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
*전체요약  
■ 성경:45로마서07:20-25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롬 7:20-25)


예수님이 사활의 대속으로서 일곱 가지 대속한 것을 자기 것 삼은 사람은 이 일곱 가지 완전, 일곱 가지 대속은 죄에서 자유, 사망에서 자유, 마귀에게서 자유, 또 하나님의 율법에서 완전 이행의 자유, 하나님과 완전 친밀자, 또 하나님을 향하여서 영감과 진리대로의 완전 생활하는 영생하는 자, 요 일곱 가지를 가진 자기가 되어 있을 때에는 요 일곱 가지의 그 죄가 와 가지고서 해하지를 못합니다. 사망이 해하지를 못하고, 죄가, 마귀가, 하나님의 공심판이, 하나님과 불목의 그 모든 해독이 와 가지고서 해하지를 못합니다.


이래서, 예수님의 일곱 가지 대속으로 이 대속을 받아 자기는 일곱 가지 대속으로 인해서 자기는 완전한 자입니다, 완전한 자. 온전한 자. 털끝만큼도 흠이 없는 완전한 자입니다. 이 완전한 자가 자기는 됐고 완전한 자 자기는 예수님의 것이 됐습니다. 예수님의 것이 됐습니다.


예수님의 것이 됐는데 예수님의 것 된 그것이 범죄했습니다. 예수님의 것 된 것이 그것이 범죄한 것은 자기는 예수님의 대속을 입고서 대속을 입은 자기기 때문에 그런 것과 상관이 없고 예수님의 것 된 것이 그것이 범죄했습니다.


예수님의 것 된 것이 범죄할 때에 예수님은 완전자시기 때문에 예수님의 것 된 것은 범죄하지를 안합니다. 요거 잘 알아들으십시오. 범죄하지를 못합니다. 예수님의 것 된 것은 범죄하지를 못합니다.


범죄하지를 못하는데 요 범죄를 했습니다. 범죄를 했습니다. 범죄한 그것은 로마서 7장 20절에 말하기를 “원치 안하는 것을 행하는 것은 내가 행한 것이 아니라 내 속에 있는 죄가 행했다” 그러니까 이 몸의 습성 가운데에 들어 있는 죄 그 놈이 들어서 예수님의 것이 된 자에게 때를 묻혔습니다. 예수님의 것이 된 자에게 때를 묻혀서 이 때라는 이 죄, 이 죄는 속에 배지는 아니했고 껍데기 묻어 가지고 있습니다. 묻어 가지고 있을 때에 그것은 그 죄라는 것은 다 전부 예수님이 대형을 한 죄기 때문에 예수님의 대속으로 씻으면 즉시 깨끗이 씻어집니다.


그런고로 그것을 가리켜서 “원치 안하는 것을 행한 것은 내가 행한 것이 아니라” 그 말은, 내가 행한 것이 아니라 그 말은 대속을 입고 있는 대속 가진 내가 행한 것도 아니요 또 예수님의 것 된 것도 행한 것이 아니요 이 육체 속에 죄악의 습성 이놈이 들어서 범죄한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예수님의 대속에 고하면 깨끗하게 씻어집니다.


이래서, 원치 안하는 것을 행한 것은 내가 행한 것이 아니고 내 속에 있는 죄가 행한 것이라고 그렇게 구별해서 말한 것은 자기가 예수님의 대속을 완전히 입었을 때에 되지 그전에는 안 됩니다.


20절에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죄니라” 죄 이놈이 지금 육체의 습성 속에 들어 가지고서 자꾸 합니다. 육체의 습성 속에, 속으로 속사람으로는 원치 안하고 이라는데 육체 속에 있는 습성 이놈이, 이 습성, 이 습성의 이 악성 악습 말이요, 악습 이놈이 들어 가지고서 고깃덩어리를 잡아 끌고 이래 가지고서 금방 해 놓고 후회되는 놈의 일을 하게 되는 것은 그 놈이 하는 것입니다. “원치 안하는 것을 하는 것은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21절에,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요거는 대속받은 자기를 말하고 예수님의 것 된 그 자기를 말합니다.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악이 함께 있는” 악이 어디에 있는고 하니 그 악습 속에 들어 있습니다. 이 제일 악습 요놈을 죽이기가 힘듭니다. 그러기 때문에 일생 우리 싸움은 악습 그 놈을 죽이기를 지금 힘쓰는 것입니다.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사람으로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속사람으로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한다 말은 대속받은 사람은 대속받은 그것을 좋아하고 이제는 죄와 적이 되었고, 마귀와 적이 되었고, 사망과 적이 되었고, 자율과 주관과 적이 되었고, 영감과 진리가 자기 것이고, 자기 본능이고, 자기 주장이고, 하나님과 이 화평된 것이 자기고, 하나님의 심판을 통과한 의가 자기인데,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는 것, 이것은 대속받은 사람과 또 예수님의 것이 된 사람은 “속사람으로는 하나님 법을 즐거워하되”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 한 다른 법이” “내 지체 속에 한 다른 법이” 지체 속에 다른 법이라 말은 지체 속에 이 악습된 법이 있다 말이오, 악습.


악한 습성으로 자꾸 악을 행동해서 습관이 들었어. 이래 놓으니까 술먹는 그 놈도 습성이요, 습관이 들어서 그래 하는 것이요, 노름 하는 것도 악습이요, 일종의 악습이요, 그 음행하는 것도 악습이요 그런 것이 다 악습이라 말입니다. 악습 그 놈이 들어 가지고서 자꾸,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23절에 “내 지체 속에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마음으로는 안 할라 하는데 이 육체 속에 이 습성이 들어서, 버르징이가 들어 가지고 그 습성 그 놈이 강해 가지고서 내 마음으로는 ‘안 해야 되겠다’ 이라는데 그 놈에게 또 싸워 또 꼬임받고 또 져 가지고서 이제 금방 후회할 것을 또 한다 그 말입니다.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보니까 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고 지키고자 하는데 이 지체 속에 악한 습성 그 놈이 자꾸 그 나를 끌고 이 고깃덩어리가 자꾸 악습 그걸로 가지고서, 악한 습성, 더러운 버르징이 그것이 자꾸 들어 가지고서 그렇게 하도록 자꾸 이래 강제하고 이래 하니까 이 마음 이놈이 어리석어서 그 놈에게 꼬여 가 가지고서 악습대로 움직여 가는 것을 봅니다.


악습대로 움직여 가니까 이제 하나님의 일곱 가지 대속을 입은 이 사람과 하나님의 것 된 사람은 고깃덩어리 이놈 속에 들어있기 때문에 이놈이 차를 몰고 가니까 어쩔 수 없다 말입니다. 이놈이 자꾸 이래 가니까 지금 그리 끌려가는 거라 말입니다.


원치 안하는데 그 놈에게 끌려서, 이 고깃덩어리 이놈이 말을 안 들으니까 자기로서는 그렇게 일곱 가지 대속을 가지고 살고 싶고 또 하나님의 주님의 것으로 살고 싶은데 원치 안하는 이것을 고깃덩어리 악습 요것이 들어 가지고서 자꾸 끌고 가니까 원치 안 하는 데로 끌고 간다 말이오, 원치 안하는 데로. 악습 그 놈이 들어서 자꾸, 그 버르징이 나쁜 버르징이 그 놈이 들어서 자꾸 원치 안하는 데로 끌고 간다 그 말입니다.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마음의 법과 싸우는 것은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하고 둘이 싸운다 말입니다. 둘이 싸워 가지고 지체 속에 있는 그 죄짓던 법, 죄짓던 습성, 그 죄짓던 버릇, 사기 협잡하던 버릇, 술먹던 버릇, 노름하던 버릇, 또 이 모든 계집질 서방질 하던 이런 더러운 버릇, 또 거짓말하는 버릇, 또 그 모든 혈기내는 버릇, 또 다른 사람에게 자기를 나타낼라 하고 자기 명예나 지위나 권세나 영광이나 그 버릇, 모든 고집 버릇, 모든 혈기 버릇, 이 오기 버릇 이게 다 전부 고깃덩어리 이놈 속에 들었기 때문에 이놈이 그 속에 죄가 습성이 많이 들어서 이것만 뽑아 내면은 그 고깃덩어리의 기능은 참 온전한 기능이 되어지는데 이 물이 들어 가지고 이런데 원청 이놈 하는 행동이 나쁘니까 김현봉 목사님은 이 고깃덩어리는 순전히 죄뭉텅이라 이렇게 말했습니다. 순전히 죄뭉텅이라. 또 이 육체는 싹스라 이것은 부패성이라, 그 하는 행동을 보니까 그렇다 그 말입니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 보면은 그 속에 악습이, 악령하고 악성하고 둘이 들어서 고깃덩어리를 시켜 가지고 자꾸 처음에는 악한 일을 한 번 하고 두 번 하고, 자기 중심의 일 한 번 하고 두 번 하니까 이것이 버르징이가 돼 가지고 나중에 그만 악습이 강해져 놨다 말입니다. 강해져 놓으니까 죽어도 못 합니다. 그래 가지고 어떤 사람은 노름하는 사람이 손가락을 끊어 버려도 노름 안 하고는 못 견딘다 말입니다.


어떤 사람은 술먹는 것 나쁜 식습, 먹는 습관, 이것이 있어 가지고서 술로 패가를 하고 다 이 집구석이 망하고 이라니까 이것은 어쩔 수 없어 자기 옷단에다가 여게다가 딱 요래 보며 ‘내가 술먹으면 개자식이다’ 지금은 개자식 하는 것 그렇지만 부모에게 효성, 그때는 한번 말 한 마디 잘못하면 망발예를 했다 말입니다. 부모에게 대해서 잘못된 말 한 마디 하면 망발예라고 그때 한턱 내야 됩니다.


이러니까 부모에게 대해서 개자식이라 하는 그런 것은 뭐, 미국 사람들은 지금 하나님에게 버림 당했다 하면 막 사생 결단하요. 그거 제일 큰 욕으로 알지만 과거에는 부모에게 불효한 것이 제일 큰 욕이기 때문에 이제 ‘내가 술먹으면 개자식이다’ 여기다가 딱 요래 써 붙여 놓고도 또 그래 써 가지고 장 보며 요래 보고 술 안 먹을라고 요라고도 나중에 술을 먹고 노름하는 사람도 그래야 소용이 없다 그 말입니다. 그거 그렇게 우리 속에, 이 육체 속에 나쁜 습성 그 놈이 들어 가지고서 우리를 마구 더럽힙니다.


이래서,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이 지체 속에, “지체 속에” 이것을 똑똑히 구별해야. 이 고깃덩어리 지체는 선한 것인데 지체 속에 죄 그 놈이 들어 가지고서 그 놈이 들어서 지체를 악용을 하니까 그 지체가 죄를 짓는 것이지 지체 그 자체가 죄를 짓는 것이 아니라 그것입니다.


이런데 모든 사람들이 로마서 7장 23절 요 성구를 연구를 못 했다 말입니다. 요 연구를 못 해서 그만 육체 그 놈은 죄악 뭉텅이인 줄로만 알았지 육체 속에 죄는 따로 들어 있고 육체의 기능은 따로 들어 있고 서로 분리했으면 분리할 수 있는 것인데 탈색만 되면은 탈색이 되는데 탈색이 안 되니까 빨갛게 보였지 탈색하면 하얗게 된다 그것입니다. 이것을 구별하지 못해서 육체는 다 죄악으로 또 육체를 다 싹스를 전부 부패성으로 이렇게 봤던 것입니다.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그 보니까 이 마음으로는 안 할라 하는데 이 고깃덩어리 속에 악한 습성, 죄의 법이라 하는 건 악한 습성이라 말입니다. 악습, 악습이라. 이는 악습이 돼 놔 놓으니까 ‘이 노름하면 안 되는데’ 했는데도 옆에 그만 친구들이 이라니까 하면 안 될 줄 알면서 퍽 끌려서 노름을 하게 된다 말입니다.


또 이것은 ‘나는 이제 술 먹으면 개자식이다’ 이래 놓고도 그만 옆에 술을 보면 술먹던 습성이 있어 가지고 마구 못 먹으면 안 먹으면 못 견뎌서 죽을 지경이라서 술을 한 잔만, ‘한 잔만 먹고 말지’ 이래 또 두 잔 먹고 이래 가지고서 자꾸 먹게 된다 말입니다. 모든 것이 다 그런 것입니다.


이거 돈을 탐하는, 돈을 사랑하고 돈을 탐하는, 돈을 탐하는 욕심이 있는 자는 뭐 ‘하나님 앞에서는 정함이 없는 물질이라. 있다가도 없어지고 돈이 있으면 좋으나 돈 가지고서 화도 만들 수 있고 복도 만들 수 있기 때문에 돈 그게 하나님의 축복이라야 되지 뭐 그거 가지고 되나?’ 이래도 돈을 탐하던 요놈은 습성이 속에 들어 가지고서 돈만 보면 마음이 우쭐해진다 말입니다.


돈만 보면 마음이 우쭐해져 가지고서 그만 자기 무슨 사람하고 교제하는 가운데서, 요게 돈이 지금 제 역량대로 작은 사람은 몇 십만 원일 것이고 큰 사람은 항상 많이 만져 봐야 백만 원밖에는 못 만지는 사람에게 천만 원이나 오면은 그만 마음이 뒤비져 가지고서 그만 돈 욕심 내나 그것이 월쩍해 가지고서 탐심으로 물질적인 죄를 짓고, 또 식물적인 죄를 짓고, 감정적인 죄를 짓고, 흥분적인 죄를 짓고, 명예적인 죄를 짓고, 모든 정욕적인 죄 온갖 죄를 짓는다 말입니다.


그러면 이 자기 속에 싸움이 있어서 이 일을 안 할라고 하지만 고깃덩어리 이놈의, 고깃덩어리의 습성 이놈이 좋아서 그만 그리 죄하고 한 덩어리가 돼 가지고 이래 하니까 이 지금 이 차에 납치돼 가지고 가는 사람이 차에 집어 넣어 놓고 그만 달아나니까, 달아나고 문을 잠궈 놓고 딱 거석해 놓으니까 가기 싫지만 막 빼고날을 쳐야 내려오지도 못하고 끌고 가는 것과 같은 그런 그 현상을 자기가 느낀다 그 말입니다. 마음이 끌려가고 이래 가지고서 이래 하는 것을 그거 느껴져.


인제 그게 엔간이 살아났을 때에는 느끼고 처음에 그거 독에 깊이 파묻혔을 때에는 그것도 느끼지 못해. 그때는 그만 죽을둥 살둥 못 하고 ‘이거 안 하면 안 된다’ 이래 가지고서 온갖 죄를 죽자 살자 하고 그래서 이렇게 지어도 자기가 정신 없이 고깃덩어리 이놈이 막 끌고 뭐 도망을 치니까 가지만 자기 속에는 ‘이거 아닌데’ 이라고 또 몸에 소름이 끼지고 이거 또 양심에 가책이 되고 이래 ‘아닌데’ 하면서도 끌려간다 말입니다. 그것을 가리켜 말한 것입니다.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사망의 몸에서” 이 고깃덩어리 속에 이 사망의 독이 들어 가지고 있는데, 죄악의 독이 들어 가지고 있는데, 죄악의 독, 이 사람의 속에 사망의 독이 들어, “사망의 몸에서” 몸이 사망이 아니고 몸 속에 사망이 들어 있다 말입니다.


사망이 들어 있는 것도 사람마다 달라요. 어떤 사람은 그 공명심이 있어 가지고서 곧 죽었다가 살아나면은 ‘내가 아무래도 지금 또 이 시험 준비를 해 가지고서’ 그 고시 시험에 행정고시나 사법고시나 그런 것 시험 쳐 봤자 찍해야 그게 크게 올라가는 것도 아닌데, 그거 내가 어떤 사람 보니까 폐병이 들어 다 죽어가는데도 그때 명치대학에 공부를 했었는데 이거 다 죽어가는 것을 살려 놓으면은 겨우 살아. ‘인제 내가 공부 안 합니다. 공부 안 하고 내가 예수님만 믿을랍니다.’ 이래 가지고 살려 놓으면은 겨우 며칠 살아 놓으면은 또 보따리 배낭 짊어지고 니꾸사구 짊어지고서 갑니다. 나를 모르게 피해 가요. 피해 가도 하나님이 간섭을 하셨어요. 피해 가다가 저 가다가 병이 나 가지고서 타지도 못 하고 도로 기어 올라와.


그런 꼴 몇 번이나, 그렇츰 그거 이 공부해 가지고 달성해 보겠다 하는 그 욕심이라 하는 것이 그렇게 있습니다. 자기를 벌써, 신앙 비판해서 아닌 줄 알면서도 자꾸 끌려가는 그것은 그게 막바로 선악과입니다. 그것 먹으면 그만 자기는 그만 전멸이 되고 만 것입니다.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25절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예수님의 일곱 가지 대속으로 말미암아 하는 것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일곱 가지 대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고깃덩어리의 이 습성으로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희를 해방하였음이라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그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체의 모양으로 보내사 육체에 죄를 정하사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모든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게 하려 하심이니라” 육신을 좇는 자라 이래 이렇게 말했습니다.

(86120553)sh


 
                    답변/관련 쓰기 수정/삭제     이전글 다음글           창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