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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누이 나의 신부야 네가 내 마음을 빼앗았구나 네 눈으로 한번 보는 것과 네 목의 구슬 한 꿰미로 내 마음을 빼앗았구나  
■ 성경:22아가04:09
 

'나의 누이 나의 신부야'
나의 누이라 말은 동태 형제간이라 말입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대해서 늘 형제라고 말한 일이 많이 있습니다. 주님이 우리를 동등으로 여겨 “나의 누이'라 했고 또 '나의 신부”라 말은 주님의 배우자라 말입니다.


'네가 내 마음을 빼앗았구나'
눈은 마음의 눈을 말하는 것인데 마음으로 생각 한번 하는 것, 생각하는 그 한 생각에, 한 마음에, 한 뜻에, 한 소원에, 마음에 한번 움직인 그것이 주님의 마음을 빼앗았다, 주님이 감동하셔서 우리를 기뻐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89070160)


'네 눈으로 한 번 보는 것과 네 목의 구슬 한 꿰미로 내 마음을 빼앗았구나'
네 눈으로 나를 한번 봄으로 내 마음 다 빼앗았다, 네 목의 구슬꿰미로 내  마음 다 빼앗았다 했습니다. 목에 구슬은 비유한 것인데 한 마디 한 마디 입에서 나오는 그 말에 그만 주님이 바짝 반해 버렸다 말입니다. 네 목의 구슬꿰미 하나로 내 마음을 다  빼앗았다 하는 것은 네 목에서 나오는 말 한 마디 고 말 한 마디에 내 마음 다 빼앗았다는 말입니다. 이래 가지고 주님도 당신 맘대로 못하고 그만 그 성도에게 다 빼앗기고 또 성도는 주님에게 다 빼앗기고 이래 가지고 참 좋아서 할렐루야 할렐루야 이래 좋아하면서도 사는 것이 하늘나라입니다.

(86050842)


'사자굴과 표범산에서 내려다 보아라'
거기까지 올라갔으니까 온 세상 모든 교계들을 볼 때에 이 교계들은 저 티끌 속에 파묻혀 있습니다. 저 밑에서 모든 짐승들에게 다 삼키고 밟히고 이래 가지고서 짓밟혀 모두 다 삼켜지고 다 죽어지고 있는데 이렇게 올라간 사람들은 사자굴 표범산에서 얼마나 평안한지, 거기서 저 밑을 내려다보아라.

(88110233)


'나의 누이 나의 신부야'
이 말씀은 우리 믿는 사람을 말하는 것인데, '누이'라고 함은 우리 믿는 사람을 예수님과 동등으로 취급하심이요. '신부'라고 함은 우리 믿는 사람의 모든 부족점을 예수님이 다 담당하시고, 예수님의 부요와 장점을 우리 믿는 사람에게 주셔서, 우리 믿는 사람으로 하여금 동등으로 가지고 영원히 함께 누리게 하심을 나타내신 것입니다.


'네가 내 마음을 빼았았구나'
'네가 나의 마음을 다 빼앗았다'고 하신 말씀은 예수님의 마음을 완전히 얻었다고 하는 말씀인데 무엇으로 완전히 얻게 되었는지 이것을 그 밑에 보면 말씀했습니다. 그 밑에 보면 '네가 한번 보는 것으로 내 마음을 완전히 빼앗았다'고 말씀했습니다.


'네 눈으로 한번 보는 것과'
여기에 말씀하신 '눈'은 마음이요. 생각인데 '네 눈으로 한번 본다'고 하는 말은 마음으로 한번 작정하신 것은 변치 않음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어떤 모임에 가서 보면 사람마다 거기에서 선택하는 것이 각각 다르고 비판하고 평가하는 것도 각각 다르다. 거기에서 생각하고 계획하는 것도 각각 다릅니다.

그러므로 '네 눈으로 한번 본다'고 하신 말씀은 자기가 어떤 모임에 가든지, 어떤 장소에 가든지, 어떤 현실에 처하든지, 거기에서 다른 사람의 비판과 견해와 평가에 따르지 않고 자기의 위신과 체면과 처세와 자기의 이해와 승패를 생각지 아니하고, 귀천을 상관치 않고 주님이 가장 원하시고 좋아하시고 기뻐하시고 만족히 여기시는 생각과 행위를 선택하여 가지되 변동이 없는 것을 '네 눈으로 한번 본다'고 말씀하신 것이니 이것이 우리 성도의 지혜인 것입니다.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해도 거기에서 주님이 제일 소원하시고 기뻐하시고 좋아하시는 그 일을 하되 자기의 이해와 성패를 귀천을 생각지 않고 선택하여 행하는 것입니다.


'네 목의 구슬 한 꿰미로 내 마음을 빼았았구나'
'네 목의 구슬 한 꿰미로 내 마음을 완전히 빼앗았다'고 말씀했습니다. 이 말씀은 무엇을 말씀하신 것인고 하니 자기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공의로운 말이요. 결백한 말이요. 인자한 말이요. 화평의 말이요. 소망의 말이요. 겸손의 말로서 많은 사람들에게 빛을 보여주고 참사람에게 대한 갈급성을 주어서 참사람으로 살게 하고 절망 중에 빠진 자에게 소망을 주고 잔인한 자에게 인자를 주고 교만한 자에게 겸손을 주고 불목된 자에게 화평을 주고 더러운 자에게 결백을 주고 불의한 자에게 공의를 주고 거짓된 자에게 진실을 주는 여기에 주님의 마음은 다 빼앗기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선행 중에 실력 있는 선행은 말입니다. 그래서 이 말 한마디로서 주님의 전부를 차지 할 수가 있고 많은 사람을 살릴 수가 있습니다.

(주해공과)



'네 목의 구슬 한 꿰미로 내 마음을 빼앗았구나'
그 큰 뽕나무가 손대지 않아도 겨자씨 한 알만한믿음이 있으면 명령할 때 쑥 뽑혀 후루루루루 운반되어져 날아가서 저 바다에 푹 심겨집니다. 바다가 출출 흘려내려가는데 그 물 위에 수십 짐도 더 되는 뽕나무를 심으면 그것이 그 물 위에 서 있겠습니까? 떠내려가버리지 거기 심겨져 서 있을 리가 없습니다. 그런데 '심겨서서 있으리라'

성경이 이렇게 말씀하지만 사람들은 거짓말이라고 합니다. 어떻게 그 큰 뽕나무가 손도 대지도 않고 쑥 뽑힌다 말인가? 어떻게 사람 손도 안 대고 운반되고 밭에 있는 것이 저 바다까지 가겠나? 또 조금만 무거워도 물에는 다 가라앉는데 수십 짐 되는 그런 나무라면 물에 가라앉든지 아니면 물에 쭉 드러눕겠지 어떻게 심겨지겠나? 모두 다 말이 안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이시요 털끝만한 것도 그에게는 거짓이 없는 것을 우리가 다 믿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과장한 말도 아니고 거짓말도 아니고 이대로 이루어질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성구를 볼 때에 '안될 일을 말씀했으니까 비유가 아닌가?' 이렇게 된다는 것을 인정치 않는 사람들이 되기 쉽습니다. 그런 사람이 되면 믿음을 반대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망하는 일로입니다.

우리가 의심 없이 이 사실을 확실히 믿고 난 다음 '겨자씨 믿음이 무엇이기에 그렇게 되나?' 이것을 연구해서 주님 말씀은 틀림없으니까 연구를 해서 바로 알아서 이런 권위 있는 생활로 구원을 이루어가야 된다고 하는 것이 옳습니다.

본문에는 겨자씨 믿음이 있으면 첫째로 뽑는 능력이 있는 것을 말해 놨습니다. 뽑는 능력이 무한합니다. 또 하나는 옮기는 무한한 능력이 있습니다. 또 하나는 심는데 무한한 능력이 있습니다. 이 3가지를 여기 표현했습니다. 뽑는 것, 옮기는 것, 심는 것 이 세 가지가 가장 중요한 역사요 운동입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있는 옛사람, 모든 각종의 죄악에 그 뿌리박아 가지고 있는 죄악성, 모든 죄악성과 우리를 멸망케 하는 그런 모든 죄악성 그놈을 우리가 뽑아야 되는데 참 이런 능력이 와 가지고 우리에게 있는 모든 죄악성을 다 무한한 능력으로 뽑아 주신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옮기는 능력도 있습니다. 우리는 오늘 이사 갈지 내일 이사 갈지 모릅니다. 사람들이 어리석어 세상에다 보존하고 구비해 놓지만 오늘이라도 떠나면 다 헛일입니다. 우리가 가서 살 영원무궁한 세계 준비는 하나도 하지 않고 안심하는 어리석은 짓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썩을 것을 심어 썩지 아니할 것으로 옮기는 것을 말합니다. 약한 것을 가지고서 강한 것으로 무궁세계에 옮기고 모든 욕된 것을 영광스러운 것으로 옮기고 혈육의 것을 신령한 것으로 옮겨서 이 세상 한 토막 사는 이 전 생애가 전부 무궁한 하늘나라로 옮기는 그런 가치 있는 이런 생애가 됐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이것이 옮기는 능력입니다. 어떤 사람은 불 가운데서 나온 것처럼 하나도 옮긴 것이 없는 사람도 있습니다. 세상에서 권세도 옮기고 지위도 옮기고 영광도 옮기고 모든 소유도 전부 천국으로 옮기고 실력도 옮기고 하늘의 것으로 완전히 바꾸고 옮겨진다는 이것이 얼마나 우리에게 필요합니까?

또 심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복음을 한 사람에게도 못 심고 남편 하나에게도 심지 못하고 있는데, 어떤 사람은 천 명에게 심고 만 명에게 심었습니다. 하늘나라 복음을 많은 사람들에게 심은 사람도 있고 또 어떤 사람은 십 년 기도하고 전도해도 꼼짝도 않는데 다른 사람이 가서 말하니까 그만 예수 믿기로 작정합니다. 복음을 심어서 복음의 사람이 되는 이런 것이 심는 능력입니다. 이렇게 복음을 심는 능력, 또 존경받도록 덕을 심는 능력, 신덕을 심는 능력, 감화를 심는 능력... 뭐 심을 것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이렇게 예를 든 것은 사람을 상대할 때 심을 것을 말했고, 또 하나님에게 대해서도 우리가 심을 것이 많습니다.  

아4:9에서 '네 목의 구슬 한 꿰미로 내 마음을 빼앗았구나'라고 했는데 이때 네 눈으로 한번 봄으로 내 마음을 다 빼앗았다, 네 목의 구슬꿰미로 내 마음 다 뺏들어 버렸다, 나는 껍데기뿐이지 알맹이는네가 다 뺏들어 갔다는 말입니다.

목에 구슬 꿰미라 말은 목을 장식해 놓은 것인데, 목에서 나온 한 마디 한 마디가 주님 마음 다 빼앗는다는 말입니다. 눈으로 한번 봤는데, 그 눈 매력에 주님 마음을 다 뺐습니다. 어떻게? 그 눈이 나쁘게 나쁘게 보고 또 좋으면 좋게 봅니다. 그 눈이 어떻게 의롭고 어떻게 또 아름다운 눈이며, 덕이 있는 눈이어서, 다른 사람에게 감화를 주는 눈입니다. 그 눈의 매력이 어떻게 많은지! 이런 것이 다 심는 것입니다.

* 눅17:6  :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우라 하였을 것이요

(88070153)  


'네가 내 마음을 빼앗았구나 네 눈으로 한 번 보는 것과 네 목의 구슬 한 꿰미로 내 마음을 빼앗았구나'
이러니까, 그런 때가 올란지 안 올란지 모르니까 아예 평소 이 혼자 방안에서라도 이런 꼴 자꾸만 해 봐요. 지금은 인민군이 왔다.`네 이놈 예수 믿으면 독침으로 찌를란다' 자문 자답으로.' `찌를란다.' 이라면 `그거는 네 자유고.' `예수 내놔라' `예수는 내놓을 수가 없어.' 그라면서 속으로는 말이오, 속으로는 따그르르 웃습니다. 왜 웃어요? 김영웅목사 왜 웃어? 배경이 있기 때문에? 그래도 칠십 점밖에 안 된다. 왜 웃어. 가소러워서? 아이고, 아직 연애 못 해 봤네.

가만히 보니까 앞에는 독침이지만 고 뒤에는 나 위해서 피 흘려 구속하신 사랑하는 주님이 와 가지고 네가 날 얼마나 사랑하며 얼마나 의지를 하는가 싶어 고 숨어 가지고 문틈으로 말이오. 창살틈으로 딱 내다 보면서 어짜는고 보자 하고 요래 있다 말이오. 고 보니까 좋다 말이오. 따그르르르 웃으면서, 보고 있으니까, 창살틈으로 주님이 보고 있다 말이오. 나 안 보이도록 해 가지고 딱 보고 있다 말이오. 이러니까 멋지게 싸우지. `어림도 없다. 내가 주님 앞에 대속을 입어서 이런데 맺은 약속을 내가 어길 수 있나? 이 정조를 어길 수 없다. 어림도 없다.' 이 더, 뒤에 주님이 이라면 좋아서 또 더 강하게 독침으로 찌른다 찌른다 하는데 벌벌 떨면 주님이 어때요? 섭섭하게 `이 믿지 않는 자야' 그럴 때 더 이래 거석하니까 주님이 좋아서, 주님이 좋아하는 게 보이거든. 저 창살틈으로, 창살틈으로 그라면, 창살틈은 밖에서 보이요 안 보이요? 안에서는 보이요 안 보이요? 안에서 창살틈으로, 아가서에 있어. 창살틈으로 딱 보고 있는 그걸 발견했거든. 주님이 창살틈에 나 보고 있다 이라니까 기분이 난다 말이오. 기분이 나서 이때 나는 못 본척 하고 주님을 보고 있는데 나 혼자, 주님 봐라 하고 멋지게 한번 하지. 멋지게 이래 하는 데서 거기서 주님이 폭 녹아 버려. 네 목의 구슬 꿰미가 내 마음 다 뺏었다. 네가 네 눈으로 나를 한번 바라봄으로써 내 마음 다 뺏들어 버렸다. 주님 마음 뺏들기 쉬 워요, 그만. 주님 뺏들어서 취하기 쉬워.

이래서, 여자 쳐놓고 남자 못 뺏든 사람 없어. 그러니까 여자 말 안 듣는 사람 있나? 안 듣는 사람 하나도 없대요. 여자 말 안 듣는 사람 있나 이라니까, 여자 말 듣는 사람 이리 나오이라 하니까 다 나오고 하나는 안 나오더래요. 너는 여자 말 안 듣나 이라니까 우리 마누라가 많은 사람 가는 데로 가지 말라 하더라. 그거는 더 듣는 거라.

이것을 왜 만들어 놨느냐 하면 말이오. 만들어 놨느냐 하면, 인제 우리는 주님의 신부라. 이 주님 마음을 이래 녹혀야 돼요. 주님 마음을 녹혀야 돼요. 이러니까 이 주님이 창살틈 속에서 보고 계서는 것을 그것을 볼 줄 모르면 헛일입니다. 독침 배후에도 인민군의 포위 배후에도 그 사자굴 배후에도, 이러니까 다니엘과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주님하고 굉장한 고급 연애를 했어.

이라니까 아마, 그래서 우려가 주님을 사랑하되 그냥 평소로 사랑 하는 것과 주님 나 생령 다 바쳐서 사랑함과 같이 나도 주님 생명 바쳐 사랑할 수 있는 그런 기회가 왔으면 좋겠다 싶은 그 소원 주님은 이 고급 사랑했는데 나는 이 저급의 찌끄러기 사랑 이거 가지고 되겠어? 고급 사랑에는 고급 사랑 와야 둘이 짝이 딱 맞지. 주님이 소유와 생명 다 바쳐 가지고 날 사랑했으니까 나도 소유와 생명 다 바쳐 가지고 주님을 사랑해야 주님의 사랑에 비해 짝이 딱 되겠으니까 이 둘이 상대가 될 수 있는 이 사랑의 대상이 되고 싶은 사람 손 한번 들어 봐요. 하, 이거. 할렐루야! 할렐루야! 됐어 됐어. 마귀 이놈 죽는다.

* 아2:9 : ...우리 벽 뒤에 서서 창으로 들여다 보며 창살 틈으로 엿보는구나

(86050732)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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