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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가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었나니  
■ 성경:60베드로전서01:05
 

벧전1:5-6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었나니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을 인하여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도다'
이러니까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이런 죄도 만나게 하고 저런 의도 만나게 해서 의를 만날 때에 박해가 있고 죄를 범하지 안할라 할 때에 박해가 있는 그런 것을 자꾸 하나님이 만나게 하신다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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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가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구원을 얻기 위하여' 구원은 무슨 구원인가? 자기 자체 온전을 이루는 구원, 자기 실력 말입니다. 온전을 이루는 구원, 하나는 하늘나라의 모든 얻어질 소유와 영광과 지위와 권세 그런 것들을 마련하는 그것이 다 우리의 구원입니다. 자체 구원, 자기의 소유 구원 그것이 다 행위로 말미암아 이루어집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말미암아' 요 믿음은 무슨 믿음인가? 요 믿음은 종자 믿음입니다. 에베소서 2장 7절 이하에 쭉 보면 '우리의 행함으로 말미암아 이 믿음이 생겨진 게 아니고 영원한 때 전부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준 믿음이라'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면, 행함으로 말미암은 믿음 같으면 자랑할 것이 있지마는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로 준 믿음입니다. 그러면 이 믿음은 우리가 알고 내 주관이 믿어서 믿는 걸 말하는 게 아니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믿음을 가지고 우리가 이 믿음 가진 자 됐습니다. 우리 중생과 같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었나니'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었나니' 그러면 하나님이 택함을 입은 자, 예정구원을 입은 자, 창조구원을 입은 자, 대속 구원을 입은 자, 중생구원을 입은 자에게는 다 이 믿음을 줘서 하나님의 능력의 보호를 입혔습니다. 우리 중생된 사람은 하나님의 능력의 보호를 다 입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능력의 보호를 입다니? 자존자의 보호, 예정 보호, 선택 보호, 창조 보호, 하나님의 섭리 보호, 하나님의 관리 보존 보호, 또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의 보호, 성령 보호, 진리 보호 이 보호는 다 전능 전지의 보호인데 이 보호를 우리가 입고 있는 자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었나니' 그러면 우리는 이 지극히 큰 능력의 보호를 입었습니다. 이 능력의 보호를 입은 것은 하나님의 주권 개별 섭리의 보호를 입었다 하는 말입니다. 주권 능력 보호를 입었다 그 말은 하나님께서 우주와 영계의 크고 작은 것 모든 것을 당신이 주권하셔 가지고 모든 것을 섭리하고 계시는데 그 모든 것이 다 나를 보호하고 있다 그말입니다. 그 모든 것의 보호를 입었다는 말입니다.

이러니까 우리의 보호는 틈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치 비유컨대 어린아이가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에는 어머니 태 중에 있으니까 그 아이가 이리 봐도 어머니요 위로 봐도 어머니요 아래로 봐도 어머니요 전체가 어머니 속에 그 아이가 들어 가지고 자라는 거와 꼭 같이 우리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피조물과 하나님의 모든 섭리, 시간, 모든, 존재 전부 이 속에서 우리는 자라가고 있습니다. 요것을 확실히 믿어야 됩니다.

그러면, 우리가 보는 것이나 듣는 것이나 아는 것이나 모르는 것이나 모든 존재는 우리를 위하지 않는 것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를 위해서 있지 않는 것도 하나도 없습니다. 또 어떤 순서가 이 역사에 전개되든지 전개되는 그 모든 순서는 다 우리를 위해서 한 순서 두 순서가 전개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가리켜서 여기 '능력의 보호를 입었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능력은 하나님의 능력을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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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가 말세에'
말세라 말은 신약 시대를 다 가리켜서 말합니다. 신약 끝을 말한 게 아니라 신약 교회 시작한 때부터 말세입니다. 예수님의 재림까지의 역사 세계를 세 동가리로 나눈다고 하면 처음에는 노아 때까지 한 동가리이고, 그 다음에는 예수님의 초림까지가 가운데 토막이고, 또 예수님이 승천하신 이후로 재림 때까지의 그 기간을 가리켜서 말세라 그렇게 말합니다.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그러면 이 구원이 뭐인가? 말세에 나타날 우리 구원이 뭐인가?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한 구원''신약 시대 성도들에게 주시려고 예비한 구원을 얻기 위하여' 그러면 우리가 받을 구원, 하나님께서 예비한 구원이라 하니까 예비한 구원은 다 만들어 놓은 구원이라 말입니다. 다 만들어 놓고 구원은 다 돼 가지고 있습니다. 다 돼 가지고 있는 이 구원을 우리에게 주려고 지금 준비해 가지고 있는 이 구원을 신약 교회가 받을 시기인 것입니다. 그러면 이 구원은 어떤 것을 가리켜서 말하는 것인가? 이 구원은 곧 우리의 대속과 중생에 속한 것들입니다.

그러면,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 하는 이 구원이라 말은 예수님의 사죄의 공로와 하나가 돼서, 예수님이 사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공심판에 죄 없는 자로 통과한 이 사죄, 죄 없는 자가 완전히 되어지는 그것이 우리가 구원을 입는 것입니다. 또, 예수님의 칭의를 완전히 입어서 하나님의 율법을 완전 이행하신 그 공로를 내가 입어서, 나는 하나님의 율법을 이행하지 않았지만 하나님의 율법을 완전 이행한 자가 내 자신이 실상으로 되어지는 이것이 우리 구원입니다. 또 하나님으로 더불어 완전 화친을 가진, 논리적인 결합이 아니고 법적인 결합이 아니고 실상의 결합이 되어지는 이것이 이 구원을 입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그러면 이거는 예수님이 이 세 가지를 만들어 놨는데 이 세 가지가 완전히 내것이 돼서 이 세 가지와 나와 완전히 결합해서 하나가 되어지는 이것이 예수님의 피공로와 연결되는 것이고 그라고 난 다음에 둘 있는 거는 뭐이냐 하면은 성령과 나와의 연결이 돼 가지고, 성령하고 나하고 이렇게 끊어졌다가 이 중복되는 게 아니고 성령님의 이 역사와 나와의 하나가 돼서, 성령과 나와 하나가 되어지는 것. 성령님과 나와 하나가 되어지는 이것이 구원을 입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진리와 하나되는 것이 이것이 구원을 입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세 가지 대속의 공로를 입는 것은 예수님이 대속해 놓은 그것을 내것으로 실상으로 입어서 완전히 내것 만드는 것이고, 또 성령과 나와 하나가 돼서 동행하는 것, 또 진리와 하나돼 가지고 동행하는 것 이것이 예비해 놓으신 구원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대속도 예비해 놨고 예수님의 대속으로 인해서 우리가 성령님과 진리와 하나되도록 완전히 완료를 해 놨습니다. 해 놨는데,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라 말은 이 (다섯 가지와) 실상으로 하나되는 이것이 우리의 구원입니다.

내가 진리를 지키는 게 아니고 진리와 나와 하나되는 것, 또 성령과 나와 하나되는 것, 또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내가 실상으로 입는 것 요것이 우리 구원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언제 입느냐? 우리가 이 세상에 머무는 동안에 입어야 되지 세상에 머무는 동안에 못 입으면 다시는 입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거는 세상에 있는 동안에 우리가 입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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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었나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이 믿음을 잘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 믿음은 우리 주관 믿음이 아닙니다. 주관 믿음이라 말은 내가 알고 인정하고 행하는 것이 믿음 아닙니까? 그러면 이 믿음은 우리 행동은 하나도 여기 속하지 않았습니다. 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하하심을 입었다 하는 이 믿음은 우리 사람들의 노력은 하나도 여기 섞여 있지 않습니다. 사람들의 노력은 하나도 섞여 있지 않는 믿음입니다.

에베소서 2장 7절 이하에 보면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니라' 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믿음으로 구원 얻은 그것은  믿음도 우리가 만든 믿음 아니고 구원도 우리가 만든 구원 아닙니다. 요 믿음은 사람이 만든 믿음이 아니고 순전히 하나님이 만들어 가지고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믿음입니다.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도 잘못하면 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 얻었다 하는 이 믿음을 인간 주관 행위가 시작하고 난 뒤의 믿음이라고 이렇게 생각하기 쉬운데 그렇게 되면 모든 성경의 교리가 다 뒤집어져 버립니다. 이걸 구별을 단단히 해야 됩니다.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 얻었나니' 믿음으로 구원 얻었는데, '얻었나니 이것이 너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니라' 했습니다.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는데 그러면 이 구원은 행위가 아니고 선물이라, 그러면, 행위가 아니고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선물이라, 그러면 하나님의 선물이라 말이 요 구원만을 선물이라고 말한 것입니까 그 믿음까지를 다 선물이라고 하는 말입니까? 요걸 똑똑히 알아야 됩니다. 그 믿음까지를 선물이라 한 것인지?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은혜' 은혜라 말은 공으로 받는 거 아닙니까? '은혜를 인하여' 은혜를 인해 뭘 받았다 말입니까?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그러면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다 이랬으니까 은혜로 가지고 얻은 것이 구원이라 말입니까, 믿음이라 말입니까, 믿음과 구원 둘이라 말입니까? 둘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믿음은 믿음이라 하는 것은 내 주관이, 내 주관, 내가 말입니다. 내가 듣고 읽고 난 다음에 알고, 알고 나서 인정하고, 인정하고 난 다음에 그대로 순종해서 행위하고 하는 그게 믿음인데 여기는 아는 것도 안 들었고, 들은 것도 안 들었고, 믿는 것도 안 들었고, 또 행동하는 것도 안 들었고 하나도 안 들었습니다. 이건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로 된 믿음이라 말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된 믿음이라 말입니다.

'은혜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그러면 '이것이' 하면 그 구원 말입니까 믿음 말입니까 뭐입니까? '이것이' 했으니까 '이것이' 하는 것은 구원을 말합니까, 믿음을 말합니까, 믿음과 구원을 두 가지 다 말합니까? 믿음과 구원 이 두 가지를 다 합해서 '이것이' 했습니다. 그런데 그거는 순전히 은혜로 인해 가지고 됐다 말입니다.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라 했으니까 요 믿음 말한 요것이 은혜에 들어갔습니까 안 들어갔습니까? 확실히 들어갔습니다.

이것을 확실히 믿지 않으면 나중에 마귀란 놈이 뭘 작용하느냐 하면, 베드로전서 1장에 볼 때에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의 보호를 입었나니'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보호를 입었다고 했으니까 입은 것이 믿음으로 입었는데, 마귀가 와 가지고 '너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의 보호함을 입었다고 말하지 않았느냐? 네가 하나님의 능력의 보호를 입을 만한 믿음이 정말로 있나? 한번 생각해 봐라. 네가 너를 알고 있지 않느냐? 네가 그런 믿음이 있나? 믿음이 있어야 하나님의 능력의 보호가 있는 것이지 네가 믿음이 없으니까 하나님의 능력의 보호가 없는 것 아니냐? 공연히 네가 하나님의 능력의 보호가 있다고? 보호가 있기는 뭐 있어? 네가 믿어야 보호가 있는데 네가 믿지 않는데 무슨 보호가 있느냐?' 이렇게 마귀란 놈이 들어붙일 때에, '과연 나는 믿음이 없으니' 하나님의 능력의 보호라 하는 것이 그 다음부터 의심이 나게 됩니다. 이래 가지고 사람들이 실패합니다. 이거 지금 얼마나 중요한데 이 중요한 것을 사람들이 별로 예사로 여깁니다.

이러니까 요 믿음이, '선물이라 행해서 난 것이 아니니'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라 했으니까 요 믿음이 자기가 알고 인정하고 행하는, 인간이 만드는 믿음 그 믿음이 아니고 순전히 은혜로 된 선물의 믿음이라 하는 것이 확실합니까? '행위로 만든 게 아니라' 했으니까 확실하지 않습니까?

또 엡01:19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그의' '그'는 하나님이십니다. '그의 신의 강력으로' 강력이라 말은 강할 강(强)자 힘 력(力)자입니다. '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에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들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믿는 우리에게' 요 믿는 믿음은 무슨 믿음입니까?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그러면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믿는 자에게 오니까 믿을 때에 오고 안 믿을 때에 안 오고 그런 것입니까 믿으나 안 믿으나 이 능력이 와서 있습니까? 뭐입니까? 요런 거 단단히 구별하지 못하면 안 됩니다.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이러니까 '믿어야 하나님의 능력이 오지,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능력이니까 믿어야 하나님의 능력이 오지 않느냐? 그런데 네가 뭐 믿나? 네게 하나님의 능력 어디 있다고 지금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다고 네가 하고 있느냐? 네게 하나님의 능력은 오기는 오지마는 네가 믿어야 오는데 네가 믿나?' 요 믿음을 자기 행위로 만드는 믿음이라고 딱 바꿔 붙여 놓으면 그 사람은 멸망입니다.

이 믿음은 우리 사람이 만드는 행위 믿음이 아니고 이거는 순전히 하나님이 은혜로 선물로 준 믿음이니까 인간은 알기도 전에 온 믿음입니다. 인간은 모르는 믿음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믿든지 안 믿든지 의심을 암만 해도 하나님의 지극히 큰 능력이 우리에게 와 가지고 있다 말입니다. 우리가 그때에 믿음이 있든지 없든지 이 능력은, 내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이 능력이 오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선물로 당신이 나에게 믿음 주시고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왔기 때문에,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능력이 왔으니, 그 믿음이 내게 있는 것도 모르고 능력도 모르고, 나도 모르는데 하나님께서 나에게 그것을 부여해 줘 가지고 택한 자들이면 중생 후에는 다 이것이 와져 가지고 있습니다.

* 엡2:8 -9 :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 엡1:19 : 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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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가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었나니'
이 보배를 허락받은 자, 예수님 다음으로 강한 자가 시기하여 방해하니 예수의 능력으로 보호하여야만 그 소유를 얻기까지 유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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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가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었나니'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한 구원이란 신약시대에 나타내기로 예비한 구원을 말씀합니다. 이 구원은 구약 4000년에 나타난 구원은 다 신약시대의 구원을 위한 준비기간입니다. 하나님의 목적완성을 위하여 준비기간이 지나고 마지막 목적을 달성하시기 위하여 예수님이 죽으심으로 대속하시고 구약과 다른 특수한 성령을 부어주셨습니다. 신약은 추수기요, 구약은 심은 때입니다.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예비하셨은즉 우리가 아니면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니라(히11:40)' 말씀했으니 믿음의 사람들이 온갖 고통을 당했으나 신약시대가 아니면 구약시대의 교회를 완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한다는 말씀입니다.

신약시대는 추수기요, 마지막 완료를 하는 위치에 있는 구원기간이니 구약시대는 탁월한 것이 구약시대는 물질적으로 왔고 가견적으로 왔고 육체적 시련으로 많이 왔습니다. 즉 사자굴이나 풀무불 등 고문고형을 당했습니다. 이것이 최고이나 신약시대의 시련은 영적이기에 물질적으로 말하면 구약은 둔한 것이요 신약은 신비한 것입니다. 마5:27,28에 보면 음욕을 품으면 간음한 것으로 고급적인 시험입니다. 요일3:15'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살인하는 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낙망적인 절망적인 견해로 살인과 같은 범죄의 중량이 됨을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신약시대의 장성은 온갖 궤휼과 간사한 유혹과 시대적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는 것이 장성한 자입니다. 구약시대는 몸으로 잘못 행하는 것이 죄지만 신약시대는 듣는 것을 잘못 들어도 죄입니다. 여호수아가 기브온 사람들의 곰팡이 난 떡의 유혹을 받아들인 이 문제에서 잘못 들은 것을 정죄하지 않고 하나님에게 기도하지 않은 것을 정죄했습니다. 신약시대는 잘 듣는 것이 아니면 죄라고 정했습니다. 잘못 듣고 잘못 보고 잘못 말하는 것이 죄다. 모든 시험이 드러나면 목숨 내어놓으면 됩니다. 그러나 신약시대는 이것으로만 안 됩니다.  

예를 들면 구약시대는 '뛰어 내려라'하는 시험이니 목숨 내어놓으면 됩니다. 그러나 신약시대는 '뛰어 오르라'는 시험입니다. 준비기간이 구약시대요, 신약시대는 추수기입니다. 영적인 것입니다. 오늘날은 구약시대와 같은 시험만 이기려면 허사입니다. 이때는 심령문제입니다. 듣는 것의 진가의 구별이요, 고등시험입니다. 그러기에 구약시대의 시험은 가끔 닥치는 시험이었으나 신약시대의 시험은 평범적이요, 평소적이요, 항상적입니다. 그러기에 구약에 비해 어렵습니다. 항상 깨어있어야 합니다.

교역자는 마귀의 꾀 위에 앉아 있어야 합니다. '뱀 같이 지혜롭게'하는 말씀은 뱀에 꾀임에 빠지지 않아야 되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뱀의 꾀임에 빠지지 않으려면 그들의 술책을 다 알아야 합니다.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는 말씀은 우리가 가장 주력할 것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바로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과거를 바로 아는 것이 참 지식이요, 미래를 바로 아는 것이 지혜입니다. 바로 아는 비결은 자기에게 대한 진리, 하나님의 뜻 이것 하나만 바로 찾도록 애를 쓰다보면 모든 것을 바로 알게됩니다. 자기에게 대한 하나님의 뜻을 찾으려면 현실을 부인하고 자주장하는 왕을 죽이고 착한 양심을 써야 알게됩니다. 우리는 염세주의가 아니라 나의 현실을 벗어나지 말고 현실에서 나의 현실을 어떻게 진행해 나가느냐의 바른 처리를 가르쳐 주시는 분이 성령님이십니다. 이것을 찾는 데는 착한 양심이라야 합니다. 자기의 현실을 밟고 초월하여 그보다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자기 욕심을 초월해야 선한 양심이 있고 여기서 바로 진출해야 바로 알게됩니다. 이것이 자기 진리입니다.

우리의 현실 처리는 믿음의 방편 외에 져버리지 말고 하나님의 인도대로 해야 합니다. 현실에서 나에게 대한 하나님의 뜻을 바로 찾고 하나님의 뜻대로 된 현실 이외의 현실을 원치 않아야 합니다.

현실에 대한 두 가지 지식할 것은
1) 이미 기성 현실을 버리지 말 것,  예를 들면 내가 현재 사창굴에 들어있다면 그곳에서라도 나오지 말고 거기서 성령의 인도대로 순종으로 나와야 하나니 나오는 것이 덕이 되고 죄를 멸하고 의가 건설되도록 하여 나와야합니다. 이러하거든 하물며 다른 현실이랴?  하나님의 인도대로, 하나님의 지도대로, 하나님의 지시대로 처리하고 앞으로 얻을 현실도 하나님의 뜻은 순종하여 얻은 현실을 가지고 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믿음으로 할 때 하나님이 적합하게 하십니다. 있는 것을 다 팔아 밭을 사야 합니다. 자기의 목숨까지 내어놓아야 됩니다. 이래야 이 현실이 영원토록 내 것이 됩니다.

2) 현실을 자기가 만들지 말 것.  현실을 믿음으로 처리하라! 현실에셔 하나님이 시키시는대로 행하다가 보면 자연히 또 현실이 이루어집니다. 하나님께 순종하다가 얻은 현실은 올라가고 내려감이 상관이 없습니다. 그것은 찌끼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진리에 순종이 크다. 우리의 욕심은 올라가려 하는데 이 욕심은 버려야 합니다.

어찌보면 믿음이란 바로 옳은 지식입니다. 고기덩어리 커봐야 소용없습니다. 영이 장성히여 그리스도화 되면 얼마나 명철한지 모릅니다. 신약시대의 시험은 궤휼에 안 빠지는 것이요, 간사한 유혹과 시대의 요동에 따라 움직이지 않고 환경에 피동되지 않고 양심의 지시에만 기울이면 완전한 사람이요, 부족함이 없습니다. 이리하려면 모든 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바로 알려면 ① 사람에게 배우고 ② 영감에게 배워서 ③ 실행하면 ④ 자랍니다. 실행한대로 자랍니다. 그러면 자란 것만큼 알게 됩니다. 그러므로 게으른 자는 못 얻습니다. 우리는 믿는 것부터 하고 먹고 입고 성공도 해야합니다.! 믿음부터 지키라! 그러면 온갖 것 다 만들 수 있습니다. 믿으면 하나님이 창조하십니다. 믿음 지키려는 데는 더 큰 지혜가 나옵니다. 믿음 지키려면 자기를 꺾어야 믿음 지키게 됩니다. 참 인격자는 온갖 것을 다 할 줄 알아야 합니다. 또 하나님이 시키시는 대로 온갖 것을 다 해야 합니다. 존비귀천이나 어떤 것도 다 당할 각오를 해야합니다. 못할 것이 없어야 하고 못 먹을 것도 없어야 하고 못 갈 데가 없어야 합니다. 고생은 남의 고생이 아닙니다. 나도 언제 당할는지 모릅니다. 왜냐하면 내가 만들어지는 데는 내가 무슨 순서를 통과해야 할는지 모릅니다. 요셉은 감옥도 총리가 되는데 필요했었습니다. 우리는 각오해야 합니다. 이것이 참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떠나서는 안되지마는 하나님이 나를 인도하시는 데는 내가 못할 것이 없어야 합니다. 우리는 제 갈길이 정해져 있으니 누가 내 할 일을 못 가르칩니다. 우리는 낮아질 줄 알아야합니다. 무슨 천대나 멸시나 두려운 것이나 가난한 것이나 살든지 죽든지 각오해야 주님의 인도하시는 대로 따라 갈 수가 있습니다. 주님이 나를 어느 길로 인도하실는지 나는 모릅니다. 우리는 자기 진리를 찾으면 능숙해집니다. 그래가지고 하나님이 만드십니다.

오늘날의 시험은 다 신령적인 것입니다. 자기의 구원은 하나님의 진리대로 행위와 자체가 됨이 구원의 완성입니다. 이전 것보다 고급의 말세의 구원을 주시려고 우리에게 나타났습니다.


'나타내기로'
'나타났다'는 말씀은 성취하신다는 말씀과 같습니다.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었나니'란 (엡1:19)의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至極)히 크심이 어떤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말씀하셨으니 우리가 이미 이 지극히 큰 능력을 입고 있다고 했으니 무엇이 입었느냐? 우리의 영은 이미 입고 있습니다. 우리의 영은 하나님에게 완전 피동이기 때문에 이미 지극히 큰 하나님의 능력의 보호를 입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순종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의 보호를 이미 입고 있으니, 이 능력이 와있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
하나님의 능력이 책임지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지극히 큰 능력이 우리를 책임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 가지 시련을 당하나 기뻐합니다. 시작은 근심하였으나 결과는 기뻐하게 됩니다. 너희는 근심하나 세상은 기뻐합니다. 결과는 기쁩니다. 지극히 큰 능력이 우리에게 와있으니 성령의 시키시는 일이 어떻게 어려워도 찾기가 어려워도 찾으면 기쁘고 실행해보니 더욱 기쁘더라는 말씀입니다. 본문은 그 당시 로마 네로 황제의 박해 중에 있는 성도들에게 한 말씀입니다.  

우리의 목적은 하나님의 목적인 순종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받는 것으로 성공입니다. 여기에 나의 것을 다 투자한다면 성공입니다. 기뻐해야 합니다. 이것을 싫어하고 고통스럽게 느끼는 것은 참 내가 아니고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하려고 아우성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것들을 옹호하며 쥐고있지 말고 투자해야 합니다. 죽을 것이 안 죽으려고 하니 이놈을 죽여 생명에게 삼키어지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근심을 하는 것은 옛 사람이 투자 안 하려고 근심을 합니다. 마귀와 부패성에게 물든 것이 근심하고 있습니다. 이 근심은 하나님의 뜻을 찾아놓고 행하지 않으려는 근심입니다. 원죄와 사망과 마귀가 근심하는 것이 아니고 이것들에게 물든 마음과 몸, 의지, 감정, 성품들이 근심하는 것입니다. 한 종이 두 주인을 섬기는 근심입니다. 이것들이 고민하거든 양심이 타이르고, 영이 타이르고, 성도들이 타이르면 순종하게 됩니다. 순종하면 기뻐지는 법입니다. 세상 것 다 버리고 성령의 인도대로 순종하면 죽을 것 같은데 성공이라는 것을 체험하게 되니 이것에 역사한 권능을 만나보게 됩니다. 이것을 가리켜서 여기 능력이라고 말씀했습니다.

(710506)


벧전1:5

'말세에'
이 말세라고 말하는 것은 신약시대를 가르쳐서 말합니다. 말세는 마지막 끝 날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노아 홍수 때까지는 처음이고 또 노아 홍수 이후로 예수님이 탄생하실 때까지는 중간이고 또 탄생 이후 예수님 재림 때까지는 끝입니다. 이래서 말세라고 하는 것은 신약시대 2천년 이쪽 저쪽을 가리켜서 말세라 이렇게 말합니다. 신약시대를 가르쳐서 말세라 합니다.

* 행2: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말세에 하나님이 나타내시는 구원은 구약시대 4천년 동안에 나타내신 구원과 다릅니다. 구약시대 4천년 동안 나타내신 구원은 하늘의 소망은 같지마는 하나님의 뜻하신 은혜가 다릅니다. 이래서 사도행전 2장에 보면 '말세에는 성령을 물 붓듯 부어준다' 그 말은 구약시대 보다 신약시대에 성령의 충만하심을 주실 것을 가르쳐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여인으로 난 자 중에는 세례요한 만치 진리에 큰 자가 없다. 엘리야,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다니엘, 호세아 이런 선지자들이 많았지마는 그 보다도 세례요한은 가장 큰 선지자다' 했습니다. 그 말은 세례요한이 예수님에게 대해서 가장 잘 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지극히 작은 자도 이보다 크다' 말한 그 천국은 신약교회시대를 가르쳐 말했습니다. 이러니까 예수님께서 전파하시고, 세례요한도 전파하기를 구약시대는 천국을 바라보라 했지마는 신약교회는 복음이 시작되면서 '천국이 가까왔으니 회개하라' 했습니다. 이 말은, 천국이 가까웠단 말은 천국이 한 10리 5리쯤 된다 말이 아니고, 가까이 왔단 말입니다. 천국이 가까이 왔으니 하는 그 말은 하나님께서 직접 통치하시는 신약시대를 말합니다.

그러기에 신약시대의 하나님의 역사도 다르고 또 신약시대에 믿는 사람의 신앙도 또 구약시대와 다릅니다. 신약시대는 다니엘과 같은 그런 신앙가들이 꽉 찼습니다. 뭐 하나 둘이 아니고 많이 있습니다. 한국도 지금 아무리 그러하지마는 다니엘과 같은 그런 입장을 착 닥치면 다니엘과 같이 사자 굴에 서슴지 않고 들어갈 사람들이 뭐 하나 둘이 아니고 열 스물이 아니라 가뜩 찼습니다.

* 마11:11 :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저보다 크니라
* 마3:2, 4:17 :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너희가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이래서 구약 4천년은 신약 2천년의 구원을 위해서 준비기간이라 말씀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경고하시기를 농사짓는 사람이 벼농사 이런 것을 짓는 것도 한 6개월 걸리는데, 뭐 당장 1개월 동안에 추수하는 것도 있지마는 6개월 걸리는데 넉 달은 모두 심고 가꾸고 하는 시기고 두 달 동안은 열매 익고 추수하는 시기입니다. 이래서 요한복음 6장에 말씀하시기를 '보라 넉 달이 지내서 이제 추수할 것이 많게 됐다. 그런고로 아버지 앞에 일꾼 보내주시기를 기도하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넉 달은 구약 4천년 시기를 가리켜서 말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 말세는 참 구원도 특별한 구원이요, 구원도 특별한 구원으로서 아주 존영한 구원이요, 또 시험도 특별한 시험으로 아주 어려운 시험들이요, 또 은혜도 특별히 베풀어주시는 시기입니다.

마치 비유컨대 탑을 만드는 사람이 탑을 만드는 데에 기초와 위에까지 다 하는 공사비가 만일 1천 만원이 들었다 하면 위에 탑 꼭지를 만드는 데에 그 꼭지에 1천 만원을 들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탑 꼭지는 얼마 되지 안 해도 탑 꼭지에는 반드시 그 탑 전공사비와 같은 그런 가치 있는 것을 탑 꼭지에다 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탑 꼭지는 대개 보석이나 진주나 백금이나 이런 것들을 가지고서 합니다. 그 모양으로 구약시대의 4천년 동안에 하나님이 해 논 그것보다 신약시대 2천년 동안에 만들어 놓은 성도의 그 신앙과 의가 더 큽니다.

그러기에 히브리서 11장에는 보면 '우리가 아니면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했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구약시대에 톱에 켜이는 것도, 불에 태우는 것도, 포박하는 것도 그들이 개의치 아니하고, 더 좋은 구원을 위해서 고난을 개의치 안하고 열심히 믿었지마는 '우리가 아니면 저희들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한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이 신약교회의 구원이 더 크고 하나님의 은혜가 더 크고, 또 우리가 힘쓰기도 더 힘 써야 합니다.

* 요4:35 : 너희가 넉 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 하지 아니하느냐
* 히11:40 : 우리가 아니면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었나니'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할 때에 가슴이 두근두근하고 또 자기는 '이제는 죽는다, 이제는 끝났
다' 이렇게들 생각한다 말이오. 그러나 믿음 있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죄짓는 것이기 때문에 죽었다는 그런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이제는 공산주의자들이 총을 들고 와서 쏘아 죽이려고 해도 '이제는 죽었다' 그 죄를 짓지 않는다 말입니다.

이제는 죽었다가 아니라 이제 내가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니, 믿음을 지키니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이 와서 나를 보호하는데 하나님이 내가 이룬 걸음에 죽는 것이 나에게 유익 되면 하나님이 죽게 하실 것이고 또 죽었다가 살아나는 것이 유익하면 죽었다가 살아나게 하실 것이고 또 털끝 하나도 상하지 않는 것이 유익하면 그렇게 하실 것이고 그까짓 거 뭐 인민군 몇 십 명 온다 해도 그게 전능하신 능력 앞에 제까짓 게 뭐이겠소?

이러니까 이제 지금 내가 믿을 때에 전능하신 능력이 내게 와 가지고 함께 한다. 내가 믿음을 배반할 때에 전능하신 능력이 나를 떠난다. 요걸 믿기 때문에, 믿을 때에 하나님의 능력의 보호하심을 떡 봤습니다.

(79082930)


벧전1:5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었나니'
현실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아 가지고 내가 그대로 실행하는, 하나님의 뜻을 버리지 안하고 하나님의 뜻을 영접해서 하나님의 뜻대로 했다 그 말이요. 영접한 그 뜻 그것이 전능의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진리인데 그 진리가 전능의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 그렇게 깨달아 자기로 하여금 요대로 살아야 되겠다는 감동을 받은 그 감동 그게 또 지극히 큰 능력, 전능을 가지신 하나님이십니다.  

이러니까 자기 눈에는 보이지 안 하지만 자기가 믿을 때에 울며 믿습니다. 울면서 '아이구' 그렇지마는 '예수님이 나 위해 피 흘려 구속했는데 나도 주님 위해서' 울면서 믿습니다. 울면서 믿었는데 눈에 안 보이는 지극히 큰 능력이 와서 자기를 책임진다 말이요. 하나님의 능력이 자기를 보장하고 자기편이 돼 가지고 자기 대신 일한다 그 말이요.

이 능력이 오는 게 보이지는 안 했는데 울면서 믿음을 지켰더니마는 눈에 보이지 안 하는 능력이 와 가지고 배경도 환경도 변화시키고 사자 입도 막고 또 불을 뜨겁지 못하게도 만들고 또 18만 5천명이 화살 하나 맞지도 안하고 그만 시체가 되어 쭉 뻗고 어찌됐든지 나한테 독사같이 이를 갈고 날뛰던 그 자가 마음이 획 변해져서 그만 이상하게 나를 좋아하고 은혜 베푸는 사람이 됐고 이 사업에 이거는 해결할 수 없는 건데 어찌 어찌 됐는지 척 보니까 그 사업이 형통하게 돼 버리고 이러니까 '하, 이상하다 어째 그러지? 그럴 때가 돼서 그러나? 그 사람들이 모두 다, 배경 환경이 그것이 어째 변해졌지?' 암만 봐야 지극히 큰 능력이 눈에 안 보이게 왔는데 안 보이게 와서 일해 놓은 것만 나타났다 그 말이요.  

이러니까 사람들이 '이상하다' 하니까 마귀란 놈이 와 가지고 '야, 이상하기는 뭐가 이상해. 네 운이 좋아 그렇다.' 그래요. 이러니까 또 반신반의요. 운이 좋아 그런가? 또 권찰이 떡 오더니마는 '봐라,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이 도우니까, 네가 믿으니까 하나님의 능력이 와서 이렇게 한 것이 아니가? 예, 아마 그런 것 같습니다.' 그 다른 사람은 이렇게 말해요.  

이랬는데 이제 요 다음에는 현실에서 어려운 문제가 생기니까 '야, 이번에는 믿음 지키면 더 큰 낭패인데 이때 하나님이 같이만 해 주시면' 이러면서 했더니만 과연 보이지 않는 능력이 와서 역사해서 또 굉장한 일이 생겨졌다 그 말이요.

이래 가지고 어떨 때는 이 능력이 와 가지고 내 몸밖에 있는 일들을 잘 꾸며서 다른 사람이 다 볼 수 있도록, 지극히 큰 능력이 와서 일들을 꾸며 가지고 모든 사람이 '야, 이상하다.  예수 믿는 데 뭐가 있는 것 같다. 이상하다. 아, 그 사람이 지금 미련하게 그런 일을 했는데 당장 사자 밥이 될 줄 알았는데 아, 그게 살아왔다. 이상하다. 하나님의 권능이다.' 이렇게 할 때도 있지마는 그것보다도 어떤 때는 믿음을 턱 지키니까 껍데기 이거는 절단이 나는데 자기를 이상한 사람으로 만들어서 절단이 나니까 더 좋고 낭패가 되니까 더 좋고 아, 자기 안에 와 가지고 자기를 변화시켜서 이거는 상상도 못할 자기가 됐다 그 말이요.  

가만히 되고 나서 생각해 보니까 '야, 이상하다. 참 성경에 기록한 믿음의 사람, 성자 성녀 같네. 나도 이상하네. 왜, 내가 이처럼 컸지?. 내 마음이 어떻게 이렇게 선해 가지. 이상하네. 내일이 곧 사형 날인데 사형을 받을 건데 왜 이리 기쁠까? 이상하네. 이상하네.  자기 안의 내재적 변화가 일어나서 이 능력이 자기 안에  변화를 시켜서 그런 것입니다.

이러니까 남 모르는 지극히 큰 능력의 역사, 남이 알게 되는 역사, 자꾸 이렇게 해 보니까 남이 알게 되는 그 역사는 남이 모두 좋아서 야단이고 칭찬하지 자기 속에는 그렇게 좋은 것이 없는데 다른 사람이 '야, 너 예수 믿어 절단나지 안 했느냐?' 이렇게 껍데기에 이 능력이 와 가지고 역사한 것이 없는 그때는 자기 안에 와 가지고 다른 사람이 볼 수 없는 변화, 자기 변화를 시킨 이것으로 인해서 뭐 좋고 더 좋고 더 얼마나 좋다 말이요.

이러니까 '주여, 다른 사람 때문에 그렇지 나로 말하면 내 안에 와 가지고 그 능력이 역사해서 나를 변화시키는 것이 더 좋습니다.' 아, 다른 사람은 이 사람 불쌍하다고 이 사람 예수 믿다가 낭패 당한다고 위로하러 왔는데 아, 내 마음은 어떻게 기쁘고 즐거운지 참 측량할 수가 없습니다.  

(79083153)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었나니'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어겨서 죄를 지으면 하나님이 우리를 버리시지마는 하나님의 뜻대로 살 때에 하나님의 전지 전능이 우리를 어떤 데서라도 보호해 주신다 그렇게 성경에 말씀해 놨습니다. 사자 앞에서도 보호해 주시고, 불 가운데서도 보호해 주시고, 물에서도 보호해 주시고 어데서든지 우리를 보호해 주신다 그렇게 약속한 것을 우리가 바랍니다.

(*히11: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라*)

(87010140) 4


'너희가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이 뭐이냐? 예비하신 구원이 뭐이라요? 예비하신 구원이 뭐인지 그거 좀 여러분들 가서 주석 찾아 가지고 좀 가 보라고. 말세에 나타내시기로 예비하신 구원. 그 구원이 뭐입니까? 그 구원이, 또 오늘 있다가 죽을 사람 있을지 모르니까 지금 말해 주겠습니다, 간단하게.

예비한 구원은 무슨 구원이냐? 예비한 구원이니까 이미 예비돼 가지고 있는 구원입니까 안 돼 가지고 있는 구원입니까? 다 만들어 가지고 있는 구원이야.

만들어 있는데 뭐라? 사죄 칭의 화친이라.

사죄에 연결돼서 완전히 죄 없는 사람이 완전히 돼 버려. 하나님의 율법을 완전히 행해서 완전 의인이 완전 돼 버려. 하나님과 완전 친교된 사람이 돼 버려. 완전히 이 사람이 돼 버려. 그러니까 지금은 공로를 바라보고 믿지마는 이것이 이제 완전히 연결이 돼 버린다 말이오. 완전히, 실상으로 연결이.

실상으로 연결이 될라고 하면 뭣이 필요합니까? 연결을 시켜 놓고 연결됐나 안 됐나 보는 그것이 뭐이라? 시험해 보는 거라. 그래 가지고서 연결이 될라 하니까, 연결이 될라 하니까 이 세상 모든 것이 좋은 분위기 좋은 세상 것이 아주 구비해서 좋은 게 있는데 세상 것 좋은 것 있으면 여게 연결할라 합니까 안 할라 합니까? 안 할라 해.

아마 노아 홍수 때에 그때 홍수에 사람들이 다 물에 빠져 죽는데 그때에 홍수에 빠져 죽는데 노아 홍수에 노아가 배 타고 있지 안해요? 배 타고 있는데 저 산만당에도 다 물 속에 들어가고 지금 산만당이 조그매 남아서 산만당 위에 한 백 명쯤 남았을 때에, 다 죽고 백 명쯤 남았을 때 그때에 노아의 배가 거게 가면은 배에 들어올까요 안 들어올까요? 안 들어온다 할까요 막 배에 들어와서 살려달라고 그렇게 할까요? 어떻겠소? 노아 배에 들어오겠어 안 들어오겠어? 이거 못 느껴? 노아 배에 들어 올라하겠소 조롱하면서 피해 달아나겠소? 들어올라 하지. 환경이 그래 놓으니까 들어올라 하지 저 살 곳이 많으면 안 들어와요.

이러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이 세상에 있을 곳이 없어, 돈 의지하면 돈 의지 돈 그놈을 딱, 명예 의지하면 명예 그놈을, 자기 뭐 지혜 총명을 의지하면 지혜 총명을, 언변 의지하면 언변을, 이래 가지고서 ‘하나님 아니면 안 된다’ 막 하나님에게만 달라붙을 수 있도록 요렇게 환경을 만드는데, 대번 만들면 죽어. 대번 만들면 죽으니까 여러 차례 만들어 가지고 이제 하나님만을 믿고 의지하는 고 사람으로 만들어져 놓으면은 하나님의 모든 것이 제것이라. 하나님의 모든 것이 제것이라. 요 연단을 받아 가지고서, 연단은 뭐입니까? 잡것이 타고 정금만 남는 게 연단 아니요?    

금은 그래도 금은 정금만 남는데 정금도, 금도 되게 구으면 타 버립니다. 처음에는 잡철이 타고 금만 이십사금만 남지마는서도 이십사금도 되게 구으면 타 버려요.

“불에 타서 없어질 금보다 더 보배라” 이제, 우리 믿음은 그것보다도 더 태우고 태워서 이제는 아무래도 타지 안할 수 있는 영원히 어떤 것이 와도 없어지지 안 할 수 있는 하나님의 전지 전능 이 완전으로서만 우리가 되어지는 것이 요것이 우리의 구원이라.

(86071040) 5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었나니'
이것은 입었으니까 이미 입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무한하심이 우리가 믿음으로 벌써 우리가 입고 있습니다. 입고 있다는 말은 하나님에게 피동으로 입고 있습니다. 피동하면 제것 되고 피동 안 되면 빼앗깁니다.

(87102020)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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