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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으로 요셉은 임종시에 이스라엘 자손들의 떠날 것을 말하고 또 자기 해골을 위하여 명하였으며  
■ 성경:58히브리서11:22
 

제목: 요셉의 신앙 인격

1. 요셉의 신앙을 통해서 주신 법칙

1.1. 가족에 대한 하나님의 명령 순종

히브리 11장에 기록된 신앙의 인물들은 우리 믿는 사람들의 신앙 표본으로 나타내서 알려주시는 계시인 것입니다. 그중에 요셉의 신앙에 대해서 이 시간에는 우리들로 생각하려 합니다. 창세게 37장 1절로부터 창세기 50장 26절까지를 읽어보면 그 안에 요셉의 신앙 전기가 기록되 있습니다.

그는 하나의 역사의 인물로 지나간 것을 우리에게 소개함이 아니고 영원전 하나님께서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구원도리로 그런 한 형식인 역사를 마련하셨고 또 문서에 기록해서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그런고로 요셉의 신앙에 대해서는 우리가 그런 좋은 신앙에 본을 떠야 되겠다 하는 그런 정도가 아니고 그 사실은 우리에게 신앙의 표준이며 법규로 그 형식을 통하고 또 문서를 통해서 우리에게 기록해 주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요셉의 신앙 전기는 우리에게 대한 신앙 법칙으로 하나님이 명해주신 하나의 법칙이며 하나님의 명령이며 하나님의 율법이요 진리인 것입니다. 모본이면 해도 되고 안해도 되지만 이 사실은 우리의 신앙 사람들의 길로 주신 것이기 때문에 이 길을 걷지 아니하면 그들이 얻은 그 영화로운 건설구원에 우리는 도달하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의 본뜰만한 그런 위대한 신앙으로 생각해서는 안되고 그 하나 하나가 그런 형식을 통해서 우리에게 명령하신 명령이기 때문에 이 하나님의 진리인 이 법칙이기 때문에 이 법칙을 지키지 아니하면 죄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면으로 우리에게 보여주시지만 몇 가지만 거게서 이시간 생각하려 합니다.

첫째로 그는 자기 가족들에게 대해서 신앙 표준으로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가 두 번 꿈꾼 것을 형제들에게 말한 것은 하나님이 명하신 예언이기 때문에 그 예언을 그들에게 전하면 의례히 큰 어려움이 따라올 것을 생각했지만 자기 가족들에게 대한 예언을 거침없이 다 예언했습니다.

그 예언으로 말미암아 어떤 어려움이 왔는고 하니 형제끼리 불목이 생겨서 열 형제가 요셉을 막바로 살해하려고 늘 계획을 꾸미기까지 그런 미움이 자기에게 오리라는 것을 명철한 요셉이가 모를리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예언하려고 하신 명령이기 때문에 그 명령을 거침없이 그대로 전했습니다.

우리들이 볼 때에는 무지한 사람같이 보여지기도 쉽고 또 자기 자랑하는 사람같이 보여지기도 쉽지만 그이의 일생을 통하여 보면 그런 인물이 아니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면서 그의 명령을 가족들에게 전하였다 하는 것을 우리가 판정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자 그 형들이 먼데가서 목축을 할 때에 아버지가 이 미워함을 알고 보내지 아니한 그 요셉인데 첩첩산중에서 양을 치고 있는 그때에 아버지가 너거 형에게 다녀오라고 할 때에 그는 분명히 사지를 향하여 아버지의 명령을 가지고 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한 번도 거역하지 아니하고 대답하고 자기를 죽이려고 하는 그 형들에게 아버지의 명령을 순종하고 또 그 형제들에게 아버지의 전하는 그 소식과 형들에게 위함이 되는 것을 그대로 전하려고 가지고 간 요셉인 것입니다.

그러면 그는 자기 가족들이 자기를 아무리 대적하고 살해하려고 했지만 거기에 대한 하나님의 명령이라든지 자기가 할 의무와 책임은 거치지 아니하고 감당을 했고 또 그 뒤에 바로왕 앞에 있을 때에 그때는 참 복수를 하려면 뭐 그 형제를 당장에 다 전멸을 할 수 있는 그런 복수의 위치에 있었지만 그는 그 형제에 대해서 복수하지 안 할뿐만 아니라, 그 형제들이 과거에 무지한 그 행위를 어떻게 하면 회개를 시킬까 해서 모든 깊은 것을 심사하고 마지막에는 그 정을 통하여 통곡을 하면서 그 형제들에게 흐뭇한 그 형제의 애를 그들에게 끼쳐줬고 큰 위로가 됐던 것입니다.

또 그 뒤에 아버지가 죽고 난 다음에는 아버지의 안면을 위해서 우리에게 복수하지 안하지 요셉이가 반드시 복수하리라는 그런 생각을 가졌기 때문에 요셉이가 그런 우려를 형제들이 가질까해서 미리부텀 말해서 그렇지 않다는 것을 그들에게 알려서 안위를 해서 자기가 형제들에게 대해서 참는 것이나 사랑하는 것이나 그들에게 유익한 것이라면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고 했던 요셉이며 부모에게 대한 효성도 그랬던 것이 우리에게 신앙의 법규로 주신 것입니다.

믿는 사람들은 다른 형제는 자기에게 어떻게 해할지라도 일생동안 형제를 해할 마음이나 또 미워하는 생각이나 이런 것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을 이 요셉에게서 우리가 하나님의 명령으로 받은 것인 것을 알아야 겠습니다.

그렇게 요셉에게 대한 악독을 품은 형제들이지만 그 형제들에게 유익이 될 것을 요셉이 하나도 가리지 아니하고 자기의 어려움을 당하여 지체하지 안하고 다 그대로 전했던 것입니다.

두 꿈을 전한 것이 그 당시에는 과연 하나님의 예언은 변하지 안한다. 그들에게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세밀히 간섭하는 것과 하나님의 그 사랑과 무한하심을 그들이 깨달아서 두 꿈을 요셉이가 그들에게 말해준 것은 크게 하나님과 자신들에게 대해서 회개하는 큰 능력이 된 것을 우리가 여기에서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믿는 사람은 믿지 않는 가족들에게 꼭 이를 표준해서 이대로 살아야 되겠고 또 믿음이 앞선 그 형제는 우매무지한 그 맹수 같은 형제들이나 가족들에게도 어떠게 해야 된다는 것을 요셉이로 우리에게 법규로 주신 이 사실을 깨닫고 이대로 하는 것이 우리가 주의 계명을 지키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1.2. 절망과 낙망의 현실에서도 하나님께 대한 소망을 잃지 않은 것

또 그 다음에 둘째로 요셉이가 이렇게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형제들에게 예언 두 번을 하고 또 늘 그 형제들의 잘못됨이 있으면 걱정이 되어서 아버지에게 어느 형이 이렇게 조금 방조해 나가니까 이것을 아버지가 알고 좀 경계를 해 주십시요. 진정코 그 형제들의 탈선을 염려하고 형제들의 바른길 가는 것을 안타까워 아버지와 호흡을 같이하면서 그 일에 노력했던 것을 우리가 여기에서 알 수 있습니다.

이랬지만 그의 형들은 아무 효력 없이 도리어 하나님의 예언을 감당한 이것 때문에 형제들에게 미움을 받아 찢어 바로 죽이려고 하다가 그 형이 ‘그리하지 말고 저 흙구덩이에 집어넣자 그러면 거서 저절로 죽을 게 아니야’ 이러다가 마지막에는 유다로 통해서 저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종으로 팔려서 애굽까지 갔습니다.

이래도 그가 애굽에 가서 보디발 집에 한 생활을 보면 하나님과 그와 함께 하셨다는 말을 보면 그가 가족들에게 사회에서 국제에서 아주 참 절망스러운 그런 일을 첩첩히 겪었지만 요셉은 거게서 낙망이나 절망을 가지지 안하고 하나님에게 대해서는 여전히 소망하면서 변하지를 안 했습니다.

가족에서 그를 참 절망을 주었고 또 그 상인에게서 절망을 주었고 애굽에 가서 종으로 팔릴 때에 절망을 주었지만 그는 그 절망에 변동되지 안 했습니다.

보디발의 아내로 인한 억울함의 감옥에 들어간 것이나 감옥에서 술 맡은 관원으로 더불어 약속한 것이 그 세월이 지나가도 아무 흔적이 없는 것이나, 이런 것들은 요셉에게 시간적으로 공간적으로 종별적으로 뭐 첩첩히 쌓여 있는 절망과 낙망을 줄만한 그런 일이지만 요셉은 거게서 한 번도 하나님께 대한 절망이나 낙망이나 한 일이 없고 하나님이 살아계시니까 언제든지 끝이 있을 것이고 세상에 이것을 보지 안 할지라도 하나님이 계시니 무궁 세계 가서라도 이 약속지키다가 하나님 만나게 하는 끝없는 그 욕망과 신앙을 가지고 갔고 그 신앙이 요동치를 아니한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1.3. 맡은 일에 대해서 하나님께 충성함으로 감당했다.

또 셋째로 그가 자기 가정에서 하나님 앞에 예언하라는 책임이라든지, 아버지가 사지에 심부름을 보낼 때에 그 심부름에 대한 책임이라든지, 자기가 보디발집에 가서 종으로 보디발이 요셉에게 하나 둘 책임지운 일에 대해서라든지, 또 주인이 자기에게 부탁했는데 그 아내의 미혹이 그렇게 왔지만, 그때에 그 주인이 맡긴 그 책임이라든지,

감옥에 죄수로 들어가서 죄수로서 살면서 그에게 맡겨진바의 책임에 대해서 흠이 없었고 그가 총리대신이 되고 난 다음에도 그의 책임에 대해서 하나님이 언제든지 함께 하실 수 있을만큼 그는 책임감에 하나님 앞에서 충성하고 하나님이 맡겨주신 줄을 알고 그 일에 하나님께 대한 충성을 거게서 했던 것을 우리가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요셉은 어떤 때에 충성했으면 그 충성이 어떤 어려운 때 쉬운 때에 어떻게 바뀌어지는 환경에 어떻게 존귀해질 때에 어떻게 천해질 때에 어데서든지 하나님 앞에서 그의 하나님으로 인하여 맡겨진 책임이라는 것을 느낀 다음에는 책임에 대해서 조금도 소월(疏越)이 한 일이 없었습니다. 이것이 요셉이를 통해서 우리에게 신앙의 기준으로 주시는 것입니다.

1.4. 자기 위치를 월권하지 않고 충성스럽게 지켰다.

또 넷째로는 요셉이 그 보디발집에 가서 살 때에 참 보디발이 요셉이를 높여서 그 가정에 제 이인으로 높여졌고 그가 얼마나 존귀했고 많은 재산을 맡아서 이렇게 했고 했지만 그가 자기 맡은 일에 있는 충성을 다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자기 하시는 일에 함께 해주셔서 자기를 믿게 맡기는 그에게 대해서 손해 없이 자기 사명을 담당하려고,

하나님에게 기도한 것이 나타나지 안 했지만 그이의 하는 그 모든 것이 하나님에게 호소가 되어서 하나님이 요셉이 맡은 그 일을 친히 축복하셔서 하나님을 모르는 그 사람들이 요셉에게는 과연 크신 이 대주제가 함께 하시는 것이 분명하다고 그들의 입으로 고백할만큼 그이의 책임에 대해서는 자기만이 아니고 하나님의 도우심의 능력의 (도우심이) 나타나기까지 자기 책임이라면 신실히 감당했고,

또 자기의 주인과 자기와의 그 참 세력이 비등비등할만큼 됐지만 자기 아내 보디발의 아내가 말을 할 때에 주인이 모든 것을 내게 맡겼지만, 당신만 맡기지 안 했는데 당신은 주인의 아내인데 주인의 아내를 내가 어떻게 이렇게 그 취하는 죄를 범할 수가 없다고 그는 언제든지 종이요 주인으로 그 위치를 조금도 흐리지 아니하고 어떤 형편 사정의 미혹이 와도 자기의 위치라 하는 것을 굳게 지켰습니다.

그가 아버지 밑에 아들의 위치를 단단히 지켰고, 형들 밑에 동생의 위치를 단단히 지켰고, 주인 밑에 종의 위치를 단단히 지켰고, 또 그 감옥에 가 그는 자기 위치를 단단히 지켰고, 그 총리대신 되고 난 다음에도 온 전국이 요셉에게 전체가 정권이 되어 있는데 휘득 뒤집으려면 당장 디비서 바로의 왕의 배신할 수 있지만 그는 자기 지위를 든든히 지키고 월권하지를 안 했고 남용하지를 안 했던 것을 우리에게 보이고 있습니다.

요셉이는 자기 위치에 대해서 이렇게 엄격하게 지켜 하나님의 어디까지의 어떤 위치를 주어도 하나님의 주시면 거기는 자기의 책임이라고 생각하고 그 위치를 감당하려고 충성해서 하나님이 안타까워 그 위치에 사명에 동행해줄 만큼 했지 자기 위치가 어떻게 된다고 해서 남의 위치를 탐하거나 자기 위치를 무시하거나 멸시하거나 그런 일이 요셉에게 없었습니다. 이것이 요셉을 통해서 우리 신앙에 기준을 두고 있는 것입니다.

1.5. 이성 면의 정조를 지켰다.

또 다섯째로 요셉은 그때 나이가 한 스물칠 팔 세 된 때입니다. 가장 청년 그 정욕에 불탈  때입니다. 이럴 때에 오랫동안 같이 지내는 그 보디발의 아내가 그 요셉에게 대해서 탐욕을 품었으니 그가 그 요셉을 호릴만큼 얼마나 단장하고 얼마나 요셉의 마음을 미혹할만한 그런 일이 있기를 여러 해 동안 그렇게 있었지만 마지막이 이것이 최종에 폭로될 때에 요셉은 거게서 그 이성의 혼잡을 일으키지 안하고 거게서 하나님을 모시고 하나님의 법규를 지키며 자기 위치를 지켜서 그 무서운 음심의 그 불타는 음욕의 역사에서 그는 속화되지 않고 물들지 않고 정조를 지켰습니다.

그 어떤 내가 유력한 그 존경하는 목사님이 그렇게 말합디다. 하늘에 가면 바울도 있겠고 아브라함도 있겠고 많은 성도들이 있지만 나는 제일 먼저 요셉한테 가서 경배를 하겠다. 왜 요셉이 그가 청년으로서 그런 그 이성에 남녀 이성에 무서운 미혹이 자기에게 왔고 모든 조건이 그 범할만한 그런 일이 있었지만 그는 거게서 깨끗하게 미혹 받지 않고 자기의 성결을 지켰다. 나는 하늘나라에 가서 제일 먼저 요셉을 존경하겠다.

주님 다음에는 요셉을 존경하겠다고 하는 그런 말을 하는 소리를 제가 직접은 듣지 못했으나 간접적으로 한상동 목사님이 그런 말씀을 하더라는 그런 것을 제가 전하여서 들었습니다.

1.6. 인격이 신실했다.

그는 이성면에 있어서 우리에게 신앙을 표준으로 우리에게 보여주고 갔습니다. 여섯째로 그가 옥중생활 할 때에 거게서 그 옥사장이 모든 정권을 그이에게 맡겼지만 그는 조금도 자기 위치를 벗어나지 아니하고 거게서 충성해서 모든 접촉한 사람들에게는 다 덕을 끼쳤고 본을 보였고 앙모의 사람이 됐습니다.

술 맡은 관원과 떡 맡은 관원이 그 감옥에 갇힐 때에 그때에 시위대장 보디발의 집안에 있는 감옥에 정치범들을 다 가두는데 그 두 장관이 갇혔을 때에 보디발이 요셉을 불러서 이 두 장관을 네가 수종들고 잘 섬기라 하는 것을 부탁한 것을 보면 요셉이 그를 보디발이 투옥했지만 그의 인격에 대해서는 그의 신실에 대해서는 그의 결백에 대해서는 분명히 확신했던 것을 보여줍니다.

1.7. 환경에 요동하지 않은 인격.

그 뒤에 일곱째로 보면 그가 하나님을 바라봤고 사람을 아꼈고 자기의 인격을 더럽히지 안하려고 애를 썼고 모든 일에 책임을 감당한 진실을 이룰려고 애를 쓴 그 신앙생활이 가면 암흑이고 가면 암흑이고 가면 또 암흑이고 가면 가면 절망 암흑 참 상상 못할 일들이 그들에게 부딪혔지만, 요셉은 애굽 나라에 총리대신이 되는 데에까지 가는 데에도 그의 신앙에 계속이라는 인내는 변하지 안 했고,

그는 높은 총리대신이 되어도 그는 우쭐해지지 안 했고 마지막에 말하기를 너희들이 나갈 때에 내 해골을 들고 내 본토로 가자고서 그렇게 그런 말한 것을 보면 그가 하나님에게 대해서나 자기들의 신앙에 대해서나 자기들의 소망 천국 그 욕망에 대해서 도무지 변하지 안 했습니다.

그는 세상의 이런 형편 저런 형편이 요셉이를 참 변동시킬만한 그런 일들이 많았지만, 요셉은 그런 것으로 인해서 조금도 하나님에게 대해서나 인류에 대해서나 자신에게 대해서나 행위에 대해서 조금도 요동치 안한 그 일관된 그 신앙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1.8. 하나님이 주신 업을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그때에 아버지와 모든 형제들이 애굽으로 내려갔을 때에 그때에 요셉은 참 만능자입니다. 바로는 왕이지만 모든 백성들의 마음은 요셉에게 다 끌려서 있고 요셉은 지극히 높은 그 하나님처럼 그들이 알고 있는 때입니다.

그때에 애굽 사람들의 형편은 목축이라 하는 것은 아주 이 못쓸 사람들이 하는 것으로 아주 천하게 여기기 때문에 목축업을 하는 사람들은 사람으로 애굽 사람들이 여겨주지를 않습니다.

그렇지만 요셉이 바로왕에게 가서 우리 선조는 대대토록 목축업을 합니다. 이러니까 이 부모님들이 오는데 대우해 줄 것은 아무리 애굽에 어떤 좋은 것을 줘도 우리에게는 소용이 없고 이 목축업을 할 수 있는 그런 장소를 주옵소서 해서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맡겨주신 그 업을 대대로 그대로 나왔고 하나님이 주신 그 업을 세상 어떤 형편과 사정에 번적거리는 그런 모두 유력하고 영광 존귀 있는 그런 업이라 할지라도 그 업을 바꾸지 안 했습니다. 이것이 그의 또한 인격이요 지조입니다.

오늘을 우리는 하나님께서 자기의 신앙 구원 이루는 데에 족한 의 또는 족한 지방 족속을 택하여 주는데 시대에 따라서 시골에 있다가 조금 하나님이 그것에서 죄 안짓고 살만한 사람으로 만들어 놓으면 그만 이만한 실력이면 도시가도 살 수 있다해서 도시로 다 기나가고 하나님께서 이 지역 이 민족 가운데서 네가 이렇게 살아 하나님은 복 주시는 하나님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라고 하여 그것을 거게서 죄 안 짓고 남의 밭에 발힘이 되지 아니하고 존귀함을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모든 면으로 성장시켜 놓으면 이것 제가 잘나 그런 줄 알고 모든 걸 집어던지버리고 국경을 생각지 안하고 민족과 자기의 그 족속이나 하나님이 정해 놓은 지역을 업을 상관치 안하고 풀풀 뛰서 하나님이 그 자리에서 죄 안짓고 살도록 하기 위해서 그 자리에 뛰어난 그 지능을 주니까,

그 지능 가지고 그 자리에서 깨끗하게 살아나니까 영광 돌리지 안하고, 이만한 지능 가졌는데 내가 여 살게 뭐 있느냐 높은 자리로 뛰어 올라가자 해서 그 업에 대해서 아무런 지조를 가지지 아니하고 하나님이 맡겨주신 그 처소에 대해서 지조를 가지지 아니하고, 제 마음대로 이렇게 해서 변질되는 사람들에게 큰 경고를 주는 것을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애굽나라에 그 정권을 가진 그 총리대신으로서 애굽 전 국민이 목축업사는 족속이라. 그 족속이라 하면 다 상놈이라고 같이 먹들 안합니다. 말을 하면은 그만 천해진다고 말을 상대하지 안 합니다. 그런 업이지만 우리는 대대토록 이 업을 합니다. 하면서 그 업을 더럽다 하지 안하고 그들에게 아무런 수욕을 당해도 수욕당하는 업으로 생각지 안하고 그들이 자랑삼아 말을 하면서 하나님 주신 그 기업을 그대로 이어 나간 그것도 우리에게 큰 인격의 한 표준을 주고 있는 것입니다.

1.9. 어떤 상황에도 속화되지 않았다.

요셉이는 아홉째로 하나님과 약속한 데에서 살고 속화되지를 안 했습니다. 그는 그렇게 어릴 때에 어려움을 당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어려움을 면키 위해서 아부하거나 또 그렇게 변질하거나 해서 형제들의 속화도 당하지를 안 했고, 또 보디발 집에 가서 갑자기 존영하게 됐지만 존영의 속화도 안됐고, 감옥에 가서 그는 또 권위있는 일을 거게서 했지만 거게서 속화 당하지 안 했고, 애굽 나라의 총리대신을 했지만 총리대신에도 속화되지 아니하고,

이는 참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늘나라를 향하여 가는 자기 하나님 자기의 하늘나라 소망 자기 민족들에게 특수하게 맡겨주신 이 신앙 그것만 가지고 있는 사람이지 뜨거운데 가도 변하지 아니하고, 차운데가도 변하지 안하고, 높은데 가도 변하지 안하지, 낮은데 가도 변하지 아니하고 그는 변하지 않는 속화되지 않는 그런 그 신앙 인격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던 것을 우리에게 또 보여줍니다.

그러므로 요셉은 어떤 그 신앙 인물이였던가 하는 것을 그 생애에서 우리가 간단하게 생각해보면 그는 어데서든지 하나님을 안 잊어버릴려고 애를 썼습니다. 죽어도 살아도 하나님 놓지 아니하려고 애를 썼습니다. 하나님을 잊어버리지 안 했습니다.

그가 참 그 이상 없는 어린 열일곱 살 먹을 때 그는 그는 깊은 궁지에 빠지는 외로움에 하나님을 놓지 안 했습니다. 하나님을 잊어버리지 안 했습니다. 그가 그 무서운 미혹 보디발의 아내의 그 집에 하나님을 잊어버리지 안 했습니다. 하나님을 놓지 안 했습니다. 그는 감옥에 가서 애굽의 총리대신이지만 우쭐거리는 것 하나도 없고 거게서 하나님 잊어버릴까 하나님 안 잊어버릴라고 그가 마지막에 거서 떠날 때에도 유언한 것이 하나님 잊어버리지 안하려고 내 해골을 하나님이 약속한 가나안으로 옮겨가서 이장해다오 고서 말을 했습니다.

그는 일생의 생애를 보면 어떤 그 환경과 주위가 변해져도 그는 일편단심 하나님 안 잊어버릴라 하는 것이 그의 신앙 생애였습니다. 또 그를 보면 그가 어려움이 있고 고럴 때는 살짝 변하면 얼마나 수월하겠습니까.

보디발 아내에게 그때 가서 자기 마음에 없다 할지라도 그때에 반응 하면은 자기 생명은 끊어지는 것이고 거게서 응하면 만사 형통이지만 하나님의 뜻을 안 잊어버릴라고 자기에게 주신 하나님이 주신 법규를 하나님이 주신 양심을 하나님이 주신 신앙을 버리지 안하려고 뭐 거게서나 저게서나 보면 그는 하나님의 뜻을 놓지 안 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놓지 안하고 괴로워도 즐거워도 하나님의 뜻을 놓지 안 했습니다.

의례히 형제들이 먼데 있는 박해보다도 같이 있는 그 혈육의 형제의 박해는 참 그게 무섭고 독한 것인데 그 형제의 박해를 무릅쓰고 하나님의 뜻을 놓지 않았습니다. 전해라 하니까 전했습니다.

2. 재요약

그의 일생의 전 첫째 중심이 하나님이요. 둘째로는 하나님의 뜻을 놓지 안하려고 애쓴걸 볼수 있습니다. 셋째에는 그의 신앙 인격 생활에서 보면 사람을 잊어버리지 안하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의 형제들은 그에게 그런 악독을 품었지만 그는 그 형제를 잃을 마음은 하나도 안가졌습니다. 어쩌든지 그 형제에게 마음을 잃지 안하고 양심을 잃지 안하고 정을 잃지 안하고 그 사람을 잊어버리지 안할라 하는 그 마음을 끝까지 가졌습니다.

이러니까 보디발 아내가 그렇게 애매하게 할 때에도 자기가 툴툴 털어서 바른말 하면은 요셉의 말이 서겠지만 그는 자기를 해칠라고 하는 미혹주는 보디발의 아내에 대해 그 사람을 놓지 안하고 잃지 안하려고 함구하고 나는 그런 일은 없다고 한번 말해도 죄인이 의례히 없다 할 것 아닌가. 그까짓거야 다 묵살시키고 묵살시킬 때 다시 말하지 아니하고 쿡 짊어지고 감옥속에 들어간 것은 그가 사람을 잃지 안할라 하는 것이요.

또 그 뒤에 장관들을 감옥에 가둘 때에 보디발이 그 죄수 가운데에 요셉에게 말하면 네가 이 떡 맡은 장관 또 술 맡은 장관 이 두 장관을 네가 잘 수종들고 모시라 하는 것을 보면 그가 보디발도 잃지 않은 것이 분명합니다. 그 감옥에 있으면서 한 사람도 잊어버리지 안 했습니다. 그 감옥에 있는 사람들이 다 요셉이를 존경하고 그가 하나님 안 잊어버리고 둘째로는 하나님의 뜻을 잊어버리지 안하고 셋째로는 사람을 잊어버리지 안하려고 애쓴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이러니까 그대에 사람 하나만 잊어버리면 형통할터인데 자기가 온갖 죽음을 무릅쓰면 사람을 잊어버린 토막이 없습니다. 그러고 난 다음에는 보면 자기가 이런 굴곡 저런 파란 온갖 변동을 다 만났지만 자기의 신앙인격이라는 인격을 절대 잊어버리지 안 했습니다. 자기의 인격을 절대 잊어버리지 안 했습니다. 어디서든지 자기의 인격은 그대로입니다.

애굽 나라의 총리대신이 될 때에도 그 인격 그대로 억울하게 만나 여 죄수 되었을 때도 그대로 형제들에게 억울하게 매장되어서 죽음을 당할 그때도 그대로 자기의 인격을 더럽히지 안하려고 자기의 인격을 잊어버리지 안하려고 그는 애를 썼고,

그 다음에 다섯째로는 그가 자기의 책임감에 대해서 자기는 어떤 애를 썼고 그 다음에 다섯째로는 그가 자기의 책임감에 대해서 자기는 어떤 위치에서 책임을 맡았든지 그 책임감의 결말은 진실이라 하는 한 열매를 맺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려는 그 포부만 가졌던 것이 요셉의 신앙 인격이었습니다. 이것은 하나의 역사의 한 것을 우리에게 보이는 것이 아니고 이는 우리에게 구원의 도리로 주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요셉의 이 다섯 가지의 아름다운 이 신앙 행위는 우리에게 하나님이 표준의 명령으로 주신 것인 것을 우리가 깨닫고 이런 일을 당할 때마다 요셉으로 통하여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이 법칙을 명령을 우리는 달게 감당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그렇게 파란과 오해와 고독과 섭섭한 중에 하나님께 대한 소망과 자기 생애법칙인 하나님의 뜻과 자기 인격을 더럽히지 안 하는 것과 인간을 잊어버리지 안할려는 이 욕망에서 그이의 걸음은 언제나 형통했습니다. 그이의 생애에 세상이 주는 굴곡이 그이에게 아무런 어려움이 되지를 아니했습니다.

(81081601)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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