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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요약  
■ 성경:23이사야37:01-04
 

*전체 요약

이것이 사는 길의 초보입니다. 초보. 모든 것을 포기요. 부인(否認)입니다. 부인, 포기, 다 던져 버려요! 일단.
그러고 난 다음에는 뭣 했습니까? 옷을 찢었습니다. 옷을 찢었어. 이제 싹수가 나와. 옷을 찢었어. 파송된 세 대사(大使)도 옷을 찢었고 히스기야 王도 옷을 찢었고,
또 둘째는 뭐 했지요? 굵은 베옷 입었고,
또 셋째는 하나님의 성전(聖殿)으로 들어갔고,
그 다음에 넷째는 이제 제사장(祭司長)들이 또 굵은 베옷 입고 나섰습니다.
그 다음에는 선지자(先知者) 이사야를 찾아갑니다.
‘오늘은 환난(患難)의 날이요 책벌의 날이요 미혹의 날이라’
우리 남은 백성 얼마 남지 않았지만 남은 백성을 위해서 하나님의 선지 이사야에게 기도(祈禱)해서 죽지 않도록 기도하라고 간청을 했습니다.
이제 이것이 사는 길입니다. 사는 길.

믿는 사람이 사업적 징계(懲戒)를 받을 때에, 신체적 징계를 받을 때에, 활동적 징계를 받을 때에, 몸의 징계, 생명의 징계, 시대적인, 사회적인, 국가적인, 단체적인 징계를 받을 때에 그때에 어디 있다가 죽습니까? 일곱 가지에 있다가 죽습니다. 어쩌면 살아납니까? 들어도 안 들은 척 하고 이제는 하거나 말거나 잠잠하게 말하지 않습니다. 아예 그만 상대하지 아니하고 아예 포기해 버렸습니다.
죽인다 하거나 위협을 하거나 협박하거나 뭐라고 시부렁거리든지 하거나 말거나 그만 이제 상대 안 합니다. 뭐 죽고 싶은 것도 포기했고, 살고 싶은 것도 포기했고, 뭐 부영(富榮) 준다 하는 것도 포기했고, 뭣을 의뢰해서 어떻게 하자는 것도 포기했고, ‘모든 사람이 다 죽었는데, 다 멸망(滅亡) 받았는데’ 하는 그것도 포기했고, ‘이제는 내 차례라.’ 하는 그것도 포기했고 일단 일곱 가지를 다 포기(抛棄)했습니다. 포기하고 이제는 돌아섭니다. 요 포기 요게 참 어렵습니다. 포기 요것이 참 어렵소. 포기하고 돌아서는 것.

그래 가지고 옷을 찢었습니다. 이것은, 이제 그거는 포기해 버리고 지금은, 이제 징계(懲戒) 받은 이스라엘 이 사람들의 속에는 그것은 다 쫓아내 버리고 포기하고 어만 것이 저희들 속에 지금 차차 차차 하나 둘 들어와서 찹니다.
처음에 뭣 들어왔습니까? 옷 찢은 것 들어왔소. 분이 들어왔소? 분. 분, 분이 들어왔어. 무슨 분입니까? 자타(自他)에게 분입니다. 왜? 하나님에게 대해서 제가 행동한 것 그게 첫째 분하고, 또 둘째는 대적들이 하나님에게 대해서 모욕하는 것 그것이 둘째로 분하고, 이 분함이 들어서, 뭐 죽고 살고 그까짓 거야 돌보지 않아, 그만. 그거 안 돌봐야 됩니다. 뭐 죽이느니 살리느니, 상급 주느니, 뭐 옆에서 다 망했느니 어쩌느니, 뭐 살고 싶고 이거 저거 의뢰하고자 하는 그런 거 다 포기라. 너무 미워서 자기를 죽이고 싶다 그 말이오.
옷을 찢는 것은 그것은 분개해서 하는 그 표시입니다. 에스라(에스더)가 그 백성들의 죄악(罪惡)을 보고 옷을 찢었습니다. 그는 수염도 다 뽑아버렸습니다. 분해서, 자기와 자기 민족의 그 하나님을 거슬리는 그것이 어떻게 분하고 원통한지! 이러니까, 루터 도 천하(天下)에 있는 돌들이 막 와 가지고 자기를 때려 죽였으면 좋겠다 싶어서… 어떻게 밉고 한지!
어쩌든지 살아보려고 하던 그게 아니라 이제는 미워서 못 견디겠습니다. 이제는 두려워서, 두려워서 벌벌 떨고 거기 아부라도, 아첨이라도 하고 어떻게 살아보려고 하던 것이 이제는 그것도 괘씸해서 지금 뭐, 뭐 마음에 그만 뭐 어떻게 그만 살인이라도 할 만치 그만 그 행동이 괘씸합니다. 뭐 두려운 게 아니라.
‘세상에 이놈들, 하나님을 모욕하다니!’ 이러면서 그만 그 하나님을 모욕(侮辱)시키는, 하나님을 모욕시키는 그 분에, 자기가 그와 같은 행동을 하는 원인자 된 그 자기에게 분함에, 그만 분함이 채워져서 뭐 죽는다는 것도 잊어버리고 사는 것도 잊어버리고 상도 잊어 버리고 뭐 어쩌고 하는 그런 것이 다 그만 없어져 버렸어. 이렇게 자타에 있는 그 불의(不義)의 행위(行爲) 그 행위를(가) 미워하는 이것이 지금 움이 텄습니다.

그 다음에는 굵은 베옷을 입었습니다. 이것은 마땅히 죽어야 할 죄인(罪人)이라는 것입니다, 마땅히. 마땅히 죽어야 할 죄인이라는 것이오. 베옷 입는 것은 죽은 자라는 표현입니다. 재를 무릅쓴 것은 죽어서 땅속에 매장시켰다는 그 표현이오. 죽어 마땅하고, ‘나는 죽어 마땅하고 흙 속에 나는 매장을 당해 마땅하다!’ 왜? 자기 소행(所行)을 아니까. 자기 소행을 더듬어 보니 자타의 소행에 대해서 울분함이 생겨지고 자타의 소행을 보니 죽어 마땅하고…

그 다음에 셋째로는 성전(聖殿)에 갔습니다. 성소(聖所)에 들어갔습니다. 이렇게 자타의 불의의 행위가 미워지면 자기는 죽어 마땅한 자인 줄 알고 이제 자기를 죽이는 표현으로 죽여 마땅한 이 분함이 생겨지고 나면 그 다음에는 성전(聖殿)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과 막혔던 것이 틔어집니다. 하나님과 가리어졌던 것이 틔어져요. 양심(良心)이 살아. 욕심은 죽고 양심은 살아납니다. 세상(世上)은 죽고 천국(天國)은 살아납니다. 자기는 죽고 하나님은 나타나십니다.

그러고 난 다음에는 뭐 했습니까? 예? 그 다음에는 이제 제사장(祭司長) 동원시킵니다. 이제는 하나님과의 관계 문제를 가져야 되겠소. 과거에 뭐 제사장 제사를 드리거나 말거나 아주 발새에 때만치도 안 여겼지마는 이제는 제사장은, 제사장이라야 하나님과의 관계를 해결 짓기 때문에 이제는 제사장(祭司長)을 찾아야 되겠소. 하나님과의 관계 문제가 중대한 문제니까 하나님과 관계 문제 이 문제를 이제 자기가 다시 되찾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이것을 해결 지우려고 합니다.

그 다음에는 뭐이지요? 예? 그 다음에는 이제 선지자(先知者) 찾습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누구를 통해서 뭐라고 말씀했던고?’ 하나님이 말씀해 주신 이제는 성경(聖經) 말씀을 열람하고 자기의 신앙 선배 지도자가 어떻게 말씀하던가, 이제는 선지자가 그립습니다. 선지자를 찾습니다. 아주 선지자를 배척하고 이렇게 멸시했지만 선지자를 찾습니다.

그러면서 ‘지금은 환난(患難)의 날이라, 이제는 하나님이, 내가 지은 죄값으로 인해서 나에게 하나님이 지금 큰 재앙을 주시는 환난의 날이라, 하나님이 주신 환난의 날이라, 하나님께서 지금 벌(罰) 주시는 날이라, 책벌의 날이라, 하나님이 벌을 주시는 지금 벌을 주시고 있다. 이제는 하나님께서 모든 것에게 멸시 천대 능욕 받는, 이제는 마구 내가 잘못함을 인해서 하나님의 진노, 하나님이 허락하신 모든 능욕 이 전체에 마구 재앙(災殃)이, 저주(詛呪)가 마구 지금 내게 쏟아지고 있다.’

여기 대해서 이제는 원망 불평 도망하려고 하지 아니하고, 원망 불평 도망치려고 하지 아니하고, ‘아무래도 이 문제는 하나님으로 인한 문제이기 때문에 하나님으로 인하여서 해결을 지워야 되겠다. 우리 남은 백성을 위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 이사야 선지여, 우리를 위해서 기도(祈禱)를 해 주시오.’ 하고 간청을 했습니다.
이러니까, 자기는 성소에 들어가서 기도했다고 했소. 이제는 의인(義人)들의 기도가 요구가 됩니다. 자기 혼자 안 되니까 의인들의 기도를 요청하고 기도의 도움을 지금 소원합니다. 이것이 그 속에 채였습니다.

(80050622 집회)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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