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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과 공평과 정의로 여호와의 삶을 가리켜 맹세하면 열방이 나로 인하여 스스로 복을 빌며 나로 인하여 자랑하리라  
■ 성경:24예레미야04:02
 



(3)진실
①의무와 책임에 대한 말이니 그 감당이
②진리적이며 또 실지적이란 것이다.
③하나님과 자기와 이웃에게 대한 의무와 책임 감당에 진실하라 함이다. 그러므로 이웃과 자기와 하나님 보시기에 진실해야 한다.
④공간적인 표리(表裏)와 기간적인 과거 현재 미래가 동일하기 위하여 진력하는 것. 그러므로
⑤감정과 이지가 겜전한 것이다.
⑥일종의 불안성에 속한 것이다.

(4)공평
①판단에 관한 말이니 이것이 바로 됨을 가리킨다.
②공(公)은 신적 공을 말하고 평은 인적 공을 가르친다.(저울같이 치우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은 주권이요 사람은 平이라야 한다. 눅10:27)
③자기중심으로 판단함이 사욕이요 자타 중심으로 판단함이 患이요 당사자인 자타를 떠나 제삼자 혹은 전인류 대아(大我)로 중심하여 판단함이 사람의 지혜요
④하나님 중심하여 하나님이 하실 그 판단을 적용함이 권능이다.
⑤각 판단이 하나님 중심이면 영원 승리하고
모든 사람과 나 중심이면 세상 승리하고
자타의 개인중심하면 어두워지고 패하여 범죄하기 쉽다.
⑥시공의 길이, 작금 내세의 것으로 측량한 판단이라야 한다.
⑦천지 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케 하는 그 법대로의 것이면서 그 목적은 행복

(50정의
①도덕 규율적 정의이니 주장과 계획에 관한 것이다.
②바르고 또 옳은 것이니 지식과 지혜와 양심의 산물이다.
③이 정의는 세상이 말하는 것과는 다른 점이 있다. 이유는 여기에 양심을 지배 법규와 지식과 지헤는 다 하나님께 속한 것을 말하기 때문이다.
④자기가 가진대로의 도덕 이상(理想)의 발족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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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여호와의 삶을 가르쳐 맹세하면”
①신약에 금한 맹세는(마5:33-37) 인간에게 주권이 없으니 주권적 행위는 하지 말라는 것이요
②구약 렘4:2에 맹세하라 함은 진실과 공평과 정의를 자기 최종적 지능까지 다하여 행하라는 교훈이다.
③하나님의 주권에는 필연 예정이다. 이에 대해 폐단 두 가지 있으니 ①예정을 믿는 자로 인간 노력을 무시하는 일 ②인간 노력을 강조하는 자로 예정을 무시하는 일, 이들이다.
④하나님의 모든 예정은 건설과 파괴와 유지(遺持)이다. 건설은 순종하는 인간 노력을 통하여 되고 파괴는 거역하는 인간행위를 통하여 하시고 유지는 순종 불순종의 인적 행위의 무소속의 것을 통해 된다. 그러므로 인간의 노력 여하가 즉 하나님의 예정 여하의 표시이다. 그러므로 순종이 그 자체로 귀하지만 그보다 그 순종의 근거가 하나님의 예정에 있음이 더욱 귀하다. 롬9:1-33, 엡1:4-23, 마5:36, 창1:1-
⑤기독교는 건설에 속하고 이방은 파괴에 속한 것으로 예정된 것이다.
⑥기독교 구원이 절대예정이라면 인적 노력을 강조한 필요는 없지 않느냐고 질문할 수 있겠다. 옳다. 인간 노력이 필요하나 순종적 노력과 피동적 노력과 하나님의 은혜적 그것의 노력과 보은인 노력 곧 은혜 자체가 활동하는 것만이만 기독교에는 필요하다. 예정대로 주권적으로 성립된 그것이 사람 보기에는 능동적 행위같이 보여지는 것이다.
기독교의 성립 전부는 완전 무결한 천국에 영존할 것이기 때문에 역사(役事)가 다 완전해야 한다. 그러므로 기독자의 소원이나 갈망 갈급이나 노력이나 그 무엇이나 옳은 것 곧 천국에 소속한 것이라면 다 예정대로 하나님이 섭리하여 은혜 입은 그것이 활동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독교의 전생활은 시은(施恩), 사은(謝恩), 보은(保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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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은혜 그 자체 활동 ⑤은혜가 잃은 은혜를 다시 찾고 ⑥은혜가 은혜 다시 구하여 새것 얻고 ⑦은혜 받지 못한 근심도 은혜 받게 돈 그 자체가 근심함이다.
그러므로 주의할 것은 주권과 종권, 능동과 피동, 시은과 피은, 창조와 피조, 명령과 순종 등의 전자와 후자로 된 기독교니 하나님은 전자에 속하고 성도는 후자에만 속한다. 전자는 불가침이다. 예. 기도하라고 교훈하면 그 능동은 하나님이요 피동은 교훈자다. 그 교훈 듣고 능동한 기도의 맘이나 행동이 있다면 그 능동자는 하나님이요 피동자는 인간이다. 또 이가 예정대로다. 이가 기도만으로 예정이면 성립은 없을 것이요 성립까지 예정이면 또 성립까지 된다. 이것이 다 은혜 입은 것이다. 그러면 간구할 필요가 있느냐 하겠다. 어리석은 자야, 하나님이 능동적으로 하시면 사람은 불피동 불가능자이다. 또 능동적으로 시은치 아니하면 시은 아니되었으면 간구심이나 노력할 자도 전무한 것이다.
그러므로 듣고, 알고, 느끼고, 간절, 실행, 성립 이것이 각각과 은혜 입은 그 자체의 생활이다. 이 피조된 것으로 하나님을 찬양함이다. 단,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사 유기적 구원을 주시기 때문에 능동같이 보여지는 것 뿐이다. 더욱 감사할 것 뿐이요 전적 은혜를 훼손함은 배은이다.

⑦그러면 멸망자에 한하여 범죄책임과 불의가 하나님에게 있지 아니하냐 한 난제가 착수되겠다. 과연 하나님은 인생의 선택을 예정하셨고 모든 전개될 것들을 전부 예정하시고 섭리하셨다. 그러므로 인생 타락도 예정된 것이며 또 예정된 대로 성립된 것이다.(엡1:9-10, 마5:35) 그런 하나님에게는 불의가 없다고 하셨다.(롬9:14)
범죄까지 하나님의 예정과 섭리이면서 하나님은 무죄하신 일에 대하여 우리는 확신을 가질 수 있다.
①성경이 무죄하시다 함으로 확실하고
②하나님과 인간의 사이는 지위 차이가 무한한 고로 그러하다. 사람이 초목을 연료로 한다고 침해죄라고 하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과 사람의 차이는 비교 못한다. 당신 영광 위해서는 피조물을 맘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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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규범을 내시고 악인이 죄를 짓도록 예정하시고 그 범한 죄인을 벌함은 권선징악의 자신의 속성을 나타내 보임이나 결코 하나님의 침해나 규범의 파손이 아니다. 하나님의 나타내심이요 규범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예. 화가가 범죄행위와 의의 행위를 그려놓고 범죄행위의 그림을 악이라 하여 불로 사룬다고 정죄할 수 는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신의 섭리는 인간에게 대하여 당신 자유 자제(自制)로 하신다고 정죄하지는 못할 것이다.

③정죄는 규범을 전제로 하는데 신인간의 규범인 성도에는 하나님의 소망 정죄를 규정한 것이 없기 때문에 죄가 성립할 수 없다. 즉, 하나님은 자신이 규범이요 또 규범의 주인이니 규범에 의하여 평가될 차위(次位)에 있는 것이 아니고 규범과 모든 행위가 하나님에 의하여 또 하나님을 위하여 평가 정립되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주권적인 고차원적인 근본이시다. 시원(始原)적 存成**을 가지신다.

④또 죄를 창조주와 창조물과의 관계로 성립될 수 없다. 마치 사람과 풀 사이에 풀의 살상이 사람에게 범죄로 취급되지는 않는 것과 같다. 예를 들면 화가가 자기의 예술혼과 투지를 발현하여 강도가 부녀를 살해하는 작품을 그린 나쁜 그림과와 거지에게 자선을 하는 그림을 그려놓았다 하자. 혹자가 말하기를 그림 속의 살인의 책임은 화가에게 있지 그림 속의 강도에게는 없다고 함과 같다. 화폭의 그림 속 살인은 화가에게 있지 않다. 이러한 사고는 옳지 않다. 그러므로 자기 작업의 화폭 속의 살인을 죄로 운운함은 정신이상이나 싱거운 일이다.

⑤하나님 예정을 성취하실 때 직접 섭리하심으로 이루는 일들도 있고 손대지 아니하시고 책임을 버려 두심으로 되어지는 일도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직접 역사, 책임 버리심, 시상 형벌 등으로 예정을 이루신다. 인생의 범죄는 하나님이 책임 버리시대 범죄되었다. 그러므로 이는 하나님의 주권과 예정하심 안에 있는 것이나 하나님께서 그를 범죄하도록 그 역사를 하나님이 직접 하심은 아니다. 그러므로 위치적으로나 행역(行役)적으로나 무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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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방이 스스로 나를 인하여 복을 빌며”
회개하여 주의 계명에 의종하면 열방들이 자연적으로 복되게 하는 것이 되도록 지어져 있다는 말이다.
“열방”이라는 말은 모든 인류와 조직과 건설 등과 행위들의 모든 존재 전부를 가리킴이라. 그러므로 전 창조물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따르는 자에게 복되도록 본질상으로 되어 있기에 행위에는 전부가 불리하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믿는 자의 이용물로 사랑의 사람에게 이용물로 소망인에게 이용물로 존재하는 것이다.
“나로 인하여”라는 말을 명심해야 한다. 이는 하나님의 보상과 섭리가 있기 때문에 복되다는 것이다.
“나로 인하여 자랑한다” 하나님의 섭리와 보상이 있기 때문에 믿고 따르는 자를 해하는 것 같이 보이나 실은 존귀ㅔ 하며 유명하게 하며 또 저들의 중심들에게 존경함을 받도록 하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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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051800 - 설교안 제 19권)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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