남편과 사니까 시부모라서 그 시부모를 찾기 위해서 애를 많이 써 가지고 찾았는데 찾고 난 다음에는 수십 년 같이 있는 사람보다도 처음 만나는 사람이지만 자기는 참 부모로 알고 부모로 대접하고 서로 믿고 의지하고 이렇게 한다는 말 들었습니다. 이러니까, ‘아버지’ 왜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가 되는가? 이 아버지라는 인식을 똑똑히 하는 것이 기도하는 데에 셋째가 되는 것이오.

첫째는 뭐이요? '하늘에 계신' 아는 것이 기도하는데 제일 첫 순서다, 그게 제일 중요하다. ‘하늘에 계신’ 제일 중요하다. 그다음에는 ‘우리’인데 셋째로서는 ‘아버지’ 그와 나와의 관계가 어떻다 하는 그것을 똑똑히 아는 것이 셋째로 중요하다.

아버지라면 양자 아들도 있고 적자 아들도 있는데 우리를 양자 아들이라고 이렇게 말하는 것은 우리는 피조물이라 하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고 야고보서에 '진리의 말씀으로 너희를 낳으셨느니라' 이랬어. 우리를 직접 낳았어. 우리가 신적 요소로 탄생한 자요, 우리가. 신적요소로 출생한 자라. (*약1:18 그가 그 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좇아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

신적 요소라니? 부종, 부정이 아니고 부종, 저는 부종이라고 가르쳤어요, 부정이라 하는데 그건 아이들이 몰라서. 부정이라는 말이 맞는데 ‘부종이라’ 종자라고 '종'자를 가르쳤어. 부종 모혈로 우리 육신이 생겨졌어. 우리 육신은 부종 모혈로 생겨진 거와같이 우리의 하나님 아버지 아들은, 신격의 모형인 인격은 하나님의 형상인 영의 사람은 뭘로 났느냐? 신적 요소로 우리가 출생됐어. 물질로 난 게 아니고 신적 요소로 출생했어.

'너희들이 땅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같이 이제는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으리라'(*고전 15:49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으리라) 땅에 속한 자의 형상은 우리는 물질로 된 이 형상, 꼭 첫째아담과 꼭 같은 지체로 요소로 다 생겨져 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이제는 '하늘에 속한 자의 요소라' 그러면 하늘에 속한 자는 곧 예수님이신데 그는 창조주와 피조물의 요소로 된 신인양성일위이신 예수님이신데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배피 공로는 창조주 피조물, 신성 인성 양성위 요소라, 양성의 요소. 또 영감은 신성의 요소라. 진리는 신성이 역사하는 그 법칙의 요소라.  이래서, 피와 성령과 진리로 난 우리들이라. 그 자기를 깨닫는 거, 이게 뭐이냐? 이것이 자기가 뭐인 줄도 모르면 우리 기도하는 것이 그것이 바로 될 리도 없고 힘도 없는 것입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지금 그 아들을 잊어버려 가지고 그걸 벌써 어릴 때 잃어버려 놓으니까 못 찾고 이래서 항상 아이에 대해서 참 근심을 하고 포원을 가지고 있는데 이게 한 댓살 먹어서 발견이 돼서 찾았어. 찾았는데 그 찾으니까 아버지 어머니는 알기를 우리 아이는 어디 점이 있다, 뭣이 있다 이라니까 확실하다 말이오. 확실하니까 그 잃어버린 아들 찾아 놨으니 얼마나 좋겠소? 이래 놓으니까 모든 게 아까운 게 없고 다 주고 싶지만 아들 이놈은 누가 생전 보지도 못한 사람이 아버지라 하니 믿어지지 않는다 그 말이오. 믿어지지 안하니까 아버지에게 대해서 소망하는 그 소망의 은혜가 그게 정상으로 될 리가 없어. 이런 거 다 끌어다 붙여 가지고 이렇게 알도록 하기 위해 이러기 때문에 이런 것이 다 하나의 비유로 말하는 것이니까 그렇게 그저 알아듣기가 좀 그래요.

아버지 어머니는 보니까, 이게 그 아이라 하지만 그 아이라고 믿을 수가 어디 있나? '우리 아이는' 아버지는 아는 데가 있다 말이오. 아버지는 아는 데가 있어서, 어머니 아버지는 알아서 '보자' 그 아이를 훔쳐간 유괴한 사람이야 그 어디 알 리가 있습니까? 모르니까 그런 거 주의를 안 줬지만 이 아버지 어머니는 아니까 '보자 너는 다리에 뭣이 점이 어찌 있고 또 뭣이 있고' 표 나는 게 있으니까 '그게 보자 있는가?' 보니까 확실히 자기가 아는 대로의 자기 아들이라. 그러면 얼마나 반가울 것이요? 얼마나 기쁠 것입니까? 이 기쁘고 이러니까 뭐 좋아서 이래 하지만 그 아이는 믿지를 않는다 그 말이오. 이 생전 처음 보는 사람이 이렇지만 '이분이 그 뭐' 아버지인지, 이제까지 유괴해 가지고 가서 키운 그 사람만 좋아하지 이게 알 리가 없다 그 말이오.

이러니까 알 리가 없으니까, 알든지 모르든지 아들이 됐지만 그 아들로 말하면 아버지를 알지 못하고 참 부모의 관계를 모르다보니까 그 아이가. 그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대해서 소망하는 것이나 의지하는 것이나, 바라보는 것이나 또 경영하는 것이나 모든 믿는 것도 그러하고 소망하는 것도 그러하고 의지하는 것도 그러하고 바라보는 것도 그러하고 뭘 부탁하는 것도 원하는 것도 청하는 것도 그게 다르다 그 말이오. 그렇지 않아요? 이 무슨 말인지!

의례히 지금 모두 옷도 사 주고 밥도 주고 공부도 시키고 이래가지고 얼마나 다 한다는 그걸 참 알았으면 거게 대해서 아이가 평강도 누릴것이고 또 소망도 가질 것이고 상대도 가질 것이고 행복감도 느낄것이고 그 모든 것이 다 정상이 될 것인데 모르니까, 믿어지지 안하고 모르니 그 하는 모든 일이 다, 배가 고픈데 이거 밥을 또 어찌 달라 해? 이거 옷을 어찌 달라 해? 옷을 갖다 주니까 아이고 고맙습니다. 이거 옷을 주시니 또 밥을 주시니 고맙다고 뭐 학교 보내 줄라 하니까 이거 고맙다고 이거 큰 신세를 진다 이렇게 생각하면 부모도 섭섭할 것이요, 안 그렇겠습니까? 부모 섭섭하겠어 안 섭섭하겠어? 부모도 섭섭할 뿐 아니라 그 아이 자체도 그 부모에게 정상적인 소망을 가질 수 없고 의지를 가질 수 없고 믿음을 가질 수가 없고 관계를 가질 수가 없고 계획을 가질 수가 없다 그거요. 그거 있겠습니까? 없겠습니까?

이 학생들 좀 대답해 봐. 저 안경 쓴 학생. 있겠어 없겠어? 좀 인제 깨달아져? 아버지를 바로 찾아야 되지 아버지를 인식하는 그것을 주님이 가르쳐요. '네가 아버지를 똑똑히 알아서 이 아이 하나는 그 어째 멀뚱멀뚱하고 밥을 먹으며 이렇게 하는데 보니까 자꾸 미안스러워합니다. 야야 밥 먹으라 이라니까 미안해 하는데 한 놈은 흘떡 뛰어와 가지고 의례히 밥을 먹을 줄 알고 뭐 반찬이 없으니까 트집을 잡습니다. 에이 내 안 먹을꺼야' 이래 가지고 좀 트집을 잡고 이라는 그거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똑똑히 알아 놓으니까 인제 그렇게 자신만만하고 모든 하는 태도가 다르다 그말이오. 하나는 지금 아버지를 몰라 놓으니까 태도가 다르다 그말이오. 이러니까 아버지를 바로 알아야 된다.

우리 아버지
그러면, 이 하나님이 어떻게 우리 아버지가 횟느냐? 아버지가 됐느냐? ‘우리 아버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내가 우리가 됐기 때문에 아버지가 됐지. 이걸 알아야 돼요.

우리라니? 우리라는 것은 내 아버지가 아니고 우리라는 것은 복수니까 뭣 때문에 내 아버지면 내 아버지지 우리라는 복수를 했소? 복수가 뭐이 들어서 복수가 됐습니까? 우리를 대속해 주신 주님하고 나하고 하나됐기 때문에 주님으로 인해서 아버지 됐다 그 말이오.

하늘에 계신
‘하늘에 계신’으로서 그만 하늘에 계신 그분을 깨달으면 하늘에 계신 그분 한 분이 나를 봐 준다면, 그분 한 분이 나를 사랑하신다면, 그분 한 분이 나를 돕는다면, 그분 한 분과 나와의 좋은 관계가 맺어져 있다면 그 이상 원할 게 없어. 그분이, 모든 게 다 그분의 전부인데. 하는 역사는 전부 그분 혼자 주권적으로 개별 섭리를 하시는 그분이신데 그분이 지극히 크심을 먼저 아는 것이 중요하다.

이래서, 너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이게 얼마나 중요하다는 이것을 깨달아야 되는데, 엊저녁에도 내가 설교하고 어떤 사람만나니까 도무지 무슨 말인지 몰라서 아무 깨닫지 못하고 재미가 없고 아주 그렇다고 그런 말 해요. 그래 내가 있다가서 '네가 깨달을 리가 없다. 얼마나 어려운 그 말씀인데 그렇게 깨닫겠느냐?'

여기도 지금 깨달아지지 안하니까 자꾸 네가 느끼도록 하기 위해서 이런 말 저런 말, 자꾸 끌어다 붙여서 지금 비유로 알려 주도록 할라 하는 것인데, ‘하늘에 계신’ 내가 상대하고 있는, 내가 상대하는 그분이 하늘에 계신 분이라 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분의 크심을 아는 것만치 자기가 그분과 상대하는 그 상대는 크고, 또 자기가 상대하는 그 권위는 크고, 그분이 큰 것만큼 자기도 크다, 그분을 상대하게 됐으니까.


아버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예수 그리스도의 이 대속으로 말미암아 아버지가 됐다. 그러면 호칭 아버지냐? 부르기를 그렇게 아버지를 부르는 아버지가 됐나? 또 법적으로 아버지냐? 육체의 인정으로 아버지냐? 그러면 핏줄로 아버지가 된 아버지냐? 아니라. 그러면 그저 말로만 아버지고 그런 인연이 있다는 그런 인연으로 아버지냐? 이 아버지를 아는 데에 여러 가지로 사람들이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아버지는 내 육체는 육체의 부모로 말미암아 내가 났고, 그러니까 아버지 어머니가, 씨는 아버지의 씨요 기르기는 어머니가, 모두 다 자기의 육체의 요소를 길렀기 때문에 나고 난 다음에, 났는데 그게 보니까 눈 보니까 눈은 꼭 아버지 닯았다. 입은 어머니 닮았다. 이상하지 않소? 보면 꼭 닮았다 말이오. 닮은 것은 그 요소가 빠져 나와 가지고 됐기 때문에 닮았다 그거요. 그 요소가 빠져 나와 가지고 생겼기 때문에 닮았어.

그러니까, 이것은 뗄 수가 없고 자기 몸이요 자기 것이기 때문에 자기 몸이요 참,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요, 이러기 때문에 이게 인연을 다른 인연보다도 그 인연이 강하다 그거요. 그래 안 믿는 사람들은 통계에 말하기를 피는 물보다 진하다 그말은 모든 물질 그 모든 것보다 이제 피와 살로서 이렇게 연결된 그 부모는 다르다 그말이오. 아까 유괴당한 아이 말한 그런 것도 다 자꾸 여러분들이 가서 새겨보면 알거라.

이래서,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된 것은 우리는 그라면 칭호적이냐? 그런 게 아니라. 신인양성일위이신 그분의 요소로 우리가 됐어, 그분의 요소로. 주님의 신인양성일위의 대형, 대행, 대화친의 이 공로를 베푸신 그분의 요소, 그러면 그분의 피의 요소는 인적 요소입니까 신적 요소입니까? 무슨 요소요? 뭐이야 이거는? 여기 학생, 무슨 요소야? 피로 말미암아 지금 우리가 거듭나지 안했어, 중생되지 안했어? 신적 요소? 그라면 가서 배워 가지고 가 봐야 안 돼. 바로 알아야 되지 또, 그다음에 있는 옆에 있는 학생? 신인양성 요소라 그말이요. 이름이 아니고 실지로 신인 양성의 양성이 전부를 다 기울여 가지고 만들어 놓은 게 뭐이냐 하면 대속인데, 만들어 놓은 게 대속이고 구속인데, 그 이름만 가지는 게 아니라 구속 그 자체, 구속 그것 가지고 됐어.

그러면, 구속의 냄새로 됐소 구속의 그림자로 됐소 구속이라는 그런 이름으로 됐소 실지로 구속이, 구속 그 자체가 본체가 우리에게와 가지고 됐습니까, 뭐입니까? 이름이요? 주님의 피로 '우리가 거듭났는데 그러면. 그 피가 말로입니까 이름으로입니까 또 그런 이치로입니까 그 실제로 피와, 주님의 신성과 인성, 신인양성일위의 그 실상이 투자돼 가지고 변화된 거라 그거요.

이걸 모두 사람들이 안 믿는데, 그 사람이 한국 사람인데 아주 그... 이번에 뭐이라 했나? 여자, 칼기 거석한 그 이름이 뭐이지? 마유미라 하는 그 사람은, 중국어도 잘하고 한국말도 잘하고 일본말도 잘하고 또 어디 말 한다 하더라? 네 나라 말인가 했어. 그 아주 재주 있는 여자라.

이런데, 그 사람이 그라면 하나 말합시다. 중국어를 잘 알고 있다하면 중국어가 그 사람 뭣이 들어서 중국어 됐소? 그 사람 뭣이 중국어로 변화됐지? 저 뒤에, 뭣이 들어서 그 사람의 중국어를 아는 중국어가 됐소, 중국어의 지식이 됐소? 뭣이 들어서, 뭐이 들어 그리됐소? 정력. 그 여인의 정력이 변해서 중국어도 됐고 영어도 됐고 일본말도 됐습니다. 그 정력 자체가 바로 그 사람의 어학으로 변해졌다 그 말이오. 그러면 그 사람이 어학 가진 것은 그 사람의 바로 정력이라. 정력 그게 들어 가지고 정력 그것이 어학화 됐다 말이오, 정력이 어학화 됐어 신인양성의 그 전부가, 신인양성의 정력의, 신인양성의 그 양성의 백분지 일이 들어서 대속이 됐습니까? 천분지 일이 들어서 대속이 됐습니까? 혹 그러면 일부분이 들어서 대속이 됐습니까? 전부가 다 들어가지고 대속이 됐습니까? 뭐이 됐습니까? 전부가 다 들어 가지고 대속됐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봐요. 전부가 다 들어 가지고 대속 됐어.

이러니까, 그것이 바로 예수님의 신인양성일위의 그 요소, 실상 정력, 그 정력이 내 속에 들어와서 뭣 됐습니까? 우리의 새사람의 신령한 사람, 하나님의 모형인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인 이 아들로 태어날 때에 그 종자는 뭐이 종자입니까? 예수님의 대속이 종자라. 이 실상이라는 걸 자꾸 알아야 돼요. 말로만 하는 게 아니고.


(46:40)실상이 와 가지고 신인양성일위의 요소인데 그 요소는 신적요소와 인적 요소 둘의 실상이 와 가지고 내게 종자가 됐다 말이오. 종자가 됐는데 그것을 키우기는 뭐이 키웠어요? 어머니의 피와 살이 키웠는데 이것은 영감과 진리가 키웠어. 영감과 진리가 내게 와 가지고 이제 이 셋이 와 가지고 자꾸 나에게, 이 종자가 돼 가지고 내가 나왔는데 내라는 이 종자가 그라면 뭣 속에 들었습니까? 피와 성령과 진리의 그 요소, 진리의 본체, 진리의 복 요소 이것이 들어와 가지고 내게 새로 난 자, 처음에 난 것은 아담 하와로 났지만 두번씩 다시 난 것, 우리가 거듭났다 그말은 죽은 것을 살렸다는 것, 죽은 것을 살렸다는 그게 있지만 그거는 껍데기야.

죽은 것을 살렸다는 것은 껍데기이고, 죽은 것을 재생했다는 게 아니라, 한번 난 거는 첫째아담으로 났고 다시 두번째 새로 났다, 두번째 또 난 거 있어 우리가 그러면 우리가 나기를, 우리가 예수 믿지 않는 사람은 무슨 요소로만 났습니까?' '피조물 요소 창조주 요소인데 안 믿는 사람들은 무슨 요소로만 났습니까? 피조물 요소로만 났습니다. 우리 믿는 사람은 무슨 요소로 났습니까? 무슨 요소로 났소? 육체의 사람은 피조물의 요소로 났고 또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 신령한 사람은 창조주의 요소로 났습니다.

그러면, 창조주의 요소로만 났습니까? 신령한 아들은 뭘로 났어요? 창조주의 요소로 났어요? 뭘로 났어요? 우리의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된 이 요소는 창조주의 요소로 났습니까 피조물의 요소로 났습니까? 창조주의 요소와 피조물의 요소 양소로 났어. 그게 뭐이냐? 그게 씨라. 그러기 때문에 피조물 씨로 났고 창조주 씨로 났어, 이걸 깨달아서 알아야 하나님 아버지와 자기와의 관계가 바로 이어져.

야고보서 1장 18절(*약1:18, 그가 그 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좇아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에 보면 '그가 그 조물 중에', 피조물 중에, ‘조물 중에 우리로’, '우리로'... 왜 우리로가 복수가 돼? 우리로가 뭐이야? OOO조사님, 우리로가 뭐이요? '그가 그 조물 중에 우리로'... 우리가 뭐인데? (예수님이 대속과 내가 하나됨) 그래, 그걸 똑똑히 알기 위해서 '우리로' 자꾸 이라는 거라. '우리로', 대속입은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한'하는 요거는 하나 둘 하는 그 '한'이 아닙니다. 요 '한'은. 요게 '한'하는 것은 하나둘, 일호, 이호 하는 게 아니라 하나뿐 되는 거라. 하나뿐만 이라, 하나뿐. '한' 하는 이거는 하나뿐이지 딴게 없어.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그러면 첫 열매라 하는 이것은 인제 둘째열매, 셋째열매 자꾸 더 있다 말이오. 이거는 순위를 말하는 것이고 '한' 하는 이거는 하나 단일을 말합니다. '한' 하는 것은 단일성을 말하고 그다음에게 '첫' 하는 것은 순서성을 가리켜서 말한 것이라 말이오.

'첫 열매가' 열매라 말은 당신이 창조하신 창조의 목적 결과라 그 말이오. 열매라 말은 그 결과. 그러면, 모든 것을 하나님이 창조하셨는데 창조하신 목적이 뭐이냐? '창조하신 목적의 결과로' '목적의 결실로' '목적의 완성으로' 그것을 가리켜서 첫 열매라. 열매란 이것도 얼마나 알기가 어려워, 그렇게 쉬운 게 아니고.

(*주해사전 삭제)
여러분들이 다 주석을 찾아 봐, 어째 가지고 있는지? 이러나 이걸 듣고난 다음에 시비를 해 보란 말이요, 어느 게 옳은가! 이거 도무지 믿지 않기 때문에, 이제 설교록은 다른 데에서 다른 목사들이 사 가지고 가는 것은 뭐 백 몇 십 명이 돼요. 이런데 우리 총공회 속한 목사들은 설교록 사 가지고 안 가. 저거가 몰라.

알맹이를 아직 몰라. 이것을 정말로 알면 가 가지고 어디든지 가서 어디든지 뭐 미국이고 일본이고 뭐 어디든지 가 가지고 요 진리를 바로 증거하면 마구 뒤비지고 이럴 건데 이거 모르기 때문에 교회가 만날 부흥 안 되고, 그 중에서 왕이 될라고, 왕 될라고 제가 뭐 주권하지 안할 거, '이거는 내가 관계할 수가 없으니까 내가 관계가 없으니 이거는 내가 누구에게로 미뤄야 된다' 제가 하지도 안할 일도, 닥치지도 안한 일도 전부 다 꺼머당겨 가지고 제가 할 듯이 왕노릇만 하고 싶어서, 아직까지 그 참 날개도 나지 않으면서 날아다닐라고 이래 가지고 왕노릇할라 하는 그것 때문에 다 죽었어. '우리와 함께 왕노릇 하기를 원한다. 우리 없이 네가 왕노릇 할라고 하지 말고.' 그것 때문에 다 죽었어. 이러니까, 우리 총공회 산하에 있는 이 목사들은 제가 왕될라고, 어림도 없어.

제까짓 거 가지고는 지금 이 세계에 대적이 여러 수천수백이라고 할 수 있는 가운데 이런 대적인데 그분들로 더불어 싸워야하는 것인데 뭘, 아무것도 알지 못하면서 지금 배워 가지고 몇 가지배우면 그만 그거 팔아 가지고 왕노릇 할라고 제가 다 안듯이 왕노릇하라고, 여기 OO교회 O목사 보니까 좀 내가 저를 좀 열심히 그래 하니까 좋다고 그래서 희망 있어서 열심히 하라 한번 이래 놨더니만, 말 한 번 칭찬했더니만 그만 제가, 제일인 줄 알고 얼마나 자꾸 항상 자랑하든지 그 교회에서는 '우리 O목사님이 제일이라. 백목사님보다 훨끈 위에 있다.' 나보다 위에 있다 하는 그걸 내가 무슨 시기해 그런 게 아니고 그러면 벌써 더 자라가지를 못하니 그게 참 애처럽고 마귀 그놈에게 끌려 가지고 지금 그짓하고 있는 것이지 마귀에게 안 끌리고 성령에게 끌리면 그렇지를 안한다 그말이오. 그러니까 마귀에게, 끌린 것이 안타까워서 말하고 있는 거라.

(55:10)
약1:18
그가 그 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좇아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

‘첫열매가' 첫 창조의 목적인, 열매라 말이 뭐이요? 열매라면 뭐입니까? 창조의 목적의 뭐이요, 열매라 말은? OOO목사, 아니야. '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열매가' 그 열매라 말은 첫열매가 뭐이요! 목적의 첫결실로, 첫결과로 그말이오.

이러니까 이거 못 따라오고 모르고 있는 것이니까 이래 놓으니, 그래 놓으니까 자꾸 밑에 교인들은 그래. 자기도 모르는 설교를 자꾸 하고 있다고, 지금... 그때 그 OOO교회에 O집사라고 있었는데, OOO집사님의 그 남편. OOO집사님은 지금 살아 있어요, 남편 그분은 벌써 일정 때 일본서 와세다 대학인가 뭐 동경제대인가 거기 나온 사람이라. 이래놓으니 그 사람들이 그런데 여기 와 배워 가지고 이걸 새기지도 못하고 말해 놓으니까 '자기가 모르는 소리를 자꾸 설교를 하니' 그 밑에 들으면 안다 말이오. 저 거는 깨닫고 한다. 저거는 모르고 앵무새 모양으로 지금 녹음기 모양으로 전하기만 한다' 그걸 안다 그말이오. 그런 소리를 하면서 이거 참 마음에 탄식이라고 그분이 한번도 마음에 만족을 가지지 못하고 그래 내가 죽은 걸 알아요.

'첫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좋아' 자기의 뜻이라니? 자기의 뜻대로 말이오. '자기 뜻을 좇아' 말은 어떤 피조물에게로 아니라 주권 의지로 그말이오. 주권 의지로 '뜻을 좇아' 주권 의지로, 누구의 뜻에 침노를 받거나 간섭을 받거나 가담을 했거나 협동을 했거나 타협을 헛거나 그런 게 아니고 단독 당신의 주권 의지로, '뜻을 좇아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 진리의 말씀으로 낳으셨느니라, 진리 말씀 가지고 나온, 분만이라 했나? 분만, 산부인과에서 삼가른다 하는 거, 내나 어머니에게서 아이 갈라 내놓지 안해요? 이러니까 그걸 분만이라 하요.

분만이라는데 '우리를 낳으셨느니라'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 그러면 진리 말씀이 우리를 분만한 분만 역사를 했다 말이요, 분만 역사를 했다 말입니까 진리의 말씀의 씨가 우리가 됐다, 진리의 말씀의 씨로, 진리의 말씀의 그 요소로, 진리의 그 요소로 우리를 낳았다 말입니까? 뭐이요?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 그러면 이 진리가 우리를 분만하는 데에 돕는 조산하는 역할을 했다 말입니까 이 진리가 우리가 생산된 그 생산의 요소라 말입니까? 산파가 아니라 바로 종자라 말이라.

이러기 때문에, 또 베드로전서 1장 23절 이하에 보면 거게는 '너희들이 거듭난 것이' 거듭났다 말은, 나는 이제까지 늘 그전에는 그랬어요. 거듭났다는 것이 이것을 '죽었던 것이 새로 살아났다' 이렇게만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 새로 났다 그말이요, 새로. 이중으로 났다 그말이오. 처음에 난 거 있고 또 한번 났고 우리 두번째 났어, 두번생겨졌기 때문에 두 요소로 났어. 두 종자라. 그러기 때문에, 혈육의 우리요 또 신령한 우리가 됐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라 항상 살아 계시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의 씨로 되었느니라 똑똑히 요렇게 말해 놨어.


이러니까,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이렇게 이걸 똑똑히 아는 것을 주님이 첫째로 말했어. 네가 이렇게 기도하라 했는데, 이렇게 기도하라해 놓고 일호가 뭐이요? 제일 일호로, 중요한 중에도 순서적으로 제일 중요한 게 뭐이냐? ‘하늘에 계신’ 이분을 바로 아는 것이 중요해. '하늘에 계신' 그다음에는 아버지인데 아버지를 바로 알아야 되지 양자 아들 그건, 이름으로, 아이가. 고아원에 가니까 아들이 많은데 고아원에 있는 그 원장을 보고 '아버지라 해라. 아버지라 해라.' 하라 해 아버지된 것처럼 그렇게 된 거와 실상 유괴당해서 이거 모르고 있다가 이제 아버지를 찾아와서 아버지를 알고 나면 아버지의 사랑은 이런데 저는 그걸 모르면 안 될 거라. 그걸 다 알면, 아들 중에 저를 제일 사랑하고 이러니까 제일 밀접한 친밀한 그런 아주 뜨거운 그런 관계를 가지고 있는걸 알아야 제가 그 사람으로 살지 그래야 그런 걸 다 요구할 수도 있고 그런 권세를 부릴 수 있고 효력을 다 누릴 수가 있지.

이러니까, '아버지' 아버지인데 어떻게 아버지 됐느냐? 우리로 말미암아 됐어. 예수 그리스도와 나와 하나, 예수님과 나와의 하나 됐기 때문에 아버지 됐어, '우리 아버지' 이래서,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하는 것을 어제 말했는데 그거 말할 시간은 지금 없고 그것도 여러분들이 가 가지고 새기면 이만하면 주기도문은 지금 다 풀어 나갈 수 있습니다. 이만하면 벌써 딱까리는 다 뗐기 때문에 이제 그다음에는 다 생각하고 자꾸 깊이만 자꾸 생각하면 다 깨달을 수가 있다 그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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